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보낸 마지막날 밤에 '쿠라쿠라'를 찾았다.
구글맵으로 찾아갔는데, 바로 앞에 있으면서도 간판이 안쪽에 있어 눈에 안 띄어서 주변을 한참 맴돌았다.
내부는 뭔가 정통 일본식 선술집 느낌이다.
<명탐정 코난>의 코고로 아저씨가 경마장에서 돈 따고 올 법한 분위기...?
벽 찬장에 정종 병 가득하다. 사케 한 잔 마실까 잠시 고민했는데 혼자서는 저거 한 병을 도저히 다 마실 자신이 없어서 패스. 다음날 출국이라 뒀다가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근데 안 먹은 거 후회함. 한국 가면 사케 비싼데ㅠ
일본 와서 선술집에 앉아 다찌에 앉아 있으니 고독한 미식가가 된 느낌이다.
영어 메뉴판이 있긴 한데 모든 메뉴가 다 영어 메뉴판에 있는 건 아니한다. 그래서 온 정신을 집중해서(ㅋㅋㅋ) 나의 모든 히라가나 가타카타 읽기 능력과 한자 능력, 일본어 어휘 능력을 발휘해 이것저것 주문했다.
먹는 분야에 한해서는 많은 언어권에서 상당한 어휘력을 가지고 있는 게 함정.
6시가 좀 안 된 시간이라 한산했다. 나를 빼면 좌식 좌석에 아이 한 명 포함한 가족이 단란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정도. 그런데 나올 때쯤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우선 나마비-루 한 잔 주문하구요....
생맥주는 진리지.
이날 날씨가 꽤 더웠던지라 꿀떡꿀떡 잘 넘어갔다. 원래 맥주 잘 못 마시는데.
이집은 가격이 합리적이다. 나오는 것에 비해 싼 편이다.
사시미 세트가 있었는데 여러 가지 요리를 먹고 싶었던 터라 절반만 줄 수 있냐고 하니 흔쾌히 그렇게 해 줬다.
그래서 말린 오징어 튀김과 사시미로 가볍게 시작.
오징어튀김은 시치미를 뿌린 마요네즈, 레몬 조각과 함께 준다.
요거이 맛있다... 딱 맥주 안주.
사시미는 참치, 도미, 나머지 하나는....
잿방어인가요? 뭐지...
토막내듯 도톰하게 썰어 내 준다.
식감이 참 좋다. 숙성회인 듯.
참치는 뭐 두말할 것 없구요. 참다랑어 적신인 듯.
하나씩 사라지는 게 가슴아프도록 아쉬웠던 사시미.
그냥 풀 사이즈로 달라고 할 걸.
요리하는 모습이 말 그대로 훤히 보여서 재밌었다.
직원들이 정말 프로다. 적은 인원이 이리저리 움직여 가며 쉴새없이 요리를 만든다.
그다음으로 주문한 시샤모 구이.
이때부터 나는 먹은 것들과 가격을 조용히 핸드폰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이 주문할 것을 직감했기 때문에.
꾸덕하게 말린 걸 구워서 준다. 맛있다.
한 마리인데 레몬 두께 실화인가요. 노량진에서는 모듬회 대자를 시켜도 종잇장 같은 레몬 두 장(!) 주던데.
알배기다. 요거 꼭 먹어야 한다. 한 마리라 더 맛있음.
어후... 달랑 한 마리인데도 어찌나 정성스럽게 굽던지.
닭껍질 꼬치도 하나. 쪽파 사랑해서 하나하나 다 집어먹었다.
진상 같이 자꾸 한 개씩만 달라고 하는데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다 맞춰 준다.
심지어 가격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다섯 개에 1000엔이면, 하나 시키면 200엔 받는다.
이건 정말 꼭 먹어야 할 듯....
닭껍질꼬치가 맛없기도 힘들지만, 이렇게 접시에 하나씩 나오는 요리를 즐기는 재미는 또 색다르니까.
메뉴판을 또 펼쳤다. 'Japanese Mushroom' 어쩌구가 있어서 기대하며 시켰는데....
팽이버섯이 나왔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얔ㅋㅋㅋ 그래도 나왔으니 일단 다 먹음ㅋㅋㅋㅋㅋㅋㅋ
팽이버섯이 일본 것도 아닌데 자기들 마음대로 재패니스 머쉬룸이라니ㅋㅋㅋㅋ
재패니스 머쉬룸님은 뭔가 느낌이 나랑 안 맞아서 와사비 좀 달라고 했다.
저쪽 테이블로 뭔가 시커먼 게 나가기에,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곁눈질로 보고 무턱대고 '나도 저거 하나 주세요!!' 했다.
이 음식의 정체는...
가지였다. 헐. 누가 위 사진을 보고 '이건 가지 요리임!' 하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맛있어서 맛있게 먹음.
이밖에 돈까스, 계란말이, 연근튀김, 안키모(아귀간)도 먹었다. 생맥주도 계속 먹었다.
나는 혼자 온 여자애인데 대체 어떻게 이렇게 먹을 수 있단 말인가...는 내 생각이 아니라 요기 직원들의 표정에서 읽은 것이다.
아무튼 요래 먹고 17만원 넘게 나왔다. 나올 때 VIP 대접 받았다. 돈 아깝지 않은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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