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생애
이문구(李文求, 1941~)는 충남 보령군 대천 관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이 군 서기, 향리 사법 서사로 일했던 탓에 어릴 때는 엄격한 유교 교육을 받으며 부유하게 자랐다. 그런데 1950년(10세) 6 · 25가 터지자 이문구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남로당 보령군 총책인 아버지가 치안 기관에 잡혀가 죽고, 아버지 활동과 연루된 협의로 둘째형과 셋째형도 끔찍한 죽음을 맞은 것이다. 1956년(16세)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는 졸지에 소년 가장이 되어 좌익의 혈육을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홀로 받아야 했다. 이문구는 이를 참다못해 1959년(19세) 무작정 상경하여 공사장 잡역부, 건어물 행상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꾸린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작가의 꿈을 키우던 이문구는 1961년(21세)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였다. 당시 이 학교에서는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조연현 등 일급 문사들이 강의를 하고 있었고 재학생으로는 조세희 등이 있었다.
졸업 후에도 생계에 쪼들리던 1965년(25세), 이문구는 스승 김동리의 추천으로 <연대문학>에 단편 <다갈라 불망비>를 발표하고 이듬해 단편 <백결>로 완료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온다. 이어 1967년(27세)부터 1969년(29세)까지 <생존 허가원>, <지혈>, <부동행>, <담배 한 대>, <두더지>, <이삭>, <가을 소리>, <백의>, <몽금포 타령> 등을 발표해 다양한 소재와 등장인물들을 보여 주었으며, 그러는 동안 <월간문사>에 입사하여 생활면에서도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1970년(30세)에는 <장난감 풍선>, <이 풍진 세상을>, <암소> 등을 발표하는데, 특히 <암소>는 과거 채만식과 김유정이 보여 주던 평민 문학적 골계미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풍자와 해학의 문체를 보여 주어 1970년대를 대표하는 ‘농촌 작가’로 우뚝 섰다. 이후 1970년대에는 <그때는 옛날>, <못난 돼지>, <이풍헌>, <낙양 산책>, <우산도 없이>, <만추>, <엉겅퀴 잎새> 등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소설들을 연거푸 낸다. 그 중 돋보이는 것은 1972년(32세) <일락 서산>으로 시작한 <관촌 수필> 연작과 1977년(37세)부터 내놓은 <우리 동네> 연작이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많은 소설을 내놓아 지금까지 활동 중이며, 흙의 문예상, 펜 문학상, 서라벌 문학상, 만해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문구의 소설
연작 소설
<관촌 수필> 연작
<관촌 수필> 연작은 1972년(32세) 발표한 <일락 서산>을 비롯해 <화무 십일>(1973), <행운 유수>(1973), <녹수 청산>(1973), <공산 토월>(1973), <관산 추정>(1976), <여요 주서>(1976), <월곡후야>(1977) 등 여덟 편의 중 ·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문구 자신의 유 · 소년기 고향 체험에서 길어 올린 것으로, 양반 토호 가문이나 유림 등 봉건적 신분 질서의 잔재가 남아 있고 부락 공동체의 풍습과 인정이 살아 있는, 근대 문명에 잠식되지 이전의 고향을 복원하고 있다.
<관촌 수필>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서는 상실감이다. <관촌 수필>에서 ‘고향’이나 ‘농촌 공동체’는 전쟁과 이념의 충돌로 엄청난 균열을 겪고, 뒤이은 근대화 과정에서 도시 자본주의 문명에 잠식되어 다른 사회로 해체 또는 변모되어 간다. 작가는 전근대적 농촌 사회의 공동체적 속성과 농민들의 순박함과 인정, 전통 윤리와 질서가 멸실되어 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연작 곳곳에서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풀어 놓고 예스러운 것의 가치를 감싸는데, 이 때문에 현실 의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주자학적인 봉건의 잔영을 그리는 데 치우쳤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우리 동네> 연작
1977년(37세)부터 1981년(41세)까지 내놓은 연작으로, <우리 동네 김씨>, <우리 동네 리씨>, <우리 동네 황씨>, <우리 동네 정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농촌 아이들에게까지 번진 망년회, 부녀자들의 무분별한 관광 여행과 춤바람, 농협의 변칙 운영, 조미료 중독, 도시인들의 사냥 때문에 받는 피해, 외곽에 들어선 공장에서 일어난 노사 문제, 모내기에 동원된 고등학생들의 새참 요구 농성,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사기 사건, 추곡 수매 비리, 지도소의 영농 교육에 대한 농민들의 반감, 중개상으로 전락한 농협에 대한 농민들의 적대감, 농한기의 도박 풍조 등 나날이 변해 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과 풍속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그려낸 연작이다.
<우리 동네>는 극적 전환이나 결말 없이 비슷한 양상의 짧은 삽화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풍부한 토속어와 비속어, 역동적인 판소리체 대화, 속담과 격언 등을 적절하게 써서 민중 언어의 활력을 되살려 낸다. 짧은 삽화들은 서로 깊은 연관 없이 우리 농촌의 세태와 풍속을 드러내지만, 이런 것이 중첩되고 영역을 넓혀가면서 비로소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집중된다. 때문에 이 연작을 따라가는 독자들은 가만히 앉아 농촌의 구석구석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단편 소설
<암소>
1970년(30세) 발표한 작품으로, 직정적 사투리로 걸쭉하게 반죽된 긴 요설체의 문장 속에 한 머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편이다. 끈적거리는 토속어 문체로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와 함께 와해되는 농촌 공동체, 이를 떠받치고 있던 자기 헌신과 상호 유대 정신의 멸실, 그 와중에 농민들의 소박한 희망과 기대가 깨지고 꺾이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암소>는 채만식, 김유정이 발원한 “평민 문학적 골계미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풍자와 해학의 문체를 이어 받았으며, 농촌 소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인물의 소영웅화, 인정 삽화, 지방주의 등을 극복한 1970년대 대표적인 농촌 소설로 꼽힌다.
<암소>
4년 동안 박선출은 황구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군대 입대하게 되자 그 동안 모은 재산을 모두 주인 황구만에게 맡긴다. 황구만은 월 3부 이자를 주기로 하여 그 돈을 받아 직조 공장을 차렸으나, 화학 섬유가 나오는 바람에 밑천을 모두 날린다. 돈을 갚을 길이 없게 된 황구만은 정부가 ‘농어촌 고리채 정리 기간’을 시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채무 건을 신고해 버린다.
제대한 박선출은 그 사실을 알고 펄펄 뛰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악덕 고리 대금업자로부터 영세 농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생긴 정책이 엉뚱한 피해자를 낳은 것이다. 결국 황구만은 박선출에게 암소를 주고 채무 관계를 해소하기로 타협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암소는 새끼를 배고 있었고, 두 사람은 다시 뱃속에 있는 송아지의 소유권을 놓고 다툰다. 그러나 얼마 후 암소가 술 지게미 맛을 보더니 막걸리 한 항아리를 몽땅 마시고 쓰러져 죽어 버린다.
<유자 소전>
1991년(51세)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작품으로,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을 소재로 하여 그의 일대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이문구는 <유사 소전>으로 제8회 만해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6 · 25 전쟁과 4 · 19 혁명, 5 · 16 군사 쿠데타, 6 · 29 선언 등 굵직한 우리의 역사를 한 개인의 역사와 더불어 서술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이문구 특유의 걸쭉한 입담을 통해 서술되고 있다. 충청도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서민적인 비속어까지 등장시켜 독자로 하여금 웃음 속에 깃든 비판 정신을 찾아내게 만드는 것이 또한 이 작품의 장점이기도 하다. 판소리 문체를 계승한 해학적인 표현과 주인공의 능청스럽고 의뭉스러운 행위 묘사 등은 이문구 문학의 특징이기도 한데 이 작품에서 그의 장기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유사 소전>은 유재필(1941~1987)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 서민적이면서도 대인의 풍모를 지닌 한 인물 유형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에 인물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유재필’은 항공사를 겸하는 운수 회사의 교통사고 전담 과장으로 교통 순경, 변호사, 보험회사, 유가족 등을 상대로 어려운 조정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항상 원칙과 진실에 대한 믿음으로 사고를 처리하였고 부정한 승리나 부당한 패배가 없도록 정성을 다하였다. 보험법, 교통법, 도로 관리법의 선례와 판례, 사례 등을 꿰뚫고 법의학까지 공부하여 ‘적당주의’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했으며, 심지어 침술과 풍수와 수맥까지 터득하여 유가족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운전수의 집에 쌀과 연탄을 마련해 줄 정도였으며, 주변의 수많은 문인들의 뒤치다꺼리를 감당하였다. 남로당원으로 소신껏 살다가 처형당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술과 독서 그리고 남 잘되라고 공들이는 즐거움으로 한평생을 보냈다.
이런 ‘유자’를 통해 독자들은 이익만을 추구하고 부와 사치에 젖어드는 현대인들의 삶을 반성하게 된다. 재벌 총수가 사람보다 값비싼 물고기를 중히 여기듯 우리도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유자를 통해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급격한 산업화로 도시화로 인해 우리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전근대적이지만 인간미 넘치는 유자를 통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비판적, 풍자적 성격이 짙다고 하겠다.
<유자 소전>
유재필은 충청도 보령 출신으로 ‘나’의 어린 시절 친구이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총기와 숫기로 또래 중 두드러졌는데, 아버지가 남로당원이라 일찍 처형당한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꿋꿋한 기상을 잃지 않았다. 또한 매사에 생각이 깊고 따뜻한 성품으로 늘 깨어 있는 삶을 살았다. ‘나’는 그를 ‘유자’라고 한다.
그는 숫기 없는 ‘나’와 달리 걸찍한 입담과 넉살좋은 성격 탓에 학창 시절 학교의 명물이었다. 보령 지방의 방언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임기응변에 능하며, 졸업 후에는 정치 식객들과 어울렸다. 4.19 혁명 뒤 선거에 당선된 위원장을 따라 서울로 올라온 그는 위원장 집에서 머물다가 5.16을 맞아 다시 고향으로 낙향하고 군에 입대한다. 군에서도 입영열차 속에서 우연히 읽은 점술 책 덕분에 ‘도사’로 불리며 편안한 군 생활을 했고, 운전 기술까지 익혀 제대 후 고향에서 택시를 몰았다. 그는 그 운전 기술 덕분에 서울에서 재벌 그룹 총수의 승용차 운전수가 되었다가 총수의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하여 그만 두고 싶어 했는데, 이를 오랜만에 해후한 무명작가인 ‘나’에게 토로하기도 한다. 결국 그는 총수의 개인 불당을 청소하던 중 총수의 분노를 사 그룹의 노선 총부로 좌천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떳떳하고 속편한 직책을 맞게 되었다고 자위하며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서 말썽 많은 교통사고를 원만하게 해결해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유자는 항상 사리분별이 뛰어나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였으며 사비를 털어 피해자들을 돕기도 했다.
말년에 종합 병원 원무실장을 맡은 그는 6.29 선언이 있던 그때 시위 현장에서 중상을 입은 사람들을 돕다가 사표를 쓰고 퇴사한 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남의 궂은일을 도맡아 가며 하던 유자는 자신의 몸이 망가져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문인들과의 교유도 넓어서 그들의 대소사를 발 벗고 나서 처리해주었던 유자. 그런 유자를 기리기 위해 문인들은 그의 일생을 돌아보며 시를 쓰기도 하고 화자인 ‘나’ 이문구는 전(傳)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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