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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13. 변영로

2014. 3. 31. by 솜글

변영로의 생애

학창 시절과 문단 활동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1898~1961)는 서울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큰형은 국학자이자 한학자이며 스무 살에 법관직에 오를 만큼 천재였고, 작은형은 영문학자이며 나중에 국무 총리를 지내는 변영태이다. 사람들은 이 삼형제를 당송 팔대가이던 소순(蘇洵) 삼부자에 빗대어 한국의 삼소(三蘇)라고 부르기도 한다. 1912(15)에는 학교에 다니면서 두 살 연상의 아내를 맞는데, 졸업 직전 교사에게 대든 일로 중퇴한다.

변영로는 어학 분야에 남다른 재질을 보였다. 1915(18)에는 조선중앙기독청년회학교 영어 반에 등록하여 3년 과정을 6개월 만에 2등으로 마치고 이듬해부터 영어 교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1918(21) «청춘»에 영시 <코스모스>를 발표하였고, 1919(22)에는 YMCA에서 <독립선언문>을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1920(23) «학지광»에 평론 <주의적 생활>을 발표하며 문단 생활을 시작하는데, 본격적인 문인 활동은 이듬해 «폐허» 2호에 뒤늦게 동인으로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여기에 변영로는 영미 권의 메테를링크(Maeterlinck)와 예이츠(Yeats)의 관점에서 상징주의를 제시한 평론 <메테를링크와 예이츠의 신비 사상>, 그리고 이와 사뭇 대조되는 전통 율격으로 절제된 감정을 담은 시 <생시에 못 뵈올 님>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를 끝으로 «폐허»가 종간되자 황석우, 오상순, 박종화, 박영희 등과 함께 시 전문지 «장미촌»을 펴냈다. «장미촌» 역시 금세 종간하나, 1922(25)<날이 샙니다>, 1923(26)<논개>를 발표하는 등 계속해서 주목 받았다. 여기서 변영로는 민족애와 미적 추구를 보여 주는데, 이런 성향은 1924(27) 출간한 시집 «조선의 마음»에서도 지속되었다.

1927(30)에는 이화여전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과 국문학을 강의하는데, 이때부터 시작에 전념하지 못한다. 1931(34)에는 캘리포니아의 산호세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36(39)에는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구되어 감옥살이를 하였다. 변영로는 많은 문인들이 친일 대열에 합류할 때에도 지조와 절개를 끝내 꺾지 않았다.

해방 이후

해방 후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영문과 교수로 일하면서 영시집 «진달래 동산»(1947)을 내고, 1953(56)에는 대한공론사를 만들어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그러면서 수필 몇 편을 발표하는데, 1955(58) 발표한 글 <천자 춘추>가 당시 성균관대학교 총장이던 김창숙과 연관된 필화 사건으로 번져 퇴직한다. 이후 1959(62) 시집 «수주 시문선»을 내고, 1961(64)년 후두암으로 숨졌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https://namu.wiki/w/%EB%B3%80%EC%98%81%EB%A1%9C)

멋쟁이 풍류객

생전 변영로는 나는 돈키호테를 배우고 싶다. 닮고 싶다. 하다 못하면 흉내라도 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형편이 궁색하면서도 꼭 서울 일류 양복점에서 맞춘 옷만 입었고, 구두는 상하이나 홍콩에서 인편으로 부탁해 맞추어 신던 멋쟁이였다.

무엇보다 변영로는 술을 좋아했다. 그의 아버지는 변영로가 대여섯 살 때부터 술을 마실 때마다 서너 잔씩 따라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변영로의 음주 행각은 «폐허»«장미촌» 시절, 역시 당대의 술꾼이던 오상순, 염상섭 등과 만나면서부터 폭음으로 이어진다. 오상순, 염상섭, 이관구와 함께 네 사람이 뒷산에서 술을 마시다가 소나기가 쏟아지자 옷을 모두 벗고는 소를 타고 내려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성균관대학교에 재직할 때에는 교수 회의를 술집에서 열고, 봄가을마다 교직원들과 술을 싸서 야유회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강의 도중에도 누가 찾아오면 곧장 술을 마시러 나갔다고 한다. 그는 이후 죽을 때까지도 금주 결심과 실패를 셀 수도 없이 거듭했다.

<논개>

변영로의 문학은 1923(26) 발표한 <논개>에 집약된다. 이 작품은 진주 남강의 푸른 물결과 역사 속 실존 인물인 논개의 붉게 타오르는 조국애를 대비시켜 감동을 안겨 준다. 색채의 대조, 대구, 비교, 토속적 소재 등을 통해 숭고미를 표출한 작품이다.

<논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는 <논개> 등을 통해 빼어난 언어 감각과 상징성을 보여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김기진 등으로부터는 지나치게 언어에 집착한 기교파라는 지적도 받는다.

이런 민족애와 미적 언어 추구는 1924(27)의 시집 «조선의 마음»에서도 지속된다. 여기에는 시 28편과 수상 8편이 실렸는데, 기교적 추상성과 관념성에 치우쳤다는 지적이 따랐지만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발간 직후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조선의 마음»이 총독부에 압수되어 폐기되자, 변영로는 굶어 죽을지언정 뼈 없는 글을 쓰지 않겠다.”라며 고향에 내려가 수수개떡으로 연명하기도 하였다.

논개를 노래한 다른 시 - 한용운의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에>
술 향기에 목맺힌 고요한 노래는 옥()에 묻힌 썩은 칼을 울렸다./ 춤추는 소매를 안고 도는 무서운 찬바람을 귀신 나라의 꽃수풀을 거쳐서 떨어지는 해를 얼렸다./ 가냘픈 그대의 마음은 비록 침착하였지만 떨리는 것보다도 더욱 무서웠다./ 아름답고 무독(無毒)한 그대의 눈을 비록 웃었지만 우는 것보다도 더욱 슬펐다.
(한용운은 변영로와 달리 논개가 적장을 안고 순국하는 장면을 현란하게 표현하였으며, 주위에 있는 자연물들을 통해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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