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노트218 2015년 웹디자인 트렌드10 1. 반응형 웹(Responsive Web) 웹 접속 환경이 다양해지면서 점점 주목받는 형태로, 현재 워드프레스 테마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는 중이다. 호환성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점차 커버되는 추세. 몇 년 후에는 반응형이 아닌 웹사이트는 점점 위축되지 않을까. 2. 고스트 버튼(Ghost Button) 심플하고 플랫한 디자인이 주목받다 보니 덩달아 고스트 버튼 역시 늘어나는 듯하다. 배경이 투명하고 테두리만 쳐져 있는 버튼 형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 4번의 ‘큰 배경 이미지’ 사용과 더불어 더욱 주목 받는 중이다. 3. 타이포그래피 중심 디자인(Bigger Emphasis on Typography) 이전에는 인쇄물 같은 오프라인 디자인에서 주로 활용되던 타이포그래피가 드디어 웹디자인에서.. 열린노트/IT·SW·디자인 엔티티 코드(Entity Code) 사용하기 : HTML에서 특수문자 코드 입력하는 방법 웹페이지상에서 다음과 같은 문자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문자를 '엔티티 코드(Entity Code)'라고 한다. & " HTML이나 XHTML 문서를 코딩할 때 특수 문자(참조 문자)를 써야 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엔티티 코드 또는 엔티티 넘버로 변환해서 입력해야 한다. 변환하지 않고 특수 문자를 그대로 입력해 버리면 컴퓨터가 문서를 읽을 때 실제 문서 내용(contents)과 코드를 구분하기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문서 내용에 꺽쇠 괄호 ' < '가 포함돼 있다면, 컴퓨터는 이 문서를 읽어들일 때 꺽쇠 괄호를 HTML 태그의 시작 기호로 받아들여 버린다. 또 큰따옴표 ' " '는 HTML 속성 값으로 인식될 수 있고, ' & '은 엔티티 기호의 시작으로 인식될 수 있다. .. 열린노트/IT·SW·디자인 10만원으로 아버지 생신상 차리기 - 메뉴별 레시피 간단 정리 아버지 생신창 차림 바로가기 사실 지난 아버지 생신상을 직접 차린 건 연이은 여행 등으로 주머니에 여윳돈이 별로 없어서였다. 위 링크에 있는 아버지 생신상은 장보기 비용이 채 10만원도 들지 않았다. 그 메뉴와 레시피들을 공개한다. 단위가 없는 것은 테이블스푼(T)이다. 찜닭 재료 : 닭1마리(大), 메추리알10개, 감자2개, 양파1개, 당근1/2개, 청양고추5개, 당면50g, 깻잎약간, 우유1컵 -껍질과 기름을 제거하고 토막 낸 닭을 끓는 물에 3분 정도 익혀 불순물을 제거한다. -닭을 건져 씻고 기름을 제거한 후 물기를 빼고 우유 1컵에 30분 간 재운다. -닭을 재우는 동안 메추리알10개를 삶아 껍질을 벗긴다. -양념을 만든다. : 간장15, 물엿2, 설탕2, 맛술2, 참기름1/2, 매실1, 다진마.. 열린노트/만들기·그리기 아버지 생신상 차리기 아버지의 5n번째 생신을 맞아 외식을 하는 대신 집에서 생신상을 차리기로 했다. 전날 저녁 일찍부터 재료 손질과 준비를 시작해서 다음날 하루 종일 요리를 했다. 그렇게 생신 당일 저녁에 딱 맞춰 상을 냈다. 아이고 삭신이야. 세 가지 전을 부치고 오징어 초무침, 버섯 넣은 장조림, 전복초, 우엉견과류조림, 잡채 등 기본 잔치 음식들을 만들었다. 여기에 참깨 소스 곁들인 차돌박이 샐러드, 청경채유부볶음, 베이컨숙주나물, 브로콜리된장무침을 함께 냈다. 배추 겉절이와 무 생채는 기본 찬. 가운데에는 아버지 좋아하시는 닭볶음탕을 메인으로 냈다. 내년부터는 그냥 사 먹기로 하였다. 레시피 바로가기 열린노트/만들기·그리기 파팔레로 크림 파스타 만들기 지난달에 제일 친한 친구 녀석이 결혼했다. 미니장미 가득한 부케를 받았으니까, 잘 말려 두었다가 예쁜 유리병에 꽃잎만 따로 담고 큰 공단 리본을 묶어서 선물했다. 그런데 친구가 가져온 선물이 더 많다... 신혼여행 중에 샀다는 페이스 오일과 립밤, (내가 사랑하는) 마그넷, 클렌징 워터, 핸드 크림,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샀다는 이태리 국기 모양 파팔레 파스타. 파스타 생면은 곧 이렇게 크림 파스타로 재탄생했다. 아웃백 스타일로 고춧가루를 넣어 냠냠냠 호로록. 열린노트/만들기·그리기 티스토리에 구글 애드센스 광고 달기 많은 블로거들이 광고로 수익을 얻고 있다.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대한 부수적 이익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의외로 광고 수익 때문에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한 번 달아 보기로 결심. 특별히 이걸로 많이 수익이 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웹 환경 돌아가는 모양새를 한 번 경험해 보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티스토리는 구글 애드센스 광고를 삽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애드센스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구글 애드센스 광고 신청하기 구글은 광고를 아무에게나(?) 내 주지 않는다. 적어도 몇 개의 포스팅과 약간의 방문자 기록이 생겨야 애드센스를 신청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모양새가 잡히면 구글 애드센스에 접속한다. 구글 애드센스 바로가기 초기화면에서 '시.. 열린노트/IT·SW·디자인 현대문학 테마 56. 이무영 이무영의 생애 학창 시절과 문단 활동 이무영(李無影, 1908~1960)은 본명이 용구(龍九)로, 충북 음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이무영은 휘문고보를 중퇴한 후 1925년(18세) 일본으로 건너가서 막노동을 하면서도 작가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이윽고 자신이 존경하던 일본 작가 가토 다케오[加藤式雄]와 만나 그의 문하에서 4년 간 문학 수업을 받는다. 1926년(19세)에는 ‘무영’이라는 아호로 장편 과 를 발표하고, 1927년(20세)에 장편 «폐허의 울음»을 간행하였다. 1929년(22세) 귀국한 후에는 , , 와 시 , 수필 등을 꾸준히 발표하였으나, 초기 작품들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32년(25세) «동아일보» 현상 모집에 중편 이 당선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열린노트/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5. 세대 논쟁과 순수 논쟁 1939년 세대 논쟁 세대 논쟁의 시작 1935년, 이원조는 을 발표하며 문단의 세대를 신인 작가와 기성 작가로 나눈다. 그리고 신인 세대에게는 “신인다운 기백”이 없고, 기성 세대에게는 “대가다운 풍격”이 보이지 않는다며 두 세대 모두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원조의 이 발언은 비난이라기보다는 우려 섞인 관심에 가까웠기 때문에 신세대로부터는 크게 반발을 사지 않았지만, 차츰 신인들은 기성 작가들, 특히 비평가들의 자질과 신인의 등용 기준에 대해 조금씩 의혹을 품게 된다. 이윽고 1939년 1월 «조광»이 기획한 ‘신진 작가 좌담회’에서 그 동안 쌓인 불신과 불만이 떠올랐다. 이 자리에는 박노갑, 허준, 계용묵, 정비석 등 신진들이 참석했는데, “조선 작가에서 선배를 찾기는 좀 어려운 일”이라는 말까지 나.. 열린노트/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4. 김광균 김광균의 생애 학창 시절 우두(雨杜) 김광균(金光均, 1914~1993)은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난다. 그는 학창 시절인 1926년(13세) , , 을 발표하는 등 일찍부터 작품을 냈으며, 1930년대에 들어 , 을 발표하는 등 문학적 재능을 보인다. 송도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무 공장에서 일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시를 써 1933년(20세) 를, 1934년(21세) , 1935년(22세) 등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이런 초기작을 쓸 때 김광균은 특별히 모더니즘이나 이미지즘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시를 쓴다. 본격적인 문단 활동 김광균의 시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당시 모더니즘의 기수로 문단의 중심에 있던 비평가 김기림의 눈에 띄면서부터이다. 1935년(22세) 말 김기림은 그해의 유망 신인.. 열린노트/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3. 이태준 이태준의 생애 학창 시절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 1904~?)은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지식층으로, 나라를 개혁하려다 실패하자 가족을 이끌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지만 1909년(6세) 화병으로 죽고, 이태준의 어머니마저 얼마 후 세상을 떠난다. 고아가 된 이태준은 누이들과 함께 철원 친척집에 맡겨지는데, 얹혀사는 동안 주위의 동정에 수치심을 느껴 반항적인 기질을 보였다. 1920년(17세) 이태준은 배재 학당에 합격하지만 등록금이 없어 다니지 못하고, 야학에 다니다가 다시 1921년(!8세) 휘문고보에 입학한다. 거기서 이태준은 청소 일로 학비를 면제 받거나 책장사를 하는 등 어렵게 공부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톨스토이, 괴테, 위고 등의 문학 작품을 .. 열린노트/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2. 채만식 채만식의 생애 학창 시절과 문단 데뷔 백릉(白菱) 또는 채옹(采翁)이라는 호를 가진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전북 옥구에서 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8년(17세) 서울로 올라와 중앙고보를 졸업한 후 채만식은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이 시기 학업에 열중하는 한편 축구 선수로도 활동하였는데, 관동 대지진과 경제적 어려움이 겹쳐 졸업을 하지 못하고 1923년(22세) 귀국하였다. 귀국 후 채만식은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1924년(23세) 단편 를 추천 받아 등단하였다. 이후 꾸준히 단편 소설과 수필, 희곡, 평론 등을 쓰지만 발표는 별로 하지 않다가, 1930년(29세) 단편 , 희곡 등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어 1931년(30세)에.. 열린노트/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1. 최정희 · 노천명 문단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일구어진 193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문인이라면 물론 많이 있겠으나 특히 소설에서는 최정희를, 시에서는 노천명을 꼽을 수 있다. 최정희 최정희의 생애 최정희(崔貞熙, 1906~1900)는 함경북도 성진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한의사인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그러나 어릴 때 아버지가 외도하여 곧 힘겨운 성장기를 보내는데, 이때 먼 친척 집에서 얹혀 지내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심을 키웠다고 한다. 1925년(20세)에는 나이를 속여 숙명여고보에 편입하고, 1928년(23세) 졸업한 후 중앙보육학교를 수료한다. 1930년(25세) 일본으로 건너가 일을 하면서 틈틈이 신학문을 공부하고 유치진이 주도하던 학생극예술좌에도 가입해 활동하였다. 이 무렵 최정희는 계급.. 열린노트/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50. 김동명, 김상용, 신석정 서구에서 전원적, 목가적(牧歌的) 문학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됨으로써 다중(多衆) 사회에서 ‘외로움’을 느낀 문인들에 의해 추구된 경향인데, 우리나라에는 1920년대 중반 이후에 나타나 신석정, 김동명, 김상용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또 그 자연 친화적 특징은 청록파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김동명 김동명의 생애 초허(超虛) 김동명(金東鳴, 1900~1968)은 강원도 명주에서 태어나 1915년(16세)에 함흥으로 이사했다. 이사하자마자 함흥 영생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졸업이 늦어져 스물 한 살 되던 해인 1920년(21세)에야 겨우 졸업하고, 이듬해 평안남도와 함경남도 등지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다. 1923년(24세) 김동명은 시 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오는데, 그는 이 시를 의 시인 보들레.. 열린노트/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49. 백석 백석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백석(白石, 1912~1995)은 본명이 기행(夔行)으로,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사진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백석은 오산고보를 다니던 시절 문학과 영어에 소질을 보이지만, 1929년(18세) 졸업 후 집안 사정 때문에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집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다. 그러다가 같은 해에 조선일보사가 후원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의 야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들어간다. 재학 중이던 1930년(19세)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데, 이 등단작은 시가 아니라 이라는 단편 소설이었다. 시작 활동 1934년(23세) 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산문 , 번역 산문 , 을 발표하고, 1935년(2.. 열린노트/현대문학테마 현대문학 테마 48. 심훈 심훈의 생애 해풍(海風) 심훈(沈熏, 1901~1936)은 본명이 대섭(大燮)으로 지금의 서울 흑석동, 당시의 경기도 시흥에서 지주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다. 경성제일고보 시절인 1917년(17세) 중매로 왕족인 이해승의 누이인 이해영과 결혼하고, 1919년(19세)에는 3 · 1 운동 때 잡혀 들어갔다가 이 일로 퇴학 처분을 당했다. 곧 심훈은 상하이로 건너 가 신채호, 이시영, 여운형과 같은 지사들 곁에서 3년 간 머물렀다. 이런 그와 달리 그의 형 심우섭은 친일파였는데, 심훈은 끝내 형의 행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1923년(23세) 귀국한 심훈은 송영 등과 염군사를 꾸려 연극부에 가담하고, 신극 단체인 ‘극문회’를 만들어 활동한다. 1924년(24세)에는 홍명희, 박헌영 등과 함께 동.. 열린노트/현대문학테마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