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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65. 오영수, 손창섭, 장용학

2018. 6. 24. by 솜글

1950년대에는 <사상계>, <현대 문학>, <문학예술>, <자유문학>등 새로운 문학 지면이 만들어지는데, 특히 <사상계>는 문학보다는 사상의 조류에 접근 가능하게 하는 지식을 주로 전달하던 잡지로, 시대를 보는 객관적 시선과 비판적 태도로 젊은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환영 받다가 점차 문학지로 성격이 바뀐다. 그러자 이들 문예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한글세대 소설가들이 등장하는데, 오영수, 손창섭, 장용학이 대표적이다.


오영수

오영수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오영수(吳永壽, 1911~1979)는 경남 울주의 바닷가 근처에서 빈농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1921(11)경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1928(18)에야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릴 때부터 글과 글씨를 잘 썼는데, 학교를 졸업한 후 면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하다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 1932(22) 혼자 일본으로 들어간다. 늦은 나이에 오사카에서 중학을 마친 오영수는 니혼 대학에 입학하지만 각기병에 걸리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학업에 미련이 남아 1937(27) 다시 도쿄 국민 예술원에 입학하여 고학으로 공부를 마쳤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마을 젊은이들에게 역사, 한글, 음악, 연극 등을 가르쳤는데, 일제의 강압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고 1939(29) 만주로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한다. 1943(34)에는 어머니를 잃고 아내의 직장인 경남 양산으로 이사해서 다시 면사무소 서기로 일한다. 이 시기에 김동리와 사귀면서 문학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후 김동리는 오영수가 등단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문단 생활의 시작

1945(35) 해방 후에는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48(38) <산골 아가>, 1949(39) <6월의 아침>, 소설 <남이와 엿장수>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발을 들였다. 1950(40)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머루>2등으로 뽑혀 늦은 나이에 정식으로 소설가로 등장한다.

소설 창작에 열을 올리려는 찰나, 갑자기 6 · 25가 터지는 바람에 오영수는 유치환과 함께 복무하였다가 다시 피난지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재개하는데, 이때 부산으로 피난 온 여러 작가들에게 거처와 음식을 제공하며 그들을 따뜻하게 위로하였다. 한편 1951(41)에는 <두 피난민>, <이사>를 발표하고, 1952년의 <화산댁이>, <노파와 소년과 닭>을 낸 데 이어 환도 무렵인 1953(43) <두 노인><갯마을>을 발표해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6 · 25 이후

피난지에서 동고동락하던 문인들이 환도 후 서울로 돌아가자 오영수도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가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1955(45)에는 <현대 문학>의 창간에 참여하여 이후 11년 간 편집장으로 근무하며 꾸준히 작품을 낸다.

1960(50)에는 드물게 제주 4 · 3 항쟁을 다룬 작품 <후일담>을 내고, 이듬해에는 <은냇골 이야기>를 발표하였다. 이 무렵부터 위궤양이 도져 요양 생활에 들어가는데, 그러면서도 1960년대 말까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다.

1970년 전후에는 위궤양 때문에 큰 수술을 받는데, 그 와중에도 <입원기>를 쓰는 열정을 보인다. 퇴원 후 1970년대 내내 <어느 여름밤의 대화>, <어린 상록수> 등을 발표하지만, 1979(69) <문학사상>의 필화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몸 져 누워 일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오영수의 소설

<고무신>

1949(39)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한 단편이다.19499월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다. 원제는 <남이와 엿장수>, 고무신이라는 소재를 사랑의 상징으로 확장하여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고무신>
어느 날 저녁, 철수의 아이들이 식모 남이의 옥색 고무신을 엿으로 바꿔 먹는다. 남이는 엿장수에게 신을 내놓으라고 하고, 엿장수는 흥분을 가라앉히라며 히죽히죽 웃는다. 그때 벌 한 마리가 남이의 가슴패기로 기어오르고, 엿장수는 남이의 가슴패기의 벌을 손으로 잡다가 손을 벌에 쏘인다. 남이는 가슴에 손을 댄 엿장수의 행동에 민망해한다. 남이는 벌에 쏘여 난처해하는 엿장수를 보고 웃음이 나와 얼른 집에 들어갔고 엿장수는 맥없이 엿판께로 돌아왔다. 엿장수는 그 후 계속 이 동네를 찾아와 철수네 집을 배회하곤 했다.
그 무렵 남이의 아버지는 남이를 결혼시켜야 하니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남이는 아버지의 성화에 철수 내외가 마련해준 혼수 보퉁이를 들고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마침 엿장수의 가위 소리에 남이는 영이와 윤이를 데리고 엿장수에게 가서 엿을 사주었다. 엿장수는 예쁘게 차려입은 남이를 보고 남이가 꽃놀음을 가는 줄 알고 울음고개로 질러갔다. 철수 내외는 남이의 새 옥색 고무신을 보며 궁금했으나 물어볼 수 없었다. 울음고개로 질러간 엿장수는 꽃놀이를 가는 줄 알았던 남이가 웬 영감을 따라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산댁이>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2(42) 1<문예>에 발표된 단편이다. 두메 시골에 사는 화산댁이가 도시에서 살림을 차린 아들네 집을 찾아 왔다가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그린 소설이다.

화산댁이는 도시 사람이 되어 버린 아들과 도시적 속물성이 몸에 밴 며느리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가족 간의 사랑이 사라진 것에 대해 실망한다. 그리고 화산댁이는 익숙하지 않은 도시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의 불편함을 확인하고, 자신이 살던 곳인 두메산골로 미련 없이 돌아간다. 이를 통해 시골의 순박함과 따스한 인정을 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오영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서민층 생활의 애환을 애정을 가지고 다룬 오영수의 작품 세계는 현대 사회에서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각박한 현실에 따사로운 인정이 샘솟게 한다.

<화산댁이>
화산댁이는 경주에서 비를 맞아가며 막내아들 집을 찾고 있었다. 겨우 찾은 집에서는 웬 여인이 나와 화산댁이를 도둑인 양 대한다. 큰 길로 나온 화산댁이는 길을 가고 있는 아들을 보고 크게 부르지만 아들은 못 들었는지 마냥 간다. 화산댁이 계속 소리쳐 부르자 아들이 화산댁이를 알아보고, 아들은 화산댁이를 보자마자 집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아들을 따라간 곳은 조금 전에 왔던 그 집이었다.
화산댁이는 휘황찬란한 아들네 집이 무척 거북스럽다. 저녁을 먹으면서 화산댁이는 자신의 밥을 아들 밥그릇에 퍼줬는데, 아들이 버럭 역정을 내며 소리친다. 화산댁이는 순간 설움이 왈칵 치밀어 오른다.
저녁을 먹고 며느리는 바느질을 하고 손녀딸은 아들 등에 매달렸다. 화산댁이는 보따리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꿀밤 떡을 내놓았지만, 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 잎 베어 문 손녀딸도 다시 뱉어낸다. 화산댁이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서운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화장실을 찾지 못해 으슥한 담벼락에 똥을 누었다.
이튿날 이웃집 사람들이 누가 똥을 쌌다고 난리를 피웠다. 화산댁이는 창피한 것도 무릅쓰고 아들 내외가 깰까봐 앞집으로 건너가 똥을 치웠다. 그런데, 똥을 갖다버린 쓰레기통에는 화산댁이가 가져온 도토리 떡이 보자기째 버려져 있었다. 간밤에 아들이 갖다버린 짚신도 처박혀 있었다. 화산댁이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 길로 화산댁이는 막내아들 집을 나와 두메산골로 향한다.

<갯마을>

1953(43) <문예>에 발표된 단편으로, 오영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이다. ‘해순이라는 여인을 통해 갯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서민적 정취를 담아내고 있으며, 짧고 간결한 문체, 서정적 분위기가 돋보인다.

갯마을은 사회 현실과 두절된 공간이며 생존하는 인간의 삶의 원형이 이루어지는 배경으로서의 장소이다. 문명이 미치지 않는 갯마을은 두 번째 남편을 앗아가는 징용만 아니라면 시대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초시간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고등어 철이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에 맞추어 해순이가 바다로 회귀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삶을 동일시하는 오영수의 이상 세계를 형상화하는 장치이다. 이런 점에서 <갯마을>은 폐쇄적인 시대상황의 출구로서 인간존재의 근원적이고 토착적인 내면을 추구했던 194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단편소설들과 동일 맥락에 놓여 있다. 이러한 성향이 오영수의 후기 작품에서는 현대 사회의 인간 상실의 병리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오염된 도시 문명과 대비되는 건강한 원시적 자연과 농촌 공동체의 유풍에 대한 찬미의 형태로 지속된다.

<갯마을>
해순이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에 사는 스물세 살 청상과부로, 시어머니와 시동생을 부양하며 살아간다. 해순이는 어머니가 뜨내기 고기잡이와 정을 통하고 낳은 사생아로, 성구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성구는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해순이는 성구가 돌아올 날을 믿고 기다리면서 바다에 대한 애착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간다.
어느 날 밤, 잠결에 해순은 사나이의 옷자락을 휘감아 잡고 성구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으나 그 사내는 성구가 아니었다. 이튿날 방바위 옆에서 한천을 펴고 있을 때 상수를 만난 해순은 그 사내가 상수였음을 알게 된다. 곧 해순이와 상수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온 마을에 돌았고, 시어머니는 성구의 제사를 지내고 해순이를 상수에게 개가시켜 준다. 해순이는 상수를 따라 산골로 떠났다.
그런데 해순이가 떠나자 갯마을은 활기를 잃는다. 미역바리를 하지 못하여 미역 철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상수가 징용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해순이는 외롭게 지냈고, 어느 날 찾아온 시어머니를 따라 다시 갯마을로 가서 바다 냄새를 맞는다. 그리고 다시 갯마을에서 살리라 다짐한다.

손창섭

손창섭의 생애

문단 활동

손창섭(孫昌涉, 1922~2010)은 평양의 가난한 집안에서 2대 독자로 태어난다. 그는 1936(15) 집을 떠나 일본에서 고학으로 중학을 마친 후 니혼 대학에 들어간다. 1946(25)에는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고향으로 갔다가 1948(27) 즈음에 남쪽으로 넘어왔다.

남녘에서 국민학교 교사와 잡지사 일을 하던 그는 틈틈이 소설을 습작하여 1949(28) 단편 <얄궂은 비>를 선보이고 1952(31) <공휴일>, 1953(32) <사연기>를 추천 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나오고 같은 해 <비 오는 날>을 발표했다. 이들 초기 작품에서부터 손창섭은 모멸과 허무, 자기 모독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1955(34)에는 <혈서>, <피해자>, <저어>, <미해결의 장> 등을 발표하여 현대 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56(35)부터 1958(37)까지는 <유실몽>, <설중생>, <고독한 영웅> 등 수많은 작품을 연이어 내는데, 특히 <사상계>에 발표한 <잉여 인간>은 손창섭 전후 소설의 한 정점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으로 손창섭은 1959(38) 4회 동인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이후

1959(38)에는 첫 장편 <낙서족>과 단편집 <비 오는 날>을 간행하고, 1961(40)에는 <신의 희작>, <육체혼> 등을 발표한다. 이어 1965(44) <공포>, 1969(48) <>, 1970(49) <흑야> 드을 꾸준히 내는데, 1972(51) 갑자기 일본으로 훌쩍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 정부에서 나오는 약간의 보조금과 일본인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했는데, 주로 세계의 여러 경전에서 좋은 구절을 추려 손수 인쇄하여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지낸다.

손창섭이 돌연 절필한 이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쨌든 일본으로 간 후 그는 한국 사람과 만나려 하지 않았다. 1976(55)1977(57) 장편을 연재하긴 했으나 이는 각별한 사이였던 한국일보사 사주 장기영의 끈질긴 부탁 때문이었으며, 이후로는 어떤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0(90),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사후 2개월이 지난 후 알려졌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826027022)

손창섭의 소설

<비 오는 날>

1953(32)에 발표한 작품으로,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의 우울한 내면 심리를 다룬 전후 문학이다.

작품 제목처럼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로 절망적인 주제를 드러낸 단편이다. 작품의 배경인 부산은 한국 전쟁 중에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극적인 장소이다. 폐가와 장마라는 배경 역시 주제 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사건의 직접 제시보다 어떤 사건에 의해 환기된 심경의 변화를 그리는 데 중심을 두었으며, 객관적 인물 묘사보다는 처음부터 작가에 의해 주관화된 냉소적인 관찰로 인물 묘사가 행해지는 특이한 소설 양식을 갖고 있다. 특히 간접 화법에 의해 대화가 처리되며, 부사어 및 것이다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점이 특징이다.

<비 오는 날>
동욱은 1 · 4 후퇴 때 월남해서 누이인 동옥과 살고 있다. 원래 동욱은 대학에서 영문을 전공한 목사 지망생이고, 동옥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로, 왼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 부자유자이다. 월남 후 동욱은 미군 부대를 전전하면서 초상화를 주문 받아 동옥에게 그리게 하면서 생계를 간신히 꾸려 나간다.
동욱과 어릴 때부터 친구인 원구는 비 오는 어느 날 남매의 집을 찾아 갔는데, 혼자 있던 동옥은 원구를 냉담하게 대한다. 얼마 후 비 오는 날 원구는 그 집을 다시 찾는다. 지붕에서 비가 새어 방 안에 양동이를 받쳐 놓았는데, 빗물이 가득한 것을 버리려다 그만 쏟고 말았다. 원구는 그 때 물을 피하려고 일어나는 동옥을 보고 그제야 동옥이 불구라는 것을 안다. 이후 비 오는 날이면 원구는 자주 동욱의 집을 방문하였고, 차츰 동옥도 원구를 잘 대해 준다. 이후 동옥은 유일한 생계인 초상화 작업마저 하지 못하게 되고, 동욱은 원구에게 동옥을 자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다시 비 오는 날 그들을 찾아가니, 동옥의 돈을 빌려 간 주인 노파가 도망쳐 버리는 바람에 동옥은 더욱 절망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 들어 살던 집마저 주인이 몰래 팔고 도망가 결국 남매는 집에서도 나오게 된다.
원구가 한 달여 만에 그 집을 다시 방문했을 때 이미 남매는 떠나고 없었고, 동욱은 군대에 끌려가고 동옥은 사창가에 팔린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책감을 느낀 원구는 앓고 난 사람 모양 휘청거리는 다리로 걸어 나간다.

<잉여 인간>

1958(37) <사상계>에 발표한 단편으로, 손창섭 전후 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전후의 사회상을 통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몇 가지 유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잉여 인간이란 말 그대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남아 도는 인간을 말한다. 손창섭의 눈에는 전후 한국 사회에서 떠도는 숱한 인간이, 생존 이유가 없는, 없어도 그만인, ‘()’에 가까운 사람들로 비친 것이다.

<잉여 인간>에는 손창섭의 다른 작품에서 줄곧 보이던 불구적인 인간상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는, 긍정적 인물이자 지식인인 서만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기이함이 느껴진다. 또 다른 작품들에서는 보이지 않던 여러 모색시작을 머금고 있다는 점 역시 독특하다.

<잉여 인간>
치과 의사인 서만기의 병원에는 중학 동창인 채익준과 천봉우가 찾아와 종일 한담으로 소일한다. 이들은 소위 잉여 인간들이다. 익준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문 기사가 있으면 비분강개하여 흥분을 참지 못하는 인물이고, 봉우는 실의에 빠진 인물로 만기네 치과의 간호원인 홍인숙을 짝사랑한다.
병원 건물의 주인인 봉우의 아내는 주위의 평판이 좋지 않다. 그녀는 가난한 치과 의사인 만기를 돈으로 유혹하려 하지만 만기는 점잖게 거절한다. 봉우의 아내는 세를 올려주지 않으면 비워 달라고까지 하며 만기를 협박하지만 만기는 이를 뿌리치고, 병원을 잃고 난 후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을 한다.
어느 날 만기는 익준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익준의 집은 궁색하기 짝이 없어 장례조차 치르기 어려웠고, 만기는 봉우 아내에게 돈을 빌려 장례식을 치른다.
이후 만기는 일주일 이내에 병원과 시설 일체를 내어달라는 봉우 아내의 편지를 받는다. 익준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익준은 머리에 상처를 입고 돌아온다. 만기는 상복을 입고 철없이 매달리는 익준의 아들을 보고 장승처럼 선 채 움직일 줄을 모른다.

장용학

장용학의 생애

장용학(張龍鶴, 1921~1999)은 함북 부령에서 태어나 1940(20) 경성 중학을 졸업하고 1942(22) 일본 와세다 대학에 입학한다. 일제 말기에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1945(27) 해방 후 귀국한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집에서만 지냈고, 이때 독서와 희곡 습작에 빠져 지냈다.

1946(26)에는 청진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그 지역의 문인들과 교유했으며, 얼마 후 서울로 이주하여 경동 중학, 한양 공고, 상명 여고 등의 교사를 거치면서 서툰 한글로 습작을 한다. 그는 일본어로 초급 교육을 받고, 해방 후에는 한국어로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찢긴 세대였던 것이다.

장용학은 <육수>라는 소설을 써서 김동리에게 보냈지만 너무 길다는 이유로 게재를 거절당하고, 1949(29) <희화>를 연재하면서 비로소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1950(30)에는 <지동설><문예>에 보내지만, 당시 <문예>의 주간이었던 조연현이 그를 등단 작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추천을 새로 받으라고 요구한다. 이 일로 장용학은 문예사로 찾아가 조연현에게 언성을 높여 따지기도 하였다. 결국 장용학은 6 · 25 직전 <지동설>1차 추천을, 1952(32) 피난지 부산에서 <미련 소묘>2차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등단한다.

어느 날 장용학은 우연히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무엇인가에 눈을 뜬다. 이맘때까지만 해도 그의 국어 수준은 초보 상태였는데, 그런 서투름과 어눌함이 오히려 절망과 고통을 드러내는 데 더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이렇게 나온 것이 바로 1955(35) 발표한 <요한 시집>이다.

1962(42)에는 <원형의 전설>을 발표해 다시 한 번 문제 작가로 떠오르고, 이듬해에는 <위사가 보이는 풍경>과 수필 <창작 여담>, 1964(44)에는 <상립 신화>를 발표한다. 이 작품을 두고 평론가 유종호와 한동안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후로도 장용학은 <부화>(1965), <청동기>(1967), <잔인한 계절>(1972), <상흔>(1974), <효자 점경>(1979), <부여에 죽다>(1980), <유역>(1981) 등 이름이 잊히지 않을 정도로만 간격을 두고 작품들을 드물게 낸다. 1984(64)에는 오랫동안 일본에 대해 연구한 바를 <허구의 나라, 일본>으로 간행하는데, 어느 날부터 새 작품을 쓰지 않고 10여 년 간 작품을 내놓지 않다가 1999(79) 간암으로 세상을 뜬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https://www.yna.co.kr/view/AKR20180928073100005)

장용학의 소설

<요한 시집>

1955(35) 발표한 작품으로, 장용학이 사르트르의 <구토>와 거제로 포로수용소 체험 수기를 읽고 자극 받아 쓴 소설이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이야기로 풀어지지 않는 생경한 관념 덩어리와 난삽한 문장, 결여된 구체성이 한데 뒤얽혀 있다.

도입부에 제시된 우화에서 빛의 발원지인 바깥은 동굴 속의 토끼가 도달해야 할 하나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바깥은 이념의 혼돈과 전쟁, 억압이 없는 세계를 상징한다. 그러나 토끼가 바깥으로 나가 얻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죽음이었다. 실존의 상황으로 주어진 현실을 벗어나면 바깥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장용학은 <요한 시집>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관념 소설의 계보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요한 시집>
옛날에 깊은 동굴에서 살던 토끼가 어느 날 틈 사이로 스며든 빛에 이끌려 바깥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토끼는 마침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는 고통을 겪으며 바깥 세계로 나오지만, 그 순간 쏟아지는 빛에 눈이 멀어 쓰러져 죽는다. 토끼가 죽은 자리에는 버섯들이 돋았는데, 토끼의 후손들은 그것을 자유의 버섯이라고 부른다.
’(동호)는 전쟁 때 유엔군의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힌다. 수용소 안에서는 전쟁터보다 더 지독한 좌우 이념 싸움이 계속된다. 그곳에서 는 포로로 잡혀온 누혜를 만난다. 누혜는 한때 인민군 최고 훈장까지 받은 공산주의자였지만 이제는 그 신념을 접고 하늘만 쳐다 보며 날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누혜는 누군가로부터 가혹한 린치를 당하고 살해 위협을 받다가, 자기모멸감에 사로잡혀 철조망에 목을 매어 자살한다.
훗날 석방된 는 누혜의 어머니를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수용소나 다름없는 참혹한 실존을 다시 만난다. 누혜의 노모는 중풍에 걸린 채 굶주림 속에서 고양이가 잡아다 주는 쥐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는 누혜의 노모에게서 쥐를 빼앗아 고양이 앞에 내동댕이치고, 노모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는다. 잠시 후 는 아들 누혜를 부르며 서서히 죽어가는 노모의 모습을 지켜본다.

<원형의 전설>

1962(42) <사상계>에 발표한 작품으로, <요한 시집>과 마찬가지로 관념 소설의 계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소설이다. 화자를 미래적 인물로 설정한 점, 넘쳐나는 관념성, 생경한 소설 문법 등은 장용학이 여전히 관념성에 기댄 작가임을 보여 준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기존의 소설을 해체하고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간 전위 작가로 평가된다.

<요한 시집>에서 토끼가 동굴에서 바깥으로 나가 죽었다면, <원형의 전설>에서는 거꾸로 이장이 바깥 세계에서 동굴로 들어가 최후의 상징을 맞는다. 고전적 정신 분석학에서는 동굴을 자궁의 상징으로 보는데,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의 결말은 이장의 무의식 속에 있는 자궁 회귀 욕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원형의 전설>
벼락을 맞아 생긴 사생아인 이장은 의용군과 간첩 등으로 남북을 떠도는 동안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자신은 아버지 오택부가 여동생 기미를 강간해서 태어난 근친상간의 열매이며, 아버지 오택부는 갓난 자신을 죽이려 했었다. 이를 알게 된 이장은 증오심에 불탄다.
그러나 이장 역시 이복남매인 지야와 관계를 맺어 2대에 걸친 근친상간이 반복 · 순환되고, 결국 이장과 지야는 벼락을 맞아 무너지는 동굴 속에서 함께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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