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테마 73. 김수영


김수영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김수영(金洙暎, 1926~1968)은 서울 종로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김수영의 가문은 본래 무반 계급으로, 경기도와 강원도에 널따란 땅을 가지고 해마다 4백여 석을 거둬들이는 지주 집안이었지만 일제 강점기 급변하는 사회 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서서히 몰락하였다고 한다. 

김수영은 대여섯 살 때부터 유치원과 서당에 나가 한문을 배우고, 1934년(9세)부터는 효제초등학교의 전신인 어의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전 학년 우등으로 졸업한다. 그러나 보통 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 폐렴과 늑막염 때문에 1년쯤 학업을 쉬었고, 결국 당대 수재들이 진학하던 경기도립상업학교 입학에 낙방하고 2차로 응시한 선린상업에도 떨어져 선린상업의 야간부에 진학했다. 

1941년(16세) 김수영은 선린상업 졸업 후 일본으로 가서 도쿄상업대학 전문부에서 공부하였다. 그곳에서 김수영은 한동안 연극에 빠져 들었다. 1945년(20세) 해방 뒤 귀국한 후에는 친구와 몇 달 간 영어 학원을 경영하기도 하였으며, 연희전문 영문과에 편입했다가 이듬해에 그만두었다. 1945년(20세)에는 연극에서 시 창작으로 진로를 바꾸어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오고, 이어 「공자의 생활난」을 발표한다. 

한국 전쟁과 1950년대 

1950년(25세) 6 · 25 전쟁이 터지자 영어 강사 노릇을 하고 있던 김수영은 미처 피난을 가지 못했다가 인민군이 퇴각할 때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이북으로 끌려간다. 이후 유엔군이 평양 일대를 장악하면서 겨우 풀려났지만, 얼마 후에는 충무로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거제도에서 김수영은 야전 병원 외과 원장의 통역으로 있다가 풀려나고, 이후 미8군 수송관의 통역, 선린상고 영어 교사, 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등을 거쳤다. ‘후반기’에 동인으로 참여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적 문법을 발견한 것도 이 시기이다.

1955년(30세) 무렵부터는 마포구로 이사하여 양계와 번역을 하며 힘겹게 가족을 부양하였다. 당시 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했기 때문에 원고료를 받으면 그것을 동료들의 막걸리 값으로 푸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수영은 원고료를 꼬박꼬박 집에 갖다 주어 문인들의 지탄과 모욕을 받는다. 이 무렵 그의 별명은 ‘노랭이’였다. 1950년대의 김수영에게 있어 글쓰기와 번역은 ‘예술 활동’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벌기 위한 노동이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1958년(33세)에는 첫 단독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발간하였다.

1960년대의 작품 활동

난해시에서 참여시로, 서정시에서 혁명시로 나아가던 김수영은 1960년(35세) 4 · 19와 함께 비로소 시인으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 19 전에 내놓은 「하…… 그림자가 없다」에서 이미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고 하며 혁명을 예감하더니, 4 · 19의 현장을 목격한 후에는 「기도」, 「육법 전서와 혁명」, 「푸른 하늘은」, 「만시지탄은 있지만」, 「나는 아리조나 카우보이야」, 「거미잡이」, 「가다오 나가다오」 등의 시와 산문 「김병욱에게 보내는 편지」, 「문화의 제언」 등을 쏟아냈다. 이들 작품에서 김수영은 4월 혁명과 함께 정치와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이후 서라벌예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이듬해에는 「그 방을 생각하며」 등을 써 현실에 대한 비애를 꾸준히 표현하였다.

한편 김수영은 1968년(43세) 「시여, 침을 뱉어라」, 「반시론」 등을 통해 독창적인 시론을 발표하여 날카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지식인의 사회 참여」라는 평론을 낸 후에는 <조선일보>를 통해 이어령과 몇 차례에 걸쳐 문학의 자유와 진보적 자세에 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1968년(43세) 6월 15일, 김수영은 보름쯤 전에 쓴 「풀」 등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주고 늦게까지 술을 마신다. 이날 함께 술을 마셨던 이병주는 김수영에게 운전사가 딸린 자신의 폭스바겐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김수영은 이를 뿌리친 채 버스를 탔다가, 그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돌진한 다른 버스에 치여 이튿날 아침 병원에서 숨졌다.

사후인 1974년에는 시선집 <거대한 뿌리>가, 1975년에는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1976년에는 시집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 1979년에는 산문집 <퓨리턴의 초상>이 잇달아 나오고, 이후에도 여러 출판사에서 앞 다투어 김수영의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1982년에는 그간 김수영 문학상을 주관해 오던 민음사에서 <김수영 전집>이 출간되었다.

김수영 시인(오른쪽에서 두 번재)

김수영의 문학관

김수영은 1968년(43세) 「시여, 침을 뱉어라」, 「반시론」, 「지식인의 사회 참여」 등의 평론을 통해 독창적인 시론을 펼쳤다. 그는 “시인을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으며 또 자유를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생활의 고뇌나 어려움을 맹목적으로 폭로하는 극단적 참여시와 기교만으로 이루어진 순수시 양쪽에 비난을 퍼붓는다.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김수영은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내놓은 후 이어령과 논쟁을 벌인 바 있다.

여기서 김수영은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라는 명제를 꺼내 들었다. 문학이 내적 자유를 추구한다면 기존의 문학 형식에 대한 위협이 되고, 외향적인 것을 추구하면 기성 사회를 위협하게 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불온하다는 것이다. 또한 문학의 본질은 꿈과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며, 문학이나 예술이 단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만을 승인해야 한다는 강요를 받을 때 예술에 위기가 닥친다고 하였다.

“시여, 침을 뱉어라.”

김수영은 1968년(43세) 4월 부산의 한 문학 세미나에 참여하여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마 있다. 여기서 그는 파격적인 발언을 하여 청중을 당혹하게 한다. 시작(時作)은 머리나 심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것이며, 이는 곧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이때 ‘침을 뱉는 일’이란 기존의 문학이 아닌 ‘새로운’ 문학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김수영은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으며,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형식’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시의 내용과 형식, 현실성과 예술성은 이원론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동일한 것이라는 논리이다.

김수영의 시

4 · 19 이전 시

김수영의 4 · 19 이전 시는 모더니즘의 흐름에 서 있다.

「공자의 생활난」

1945년(20세) 발표한 작품으로, 지면에 발표한 두 번째 시이다. 대단히 난해한 시로, 김수영의 초기 시 세계를 흐르는 모더니즘의 색채를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외적 특징을 살펴보면 1 · 2․ · 연과 4 · 5연이 형태상은 물론, 표현상으로도 서로 구별됨을 알 수 있다. 앞 단락은 세 연이 모두 2행씩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그 의미 파악이 쉽지 않은 데 비해, 뒤의 단락은 형태가 안정되지 않으면서도 그 의미는 쉽게 드러난다. 또한, 앞 단락은 안정된 형태로 일정한 호흡을 주면서도 비약이 나타나지만, 뒷 단락은 직설적인 기술로 되어 있으며 빠른 호흡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공자의 생활난」에서 ‘공자’는 세상의 허위,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시인을 표상하며, 그런 ‘공자’가 가혹한 현실 세계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갈등을 ‘생활난’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자의 생활난」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作戰)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이태리어(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병풍」

1956년(31세) <현대 문학>에 발표한 시로, 김수영 스스로 자신의 현대시의 출발작이라며 높이 평가한 작품이다.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고도의 감정적 절제가 돋보이는 주지적 경향의 모더니즘 시이다. 이러한 감정의 절제는 거의 모든 문장이 ‘끊어준다’, ‘무관심하다’, ‘있다’ 등의 평서형 종결 어미를 취하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하며, ‘병풍’, ‘용’, ‘낙일’ 등 우리 고유의 동양적 정서를 함축하는 시어를 통해 죽음의 현대적 이미지를 동양적 정서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화자는 문상(問喪)을 와서 주검을 가리고 있는 ‘병풍’을 바라보며 죽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병풍’ 뒤에 누워 있는 주검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고, ‘병풍’에 그려져 있는 예술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인생의 허무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병풍’은 화자의 인식의 추이 과정에 따라 ‘사전적 의미 → 죽음의 의미 → 예술의 의미’로 발전 · 확산된다.

「병풍」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醉)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無關心)하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虛僞)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 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눈」

1957년(32세) <문학예술>에 발표한 작품이다. 김수영은 「눈」이라는 제목의 시를 세 편 썼는데, 이 시가 첫 번째의 것이며, 1961년(36세)에는 민중의 상징체로서의 눈을 노래한 「눈」을, 1966년(41세)에는 폐허에 내리는 눈을 노래한 「눈」을 발표하였다. 이 세 편의 시들은 구성이나 내용에는 차이가 크지만, ‘눈’의 이미지는 비슷하게 드러난다.

「눈」의 구조와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눈은 살아 있다’와 ‘기침을 하자’의 변형 · 반복으로 되어 있으며, 반복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점층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반복은 시의 내용과 형식에서 각각 의미의 선명성과 외형적 운율을 확보해 준다. 아울러 눈과 기침(또는 가래)의 대조를 통한 상징적 의미의 해석은 이 시를 이해하는 데 열쇠를 제공해 준다.

제1연은 읽는 이를 매우 당황하게 만들면서 첫 구절이 시작된다. ‘눈은 살아 있다.’ 그것도 떨어지는 눈이 아닌 ‘떨어진’ 눈이요,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 1연만 가지고 눈의 의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우리가 전통적으로 느껴온 ‘눈’의 서정적 이미지와는 다른, 살아 있는 존재, 순수한 생명적 존재로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제2연은 설상가상이다. 갑자기 ‘기침을 하자’니, 그것도 눈에 대고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고 젊은 시인에게 권유한다. 젊은 시인은 아마 평소에 마음 놓고 기침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의 ‘기침’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가지게 된 소시민성, 불순한 일상성, 속물성을 뜻하며, ‘기침을 하자’는 것은 그것들을 토해 내자는 의미이다. 그 반대편의 ‘눈’은 순수성, 비속물성, 영원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제3연은 제1연의 반복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눈은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다. ‘죽음을 잊어버린 육체와 영혼을 위하여’ 살아 있는 것이다. 일상에 더럽혀진 자에게는 보이지 않고 죽음을 초월한 순수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이 있는 자에게만 눈은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제4연은 제2연의 되풀이다. 기침을 하다 보면 ‘가래’가 나온다. 가장 순수해야 할 젊은 시인은 이미 가래가 가득하다. 곧 소시민성, 불순한 일상성, 속물성이 가득한 것이다. 시인은 바로 이 불순한 것들을 속 시원히 내뱉자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눈의 순수성, 비속물성, 영원성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더러운 일상성을 씻어 내라는 권유를 하고 있다. 눈과 기침(또는 가래)의 대비를 통한 고도의 상징적 수법과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돋보인다. 눈을 제재로 하여 순수한 삶에의 의지를 표현한 주지시이다. 

「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자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폭포」

1959년(34세)의 첫 단독 시집 <달나라의 장난>에 수록한 작품으로, 자연물에 대한 지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주지시이다. ‘폭포’를 소재로 하여 사회적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자세를 보여 준다. ‘폭포’는 사회 현실의 부조리와 불의에 대해 항상 깨어있는 지성인으로 일신상의 안일만을 탐하여 양심을 저버리고 사회 현실을 외면하는 소시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선구자적 인물로 비유되어 있다. 단순하고 힘찬 언어에서 양심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는 시 정신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시가 여타의 서정시와 사뭇 다른 인상을 주는 까닭은 아마도 폭포의 아름답고 장엄한 광경을 개인적 감정을 통해 표출하지 않고, 물줄기의 낙하(落下)라는 자연 현상에서 무엇인가 하는 정신적 의미, 그리고 사회 현실에 대한 자각과 현실에 대응할 행동 양식을 찾아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폭포」

폭포(瀑布)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달나라의 장난」

1959년(34세) 발간한 첫 단독 시집 <달나라의 장난>의 표제시이다. 한 편의 산문을 대하는 것 같은 이 시는 팽이를 돌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화자가 그 속에서 발견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상을 자신의 삶에 적용함으로써 그간의 수동적인 삶에서 탈피하려는 진지한 생활 자세를 보여 준다.

‘팽이 돌리기’는 어른들에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놀이이자 돌지 않으면 쓰러지는 속성을 갖고 있는 놀이로서, 화자는 팽이가 도는 것을 단순히 유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음으로써 팽이는 곧 화자의 모습을 의미한다. 

또한, ‘장난’은 ‘진지함’과 상반되는 행위로 도시적, 관습적인 대상의 인식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일상의 상투성에서 벗어난 새로움을 의식하는 행위인 어린이들의 팽이 놀이를 바라보는 순간, 화자는 ‘살아가는 것이 신비로울’ 뿐 아니라,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이는’ ‘별세계’ 같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제목 ‘달나라의 장난’으로 제시된 이 팽이 놀이는 일상의 현실적 가치와는 구별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상을 표상하게 된다. 현실 세계의 ‘팽이 돌리기’에서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새로운 관념 세계를 발견한 화자는 돌지 않는 팽이는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자세로 변모된다. 다시 말해,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화자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팽이 돌리기를 항상 답보 상태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이런 화자의 모습과는 달리, 멈출 줄 모르고 끊임없이 도는 팽이는 마치 ‘수천 년 전의 성인’ 같은 모습으로 화자에게 각인됨으로써 ‘제트기 벽화’, ‘비행기 프로펠러’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사회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생활하지 못한 자신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쳐 준다. 그러므로 팽이는 줄기차게 돌아가면서 ‘스스로 도는 힘’을 갖도록 화자의 의식을 자극할 뿐 아니라, 나아가 독자 모두의 의식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機) 벽화(壁畵)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사령」

1959년(34세) <달나라의 장난>에 실린 작품이다. ‘죽은 영혼[死靈]’이라는 뜻의 제목이 암시하듯 자유와 정의가 그저 ‘활자’로만 존재하는 부도덕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김수영 자신의 영혼을 자책하고 비판하는 작품이다. 자유와 정의가 실제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 사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 사회라 할 수 없으며,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진리도 참된 진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화자는 ‘예언적 지성’으로 불리는 시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소시민적 지식인으로 전락해 버린 자신의 영혼을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여긴다.

현실의 부도덕성을 누구보다 깊이 통찰하고 있으면서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분노는 현실과 자아 일체를 부정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 그것은 지식인 모두의 반성을 촉구하고 비판과 저항의 정신이 용출(湧出)하기를 희망하는 화자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화자가 파악하는 현실은 자유와 정의가 상실된, 책으로만 위장되어 있는 거짓된 세계이다. 이러한 현실 세계의 부도덕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행동화하지 못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분노는 결국 현실과 자기 자신 모두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거짓된 현실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겠다고 다짐해 보기도 하지만, 그 행동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수반하는 것임을 아는 화자는 다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라며 절망할 뿐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솔직한 자기반성의 모습을 반복, 강조함으로써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 모두의 타협적 행동을 준엄하게 추궁함은 물론, 나아가 그들에게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는 주술적 힘을 보여 주기도 한다.

「사령」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1960년대 시

김수영에게 4 · 19 혁명은 시 세계의 전면적인 변모를 가져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1950년대를 철저한 모더니스트로 통과한 김수영은 1960년 4월19일을 기점으로 해서 참여적인 사실주의 시인으로 변모한다. 「기도」, 「육법 전서와 혁명」, 「푸른 하늘을」, 「만시지탄은 있지만」, 「그 방을 생각하며」 등 4 · 19를 직접 다룬 일련의 시편들은 물론이고, 「가다오 나가다오」, 「거대한 뿌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사랑의 변주곡」 등 현실의 치부를 구체적이면서도 신랄하게 까발린 시들 역시 직 · 간접적으로 4 · 19의 영향 아래 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같은 변모의 궁극은 뜻밖의 교통사고로 숨지기 불과 보름 전에 토해놓은 절창 「풀」이다. 산문투의 장광설과 거칠 것 없는 발성으로 특징지어지던 김수영 시세계의 또 한 번의 변모를 예감케 하는 이 시가 그 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는 사실은 한국문학사의 안타까움이다.

「푸른 하늘을」

1960년(35세) 4 · 19 직후에 쓴 시로, 사후 1974년 <거대한 뿌리>에 실렸다. 중심에 ‘혁명’과 ‘피’를 놓고 자유를 위한 투쟁의 어려움을 절규하고 있으며, 자유의 표면만을 훑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 있는 자유 정신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는 작품이다. 혁명의 본래적 의의에 대한 환기이며 그것을 이루고 있지 못하고 있는 4.19의 진행과정에 대한 냉정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4 · 19를 염두에 둘 때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라는 첫 명제는 쉽게 이해되는 것처럼 보인다. 4 · 19는 학생과 시민들의 피를 대가로 성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이 명제는 “올바른 사회가 수립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희생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혁명에는 전체적 자기 변혁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자기 변혁은 자신의 완전한 파괴와 새로운 구성을 요구한다. 자유에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혁명이 고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철저한 자기 변혁을 위한 고통과 극기를 스스로 감당해내야 하니 외롭지 않을 수 없다.

김수영은 자유란 타인이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수동적 ·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적극적 · 실천적 개념임을 확신한다. 따라서 ‘노고지리’의 비상만을 보고 자유를 노래하는 기존 시인들의 온건적이고 순응적인 태도를 비판함은 물론이고, ‘푸른 하늘’이라는 높고 아름다운 자유를 향한 비상은 ‘피의 냄새’라는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투쟁과 노력을 통해서 근접할 수 있음을 푸름과 붉음이라는 색채의 대조를 통해 뚜렷이 제시하고 있다.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사후인 1974년 <거대한 뿌리>에 실린 시로, 김수영 자신의 소시민적 행동을 진솔하게 보여 준다.

화자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자신의 초상(肖像)을 발견하고, 그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시의 경향이나 민중 시인으로서의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알게 된다. ‘땅 주인’이나 ‘구청 직원’ 또는 ‘동회 직원’으로 표현된 소위 가진 자, 힘 있는 자에게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이발장이’나 ‘야경꾼’들로 대표된 가지지 못한 자, 힘없는 자에게는 단돈 일 원 때문에 흥분하는 것이다.

또 화자는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다 ‘붙잡혀 간’ 소설가를 보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대항하지 못하고, ‘설렁탕집’에서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한다. 이렇게 커다란 부정과 불의에는 대항하지 못하면서도 사소한 것에만 흥분하고 분개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봄으로써 마침내 시인은 자기모멸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 또한,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는 자신의 방관자적 자세를 확인한 그는 ‘모래’, ‘풀’, ‘바람’보다도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비판, 반성하게 된다.

결국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아무 죄 없는 소설가를 구속하거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에는 정면에서 대적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의식을 폭로, 고발하는 진지한 자기반성을 통해 자신의 최후의 작품인 「풀」라는 걸작을 창작하게 되는 정신적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풀」

1968년(43세) <창작과 비평> 가을 호에 실린 작품으로, 김수영이 사망하기 보름쯤 전에 쓴 마지막 시이다.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자연 현상 속에서 인간 세계의 여러 문제를 찾아내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사소한 생명과 그것을 억누르려는 거대한 힘과의 싸움을 반복되는 단순한 구조의 말로써 그려내고 있다.

「풀」에서 ‘풀’과 ‘바람’의 싸움은 이 세상에 있는 연약한 민중들의 굳센 생명력과 그것을 억누르고 괴롭히려는 세력의 싸움이다. 이 싸움을 노래하면서 김수영은 하잘것없어 보이는 생명의 끈질김이야말로 어떤 불의한 외부의 억압도 이겨내는 힘임을 보여 준다.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