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신동엽(申東曄, 1930~1969)은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농민의 장남으로 태어나는데, 집안이 워낙 가난했다고 한다. 1943년(14세) 부여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학비를 줄이기 위해 마을에서 관비가 지원되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하여 병영 생활이나 다름없는 일제 말기의 전주사범 기숙사 생활을 묵묵히 견딘다. 이 무렵부터 신동엽은 문학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하근찬의 회고에 의하면 신동엽은 매우 내향적이고 키가 작은 친구였다고 한다.
신동엽은 1948년(19세) 동맹 휴학으로 귀향하여 국민학교에 발령 받았다가 사흘 만에 그만두고, 이듬해인 1949년(20세)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곧 6 · 25가 일어나는 바람에 부여에서 민청 선전 부장으로 지내다가, 서울 수복 뒤에는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되었다. 1951년(22세) 국민방위군 수용소를 빠져나와 떠돌던 중 피난지 대전과 부산의 전시 연합 학교에서 겨우 학과 공부를 마쳐 1953년(24세) 졸업하였다.
서울로 올라온 신동엽은 돈암동에 작은 헌책방을 차려 근근이 살아가는데, 이 책방에 드나들던 인병선과 1957년(28세) 결혼하였다. 헌책방을 그만둔 후에는 군에 입대해 복무하다가 제대 후 고향에 정착하여 충남 보령의 주산농업고등학교의 교사 자리를 얻었다.
전기 활동
그러나 1958년(29세) 말 갑자기 각혈한 뒤 폐결핵인 줄 알고 사직서를 내고, 그 후로는 돈암동 처가에 아내와 아이들을 보낸 후 홀로 부여에 남아 병과 가난 속에서 독서와 습작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문명과 위선에 물든 현실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도 원초적 자연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을 노래한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쓰는데, 이 작품을 1959년(30세)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석림(石林)’이란 필명으로 응모하여 입선함으로써 문단에 나온다. 이후 <진달래 산천>, <시로 열리는 땅>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시인의 길을 걷는다.
1960년(31세) 건강을 되찾은 후 서울에서 가족과 합류한 신동엽은 ‘교육평론사’에 들어가고, 4 · 19를 체험한 후 교육평론사에서 <학생 혁명 시집>을 펴내며 문학 혁명에 동참한다. 1961년(32세)부터는 명성여고 교사로 자리를 옮겨, 숨질 때까지 8년 간 교단에 섰다. 신동엽은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바른 삶의 길을 가르치는 교사로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1963년(34세)에는 그 동안 발표한 시들과 신작 <아니오>, <빛나는 눈동자>, <눈 나리는 날>, <산사>, <산에 언덕에>, <꽃대가리> 등을 묶어 첫 시집 <아사녀>를 펴낸다. 또 여러 잡지에 시 <주린 땅의 지도 원리>, <기계야>, 평론 <시와 사상성─기교 비평에의 충언>, 수필 <금강 잡기> 등을 발표하고, 1964년(35세)에는 시 <진이의 체온> 등을 발표하였다. 이 무렵 신동엽은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민족의 전통적 삶의 양식이 붕괴되는 과정과 이에 따른 현실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후기 활동
신동엽은 시극(詩劇)과 같은 시의 장르적 변용에도 관심이 많았다. 1966년(37세)에는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을 써서 국립극장 무대에 올리기도 하였다.
1967년(38세)에는 ‘신구문화사’가 간행한 <현대 한국 문학 전집>의 제18권으로 기획된 <52인 시집>에 그 동안 발표한 시들과 신작시 <껍데기는 가라> 등 7편을 실어 시단 내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다. <껍데기는 가라>에서 선보인 ‘알맹이’는 같은 해에 장편 서사시 <금강>에서 찬란하게 부화하여 ‘을유문화사’의 <한국 현대 신작 전집> 제5권 <3인 시집>에 실렸다.
1968년(39세) 신동엽은 장편 서사시 <임진강>을 계획하여 임진강변을 답사하지만 중단하고, 대신 전5집의 오페레타 <석가탑>을 써서 무대에 올린다. 같은 해 6월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숨지자 추모 글 <지맥 속의 분수>를 실어 깊은 슬픔을 나타내는데, 신동엽 역시 이듬해인 1969년(40세) 간암을 선고받은 지 불과 한 달 만에 서울 성북구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후 유작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조국>, <영>, <서울> 등이 발표되고, <신동엽 전집>(1975),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79), <신동엽─그의 삶과 문학>(1983), <금강>(1989) 등이 쉬지 않고 잇달아 간행되었다.
신동엽 시의 특징
신동엽은 김수영과 함께 1970년대 이후의 참여 시인들에게 한용운, 임화를 비롯한 카프 계열 시인들, 이육사의 맥을 잇는 하나의 전범으로 받아들여진다. 두 시인의 시 세계는 4 · 19에 젖줄을 대고 있다는 점에서 통한다. 그러나 김수영의 ‘참여’가 모더니스트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신동엽의 ‘참여’는 소박한 민족적 정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신동엽과 김수영은 체제 비판적인 감수성으로 현실을 거부한 ‘불온한 시인’이라는 점에서 닮은꼴이지만, 출신 성분이 다른 만큼 시적 지향점은 약간 다르다. 도시 중인 계급 출신의 김수영이 비판적 소시민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자주 노래한 시인이라면,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자란 신동엽은 동학 농민 운동과 민족의 원시 공동체에 구현된 원형적 민중 정서의 회복을 거듭 노래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신동엽 시의 일반적 특징
- 비교적 단순한 소재와 이미지를 지닌 단어를 반복하여 내용을 강조한다.
- 선악을 분명히 구분하기 때문에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 ‘시는 자아와 세계에의 개안(開眼)’이며, ‘자아와 이웃에의 애정’이라는 시인 자신의 말대로 현실 지향적인 솔직함을 지닌다.
신동엽의 시
<진달래 산천>
1959년(30세) <조선일보>에 발표한, 등단 시기의 시이다. 투철한 역사의식에 입각하여 6 · 25로 인한 깊은 상흔을 ‘진달래’의 핏빛 이미지 속에서 그려낸 작품으로, 신동엽의 초기시를 대표한다. 신동엽은 민족적 정서 또는 민족적 정기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전설을 자주 원용하는데, <진달래 산천> 역시 후고구려 장수들의 전설을 끌어들이고 있다.
신동엽은 이 시를 통해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뚫고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일 뿐 아니라, 그 실질을 이루고 있는 민중들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자임을 웅변하고 있다. 발표 당시에는 일단의 맹목적 반공주의자들에게 ‘불온성’을 지적받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정치 상황으로 보아도 통일 염원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가장 빼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진달래 산천>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산에 언덕에>
1963년(34세) 신동엽의 첫 시집 <아사녀>에 실린 작품이다.
신동엽의 시는 아름다운 서정성과 준열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다. <산에 언덕에>에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시적 아름다움이 이 시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것은 한국 서정시의 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 신동엽의 시가 지닌 역사성은 역사의 핵심 혹은 역사적 진실에 관계되는데, 이 시가 쓰인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보아 4 · 19 혁명의 영령을 기린 시라고 본다면, ‘꽃’, ‘바람’ 등의 시어는 “고매한 신념과 이상을 가지고, 소리 높여 외치다 죽어간 그리운 그의 환생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는 ‘그리운 그’와 그의 모습을 찾아 들길을 더듬는 ‘행인’과 목소리의 주인공인 화자, 이렇게 세 인물이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행인은 화자와 정서적으로 근접되어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화자의 객관적 대리인이라고 보아도 졸을 터이다. 마지막 연의 ‘울고간 그의 영혼’이라는 구절로 미루어 보건대 행인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을 더듬으며 찾아 헤매고 있는 ‘그리운 그’는 아마도 불행한 삶을 살다 간 한 젊은이임이 짐작된다.
<산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껍데기는 가라>
1967년(38세) 신구문화사에서 간행한 <52인 시집>에 수록한 시이다. 17개 행 가운데 6개 행이 ‘껍데기는 가라’인데, 그 ‘껍데기’가 무엇인지는 마지막 연의 ‘쇠붙이’ 말고는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 상대적 의미를 지닌 어휘를 통해 짐작해 본다면 ‘껍데기’는 4월 혁명의 ‘알맹이’에 대비되는 개념이며, ‘동학년’의 ‘아우성’이고, ‘초례청’ 앞에 선 ‘아사달’, ‘아사녀’의 ‘부끄럼’이거나 향기로운 ‘흙가슴’에 상대되는 개념일 것으로 이해된다.
<껍데기는 가라>의 창작 계기는 4 · 19혁명의 체험일 것이다. 그 혁명을 통해 확인한 민중적 역량을 과거 동학 혁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미래의 통일에서도 그 역량이 발휘되기를 신동엽은 열망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4월 혁명의 정신은 퇴색해 가고 동학 혁명의 민중적 열기도 사그라져 가며, 통일에 대한 염원도 군사 정권과 무력을 앞세운 외세의 질곡 때문에 전망이 흐려져 가고 있다. 신동엽이 안타까워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허위와 맞설 것을 외치며, 우리가 성취해야 할 민족적 과제가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다.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종로 5가>
1967년(38세) <동서 춘추>에 발표한 작품이다. 화자가 종로 5가 신호등 앞에서 동대문을 묻는 한 소년과의 만남을 계기로 당대 민중들의 운명을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부르짖던 1960년대 사회적 상황 속에서 도시의 노동자나 창녀로 변해 가는 농민과 민족의 모습을 역사적 시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농민의 희생과 농촌의 붕괴를 담보로 해서 이루어진 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농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피폐된 농촌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도시의 노동자나 창녀로 전락하는 처지가 되곤 했다. 그러므로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의 화자의 눈에 비친 현실은 ‘이슬비 오는 날’로 시작하여 ‘비에 젖고 있었다’로 끝나는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만큼 침울하고 고통스럽다.
<종로 5가>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群像)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온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땅 어촌(漁村)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날,/ 종묘(宗廟)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 그의 누나였을까./ 부은 한쪽 눈의 창녀(娼女)가 양지 쪽 기대 앉아/ 속내의 바람으로, 때묻은 긴 편지를 읽고 있었지.//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半島)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李朝)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북간도(北間島)라도 갔지./ 기껏해야 버스길 삼백 리 서울로 왔지./ 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비료광고만 뿌리는 그머리 마을,/ 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공사장,/ 도시락 차고 왔지.//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금강>
1967년(38세) 을유문화사의 <3인 시집>에 실린 작품으로 4800여 행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장편 서사시이다.
<금강>은 배다른 누나와 함께 파랑새 노래를 배우기 위해 양품 장수 할머니를 기다리던 시인의 회상에서 발원한다. 그 물줄기는 4 · 19 혁명에서 1919년의 만세 운동으로, 다시 1894년의 독학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 굽이굽이 펼쳐진다. 총 26장 구성의 이 서사시는 사건을 차례대로 늘어놓지 않고 현재와 과거를 빈번하게 오가거나 병치함으로써,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려는 시인의 의도를 엿보게 한다.
신동엽은 <금강>의 동학 혁명 이야기 부분에서 실존 인물인 ‘전봉준’, ‘최제우’, ‘최시형’ 등과 함께, 시인 자신이 분신인 가상 인물 ‘신하늬’를 등장시켜 시적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동학 혁명의 실패와 4 · 19 혁명의 실패를 겹쳐놓고 “오늘, 얼마나 달라졌는가.”라며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비리, 폭력, 모순, 불합리를 통탄한다. 그러면서도 ‘맑은 하늘’을 쳐다보는 ‘빛나는 눈동자’를 통해 사그라지지 않는 혁명의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렇듯 <금강>은 역사성과 서사적 골격을 갖추고 있으며,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빼면 서정시를 길게 늫여놓은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금강>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결여 되어 있다든지, 작가의 주관이 불쑥불쑥 끼어든다든지, 역사적 사고가 단순화되어 나타난다든지 하는 지적도 함께 받는다. 때문에 <금강>은 당대의 뛰어난 시적 업적으로 평가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체념주의와 허무주의, 토속적인 샤머니즘에 근거한 운명론적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금강> 中
1/ 우리들의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
울타리마다 담쟁이넌출 익어가고/ 밭머리에 수수모감 보일 때면/ 어디서라 없이 새 보는 소리가 들린다.//
우이여! 훠어이!//
쇠방울소리 뿌리면서/ 순사의 자전거가 아득한 길을 사라지고/ 그럴 때면 우리들은 흙토방 아래/ 가슴 두근거리며/ 노래 배워 주던 그 양품장수 할머닐 기다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잘은 몰랐지만 그 무렵/ 그 노랜 침장이에게 잡혀가는/ 노래라 했다.//
지금, 이름은 달라졌지만/ 정오(正午)가 되면 그 하늘 아래도 오포(午砲)가 울리었다./ 일 많이 한 사람 밥 많이 먹고/ 일하지 않은 사람 밥 먹지 마라,/ 오우우 …… 하고,//
질앗티/ 콩이삭 벼이삭 줍다 보면 하늘을/ 비행기 편대가 날아가고/ 그때마다 엄마는 그늘진 얼굴로/ 내 손 꼭 쥐며/ 밭두덕길 재촉했지.//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 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
앞마을 뒷동산 해만 뜨면/ 철없는 강아지처럼 뛰어 다니는 기억 속에/ 그래서 그분들은 이따금/ 이야기의 씨를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리.//
그 이야기의 씨들은/ 떡잎이 솟고 가지가 갈라져/ 어느 가을 무성하게 꽃피리라.//
그 일을 그분들은 예감했던 걸까./ 그래서 눈보라치는 동짓달/ 콩강개 묻힌 아랫목에서/ 숨막히는 삼복(三伏) 순이 엄마 목매었던/ 그 정자나무 근처에서 부채로 메밋소리/ 날리며 조심조심 이야기했던 걸까.//
배꼽 내놓고/ 아랫배 긁는/ 그 코흘리개 꼬마들에게.//(후략…)
<봄은>
1968년(39세) <한국일보>에 발표한 작품으로, 역사적 자각과 당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외세에 의한 민족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자각에 의한 자주 통일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겨울’, ‘봄’, ‘쇠붙이’ 등의 상징으로 시 전체를 전개하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 민족에게 아픔을 주고 있는 민족 분단은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고 제2차 대전 후, 미 · 소(美蘇) 양대 진영의 긴장과 대립의 결과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겪는 이 분단의 아픔을 외세에 의해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통일은 우리 민족 전체의 가슴 속에서 움터야 한다. ‘겨울’은 민족의 분단 상황을, ‘눈보라’는 분단의 고통을 상징하고 있다. ‘바다’와 ‘대륙 밖’은 주변 국가, 즉 외세를 상징한다. 통일이 이루어지면 동족 사이의 증오와 대결은 사라지고 새로운 화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미움의 쇠붙이’는 은유로써 동족 간의 증오로 가득 찬 군사적 대결을 뜻한다.
이런 시는 관념적인 시어의 나열이나 구호에 그치기 쉬운데 반해 적절한 상징과 비유로 형상화 하여 서정시로 승화시켰다는 점, 작가의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노래하였다는 점 등에서 한국 시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봄은>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1969년(40세) <고대 문화>에 발표한 시로, 민중의 의지를 서사시로 표현한 장편 서사시 <금강>의 제9장에도 삽입된 작품이기도 하다.
내용은 길이에 비해 단순하며, 먹구름 낀 하늘 아래에서 머리에 쇠 항아리를 덮고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백성들의 삶이 시작 동기로 되어 있다. 한 번도 맑은 하늘 아래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 보지 못했던 이 땅의 사람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현실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몇 군데 상징적인 표현이 있으나, 구체성을 띤 시이기 때문에 난해하거나 모호한 표현은 없다. 서정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진실하고 힘찬 어조가 감동의 깊이를 더해 주는 작품이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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