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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95. 조세희, 윤흥길

2022. 1. 17. by 솜글

산업화 시대의 계층 갈등과 소설

1970년대에는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고, 경제력에 따라 사회 계층의 분화와 갈등이 극명하게 일어난다. 그러자 곧 이들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이나 농촌 및 도시 빈민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중에는 특히 연작 소설 형식을 취한 것들이 많다. 연작 소설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뚜렷하게 변화한 소설의 양식상의 특징으로, 문자 그대로 여러 편의 독립된 삽화들을 모아 더 큰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고안해 낸 소설의 형태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연작에 속한 각각의 단편 소설들이 갖는 독자적인 분절성의 의미와 전체적인 큰 이야기가 되도록 고안하여 소설의 독특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1970년대 이후 연작 소설들은 연작의 방법을 통해 발표 지면의 자유로운 이동을 꾀함과 동시에 전체적인 이야기 틀을 개방적으로 운용하는 효과를 누린다.

1970년대 대표적인 연작 소설로는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이 있다.

조세희의 소설

조세희(趙世熙, 1942~)는 경기도 가평 출신으로, 서라벌예술대학 문학창작과를 졸업한 후 1965(24) 단편 <돛대 없는 장선><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다. 이후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0년에 가까운 공백기를 가지다가. 1975(34)부터 <칼날> 등을 발표하며 다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발표한 12편의 소설을 묶어 1978(37) 창작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펴내는데, 이 단 한 권의 소설집으로 조세희는 1970년대를 자신의 연대로 평정해 버렸다.

사진 출처 : 문학뉴스(http://munhaknews.com/?p=13439)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날품팔이 노동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난쟁이 아버지를 비롯해 어머니, 두 아들 영수와 영호, 딸이자 막내인 영희 등 다섯 식구로 이루어진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연작 소설이다. 1979(38)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난장이’ 연작 열두 편
<칼날>, <뫼비우스의 띠>, <우주 여행>, <난장이아 쏘아올린 작은 공>, <육교 위에서>, <궤도 회전>, <기계 도시>,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 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

시대적 배경

1970년대에 한국 사회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의한 고도성장에 목을 맨다. 그러나 그 성장의 그늘에는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과 근로 조건, 노동 운동 탄압 등 병리적 징후들이 돋아났다.

1971년 발표된 황석영의 <객지>에 나오는 노동자들은 가족과 고향을 떠나 간척 사업 같은 막노동을 찾아 떠도는 부란 노동자 유형에 속한다. ‘난장이연작에서 난쟁이아버지는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 수도 고치기 같은 일을 하는 도시 일용 근로자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가는 유형이다. 황석영의 주인공들이나 난장이연작의 아버지는 모두 산업 시대로 진입하기 이전의 전근대적 생산 도구에 의지하는 노동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난쟁이 아버지의 자식 세대인 영수’, ‘영호’, ‘영희는 인쇄 공장, 방직 공장, 자동차 공장 등 도시의 거대 산업체 조직 속에 흡수된 집단 노동자들로 바뀐다. 이는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옮아가는 이행기 세대의 작업 변이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 현실 비판

조세희는 작품에서 세계 여러 나라 노동자들의 단위 시간당 임금을 비교한다. 그럼으로써 1970년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저임금 실상을 임상 보고서처럼 전하여, 그들의 삶이 왜 개선되지 않는지를 객관화하고 있다.

난장이의 아들딸이 한 시간에 1백원을 벌 때 일본의 근로자는 698, 서독의 근로자는 856, 미국의 근로자는 143, 노르웨이의 근로자는 187원을 번다.

이런 객관화의 이면에는 근로 직종과 형태만 다를 뿐, 예나 이제나 근로자가 누리는 삶의 수준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절망이 숨어 있다. 이렇게 난장이연작은 사회 성장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근로 환경이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초판본 / 사진 출처 : 크리스천라이프&에듀라이프(http://chedulife.com.au/%EC%97%AD%EC%82%AC%EC%9D%98-%EC%98%A4%EB%8A%98-1978%EB%85%84-6%EC%9B%94-5%EC%9D%BC-%EC%A1%B0%EC%84%B8%ED%9D%AC%EC%9D%98-%EC%86%8C%EC%84%A4-%EB%82%9C%EC%9E%A5%EC%9D%B4%EA%B0%80-%EC%8F%98/)

난장이의 의미와 결말의 의미

난장이연작에서 난장이19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생산, 소비 및 분배 구조 속에서 억압, 소외받는 계층의 작아진 삶을 신체적 불구성으로 보여 주는 상징적 기호이다.

난쟁이는 산업 사회의 그늘에서 바동거리면서도 하늘로 희망이라는 이름의 작은 공을 쏘아 오린다. 그러나 꿈이 꺾이자 굴뚝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으로 삶을 마치고 만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폭압적 구조에 아무 저항 없이 순응하려고 애쓰는 아버지 세대와 달리, ‘영호영수같은 자식 세대는 노조에 가담하는 등 현실의 모순과 맞서 싸우려는 실천적 자세를 보인다. 그러나 이들 또한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쳐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이라는 극단적 방식에 의해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된다.

이렇게 난장이연작에는 민중이 강렬히 소망하는 평화로운 유토피아는 영영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작가의 절망적 비전이 예시되고 있다.

문체와 형식의 새로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거둔 여러 성과 중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은 그 문체와 형식에서 거둔 새로움의 미학이다. 서술자 시점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현재 상황과 과거의 기억이 겹치며, 환상()과 사실(현실)이 경계 없이 병치되고, 그 속에서 동화적인 환상의 세계가 현실의 시공간과 우주를 넘나드는 시적 환상을 보여 준다. 또 공문서 서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독창성도 돋보이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 접속어 없이 단문으로 이어져 시적 함축이 느껴지는 스타카토 문체등은 지극히 사실주의적인 소재를 환상의 미학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시간 여행>

조세희는 1970년대 후반 난장이연작이 받은 일부의 부정적 평가에 괴로움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쓴 작품들을 묶어 1983(42) <시간 여행>을 출간하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시간 여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서술 화자의 교체이다. 서술 화자가 난쟁이 일가에서 신애라는 중산층 여자에게로 옮겨진 것이다. ‘신애는 작가 조세희의 눈높이와 같이 반성하는 중간층에 속하는 여성으로, 한때 난쟁이 일가와 이웃이었지만 지금은 중산층 거주지의 상징인 아파트에 산다. 서민에서 중산층 집단으로 계급의 수직 상승을 한 인물인 것이다. 이는 조세희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쏟아진 비판이 작가 자신이 중산층에 가까우면서 도시 빈민의 삶을 그려낸 데서 온 한계 때문이라고 느끼고, 서술자의 시점을 중산층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작품 속 신애는 현재로부터 5 · 16 쿠데타, 4 · 19 혁명, 한국 전쟁,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를 되짚으며 우리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시간 여행을 한다. 그러면서 우리 역사와 현실의 고통스러운 억압을 눈물의 형이상학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환기시킨다.

<시간 여행> 역시 난장이연작에서 보여 준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다. 섬세한 문체, 시점의 혼재, 상징과 비약의 심화, 독백의 도입 같은 기법을 혼용하여 조세희는 다시금 실험성과 역량을 인정받는다.

윤흥길의 소설

윤흥길(尹興吉, 1942~)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자주 직장을 그만두는 바람에 어릴 때부터 극빈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한다. 휴전 후인 1953(12)에는 어렵게 마련한 집이 무허가라는 이유로 철거되어 창고에서 새우잠을 자는 수용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즈음부터 그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히고, 사범학교 시절에는 특수 폭행으로 체포되기도 하였다.

졸업 후에는 여전히 가난하게 지내며 교사 생활을 하다가, 좋아하는 동료 여선생의 소설 습작 권유를 받고 소설 작법을 공부하였다. 그러던 중 1968(27)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오고, 이후 교사직을 그만둔 후 원광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갔다.

1970년대 초반까지 <황혼의 집>(1970), <지친 날개로>(1971), <>(1972), <장마>(1973), <타임 레코더>(1974) 등을 발표했고, 1970년대 후반에는 첫 창작집 <황혼>(1976)을 내는 한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를 시작으로 연작 소설을 잇달아 냈다. 이후로도 많은 소설과 작품집을 국내외에서 출간하였으며, 1994(53)에는 한서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사진 출처 : 시사저널(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3368)

<장마>

1973(32) <문학과 지성>에 발표한 중편으로, 이데올로기 대립에 따른 우리 민족의 상처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어린아이의 시점이라는 장치와 함께 토속적 샤머니즘의 요소를 잘 살려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장마>
장마가 계속되고 있었다. 한국 전쟁 때문에 외할머니는 와 친할머니 등이 살고 있는 우리 집에 피난 와 있다. 그런 어느 날, 국군인 외삼촌이 전사했다는 통지가 오고, 외할머니는 빨치산을 저주한다. 삼촌이 빨치산이었기 때문에 친할머니는 노발대발하며 외할머니와 갈등을 겪는다.
어느 날, ‘는 맥고자의 사내가 주는 초콜릿의 유혹에 넘어가 삼촌이 집에 다녀갔던 사실을 발설한다. 이 일로 아버지가 큰 고초를 치르고, ‘는 친할머니의 분노를 사 큰방 출입이 금지된다.
친할머니는 점쟁이의 말에 따라 삼촌이 돌아올 날 잔치를 벌일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 날이 되어도 삼촌은 오지 않고, 난데없이 구렁이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구렁이를 삼촌의 현신으로 여긴 친할머니는 졸도를 한다. 이때 외할머니는 친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태워 구렁이를 달래 보내고, 깨어난 친할머니는 외할머니에게 감사해 한다.
이로써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화해하고, 친할머니는 편히 눈을 감는다. 지루한 장마도 끝이 난다.

외할머니친할머니의 갈등의 의미

<장마>6 · 25 전쟁이 한 가정에 준 상처를 소재로 한다. 삼촌은 빨치산, 외삼촌은 국군에 속해 있는 이 가정의 비극은 남북 분단과 전쟁으로 갈린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비극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남한과 북한이 각각 주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다.

그러나 외할머니친할머니는 자신의 아들들이 택한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두 인물이 반목하는 것은 서로 반대편에서 싸우고 있는 아들에 대한 혈육의 정 때문인 것이다.

거리의 설정 - 서술 시점과 문체적 효과

<장마>의 서술자는 이제 10살 난 국민학생 소년으로, 철모르고 순진한 어린 아이, 일면 신빙성 화자이다. 소년을 화자로 삼음으로써 이 작품은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인 이념의 대립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또 작중 현실 안에서 빚어지는 사건은 서술하고 있는 현재와 시간의 간격이 있다. , 서술자가 어른으로 성장한 후 자신이 10살 때 겪은 일을 회상하며 쓰기 때문에 술회적인 어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중 모든 행위가 철없는 어린이의 시점에 국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시간적 거리를 두고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작품 내에는 작중 행위와 서술 사이에 이중적 간격이 생긴다. 이는 브룩스와 워렌이 <소설의 이해>에서 말한 이른 바 거리이다.

구렁이의 상징적 의미와 결말

친할머니외할머니는 점쟁이가 예언한 날에 나타난 구렁이를 삼촌의 현신으로 믿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토속적 · 우주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작품의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본다면 이 상처 받은 구렁이는 이념 대립으로 인한 민족의 비극을 상징하고, 결말과 관련한다면 민족 화해의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장마>는 화해적 결말을 통해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비극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관용과 포용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1977(36)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중편으로, 뒤이은 <직선과 곡선>, <날개 또는 수갑>, <창백한 중년> 등과 연작을 이루는 작품이다. 1970년대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과 현실의 부조리를 형상화함으로써 근대화 ·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의 집에 노동자 권씨 가족이 세를 든다. 권씨 가족은 전세금도 다 못 낼 만큼 가난하다. 권씨는 집을 장만해 볼 요량으로 광주 대단지에 20평을 분양 받았는데, 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정부 정책에 항의하다가 소요 주동자로 몰려 징역을 산 인물이다. 권씨는 지금도 정부의 사찰 대상자인데, 가난한 살림에도 구두만은 늘 깨끗하게 닦아 놓았다.
얼마 후 권씨의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수술을 하게 되었다. 권씨는 에게 아내의 수술비용을 빌려 달라고 하지만 는 거절하고,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는 권씨의 아내에게 돈을 빌려 준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권씨가 그날 밤 의 집에 강도로 위장하여 침입한다. 그러나 곧 에게 정체가 탄로났음을 짐작하고, 아홉 켤레의 구두만을 남겨 놓은 채 사라져 버린다.

구두의 상징적 의미

작품 속 권씨안동 권씨, ‘대학 나온 사람임을 항상 강조한다. 하지만 실상 그는 전과자에 도시 빈민층이다. 그러한 권씨는 자신의 자존심에 대한 집착을 구두닦는 행위로 보여 준다. 가난한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비싼 구두를 반짝이도록 닦아 신고 타니는 태도는, 결코 빈민이 아니고자 하는 권씨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말에서 권씨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행방불명이 된 상황에서 구두들만 남은 것은 권씨의 마지막 자존심이 그와 결별된 상황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시대적 배경 - 광주 대단지 사건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는 원래 광주군 중부면이었다. 그러던 중 1968년 서울시가 주택 문제와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강변과 청계천변을 개발하면서, 그곳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던 도시 빈민들은 농촌 지역이던 중부면에 집단 이주시킴으로써 성남시가 탄생하였다.

그런데 1969년에는 주택 단지 조성 사업이 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철거민을 이송하는 바람에 이들을 가수용하는 일이 벌어졌고, 1971년에는 서울시가 입주자들에게 보름 만에 집을 지어 신고하라거나, 보름 안에 땅값을 일시불로 지급하라고 하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한다. 게다가 경기도에서는 가옥 취득세를 납부하라는 통지서를 발부한다.

결국 19718, 입주민들은 불합리한 시 · 도 당국의 정책을 시정하라는 요구를 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이것이 바로 작품 속 권씨가 주동자로 몰린 시위 사건이자, 이른바 광주 대단지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완장>

1981(40)부터 <현대 문학>에 연재한 작품이다. <완장>이 연재되던 19811982년은 전두환 군사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때였다. 유신 말기부터 의기가 꺾이고, 건강마저 나빠져 거의 절필하다시피 했던 윤흥길은 늘 당하고 힘들게 눌려왔던 권력이라는 것을 물고 늘어져보자는 심정이었죠.”라며 1983(42) 단행본 <완장>을 펴내 당시 대학가와 지식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한동안 신문 사설이며 칼럼에 완장병이니 완장문화니 하는 조어들이 등장해 유행하기도 했다.

<완장>은 남도 방언을 잘 살려 쓴 걸쭉한 입담과 해학이 돋보이는 작품이요, 우리 근대사에서 반드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암울했던 역사를 모티브로 하는 윤흥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한국 전쟁 이후 이루어진 정치 권력의 폭력성과 보통 사람들의 암울한 삶을 해학적 필치로 그려낸 이 작품은 한국적 특질을 가장 잘 살린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완장>
땅투기에 성공해 기업가로 변신한 최사장은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동네 건달 종술에게 맡긴다. 종술은 급료는 적지만 완장을 차게 해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한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을 단 종술을 보면서, 그의 어머니 운암 댁은 일제 강점기의 헌병과 6 · 25 때의 붉은 완장을 떠올린다.
완장이라는 작은 권력을 찬 종술은 낚시질을 하는 도시의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고기를 잡던 국민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완장의 힘에 빠진 종술은 면소재지가 있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한다.
완장의 힘을 과신한 종술은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까지 금지하게 되고, 결국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술은 저수지를 지키는 일에 몰두하다가 가뭄 해소책으로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 조합 직원과 경찰과도 부딪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열세에 몰리자 종술은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는 술집 작부 부월이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종술이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부월이와 함께 떠난 다음날 소용돌이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에 종술이 두르고 다니던 완장이 떠다닌다. 그 완장을 종술의 어머니인 운암 댁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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