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문학테마 URL 복사

현대문학 테마 81. 고은

2022. 1. 1. by 솜글

고은의 생애

불도 생활과 문단 데뷔

고은(高銀, 1933~)은 지금은 군산시로 편입된 전북 옥구군에서 농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은태(銀泰)인데, 6 · 25 전쟁 때 끝 자를 떼어내고 ()’이라고 자칭하기 시작하여 이 이름으로 굳어졌다. 어릴 때 고은은 암사내로 불릴 만큼 조용하고 수줍음 잘 타는 아이로 자라며 서당에서 한학을 익인 후 미룡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군산공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였지만 1950(18) 6 · 25가 터져 4학년 때 학업을 접었다. 학교를 그만둘 무렵, 고은은 길에서 우연히 주운 <한하운 시초>를 읽고 충격을 받아 문학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쟁을 목격하는 동안 고은은 그 충격으로 정신착란에 빠지고 자학증이 깊어 가출까지 자주 한다. 그러던 중 1952(20) 효봉 스님을 만나 법명 불문에 들고 10년 넘게 참선과 방랑 생활을 하였다. 10여 년 간 고은은 선학원 간부, 불교 총무원 간부, 전등사 주지, 해인사 교무 및 주지 대리, <불교신문> 초대 주필 등을 지낸다. 그러면서 1958(26) <폐결핵>이 조지훈의 추천으로 발표되고 이어 <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 운> 등이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온다. 1959(27)에는 시집 <불나비>를 내려고 했지만 불이 나서 원고를 다 잃어버리고, 이듬해인 1960(28)에야 첫 시집 <피안 감성>을 출간할 수 있었다. 이런 초기 작품들에서 고은은 허무주의의 경향을 진하게 풍긴다. 한편 1961(29)에는 첫 장편 소설 <피안앵>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사진 출처 : 중앙일보(https://jmagazine.joins.com/art_print.php?art_id=316564)

제주도서울의 세계

고은은 1962(30) 갑자기 환속 선언을 하더니, 이듬해에 일종의 현실의 도피처를 찾아 제주도로 가서 1967(35) 돌아온다. 그곳에서 쓴 시들은 훗날 <해변의 운문집>, <· 언어의 마을> 등에 담겼다.

서울로 돌아온 1967(35) 이후의 시편들은 1974(42) 출간한 네 번째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에 수록된다. 여기 실린 작품들은 <종로>, <삼각한 보현봉을 바라보며>, <연희동에서>, <청수장에서>, <4한강교에서>, <청진동에서>, <광화문에서>, <동작동 묘지>, <정릉에서>, <수유리에서>, <창경원>, <서울의 비> 등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고은의 처소가 제주도에서 서울로 바뀌었음을, 그가 제주도 시대에서 벗어났음을 알려주며, 내용과 형식면에서도 변모를 보여 조금씩 타자들과 상호 소통하기 시작하는 시 세계의 변모를 보여 준다.

민중 참여 시인으로의 변모

1970년대에는 민중시인으로 다시 한 번 변신하는데, <입산>, <새벽길>, <조국의 별> 등에는 민주주의의 왜곡된 질곡의 현실을 민중 정서의 시적 표출로 극복하려는 삶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 시기 고은은 탐미주의 쪽으로 흐르던 자신의 초기 문학을 전면 부정하고, 민족 현실에 대한 냉엄한 각성에서 비롯된 정치 지향적 시 세계로 방향을 틀었다고 할 수 있다.

1974(42) 고은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초대 대표 간사를 맡아 백낙청, 이문구, 박태순, 염무웅, 이시영, 송기원, 조태일, 황석영, 신경림, 장용학 등과 함께 제1차 선언문을 발표한 후 가두시위를 하다가 체포되고, 1975(43)에는 대통령 긴급 조치 9호로 가택 구금을 당하기도 한다.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전태일을 기리는 모임에서 추도시를 잃고 단식 농성을 벌이다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입산>, <새벽길>에서부터 조금씩 보이던 사회 참여성은 <조국의 별>에 이르러 그 구체성을 확대하는데, 그러한 성숙의 총체가 잘 구현되어 있는 시가 바로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이다.

1978(46) 고은은 민주화운동청년협의회 결성에 앞장서고, 이듬해인 유신 말기에 YH 사건 배후 조종 혐의로 구금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았으나, 다행히 정권이 바뀐 후 1982(50) 8 · 15 특별 사면으로 풀려난다. 1983(51) 비공개 결혼식을 한 후에는 경기도 안성에 살면서 1987(55)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1989(57)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등에 참여하여 참여 시인의 면모를 더욱 확실하게 굳힌다. 그러는 동안 1990년까지 <고은 시 전집>(1983), <시여 날아가라>(1986), <고은 전집>(1988), <네 눈동자>(1988), <아침 이슬>(1990), <눈물을 위하여>(1990) 등의 시집을 펴내고, 평론집 <문학과 민족>(1986), <고난의 꽃>(1986), <황혼과 전위>(1990)를 내는가 하면 장편 소설 <화엄경>(1991)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986(54)에는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고 1988(56)에는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고은의 시

초기 허무 시

고은은 1958(26)<폐결핵>, <봄밤의 말씀>, <눈길> 등으로 조지훈,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와 1960(28) 첫 시집 <피안 감성>을 출간했다.

이런 초기 고은의 시 세계는 허무주의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전쟁 목격 후의 가출과 자살 기도, 입산, 방랑, 환속, 취중 난동, 폭언과 폭주 등 청년 고은의 삶의 역정을 고스란히 노출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흔히 고은의 초기 시 세계는 존재의 근거를 위협하는 허무와의 싸움”(염무웅), “일종의 아나키즘적 냄새의 허무(김주연), “보기 드문 허무의 미학”(오규원)으로 해석되곤 한다. 특히 김현은 고은의 초기 시를 두고 단순한 구라파식의 허무(nihil)이 아니라 모든 것이 윤회의 고리라는 인연설을 자각한 다음 생기는 무애(無碍)에 가까운 허무, “창조보다는 소멸에 기여하는 허무라고 평한 바 있다.

<폐결핵>

1958(26) 조지훈의 추천으로 한국시인협회의 기관지 <현대시>에 실린 시로, 고은의 데뷔작이다. 이후 <피안감성>에 실렸다. 고은 시의 초기 경향인 자연, (), 사자(死者)의 풍경”, 허무와 무상의 정서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폐결핵>1/ 누님이 와서 이마맡에 앉고,/ 외로운 파-스 하이드라짓드 병() 속에/ 들어 있는 정서(情緖)를 보고 있다./ 뜨락의 목련(木蓮)이 쪼개어지고 있다./ 한 번의 기인 호흡이 창의 하늘로 삭아 가 버린다./ 오늘 하루의 이 오후(午後)/ 늑골(肋骨)에서 두근거리는 체온의 되풀이/ 머나먼 곳으로 간다./ 지금은 틀거울에 담은 기도(祈禱)/ 아래 얼굴,/ 모든 것은 이렇게 두려웁고나./ 기침은 누님의 간음(姦淫),/ 언제나 실크빛 연애(戀愛)/ 나의 시달리는 홑이불의 일요일(日曜日)/ 누님이 보고 있다./ 누님이 치마끝을 매만지며/ 화장(化粧)얼굴의 땀을 닦아 내린다.//2/ 형수는 형의 말씀을 해준다./ 형수의 묵은 젖을 빨으며/ 고향의 병풍(屛風)아래로 유혹된다./ 그분보다도 이미 아는 형의 반생애(半生涯),/ 나는 모르는 척하고 눈 감아 버린다./ 영웅(英雄)이 떠오르며/ 영웅을 잠 재우는 미인(美人),/ 형수에게 드넓은 우리 농지(農地)를 물어보려 한다./ 쓸쓸히, 고개에 녹아가는/ 눈 허리의 명암(明暗)을 씻고 그분은 나를 본다./ 혓바닥 작은 카나리아 핏방울을 구을리며/ 자고 싶도록 밤이 간다./ 형의 사후(死後)를 잊는다./ 형수는 밤의 부엌 램프를/ 나에게 맡기고 간다.

<눈길>

1959(27) 서정주 시인의 추천을 받아 발표된 실질적 데뷔작으로서 이듬해 첫 시집 <피안감성>에 수록되었다. 같은 제목의 다른 작품과 구별하기 위하여 본디 <() 눈길>이라 하였으나, ‘()’ 자를 떼고 보통 <눈길>이라고 부른다. 화자가 눈 덮인 길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던 방황과 고뇌를 가라앉히고 무념 무상의 명상적 경지에 다다르는 체험을 노래하고 있다.

은 그 흰 빛깔로 인해 정화의 이미지를 띠며, 모든 것을 너그럽게 감싸 안는다는 의미에서는 관용내지 포용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의 눈길역시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지난날의 방황과 고뇌를 정화시켜 포근히 감싸 안는 평온한 상태를 의미한다.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라는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화자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오래도록 방황을 거듭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방황의 끝에서 그는 모든 것을 덮어 버리는 눈을 바라보며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솟구쳐 오르는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낀다. 바로 이 순간의 눈 덮인 풍경을 그는 설레이는 평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눈길>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어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寞)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문의 마을에 가서>서울

고은은 불문에서 나와 환속한 후에는 제주도에서 6년을 보낸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서울의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초기의 자연, (), 사자(死者)의 풍경을 탈피하고 구체적 현실에서 역사적 상황, 민족 이데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삶의 감동을 풀어내는데, 이들 시편들은 1974(40) 출간한 <문의 마을에 가서>에 실린다.

<문의 마을에 가서>의 시편에서는 감수성과 허무를 경구적 어법, 명령형과 청유형, 의문형, 호격과 감탄문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런 특징은 고은의 시가 초기의 갇힌 허무에서 벗어나 실존적 세계 안에서 타자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1974(40) 펴낸 네 번째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의 표제시이다. 초기의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적, 역사적 책무를 절감하고 민중적 각성의 시인으로 변신하기 시작하는 중기시의 서두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문의 마을에 가서>는 고은이 당시 모친상을 당한 신동문 시인의 고향 충북 청원군 문의 마을에 가서 장례식을 주관했던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전기적 시실이야 어떻든 문면에 드러난 바로는 문의 마을은 이 시에서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시적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첫 연에서 죽음은 길이 적막하기를 바라고,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죽음과 삶의 길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둘째 연에 가면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또한 죽임이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죽음과 삶의 길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한편 제26행의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라는 구절에서는 기묘하게도 죽음과 삶의 상거(相距)와 합일(合一)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죽음과 삶의 길은 서로 모순된 것이면서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일 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살아 있는 자가 아무리 돌을 던져 죽음을 쫓고자 하여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된다.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성묘>

1974(40) <문의 마을에 가서>에 수록된 시로, 수난의 근대사를 제재로 하여 조국 분단의 한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의 죽은 아버지가 팔던 소금은 아버지에게 있어 어둠의 시대에 삶을 지탱해 낼 수 있게 하는 힘이자 정신적 가치였다. 그런데 국토가 분단되어 그러한 소금떨어져버리자 아버지는 정신적 가치를 잃고 죽고, 화자는 그런 아버지가 통일 후에도 청정한 소금 장수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한다.

<성묘>
아버지, 아직 남북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제 시대 소금 장수로/ 이 땅을 떠도신 아버지./ 아무리 아버지의 두만강 압록강을 생각해도/ 눈 안에 선지가 생길 따름입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두만강의 회령 수양버들을 보셨지요./ 국경 수비대의 칼날에 비친/ 저문 압록강의 붉은 물빛을 보셨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모든 남북의 마을을 다니시면서/ 하얀 소금을 한 되씩 팔았습니다./ 때로는 서도 노래도 흥얼거리고/ 꽃 피는 남쪽에서는 남쪽이라/ 밀양 아리랑도 흥얼거리셨지요./ 한마디로, 세월은 흘러서/ 멈추지 않는 물인지라/ 젊은 아버지의 추억은/ 이 땅에 남지도 않고/ 아버지는 하얀 소금이 떨어져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남북 통일이 되면/ 또다시 이 땅에 태어나서/ 남북을 떠도는 청청한 소금 장수가 되십시오./ “소금이여”, “소금이여”/ 그 소리, 멀어져 가는 그 소리를 듣게 하십시오.

민중 시 · 참여 시

<화살>

1978(44) <새벽 길>에 수록한 작품으로, 1970년대 유신 정권의 독재에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고은의 민주화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화살은 민주화 운동에 헌신적으로 앞장서 투쟁했던 사람, 즉 민주화 투쟁의 전위를 상징한다.

화자는 이 땅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서 가진 것’, ‘누린 것’, ‘쌓은 것이라는 부와 명예뿐 아니라 행복도 넝마처럼 버리자고 한다. 나아가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 화살처럼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고 반복해서 외침으로써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출한다. 또한, ‘박힌 아픔과 함께 썩겠다, ‘피를 흘리겠다는 다짐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민주화를 앞당기겠다는 순국(殉國)의 의지로 하나의 밀알이 썩어야만 만인을 먹이는 빵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와 상통한다. ‘캄캄한 대낮으로 표상되는 폭압의 현실 속으로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겠다는 이 대 사회적 선언은 마침내 고은을 허무의 깊은 늪에서 벗어나 멀고도 험한 민중, 민족, 통일 문학의 금자탑으로 우뚝 서게 한다.

<화살>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1984(50) <조국의 별>에 실린 시이다. <입산>, <새벽길>의 몇몇 시편에서 보이는 반지성주의적 폭력은 사실 민중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서 발현된 것이라기보다는 민중의 정서와 유리된 자기 만족적 이념을 표출한 데 지나지 않는 면이 강하다. 따라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조국의 별>에 이르러 고은의 시는 눈에 띄게 구체성을 확대하여 역사 인식의 추상성과 도식성을 극복하고, 시를 생생한 현실에서 나와 감동하는 넋의 공간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런 성숙한 인식의 총체가 가장 잘 구현되어 있는 작품이 바로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이다.

시적 자아는 자작나무 숲에서 겨울 나무들의 헐벗은 몸을 통해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의연히 사는 일의 가치를 성찰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에까지 이른다. 이런 자기 반성은 시적 자아를 나 자신에게도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은 노동에 대한 겸허함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렇게 거칠고 가파르고 모난 전투적 이념 일변도에서, 부드럽고 완만하고 자연스러운 생명의 지고함을 끌어안은 세계 인식을 보여 주고 존재의 질적인 변화를 감동적으로 형상화한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는 고은의 시 세계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도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하여/ 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 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 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 온 울음이었다/ 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아니 이런 추운 곳의 적막으로 태어나는 눈엽이나/ 삼거리 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 너무나 교조적인 삶이었으므로 미풍에 대해서도 사나웠으므로//
얼마 만이냐 이런 곳이야말로 우리에게 십여 년 만에 강렬한 곳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때가 온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늙어 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함께/ 깨물어 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으로 자라난다/ 나는 광혜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등지고 삭풍의 칠현산 험한 길로 서슴없이 지향했다

<만인보 서시>

1986(54) 펴낸 연작시집 <만인보>의 서시이다.

고은은 1980(48) 여름 남한산성 육군 교도소 제7호 특별 감방에서 <만인보> 연작시를 구상했다.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는 그 무덤과 같은 방에서, 고은은 살아서 나간다면 지나간 삶의 구비에서 마주친 이들을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로써 되살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던 것이다.

사실 <화살>과 같은 시를 쓰던 고은이 <만인보> 연작시로 나아간 것은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만인보>가 권력에의 투항이나 현실 순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그보다는 싸움의 역사로부터 견딤의 역사로, ‘화살의 세계관에서 장강(長江)’의 세계관으로 변모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실제로 <서시>에 이어지는 <할아버지><머슴 대길이>는 인간과 세계와 역사를 대하는 시인의 관점에 조금치의 변화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취해서 소리 지르고 깨부수는 것 말고는 권세도 명예도 누리지 못한 할아버지 고한길을 기리는 노래의 끝 연은 이렇다. “이 세상 와서 생긴 이름 있으나마나/ 죽어서도 이름 석 자 새길 돌 하나 없이/ 오로지 제사 때 지방에는 학생부군이면 된다/ 실컷 배웠으므로/ 실컷 배웠으므로”.

그런가 하면 고은에게 가갸거겨를 배워준 친구네 집 머슴 대길이는 그가 속한 계급과 무관하게, 혹은 바로 그 계급으로 말미암아 곧고 바른 인격의 담지자로 그려진다. 봄 산에 올라서도 마을 처녀에게 허튼 시선 한번 주지 않으며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라고 말하는 그를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 특히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 새우는 불빛이었지요라는 진술은 민중적 모범에 대한 시인의 귀의를 말하고 있다.

<만인보 서시>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고은의 소설

고은은 1960(28) 첫 장편 소설 <피안앵>을 출간한 이후 연속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소설을 써내고 그것을 묶어 창작집을 펴냈다.

초기 고은 문학을 말할 때, 시에서 퇴폐적 탐미주의나 허무주의가 거론된다면, 소설에서는 현저한 토속적 구어 문체가 지적된다. 1977(45) 펴낸 <밤 주막>에 수록된 <황포 일기>, <무적>, <만월>, <만추>, <밤 주막>, <> 등 여덟 편의 단편 소설들에서는 육감적인 한국어 현재 시제의 문체를 사용하여 밑바닥에 내팽개쳐진 민초들의 삶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토속적인 구어체 문장 사이사이에 비어와 속어, 육담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다.

한편 1980(48) 펴낸 <어떤 소년>에는 <밤뱃길>, <지게꾼>, <귀향>, <어떤 소년>, <순이 약전>, <724일 밤>, <참만이>, <속 참만이>, <조막손이> 등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여기서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민족주의적 각성에 이르는 작중 인물들을 내세움으로써 민족적 의지의 유격성과 해방의 염원을 끌어안은 이들을 그렸다.

옷, 패션 트렌드, 운동화, 쇼핑, 신상품, 신발, 자켓, 코트, 탈모, 모발이식, 미용, 성형수술, 구두, 부츠, 샌들, 여름 신발, 바지, 롱팬츠, 팬츠, 양말, 모자, 캡, 나이키, 아디다스, ABC 마트, 롱부츠, 첼시부츠, 티셔츠, 원피스, 정장, 수트, 가방, 귀걸이, 목걸이, 반지, 마스크, 시계, 팔찌, 패션, 백화점, 의류, 옷, 머리띠, 롱패딩, 패딩, 점퍼, 야상, 재킷, 화장품, 크림, 스킨, 아이섀도우, 아이브로우, 올리브영, 롯데닷컴, 하프클럽, 니트, 블라우스, 스커트, 치마, 주름바지, 통바지, 크롭티, 와이셔츠, 영어, 토익, 학원, 반찬, 다이어트, 도시락, 닭가슴살, 샐러드, 감자, 계란, 집밥, 요리, 고기, 소고기, 닭다리, 치킨, 아침밥, 삼겹살, 곱창, 밀키트, 선물세트, 저녁 메뉴, 볶음밥, 탕수육, 광어회, 연어회, 해산물, 냉동식품, 참치회, 잡곡밥, 아이스크림, 배스킨라빈스, 배달의 민족, 배달음식, 떡볶이, 튀김, 오징어튀김, 순대, 오뎅, 토마토, 딸기, 사과, 귤, 오렌지, 콤부차, 홍차, 레몬티, 커피, 카누, 네스프레소, 캡슐커피, 식품 직구, 영양제, 비타민, 아이허브, 신용카드, 소액대출, 대출, 보험, 보험상담, 저축은행, 여성대출, 학자금대출, 대출계산기, 대출이자, 주부대출, 임플란트, 치아보험, 자동차 렌트, 제주도 렌트, 렌터카, 자동차, 승용차, 중고차, 자동차보험, 자동차사고, 청약주택, 청약통장, 정기예금, 적금, 주택정약, 아파트, 내집마련, 빌라, 30평대, 부동산, 소형아파트, 치아, 어금니, 송곳니, 법률상담, 모기지론, 대학 편입, 학사편입, 대학교, 웹호스팅, 클라우드, 보안솔루션, 홈페이지, 앱제작, 동영상제작, 영상편집, 기부, donate,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세계구호,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전문자격증, 자격증, 학원, 사이버대학교, 학사, 학위취득, 학점은행제, 토익, 영어, 외국어, 통역, 번역, 동시통역
[면책공고] 솜글 블로그 자료 이용 안내

이 글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