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생애
어린 시절
이문열(李文烈, 1948~)은 본명이 열(烈)로,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좌익 사상에 물들어 있던 아버지가 6 · 25 발발 뒤 월북해 버리는 바람에 남은 가족끼리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어렵게 살아야 했다고 한다.
이문열은 1964년(17세)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본 후 안동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이 무렵 도스토예프스키와 헤밍웨이의 작품을 탐독하였다. 1965년(18세)에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부산으로 이사한 후 무위도식하면서 니체, 사르트르,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 등의 철학 서적을 읽으며 지낸다. 이 시기 그가 느낀 외로움, 성장기억 우울,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은 훗날 소설 <젊은 날의 초상>에 “아이도 어른도 아니”고 “학생이랄 수도 건달이랄 수도 없는” 상태로 그려진다.
1968년(21세)에는 입시 공부에 몰입하여 대입 검정고시를 본 후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진학한다. 그러나 학과 공부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대신 문학 서클에 가입해 작문에 열중한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이 바뀌어 고시공부를 시작한 끝에 사법 · 행정 요원 예비 시험에 합격하더니 자신감이 붙어 학교를 때려치운다. 그러나 몇 차례 낙방을 겪으며 또다시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 무렵의 생활은 훗날 <어둠의 그늘>로 형상화되었다. 1973년(26세)에는 한 잡지에 <사람의 아들>을 투고했다가 예심에서 떨어지는데, 이 때문에 허탈감에 시달린 탓에 결혼을 하고 곧장 군에 입대한다.
문학 활동
1976년(29세) 제대한 후 이문열은 대구 학원가에서 강사로 일하며 틈틈이 습작을 하고, 1977년(30세)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이문열’이라는 필명으로 <나자레를 아십니까>를 응모해 가작으로 뽑힌다. 이후 1979년(32세)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이 당선되어 정신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같은 해 <사람의 아들>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이 책으로 이문열은 무명작가에서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가가 되었으며, 1980년대를 완전히 자신의 연대로 평정한다.
<사람의 아들>이 성공하자 이문열은 기자로 일하던 ‘매일신문사’에서 나와 전업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고 1980년(33세) 소설집 <젊은 날의 초상>을 내는데, 이 역시 큰 성공을 거둔다. 1982년(35세)에는 장편 <황제를 위하여>를 비롯해 <익명의 섬>, <금시조>를 발표해 동인 문학상을 받고, 1984년(37세)에는 <영웅 시대>를 펴내 중앙 문화 대상을 차지했다.
1987년(40세)에는 <조선일보>에 당시 세간의 이목을 모은 문규현 신부의 판문점 연설을 비판하는 칼럼을 발표해 민중론자들의 강한 반발을 사는데, 이런 와중에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구로 아이랑> 등을 내고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다. 이듬해에는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비롯해 <익명의 섬>, <평역 삼국지> 10권 등을 냈다.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작품과 단행본을 내고 있으며, 한동안 세종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7년(50세) 사직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문열 문학의 특징
이문열의 작품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황제를 위하여>,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과 같이 사회 현실을 대상으로 부조리한 삶과 그 문제의식을 우화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성향의 작품군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날의 초상>,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과 같이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문제에 대한 실존적 번민을 자아의 상실과 공동체의 붕괴라는 현실 문제와 연결시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앞의 부류에 속하는 작품들은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적 영역을 설정하여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방식을 추적하면서 현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굴절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이에 비할 때 후자의 부류에 속하는 작품들은 작가의 내면풍경을 그려내면서 작가 자신의 사유 체계를 형성하게 된 유년기와 성장기의 체험을 극적으로 재구성하여 그것을 소설로 육화시켜 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문열의 작품 세계는 ‘관념론적인 편향’과 ‘능란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라는 두 가지의 특징을 드러낸다. 작가 스스로 ‘순정(純正)한 문학의 입장’으로 요약하기도 한 그의 작품 세계는, 다소 현학적인 고급스런 지식의 전달과 동시에 읽는 재미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개성을 확실히 다지고 있다.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
1979년(32세) <세계의 문학>에 연재한 중편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신(神)과 종교의 문제를 진지하게 천착한 작품이다. 이문열은 이 작품으로 제3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1980년대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의 아들>의 특성은 주제와 작가적 태도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주제적 차원에서는 그 생소함을 들 수 있다. 샤머니즘적인 부류를 제외한다면 우리 문학사에서 종교의 문제는 흔히 피상적 · 장식적으로 구사되는 데 그쳐왔다.(김동리의 <등신불>이나 이무영의 <죄와 벌> 등이 소수의 예외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의 아들>은 기독(基督)과 반 기독(反基督)을 설정하여 인간 구원의 문제를 천상 · 지상이라는 이원적 맥락에서 심도 있게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둘째로 작가적 태도의 문제에 있어 <사람의 아들>은 기존의 작가들이 보여 왔던 계몽가적 · 지사적 면모를 완전히 탈각하고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상을 확립하였다.
작가적 위상의 이러한 변화는 액자 형식과 추리 소설적 기법이 혼용된 형식적 특성으로 드러난다. 한 형사의 집요한 추적을 통해 단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살인 사건의 내막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추리 소설적 기법이 확인되며, 그러한 과정에서 주인공 ‘민요섭’의 노트를 통해 제시되는 ‘아하스 페르츠’에 관한 이야기는 액자 형식의 내화(內話)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하스 페르츠’에 관한 이야기가 단속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이원적 구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의 아들>
모범적인 신학생이던 민요섭은 어느 순간 회의에 빠지고 신학교에서 나와 ‘새로운 신’을 찾아 방황한다. 그는 실천 신학, 사회 개혁, 노동 운동, 복음 전도 같은 적극적인 사회 변혁 행동이 새로운 신의 새로운 율범의 실천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는 양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넉넉한 재산을 고아원, 나환자촌, 재활원에 모두 나눠주고, 몸으로 봉사해야겠다며 집을 떠나 방황한다. 방황하는 동안 괴로움을 겪은 민요섭은 자신의 추종자인 조동팔에게 “설익은 지식과 애매한 관념으로 가장 조악한 형태의 무신론을 얽었을 뿐”이라고 하면서, 회개하고 “십자가 아래”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조동팔은 증오심에 불타 민요섭을 살해한다.
민요섭 피살 사건의 담당 형사는 그의 유품 중 사건 해결의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다가 일기와 노트를 보게 된다. 형사는 민요섭의 노트에 적힌 ‘아하스 페르츠’라는 기인의 생애와 관련된 기록을 읽어 본다.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가 태어나던 날 다른 곳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인데, 자라면서부터 신에 대해 회의를 품고 ‘참된 지혜’, ‘새로운 신’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10여 년 동안 세상을 헤매고도 참된 신을 찾지 못한다.
어느 날 아하스 페르츠는 로마의 거리에서 앞 못 보는 걸인의 말을 듣고는, 그 동안 자신이 마음의 눈이 멀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곧 40일 간 단식과 묵상을 한 끝에 드디어 자신이 찾던 신을 만나 진실과 궁극의 이야기를 듣고 나온다. 얼마 후 예수를 만난 아하스 페르츠는 그를 비꼬며 분노를 드러내고, 자신은 ‘사람의 아들’로서의 행로를 따르겠다고 한다.
<젊은 날의 초상>
1981년(34세) 소설집 <젊은 날의 초상>에 실린 표제작이다. 원래는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이라는 각기 독립된 작품으로 발표되었다. 축복 받지 못한 젊은 날의 암울한 삶과 방황을 되돌아보는 내용의 작품으로, 격통하는 젊음의 순수한 고뇌를 안고 절망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삶의 장 안으로 들어오는 ‘나(이영훈)’의 역정을 특유의 유려한 미문체로 보여 주고 있다. 이문열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젊은 날의 초상>
이영훈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떠돌이 생활을 한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기 위해 형이 있는 강진으로 내려가 형의 일을 도우며 공부한다. 영훈은 곧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학창 생활을 값지게 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지식에 대한 배회, 가난으로 인한 삶의 무게 때문에 삶은 점점 피로해진다.
영훈은 김형, 하가와 친해져 문학 동아리에 가입했지만 말썽을 일으켜 축출된다. 또 사귀던 혜연과도 가정환경 차이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김형이 죽자, 영훈은 까닭 모를 허무와 절망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서울을 떠난다. 이후 영훈은 탄광과 어촌 등은 떠돌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결국 바다에 이르러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유서와 약을 던벼 버리고 다시 서울로 간다.
<금시조>
1981년(34세) <현대 문학>에 발표한 중편으로, <들소>, <시인>과 함께 이문열 자신의 예술에 대한 신념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제15회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도를 추구하는 스승 ‘석담’과 예를 추구하는 제자 ‘고죽’의 갈등을 통해 어떤 것이 진정한 예술인지를 묻고 있다. 예술이 다른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예술관을 가진 ‘고죽’이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깨달음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불태우는 순간 금시조의 환영을 본다는 결말은 곧 이문열 자신의 유미주의적 예술관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죽’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서화들을 냉정하게 평가한 뒤 불에 태우면서 그 동안 쌓아온 모든 명성과 헛된 가치, 즉 거짓과 세속적 평가들을 태워 버린다. 예술 자체의 순수함만 존재하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것이다. 그런데 불타는 ‘고죽’의 작품에서 오롯하게 순수한 예술을 상징하는 ‘금시조’가 날아오른다. 이는 자기부정을 통해 예술혼이 완성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명성을 얻고 세속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에의 완벽한 부정이 예술의 순수한 경지를 깨닫게 했던 것이다.
<금시조>
고죽은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개가하여 숙부의 집에서 자라던 중, 숙부가 망명하자 열 살 때 문인화로 명성이 높던 석담에게 맡겨진다. 석담은 고죽을 맡아 기르면서도, 왜인지 직접 글씨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고죽은 석담 몰래 서예를 익혀 글씨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석담은 마지못해 고죽을 문하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예(藝)를 추구하는 고죽과 도(道)를 추구하는 석담은 예술관의 차이로 갈등하고, 결국 고죽은 석담을 떠난다. 고죽은 석담이 죽은 뒤에야 석담이 자신의 글씨를 저세상으로 가져가고자 했을 만큼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죽은 죽음에 임박하여, 자신을 작품을 회수한다. 그리고 한 폭 한 폭 준엄하고 냉정하게 자평을 해 나가다가, 자신의 작품에서 금시조를 발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작품을 모두 불태운다. 고죽은 작품을 태우는 불꽃에서 자기 부정의 예술혼인 금시조의 비상을 보며 죽음을 맡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87년(40세) <문학 사상>에 발표한 중편으로,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착취, 힘에 편승하여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통해 한국 정치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우의적으로 비판한 풍자 소설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교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하나의 알레고리이다. 이 교실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성립되지 못한 한국 사회를 의미하며, 그 안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엄석대’는 독재 권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새로운 권력이 생길 때마다 빌붙는 반 아이들이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항거했으나 결국 현실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 ‘나’의 모습은 당시를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선택을 보여 준다. 새 담임이 기폭제가 되어 행해진 아이들의 폭로와 항거는 자유당을 붕괴시킨 4 · 19 혁명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지만, 이는 새로운 담임의 힘에 기댄 수동적 저항이라는 점에서 민중의 기회주의적 · 수동적 속성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또 새 담임은 ‘엄석대’의 독재를 깨뜨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그 역시 하나의 독재 권력이 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작품 전체가 알레고리의 방법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에 비판을 가하고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나’(한병태)는 자유당 시절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좌천되면서 서울 명문 국민학교에서 Y읍의 초라한 국민학교로 전학한다. 그곳에서는 학급 반장 엄석대가 담임 선생의 신임과 아이들의 복종을 받으며 군림하고, 커닝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나’는 엄석대에 저항해보지만,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그에게 굴복하는 대신 엄석대가 주는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담임 선생이 바뀌자 엄석대의 비리가 밝혀지고, 엄석대의 권력은 결국 무너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사회인의 성장한 ‘나’는 부조리한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며, ‘엄석대’로 상징되는 절대 권력에 대한 야릇한 향수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피서길에서 수갑을 차고 경찰에 붙들려 가는 엄석대와 마주친다.
<선택>
1997년(50세) 단행본 <선택>으로 나온 장편 소설이다. 조선 선조 및 숙종 때의 인물인 정부인 ‘장씨’라는 여인이 후세 여자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고 당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성의 일생을 소녀, 아내, 어머니, 할머니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의 시기에 ‘장씨’가 겪은 내적 갈등과 그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선택의 의미를 살피고 있다.
<선택>은 전근대를 살다 간 여인의 시각으로 현대를 보고,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 특히 현대 여성들의 풍속과 가치관을 비판하고, 현대 여성들이 옛 여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문열은 이 작품을 구상한 의도가 현대 우리 삶의 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발굴해 내는 데 있었다고 하였으나, 이 작품은 발표 당시 반페미니즘 문학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선택>
조선 선조 연간에 사대부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난 ‘나’(장씨)는 남다른 총명함으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익히며 교양을 쌓는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환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맡게 되면서부터 새로운 삶의 깨달음을 얻고, 배움의 길을 접고 평범한 여인으로서의 길을 걷는다. 장씨는 이후 결혼과 출산, 자녀 교육 등 모든 과정에서 그 시대의 아내, 어머니, 할머니로서 최선의 삶을 선택하여 성실한 일생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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