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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66. <후반기>와 모더니즘 : 김경린, 박인환, 김규동

2018. 6. 25. by 솜글

<후반기>

<후반기>의 발간과 신세대의 출현

6 · 25 전쟁 직전 <신시론>을 펴낸 바 있던 박인환과 김경린은 1951, 피난지였던 부산에서 이봉래, 조향, 김규동 등을 끌어들여 시 전문 후반기동인을 결성한다. 이들은 1950년대를 “20세기 후반기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였으며, 시적 상상력의 근거지로 주목한 곳은 도시였다.

후반기동인 시인들은 유치환, 서정주 등의 인생파와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의 청록파를 비판하고, 반 전통성, 도시성, 서구 모더니즘 기법을 추구한다. 기성 주류 문단에서 배척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김동리, 조연현 등의 채널이 아니라 당시 비주류였던 김광섭 등의 도움을 얻어 지면을 확보하였다.

<후반기>의 시인들은 앞 세대에 반기를 들고 나타났다는 점, 현대 도시 문명을 새로운 언어와 시 정신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1930년대에 김기림, 이상, 오장환, 최재서 등이 추구했던 모더니즘과 연결된다.

<후반기>의 성격과 해체

후반기동인들은 6 · 25를 갓 겪은 터였기 때문에 1930년대의 모더니즘 계열 작품에 비해 도시 문명이나 개인의 불안에 대한 느낌이 강한 시를 주로 쓴다. 그러나 이성이나 주지주의에 입각한 서구 모더니즘과 달리, 이들은 기성세대를 부정한다는 명분 아래 젊음이나 분노를 허무, 체념 같은 감정 형태로 드러내기 일쑤였다. 때문에 <후반기>의 시인들은 현실에 대응하는 적극적 의지가 결여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부담을 느낀 이들은 끝까지 고집을 부린 박인환을 빼고는 1953년 동인 활동을 중단하기로 뜻을 모았다.

<후반기> 동인

김경린

김경린(金瓊麟, 1918~)은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1942(25) 와세다 대학 토목학과에 들어가 졸업한다. 학창 시절부터 시를 썼는데, 일본에서 한동안 모더니즘 문학 그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박인환과 함께 신시론을 결성하여 동인 중 가장 모더니스트다운 태도를 보였다. 김경린은 피난지에서 <후반기>를 꾸려 활동할 때도 기하학 용어, 공학 용어, 한문, 의도적인 관념어의 도입 등 누구보다 모더니즘 기법이 두드러진 시와 시론을 발표했다.

박인환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은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비교적 넉넉하게 자란다. 그의 아버지는 똑똑한 박인환의 교육을 위해 서울 종로구로 이사하였고, 1939(14) 박인환은 경기 중학에 입학한다. 이 무렵부터 영화와 문학에 빠져드는데, 영화관에 드나든 것이 문제가 되어 학교를 중퇴하고 여러 학교에 편입을 한다. 중학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평양의학전문대학에 들어가지만, 해방이 되자 학업을 접고 서울로 돌아왔다.

박인환은 1946(21) <거리>, 이듬해 <남풍> 등을 내놓으며 신세대 문인으로 문단에 나온다. 1950(26) 전쟁 직후에는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해 고생을 하다가, 종군 기자로 활동하던 중 피난지에서 김경린 등과 함께 후반기동인을 결성하였다. 워낙 거침없는 성격인 탓에 1952(28)에는 <현대시의 불행한 단면>처럼 도전적인 글들을 내놓아 기성 문인들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사진 출처 : 전북일보(https://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262412)

박인환은 키가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긴 데다 여름에도 정장을 입을 만큼 멋쟁이였다. 원고를 쓸 때는 구두점 하나에도 까다롭게 굴었고, 싫어하는 사람과는 차도 한 잔 같이 마시지 않는 결벽증도 보였으며, 남들에게 말을 막하는 편이었다. 한 번은 신시론을 함께 했던 친구 김수영이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쳤다가 돌아온 후 모르는 낱말을 물어보자 , 이건 네가 수용소에 있을 때 새로 생긴 말이야.”라고 대답해 상처를 준 일까지 있었다. 훗날 김수영은 박인환을 소양 없고 경박하고 값싼 유행의 숭배자라고 하였고, 이에 박인환은 김수영이 세속적인 눈치만 보는 속물이라고 헐뜯는다.

1952(28) 박인환은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하고 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등을 발표했으며, 환도령과 함께 서울로 돌아온 후에는 미국과 태평양 연안을 여행하고 돌아와 그 체험을 기행문과 연작시로 썼다. 퇴직한 후에는 시 창작에만 신경을 써서 1955(31) 단독 시집 <박인환 시선집>을 냈는데, 한때 <신시론>, <후반기>에서 보여준 모더니즘적 모습과 달리 짙은 서정성이 주를 이루는 시집이다.

박인환은 1956(32), <세월이 가면>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사후 20년인 1976<목마와 숙녀>, 1982년에는 김규동, 김경린 등 <후반기> 시절 문우들에 의해 <세월이 가면>이 출간되었다.

<목마와 숙녀>

1955(31) <시작>에 발표한 시로, 1950년대 후기 모더니즘 문학의 단면을 보여 준다. 6·25 전쟁이 가져다 준 삶에 대한 절망과 도시적 센티멘털리즘을 서정성 짙게 노래하고 있는데, 인생에 대한 허무의 단상(斷想)들을 제시하면서도 그것들이 서로 의미 상관을 지니도록 연결되기보다는 하나의 서러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는/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1955(31) <박인환 시선집>에 실린 작품이다. 엘리어트의 <4중주>의 첫 구를 빌려 전후(戰後)의 황폐한 현실로부터 느끼는 허무 의식과 불안의 시간을 극복, 초월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긴장감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이란 가정 아래 첫째 연에서는 회상과 체험뿐인 삶을, 둘째 연에서는 고뇌와 저항뿐인 삶을, 셋째 연에서는 회의와 불안만 있는 모멸적인 삶을 제시한 다음, 마지막 연에서는 그와 같은 삶에 대한 절망과 죽음의 인식을 보여 준다.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된다. T.S.엘리어트//
/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 차례의 살육(殺戮)에 복종한 생명보다도/ 더한 복수와 고독을 아는/ 고뇌와 저항일지도 모른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허물어지는/ 정적(靜寂)과 초연(硝煙)의 도시(都市) 그 암흑 속으로……/ 명상과 또다시 오지 않을 영원한 내일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유형(流刑)의 애인처럼 손잡기 위하여/ 이미 소멸된 청춘의 반역(反逆)을 회상하면서/ 회의와 불안만이 다정스러운/ 모멸(侮蔑)의 오늘을 살아 나간다.//
……아 최후로 이 성자(聖者)의 세계에/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속죄(贖罪)의 회화(繪畵) 속의 나녀(裸女)/ 회상도 고뇌도 이제는 망령(亡靈)에게 팔은/ 철없는 시인(詩人)/ 나의 눈 감지 못한/ 단순한 상태의 시체(屍體)일 것이다…….

<세월이 가면>

1956(32)의 작품으로, <목마와 숙녀>와 함께 박인환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56년 환도 후 폐허가 된 명동의 어느 술집에서 박인환이 이 시를 읊자 친구 김진섭이 즉흥적으로 곡을 붙였다 하여 노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쟁을 통해서 맛본 비운과 불안함에서 비롯되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노래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어 보헤미안처럼 고뇌하고 방황하는 시인의 찢긴 삶의 모습이 도시적 이미지를 통해 간결하게 드러난다.

참담한 전쟁을 통해서 겪은 비운과 시대적 불안함에서 비롯되는 삶의 중압감은 박인환으로 하여금 체념과 무력감에 젖게 했다. 때문에 그의 시는 쉽사리 감상에 빠지고 만다. 이 작품에서 역시 도시적 소재와 문명어를 통해 삶의 허무를 체념적 감상주의로 노래하고 있다. 특히 유리창’, ‘가로등’, ‘공원’, ‘벤치등의 시어는 후반기동인들의 시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인데, 박인환은 도시와 문명과 현실에서 시의 테마와 언어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을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이름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김규동

김규동(金奎東, 1925~2011)은 함북 경성의 의사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다. 경성고보 재학 시절에는 이 학교의 교사로 있던 김기림의 영향을 받아 모더니즘 문학에 흠뻑 빠졌다. 졸업 후에는 부모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하지만 곧 그만두었다.

1948(24) 단신으로 월남한 그는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시 <>, <산소>가 입선되어 문단에 나온다. 1952(28)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후반기>에 제2기 동인으로 가담하는데, ‘후반기동인으로는 드물게 모더니즘의 난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쉬운 시를 쓰자고 주장하였다.

1955(31)에는 첫 시집 <나비와 광장>을 펴내고, 1957(33)에는 김경린, 김수영 등과 시화집 <평화에의 종언>을 펴내면서 다시 한 번 모더니즘 문학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이듬해에는 시집 <현대의 신화>, 1959(35)에는 평론집 <새로운 시론>을 펼치는 등 꾸준한 활동을 펼친다.

얼마 후 출판사를 설립한 김규동은 출판사 운영에 노력을 쏟느라 한동안 시를 별로 짓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박인환도 요절하고 이봉래는 사업가로 변신했으며 김경린도 고위 공무원으로 자리를 잡아 버렸다. 때문에 <후반기>의 모더니즘 운동은 저절로 불꽃이 약해진다.

사진 출처 : 동아일보(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110929/40691551/1)

1972(58) 김규동은 평론집 <현대시의 연구>를 내면서 다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전과 달리 모더니즘 성향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신 현실 비판 쪽에 무게를 두었다. 이후 김규동은 각종 협의회 고문으로 나서거나 선언 대회에 참여하는 등 현실 참여 문인들과 연대하며 활동한다. 특히 1977(63) 펴낸 시집 <죽음 속의 영웅>에서는 그러한 전향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후로도 김규동은 오랫동안 시집과 수필집을 꾸준히 낸다. 2006(82)에는 만해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11년(87세) 대치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나비와 광장>

1955(31) 낸 첫 시집 <나비와 광장>의 표제시이다.

모더니스트로 출발한 김규동은 초기에는 주지주의 혹은 쉬르리얼리즘적인 색채를 보였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을 토대로 한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의 민중시로 나아가는 시 세계를 보이고 있다. <나비와 광장>은 그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계열로 전쟁으로 인해 피폐된 인간성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흰나비는 단순한 묘사의 대상이 아니라, 시적 화자를 대신하는 감정 이입된 존재로서 시적 상황에 대한 일정한 인식 상태를 보여 준다. ‘활주로’, ‘제트기’, ‘피 묻은 육체’, ‘묘지등의 시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시에서 제기된 것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 상황이다. 그와 함께 돌진하려는 흰나비’, ‘차단하는 투명한 광선의 바다’,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등의 날카로운 이미지는 죽음과 직면한 화자의 절박한 한계 상황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보다가, 결국은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의 조수에 밀려/ 말없이 이즈러진 날개를 파닥거리흰나비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 대항하여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화자의 모습이다.

그에게 화려한 희망을 갖게 하는 아름다운 영토는 인간성이 복원된 세계이지만, 현실은 신도 기적도 이미/ 승천하여 버린 지 오랜전쟁터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서만 피어난다는 모순된 희망을 찾아 또 한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준다. 이렇게 이 시는 6 · 25의 비극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을 파괴하는 전쟁에 대한 시인의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은 감각적 표현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전후 시의 한 경향이었던 모더니즘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나비와 광장>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기계처럼 작열한 작은 심장을 축일/ 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 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진공의 해안에서처럼 과묵(寡黙)한 묘지 사이사이/ 숨가쁜 Z기의 백선과 이동하는 계절 속/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燐光)의 조수에 밀려/ 이제 흰나비는 말없이 이즈러진 날개를 파닥거린다.//
하얀 미래의 어느 지점에/ 아름다운 영토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 화려한 희망은 피고 있는 것일까.//
신도 기적도 이미/ 승천하여 버린 지 오랜 유역/ 그 어느 마지막 종점을 향하여 흰나비는/ 또 한 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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