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의 생애
어린 시절과 유학 시절
이산(怡山) 김광섭(金珖燮, 1905~1977)은 함북 경성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한약방을 경영하던 할아버지 덕분에 한동안 넉넉하게 자란다. 할아버지가 죽고부터 가세가 기울어 잠시 고생하긴 했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번성하여 다시 가세가 회복되어 유복하게 성장하였다.
김광섭은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익히고 1915년(11세) 경성공립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이 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집에서 독학을 하다가 1920년(16세) 서울로 가서 중앙고보에 입학하고, 1925년(21세)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아이치 의대의 입학시험을 친다. 그런데 신체검사에서 색맹임이 드러나 불합격 판정을 받는 바람에 이듬해에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들어갔다.
1927년(23세) 김광섭은 와세다 대학 내의 조선인 동창회지 <알>의 발간에 참여하고 여기에 시 <모기장>을 발표하였다. 1928년(24세)에는 정인섭과 ‘해외 문학 연구회’에 가담한 후 순문예지 <해외 문학>과 <문예 월간> 창간에 관여하는 등 대학 생활 내내 문학 활동에 깊이 발을 들였다.
본격적인 문학 활동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1933년(29세)에는 중동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극 예술 연구회’에 가입하였다. 이듬해에는 <문학>에 논문 <수필 문학 소고>와 <풍자론>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오고, 1935년(31세)에는 시 <고독>, <소곡에서>, <고뇌>, <개성> 등을 발표한다. 이즈음 김광섭은 ‘해외 문학파’로 불리는데, 주로 인간의 고독과 번민을 다루면서 주관적 감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였다. 1938년(34세)에는 첫 시집 <동경>을 발간하였다.
김광섭은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1939년(35세)부터 광산 사업에 손을 대고 시 <춘 제일송> 등을 발표한다. 그러던 중 1941년(37세) 학생들에게 반일 사상을 북돋웠다는 협의로 체포되어 오랜 기간 옥고를 치르다가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직후 김광섭은 우익 문학 단체인 ‘중앙문화협회’, ‘전조선문필가협회’ 결성에 앞장서고, 1947년(43세)에는 미군정청 공무국장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와 평론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1948년(44세) 남한 단독 정부 수립 무렵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 공보 비서관으로 임명된다.
관직과 집필 생활을 병행하며 1949년(45세)에는 두 번째 시집 <마음>을 내놓고, 1950년(46세)에는 문예지 <백민>을 인수하고 제호를 <문학>으로 바꾸어 펴냈다. 그러나 곧 6 · 25가 터지는 바람에 <문학>이 휴간하자, 김광섭은 피난지에서 ‘공보처’가 발행한 <대한신문> 사장으로 취임하여 문단을 간접적으로나마 도왔다.
대통령 공보 비서관 직을 내놓은 후 1952년(48세)에는 경희대학교 교수로 임용되고 <문예>에 시 <푸른 상처>를 발표한다. 1950년대 말까지 그는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중앙 위원과 ‘한국 자유 문학자 협회’ 회장으로 뽑히고, 문예지 <자유 문학>을 창간하였으며, ‘서울시 문화상’을 받고, 세 번째 시집 <해바라기>를 펴낸다. 이 시집까지도 김광섭은 초기 시부터 보여 온 추상과 관념의 시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성북동 비둘기>와 말년
1961년(57세)에는 시 <동백꽃>을 발표하고 서울 성북동에 집을 지어 이사하였으나 1964년(60세) 뇌출혈로 쓰러지는 바람에 집을 팔고 미아동으로 이사하였다. 1969년(65세) 김광섭은 병상에서 성북동의 추억을 더듬은 네 번째 시집 <성북동 비둘기>를 발간하였다. 이 시집에서 비로소 김광섭은 그 동안 줄기차게 드러내던 추상성과 관념성에서 말끔히 탈피하여 현실성과 구체성을 획득한다.
경희대에서 퇴직한 후에는 1970년대에는 ‘국민 훈장 모란장’을 받고, 아내의 죽음과 투병에 시달리면서도 다섯 번째 시집 <반응>을 비롯하여 <김광섭 시 전집>, <겨울날>, <나의 옥중기> 등 거의 해마다 책을 펴내는 의욕을 보여주다가 1977년(73세) 여의도의 아들 집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김광섭의 시
초기 시
김광섭의 초기 시는 식민지 시대의 무기력한 모습을 나타내는 현실 부정적인 자아의 표현으로,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저항보다는 관념과 추상을 지향하는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고독>
1935년(31세) <시원>에 발표하고 1938년(34세) 낸 첫 시집 <동경>에 수록한 작품으로, 김광섭의 초기 대표작이자 출세작이다. 주지적 경향과 관념적 표현이 두드러지며, 식민지 시대의 지성인이 겪는 자의식과 지적 고뇌가 심각하게 표출되어 있다. 단순히 철학적인 차원이 아닌 시대 상황과 관련된 존재론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당대에 대한 김광섭의 시대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화자는 삶의 능동적 자유 의지를 상실하고 ‘아름다운 꿈’과 ‘그리운 세계’는 단절된 채, ‘고단한 고기’가 되어 ‘세기의 지층’에 이끌리며, ‘신경도 없는 밤’을 보내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무덤’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시계’로 객관화하여 자신의 깨어 있음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지금 자신이 깨어 있는 것은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 과정에서 터득한 ‘오랜 세기의 지층(知層)’과 같은 관념적이고 표피적인 지식에 근거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맹목적으로 돌아가는 시계 바늘과 같은 것으로 인식한 자기 비판적 성찰의 결과로, 시계처럼 사물화 되어 맹목적 생존의 상태와 다를 바 없는 식민지 치하의 무의미한 삶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
내/ 하나의 생존자(生存者)로 태어나서 여기 누워 있나니//
한 간(間)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기류(氣流)의 파동(波動)도 있어/ 바다 깊은 그 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
내/ 고달픈 고기와도 같다.//
맑은 성(性) 아름다운 꿈은 잠들다./ 그리운 세계(世界)의 단편(斷片)은 아즐타./ 오랜 세기(世紀)의 지층만이 나를 이끌고 있다.//
신경(神經)도 없는 밤/ 시계(時計)야 기이(奇異)타./ 너마저 자려무나.
<동경>
1937년(33세) <조광>에 발표하고 이듬해 낸 첫 시집 <동경>에 표제시로 수록한 작품으로, 앞의 <고독>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치하에서 괴로워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동경>
온갖 사화(詞華)들이/ 무언(無言)의 고아(孤兒)가 되어/ 꿈이 되고 슬픔이 되다.//
무엇이 나를 불러서/ 바람에 따라가는 길/ 별조차 떨어진 밤//
무거운 꿈 같은 어둠 속에/ 하나의 뚜렷한 형상(形象)이/ 나의 만상(萬象)에 깃들이다.
중기 시
김광섭의 중기 시는 <마음>과 같이 자연 몰입과 옥중 생활 및 해방을 노래하거나, <해바라기>와 같이 상실의 비애와 생명에 대한 강한 의욕을 표현하고 있다.
<마음>
1939년(35세) <문장>에 발표한 작품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고 고결한 이상을 이루려 하는 개인의 내면세계를 다룬 순수시이다.
<마음>은 곱고 부드러운 격조와 적절한 은유로 아름다운 언어의 조화를 이룬다. 은유와 상징이 잘 구사되어 세련미와 함께 지적 관조도 보인다. 화자는 자기의 마음을 고요한 ‘물결’에 비유하여, 심리적 갈등과 함께 파문을 일으키기 쉬운 마음을 지키려는 경건한 자세를 잘 드러내고 있다.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해바라기>
1957년(53세) 간행한 시집 <해바라기>의 표제시이다. 해바라기가 피어나는 자연의 배경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운 현상과 함께 어우러져 생명에 대한 강한 의욕을 느끼게 하며, 순수 자연의 감각을 시각적 이미지로 잘 표현하고 있다.
<해바라기>
바람결보다 더 부드러운 은빛 날리는/ 가을 하늘 현란한 광채가 흘러/ 양양(洋洋)한 대기에 바다의 무늬가 인다.//
한 마음에 담을 수 없는 천지의 감동 속에/ 찬연히 피어난 백일(白日)의 환상을 따라/ 달음치는 하루의 분방한 정념에 헌신된 모습//
생의 근원을 향한 아폴로의 호탕한 눈동자같이/ 황색 꽃잎 금빛 가루로 겹겹이 단장한/ 아! 의욕의 씨 원광(圓光)에 묻힌 듯 향기에 익어 가니//
한 줄기로 지향한 높다란 꼭대기의 환희에서/ 순간마다 이룩하는 태양의 축복을 받는 자/ 늠름한 잎사귀들 경이(驚異)를 담아 들고 찬양한다.
후기 시
김광섭의 후기 시에서는 공동체적 삶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사회 비판 의식을 표출하는 면모를 보여 주어, 초기부터 오랫동안 지녀 온 추상성과 관념성의 탈피를 보여 준다. 노년의 김광섭은 분단, 산업화 등 많은 사회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주며 병치레를 겪은 후의 초탈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생의 감각>
1967년(63세) <현대 문학>에 발표한 시로, 김광섭이 1965년(61세) 고혈압으로 쓰러져 일주일 간 사경을 헤매다가 무의식의 혼돈세계에서 다시 소생한 체험을 구상화한 작품이다. 투병 생활에서 겪은 생명의 빛과 죽음의 그림자가 여러 사물을 빌어서 구상화되어 있다. 김광섭에게 있어 죽음에의 체험은 인생관의 변화를 가져 왔고 곧 시작 태도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는데, <생의 감각>이 바로 그와 같은 변화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표제의 ‘생의 감각’이란 생에 대한 자각인 ‘부활’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시에는 인생론적인 면과 소생 과정의 극적인 면이 동시에 수용되고 있다. 김광섭은 부활의 시간적 출발점을 여명(黎明)으로 잡고 있는데, 이 여명은 밤으로부터 아침으로 연결되는 과도기적 시간이자 밤의 절망에서 아침의 희망에로의 전이를 상징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생의 감각>
여명(黎明)에서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荒野)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生)의 감각(感覺)을 흔들어 주었다.
<성북동 비둘기>
1968년(64세) <월간 문학>에 발표한 작품이자 이듬해 발간한 시집 <성북동 비둘기>의 표제시로, 김광섭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전체가 기 · 서 · 결 3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 2연에서는 묘사를 통하여 ‘비둘기’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제3연에서는 화자의 서술에 의하여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옛날에는 비둘기가 사랑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문명으로 인해 자연도 잃고 쫓기는 존재가 되었으며, 사랑과 평화마저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둘기’를 ‘인간’으로 본다면, <성북동 비둘기>는 문명에 의한 자연 파괴와 인간 소외, 그리고 인간성 상실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하겠다.
결국 김광섭은 인간 스스로 창조한 물질문명이 자연의 훼손을 가져오고 인간성마저 박탈하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에까지 이르게 된 점을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鄕愁)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산>
1968년(64세)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작품으로, ‘산’의 여러 모습을 서정적 어조로 의인화함으로써 삶과 사람과 자연의 일체감을 표현하고 있다.
<산>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不動)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神)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高山)도 되고 명산(名山)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저녁에>
1969년(65세) <월간 중앙>에 발표한 시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내면 성찰을 통하여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하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다. ‘밝음 속에 사라지는 별’과 ‘어둠 속에 사라지는 나’를 대응시켜, 별이 밤하늘의 어둠 속에서 그 밝음을 더해 가듯 인간의 삶 역시 역경과 시련을 헤쳐 나아가는 데서 비로소 참된 빛과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시인>
1969년(65세) <동아일보>에 발표한 작품으로, 40년 넘게 시를 써 온 노년 시인의 세계와 그 일생을 진지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화자가 생각하는 시인이란 존재는 ‘꽃’과 ‘사랑’으로 대유된 아름다움과 진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시인은 오직 시 한 편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해서 탄생시킨 시 한 편의 고료는 겨우 2, 3천원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의 부귀와는 분명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이 시인의 타고난 천성(天性)이다.
한편, 시인은 ‘늙어서까지’ 시간과 정열을 아껴 쓰는 부지런한 정진을 통해 일견 어리석고 궂은 것처럼 보이는 ‘비극적 사랑’을 평생 동안 고독하게 노래하는 사람들이며, 때로는 ‘술 한 잔’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인생의 긴 여정을 쓸쓸히 가는 사람들이다. 신명이 나지 않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쌀알 만한’ 가치라도 있는 글감이라고 생각하면 놓치지 않고 그것을 작품화시킨다. 어떤 소재를 선택하든지 간에 시인은 그것과 혼연일체가 되어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음으로써 마침내 그것을 살아 번득이는 하나의 위대한 예술품으로 만들어 낸다.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이 흘러가도 시인의 정신은 한 편의 시로 남아 있음에 비해, 시인의 육신은 이미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이렇듯 김광섭은 <시인>에서 ‘시인’을 세속적 욕망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고독의 깊은 늪에서 평생을 자신과 싸우며 오직 시 한 편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는 거룩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
<시인>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 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누님>
1975년(71세) 시집 <겨울날>에 발표한 작품으로, 한국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누님과 그 누님을 기다리다 결국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어머님’은 딸(누님)과 헤어진 후 1974년 남북 적십자 회담 때 다시 만날 희망을 가져 보았지만, 안타깝게 세월만 흐른다. 어느 집 울타리만 보아도 혹 그 안에 딸이 있지 않나 하는 어머니의 행동이 눈물겹고, 그런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이를 안타까워하는 화자의 마음 역시 눈물겹다. 남북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형상화한 시이다.
<누님>
애들만 먼저 태워/ 시퍼런 바다에 띄워 놓고 보니/ 집이 간 데 없어 발길이 돌아서지 않았다.//
아침마다 남쪽에 절하신다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남북 적십자 회담 때에는/ 안 된다는데도/ 실오리에나마 희망을 붙이고/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시던/ 어머님은/ 어느 울타리에서나/ 누님이 불쑥 나올 것만 같아/ 저 울타리 안에는 누가 사는지/ 들여다볼 수 없을까.//
거지가 지나도/ 혹시나 해서/ 찬찬히 여겨 보신다던/ 그 어머님마저 돌아가셔서/ 누님 이야기는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어데선가에서 눈도 바로 못 감았으려나…….//
어머님하고 영혼끼리/ 고향집에라도 가서 만났으면/ 현몽이라도 있었을 법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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