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생애
박완서(朴椀緖, 1931~2011)는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1934년(4세) 아버지를 여읜다. 얼마 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공부시킬 작정으로 박완서를 할아버지에게 맡긴 해 서울로 올라가는데, 다시 1938년(8세) 박완서를 서울로 데려 간다. 그리고는 학군 위반까지 하면서 박완서를 매동국민학교에 입학시키고, 1944년(14세)에는 숙명여고에 입학시킨다. 훗날의 <엄마의 말뚝>은 이러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다.
숙명여고 5학년 시설 박완서의 담임교사는 소설가 박노갑이었고, 같은 반에는 한말숙 등이 있었다. 이때 박완서는 세계 문학 전집과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등 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문학에 관한 꿈을 키우고, 졸업 후인 1950년(20세)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한다. 그런데 6월 20일에 입학식을 이른 지 닷새 만에 전쟁이 터진다. 게다가 전란 중에 오빠와 숙부를 잃고, 고향 땅마저 북한 영토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박완서는 졸지에 어머니와 올케, 연년생의 어린 조카들의 생계를 떠맡게 된다. 박완서는 학업에 대한 꿈을 접은 채 미군 초상화부에 취직을 하는데, 여기에서 박수근 화백을 만나 뒷날 등단작이 되는 <나목>의 영감을 얻었다.
박완서는 휴전 직후인 1953년(23세)에는 결혼을 하고 이어 네 딸과 외아들을 키우느라 문학과 멀어진다. 거의 20여 년이 흐른 1970년(40세), 박완서는 <여성동아> 여류 장편 소설 공모에 느닷없이 <나목>을 보내 당선한다. 이때부터 그는 뒤늦은 출발을 벌충이라도 하듯 왕성한 창작욕을 분출하며 문제작을 잇달아 내놓아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최근 사망하기까지 평생을 문학을 벗삼은 삶으로 메웠다.
박완서의 소설
<나목>
1970년(40세) <여성동아> 여류 장편 소설 공모에 당선된 박완서의 등단작이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이듬해 겨울의 서울 수복 직후를 배경으로,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인간의 삶과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예술가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 박완서의 실제 체험을 형상화한 것으로,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나목>에서는 ‘옥희도’의 그림을 이해하는 ‘이경’의 과거 관점과 현재 관점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즉, 과거에는 삶의 절망적인 모습의 상징인 ‘고목’으로 여겨졌던 그림 속의 나무가, 현재는 시련 속에서도 의연히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삶의 모습을 상징하는 ‘나목’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는 ‘나’의 정신적 성장을 보여 주는 것으로,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소설을 성장 소설로 볼 수도 있따.
<나목>
이야기는 한국 전쟁 중 미군 매점의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는 주인공 이경이 가난하고 불우한 화가 옥희도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경은 두 오빠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이경은 미군 초상화를 그리는 가난한 화가 옥희도에게서 자신의 모습과 같은 황량함을 느끼고 그에게 끌린다. 이후 명동 성당과 완구점 앞에서 계속 만나던 중, 옥희도가 가게에 나오지 않아 이경은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캔버스에 고목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전쟁의 기억이 사라질 만큼 세월이 흐른다. 그 사이, 오빠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던 이경의 어머니가 죽고, 이경 역시 다른 청년과 결혼한다. 어느 날 이경은 옥희도의 유작전에 들렀다가, 예전에 보았던 그림이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음을 깨닫는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1972년(42세) <현대 문학>에 발표한 작품이다. 박완서의 작품들은 대부분 사람답게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병든 사회에서 개인이 겪게 되는 좌절과 패배, 이러한 현실에 대한 깨달음과 반항, 반항의 좌절 등에 관한 것인데, 이 소설 역시 분단 시대의 냉전적 현실 구조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위축시키고 황폐화시키는지를 극명히 밝혀 보여 준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에는 몇 가지 의미 있는 사건들이 서로 긴밀한 관련이 없는 듯 제시되고 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문제, 예술을 포기하고 일상의 삶 속으로 빠져드는 절망감, 가족 간의 알력, 이민에 대한 판단, 오빠가 간첩으로 파견되리라는 데서 오는 감시 등. 이러한 개별적인 사건들은 떨어져 있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모두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인간이 살아가며 받을 수밖에 없는, 또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삶의 무게의 한 표상인 것이다. 그러한 삶의 무게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바로 소시민들의 삶이며,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인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소설로 형상화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늘 우리의 사회를 이렇게 사람다운 사람이 발붙이고 살기 힘든 황폐한 고장으로 만들어 버렸는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원인과 숱한 사연들이 있겠으나, 그 결정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오늘 우리의 사회가 분단된 나라의 냉전적 사고방식 위에 서 있는 사회라는 사실에서 찾아질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나’는 딸의 학교에 가던 중에 이웃집 설희 엄마를 만나 대화를 튼다. 설희는 ‘나’의 딸과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지체 장애자이다. ‘나’ 기부금을 내라는 자모회의 은근한 압박에 분개하며 설희 엄마와 대화를 나누면서 가까워지고, 그녀가 설희를 미국으로 데려가 고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나’는 두 가지 고통을 겪는다. 하나는 6 · 25 전쟁 때 의용군에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오빠로 인해 정보기관의 조사를 받거나 남편이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틀니 때문에 오는 동통이다.
미국으로 떠나는 설희네를 배웅하고 돌아온 ‘나’는 틀니를 빼고 그 압박감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외판원의 방문을 오빠 문제로 오인하고, 틀니는 뺐는데도 극심한 동통을 느낀다. 비로소 ‘나’는 동통의 원인이 틀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족 간에 이념 대립을 계속하는 나라가 주는 온갖 제약에 있음을 깨닫는다.
<엄마의 말뚝>
1979년(49세) <문학 사상>에 발표한 소설로, 1981년(51세)에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많은 한국 전쟁 소설이 지나친 이념 대립이 강조되거나, 이 이념 대결의 연장선에서 계속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박완서의 작품은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소설에서는 이념 대결의 갈등이 그렇게 첨예하게 부각되어 있지도 않고, 아픔의 책임을 전쟁으로 돌리는 구호적인 외침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생활 속에서 여전히 배어 있는 그 아픔의 깊숙한 체험을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
연작의 첫 번째 <엄마의 말뚝 1>은 시골 고향에서 남편을 잃은 후,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등지고 어린 오누이만 데리고 서울로 상경한 어머니가 마침내 집 한 채를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이 작가의 유년기와 함께 담겨 있는데, 어머니와 딸이 나누는 인간적인 교감과 중년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매개로 하여 한 가족이 겪어야 했던 비극적 상황을 탁월하게 형상화해 내며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제시한다. <엄마의 말뚝 2>는 이 연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쟁과 오빠의 죽음을 다루고 있으며, <엄마의 말뚝 3>은 화장되어 강물에 뿌려지기를 바랐던 엄마의 소망과는 달리 서울 근교의 공원묘지에 묻히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각각의 단편 소설은 독립된 완결성을 가지고 있으며, 연작 형식을 통해 ‘엄마’의 삶을 단순히 한 개인의 사적인 역사에 머무르게 그리기보다는, 가족사, 민족사의 차원으로 고양시켜 보여 주고 있다.
<엄마의 말뚝>에서의 ‘말뚝’은 단순한 삶의 터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말뚝’은 ‘문 안’으로 상징되는 교육받고 윤택한 삶에 대한 어머니의 강렬한 집념과 의지, 자식의 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열망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편 ‘나’에게 있어 ‘말뚝’은 어머니의 이상에 의한 정신적 구속감을 의미하며, 연작 전체와 관련해서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한을 상징하기도 한다.
<엄마의 말뚝>
‘나’는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오빠의 교육을 위해 대처(서울)로 떠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따라가게 된다. 엄마는 ‘나’에게 언제나 ‘신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주었다.
인왕산 기슭의 현저동 산동네 셋방에서, 엄마는 자녀 교육에의 집념으로 오빠와 ‘나’를 삯바느질로 키운다. 엄마는 문안(사대문 안)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날을 기대하면서 오빠를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뒷바라지 한다. 그러던 중 인왕산 기슭 달동네에 자그마한 집을 장만하게 된다. 낡은 집이었지만 서울에서 처음 장만한 집이라 엄마의 애착은 남달랐다. 그 곳에 엄마는 말뚝을 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곧 6 · 25가 터지고, 오빠는 좌익에서 전향하였다가 피난을 가지 못하고 피해망상 증세를 보이며 초췌하게 숨어 지내다가 무참히 살해된다. 이후 엄마는 오빠의 아이들과 함께 노후를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낙상하여 다리 수술을 받는데, 여든여섯의 엄마는 약물의 부작용인 듯한 발작을 한다. 6 · 25 전쟁 중 아들을 잃었던 기억이 광란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수술 후 엄마는 7년을 더 살다 돌아가셨다. ‘나’는 엄마의 유언대로 엄마의 시신을 화장하여 고향이 바라다 보이는 강화도 바닷가에 오빠처럼 장례 지내고자 하지만, 장성한 조카는 주위의 이목과 자신의 사회적 체면을 이유로 매장할 것을 고집하여 뜻대로 장례를 치른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4년(54세) <한국일보>에 연재한 장편 소설이다. 표면상으로는 전쟁으로 헤어져야 했던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를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혈육마저 냉정하게 버리려는 중산층의 이기심과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을 바탕에 깔고 있다. 박완서는 이를 통해, 중산층 특유의 이기심과 개인주의가 결국은 분단 상황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가족’의 관념을 어떻게 정립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6 · 25 전쟁 중이던 1951년 겨울, 1 · 4 후퇴 와중에 일곱 살 난 수지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여동생 수인의 손목을 일부어 놓아 미아로 만든다. 전쟁이 끝나고 수지는 오빠 수철의 집에서 유복하게 살게 된다. 수지는 동생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고아원에 자주 가는데, 그곳에 오목(수인)이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친동생임을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수지는 가난한 애인 인재와 부자인 기욱을 저울질하다가 기욱을 선택한다. 그런데 인재가 오목과 가까운 사이임을 알고, 질투심 때문에 오목이가 고아라는 사실을 폭로하여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오목은 같은 고아원 출신의 일환과 동거하지만, 일환은 아들이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의심 때문에 갈등한다.
결국 오목은 가난과 질병 끝에 수지에게 자식을 맡기고 죽고, 수지는 죽어가는 오목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참회한다.
<그 여자네 집>
1998년(68세) 작품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 실린 애자 소설이다.
액자 바깥에서는 먼저 자연스럽게 김용택의 시 <그 여자네 집>을 제시하는데, 이 시는 ‘나’에게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 준다. 시에는 옛날의 아름다운 고향 마을과, 그 속에 살고 있던 어떤 여인에 대한 남성의 시선이 나타나 있다. 이 시는 ‘나’에게 마치 ‘장만득 씨’가 ‘곱단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그대로 표현한 것처럼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을 통해 독자들은 이미 ‘만득이’와 ‘곱단이’의 사랑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깊이 공감하게 된다. 또한 실제로 존재하는 시인의 실제 작품을 삽입하여 화자의 이야기에 대한 신빙성을 한층 더 높임으로써 작품 속에 시를 삽입한 효과를 충분히 거두고 있다. 그리고 글의 도입부에서 작가가 사실적이고 체험적인 형식을 빌린 것 역시,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친근감과 호소력을 주고 작품의 사실성을 높이는 효과를 거둔다.
작품 속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장만득’은 과거의 잃어버린 사랑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아픔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장만득’에게 있어 자신과 ‘곱단이’의 사랑이 실패한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를 겪고 분단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의 하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장만득’의 생각을 알게 된 화자인 ‘나’도 ‘곱단이’와 ‘장만득’의 사랑이 우리 근현대사가 만들어 낸 비극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여자네 집>
‘나’는 김용택의 시 <그 여자네 집>을 생각하다가 곱단이와 만득이의 옛날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곱단이와 만득이는 마을의 마스코트였고, 마을 어른들도 두 사람이 짝을 이룬다면 얼마나 예쁠까 하고 기대하곤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만득이의 징집영장이 날아온다. 다른 젊은이들은 씨라도 남겨 두려고 징집 전 결혼을 서두르지만, 만득이는 오히려 곱단이를 과부로 만들기 않기 위해 곱단이에게 결혼을 미루자고 한다. 만득이가 떠난 후 곧 여자 정신대 모집 바람이 분다. 곱단이네 식구들은 곱단이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 시집보낸다.
이후 삼팔선이 그어지는 바람에 곱단이가 시집간 신의주는 영영 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리고, 시집간 곱단이는 친정에 한 번 와보지 못한 채 생이별을 하게 된다. 징병에서 돌아온 만득이는 같은 마을의 순애와 결혼을 하고, 누이가 잡아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간다.
세월이 지나서 곱단이와 만득이의 일들을 다 잊고 있던 ‘나’는 삼촌과 함께 고향 군민회 모임에 따라 나섰다가 우연히 장만득 씨와 순애 부부를 만나게 된다. ‘나’는 순애와 곧잘 만나는 사이가 되는데, 순애는 장만득 씨가 여전히 곱단이만을 가슴속에 품고 산다고 이야기한다. 이후 순애가 죽고, ‘나’는 장례식장에 놓인 터무니없이 젊은 영정 사진을 보고서 곱단이에 대한 그녀의 질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새삼 느낀다.
몇 년 후, 정신대 할머니를 돕는 모임에 나갔다가 장만득 씨를 만난 ‘나’는 여전히 그가 곱단이를 못 잊고 있구나 싶어 벌컥 화를 낸다. 그러나 장만득 씨는 곱단이에 대한 이야기는 순애의 오해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이 왜 이 모임에 나오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전쟁이 준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받은 사람들도 모두 전쟁의 피해자, 일제의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는 장만득 씨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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