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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테마102

현대문학 테마 포스트 1~100, 드디어 끝. 2014년 2월 4일에 '현대문학 테마 포스트 : 결심, 기획, 구상'이라는 첫 번째 글을 포스팅했는데, 무려 8년 후인 오늘에야 현대문학 테마 포스트 100편이 끝났다. 8년 전, 첫 번째 기획 글 보기 이렇게 오래 할 일은 아니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너무 늦어진 것 같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질질 끌었을까. 귀찮았나? 다 끝내니 홀가분하다. 이 (혼자만 느끼는) 영광을 한국 현대문학을 빛낸 문인들과 연구가들, 비평가들, 그리고 2007년 을 펴내 현대문학 테마 포스트의 계기를 마련해 주신 장석주 선생님께 돌립니다. 참고로 1975년(21세) 문단에 데뷔한 장석주 시인은 우리가 잘 아는 작품, 의 시인이다. 얼마 전 을 포함해 66편의 시를 담은 시선집 를 냈다. 시선집 정보 바로..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100. 정호승, 곽재구, 안도현 1980년대에는 암울한 현실에서 오는 고통과 저항의식, 우울성을 이성복, 황지우, 기형도처럼 형태 파괴로 드러낸 시인들도 있었지만, 이런 비감의 소재를 내면화한 시인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정호승, 곽재구, 안도현을 꼽을 수 있다. 정호승 정호승의 생애 정호승(鄭浩承, 1950~)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정호승은 1973년(24세) 신춘문예에 시 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오고, 1982년(33세) 신춘문예에 단편 가 당선된 후부터는 소설에도 손을 댔다. 지금까지 (1979), (1982), (1987), (1990), (1998), (2004), (2007) 등의 시집과 장편 소설 (1993)를 펴낸 바 있다. 이렇게 문학 활동에 힘쓰..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99. 이성복, 황지우, 기형도 : 1980년대 해체시인 ‘아우슈비츠’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반인간적 폭력과 살육이라는 인간이 저지른 최악의 추문을 가리키는 기호이자, 인간성의 파멸과 타락의 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인간성이 파탄 나 버린 세상에 서정시가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하는 물음은 아우슈비츠 이후 끊임없이 등장했고, 문학의 사회적 유용성에 대한 반성을 자아냈다. 한국인의 아우슈비츠는 1980년대의 광주이다. 1980년대 젊은 시인들에게는 ‘광주’ 이후에도 서정시가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 자리했고, 이 질문은 곧 파괴된 서정시 양식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양식이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나타난 움직임 중 하나가 양식을 파괴하는 이른바 해체주의이다. 다시 말해 1980년대 시인들에게 있어 해체 시학, 시의 형태 파괴는 ‘광주..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98. 이문열 이문열의 생애 어린 시절 이문열(李文烈, 1948~)은 본명이 열(烈)로,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좌익 사상에 물들어 있던 아버지가 6 · 25 발발 뒤 월북해 버리는 바람에 남은 가족끼리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어렵게 살아야 했다고 한다. 이문열은 1964년(17세)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본 후 안동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이 무렵 도스토예프스키와 헤밍웨이의 작품을 탐독하였다. 1965년(18세)에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부산으로 이사한 후 무위도식하면서 니체, 사르트르,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 등의 철학 서적을 읽으며 지낸다. 이 시기 그가 느낀 외로움, 성장기억 우울,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은 훗날 소설 에 “아이도 어른도 아니”고 “학생이랄 수도 건달이랄 수도 없는”..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97. 박완서 박완서의 생애 박완서(朴椀緖, 1931~2011)는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1934년(4세) 아버지를 여읜다. 얼마 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공부시킬 작정으로 박완서를 할아버지에게 맡긴 해 서울로 올라가는데, 다시 1938년(8세) 박완서를 서울로 데려 간다. 그리고는 학군 위반까지 하면서 박완서를 매동국민학교에 입학시키고, 1944년(14세)에는 숙명여고에 입학시킨다. 훗날의 은 이러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다. 숙명여고 5학년 시설 박완서의 담임교사는 소설가 박노갑이었고, 같은 반에는 한말숙 등이 있었다. 이때 박완서는 세계 문학 전집과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등 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문학에 관한 꿈을 키우고, 졸업 후인 1950년(20세)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96. 오정희 오정희의 생애 오정희(吳貞姬, 1947~)는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난다. 부모가 해방 무렵 황해도에서 월남해 온 탓에 살림이 곤궁했는데, 1950년(4세) 6 · 25가 터졌을 때 아기를 가진 어머니 때문에 피난을 떠나지 못한 채 인공 치하에서 몇 달을 보냈다가, 이듬해 출산 후 몸조리조차 못 한 어머니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오정희 가족이 간신히 도착한 곳은 충남 홍성으로, 이곳에서의 기억을 훗날 오정희는 로 형상화한다. 1954년(8세)에는 홍주국민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아버지가 인천 석유 회사에 취직되어 인천 중앙동으로 이사하였다. 이때 그의 가족들이 살았던 집은 일명 ‘차이나 타운’이 내다 보이는 작은 일본식 집이었다. 이 시기 오정희는 낯선 도시 생활과 열등감 때문에 방황하고 책과 연..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95. 조세희, 윤흥길 산업화 시대의 계층 갈등과 소설 1970년대에는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고, 경제력에 따라 사회 계층의 분화와 갈등이 극명하게 일어난다. 그러자 곧 이들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이나 농촌 및 도시 빈민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중에는 특히 연작 소설 형식을 취한 것들이 많다. 연작 소설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뚜렷하게 변화한 소설의 양식상의 특징으로, 문자 그대로 여러 편의 독립된 삽화들을 모아 더 큰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고안해 낸 소설의 형태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연작에 속한 각각의 단편 소설들이 갖는 독자적인 분절성의 의미와 전체적인 큰 이야기가 되도록 고안하여 소설의 독특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1970년대 이후 연작 소설들은 연작의 방법을..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94. 이문구 이문구의 생애 이문구(李文求, 1941~)는 충남 보령군 대천 관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이 군 서기, 향리 사법 서사로 일했던 탓에 어릴 때는 엄격한 유교 교육을 받으며 부유하게 자랐다. 그런데 1950년(10세) 6 · 25가 터지자 이문구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남로당 보령군 총책인 아버지가 치안 기관에 잡혀가 죽고, 아버지 활동과 연루된 협의로 둘째형과 셋째형도 끔찍한 죽음을 맞은 것이다. 1956년(16세)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는 졸지에 소년 가장이 되어 좌익의 혈육을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홀로 받아야 했다. 이문구는 이를 참다못해 1959년(19세) 무작정 상경하여 공사장 잡역부, 건어물 행상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꾸린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93. 신경림 신경림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신경림(新庚林, 1935~)은 충북 충주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응식(應食)이며, 일찍 개화한 지식인 집안에서 비교적 부유하게 자랐다. 노은국민학교 4학년이던 1946년(12세) 당숙과 함께 목계에 간 적이 있는데, 전부터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낙원의 이미지로 나오곤 하던 그 곳의 풍경을 신경림은 공책 한 귀퉁이에 적어 둔다. 이것이 선생님의 눈에 띄어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1948년(14세)에는 충주사범병설중학교에 입학하는데, 담임이자 문예반 지도 교사이던 정춘용으로부터 아낌없는 격려를 받았다. 이 시기 신경림은 이광수, 김동인, 이기영 등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그런데 3학년 때인 1950년(16세)에 6 · ..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92. 김지하 김지하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김지하(金芝河, 1941~)는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는데, 본명은 영일(英一)이다. 그의 증조부는 동학 운동을 하다가 숨졌고, 할아버지는 피신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1950년(10세) 김지하는 어린 나이에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겪는데, 이 체험은 훗날 그의 초기 대표작 로 형상화된다. 1953년(13세)에는 목포 산정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목표중학교에 진학하는데, 이듬해 아버지가 영화관 기사로 취직하면서 강원도 원주로 이주하여 원주중학교에 편입한다. 원주는 일찍이 가톨릭이 번성한 곳이라 김지하도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가톨릭 교구에 드나들지만 정식으로 세례를 받지는 않는다. 1956년(16세)에는 서울로 올라가 중동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문예반에 가입하고 김소월, 김영랑..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91. 황석영 황석영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황석영(黃晳映, 1943~)은 본명이 수영으로, 만주에서 태어났다. 1945년(3세)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평양을 거쳐 황해도 신주로 이주했는데, 남과 북에 분단 정권이 들어선 수 1949년(7세) 부모를 따라 월남해 서울 영등포 쪽에 정착했다. 당시 영등포는 공장 지대로 노동자나 영세민 집안의 아이들이 많았는데, 황석영의 어머니는 그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엄격하게 막았다고 한다. 1950년(8세) 영등포국민학교에 입하였다가 전쟁과 피난을 거친 후 졸업하였다. 1961년(19세)에는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하는데, 1학년 때 학원 문학상을 받는가 하면, 대학 문예 작품 공모에 두어 차례 붙고, 부산의 한 일간지 신춘문예에 이 당선될 정도로 일찍..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90. 김종삼, 전봉건, 천상병 김종삼, 전봉건, 천상병은 현실 세계와 거리가 먼 순수 지향적인 의식을 꾸밈없는 정서로 드러내는 천진성을 특징으로 한다. 김종삼 김종삼의 생애 김종삼(金宗三, 1921~1984)은 황해도 은율에서 신문 기자를 낸 지식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다.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보내다가 숭실중학교를 중퇴한 후 1938년(18세) 일본 토요시마 상업학교에 편입했으며, 본래는 고전 음악을 좋아하여 작곡을 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문학 공부를 한 후 1944년(24세) 도쿄 출판배급주식회사에서 일했다. 일본에서 김종삼은 도스토예프스키, 바이런, 하이네, 발레리 등의 작품을 읽으며 지내다가 해방을 맞은 25세에 귀국하였다. 김종삼은 전시인 1951년(31세) 시 을 내놓으며 시단에 들어온 후 1953년(33세)부터 ..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89. 박용래, 박재삼 박용래 박용래의 생애 박용래(朴龍來, 1925~1980)는 충남 논산에서 바로 위 누나와 열 살이 넘게 터울 지는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바로 손위인 홍래 누나는 훗날 그의 시에도 나올 만큼 어린 박용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박용래가 중학생이던 시절에 시집 간 지 1년도 못 되어 죽고 만다. 박용래는 중학 시절부터 , 등을 읽으며 문학에 빠져 들었다. 1943년(19세) 강경상업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조선은행 서울 본점에 취직하였으나, 1945년(21세) 은행을 그만두고 바로 얼마 후 해방을 맞았다. 1946년(22세)에는 생활고 때문에 계룡학숙에서 교사로 근무하는데, 여기서 박희선, 정훈 등과 ‘동백시회’를 꾸리고 동인지 을 펴내며 본격적으로 시를 습작하기 시작했다. 오랜 습작기를 거친 후 ..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88. 김광섭 김광섭의 생애 어린 시절과 유학 시절 이산(怡山) 김광섭(金珖燮, 1905~1977)은 함북 경성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한약방을 경영하던 할아버지 덕분에 한동안 넉넉하게 자란다. 할아버지가 죽고부터 가세가 기울어 잠시 고생하긴 했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번성하여 다시 가세가 회복되어 유복하게 성장하였다. 김광섭은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익히고 1915년(11세) 경성공립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이 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집에서 독학을 하다가 1920년(16세) 서울로 가서 중앙고보에 입학하고, 1925년(21세)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아이치 의대의 입학시험을 친다. 그런데 신체검사에서 색맹임이 드러나 불합격 판정을 받는 바람에 이듬해에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들어갔다. 1927년(23세) 김광섭은 와세다 대학 내..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87. 황동규 황동규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황동규(黃東奎, 1938~)는 평남 영유에서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로 태어난다. 재경국민학교에 입학하던 1945년(8세) 해방을 맞는데, 이듬해 가족들이 달구지를 타고 삼팔선을 넘어 서울에 정착한 후 덕수국민학교에 재입학하였다. 황순원이 서울고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교내 사택에서 살았는데, 전쟁 후 1951년(14세) 1 · 4 후퇴 때는 대구로 이주하여 곤궁한 살림을 꾸렸다. 이 시기 황동규는 너무 가난해서 껌팔이 소년으로 나서기도 한다. 1952년(15세) 부산으로 이주한 후에는 서울중학교에 입학하는데, 이 시기 윤동주와 김소월의 시를 접하고 습작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53년(16세)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학생 잡지에 시를 투고하기 시작하였다. 1954.. 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86. 김현승 김현승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김현승(金顯承, 1913~1975)은 평양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제주도, 광주 등지에서 보냈다. 광주에서 기독교 계열의 숭일소학교를 마친 후 부모와 떨어져 형이 있던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하는데, 그곳의 기숙사에서 생활하여 스포츠, 영화, 문학에 심취하였다. 김현승은 영국 시인 브라우닝의 를 읽고 감동한 후 시를 습작하기 시작하는데, 곧 교지 에 시 을 싣는 등 일찍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였다. 1932년(20세) 졸업 후 숭실전문 문과에 입학한 후에는 당시 숭실전문의 교수로 있던 양주동과 이효석의 강의를 듣고 더욱 창작에 힘을 쓴다. 문단 데뷔와 전기 활동 1933년(21세) 위장병 때문에 요양 차 광주로 내려갔다 온 후에.. 현대문학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