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인 오상순과 남궁벽은 김억, 나혜석, 염상섭, 변영로, 황석우, 민태원 등과 함께 «폐허»의 동인으로 활동한 시인이다.
오상순
오상순의 생애와 문학관
«폐허» 동인 오상순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1894~1963)은 전영택과 동갑으로, 이름보다 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공초’는 초자연적인 뜻도 지니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담배를 워낙 많이 피워 ‘꽁초’로 불렸기 때문에 붙은 호이다.
오상순은 서울에서 목재상을 경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다. 기독교 계통 학교를 졸업하고 열일곱 살 때 가출해서 일본으로 달아나서는 도시샤 대학의 종교철학과를 졸업하는데, 돌아와서는 교회 전도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1920년(27세)에 «폐허»에 가담하면서 적극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아버지가 재혼하여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데다 오상순 특유의 방랑벽이 도져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그러면서도 독서와 글쓰기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상순은 «폐허» 창간호에 “우리 조선은 황량한 폐허 조선”이라고 한 평론 <시대고와 그 희생>을 발표하고, 이후 1920년대에 왕성한 시작 활동을 벌인다. 그러면서도 YMCA에서 번역을 하고 전도사로 일하는 등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1930년(37세)에 지금의 동국대학교인 불교 중앙 학림에서 교편을 잡으면서부터 불교로 개종하였다.
‘다방 문학’
1945년(43세)부터 오상순은 늘 파이프를 물고 명동의 ‘청동 다방’에 나타났다. 생전에 시집 한 권 내지 않은 그가 유일하게 남긴 문집이 바로 청동 다방에서 만든 «청동 문집»이다. 공초가 다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노트를 내밀어 사인과 함께 아무 글이나 쓰도록 한 일종의 사인북(sign-book)인데, 여기에는 박종화, 변영로, 조지훈, 이은상, 김소운, 구상, 이원섭, 이근배, 펄벅(P. Buck) 등 국내외 문인에서부터 나이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의 시와 단상들이 적혀있다. 시인 이원섭은 “공초의 훈훈한 인품”에 반한 “문학 지망 소년 소녀, 사업가, 정치가, 협객 등 연령, 직업, 신분을 초월해 수많은 사람들이 청동 다방에 모여 들었”다고 회고한다. «청동 문집»은 모두 195권으로, 46권은 건국대에 소장되어 있고 나머지는 동료 문인들이 나누어 소장 중이다.
1950년(57세)에 6 · 25 전쟁이 터지자 오상순의 ‘다방 문학’은 피난지 부산의 ‘에덴 다방’에서 계속된다. 집도 가족도 없이 떠돌던 그의 비생산적인 다방 문학은 시대에 대한 절망, 자조, 체념, 그리고 불교에서 체득한 무소유 탈속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다방 문학은 전쟁 후에도 작고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오상순의 다방 문학은 그가 1963년(70세) 병으로 숨짐으로써 끝난다. 사후에 제자들에 의해 «공초 오상순 시선»이 발간되었으며, 그가 안치된 수유리 빨래골 묘에는 <방랑의 마음>의 첫머리를 새긴 시비가 세워졌다.
오상순의 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1923년(30세)에 발표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은 12연의 장시로, 아시아의 오랜 역사와 문화, 그 정신의 유연함과 은근함을 밤에 비유하여 찬양하고 이와 상반되는 서양 정신에서 비극이 시작됨을 노래하였다. 암흑에 싸였던 1920년대의 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 무대가 되었고, 그야말로 절망적인 기나긴 밤이었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아시아의 상황을 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은 시의 기법 따위는 무시하고 사상을 위주로 노래한 관념시(platonic poetry)이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성격이 강하나, 관념이 의외로 맑고 순리정연하며, 다듬어지지 않은 어떤 기백과 굵고 거칠면서도 웅혼한 기상등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시의 호흡이 막히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진다.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아시아의 진리는 밤의 진리다.> 中
아시아는 밤이 지배한다. 그리고 밤을 다스린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의 상징이요, 아시아는 밤의 실현이다./ 아시아의 밤은 영원의 밤이다. 아시아는 밤의 수태자(受胎者)이다./ 밤은 아시아의 산모요 산파이다./ 아시아는 실로 밤이 낳아 준 선물이다./ 밤은 아시아를 지키는 주인이요 신이다./ 아시아는 어둠의 검이 다스리는 나라요 세계이다.//
아시아의 밤은 한없이 깊고 속모르게 깊다./ 밤은 아시아의 심장이다. 아시아의 심장은 밤에 고동한다./ 아시아는 밤의 호흡기관이요, 밤은 아시아의 호흡이다./ 밤은 아시아의 눈이다. 아시아는 밤을 통해서 일체상을 뚜렷히 본다./ 올빼미처럼/ 밤은 아시아의 귀다. 아시아는 밤에 일체음을 듣는다.//(후략…)
<방랑의 마음>
<방랑의 마음>은 1928년(35세)에 발표한 작품이다. 차분한 어조로 동경하는 곳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허무성과 관념적, 불교적 성격을 띤다.
<방랑의 마음>
흐름위에/ 보금자리친/ 오! 흐름위에/ 보금자리친/ 나의 혼……//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바다를 마음에 불러 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다 소리/ 나의 피의 조류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한 푸른 해원—/ 마음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의 향기/ 코에 서리도다
오상순은 <방랑의 마음>을 쓸 무렵부터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그때의 심정을 담담하게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다. 바다와의 합일을 통해 자유와 생명을 갈구하는 젊은 날의 이상을 노래한 작품으로, 주관적인 내면세계에서 대자연과의 합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시에서 ‘방랑’은 ‘정착’의 반대 개념이지만, 정착에 대한 갈망을 안고 있다. 지금의 자리보다 더 높은 차원의 자리, 궁극적인 안식처를 찾고자 하는 바람이 방랑을 낳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방랑은 궁극적 안식처에 닿기 위한 고달픈 과정이다.
<방랑의 마음>에서 방랑을 나타내는 심상은 ‘흐름’이다. 시적 화자는 바로 그 ‘흐름’ 위에 ‘보금자리’를 치는데, 이는 곧 방랑 그 자체가 시적 화자에게 있어 궁극적인 안식처임을 뜻한다.
남궁벽
남궁벽의 생애
초몽(草夢) 남궁벽(南宮璧, 1894~1921)은 «황성신문»과 조선일보사의 사장을 역임한 남궁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열네 살 때 «대한자강회월보»에 <애국설>이라는 글을 낼 만큼 일찍부터 재능을 보였다.
도쿄 유학 시절에는 일본 ‘백화파’의 동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의 집에 머물면서 일본 문학을 접하기도 하는데, 이후 일본의 유명 잡지 «태양»에 조선의 예술과 3 · 1 운동에 관한 글을 싣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오산중학교에서 잠시 교사 생활을 하고, 1918년(25세) «청춘»에 일본어와 영어로 된 시들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1920년(27세) «폐허» 창간호에는 야나기 무네요시를 소개하기도 하고, 이어 본격적으로 <풀>, <별의 아픔>과 같은 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여 주변을 안타깝게 하였다.
남궁벽의 시
남궁벽은 요절하였기 때문에 작품수가 극히 한정되어 있으나 얼마 남기지 못한 유작들은 한국 근대 시사에서 특이한 시세계를 보여 준다.
일본 유학 시절 시에서는 민족적인 것에만 한정된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점차 우주적인 것으로 그 대상을 확대하고, 낭만적인 발상을 기조로 하여 자연 친화, 고독과 꿈, 참회와 미, 우주적 조화 등을 다양하게 전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문학은 «폐허» 및 당시 우리 문단에 만연하고 있었던 퇴폐성이나 감상에 물들지 않고 나름대로 자연의 순실미(純實美)와 ‘생명의 비의(秘義)’, 그리고 대지 사상(大地思想) 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색 있다.
<풀>
<풀>은 1921년(28세) 남궁벽 자신이 직접 편집한 «폐허» 2호에 발표한 작품으로, 공원의 풀을 밟고 서서 거기에서 피가 통하는 친화감을 느끼며, 그것을 자연과 인간은 같은 생명이라는 동양적 윤회 사상의 경지로 끌어 올린 시다.
“참으로 너는 땅의 입술이 아니냐!”라는 표현에서 감미롭고 신선한 풀의 생명감, 그리고 자연 친화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네(풀)’나 ‘내(인간)’나 모두 천지간에 윤회하는 중생이니 언젠가는 네가 내가 되고, 내가 풀인 네가 될 때에, 그때 너도 나를 지금과 같이 삽붓이 밟아 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풀>
풀, 여름 풀/ 요요끼(代代木)들의/ 이슬에 젖은 너를/ 지금 내가 맨발로 삽붓삽붓 밟는다./ 여인의 입술에 입맞추는 마음으로./ 참으로 너는 땅의 입술이 아니냐.//
그러나 네가 이것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가 죽으면 흙이 되마./ 그래서 네 뿌리 밑에 가서/ 너를 북돋아 주마꾸나.//
그래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네나 내나 우리는/ 불사(不死)의 둘레를 돌아 다니는 중생이다./ 그 영원의 역정(歷程)에서 닥드려 만날 때에/ 마치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될 때에/ 지금 내가 너를 삽붓 밟고 있는 것처럼/ 너도 나를 삽붓 밟아 주려무나.
<별의 아픔>
<별의 아픔>은 1922년(29세)에 발표한 작품으로 서정시의 깊이를 보여 준다. 이 작품은 <마(馬)> 등과 함께 «신생활»에 한꺼번에 실렸는데, 이들 작품은 남궁벽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별의 아픔>
임이시여,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어린 아이가 뒹굴을 때에/ 감응적으로 깜짝 놀라신 일이 없으십니까.//
임이시여,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지상의 꽃을 비틀어 꺾을 때에/ 천상의 별이 아파한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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