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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11. 전영택

2014. 3. 24. by 솜글

전영택의 생애

담양(潭陽) 전영택(田榮澤, 1894~1968)은 김동인, 주요한과 마찬가지로 평양에서 태어났는데 두 사람보다 여섯 살 위이다. 평양에서 중학에 다니던 중 일본에 유학하여 대학 공부를 마쳤다.

대학 졸업 후 다시 신학부에서 공부하는 동안 조선학회«기독청년지»에 참여하면서 문필 활동을 시작하는데, 1917(24) «학지광»의 편집을 맡으면서부터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동인과 주요한은 이러한 전영택에게 «창조»의 창간 동인이 될 것을 권유하고, 전영택을 이를 승낙한다. 그리하여 1919(26) «창조» 창간호에 <혜선의 사>를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는다.

1930(37)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의 퍼시픽 신학교를 수료하는데, 이때 흥사단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에는 목사가 되어 주로 «기독신문»의 주간을 맡거나 성경학교에 근무하는 등 목사로서의 활동에 주력하였다. 1945(52) 해방 후 조만식과 함께 조선민주당을 창건하고 문교부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나, 공산 독재가 노골화하자 월남하였다. 맹아학교 교장, 중앙신학교 교수를 거쳐 계속해서 기독교 계통에 봉사하였으며, 1961(68)에는 한국문인협회 초대 이사장을 맡기도 하였다.

사진 출처 : 티스토리 블로그(https://happien.tistory.com/289)

전영택의 문학 경향

전영택은 1919(26) «창조» 창간호에 <혜선의 사>, 2호에 <천치? 천재?>를 발표한 이후 계속해서 <운명>, <사진>, <화수분>, <흰 닭> 등을 발표하였다.

전영택이 «창조» 제의를 수락한 것은 그만큼 그가 문학의 순수성을 추구하려고 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런 동기 면에서, 그리고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문학의 순수성을 추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김동인과 전영택은 이상이 같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방법론적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같은 리얼리즘 소설이라도 김동인은 문체의 변혁, 단일 시점의 묘사, 시제의 도입 등과 같이 형식면에서 새로움을 추구한 데 비해, 전영택은 한결 ()’의 문제에 천착함으로써 내용면의 근대화에 비중을 두었다. 그러한 시도가 잘 나타난 것이 1919년작 <혜선의 사><천치? 천재?>이다. 두 작품에서 전영택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운 소설을 창작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붓을 꺾고 울분을 달래다가 해방 후 다시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3 · 8선의 비극을 그린 단편 <>를 비롯하여 <새봄의 노래>, <강아지>, <아버지와 아들>, <> 등을 발표하였다. 초기의 작품에는 인도주의적 요소를 내포하면서도 자연주의적, 사실주의적인 색채가 강했으나, 후기의 작품에는 그리스도교적 인도주의의 경향이 짙게 나타났다.

한편 전영택은 소설 창작 외에 성서나 찬송가 등의 번역에도 큰 공적을 남겼다.

전영택의 소설

<혜선의 사>

<혜선의 사>(1919)는 전근대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 한 여인을 통해 남존여비의 인습을 비판하고 있는 소설이다. 지속될 수 없는 결혼 생활을 이혼 대신 자살로 마무리한 신여성을 통해 남성 우월적 결혼 제도의 구습을 벗어나지 못한 신여성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혜선의 사>
혜선은 중류층 가정에서 11녀 중 딸로 태어난 평범한 여인이다. 대개 그렇듯 아들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혜선은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 그러던 중 남동생이 아홉 살에 병으로 죽고 어머니도 화병으로 죽게 되면서 혜선은 숨 막히고 암울한 소녀 시절을 보낸다.
혜선은 열여덟 살에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은 말뿐이고, 남편은 동경으로 유학을 가고 혜선은 혼자 남게 된다. 아버지의 권유로 스물한 살에 여학교에 들어가지만 그곳에서도 신여성들의 의식에 동화되지 못한다.
명목뿐인 결혼생활에 주위의 친구들과 사촌오빠가 이혼을 권유하지만, 혜선은 결혼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던 중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에게 이혼을 청구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혜선은 여자로 태어난 슬픔을 평생의 원()으로 간직한 채 한강에 투신해 생을 마감한다.

주인공 혜선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서울에서 여학교를 다니는 신여성이자 유부녀이지만, 남편의 마음은 진즉에 떠난다. 심지어 남편은 혜선이 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혜선에게 이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자로 태어난 것을 원망만 할 뿐 현실과 싸울 용기가 없는 것이다. 봉건적 구습이 여전했던 당시 아무리 신여성이라지만 이혼한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을 감내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여성이지만 여전히 일부종사의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현실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화수분>, 죽음과 생명의 가치

<생명의 봄>(1920)<독약을 마시는 여인>(1921), <화수분>(1925), <순교자 베드로> 등은 모두 죽음을 제시하고 있다. 전영택은 생명을 남달리 중시하고, 생명과 삶의 의미와 가치는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동인이 전영택을 일컬어 예각적으로 본 인생관을 인도주의에 연결한 작가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그의 문학 세계는 기독교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작위적인 허구성을 배제하고 인도주의와 인간애를 지향하고 있다.

<화수분>은 전영택의 대표작으로, ‘가난이라는 당시 신경향파 작가들이 즐겨 다루는 소재를 가지고 도식적인 사건 처리가 아닌 인간의 원시적 온정과 생명에의 외경(畏敬)을 사실적 · 상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화수분>
초겨울 어느 추운 밤, ‘는 어느 날 행랑아범 화수분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 ‘화수분은 그 해 가을에 아내와 어린 딸 둘을 데리고 행랑채에 들어왔는데, 매우 가난한 처지였다. 가난 때문에 아내가 아홉 살 난 큰애를 강화도로 보내 버리자, 그 슬픔에 울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 ‘화수분은 형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양평으로 떠나더니 추운 겨울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행랑어멈은 기다리다 못해 둘째를 업고 남편을 찾아 양평으로 떠난다.
그 후 어느 날, ‘는 시집 간 여동생 ‘S’로부터 그들의 뒷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행랑어멈이 떠날 무렵 화수분은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고, 어떤 높은 고개에 이르러 만난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 지나가던 나무 장수는 껴안고 죽은 젊은 남녀의 시체와 이제 막 자다 깬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빛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린 아이만을 소에 싣고 갔다는 것이다.

시대 현실 - 가난의 문제

<화수분>의 주인공 화수분은 정직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묵묵히 일하는, 당대 한국인의 모습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와 그의 가족들은 가난과 무지에 찌들어 세 가지 비극으로 형상화된다.

  • 첫 번째 비극 : 가난 때문에 맏딸을 남에게 줘 버림
  • 두 번째 비극 : 부부가 헤어진 뒤 서로를 찾아가다가 길에서 껴안은 채 죽음
  • 세 번째 비극 : 죽어가면서도 아이를 품에 품어 살려 지나가는 사람에게 발견되어 살아남게 함

이런 세 가족의 비극은 일제 강점 초기를 배경으로 한 도시 빈민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사실 화수분은 지게꾼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농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착한 도시인도 아니다. 이는 일제의 수탈로 인해 농촌 공동체는 붕괴되고 도시 기반도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과도기적인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1920년대 빈곤층을 대변하는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반어적 명명

화수분(;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 단지)’에게는 장자(長者 ; 큰 부자를 높여 부르는 말)’, ‘거부(巨富 ; 대단한 부자)’라는 형이 있다. 이 이름들은 그들의 부모가 잘 살기를 바라며 지어 준 이름이다. 그러나 삼형제의 실제 삶은 매우 궁핍하다. 화수분일가의 이름옥분이’, ‘귀동이역시 모두 실제 상황과 상반된 이름이다.

<화수분>의 주요 소재는 가난이다. 가난은 화수분일가가 처한 비극적 상황 묘사를 통해 처절하게 드러나는데, 그 가난과 관련한 주제를 더욱 비극적으로 극대화하고 있는 기법이 바로 반어적 명명법이라 할 수 있다. 즉 실제 현실과 상반된 이름들은 부자 됨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여 주는 동시에 현실의 극단적인 빈곤 상황을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자연주의인가 사실주의인가

자연주의 소설은 실증주의 철학자들의 환경 결정론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한다. 즉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화수분>이 자연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화수분일가가 가난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파탄과 죽음에까지 이른 것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화수분은 처지가 어렵긴 하지만 가난 때문에 성격이 변모하거나 타락한 상황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자연주의 소설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화수분>을 사실주의 계열로 보는 것은, 이 작품이 화수분일가의 삶을 객관적 입장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주의(=리얼리즘)
문학 사조로서의 사실주의는 19세기 유럽에서 낭만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문예 사조이며, 문학 이론상의 사실주의란 낭만주의나 모더니즘과 대비되는 하나의 창작 방법론을 말한다. 세계 어느 나라이든 사실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와 더불어 발생하고 자본주의 시대에 융성하였다.
사실주의의 양식적 특성
- 사실성(객관성) :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린다. 그리고 사물의 디테일(세부)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 전형(Type)의 창조 : 한 시대의 어떤 사회적 집단을 대표할 만한 전형적 인물을 그리며, 특히 그 인물이 전형적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을 그린다.
- 전망(=원근법, 시각) : 현실을 묘사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작가가 중요한 것을 선택하여 묘사한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반드시 보여준다.

결말 부분에 나타난 작가 의식

최서해의 <홍염>을 비롯한 신경향 소설들은 대부분 가난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화수분>은 신경향파 작품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신경향 소설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전영택은 <화수분>의 결말 부분에서 부부가 죽어가면서도 아이를 품어 살리도록 처리한다. 전영택은 단순히 전망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린 것만은 살려 둠으로써 희망과 구원의 여지를 남겨 둔 것이며, 부정(父情)이 인간의 본능적인 것임을 나타낸다. 여기서 자기 희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인도주의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희망과 전망의 제시는 살인이나 방화와 같은 극단적 방법으로 가난을 해결하려고 하는 신경향 소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다.

  <화수분> <홍염>
공통점 가난을 소재로 함
차이점 ㆍ작가의 느낌을 강조하지 않음
ㆍ화수분 내외가 얼어 죽으면서도 아이만은 살려 내도록 결말을 처리하여 인간의 원초적인 온정을 불러일으킴
ㆍ작가의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함
ㆍ방화, 살인의 결말을 통해 당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프로 문학의 성격을 드러냄

<>

해방 후 1950(57)에 발표한 <>에서는 분단의 비극에 의한 남북 민간의 상호 증오와 적대 관계의 심화과정을 보여 준다. 해방 후 두드러지기 시작한 그의 박애 정신을 구현한 농촌 소설로, 전영택은 이 작품을 계기로 자연주의에서 교화적 인도주의 문학으로 돌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소>
홍창수(홍 주사)는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춘천 오여울이라는 마을로 와서 착실하게 살림을 불려 나간다. 아들 용덕이가 열 살이 되기까지 절약을 하여 홍 주사네는 살림도 늘고 논도 몇 마지기 만들고 집도 사랑채를 지었고 소도 두어 마리 되고 돼지는 남 준 것까지 열 마리가 넘는다. 그는 동네 사람이 그의 집에 식량을 얻으러 오면 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느 날 장손이네 어머니는 홍 주사의 아내에게 보리쌀 두 되만 꾸어 달라고 청하지만 홍 주사의 아내는 무색하게 거절을 해 버린다. 그날 저녁 장손이를 만난 홍 주사는 아침 일이 미안하기도 해서 굶어 주리는 장손이네에게 소 한 마리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게 된다. 이 일로 해서 아내와 충돌이 일어나지만, 홍 주사는 사람들에게 소를 한 마리씩 사 주어 마을에서는 소를 먹이지 않는 집이 없게 됐다.
그러던 중 해방이 왔다. 아들은 죽고, 아내는 홍 주사에게 소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자고 조르지만 그는 농촌을 지키기로 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오여울은 내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분단되고 북에서 장손이네 소를 잡아먹는 일이 생긴다. 이에 보복으로 장손이네 일당 청년들은 북의 소를 잡아왔다.
동포 간의 비극에 가슴이 아픈 홍 주사는 돌려보내시오. 정 소를 잡아먹고 싶거든 우리 소를 잡아먹어.” 했으나 집의 외양간은 텅 비었다. 아내가 소를 끌고 달아나 버린 것이다. 홍창수의 박애 정신은 좌절당하고, 결국 그는 소 한 마리 없이 마을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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