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테마 포스트 77. 해방 이후의 희곡 문학


오영진

오영진의 생애

우천(又川) 오영진(吳泳鎭, 1916~1974)은 평양에서 장로의 아들로 태어나 평양고보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학 시절 논문 「영화 예술론」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문맹이 많은 상황에서 민족을 계몽하려면 영화가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영화 작가가 되기 위해서 동경으로 건너가 동경발성영화제작소에 입사한다. 1942년(27세)에는 첫 시나리오 「배뱅이굿」과 「맹진사댁 경사」를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으며, 1945년(30세) 해방 후에는 조선민주당에 참여하여 정치 운동을 벌이다가 월남하였다.

1950년(35세)에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약칭 문총)사무국 차장에 피임되었다. 1952년(37세) 중앙문화사 사장 및 월간 <문학예술> 주간을 역임하였고, 그 뒤로도 예술원 회원, 국제펜클럽회원, 국제연극인협회 한국본부부위원장, 시나리오작가협회 고문, 국제대학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전쟁 직후에는 미국을 시찰하고 유럽을 여행하였으며, 「시집가는 날」로 아시아영화제의 최우수 희극상을 받았다.

장면 정권 때는 국무총리 문화 담당 특별 고문과 5 · 16 군사 혁명 직후 최고회의 자문 위원을 지냈으며. 1960년대 후반에는 잠시 국제대학교수도 역임하였지만 희곡 창작에 더욱 전념하였다. 정치와 손을 뗀 뒤로는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하였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건강 관계로 고통을 많이 받았다.

오영진의 희곡

오영진의 작품은 대체로 희극적 세계로서 현세의 어리석음이나 물욕을 비웃고 꾸짖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는 작품의 소재를 전통적인 민속과 고전소설에서 많이 가져오고 독특한 표현양식을 구사하였다. 특히 한국인의 해학과 풍자를 잘 표현한 뛰어난 희극 작가로 평가되며, 전통 소재를 현대화하는 데 재질을 보였다.

「배뱅이굿」, 「맹진사댁 경사」, 「한네의 승천」 등 3부작은 관혼상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며, 「나의 당신」이나 「허생전」 같은 작품은 고전 소설의 현대적 재창조라고 볼 수 있는 작품들로,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전통의 현대화라는 측면에서 모범적인 예를 제공하였다.

오영진은 민속 등 고전의 재창조를 통한 전통 단절을 극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말년에는 격렬한 반일 · 반공작품을 쓰기도 하였다. 「아빠빠를 입었어요」, 「모자이크게임」 등은 배일사상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무희」는 반공정신을 주제로 하고 있다.

「맹 진사 댁 경사」

해방 이전인 1942년(27세) <국민문학>에 발표한 작품으로, 전래 민담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허욕과 맹목적인 권력욕, 어리석음, 혼인 제도의 변질 등을 풍자,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훗날 「시집 가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희곡이다.

오영진은 전통적 문화에서 소재를 택한 작품을 즐겨 썼는데, 「맹 진사 댁 경사」 역시 전래 민담인 「뱀 신랑」에서 소재를 취하고 있다.

형식에 있어서 이 작품은 관객들이 모두 아는 비밀을 작중 인물들인 ‘맹 진사’ 댁 쪽만이 모르고 있는 데서 발생하는 희극성, 불운으로 치부될 혼례를 ‘경사’라고 표현한 아이러니, ‘맹 진사’ 일가와 ‘입분이’의 승패를 역전시키는 극적 반전 등의 재미 요소를 갖추고 있다.

「맹 진사 댁 경사」

맹 진사는 세도가와 사돈을 맺어 위세를 부리고 싶어서 무남독녀 갑분이를 김 판서 댁 자제 미언가 혼인시키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어느 날 과객 차림으로 찾아 온 김명정이, 신랑 미언이 절름발이라고 귀띔해 준다. 그러자 맹 진사 댁을 발칵 뒤집히고, 갑분이는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맹 진사는 결국 머리를 써서, 하녀 입분이를 갑분이로 꾸며 혼례를 치르려 한다. 그런데 혼례식에 나타난 신랑은 멀쩡하고 잘생긴 대장부였고, 맹 진사 댁에는 다시 소동이 벌어진다. 결국 입분이와 미언의 혼례가 치러진다.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

1949년(34세)에 발표한 희곡으로, 3막 4장의 풍자극이다. 해방 직후인 194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하여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는 사회극이라 할 수 있다. 발표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1957년(42세) 「인생 차압」이라는 이름으로 공연되면서 큰 호평을 받았고, 이어 당대의 스타를 주연으로 한 영화로도 제작되어 크게 흥행하였다.

친일파 경제 사범인 주인공 ‘이중생’의 몰락과 사망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의 낡고 부패한 기성 질서의 지배로부터 정의롭고 건강한 질서가 지배하는 새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위장과 위장의 실패’라는 서사적 구조를 기본 골격으로, ‘이중생’이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기까지의 분위기를 해학적으로 처리하며 희극과 비극의 요소를 공존시킨 작품이다.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

이중생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하여 부를 쌓았는데, 해방 후에도 권력에 아부를 하여 부를 유지하려 한다.

그런데 이중생이 사기,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연행된다. 최 변호사는 이중생에게, 재산을 사위인 송달지에게 상속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거짓으로 죽은 척한 다음, 사람들이 잊을 때쯤 되면 송달지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라고 제안한다. 이중생을 이를 수락하여 자살한 것처럼 꾸민 후 부고를 띄운다.

이중생의 집에 조문객들이 몰려들고 송달지가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른다. 그런데 조문 온 국회의원 김 의원이 송달지에게, 조사가 마무리되면 재산이 국고로 환수될 것 같으니 차라리 무료 병원을 설립하는 데 헌납하라고 권한다. 이에 송달지가 허락을 하고, 관 속에 누워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이중생은 김 의원이 돌아간 후 사위를 꾸짖는다.

이때 학병으로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아들 하식이 돌아와서는 아버지 이중생의 행동을 비판하고, 일을 도와주기 위해 와 있던 아낙은 이중생을 귀신 취급한다. 결국 이중생은 정말로 자살을 한다.

차범석

차범석의 생애

차범석(車凡錫, 1924~2006)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51년(28세) 「별은 밤마다」와 「백화」 등을 공연하였으며, 1952년(31세) <근대 일막극선>을 출간하였다.

1955년(34세)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밀주」가 입선하고 다시 1956년(35세) 「귀향」이 당선되어 정식으로 등단하였으며, 이후 「불모지」(1958), 「껍질이 깨지는 아픔 없이는」(1961), 「산불」(1962), 「청기와집」(1964), 「열대어」(1965), 「대리인」(1969), 「왕교수의 직업」(1969), 「환상여행」(1972), 「학이여 사랑일레라」(1981), 「꿈하늘」(1987) 등의 역작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차범선은 최창봉, 오사량 등과 ‘제작극회’를 창단하고 1963년(42세)부터 1983(62세)년까지 극단 ‘산하’의 대표로 활동하여 한국의 현대극을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여러 권의 희곡집과 연극 평론집을 발간하였다.

차범석의 희곡

차범석은 20대에 전쟁을 겪고 전후 문학의 첫머리에 등장한 극작가로, 누구보다도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썼다. 그러면서도 전쟁이라는 주제를 고집하지 않고 끊임없이 관심의 폭을 넓혀 나간 점이 그의 특징이다. 철저한 리얼리즘 신봉자인 차범석의 작품 세계는 전쟁 직후의 사회적 혼란상과 개인의 좌절을 그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였지만, 후기에는 리얼리즘의 작풍을 전통에 입각하여 심화시킴으로써 한국적인 개성을 창조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차범석의 작품은 ‘로컬리즘’이라 불릴 만큼 항구나 섬 사람들에 대한 관찰에 충실하였으며, 점차 제재를 넓혀 한국 전쟁의 상처, 문명화에 따른 인간성 상실과 인간의 소외, 애욕의 갈등, 정치의 허위성과 그 비리를 다루었는데, 크게 보면 구시대와 신시대의 충돌과 그에 따른 전통적인 것의 몰락에 관심이 집약되어 있다. 자유당 치하의 부정부패 풍토를 예리하게 지적한 「껍질이 깨지는 아픔 없이는」, 한국전쟁의 민족 수난사를 다룬 「산불」과 「학살의 숲」(1976), 혹은 우리 민족의 주체성이 없는 취약점을 풍자한 「대리인」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한국적인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 전통적인 리얼리즘의 정신으로 일관해 왔다.

「불모지」

1957년(36세) <문학예술>에 발표한 작품으로, 사회와 가치관이 격변하던 전후의 불안한 사회 상황을 ‘최 노인’이라는 구시대적 인물의 가족사로 집약시켜 표현한 장막극이다. 1962년(41세) 「태양을 향하여」로 개작되었다.

「불모지」에서는 근대화되어 가는 도시 한복판에 남아 있는 구식 한옥, 그리고 그것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가족들의 가치관의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그 대립은 어느 일방의 승리로 끝나지 않고 가족 전체의 패배로 끝난다. 이렇게 구시대가 이미 힘을 잃었음에도 새로운 시대에 의한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차범석은 1950년대의 시기를 ‘불모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불모지」

혼구(婚具) 대여점을 하는 최 노인은 아버지가 물려 준 오래된 집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다. 그런데 신식 결혼이 성행하여 최 노인의 가게가 어려워지자 가족들은 집을 팔자고 권하고, 최 노인의 고집을 꺾일 줄을 모른다. 제대 후 취업난에 시달리는 장남 경수, 그런 아들을 걱정하는 아내, 인쇄소 식자공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안고 있는 차녀 경운, 대학 진학을 앞둔 막내 경재는 모두 최 노인을 원망한다.

결국 최 노인은 집을 세놓기로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집을 팔려고 하는 줄로 오해한 경수가 이를 막으려 하자, 최 노인은 아들이 자기가 집을 팔지 않고 세놓는 것에 불만을 가진 줄 알고 심하게 꾸짖는다. 경수는 모든 불화의 원인이 돈에 있다고 생각하고 대낮에 강도짓을 하려다가 경찰에 잡히고, 취업 통지서는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한편 배우를 꿈꾸던 장녀 경애는 사기를 당해 자살하고, 경애의 시체를 발견한 최 노인은 비탄 어린 절규를 뿜는다.

「성난 기계」

1959년(38세) <사상계>에 발표한 단막극으로, ‘기계’처럼 냉정하고 인간미 없는 주인공 ‘회기’가 자신보다 더 비정한 인간 ‘상현’에게서 분노를 느끼며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난 기계」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대립적 양상을 보인다. 전반부에서는 ‘인옥’의 인간적 호소에 ‘회기’가 기계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부각되다가, 후반부에서는 ‘회기’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인간성이 회복되는 이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가치관이 전도되어 비정하고 각박하게 살아가는 1950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드러낸다.

「성난 기계」

폐 전문 의사인 양회기는 담배 공장 포장공인 인옥으로부터 수술을 요청 받는다. 그런데 X-레이 검진 결과 인옥의 폐는 수술이 불가능할 만큼 악화되어 있었고, 간청하는 인옥을 회기는 냉정하게 돌려보낸다.

얼마 후 인옥의 남편 상현이 회기를 찾아와서는 아내의 폐 수술을 해 주지 말라고 한다. 이유인즉, 없는 살림에 돈까지 들여 바람기 많은 아내를 살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회기는 상현의 이기적이고 비정한 태도에 분노하고, 어떻게든 인옥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기는 간호사를 시켜 인옥에게 수술을 받으러 오라는 속달 우편을 보내도록 지시한다. 기계처럼 냉정하고 빈틈없던 회기가, 상현의 부도덕한 태도에 성이 난 것이다.

「태양을 향하여」

1962년(41세) 발표한 작품으로, 「불모지」의 개작이기도 하다. 「불모지」가 딸의 자살, 아들의 감옥행 등 절망적인 결말을 맺는 반면, 개작인 「태양을 향하여」는 딸이 죽었지만 아들의 취직, ‘최 노인’의 양보 등을 통해 가족들이 지혜와 타협으로 화해의 결말을 맺고 있다. 이렇게 이 작품은 제목이 시사하듯 신구 세대의 갈등 속에서도 새 세대의 출발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태양을 향하여」

최 노인은 종로에서 50년 간 재래식 혼구 대여업을 하지만 신식 혼인이 유행하여 장사가 잘 안 되는 데다 세금 문제로 가세가 더욱 기운다. 이웃에 5층 빌딩이 들어서자 최 노인네는 햇볕조차 잘 들지 않게 된다. 그런데 딸 경애는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말썽이고, 군대에 간 아들 경수는 부상을 당해 의수(義手)를 하고 돌아온다.

최 노인의 집안이 점점 곤란해지는 가운데, 경수의 약혼녀인 춘자는 경수를 멀리한다. 경수는 술만 마시며 지내다가 가출을 하고, 경애는 사기를 당해 카메라 테스트 비용을 떼이고 임신까지 하는 바람에 결국 자살하고 만다. 최 노인 집의 가계는 둘째 딸 경운의 박봉으로 겨우 이어진다.

그러나 가출했던 경수가 돌아와 취직을 하고, 춘자도 마음을 돌려 경수에게 돌아온다. 오랫동안 집을 안 팔겠다던 최 노인도 집을 팔 작정을 하고 이사 갈 새 집을 보아 준다. 파멸의 위기에 처했던 최 노인 일가에는 화합의 서광이 비치게 된다.

「산불」

1963년(42세) <현대 문학>에 발표한 작품으로, 한국 전쟁 중 어느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이념의 허구성과 애욕의 허망함을 형상화한, 1960년대 사실주의 희곡의 대표작이다.

차범석은 작품 속에서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전쟁에 휘말려 고통을 겪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탈출 공비를 상대로 애욕의 갈등을 빚는 젊은 과부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인간의 원초적 애욕을 극히 자연스럽게 가미시켜 작품을 밀도 있게 구성하고 있다. 결말부에서 대밭을 태워 생긴 ‘산불’은 모든 것을 황폐화시키는 전쟁의 파괴적 속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남녀 간의 애욕을 상징하기도 한다.

「산불」

한국 전쟁이 한창인 때, 소백산맥 깊은 산골 과부 점례네 마을은 전쟁 중에 젊은 남자가 모두 죽어 아녀자와 노인들만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상당한 탈출 공비 규복이 점례네 집에 나타나 도움을 청한다. 점례는 망설이다가 마을 대밭에 은신처를 마련하여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이윽고 둘은 육체관계를 맺는다. 이웃에 사는 과부 사월은 점례과 규복 사이를 눈치 채고, 비밀을 지켜 주는 대가로 규복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한다. 머잖아 사월은 임신을 하고, 마을 사람들은 사월을 누가 임신시켰는지 의혹을 품는다.

그러던 어느 날 국군이 진입하여, 지리산 빨치산들을 토벌하려면 마을의 대밭을 불태워야 한다고 한다. 점례네는 이를 막으려 했지만 결국 대밭이 총소리와 함께 붉게 타오르고, 총에 맞아 죽어 간 규복의 시신이 끌려 나온다. 사월은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채 음독자살한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1975년(54세) <환상 여행>에 수록한 장막극으로, 전봉준의 제자이자 동학 운동에 앞장섰던 ‘기천석’과 ‘오세정’의 대조적인 삶을 제시하며 민족사의 한 단면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삶의 참된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표제는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서 따온 것인데, 이 민요는 노랫말 중 ‘녹두’가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던 전봉준을 의미한다 하여 사람들이 전봉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부른 노래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봉준이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자, 그의 제자이자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기천석과 오세정은 동학 내 분쟁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기천석은 전봉준 휘하에 있던 남접에 남아 동학 농민 운동을 계속하고, 오세정은 북접에 있다가 친일파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린다.

어느 날, 노년에 접어든 기천석이 불구자가 되어 오세정 앞에 16년 만에 나타난다. 기천석은 항일 운동 자금을 보태 달라고 하지만, 오세정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몇 달 후 오세정은 호화로운 자신의 생일 잔칫날 기천석의 아들 기세영의 저격으로 쓰러지고, 기천석은 아들 대신 일제의 법정에 서서 전봉준과 마찬가지로 최후를 맞이한다.

이근삼

이근삼의 생애

이근삼(李根三, 1929~2003)은 평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거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대학원, 뉴욕 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이근삼은 1958년(30세) 영문으로 쓴 희곡 「끝없는 실마리」를 캐롤라이나 극단에서 공연함으로써 데뷔하였는데, 국내에서 발표한 첫 희곡은 1959년(31세)의 단막극 「원고지」이며, 그 후 계속해서 「대왕은 죽기를 거부하였다」(1962), 「동쪽을 갈망하는 족속들」(1961) 등의 단막극을 발표해오다가 1962년(32세) 극단 ‘실험극장’에서 상연한 「위대한 실종」을 계기로 장막극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위의 작품 외에도 「거룩한 직업」(1961), 「데모스테스의 재판」(1964), 「제18공화국」(1965), 「국물 있사옵니다」(1966), 「유랑극단」(1972), 「30일간의 야유회」(1974), 「일요일의 불청객」(1974), 「게사니」(1983), 「막차 탄 동기동창」(1987), 「이성계의 부동산」(1994) 등이 있고, 1967년 창작희곡집 <제18공화국>을 출판한 이후 <유랑극단>(1976), <대왕은 죽기를 거부하였다>(1986), <국물 있사옵니다>(1988), <이성계의 부동산>(1994) 등의 희곡집을 발간하였다. 동국대와 중앙대를 거쳐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다수의 희곡 이론서를 번역하기도 하였다.

이근삼의 희곡

이근삼은 정통 리얼리즘 극을 고수하고 있던 기존 작가들의 집착적인 사실주의에 반기를 들고, 서사 기법 등 다양한 형식의 참신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과거의 희극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전통적 희극 형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양식적 실험을 보여준 극작가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크게 풍자와 해학을 통해 현대인의 위선적인 의식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작품군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특히 「대왕은 죽기를 거부하였다」(1962), 「제18공화국」(1965), 「아벨만의 재판」(1975) 등은 우리의 정치 현실을 풍자한 극으로서 주목을 받았다. 

이근삼의 작품들은 우리 연극계의 상투적이고 통념화된 연극 공간을 깨뜨리고 새로운 연극 공간의 개념을 확장시켰다는 점, 연극 무대에서 시간 개념을 확대했다는 점, 극적인 제시 방법을 새롭게 도입했다는 점, 극적인 언어 영역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특히 제시 방식에 있어 서사적 수법, 우화적 수법, 표현주의적 수법, 극적인 아이러니의 수법, 소극적 수법, 음악적 요소의 삽입, 시적 분위기를 도입하였다는 점에서 현대 한국 희곡 문학 사상 가장 높이 평가된 극작가 중 하나이다.

「원고지」

1959년(31세) <사상계>에 발표한 작품으로, 이근삼의 국내 데뷔작이기도 하다. 다양한 극적 기법을 사용하여 반복되는 일상을 기형적으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과 인간 소외를 그린 단막극이다. 무대 장치나 분장, 소도구, 인물의 대사와 동작 등에 반어와 풍자 등 희극적 과장법을 사용하여 리얼리즘 위주의 한국 연극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원고지」는 특별한 사건의 전개나 갈등 없이 비현실적인 극중 상황을 과장되게 전개한 상황극이다. 외형적으로는 가족이지만 이미 가족적 유대감이 해체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으로서, 개인으로서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현대인의 비극적 상황을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원고지」

주인공인 대학 교수는 돈을 벌어 오라는 아내의 간섭과 핀잔 때문에 거의 정신 착란 증세에 빠져 있다. 자녀들도 그에게 끊임없이 용돈을 요구한다. 교수는 다음 날 자식들의 아우성 속에서 간신히 벗어나 선잠을 자는데, 꿈속에서도 감독관의 원고 독촉을 받는다.

그러다가 교수는 아내의 원고(돈) 독촉을 벗어나, 환상 속에서 젊은 날의 희망과 정열을 상징하는 천사를 만난다. 교수는 그 천사에게서 자신을 찾으려 하지만 천사는 사라져 버린다.

교수는 다시 자식, 아내, 감독관의 독촉에 짓눌려 책상에서 원고를 정리한다.

「국물 있사옵니다」

1966년(38세) 초연된 작품으로, 1960년대 산업 사회가 본격적으로 전재되며 우리 사회에 고조되기 시작한 출세주의와 배금주의 풍조를 풍자한 본격적인 서사극이다. 제목 ‘국물 있사옵니다’는 1960년대 당시 유행하던 ‘국물도 없다’는 말을 반어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욕망의 충족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비정한 인간상을 다각도로 제시하고 있다. 결말에서 ‘김상범’의 승리가 무참한 패배로 반전되는 것은 이런 비정상적 행동에 대한 희극적 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국물 있사옵니다」

김상범은 평범하고 소심한 월급쟁이이다. 그는 정직하게 살아 왔는데도 항상 손해만 보며 살았는데, 우연히 사장의 신임을 얻어 정규 사원이 된다. 이후 김상범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과감한 행동을 개시한다. 이제 김상범의 생활 신조는 ‘국물’을 위한 처세술이 된다.

김상범은 아파트 관리인이 죽자 관리인의 돈 5만 원을 가져다 아버지 환갑잔치에 쓰고, 상사의 비리를 사장에서 고자질하여 제거하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른다. 또 깡패인 ‘탱크’에게 여자 문제로 협박을 당하던 중, 탱크가 회사를 털겠다는 것을 묵인하기로 했다가 그를 쏘아 죽여 영웅이 되고 회사 상무가 된다. 또한 김상범은 사장의 며느리인 성아미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눈치 채고는 그녀를 위협하여 결혼하고, 사장이 아들 몫으로 남겨 둔 상속 재산까지 차지한다.

그런데 성아미는 신혼여행 때 비행기에서 자신의 임신 사실을 고백한다. 김상범은 성아미가 임신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알면서도 이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신혼여행지에서 부산으로 출장을 간다.

천승세

천승세의 생애

하동(河童) 천승세(千勝世, 1939~)는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1958년(20세)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점례와 소」가 입선되고, 졸업 후 1964년(26세)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물꼬」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어 국립 극장 현상 모집에 장막극 「만선」이 당선되어 제1회 연극영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단편 소설 「황구의 비명」(1974)과 장편 소설 「사계의 후조」(1976)로 문단 중견의 자리에 올랐으며 신태양사 편집, 문화 방송 전속 작가, 제일문화흥업 상임 작가, <한국일보> 기자, <독서신문> 기자 등을 역임하고 1985년(47세)에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에 피선되었다. 만해문학상(1975), 제4회 성옥문화상 예술부문 대상(1982), 제1회 자유문학상 본상(1989)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천승세의 작품

천승세의 작품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압축된 문체와 민중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구성상으로는 다소 상징적인 암시적 짜임새를 갖추면서 유려하게 형상화하며, 이를 통해 강한 주제 의식을 표출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희곡 「만선」

1964년(26세) 국립 극장 현상 희곡 공모에 당선된 작품으로, 어민들의 언어와 삶을 재현하여 강한 토속성을 드러낸 희곡이다. 험난한 자연과 싸우는 부성(父性), 죽음의 숙명을 벗어나려는 모성(母性)이 갈등을 이루다가, 결국 두 자식의 죽음으로 파국에 이르는 비극적 삶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만선」

바다에 부서 떼가 몰려들자 우직한 어부인 곰치는 악덕 선주 임제순에게 진 빚을 갚고 자신도 이제 작은 배 한 척 장만할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푼다. 그러나 임제순은 배를 묶어 버리고, 곰치는 눈앞에 부서 떼를 두고도 한 마리 잡지 못해 미칠 지경이다. 결국 곰치는 임제순이 요구하는 대로, 다음 날까지 빚을 갚겠다는 각서에 지장을 찍은 후 바람을 무릅쓰고 바다고 나간다.

곰치는 만선의 꿈을 이룬다. 그러나 배가 파도에 뒤집혀 잡은 고기를 다 달리고 딸 슬슬이의 애인인 연철이마저 잃은 채 겨우 구조된다. 임제훈은 곰치에게 빚을 갚으라고 위협하고, 아내인 구포댁은 정신이 이상해진다. 그래도 곰치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 남은 어린 아들을 어부로 만들 결심을 한다. 그러나 구포댁은 남은 아들까지 바다에서 죽게 할 수 없다며 빈 배에 아들을 태워 육지로 보내 버린다.

곰치가 배를 멈추기 위해 쫓아 나가고 구포댁이 그를 말리는 사이, 애인을 잃은 슬슬이는 헛간에서 목을 맨다.

소설 「황구의 비명」

1974년(36세)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작품으로, 희곡이 아니라 소설이다. 이듬해 만해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단편이다.

「황구의 비명」은 민족애와 인간애에 현실 인식의 바탕을 둔 문학적 자세를 견지하고, 역사의 그늘에서 상처가 남아 있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날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끝 부분에서 ‘황구’를 등장시킨 것은 다소 허위적이라는 인상을 주었고, 매끄럽지 못한 원색적인 표현이 지적되기도 한다.

결말부에서 “은주의 젖은 등허리로부터 보리밀 익는 듯한 비린 체취가 풍겨 온다”라고 한 것은 은주가 찾아가야 할 고향은 단순한 고향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우리들 가슴 속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건강한 정신적 고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천승세가 추구하는 조국의 상징적 모습일 것이다.

「황구의 비명」

은주는 ‘나’가 의정부에서 세 들어 살던 여자였는데, 돈놀이를 하던 아내와 무척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은주가 15만원을 가지고 달아나 버리자 아내는 은주를 찾아 돈을 받아 오는 일을 ‘나’에게 맡긴다.

은주는 ‘담비 킴’으로 불리는 양색시가 되어 있었다. 아내가 그려 준 약도를 가지고 은주를 찾아가다가 들른 구멍가게 주인은 용주골을 ‘안면 몰수’, ‘예의 사절’, ‘악발 교육’이라는 세 단어에 빗대어 표현했다. 계속 걸던 중 길에서 만난 노파는 ‘내 손주년을 찾는다’는 말이 써 진 천을 목에 휘감고 있었다.

은주는 ‘나’를 보자 기겁을 하고, ‘나’는 은주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하지만 은주는 비 오는 새벽길을 뛰쳐나간다. 은주를 뒤쫓던 ‘나’는 죽어 있는 시체를 발견하는데, 그것은 어제 만났던 그 노파였다. ‘나’는 노파를 묻어 주며 은주에게 재차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5만 원쯤은 보태 줄 수 있다고 제안한다.

마침 자그마한 황구와 어마어마한 체구의 외래종 수캐의 교미 장면이 펼쳐지고, 그 체구의 차이에서 오는 처참하고 흉물스러운 불균형을 본 은주는 갑자기 울면서 고향으로 가겠다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