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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52. 채만식

2014. 8. 11. by 솜글

채만식의 생애

학창 시절과 문단 데뷔

백릉(白菱) 또는 채옹(采翁)이라는 호를 가진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전북 옥구에서 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8(17) 서울로 올라와 중앙고보를 졸업한 후 채만식은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이 시기 학업에 열중하는 한편 축구 선수로도 활동하였는데, 관동 대지진과 경제적 어려움이 겹쳐 졸업을 하지 못하고 1923(22) 귀국하였다.

귀국 후 채만식은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1924(23) 단편 <세 길로>를 추천 받아 등단하였다. 이후 꾸준히 단편 소설과 수필, 희곡, 평론 등을 쓰지만 발표는 별로 하지 않다가, 1930(29) 단편 <병조와 영복이>, 희곡 <낙일> 등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어 1931(30)에는 희곡 <사라지는 그림자><화물 자동차>를 발표하고, 1932(31)에 단편 <부촌> 등을 냈다. 이 시기 채만식은 특정 단체나 동인지에 가담하지 않으면서도 작품 속에서 동반자의 성향을 보여 준다.

해방 이전의 활동

1934(33)에는 풍자적인 수법으로 인텔리의 실직 문제를 다루어 사회 현실을 고발한 희곡 <인텔리와 빈대떡>과 단편 소설 <레디 메이드 인생>을 발표하여 풍자 작가로 주목 받았다. 이로써 채만식은 함께 동반자 작가로 분류되던 유진오나 이효석 등과 구별되었으며, 관능적 분위기가 감도는 풍자 소설을 쓰던 김유정과도 구별되게 되었다.

1935(34)에는 10여 년 간의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형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창작에 매진한다. 이 시기에 일제의 농업 정책을 비판하는 소설 <보리방아>가 검열 때문에 연재 중단되는데, 이후 채만식은 검열을 따돌리기 위해 더욱 은밀하고 세련된 풍자 기법을 개발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1937(36) 연재하기 시작한 장편 소설 <탁류>이다. 이어 1938(37)에는 단편 <치숙><소망>, 장편 소설 <태평천하>를 발표하였다.

채만식은 1939(38) 독서회 사건으로 구속된 데다 갈수록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체념 섞인 비관주의로 기울어 신변을 살피거나 과거를 돌아보는 내용의 작품들을 발표한다. 일제 말기의 <금의 정열>, <냉동어>, <당랑의 전설>, <처자> 등이 이런 변화를 반영한 작품들이다. 1945(44) 초에는 아예 절필하고 고향에서 술과 마작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이후

해방 후 채만식은 셋방에서 가난과 폐결핵 때문에 비참한 생활을 한다. 그런 처지에도 사과 궤짝을 책상 삼아 1946(45) 장편 <아름다운 새벽>을 내고, 해방 직전 친일 행위에 대한 자아비판 또는 자기변호 소설인 <미스터 방>, <맹 순사>, <논 이야기>를 집필한다. 이어 1948(47)에는 <민족의 죄인>, <낙조>, <돼지>, 1949(48) <허생전> 등을 발표하였다.

1950(49) 6, 채만식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6 · 25가 일어나기 보름여 전에 들꽃과 함께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사진 출처 : 독서신문(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9951)

해방 이전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

1934(33) 희곡 <인텔리와 빈대떡>을 발표한 후 낸 작품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은 채만식 문학의 한 출발점으로 중시된다. <탁류>(1937)<태평천하>(1938)로 나아가기 전 단계의 채만식다운 창작 방법의 불안한 통합 상태가 이 작품에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채만식은 풍자 작가로 주목 받았으며, 다른 동반자 작가인 유진오, 이효석과 구별됨과 동시에 토속적 · 관능적인 풍자 단편을 즐겨 쓰던 김유정과도 구별되게 되었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란 만들어 놓고도 팔리지 않는, 그러니까 임자 없는 기성품 인생이란 뜻이다. 이미 운명은 만들어졌으나, 그 운명이 어디로 팔릴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결정론 반, 비관적 세계 인식 반의 상태에 채만식이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반자 작가로서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현실을 바라보는 자세에는 변동이 없으나, 그 세계관이 지시하는 역사의 방향타 쪽에 전적으로 몸을 싣지는 못했던 동반자적 지식인의 내면이 잘 드러나 있는 단편이다.

당시 지식인의 실업 문제가 심각했던 것은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채만식 자신 또한 실업의 상태에 자주 놓여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작품이 순전히 관념적 몽상으로 쓰인 작품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는 도저한 자기 풍자와 함께 자기 연민의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가장 흥미롭고 압권인 대목은 이처럼 자기 비하와 모멸감에 빠진 ‘P’가 자신의 아들 창선을 인쇄소 직공으로 팔 넘기는 결말 부분이다. 그러고는 “‘레디메이드인생이 비로소 겨우 임자를 만나 팔리었구나.” 라고 내뱉는데, 이는 식민지 지식인의 비애를 알린 우리 근대 문학사상 한 명편의 언어라 할 것이다. 이처럼 당대적 인식의 지평 안에서 도도한 자기 풍자의 언술을 토해 낸 채만식 문학의 선각은 최재서가 <풍자 문학론>(1935)을 입안하게 하는, 자기 풍자 미학의 한 모델 형상을 제시한 것이라 할 만하다.

<레디메이드 인생>
농촌의 가난한 집안 출신인 P는 한때 향학열에 들뜬 사람들의 열기에 힘입어 어렵사리 신식 공부를 했다. 그는 일찍 장가를 들어 시골에는 열 네 살 된 아들까지 두고 있지만 아내와는 이혼을 했다. 그리고 아들 창선이를 극빈자에 속하는 형의 집에 맡겨 놓고 있다. 그러나 아들이 학비가 없어 보통학교조차도 다니지 못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다닌다.
P는 안면이 있는 신문사 사장 K를 찾아갔지만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없는 일자리를 구할 게 아니라 농촌으로 돌아가 뜻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설교를 듣는다. 참담한 기분으로 사글세방으로 돌아온 P에게는 두 가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주인의 집세 독촉이고, 다른 하나는 시골 형이 부친 편지다. 그 편지에는 아들 창선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할 뿐 아니라 끼니도 이을 길이 없어 그 애처로움을 견디지 못한다며, 차비가 마련되면 창선이를 보내겠다고 쓰여 있었다.
잔뜩 심사가 착잡해 있는 P에게 MH가 찾아온다. M은 법률을 전공해서 육법전서를 줄줄 외는 친구이고 H는 경제학을 전공한 지식 청년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 결 같이 빈털터리이다. 셋은 M의 법률 서적을 저당 잡혀 돈 6원을 가지고 싸구려 술집을 돌아다니며 술을 마신다.
이런 P에게 시골에서 또 한 장의 편지가 날아든다. 창선이를 인편에 올려 보낸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돈 15원을 마련한다. 그리고는 풍로, 냄비, 양재기, 숟가락 등을 사서 아들과 자취할 채비를 차린다. 그리고는 어느 인쇄소의 문선 과장을 찾아가 심부름꾼으로 아들을 써 달라고 부탁한다. 아들에게만은 자신과 같은 인텔리 실직자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탁류>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풍자의 한 면모를 보여준 채만식은 1935(34)에 일제의 농업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소설 <보리방아>를 연재하지만 검열 때문에 중단되고 만다. 이후 채만식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더욱 은밀한 풍자 기법을 개발하는데, 그 결과 나온 것이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 <탁류>이다.

<탁류>는 근대 자본주의의 상징인 ’, 그리고 전통적 문화의 상징인 가부장제도의 모순 속에서, 제목처럼 탁하고 어지럽고도 거대한 물결에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불안과 절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한편으로 채만식은 이 작품에서 남승재계봉이를 통해 그 탁류에 휩쓸리지 않으려 하는 선택적 삶의 욕구를 대비시켜 어렴풋하게나마 앞날에 대한 희망도 예시하고 있다.

신문 연재소설이니만큼 통속성과 함께 나름의 리얼리티를 함께 갖춘 작품이다. 여러 가지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우리 소설사의 중요한 일부분을 장식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현실 반영의 측면에 있다. ‘호남벌을 타고 일크러져 나와 서해로 빠지는금강 연안 하층민들의 탁류와 같은 현실은 당대 민중 현실의 궁핍상을 제시하기 위한 모델로서 추출된 것이며, 주인공 초봉의 아버지인 정 주사일가는 당대 몰락 계급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초봉이 희생자적 순진무구함에서 살인과 고립으로 나아가는 전개는 비극적 운명 형식에 준한다. 하지만 판에 박힌 비극의 멜로드라마 구조에 집착하지 않고, 초봉의 동생인 계봉과 그녀의 애인이 되는 긍정적 인물 남승재등을 통하여 내일에의 희망을 부각시켜 놓은 것은 채만식다운 세계관의 굴절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희망과 절망,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는 채만식다운 세계관의 양의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하겠는데, 이러한 면모는 통속성과 비극성이 함께 연루되는 그로테스크 미학성을 너무 지나치게 연출함으로써 오히려 작품의 미적 합리성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당대 민중의 현실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는 미적 복잡성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한편 주인공 초봉의 인생에 주목할 경우, 당대 여성의 사회적 운명에 대한 채만식 특유의 페미니즘적 관심이 적극적으로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작품을 두고 당시 임화, 김남천 등 계급 문학 진영의 비평가들은 세태 소설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한다.

<탁류>
정 주사는 당시 성행하던 미두 노름을 하여 가산을 탕진한다. 그러던 중 한 참봉의 부인 김씨로부터 큰딸 초봉의 중매를 서겠다는 제의를 받게 된다. 초봉은 여학교를 나와 약사가 되기 위해 약국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세 들어 사는 남승재를 좋아한다. 그러나 약국 주인 박제호와 은행원 고태수가 초봉에게 추근거린다.
초봉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태수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한편 형보는 그동안 김씨와 태수가 간통해 온 사실을 김씨의 남편인 한 참봉에게 폭로해 버리며, 간통의 현장에서 붙잡힌 김씨와 태수는 한참봉의 방망이에 맞아 죽게 된다. 같은 날 밤에 형보는 태수가 나가고 초저녁에 잠에 떨어진 초봉의 방으로 들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의 일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겁탈을 한다.
남편(태수)이 죽은 사실을 알게 된 초봉은 충격을 받고, 장례식이 끝나자 제호를 만나 같이 서울로 간다. 초봉은 제호와 서울에서 살림을 차리고, 그녀는 아버지가 형보, 태수, 제호 중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를 임신하자 약을 먹고 유산시키려 하지만 실패하여 딸 송희를 낳는다. 이후 형보가 초봉의 집에 찾아와 자신이 송희의 친아버지라고 주장하자 제호는 일이 복잡해질 것을 염려하여 결국 양보하고 물러선다.
형보의 술수와 협박 때문에 초봉은 억지로 형보와 살림을 차리고, 부자가 된 형보의 돈으로 친정집을 먹여 살리고 동생 계봉을 서울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형보가 자신과 어린 딸에게 가학 행위를 계속하자 이에 견디다 못한 초봉은 형보를 죽이는 길밖에 달리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극약을 사러 나간다. 그 사이에 형보는 어린 송희에게 잔인한 행위를 하고 있었고, 초봉은 화가 극도로 치밀어 올라 심한 발길질로 형보를 죽인다.
형보가 죽자 초봉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마음을 정리하고, 어린 딸 송희를 계봉에게 맡기고 자신은 자살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계봉과 승재는 초봉을 설득하여 자수할 것을 권하고 승재가 미래를 약속하자 초봉은 자살을 포기한다. 초봉은 승재가 자신을 기다려 줄 것이라고 믿고 자수하여 징역을 살기로 결심을 한다.

<치숙>

1938(37) «동아일보»에 연재한 단편으로, 학력과 연령에 있어 크게 격차가 벌어지는 화자의 시점을 통해서 실패한 지식인의 행적이 역설적으로 드러나도록 묘사한 사실주의 작품이다.

제목이 뜻하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은 부끄러운 아저씨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고서 감옥살이 5년 만에 풀려난 한 진보적 지식인에 관한 이야기를, 그 조카가 시점 인물이 되어 전한다. 그럼으로써 지식인의 삶에 대한 풍자로 가득 찬 이야기가 결국은 일상인의 전도된 의식에 대한 통렬한 역비판의 성격을 가진 것임을 암시한다.

<치숙>은 현실에 대한 풍자의 강렬함과 그 미학적 실험성으로 말미암아 채만식의 소설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풍자적 어조의 강렬함이란, 우선 이 작품이 현실에 대한 지식인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으로 설명된다. 당시를 전향 소설이 풍미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식인의 현실에 대한 풍자 자체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에서 더 나아간 의미 구조를 획득했을 때에만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망이 밝혀질 수 있는데, 미학상의 독특한 진술 구조의 실험이 그것이다. 즉 화자를 일상인으로 설정해 놓고, 반어적 진술의 효과를 노림으로써 풍자 미학의 달성을 얻는 것이다. 여기에서 소위 요설체의 일방적 화자 진술법, 곧 전통적 판소리 사설투의 구어체 소설 형식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이로써 전통적 사설투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미학적 효과가 달성되었으며, 또 이를 통해서 당시 체제 이데올로기의 핵심 문제였던 내선 일체사상이 우회적으로 비판된다는 것은 이 작품의 역사적 의미를 분명하게 해주는 점이다. 요컨대 일제 말기에 선양되고 있었던 허구적 내선 일체구호의 확장 정책이야말로 당시 정치적 국면의 핵심을 드러내는 사항이었던 바, 이 이데올로기의 순진성 혹은 환상을 폭로한다는 것이야말로 지식인 현실의 폭로라는 표면적 주제를 가장한 이 작품의 이면적 주제, 즉 작가가 의도한 본질적 주제인 것이다.

<치숙>
아저씨는 일본에서 대학도 다녔고 나이가 서른셋이나 되었는데 철이 들지 않아서 딱하기만 하다. 착한 아주머니를 친가로 쫓아 보내고 대학에 다니다가 신교육을 받았다는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무슨 사회주의 운동인지를 하다가 감옥살이 5년 만에 풀려났을 때는 피를 토하는 폐병 환자가 되었다. 식모살이로 돈 100원을 모아 이제 쉬려던 아주머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된 아저씨를 데려다 할 짓 못할 짓 다해서 구완하여 이제 병도 나아가는데 꼼지락 꼼지락 드러누워서는 일어나면 또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한다.
경제학을 공부했다면서 돈 벌어 아주머니 은혜 갚을 생각은 않고 남의 재산을 빼앗아 나누어 먹자는 불한당질을 또 하겠다니 분명 헛공부한 게 뻔하다. 내가 친정살이하던 아주머니 손에 자라서 그 은공으로 딱하게 여겨 정신 좀 차리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도리어 일본인 주인의 눈에 들어 일본 여자와 장가들어 잘 살겠다는 나를 도리어 딱하다고 한다. 참 한심한 노릇이었다.

<태평천하>

1938(37) «조광»에 연재한 장편으로, 본래 제목은 <천하태평춘>이었다. 발표 시기가 <탁류>와 맞물려 이 작품과 함께 채만식의 2대 장편으로 분류된다. <태평천하> 역시 <탁류>와 마찬가지로 몰락이 중요한 주제를 이루나, <태평천하>의 몰락은 <탁류>와 달리 지주 계급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중적 소망을 반영한다. <태평천하> 이전에 부르주아계급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필연성의 관념적 세계관을 반영한 작품으로는 이른 시기의 작품인 <낙일>(1930)이 있다.

<태평천하>는 미학적으로도 상당한 연구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태평천하><치숙>(1938)과 흡사하면서도 그와는 다르게 작가-화자의 구어체 간접 화법의 진술 방식을 택하여 판소리 사설 투의 연희 전달, 극적 묘사 효과를 높이고 있다. 호남 지방의 살아있는 구어가 풍부하게 수용되는 것도 이 점과 연관되며, 화자의 능청스러움이 <치숙> 못지않은 반어적 풍자 효과를 낳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구어체 간접 진술 방식의 채택과 관계 깊다.

구성상으로도 이 작품은 <탁류>에 버금가는 날카로운 극적 긴장을 획득하고 있다. 극적 아이러니라는 풍자극의 구조로써 윤 직원일가에 일어난 만 하루 동안의 일상사가 삼일치의 원칙에 충실하게 재현되는 양상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태평천하>는 리얼리즘적인 척도에서도 중요하게 평가된다. 윤 직원과 윤두수는 당시 신흥 지주 계급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상민 혹은 서민 출신 부자 지주의 전형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계급이 식민지 지배 당국과 결탁하여 이른바 식민지 지주제라는 독특한 반봉건의 지주적 현실을 만들어내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 부조리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성장한 계급이기에 윤씨 일가의 일상적 삶은 윤리적으로 타락을 면치 못한다. 비록 하루 동안의 일상적 사태이지만 이 집안의 가계와 그 현재적 풍모가 고스란히 서술됨으로써 <태평천하>는 염상섭의 <삼대>에 버금가는 일제하 대가족 윤리의 붕괴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왜곡된 계급의 사회적 운명이 몰락으로 향하고 있음을(또는 그래야 마땅한 것임을) 암시하기 위하여 말미에서는 집안의 기둥인 종학이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피검 소식을 전보로 알리고 사라진다. 이처럼 타락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리고 사라져버리는 재의 성격을 우리는 숨은 신의 개념으로 조명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이룩하고 있는 이 같은 풍자적 · 극적 아이러니의 미학적 달성이란 연극적 전통이 박약한 우리나라에서는 독특한 소설적 달성이라 할 수 있을 터이며, 여기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주의적 풍자극의 관념이 채만식의 의식 속에서 뿌리 깊게 형성되어 왔음을 <낙일>을 위시한 그의 초기 소극 작품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태평천하>
1930년대 서울 평민 출신의 대지주인 윤 직원은 하인에게 새경을 안 주거나, 인력거 삯을 깎거나, 무임승차를 하거나, 하등표로 상등석에 앉아서 관람을 하거나, 소작인에게 땅을 부쳐 먹고 살게 하는 것을 커다란 은전을 베푼다고 생각하는 구두쇠이며 무식하고 철면피로, 몸체는 우람하고 신수가 훤한 72살의 늙은이이다.
그의 아버지인 말대가리 윤용규는 떠돌이 놀음쟁이였으나 출처가 불분명한’ 200냥의 돈이 생기고부터 착실한 살림꾼이 되어 억척같이 재산을 불려 천석꾼이 된 인물이다. 그러나 윤 직원은 20대 때 아버지가 화적떼에게 수십 차례 봉변을 당하고 결국 목숨까지 잃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고, 이후 세상 모두를 증오하는 마음과 단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구두쇠 기질이 생겼다. 그는 일본인들이 들어오고부터는 그들으 화적떼들을 막아 주고 순사들의 보호까지 받게 되어 천하가 태평하게 되었다며 만족해한다.
그래서 윤 직원은 학교를 짓는 데는 한 푼도 내놓지 않으면서도 경찰서 무도장을 짓는 데는 기부금을 아낌없이 낸다. 족보에 도금을 하여 새롭게 꾸미기도 하고, 양반을 사고, 양반과의 혼인을 위해서 가난하고 먼 양반 집에서 며느리들을 얻고, 손자 종수와 종학이를 군수와 경찰 서장을 만들어 진짜 가문을 빛내기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집안의 불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서 며느리와 손자며느리까지 앞에서는 순종하는 체하지만 뒤돌아서면 서로가 흉을 보며 시기하고, 아들 창식은 노름에 빠져서 다른 것은 돌보지도 않고 오직 가산 탕진에 몰두하고, 손자 종수는 군수가 되기는커녕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많은 돈을 날리고 심지어 아버지의 첩 옥화까지 건드릴 뻔하고, 증손자인 경손이도 윤직원의 애인인 동기 춘심이와 놀아나고, 윤 직원 영감도 춘심에게 빠져 있다. 이들 모두는 자신이 점점 썩어 가는 것도 모르고 각자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면서 한껏 방탕한 생활을 누리며 태평을 즐긴다.
그런데 경찰 서장을 만들겠다고 동경에 유학 보냈던 둘째 손자 종학이가 동경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연루되어 체포, 투옥되었다는 전보를 받고 윤직원 영감은 기절초풍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놀 사회주의 부랑패에 참섭을 하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하면서.

해방 이후의 소설

<미스터 방>

1946(45) «대조»에 발표한 단편으로, 해방 직후를 배경으로 방삼복미스터 방이 되는 과정을 해학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S 소위의 통역이 되면서 부와 작은 권력을 쥔 방삼복’, 그리고 친일 행위로 해방 후 절치부심하는 백 주사의 인생사는, 권력에 기생하는 것이 곧 개인의 부와 안위를 위한 처세라는 당대의 세태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러한 처세술로 세상을 영위하는 기회주의적 인간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채만식은 이 두 인물을 희화화하여 조소하는 풍자적 기법을 통해, ‘방삼복의 행태를 겉으로는 추켜세우며 웃음을 주는 동시에 그 이면에 비판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편 채만식의 소설은 판소리 사설의 풍자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적 풍자 문학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미스터 방> 역시 서술자가 빈번히 작품에 개입하여 주인공이나 시대 상황에 대해 평가를 제시하는데, 특히 판소리 창자의 구수한 입담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채만식 특유의 해학과 풍자를 드러내는 기법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미스터 방>
방삼복은 서른이 다 되도록 머슴살이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돈을 벌겠다며 가족을 떠나 중국 등지를 떠돈다. 떠날 때보다 더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하는 일 없이 놀다가,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에서 방삼복은 겨우 입에 풀칠 할 정도로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신기료 장수가 된다.
해방이 되자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지만, 방삼복은 손님이 줄어 불만을 가진다. 그러나 며칠 후 손님에게 돈을 더 많이 받아도 상관이 없게 되자 독립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그랬다가 재료값이 덩달아 비싸지자 다시 해방을 저주한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방삼복은 미군들이 말이 안 통해 불편해 하는 것을 보고 통역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토막 영어로 미군 장교인 S 소위를 도와준 일로 그의 통역이 되었고, S 소위의 권세를 등에 업고 벼락부자가 된다.
어느 날 우연히 방삼복과 만난 동향의 친일파 지주인 백 주사는 방삼복에게 독립 때문에 자신이 잃은 재산을 되찾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 방삼복은 흔쾌히 승낙한다. 이후 방삼복은 늘 하던 대로 냉수로 양치한 물을 마당에 뱉다가, 때마침 들어오던 S 소위의 얼굴에 그 물이 떨어져 얻어맞는다.

<맹 순사>

1946(45) 발표한 작품으로, 해방 공간의 혼란한 사회상을 증언한 풍자 소설이다. 경찰직에 복귀한 주인공이 친일 경찰이 복귀되거나, 해방 후 새로 기용된 동료 경찰들이 주먹패, 무기 징역수인 것을 보고 사직서를 쓴다는 내용이다. 일제 청산, 민족 국가 건설과 같은 민족사적 과제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당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 이야기>와 상통한다.

<맹 순사>
출신을 알 수 없는 맹 순사는 해방 때까지 십 년 간 순사 노릇을 했다. 나이는 사십이 다 됐는데, 성격이 워낙 유순했다. 이와 반대로 그가 상처하고 후취로 맞은 아내인 서분이는 호릿하고 가냘픈 외형대로 신경질적인 여자였다. 다른 순사들은 뇌물 등으로 돈을 많이 모았지만, 맹 순사는 작은 뇌물들은 조금씩 받았어도 한 번에 백 원 이상을 얻어먹은 적은 없으므로 스스로 청백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맹 순사는 순사 일을 그만 두자 살림이 빈곤해져 다시 순사가 되려고 경찰학교로 가서 가벼운 테스트를 거친 후 해방 조선의 새 순사가 된다. 그는 배속 받은 파출소로 가는 길에 순사를 보는 행인의 동정이 적의와 경멸로 바뀐 것을 보며 그간 한 일이 있으니 푸대접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한다.
맹 순사는 파출소에 도착하자 옛날에 행랑아들 노릇을 하던 노마가 순사로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노마는 무식해서 성가시기도 하였으나, 옛 노마를 부리는 것처럼 일을 다 해주어서 편안하게 순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노마가 다른 파출소로 옮긴 후 후임자로 강봉세가 온다. 그런데 그는 해방 전에 살인강도로 잡혀 들어왔던 사람인데, 그 때 맹 순사더러 밥을 달라고 조르다 성이 나서 풀려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저주를 했던 사람이다. 맹 순사는 강봉세가 패검을 뽑아 자신의 배를 찌를 것만 같아서 순사가 된 것을 후회하며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사직원을 쓰자 아내 서분이가 구박을 하였다. 맹 순사는 살인강도가 순사가 되었다고 하자 서분이는 놀라며 이제 순사한테도 마음을 못 놓겠다고 하였다. 맹 순사는 예전 순사 역시 살인강도와 다를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논 이야기>

1946(45) «해방 문학 선집»에 실린 단편으로,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과도기인 해방 직후 농민의 참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폭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농민을 수탈하는 사회 제도, 일제 청산이나 민족 국가의 건설과 같은 민족사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당대 사회를 날카롭고 냉소적인 태도로 비판함으로써 채만식 특유의 풍자 세계를 다시금 구축하고 있다.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한 생원까지도 나라가 개인에게 이득을 주어야만 의미가 있다는 편협한 국가관을 가진 인물로 묘사하는데, 채만식은 이렇게 모자라는 인물을 당대 사회와 함께 동시에 비판하여 이중의 풍자를 꾀하고 있다.

<논 이야기>
한 생원의 아버지 한태수는 한일 합병 전에 동학란과 관련되어 무고하게 옥에 갇혔었다. 가족들은 그를 석방시키는 조건으로 원님에게 강제로 열서 마시기의 논을 빼앗겼고, 남은 일곱 마지기마저 술, 노름, 살림 때문에 일본인에게 팔아 넘겨야 했다.
그런데 해방이 되어 일본인들이 토지와 재산을 모두 두고 쫓겨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 생원은 땅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고, 술에 취해 자기 땅을 보러 간다고 외친다. 그러나 땅은 이미 소유주가 바뀌어 있었고, 논마저 나라가 관리하게 되어 되찾을 수 없었다. 허탈감을 느낀 한 생원은 자신은 나라 없는 백성이라고 하면서, 광복되는 날 만세 안 부르기를 잘했다고 혼잣말을 한다.

<허생전>

1946(45) 발표한 작품으로, 박지원의 <허생전>과 이광수의 <허생전>, 그리고 설화로 전하는 이야기를 참고하여 쓴 소설이라고 한다. 연암의 작품과 달리 제주도로 떠나기 전의 집결지를 강경으로 잡고 도적의 가족들을 집단화하는 등 사건과 인물 설정에서 현실성과 구체성을 중시하였다.

<민족의 죄인>

1948(47) «백민»에 실은 중편으로, 채만식 자신의 일제 강점기 친일 행위에 대한 반성과 변명이 담긴 자전적 소설이다. 문필가였던 세 사람이 등장하여 식민지 시대의 행적에 대하여 비판과 반박과 자기 옹호의 논리를 펴지만 는 침묵한다. ‘민족의 죄인이기 때문이다. ‘는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한계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대일 협력의 수렁에 빠져 들었던 경위를 자기변명의 태도로 고백한다. 마지막에 등장한 조카를 꾸짖는 의 심경은 소설적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은 수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주인공이 보여주는 행적과 생각, 그리고 시대 상황이 모두 채만식의 그것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하의 상황에 직면하면서 주인공이 선택한 것은 꼿꼿한 자존심과 애국심이 아니라 그저 힘의 논리에 따른 친일 행위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한다. , 동맹 휴학을 하려는 친구들로부터 달아나려는 조카를 훈계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친일 행위에 대한 질책의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당시 친일 행위를 한 인사들을 청산하는 것이 사회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두려움을 소설로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민족의 죄인>
19464, ‘는 김 군이 있는 P 잡지사에 들렀다가 윤 군으로부터 대일 협력에 관한 치욕스런 조롱과 비판을 당한다. 그리고 보름 동안 두문불출하며 마음의 병을 앓는다. 그리고 의 과오를 회상하며 정리한다.
가 대일 협력의 첫걸음을 디딘 것은 19432, 황해도에서 미 · 영 격멸 국민 총 궐기 대회에 가서 미영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황군의 승리를 주장하는 내용의 강연을 한 일이었다. 이후 다섯 차례나 더 강연에 참가했는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용렬하게 협력하면서도 는 청중 중 의 강연에 대한 반발이 없다는 게 가슴 아팠다. 하루는 조선의 학생들 이십 여 명이 찾아와 학병으로 끌려갈 위기인데 어떻게 처신하면 좋으냐고, 여관으로 몰려와 묻는다. ‘우리가 앞으로 일본 사람과 꼭 같은 권리를 주장하자면 피도 좀 흘려야 하지 않을까요?”하고 얘기해 준다. 이십 명의 신원을 모르니 의 반일 충고가 알려지면 욕을 당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들이 실망하며 돌아간 후 한 학생이 남아 의 진심을 묻는다. “일제에 협력하지 마시오.” 그는 눈물을 훔치며 돌아간다.
1944년에는 평북 알루미늄 공장을 견학하고 방문기를 썼고, 이보다 조금 앞서 내선 일체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는 자책감과 정신적 피로감에 낙향했고, 해방을 맞아 다시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김 군의 P사에 들렀을 때, 전에 기자였던 윤 군이 나타나 친일한 지식인들을 규탄한다. 김 군은 대부분의 기자나 지식인들이 호구지책으로 일을 한 것이니 궁핍했던 당대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사실 윤은 부유한 가정 배경 때문에 친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김 군은 문필가가 친일의 글을 쓴 게 대일 협력이라면 윤군처럼 농사를 지어 공출에 협력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는 그들의 논쟁에서 충격을 받고 낙향을 결심하나, 아내가 간곡히 사정하므로 서울에 머물러 조용히 지낸다. 어느 날 중학 졸업반인 스무 살짜리 조카가, 친일파 선생을 배척하는 동맹 휴학이 귀찮아 빠져 나왔다며 방문한다. ‘는 격한 심정으로 그를 꾸짖는다. “옳은 일을 위해선 불 가운데로 뛰어들어야 돼 이놈아.” ‘는 속을 빤히 아는 아내를 보기가 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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