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의 생애
김남조(金南祚, 1927~)는 대구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일봉 후쿠오카의 큐슈 여고를 졸업했다. 귀국 후 서울대학교 문예과를 수료하고 다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에 들어가는데, 재학 중이던 1950년(24세) <연합신문>에 시 <성숙>과 <잔상>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6 · 25가 터진 후 1951년(25세)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대학을 마치고, 이후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대, 성균관대 강사로 활동하던 1953년(27세) 첫 시집 <목숨>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또 1955년(29세)에는 숙명여대 전임 강사로 있으면서 시집 <나아드의 향유>를 발간하고, 조각가 김세중과 결혼하였다.
1958년(32세)에는 초기 시에서 보이던 고립된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교감이 가능한 보편적 정서를 담아낸 시집 <나무와 바람>으로 자유 문학가 협회상을 수상하고, 1960년(34세)에는 한결 더 인간이 갖는 고독, 고뇌, 비애, 신앙에 바탕을 둔 시집 <정념의 기>를 펴냈다.
1963년(37세)에는 시집 <풍림의 음악>으로 오월 문예상을 받아 문학적 입지를 다지고, 1967년(41세)에는 <겨울 바다>를, 1971년(45세)에는 <설일>과 6권의 합본 시집 <김남조 시집>을 잇달아 냈다. 이후로고 <동행>(1976), <빛과 고요>(1983), <눈물과 땀과 향유>(1984), <바람 세례>(1988), <평안을 위하여>(1995), <희망 학습>(1998) 등을 꾸준히 내며 시작 활동을 벌였으며,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 등을 받았다. 1993년(67세) 숙명여대에서 정년퇴임하였다.
김남조의 시
김남조의 시에 흐르는 일관된 주제는 ‘사랑’이다. 여성의 섬세한 감각으로 인간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보이면서 사랑을 노래했고, 종교적인 사랑과 계율, 인내와 윤리 등을 시적으로 승화했다.
<정념의 기>
1960년(34세) 시집 <정념의 기>에 수록된 표제시이다. 순수한 삶을 지향하는 종교적 희원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인간적 고뇌, 비애, 고독 등을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한 김남조 시의 특징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시행을 자유롭게 배열하면서도 유연한 리듬을 살리고 있다.
화자는 정념과 고독과 허무를 내면화한 자신의 마음을 한 폭의 ‘기(旗)’로 표상하고 있다. 문면에서 화자인 ‘나’는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견딜 수 없어 차분히 눈길을 걸으며 ‘뉘우침’과 ‘비애’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끝내 벗어날 길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인간의 굴레 때문에 그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시공’ 속에서 혼자 ‘울고 때로 기도’할 수밖에 없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몸부림일 터이다. 그러나 화자의 이 괴로움을 보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 5연의 내용으로 보건대 화자의 심적 갈등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이 없음에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벗이 많이 있어도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만한 상대가 하나도 없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막막할까. 이 막막한 심정이 허공에 걸린 깃발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리라.
<정념의 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 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겨울 바다>
1967년(41세) 발간한 시집 <겨울 바다>의 표제시이다. 겨울 바다가 주는 절망감과 허무 의식을 극복하고, 신념화된 삶의 의지를 그린 작품으로, ‘물과 불’의 긴장된 대립으로 사랑과 삶의 생성과 소멸, 갈등을 보여 준다.
‘겨울 바다’는 삶의 끝이요, 죽음을 표상하는 동시에 인생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다시 말말해 겨울 바다는 만남과 이별, 상실과 획득, 죽음과 탄생, 절망과 희망의 분기점이 되는 복합 심상이라 할 수 있다.
<겨울 바다>는 부재(不在)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이 시에서의 부재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죽고 없는 상태’이며, 다른 하나는 ‘진실의 동결(凍結)’이다. 이런 부재의 현실로 인해 화자는 좌절을 느끼지만,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에서 극적 전환을 이루며, 인고의 시간이 주는 삶의 의미를 깨달은 그는 사랑과 구원과 순명이라는 자기 긍정의 자세로 돌아서 구원의 기도를 드리게 된다.
<겨울 바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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