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생애
어린 시절과 유학 시절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은 평양의 양반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열세 살 때 같은 고장에 살던 주요한과 함께 기독교 계통의 숭실중학교에 입학하는데, 어느 날 시험 시간에 책을 읽다가 야단을 맞고는 그 길로 책보를 싸 집으로 와 버린다. 이렇듯 그는 내성적이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는 거침이 없고, 싫은 일은 절대고 하려 들지 않는 고집과 대담성을 가진 아이였다.
1914년(15세)에는 도쿄 유학길에 나서는데, 이미 메이지 학원에 재학 중이던 주요한에게 뒤지기 싫어서 수준이 더 높은 도쿄 학원에 입학한다. 원래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어 했던 김동인이 문학의 길을 걸은 것도 주요한에 대한 경쟁 심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런데 하필이면 도쿄 학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주요한이 다니던 메이지 학원에 들어간다. 그 때 주요한은 3학년, 김동인은 다시 입학하여 2학년이었다.
1917년(18세)에는 다시 가와바타 미술학교에 입학하는데, 이때 주요한은 조선 유학생 최초로 동경제일고등학교에 들어간 데다 일본 잡지에 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교지 편집도 맡아 보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김동인은 경쟁의식을 느끼면서도 주요한과 자주 만나 톨스토이의 문학을 논하는데, 그러던 중 주요한의 제의로 펴낸 동인지가 바로 «창조»이다.
작품 활동
«창조»를 창간하자 김동인은 창간호에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이어 <마음이 옅은 자여>, <목숨>, <배따라기> 등을 발표하며 작가적 기량을 발휘한다. 그런데 잡지 발행에 돈을 너무 많이 쓴 끝에 조금씩 파산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고, 이 무렵부터 결혼 생활에도 권태를 느끼고 짝사랑에 실패하여 술과 여자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곧 1923년(24세) <이 잔>과 <태형>을 발표하고 «창조»의 후신인 «영대(靈臺)»를 창간하여 <유서>(1924)를 발표한다. 또 1925년(26세)에 <감자>를 발표하는 등 다시 창작 활동을 왕성하게 벌였다.
그런데 «영대»가 종간한 후 1926년(27세)에는 사업에 실패하여 파산하고 견디다 못한 아내가 집을 나가 버린다. 1928년(29세) 다시 영화 사업에 손을 대지만 또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김동인은 다시 문학 창작으로 관심을 돌려 1929년(30세) <여인>과 <송동이>를 발표하고, «동아일보»에 최초의 장편 역사 소설로 꼽히는 <젊은 그들>을 연재한다. 또 소설론 <조선 근대 소설고>도 발표하였다. 이듬해인 1930년(31세)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광염 소나타>, <광화사>와 같은 명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때 김경애과 재혼하고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일하면서 다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 곧 <발가락이 닮았다>, <박 첨지의 죽음>, 장편 <대수양> 등 많은 작품을 써내려갔다.
1932년(33세)에는 <붉은 산> 등의 단편을 발표하고 <운현궁의 봄>과 같은 장편도 연재했으며, 1934년(35세)에는 이광수의 문학을 비판하는 평론 <춘원 연구>를 내놓기도 한다. 1936년(37세) 무렵 다시 불면증이 재발하여 마약에까지 손을 대지만, 그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말년
김동인은 한때 박영희 등과 함께 황군 위문 작가단에 파견되어 만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는 일제의 강요 때문이었고, 1942년에 임전 보국단을 비난하는 글을 써 ‘천황 불경죄’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해방 후인 1946년(47세)에는 장편 <을지문덕>을 연재하다가 병 때문에 중단하고, 다시 1948년(49세)에 몇 편의 단편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해 병석에 누워 반신불수가 되어, 6 · 25 때 피난도 떠나지 못했다. 결국 김동인은 1951년(52세) 서울 홍익동 집에서 숨을 거둔다.
김동인의 문학론
<조선 근대 소설고>, 리얼리즘의 시각
1919년(20세) «창조»를 창간하면서 김동인은 <조선 근대 소설고>라는 소설론을 싣는다. 여기서 김동인은 소설의 새로운 목표를 내건다. 이전의 이광수나 최남선 등이 “구구한 조선 사회 풍속 개량”을 목적으로 문학을 했다면, 자신은 “인생 문제 제시라는 소설의 본무대”에 올라가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 이광수의 문학은 사회적 효용론의 바탕 위에서 성립되어 있었다. 이것은 개화기 지식인이 당면한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이광수의 문학은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할 수 있었다. 김동인은 바로 이런 이광수의 종속적 문학관에 반기를 들고, 이어 «창조»에 일련의 작품들을 내놓으며 문학이 고유의 자율성을 지닌 예술임을 입증한다.
김동인은 소설에 탐미주의적 예술혼을 불어넣음으로써, 소설의 지위를 소아적 목적의식의 도구에서 하나의 예술로 끌어 올린다. 문학이 풍속 개량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넘어 인생의 문제를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김동인의 <조선 근대 소설고>는 이미 그의 문학관이 확고한 근대 리얼리즘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 준다.
<자기의 창조한 세계>, 인형 조종술과 예술 지상주의
인형 조종술
김동인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를 경외했다. 1920년(21세) «창조»에 발표한 <자기의 창조한 세계>에서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 창조 기량을 비교하면서 그 입장을 확고하게 내건다. 무엇보다 이 글에서 주목되는 것은 ‘인형 조종술’이라 불리는 창작 방법론이다.
인형 조종술이란, 위대한 예술가는 마치 인형을 놀리듯이 자신이 창조한 작품 속 세계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창작 이론이다. 김동인에 의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휘말려 오히려 지배를 받는 양상에 처했으며, 이와 반대로 톨스토이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능수능란하게 조종하였다면서 높이 평가한다.
사실 인형 조종술의 적용 문제는 소설의 길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편 소설은 분량이 짧으니 대체로 단일한 사건이 작가의 치밀한 계획 하에 구성된다. 이 경우에는 인형 조종술이라는 창작 방법이 긴요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장편 소설의 작가는 그 방대한 분량을 감당할 만한 단아한 형식미를 갖추기가 어려우며, 장편 속의 인물들은 긴긴 내용이 전개되는 동안 저마다 생동감 있게 움직이기 때문에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기 마련이다.
결국 김동인의 인형 조종술은 현실적으로 단편 소설의 세계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이는 단편 소설의 집필에 주력한 김동인의 작품 창작 성향과도 상통한다.
예술 지상주의
인형 조종술은 “예술은 개인 전체”라는 식의 예술 지상주의에 젖어 예술가를 우월한 존재로 인식하던 김동인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은 특히 <광염 소나타>에서 ‘K씨’의 입을 통해, 진정한 예술을 위한 것이라면 광적인 범죄 행위도 용인될 수 있다는 말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김동인의 예술관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꼭대기에는 이광수가 자리 잡고 있다. 실상 김동인의 모든 문학적 지표는 이광수의 교화주의에 대한 반발로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약한 자의 슬픔>, <마음이 옅은 자여>, <배따라기> 등에서는 낭만적 예술 지향성으로 나타나고, <감자>에서는 비윤리성으로 나타났으며, <광염 소나타>와 <광화사>에서는 탐미주의 경향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김동인은 자신의 예술관의 개념을 파악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예술의 본질 그 자체를 파헤치기보다는 이광수 문학과의 대립 관계를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그 결과 김동인 또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독자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고, 이광수가 역사 소설을 쓴다고 비난했으면서도 생활고 때문에 <젊은 그들>과 같은 흥미 위주의 역사물을 써 내는 모순에까지 이른다.
예술 지상주의의 문제점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미(美), 그것도 범상함을 뛰어넘는 특별한 미의 실현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독창성과 강한 예술적 정열을 필요로 하며, 그러한 정열은 때로는 사회적 도덕에 배치되는 기행(奇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술 지상주의란 인간의 삶에 있어 미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보고 모든 것을 미적 견지에서 판단하며 평가하는 사조를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미적 판단이 사회적 도덕이나 윤리보다 앞선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에는 아름다움 외에도 진(眞)이나 선(善)과 같은 영역도 있다. 따라서 그 중 하나인 미만을 지나치게 중시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다른 가치들이 소홀히 되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게 된다는 문제를 내포한다.
<소설 작법>, 시점 이론
김동인은 전대의 고전 소설과 뚜렷하게 구분되면서 동시대의 서양, 일본의 소설과 나란히 견줄 수 있는 근대 소설(novel)을 쓰는 데 목적을 두었다. 때문에 다른 소설가들에 비해 근대 소설의 미학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던 중 1925년(26세) 발표한 <소설 작법>은 본격적인 시점 이론이 도입되기도 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점 논의를 시작한 글로 꼽힌다.
김동인은 이 글에서 시점의 유형을 일원 묘사, 다원 묘사, 순객관적 묘사의 세 가지로 분류하여 제시한다.
시점의 세 가지 유형
일원 묘사 : 일원 묘사는 A 형식과 B 형식으로 나뉜다. 덧붙여 <소설 작법>에서는 1인칭 시점 서술은 중요한 항목으로 거론하고 있지 않는데, 일원 묘사 형식에서 화자를 일인칭 ‘나’로 할 경우는 그것이 곧 1인칭 서술과 동일한 것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 일원 묘사 A 형식은 인물의 눈에 비친 대상만을 서술하는 묘사 방법이다. 이 방법에서 작자는 그 인물의 시각을 통해서만 사물에 접근할 수 있고, 다른 인물의 심리나 인물이 관여하지 않은 사물에 대해서는 서술할 수 없다.
- 일원 묘사 B 형식은 작품 전체를 절(節) 혹은 장(章)과 같은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에서 주요 인물을 선택하는 묘사 방법이다. 김동인은 동시대의 서양 장편 소설들이 대개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와 같은 일원 방법은 오늘날의 시점 이론에서 보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의 인물 시각적 서술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서술 방법의 미묘한 차이에까지 관심을 기울인 것을 보면 김동인이 시점의 이해에 있어 이론적으로 다른 작가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원 묘사 : 다원 묘사란 작가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작품 속 어느 인물에 대해서나 다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때 작가는 작중 모든 인물의 심리를 통찰하고 사건의 모든 동정을 다 묘사할 수 있다.
순객관적 묘사 : 순객관적 묘사란 작가가 중립의 위치에 서서 작중 인물의 행동만을 묘사하는 방법이다. 이때 작가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심리는 직접 묘사할 수 없으며, 다만 독자로 하여금 인물의 행동을 통하여 심리를 추론하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은 근대 단편 소설에 순객관적 묘사를 사용하는 예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김동인 시점 이론의 의의
김동인은 여러 가지 묘사의 방식들은 각각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이를 미리 잘 연구하고 자기의 필법과 소설의 플롯에 따라 적합한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김동인의 시점 이론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서구의 시점 이론과 합치되는 점이 많다. 가령 김동인의 일원 묘사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가운데 인물 시각적 서술에 해당하고, 다원 묘사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 해당하며, 순객관적 묘사는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에 해당한다.
물론 김동인의 시점 이론은 작가와 화자의 성격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고 그대로 동일시하는 등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소박한 분류 방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문적인 문학 이론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에, 한 사람의 소설가가 당시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소설 미학에 관심을 갖고 구체적인 창작 방법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는 점, 또 당시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소설 이론의 기초적인 이해를 제공하려고 노력한 점은 분명 높이 평가할 만하다.
김동인의 소설
김동인은 다작과 속작(速作)에 능했다. 하룻밤이면 단편 한 편을 완성하곤 했고, 장편 15편 이상과 단편 75편 이상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소설을 쓰면서도 작품마다 다른 소재를 취해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 작가적 재능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또 김동인은 작품의 형식면에서도 이광수가 선보인 ‘-이다’체의 초기 시제에서 벗어나 과거 시제인 ‘-였다’체의 도입으로 혁신을 꾀한 작가이다. 이 밖에 3인칭 서술자의 시점을 사용하여 객관성을 확립했다는 점,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 과감한 생략을 통한 박진감 있는 사건 전개,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 창조, 구성의 치밀함 등 한 차원 높은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약한 자의 슬픔>
<약한 자의 슬픔>은 김동인의 데뷔작으로, 1919년(20세) «창조» 창간호에 발표된 중단편이다.
이 작품은 현실의 삶은 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며 일반적인 인간은 굴복하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마음속의 ‘약함’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사랑이라는 ‘강함을 통해 아름답게 꾸미면 그 어떤 자의 삶이라도 가치 있다는 주제를 던진다. 약함으로 인해 생기는 설움, 즉 비극미를 통해 완결된 이상을 추구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리얼리즘 수법을 쓴 최초의 단편이자 이광수의 설교조 계몽주의 작품 경향에서 벗어난, 소설 자체의 완결된 미학성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다시 말해 <약한 자의 슬픔>은 근대적인 소설의 형식과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문학 자체의 존재 영역을 확보한 작품이다. 이전의 소설들은 특정의 심리 묘사나 성격 창조가 미약하고 객관적 서술 시점이 확보되지 않아 작품 전개에 작가가 끼어드는 바람에 작품의 미학을 해쳤으나, <약한 자의 슬픔>은 소설의 구조적 시점 확보를 통한 새로운 문학 양식을 창출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약한 자의 슬픔>
강엘리자베트는 가난한 고아로 자라 K 남작의 집에 가정교사로 입주하여 지낸다. 엘리자베트는 친구 외사촌 오빠이자 H 의숙에 다니는 이환을 짝사랑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던 중, K 남작에게 정조를 잃고 임신을 한다. 그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K 남작에게 임신한 사실을 알리지만, 권세와 재력을 가진 남작은 이 사실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이고, 결국 엘리자베트는 그 집에서 쫓겨난다. 이후 K 남작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패소하고, 그 충격으로 아이마저 유산한다.
낙태된 아이를 쥔 채 그 아이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던 엘리자베트는 약한 자로서의 “표본 생활 20년”을 돌이켜 보며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차디찬 핏덩이에게서 따스한 맛이 느껴지자 엘리자베트는 “사람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은 ‘약함’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강함’을 가진 자로 살 것을 결심하고, 그 ‘강함’은 참사랑에게서 나온 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엘리자베트는 “그렇다! 내 앞길의 기초는 이 사랑!”이라고 외치며 벌떡 일어나 앉는다. 세상에 눌려 살던 그녀는 그 위에 눌리어 살던 온 우주 위에 올라선 기쁨의 웃음을 짓는다.
<배따라기>
1921년(22세) 발표한 <배따라기>는 김동인이 ‘본격 단편 소설’이라고 자신 있게 내놓은 작품이다.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무기력과 회한,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서정적 비애감이 담겨져 있어 낭만적이고 유미주의적 경향이 엿보인다. 이렇듯 운명적인 삶을 낭만주의 수법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초기 <약한 자의 슬픔>이나 <마음이 옅은 자여>와 비슷하지만, <배따라기>는 더 구성이 치밀하고 줄거리가 복합 구조 속에 녹아들어 있다. 단편 소설로서의 완결성이 한결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배따라기>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대동강으로 봄 경치를 구경 갔다가 <영유 배따라기>를 부르는 ‘그’를 만나 사연을 듣는다.
조그만 어촌에 부자이며 <배따라기> 노래를 잘 부르는 두 형제가 살았다. 형제는 모두 장가를 들었고 부부사이 못지않게 의가 좋았다. ‘그’는 그 중 형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품이 쾌활하고 친절한 젊은 아내가 미남인 동생에게 특히 친절한 것을 못마땅해 하고, 질투심 때문에 아내를 자주 괴롭힌다. 곧 ‘그’는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게 되고 기회만 있으면 꼬투리를 잡아 혼내 주려고 벼른다. 그런 참에 아우가 영유에 자주 출입하면서 첩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가 형에게 동생을 단속하라고 보채자 의심은 더욱 깊어진다.
어느 날 ‘그’는 아내에게 줄 거울을 사 들고 집에 들어오다가 아내와 동생이 방에서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로 씩씩대는 것을 보고 오해한 나머지 둘을 등을 밀어 내쫓았다. 저녁 때 방에 들어와 성냥을 찾던 중 낡은 옷 뭉치에서 쥐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했지만, 다음 날 낮쯤 아내는 시체가 되어 바다 위에 떠오른다. 이 일로 아우는 집을 나가 행방이 묘연하게 된다. 결국 ‘그’는 20년 동안 <배따라기> 노래를 부르며 뱃사람이 되어 떠돌아다닌다는 동생을 찾아 뱃사람으로서 방랑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바닷가에서 동생을 만난다. 그러나 동생은 “형님, 그저 다 운명이웨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떠나 버린다. 그리고 다시 10년 세월을 유랑하지만 동생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 날 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대동강에 나갔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액자 소설의 구성 방식
<배따라기>는 서술자 ‘나’가 <영유 배따라기>를 부르는 ‘그’의 기구한 인생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나’와 ‘그’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그’와 아우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진 액자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 구성의 종류
중심 사건의
가짓수에
따라단일 구성 중심 사건이 하나인 구성 방식. 복합 구성 중심 사건이 둘 이상인 구성 방식. 피카레스크식 구성 독립된 각각의 이야기가 같은 흐름과 주제로 엮어지거나, 각각 다른 이야기에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구성 방식. 옴니버스식 구성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완전히 독립된 이야기를 늘어놓아 한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구성 방식. 액자 구성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포함하는 구성 방식. 사건의
진행방식에
따라평면적 구성 사건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서술하는 구성 방식. 입체적 구성 시간적 순서를 따르지 않고 사건의 분석 등으로 시간적 역전이 일어나는 구성 방식.
민요 <배따라기>의 매개적 기능
외부 이야기(=외화)에서는 미의식을 추구하고 있던 ‘나’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헤어져, 다음날 다시 ‘그’를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담는다. 또 내부 이야기(=내화)에서는 오해와 질투 때문에 아내를 잃고 아우와 헤어지고 유랑하는 ‘그’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다. 여기서 <배따라기>는 외화와 내화를 연결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외화의 서술자인 ‘나’는 봄의 정취를 감상하다가 <배따라기> 부르는 소리를 듣고 부르는 이를 찾다가 ‘그’와 만나기 때문이다.
한편 <배따라기>의 애절한 가락과 내용은 내화의 비극성과 어우러져 한과 슬픔이 서린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는데, 이는 김동인의 유미적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액자 구성의 효과
액자 구성은 내부 이야기의 개연성을 획득하고, 또 독자로 하여금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 또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확보하는 효과도 갖는다.
민요 <배따라기>
<배따라기>는 잡가에 속하는 평안도 민요로, 그 명칭은 ‘배 떠나기’의 방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해안 지방마다 있었던 듯한데, 지금은 평안도의 것만 널리 퍼져 있다.
평안도 <배따라기>는 뱃사람들의 고달픈 생활을 서사체로 엮은 노랫말을 가진다. 소설 <배따라기>에서는 그 가사의 일부를 인용하여 뱃사람들의 고달프고 덧없는 생활을 애처로운 곡조로 담아낸다.
운명론적 방랑
<배따라기>는 민요의 애절한 노래와 어울려 두 형제가 운명의 힘을 거역하지 못하고 바다 위를 방랑하는 존재인 것으로 묘사한다. <역마>에서도 ‘계연’과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은 ‘성기’가 숙명적으로 짐 지워진 역마살의 운명에 굴복하고 유랑의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김동인의 <배따라기>와 김동리의 <역마>는 운명론적 방랑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감자>
1925년(26세) «조선문단»에 발표한 <감자>는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적 성과로 꼽히는 단편 소설이다. 이광수 소설류의 지식인 주인공과 평이한 결말에 익숙해지던 차에 ‘복녀’라는 파격적인 인물 설정, 대담하고 직설적인 속어와 방언의 활용, 예기치 못한 사건과 결말은 당대 문단과 독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가난을 소재로 삼고 있는 점은 당시 조짐이 보이던 신경향 소설의 영향을 받은 듯 보이지만, 같은 소재를 갖고서도 신경향 소설류와 달리 변화와 재미를 연출한 작품이다.
<감자>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가에서 자란 복녀는 15세에 20세 연상인 동네 홀아비에서 80원에 팔려 시집을 간다. 그러나 남편이 무능하고 게으른 탓에 곧 떠도는 신세가 되고, 결국 악의 소굴인 평양 칠성문 밖 빈민굴로 가게 된다.
당국에서는 빈민 구제를 겸해 솔밭 송충이 잡이를 벌이는데, 복녀는 그곳에 인부로 나갔다가 감독에게 몸을 판다. 이후 세상을 쉽게 사는 방법을 알게 된 그녀는 거지들에게까지 몸을 팔고, 중국인 왕 서방의 감자밭에서 감자를 훔치다가 들켰다가 왕 서방에게 몸을 주고 돈도 받는다. 그리고는 이내 왕 서방의 정부로까지 전락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마누라로 사 온다. 이에 질투를 느낀 복녀는 결혼식 날 신혼부부에게 덤벼들었다가 왕 서방의 낫에 찔려 죽는다. 사흘 후 복녀의 시신은 돈 몇 푼에 매수된 남편에 의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실려 나간다.
자연주의 소설의 면모
자연주의 소설이란 과학적 태도로 인생에 접근하여 인생을 분석적, 실험적으로 분석하고 표현하는 소설을 말한다. 때문에 자연주의 소설은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인간의 추악한 면까지도 그대로 묘사하고 폭로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자연주의 소설의 특징은 환경 결정론으로 나타난다. 환경 결정론이란 인물이 처한 환경이 그 인물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감자>에서 복녀는 본래 착하고 정직하며 도덕이라는 것에 두려움까지 가진 처녀였다. 그러나 가난과 물질주의라는 환경에 놓임으로써 결국 비도덕적인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도덕과 윤리보다도 돈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감자>는 환경 결정론에 입각하여 있으며,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로 알려진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의 뒤를 이은 자연주의 성향의 소설로 볼 수 있다.
리얼리즘의 가능성
‘복녀’는 당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도덕적인 방식을 택하고 그러한 삶에 무감각해져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감자>는 이렇듯 인물의 전형성에 기초하여, 일제 강점기인 식민지 사회에서 한 인간의 삶과 도덕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치밀한 구성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리얼리즘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복녀’의 이름
‘복녀(福女)’라는 이름은 ‘복된 여자’, ‘복이 있는 여자’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감자>에서 ‘복녀’의 삶은 이름과 정 반대로 박복하게 전개된다. 이런 삶에 반어적인 이름을 부여한 것은 비극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를 노린 장치로 볼 수 있다.
한편 ‘복녀’는 매우 흔하고 서민적인 이름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그녀의 운명은 1920년대 하층민 여성의 비참한 삶의 모습과 운명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다.
결말부의 해석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데서 오는 효과 : <감자>의 결말 부분에서는 왕 서방과 의사, 그리고 ‘복녀’의 남편이 돈을 주고받는 모습만 간결하게 나타나 있다. 이 부분에서 서술자는 ‘복녀’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동정적인 진술도 없이,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이용하여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태도는 ‘복녀’의 비극적 죽음을 강조하는 한편 현실의 비참하고 추악한 단면을 냉정하게 제시하는 효과를 얻는다.
결말부에 내재된 작가 의식 : ‘복녀’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이를 비정하게 처리하는 마지막 장면은, ‘복녀’가 그녀에게 남아 있는 일말의 정상적인 도덕의식 때문에 죽음을 초래하였음을 나타낸다. ‘복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왕 서방의 새색시에 대한 질투였다. 이 질투는 물론 돈줄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식에서 온 것이기도 하지만, 왕 서방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복녀’는 도덕의식에 속하는 인간적 애정 때문에 죽음에 이른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게으른 남편, 비정한 왕 서방, 비도덕적인 한의사가 ‘복녀’의 죽음을 비정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도덕관의 결정적 패배를 제시하고자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칠성문 밖’의 암시 기능 : 1920년대 평양 칠성문 밖 빈민굴이라는 공간은, 통제 구역 밖의 소외된 공간을 상징한다. 이곳은 싸움, 간통, 살인, 도둑으로 가득 찬 부도덕한 공간이다. 이러한 배경 설정은 앞으로 복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과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 복선 :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 장차 발생할 사건에 대한 준비로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위한 단서를 숨겨 둠으로써 예민한 독자들로 하여금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을 미리 추측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법을 말한다. 복선은 사건의 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 암시 : 암시는 복선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단서와 미래의 사건 간에 인과 관계가 분명할 경우에는 복선이지만, 인과 관계가 뚜렷하지 않고 단서로 보아 어쩐지 미래의 일이 발생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는 암시에 해당된다.
ex)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서두에서 “눈이 올 것 같은데 비가 내렸다.”라는 부분은 암시이다.
<광염 소나타> · <광화사>
<광염 소나타>와 <광화사>는 모두 1930년(31세)의 작품이다. 이 해에 김동인은 두 작품 외에도 일곱 편의 소설을 썼는데, 그만큼 다작하며 단편에 열을 올리던 시기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작품은 예술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옹호하고 미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김동인의 예술 지상주의적 예술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
<광염 소나타>
<광염 소나타>
음악 비평가 K씨는 사회 교화자인 모씨에게, 기회라는 것이 천재성과 범죄성을 동시에 이끌어 낸다면 그 기회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광염 소나타>를 작곡한 음악가 백성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K씨는 예배당에서 명상을 하다가 창밖의 화재 광경을 바라본다. 그런데 웬 남자가 들어와 야성적 힘이 담긴 피아노 연주를 한다. K씨는 그가 동창의 아들이 백성수임을 알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음악 활동에 전념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백성수는 예배당에서와 같이 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초조해한다.
K씨는 이야기 도중, 과거에 백성수가 직접 쓴 편지를 모씨에게 보여 준다. 거기에는 백성수가 작곡의 동기를 만들기 위해 방화, 시체 훼손, 살인 등의 범죄 행위를 하고 다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K씨는 백성수의 예를 통해, 훌륭한 작품을 산출하기 위해서라면 범죄 행위도 허용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리고 예술 차원에서 범죄를 저지른 위대한 천재 예술가를 처벌하여 매장시키는 것은 더 큰 죄악을 범하는 것이라며 말을 마친다.
‘기회’의 중요성 : <광염 소나타>에서 ‘K씨’는 사람의 천재성이라는 것이 기회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고 말한다. 즉 천재성의 발현에 있어 중요한 것은 기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기회가 인간의 ‘범죄 본능’과 함께 나타난다면 그 기회를 잡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질문한다. 이러한 ‘K씨’의 물음은 ‘예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적 창조가 그 자체로만 인정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 과정이 사회적 도덕률에 위배된다면 규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와 같은 질문은 <광염 소나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 제기이자, 작자 김동인의 예술관에 그 해답을 두고 있는 기정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불’이 지니는 상징성 : 표제의 ‘광염(狂焰)’은 ‘미친 불꽃’이라는 뜻이다. ‘백성수’의 광기와 분노로 점철된 천재성을 ‘불’의 이미지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이 지니는 빨간색은 정열과 사랑, 증오, 분노, 광기 등의 원형적 심상을 가진다. <광염 소나타>에서도 ‘불’은 ‘백성수’의 내면적 분노를 넘어선 광기 그 자체를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창작의 동인(動因)을 ‘불’과 연결시킴으로써, 마치 불꽃 같이 타올랐다가 다시 사그라지는 백성수의 예술적 창작력을 잘 비유하고 있다.
액자식 구성 : <광염 소나타>는 <배따라기>와 마찬가지로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데, 삼중의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가장 바깥 이야기에는 작가가 노출되고, 안쪽의 이야기에는 ‘K씨’와 ‘모씨’의 대화를 통한 문제 제기가 드러나며, 가장 안쪽에는 광기 어린 천재의 이야기를 삽입한 것이다.
이를 통해 <광염 소나타>는 구조적 안정감과 함께 이야기 사이의 유기성을 확보하는 효과를 획득하고 있다. 또한 이런 형식적 실험은 김동인이 표방하는 유미주의의 한 실천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광화사>
<광염 소나타>와 함께 김동인의 유미주의적 경향이 짙게 나타난 작품이다. ‘솔거’라는 인물의 격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과 비정상적 치우침, 벼루에서 튄 먹물이 그림을 완성한다는 작위적인 결말 등은 김동인 특유의 극단적 예술주의를 보여 준다.
<광화사>
아름다움을 광적으로 추구하는 화가 ‘솔거’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그리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한 소경 처녀에게서 자신이 추구하는 얼굴을 발견하고 그녀의 표정을 그린다. 하지만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보낸 후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표정이 나오지 않는다. 이에 ‘솔거’는 분노하여 소녀를 목 졸라 죽인다. 그리고 처녀의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그림에 튄 먹물로 그림이 완성된다. ‘솔거’는 그 그림을 가지고 미친 사람이 되어 떠돌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솔거’의 예술에 대한 열정 대상의 아름다움을 가리는 안목, 밤을 지내고 난 소경 처녀의 눈빛에 일어난 변화, 그에 대한 안타깝고 절망적인 분노 등은 모두 예술 지상주의적, 유미주의적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특히 소경 처녀가 죽으면서 엎은 벼루의 먹 방울이 튀어 그림의 눈동자를 이루고, 그 눈동자가 죽은 처녀의 원망의 눈으로 나타나며, 이에 결국 화공이 미치게 되는 마지막 부분은 거의 악마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결말 처리는 모든 것의 희생 위에서 예술 작품이 완성되며 그러한 예술적 완성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김동인의 성향을 반영한다. 또한 강렬한 예술혼의 결과가 ‘원망의 빛이 서린 미인도’라는 설정은, 절대미(絶對美)의 추구가 그토록 어렵고 험난한 것임도 암시한다.
<발가락이 닮았다>
<발가락이 닮았다>는 1931년(32세)의 작품으로, 염상섭을 모델로 한 작품이라는 김억의 실언으로 한때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던 단편이다.
<발가락이 닮았다>
서른 두 살의 노총각 ‘M’ 은 젊은 시절의 방탕한 생활 때문에 생식 기능에 이상이 있는 남자이다. 친구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한 뒤 소식이 없던 그가, 2년이 지난 어느 날 의사인 작중 화자를 찾아온다. 기관지를 앓는 갓난쟁이를 안고 온 ‘M’은 아기가 자기 증조부와 자기를 닮았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가운데 발가락이 유난히 긴 것이 닮았다면서 동의를 구한다. 아내를 의심하면서도 그것을 덮어 버리고 자신의 아이로 인정받아 보려는 처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에 작중 화자는 ‘M’에게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네.” 하면서 돌아앉는다.
<붉은 산>
<붉은 산>은 1932년(33세) 발표한 단편으로, ‘어떤 의사의 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1인칭 관찰자인 ‘나’의 눈을 통해 주인공 ‘삵’을 묘사함으로써 사실성을 강조한다. 제목 ‘붉은 산’은 ‘흰 옷’과 함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과 향수를 상징하는 제재라 할 수 있다.
<붉은 산>
‘나’는 의학을 연구하기 위해 만주로 들어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한 조선인 마을에 이른다. 이 마을에는 ‘삵’으로 불리는 동포 청년이 있었는데, 생김새나 행동거지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을 주민인 ‘송 첨지’가 소작료를 내러 만주인 지주에게 갔다가 부당하게 맞아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주민들은 원수를 갚자며 흥분했지만, 막상 지주와 맞서 싸우려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삵’은 동구 밖 밭고랑에서 피투성이로 발견된다. 그는 단신으로 만주인 지주의 집에 가서 ‘송 첨지’를 죽인 분풀이를 하다가 당한 것이다. 붉은 산과 흰 옷이 보고 싶다며 경련하던 ‘삵’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불러 주는 애국가를 들으며 죽어 간다.
<운현궁의 봄>
<운현궁의 봄>은 1933년(34세)부터 이듬해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 소설로, 총 25장으로 되어 있다. 왕권이 실추되고 소수 양반 일문의 기형적인 세도 정치의 폐해가 극심했던 조선말 철종 시기를 배경으로 삼아, 이하응의 영웅성과 파란만장한 집권 과정을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운현궁의 봄>
1장에서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집권하기 전으로 이하응의 권력 지향과 영웅성이 긍정적으로 나타나며, 2장에서는 명종 때부터 철종에 이르는 300년간의 조선조 정치사가 요약되었고, 3장에서는 해가 바뀐 신유년의 사건으로 전개된다.
4장에서는 흥선이 조 대비와의 만남으로 인해 장래의 발판을 마련하고, 5장은 김병기로부터의 수모, 6장은 민숭호와의 인연 구축, 7장은 영의정 김좌근의 애첩 양씨의 권력 행패, 8장은 동궁 책립에 대한 조 대비의 의향 타진, 9장은 김병국 일파로부터의 망신과 조롱, 10장은 양씨로 인한 백성들의 원성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12장은 김문 일파의 음모로 터진 이하전 역모 사건, 13장은 흥선과 심복들이 투전에서 포교와의 금전 거래, 14장에서 20장까지는 현 제도의 모순과 위정자들의 타락상이 표출되며, 25장에서는 계해년이 지나 갑자년 정월에 26대 왕 고종이 즉위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운현궁의 봄>을 통해 김동인은 일제 치하의 상황을 민족의 역사의식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민족적 울분을 부추기고 공동화하고자 하였다. 역사 소설을 택한 것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붉은 산>, <태형> 등과 함께 김동인의 민족주의적 의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하응의 영웅성을 부각하는 데는 주로 대조의 방식을 사용하고, 역사적 상황을 제시하는 데는 주로 병치의 방식을 사용하여 ‘독립자존’의 영웅주의를 효과적으로 실현하였다. 이런 성과를 통해 김동인은 역사 소설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였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역사적 상황의 비중을 약화시키고 특정 인물만을 최상의 영웅으로 부각시킨 것은 지나치게 강자의 논리에 빠져들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러한 김동인의 시각은 제국주의의 침략이란 부당한 힘의 행사도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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