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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51. 최정희 · 노천명

2014. 8. 6. by 솜글

문단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일구어진 193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문인이라면 물론 많이 있겠으나 특히 소설에서는 최정희를, 시에서는 노천명을 꼽을 수 있다.

최정희

최정희의 생애

최정희(崔貞熙, 1906~1900)는 함경북도 성진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한의사인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그러나 어릴 때 아버지가 외도하여 곧 힘겨운 성장기를 보내는데, 이때 먼 친척 집에서 얹혀 지내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심을 키웠다고 한다.

1925(20)에는 나이를 속여 숙명여고보에 편입하고, 1928(23) 졸업한 후 중앙보육학교를 수료한다. 1930(25) 일본으로 건너가 일을 하면서 틈틈이 신학문을 공부하고 유치진이 주도하던 학생극예술좌에도 가입해 활동하였다. 이 무렵 최정희는 계급주의 영화감독인 김유영을 만나 임신하여 아이를 지우려고 약을 마시는 등 고난을 겪었다.

1931(26)에는 김동환이 주관하던 «삼천리»의 기자로 들어가 <명일의 식대>, <람프> 등 경향 문학의 색채를 띤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 생활을 시작하지만 작품성은 떨어졌다. 1934(29)에는 카프 2차 검거와 신건설회 사건에 연루되어 잠시 감옥 생활을 하는데, 이를 기점으로 아예 방향을 돌린다. 1935(30) 출옥한 후 그녀는 전에 썼던 원고들을 모조리 태워 버리고 경기도 양주로 이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았던 집을 소재로 쓴 소설이 1937(32)<흉가>이다.

1938(33)<정적기>를 거쳐 1939(34)에는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지맥>을 발표하여 한결 성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해에 김동환과 동거하기 시작하였고, 1940(35) <인맥>, 1941(36) <천맥>을 발표하여 시리즈를 마쳤다.

1942(37)에는 김동환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는데, 이 시기 가난과 강압 때문에 황민화 정책에 동조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해방 후에도 가난에 시달렸으나 1946(41) 둘째 딸을 낳은 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다.

1950(45) 김동환이 납북된 후로도 장편 <녹색의 문>, <인생의 찬가> 등 휴머니즘이 깔린 소설을 여럿 발표하다가 1990(85) 세상을 떠났다.

사진 출처 :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article/4104145)

최정희의 소설

<흉가>

사회주의 색채의 작품을 쓰던 중 카프 2차 검거로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최정희는 방향 전환을 단행하는데, 그 기점이 되는 작품이 1937(32) «조광»에 발표한 <흉가>이다.

이 소설의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도 섬세한 인물의 내면 묘사이다. 좋은 집을 얻게 되어 즐거워하는 가족들을 보는 흐뭇함, 폐병 진단을 받고도 가족의 생계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정신적 압박감, 괴기스러운 꿈에 시달리는 공포감, 어머니에게조차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 등 여성의 내면 심리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혼자서 폐병과 악몽에 시달리는 장면에서는 일인칭 화자의 내적 독백과 탈바가지, 달빛, 닭울음 등의 소재를 적절히 이용하여, 가장으로서의 책무와 개인적인 공포감 사이에서 번민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손에 잡힐 듯 포착해 내고 있다.

<흉가>
어려운 형편에서 집을 구하고 있던 는 우연히 싼 집을 구하게 된다. 마당과 많은 나무, 큰방을 갖춘 그 집은 웬 일인지 헐값에 세를 놓고 있었다. 살던 집에서 쫓겨난 처지인 는 그 집을 계약한다.
하지만 그 집은 흉가였다. 그 집에 들어서 사흘째 되는 날부터 늘 몸에 열이 있고 오한이 나고, 꿈에 미친 안주인이 나타나 왜 자기 집에 들어 있느냐고 하며 나를 마구 때린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는 집에 들던 날 솥 붙이던 늙은이가 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전 주인은 과수원을 돌보다 과로로 사십 미만에 죽고 말았고, 그의 아내는 미쳐서 어린 딸과 함께 재산을 가로챈 시형 집에서 기식하는데 때때로 그 집에 찾아와 광기를 부리곤 한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는 폐병 진단까지 받게 된다. 사정을 모르는 어머니는 집에 마음에 든다고 하며 의 병이 감기몸살인 줄만 안다. 밤이 되면 또 다시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이사를 하리라 마음먹지만, 모처럼 집다운 집을 갖게 된 기쁨에 들떠 있는 어머니에게 차마 사실을 털어 놓을 수 없어 고민한다.
서러워 눈물이 핑그르르 돌아 어머니가 안보시게 얼른 벽으로 돌아눕자 뒷산에선 뻐꾹새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맥>

1939(34) «문장»에 발표한 작품으로, ‘시리즈 중 첫 번째 소설이다. 최정희의 소설에서는 가난 때문에 계급적 자각을 한 주인공이 역시 가난 때문에 전향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맥>도 그 중 하나이다.

이 작품에서는 여성성과 모성의 관계 속에서 발생되는 갈등을 모성으로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여성성보다 모성을 우위에 둔 것은 페미니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욕구나 권리들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맥>
는 동경 M 대학에 다닐 때 죽은 남편 홍민규를 만나 정치를 배우고 사회과학에 마음이 쏠리게 되었다. 그래서 문학 작품보다는 사회주의 이론이나 노동조합 조직론 등 홍민규가 읽었다는 책을 더 가까이 했다.
그런데 홍민규에게는 본처가 있었다. 그러나 는 결국 본처가 있는 홍민규와 동거하여 설주형주를 낳게 되었다. 홍민규의 집 소실로 들어간 셈이 된 는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입학시키려 했지만 호적에 입적이 안 된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 후, 홍민규가 죽고 미망인이 된 나를 사랑하며 결혼을 강요하는 상훈과의 만남에 는 다시 괴로워한다. 그러나 결국 는 아이들의 입적 문제뿐 아니라 상훈의 사랑과 청혼을 물리치고 가톨릭에 입교한다. 그리고 애욕의 감정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신부의 강론에 감화를 받아 상훈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해주 요양원으로 옮겨간다. 자식과 죽은 남편에 대한 윤리 의식 때문에 상훈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던 는 결국은 그의 진지하고 끈질긴 사랑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만 끝내 결혼을 허락하지 않고 행방을 감추어 버리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고 고독의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자신은 비록 슬프고 괴롭더라도 오직 자식만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모성의 모랄, 이 두 가지 중에서 는 결국 도덕적인 길을 선택하고 온갖 슬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먼 길을 택해 떠나고 마는 것이다.

노천명

노천명의 생애

노천명(盧天命, 1911~1957)은 황해도 장연에서 부호인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1918(8) 아버지가 숨진 후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하는데, 진명여자고보에 진학한 노천명은 우수한 학업 성적을 냈을 뿐만 아니라 100미터 육상 선수로도 활약할 만큼 운동에도 소질이 있었다.

1930(20) 이화여전에 입학할 즈음에는 어머니가 죽고, 언니와 형부마저 직장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간다. 때문에 노천명은 홀로 기숙사에서 쓸쓸한 학창 시절을 보낸다. 그 고독을 이기기 위해 책과 원고지에 파묻히고, 곧 교지에 시 <봄 잔디 위에서>를 싣고, 1932(22)에는 «신동아»에 시 <밤의 찬미>, 수필 <신록>, 소설 <닭 쫓던 개> 등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왔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기자 생활을 하고, 1935(25) <내 청춘의 배는>을 발표하여 문단의 관심을 끌었다. 1938(28) 첫 시집 «산호림»의 출판 기념회를 호텔에서 호사스럽게 여는데, 이 자리에서 노천명은 조선의 마리 로랑생이라는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문학 면에서나 인생 면에서나, 그녀의 절정기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 무렵에 키운 필요 이상의 자만심과 아집으로 노천명은 점차 더욱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산호림»에 실린 <사슴>에서 노래한 사슴은 바로 노천명 자신이었다. 이 시기 노천명은 김광진과 불륜을 저지르지만 결국 헤어지고 이후 고아를 입양하여 키우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일제 말기에는 1943(33)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들어가 친일의 오점을 남기고, 해방을 코앞에 둔 1945(35) 초까지 다수의 친일시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용시만을 쓴 것은 아니어서 <창변>, <고향>, <장날>, <남사당> 등 어릴 적의 고향을 풋풋한 향토 서정에 녹여 회고한 작품들도 꾸준히 내었다.

해방 후 노천명은 1950(40)에 좌익분자 혐의를 받아 감옥 생활을 하는데, 이 시기 받은 고문과 협박 때문에 신경증에 걸리게 된다. 이듬해에 석방된 후 1953(43) <고별>, <눈보라> 등 옥중 체험기와 전쟁을 소재로 한 시들을 실은 시집 «별을 쳐다보며»를 펴내지만, 이 시집은 현실 참여에 얽매인 듯한 무절제한 내용으로 문우들과 독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이후로도 시와 수필을 꾸준히 내던 노천명은 1957(47) 재생 불능성 뇌빈혈로 쓰러져 입원하고, 같은 해 6월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듬해에 그녀의 유고를 모은 시집 «사슴의 노래»가 간행되었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B%85%B8%EC%B2%9C%EB%AA%85)

노천명의 시

<장날>

1939(29) 발표한 작품이다. 1연은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의 정경이고, 2연은 장을 보로 돌아오는 저녁의 정경으로 되어 있다.

장보러 가는 아버지의 가난함을 여지없이 드러나게 하지만, 우리는 그 아버지의 비참함보다는 어린 딸의 천진스러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끝 연에서는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라며 딸의 순진무구함을 더 재미있게 전환한다.

<장날>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사슴>

1938(28) 펴낸 첫 시집 «산호림»에 실린 시로,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다스려온 삶의 자세를 사슴에 투영시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겉으로는 사슴을 가볍게 스케치한 한 폭의 작은 그림 같지만, 사슴에게 인격을 불어 넣고 감정을 이입시키면 어느덧 사슴이 노천명 자신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독자 앞에 나타난다.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푸른 오월>

1938(28) 시집 «산호림»에 수록한 작품이다. 환희에서 출발한 감정이 옛날에 대한 향수와 비애로 바뀌었다가 다시 환희로 돌아옴으로써 감정을 더욱 호사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푸른 오월>
청자(靑瓷)빛 하늘이/ 육모정[六角亭]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남사당>

1940(30) «삼천리»에 발표한 작품이다. ‘남사당이란 전국 각지를 떠돌며 춤과 웃음과 노래로 삶을 영위하던 놀이패 집단을 말한다.

이 시에는 유랑 인생의 애상이 그려져 있다. 화자인 는 시인 자신이 아니라 따로 설정된 가공적 인물인데, 어린 시절 남장을 하고 다녀야 했던 시인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볼 때 묘한 느낌을 준다. 화자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 내린 사나이이며, 저녁이면 향단이 등의 배역을 맡아 여자 목소리를 내야 하는 자신을 서글프게 느껴 내 남성(男聲)이 십분 굴욕되다고도 말한다.

<남사당>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布帳)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十分) 굴욕되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道具)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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