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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63. 김동리

2018. 6. 12. by 솜글

김동리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김동리(金東里, 1913~1995)는 본명이 시종(始鍾)으로,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다. 김동리는 어머니가 노산한 데다 밭일이 바빴던 탓에 형수의 품에서 자랐는데, 조금 자란 후에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김동리는 어릴 때부터 병을 자주 앓았고, 해마다 사람이 빠져 죽는다는 예기소 언저리에서 사는 동안 숱한 죽음을 보고 듣는다. 이를 통해 그는 죽음과 삶, 사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을 가졌다.

김동리는 교회 부속 계남 소학교를 다니며 인근 야산과 들판을 쏘다녀 자연과 교감한다. 6학년 때에는 교지인 <춘우>에 동화, 논문, 동시 등을 발표하여 글 잘 쓰는 아이로 주목 받았다. 1927(15) 소학교를 마치면서 대구에서 중학을 마치고 1930(18) 서울 경신 고교에 진학하지만, 아버지가 죽은 후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었다. 이후 그는 어떤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하고 혼자 서적을 탐독했다.

김동리가 문학에 들어선 데에는 한학자이자 철학자인 큰형 김범부의 영향이 컸다. 김범부는 부산에 살았는데, 방에 책이 천장에 닿도록 쌓여 있었다고 한다. 학교를 중퇴한 김동리는 한동안 그의 집에 머물며 독서에 매진했다.

사진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http://dh.aks.ac.kr/~red/wiki/index.php/%EA%B9%80%EB%8F%99%EB%A6%AC)

해방 이전 문예 활동

1934(22)에는 신문의 신춘문예 공고를 보고 각 신문사의 상금을 몽땅 타 볼 작정을 하지만 <조선일보>에 시 한 편이 가작으로 뽑히는 데 그친다. 실망한 그는 낙향하여 다시 글쓰기에 매달리고, 1935(23) 드디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화랑의 후예>가 당선된다. 이후 해인사에 머물며 <산화>를 써서 1936(24)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이로써 세 일간지의 신춘문예를 휩쓴 전무후무의 대기록을 남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6(24) 김동리는 서울대학교 앞에 하숙방을 잡고 서정주, 함형수 등 <시인부락> 동인들과 교유하는 한편 <무녀도><바위> 등을 발표한다. 다시 다솔사라는 절에 들어가서는 소설 집필과 야학 강좌를 겸하고, 그 야학에서 만난 김월계와 결혼했다. 다솔사에서 쓴 작품들은 1940(28)까지 발표한 <황토기>, <잉여설>, <찔레꽃> 등이다.

그런데 1940(28) 다솔사에서 함께 기거하던 큰형 김범부가 연행되고, 김동리가 문인 보국회 가담을 거절한 탓에 야학이 폐쇄 당한다. 더욱이 검열 때문에 소설이 자꾸 삭제되고 이태준이 발행하던 <문장>마저 폐간된다. 이후 김동리는 사실상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동네 건달들과 어울려 술과 노름으로 시절을 보낸다. 이 무렵 그는 장남을 잃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1943(31)에는 생계를 위해 사천의 양곡 배급소 서기로 취직하였다가 1945(33) 해방을 맞는다. 해방 뒤 서울 돈암동에 정착한 그는 1946(34) 조지훈, 조연현, 황순원, 최인욱, 박두진, 박목월, 서정주 등과 함께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이후 유물 사관의 문학론에 반박하며 휴머니즘에 기조를 둔 순수 문학론을 펼치고 그 이론을 정리한 평론집 <문학과 인간>을 발간한다.

1947(35)에는 드디어 첫 창작집 <무녀도>를 펴낸다. 여기에는 <화랑의 후예>를 비롯한 해방 이전의 단편 8편이 실려 있다. 이후 언론계에 몸담은 김동리는 <윤회설>, <혈거 부족>, <역마> 등을 꾸준히 내놓는다. 이 중 <혈거 부족>은 해방 이후의 현실 문제를 들춘 작품이지만, 나머지에서는 김동리 특유의 인간의 근원적 삶을 탐구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1949(37)에는 두 번째 창작집 <황토기>를 펴고 <문예>의 주간을 맡는다. 이 무렵 자주 드나들던 다방의 주인이자 신인 작가인 손소희와 처음 만났는데, 이듬해 전쟁이 터지자 그녀가 김동리를 다락방에 숨겨준 것이 인연이 되어 사랑이 싹텄다. 두 사람은 1953(41) 불륜이라는 따가운 비난 속에서도 손소희와 결혼하였다.

사진 출처 : 성북구립도서관 블로그(https://sblib.tistory.com/225)

1950년대 이후와 말년

피난지에서도 김동리는 6 · 25를 다룬 소설집 <귀환 장정>과 평론집 <문학 개론>을 내고, 손소희와 결혼한 후에는 서라벌예대에 출강한다. 1954(42)에는 예술원 창립 회원, 한국 유네스코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55(43)에는 전쟁 체험과 관련한 현실 색채를 깃들인 <흥남 철수>, 그리고 창작집 <실존무>를 펴내 아세아 자유 문학상을 받았다. 1957(45)에는 <사반의 십자가>를 발간해 이듬해 예술원상을 받았고, 1961(49)에는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63(51)에는 창작집 <등신분>을 펴냈다.

1964(52)에는 <까치소리>를 발표해 이듬해 3 · 1 문학상을 받았고, 1968(56)1970(58)에는 그간의 예술적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 훈장을 받았다.

1968(56)에는 <월간 문학>을 창간하고, 이후 각종 문인 협회 임원을 역임하였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창작집 <까치 소리>, <꽃이 지는 이야기>, 소설 <을화>, 시집 <바위> 등을 꾸준히 냈으며, 심지어 일흔여섯 나이에도 장편 <자유의 역사>와 수필집 <사랑의 샘을 곳마다 솟고>를 펴냈다. 그만큼 김동리는 평생에 걸쳐 일일이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작품을 쏟아낸다.

이렇게 샘솟는 창작욕을 과시하던 김동리는 1990(78)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오랜 투병 끝에 1995(83) 숨을 거둔다.

해방 직후의 순수 문학 논쟁

1940년을 전후하여 문단에서는 세대 논쟁에서 확장된 순수 문학 논쟁이 잠시 일었던 적이 있었다. 이 순수 문학에 대한 논쟁은 해방 이후 다시 떠오르는데,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김동리이다.

논쟁의 시작

1945년 정지용은 임시 정부의 환국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자작시 <그대들 돌아오시니>를 낭송했는데, 이를 좌익 쪽의 평론가 김동석이 지적하며 정지용의 순수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에 정지용은 김동석을 비꼬고, 김동석도 조롱의 대꾸로 맞선다.

이를 지켜보던 민족주의 진영의 조연현은 정지용을 옹호하였다. 좌익의 김남천은 순수 문학이란 일제 강점기에 정치에서 분리되는 과정을 거친 문학이며, 민족 문학과 순수 문학은 분리해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남천은 정치적 문학이 반드시 문학의 순수성이나 자율성과 무관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일부 청년 작가들이 순수의 개념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김동리의 가세

김남천이 순수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태도를 문제 삼자, 해방 이전에도 유진오와 순수 논쟁을 벌인 바 있었던 김동리는 1946(34) <순수 문학의 정의>를 발표한다. 여기서 그는 해방 전 좌익이 언론과 결탁했다며 비난하고, 김남천이 순수 문학에 대해 소아병적 인식 착오로 이해하고 있다며 공격한다. 이어 <순수 문학의 진의>에서는 순수 문학이 곧 민족 문학이자 세계적인 휴머니즘 문학이라는 3기 휴머니즘 문학이론을 펼쳤다.

이에 김병규는 김동리의 세계적 휴머니즘론이 너무 비약적이며 역사와 현실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3기 휴머니즘이란 하나의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순수 문학과 정치>에서는 김동리의 3기 휴머니즘문학론이 정치적 도구 문학이라며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후 <순수의 정체김동리론>에서는 김동리의 작품 <무녀도>를 보기로 들면서 김동리를 추상적 관념 속에서 물질적 조건을 망각한” “기형적 작가라고 몰아세운다.

김동리 역시 발끈하여 거칠게 반박하고, 어느덧 순수 문학 논쟁은 감정적 인신공격으로 치닫게 된다. 이 밖에도 한효, 홍효민, 정진적, 김광섭, 박종화 등이 대거 참여하였으나, 결국 결론 없이 흐지부지된다.

김동리의 소설

전기 소설

<화랑의 후예>

1935(23)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으로, 김동리의 소설의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김동리는 전통 세계를 소재로 하여 그 현재적 위상을 탐구하는 작품을 많이 발표하는데, 이 소설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전통성은 이른 바 조선의 심벌과 같은 황 진사의 정신적 전통이다. 황 진사에게 내포되어 있는 전통적 정신세계의 허와 실을 구상화하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이라 볼 수 있다.

황 진사라는 몰락한 양반 후예의 노년 생활을 제재로 하여 주역과 시경을 읊조리고 문벌과 족보를 들먹이는 몰락 양반 계층의 후예를 묘사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지닌 정신적인 자만의 허구성과 세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 부류의 전락의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화랑의 후예>는 구성이 다소 특이하다. 주인공 황 진사의 행동을 적절한 몇 개의 삽화로 나열하여 성격을 제시하려 하는데, 이것은 서술자와 서술 내용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황 진사의 성품은 한마디로 대단히 부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연민의 정서가 작품 곳곳에 배어있다. 이것은 특히 관찰자인 의 태도에서 나타난다. 지식인은 는 처음에 황 진사를 좋게 여기지 않지만 만남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그 심리적 거리는 단축되어 가는데, 처음 불쾌함의 감정이 그 다음에는 반가움으로 바뀌면서 나중에는 그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어 간다. 결국 이 소설의 핵심은 지식인의 눈에 비친 전통 정신에 대해 비판과 연민을 동시에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화랑의 후예>
어느 날 숙부님께서 에게 조선의 심볼이라는 황 진사를 소개한다. 거무스름한 두루마기에 얼굴이 누르퉁퉁한 황 진사는 나이가 육십 가량 되는 노인이었다. 황 진사는 몰락한 양반의 자손으로 자처하며 과거의 집착과 긍지를 결코 버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진사 행세를 한다. 가을에 완장 어른(숙부)을 찾아온 황 진사는 쇠똥 위에 개똥 눈 흙가루를 약이라 우기면서 비굴하게 끼니를 해결하려 하고, 친구의 책상을 팔아 밥값을 해결하려고까지 한다. 황 진사는 끼니를 때우기조차 힘들 만큼 가난하지만 솔잎 한 줌과 낡은 <주역> 책을 때 묻은 전대 속에 차고 다닌다. 숙모님과 는 황 진사에게 젊은 과부를 중매하지만, 그는 황후암 6대 직손이 어떻게 남의 가문에 출가했던 여자에게 장가를 드느냐며 거절하기도 하였다.
새해가 되어 완장 어른께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황 진사는 두루마기를 빨아 입고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 철 소식이 없다가 우연히 만난 황 진사는 알고 보니 자신의 옛 조상이 신라 때의 화랑이라며 좋아한다.
두 달 후, ‘는 숙모님과 함께 곰 쓸개, 오리 혀, 지렁이 오줌, 두꺼비 기름 등으로 만든 약을 온갖 불구자와 병신들에게 속이며 팔다가 순사에게 잡혀 가면서도 점잔을 떠는 황 진사를 보게 된다.

<바위>

1936(24) <신동아>에 발표한 단편으로 문둥병에 걸려 극한 상황에 처한 한 여인의 처절한 삶과 죽음을 그리고 있다. 특히 모성의 아름다움, 혈육의 끈끈함을 통해 인생의 진실을 말해 주고 있으며, ‘복바위라는 샤머니즘적 공간의 설정을 통해 토속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바위>는 간결한 문체를 사용하여 긴 시간 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면서 사건 전개에 긴장을 불어넣고 있다. 작가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에서 작품을 서술해 나감으로써, 문둥이 여인의 참담한 삶의 모습을 더 진한 감동으로 독자에게 전해 준다.

또한 작가는 문둥병을 얻은 여인의 불행한 삶을 묘사함으로써 인간성과 인간 생명에 대한 본원적인 사랑과 구원의 사상을 표출하고 있으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현실을 냉철히 비판하고 분석하기보다는 거대한 운명의 사슬에 매달린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보여 준다.

여인의 유일한 공간이자 주거지인 토막이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은 여인이 현존재의 공간으로부터 완전히 소멸해가는 것을 뜻한다. 여인은 현실에서 떠나가면서 문둥이를 더러운 존재, 부정으로 보는 차별적인 현실로부터 정화된다. 여인의 얼굴에 말라있던 눈물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모성애의 표출인 동시에 여인을 깨끗하게 해 준 정화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바위>
읍내에서 가까운 기차 다리 밑에는 한 떼의 병신과 거지, 문둥이들이 모여 산다. 그 중 가장 신참자인 아주머니 문둥이는 이곳에 오기 전에는 남편, 술이라는 아들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아들은 장가 밑천으로 일백 몇 십 원을 저축했다가 대부분을 어머니의 약값으로 날리고 집을 나가 버린다. 아들이 떠나자 남편은 아내를 죽이려고 독약 든 떡을 먹이지만, 그녀는 겨우 살아나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난다.
여인은 노숙과 구걸 행각 끝에 기차 다리 옆 복바위에 돌을 갈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말을 듣고 그 곳에서 복바위를 갈기 시작한 지 보름만에 아들을 만난다. 그러나 아들은 며칠 뒤 뒤에 다시 온다고 하고는 사라진다. 여인은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밤낮으로 복바위를 갈러 다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아들은 무슨 죄 때문이지 6개월 형을 선고 받은 듯한데, 여인이 다시 복바위에 갔을 때 자기의 토막이 타오르는 불길이 보인다. 그녀는 불타는 토막을 보며 복바위를 안고 죽어간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은 죽은 여인이 복바위를 더럽혔다며 욕을 한다.

<황토기>

1937(25)의 작품이다.

서두에서 황토골의 세 가지 전설을 소개하는데, 이는 주인공인 억쇠의 운명에 암시를 던져 준다. 첫 번째 전설에서는 황룡 한 쌍이 승천하며 바윗돌을 맞는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황토골 장사인 억쇠의 비극적 좌절을 암시한다. 두 번째 전설에서는 황룡 한 쌍이 승천 전야에 잠자리를 삼가지 않아여의주를 잃는데, 이것은 억쇠가 무절제한 성욕으로 좌절하게 됨을 암시한다. 세 번째 절맥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억쇠득보의 허무한 격투와 치솟는 힘을 바르게 써 보지 못하는 억쇠의 아픔은, 쌍룡설 및 절맥설과 연관되면서 한국인이 지닌 운명론적 비극성을 강렬한 허무주의로 채색하고 있다.

<황토기>
황토골에는 상룡(傷龍), 또는 쌍룡(雙龍), 절맥설(絶脈說)의 전설이 서려 있다. 용이 피를 흘려 흙을 붉게 적셨기 때문에 황토골이라고도 하고, 산의 맥을 찌르니 붉은 피가 흘러 내려 황토골이 되었다고도 한다.
억쇠는 분이를 기다리며 혼자 논을 매고, 술동이를 이고 온 분이는 설희와 득보를 한칼에 찔러 죽이겠다고 악을 쓰다 풀 위에서 잠을 잔다.
억쇠는 힘이 센 장사인데, 황토골에는 장사가 나면 부모에게 불효하고 나라에 역적이 된다는 속설이 있다. 억쇠는 이 때문에 힘쓰기를 삼가며 어깨를 자해하기까지 했는데, 그러다가 득보를 만나 그리고는 냇가에 오두막 한 채를 마련하였다.
득보는 이복형제를 죽이고 서울로 달아났다가, 어느 대갓집 부인과의 관계가 탄로 나는 바람에 떠돌다가 황토골에 들어온 사람이다. 득보는 분이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하나 두었는데, 분이는 억쇠와 득보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생활하고 득보가 여자를 얻어 오면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쫓아낸다.
그러던 사이 억쇠가 과수댁인 설희를 맞아들이자 득보까지 설희에게 추근거린다. 이에 분이는 질투를 느껴 임신한 설희를 죽이고, 자고 있는 득보에게도 중상을 입히고 사라진다. 분이를 찾아 나선 득보는 분이 대신 딸을 데려온다. 억쇠는 득보가 사라질까 봐 노심초사한다. 결국 억쇠와 득보는 마지막 대결을 위해서 용냇가로 내려간다.

<역마>

1948(36)에 발표한 작품으로, 김동리의 운명론적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단편이다. 한국적 운명관인 역마살에의 순응을 통한 인간 구원(久遠)을 주제로 하는 이 작품에는, 운명에 패배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순응함으로써 인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김동리의 문학관이 짙게 깔려 있다.

사실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역마>는 지나치게 많은 우연성을 보여 준다. 하루 저녁 인연을 맺은 체장수에게서 옥화를 낳은 할머니, 떠돌이 중으로부터 성기를 낳게 된 옥화’, 끝내 유랑의 길을 떠나는 성기등 삼대에 걸친 역마살의 내력이나, ‘옥화계연의 만남, ‘옥화계연의 이복동생임을 알게 되는 계기 등의 주요 사건들이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들은 김동리의 소설에서는 단순한 우연에 그치지 않고 운명의 지위로 격상(格上)한다.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삶은 자신의 의지나 선택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이미 운명적으로 주어져 있어서,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역마>
화개 장터에서 주막을 하는 옥화는 떠돌이 중을 만나 아들 성기를 낳는다. 옥화는 성기의 역마살을 없애기 위해 성기를 쌍계사로 보내고, 장날만 집에 와 있게 한다.
어느 날 체 장수 영감 오동운이 딸 계연을 데리고 주막에 와서 옥화에게 계연을 당분간 맡기고 떠난 후 성기와 계연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옥화를 이를 반긴다. 그러던 어느 날 옥화는 머리를 빗겨 주다가 계연이 자신과 똑같이 왼쪽 귓바퀴 위에 검은 사마귀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옥화는 어머니 소향의 혼을 받은 무당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체 장수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후 옥화는 성기와 계연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고 체 장수가 돌아온 날, 옥화는 자신이 체 장수 영감의 딸이고, 계연은 성기의 이모임을 알게 된다. 다음날 성기가 절에서 내려왔을 때 체 장수 영감과 계연은 고향으로 떠나고 성기를 자리에 앓아눕는다.
옥화에게서 계연이 자신의 이모임을 알게 된 성기는 고뇌하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떠돌이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난다.

중기 소설

<밀다원 시대>

1955(43)의 작품으로, 6 · 25 전쟁 중 피난지 다방에서 김동리가 겪은 시련과 아픔을 토대로 시대 상황과 작가 정신의 의미를 실존적 휴머니즘의 차원에서 탐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민속적인 소재를 많이 사용하던 창작 태도에서 6 · 25 전쟁을 소재로 한 실존적 휴머니즘의 세계로 변화한 김동리의 창작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김동리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삶의 근원적인 의미와 종교에 밀접한 인간상을 탐구하는 작품 세계를 보여준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초기에는 한국인의 운명과 관련된 신비적 · 허무적 색채가 짙은 작품 세계를 보여 주었으나, 해방과 전쟁 이후로는 삶의 근원적 의미 탐구를 통한 이념의 갈등, 인간성 옹호와 함께 종교적 소재를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쪽으로 심화되었다.

<밀다원 시대>
전쟁으로 떠들썩한 시대에 문인들은 밀다원이라는 다방에 꿀벌처럼 모여 있다.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한 뒤 이남으로 밀고 내려온다는 말에 돈 있는 사람들은 일본이나 제주도로 밀선을 타고 떠난다. 이에 밀다원이라는 다방에 모여 그날그날의 먹을 것과 잠자리에 허덕이고 있던 문인들은 꼼짝없이 바다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떠들어댄다. 문인들은 막걸리를 마시고, 시인 박우삼은 자살소동까지 벌인다.

<흥남 철수>

1955(43) 발표한 단편으로, ‘박철이라는 주인공과 윤시정’, 그리고 간질을 앓는 윤수정이라는 두 자매, 그들의 아버지 윤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 전쟁 당시 흥남 철수의 상황을 극적으로 재현해 보려고 하였다.

이 작품은 흥남 철수라는 커다란 역사적 현장을 리얼하게 재현해 냈다는 데는 의의가 있지만, 문학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김동리의 다른 작품에 비해 떨어지는 감이 있다. 그것은 두 자매의 이야기와 흥남 철수 상황이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흥남 철수>는 마치 흥남 철수라는 상황과 주인공과 두 여자의 멜로드라마가 혼합된 듯한 느낌을 주는 데 그친다.

<흥남 철수>
19501127. 서북 전선은 북으로 진격하고 동부 전선은 눈보라에 쌓여 있는 가운데, 시인인 박철은 예술인들과 더불어 흥남으로 위문을 갔다가 곳에서 열린 위안의 밤에서 시정을 만난다. 박철 일행은 그것을 계기로 시정의 집으로 방을 옮겼다가 시정의 언니 수정이 중대한 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무슨 병인지 궁금해 한다. 박철은 술자리에서 시정에게 서울로 가자고 약속한다.
그날 밤 술에 취해 잠든 철은 아내의 꿈을 꾸고 일어나는데, 자신이 수정을 안고 잠들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들은 다음 날 흥남을 떠났으나 상황이 악화되어 122일 동부 전선에 철수령이 내려지도 흥남이 그 교두보가 된다. 박철 일행이 흥남으로 돌아온 후 그들은 곧 철수하였으나, 박철 대신 정인수가 철수하고 시정의 가족과 남게 된 철은 두려움을 느끼며 가족 생각에 빠진다. 수정은 갑자기 간질 발작을 일으키고 같이 가고 싶다고 한다.
유엔군과 국군의 후퇴작전 교두보가 된 흥남에서 마지막 해상 철수를 개시하자 박철은 시정 가족과 철수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수정의 발작으로 정신없이 배에 올랐을 때 윤 노인이 바다에 빠지고 시정이 수송선을 타지 못하게 된다.

<사반의 십자가>

1955(43)부터 1957(45)까지 연재되었다가 1957년 단행본으로 간행된 장편이다. ‘사반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 함께 왼쪽 십자가에 달린 강도이다. 이 작품은 성서적인 사실성과 소설적인 허구성을 조화시킨 작품으로 신과 인간, 하늘과 땅의 영원한 대결에서 종교적으로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김동리의 사상적 심화를 보여 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사반의 십자가>
사반은 18세 때 갈릴리 호수동쪽 겔가사 근처 동굴에서 혈맹단(血盟團)을 조직, 로마의 학정(虐政)에 반대하여 메시아의 날에 봉기할 것을 맹세한다. 이 무렵 세례 요한이 투옥되자, 사반은 그가 찾고 있는 메시아인지를 확인하려 했으나 그는 이미 죽은 뒤였다.
그 후 사반은 예수를 만나지만 그가 지상의 유대 왕국을 위해 기대했던 메시아가 아님을 알게 된다. 천상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의 대립으로 사반의 기대는 결렬되었고, 마침내 유다의 밀고로 잡힌 예수와 아굴라의 간계로 포로가 된 사반은 각각 십자가를 짊어진 채 갈바리아 언덕에서 만난다.
사반은 예수에게서 어떤 권능이 행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며 숨을 거두자 사반의 기대는 허물어지고 만다.

후기 소설

김동리의 대표적인 후기 소설은 <등신불>, <까치소리>, 장편 <을화>이다. 이들 세 작품은 모두 전근대적 세계관과 현실적 세계관이 부딪히거나 융합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등신불>

1961(49) <사상계>에 발표한 작품으로, 토속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배어 있는 전통적 서정주의 세계를 보여 준 김동리의 작품 세계를 대표한다. 인간의 운명은 추구하는 서정성과 순수 문학의 옹호라는 김동리의 문학관이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만적의 소신공양을 통해 종교적으로 승화되어 있다.

불교적 소재를 취급하고 있지만 불교의 초월적 신앙을 주제로 삼은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실존적 인간 경험과 그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만적이 자기 몸을 불사르는 의식에는 배 다른 형제를 죽이려 했던 어머니의 죄를 사하고, 그 죄의식이 가져온 번뇌로부터 자기를 구원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동시에 이복 형이 앓는 문둥병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숙명적 고통에 대한 절대자의 자비를 구하는 댓속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불타는 만적의 머리 위에 나타난 보름달 같은 원광은 실존적 인간의 초극적 힘을 상징한다.

김동리는 인간의 원초적 죄의식과 번뇌, 그리고 이에 대한 종교적 구원이라는 주제를 즐겨 다루는 작가이다. <역마>에서는 운명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얻은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인간 고뇌의 종교적 승화를 통해 구원을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이 주제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탐구는 장편 <사반의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등신불>
는 스물세 살 때인 1943년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기 위해 불교학자인 진기수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그가 를 믿지 않자, ‘는 오른손 손가락을 깨물어 원면살생(願免殺生) 귀의불은(歸依佛恩)’이라는 혈서를 써 올린다. 그리고 결국 그의 도움으로 정원사에 도착하여 원혜 대사를 만난다. 그곳에서 는 정원사에서 등신불을 보고 그 사무친 느낌에 전율과 충격을 받는다. 원혜 대사는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적이라는 사람은 어머니 장씨가 개가한 남편의 외아들인 신과 같이 살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재산을 탐내어 신의 밥에 독약을 넣었고, 그것을 우연히 본 만적은 그 밥을 자기가 먹으려 한다.
며칠 후 신은 집을 떠나고, 만적도 어머니에게 환멸을 느껴 중이 된다. 만적은 불법을 배우다가 스승인 취뢰스님이 열반하자 은공을 갚기 위해 소신공양하려고 하였으나 다른 스님이 만류한다. 이후 혜각 선사를 만난 만적은 금릉에서 10년 만에 문둥병에 걸린 신을 만난다.
만적은 신의 목에 염주를 걸어 주고 돌아와 소신공양을 결심하고는 화식을 끊었고, 이듬해 봄에 공양한다. 만적이 몸을 태우던 날 육신이 연기로 변해 갈 때 비가 쏟아졌으나 단 위에는 내리지 않았으며, 또한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병이 모두 고쳐졌다. 절에서는 그들이 시주한 돈으로 만적이 탄 몸에 금을 입혀 모신다.
이야기를 마친 원혜대사는 진기수 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 입으로 살을 물었던 오른손 식지를 들어 보라고 한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대사는 아무런 말이 없다. 북소리와 목어 소리만 들려온다.

<까치소리>

1966(54)의 작품으로, 한국 전쟁 무렵 늙은 회나무가 서 있는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절망에 빠진 인간의 변태 심리와 비정한 운명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전쟁이 가져온 혼란과 그 상처를 내용으로 하는 이 작품은 자연주의적 문맥을 유지하면서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을 까치 소리가 지니고 있는 신화의 상징체계에 투영시켜 까치 소리와 주인공의 발작적 변태 심리를 동인으로 하여, ‘봉수정순’, 그리고 상호사이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사건을 전개한다.

<까치소리>
는 서점에서 나의 생명을 물러다오란 책을 구입했다. 그 책에는 살인자의 수기란 부제가 붙어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봉수가 사는 마을 한복판의 우물 앞뒤에는 늙은 회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늙은 회나무에는 까치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데, 이 마을에는 아침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오고 저녁 까치가 울면 초상이 난다는 말이 전한다.
봉수가 군대에 가기 1년 전부터 봉수 어머니는 까치가 울 때마다 기침을 했다. 봉수 어머니는 까무러치다시피 기침을 하다가 끝내는 아이구 봉수야 날 죽여 다오!” 하고 부르짖었다.
군대에 간 봉수가 배속된 수색 중대는 수색 나갔던 부대원이 전멸할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두세 명이 살아서 돌아올 때도 있었다. 봉수는 애인 정순이를 두고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손가락 두 개를 잘라 명예 제대를 한다.
그러나 유일한 희망이었던 정순이는 같은 마을에 사는 상호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상호가 봉수가 죽었다는 전사 통지서를 위조해 정순이를 아내로 삼은 것이었다.
봉수는 정순이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제의하자 정순이도 이를 허락한다. 그러나 며칠 뒤, 상호의 동생 영숙이가 봉수에게 와서는 정순이가 주었다는 쪽지를 주었는데, 거기에는 도망갈 계획이 탄로났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었다.
봉수를 연모해 오던 영숙이는 자기 오빠인 상호의 행위에 죄의식을 느끼고 봉수의 고통을 위로하다가 봉수에게 몸을 허락한다. 이 때 까치가 운다. 어머니가 가장 모진 기침을 터뜨릴 때 울던 바로 그 저녁 까치 소리. 봉수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면서 영숙이의 목을 졸라 죽이고 만다.

<을화>

1936(24)에 쓴 <무녀도>의 최종 장편 개작 소설로, 1978(66) 발표하였다. <무녀도>는 총 네 번 개작되었는데, 첫 번째 개작은 1947년에, 두 번째 개작은 1963년에, 세 번째 개작은 1967년에 이루어졌고 마침내 1978년에는 단편을 장편으로 고쳐 쓰는 작업을 단행하여 <을화>로 탈바꿈된다. 김동리는 <무녀도>의 개작을 통해 민족적인 정신과 개성을 더욱 발현하고자 하였다.

<을화>에서는 <무녀도>와 달리 액자 방식의 서술이 탈피된다. <무녀도>1인칭 화자가 과거에 들었던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을화>3인칭 시점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직접적 전달 방식으로 서술 방식이 바뀌었다. <무녀도>의 화자는 단지 들은 대로만 이야기할 수 있으므로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독자가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는 과감한 생략과 긴장감으로 뭉쳐진 단편의 형식적 특성을 잘 살린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을화>에 와 3인칭 작가의 입으로 전달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그 관찰자는 영술이 되기도 하고 을화가 되기도 하고 박 주사가 되기도 한다.

내용 면에 있어서도, <무녀도>에서는 모화예기소에 빠져 죽지만, <을화>에서는 영술만을 죽이고 을화는 끝내 살려둔다. 오히려 김동리는 을화빡지무당과 함께 떠나보냄으로써 그녀가 무녀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것과 같은 암시를 남겨준다. 즉 김동리는 개작 <을화>의 새로운 결말을 통해 1978년 당시 무속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남을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이는 곧 그가 외치던 민족적인 것의 영위를 의미하며, 이는 결코 기독교와 같은 들어온것에 굴하여 사라지지 않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그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새로운 시점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여 독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결과에 이른다.

<무녀도>
어느 날 의 집으로 무녀도의 사연이 된 부녀가 온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고 그림을 넘겨받은 것은 의 할아버지로부터인데, ‘는 할아버지가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추측을 합쳐서 들려준, 무녀도와 얽힌 이야기를 회고한다.
경주 성 밖에 모화라는 무당이 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귀머거리인 딸 낭이와 함께 살았다. 모화가 무당 일을 나가면 낭이는 항상 혼자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을 지키고 있다. 또 모화에게는 욱이라는, 낭이와 이복남매인 아들이 있었는데 어릴 때 절로 보냈다. 욱이는 열아홉 살 때 스승인 스님을 죽이고 갇혀 있다가 감형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욱이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여동생 낭이를 불쌍히 여겼지만, 모화는 감옥에서 나온 아들 욱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서워한다. 더욱이 욱이는 밤이 되면 품으로 뛰어드는 낭이 때문에 괴로워한다. 욱이는 낭이가 그림에 소질이 있음을 알고 그림 그리기를 권하지만, 낭이가 그린 어머니 모화의 그림은 사람의 얼굴을 한 귀신처럼 보인다.
어느 날 마을에 기독교가 들어오고, 이 때문에 모화의 굿 일거리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 와중에 뜻밖에도 낭이가 임신을 한다. 모화는 사람들에게 낭이가 신령님의 아이를 가졌다고 소문을 내지만, 낭이는 유산을 하는 바람에 모화의 신망이 더욱 떨어졌다. 한편 낭이의 아버지가 돌아와 딸을 데리고 떠날 궁리를 한다.
어느 부잣집 며느리가 예기소에 빠져 죽어 모화의 마지막 굿이 열리게 된다. 이날 밤 모화는 단정한 모습을 굿을 하고, 죽은 이의 혼백을 건지러 물로 들어갔지만 나오지 않는다. 욱이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을화>
을화는 16세 때 동네 떠꺼머리총각 이성출과 사통하여 사생아 영술을 낳았고, 19세 때 다시 어느 늙은이의 후실로 들어갔지만 3년 후 사별한다. 이후 마마를 앓는 듯 하는 영술의 병구완을 하느라고 서낭당에 가서 치성을 드리다가 신이 들려 무당이 된다.
을화는 박수인 성방돌와 인연을 맺어서 두 번째 사생아인 월희를 낳고, 방돌의 제안에 따라 아들 영술을 기림사라는 절에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을화가 다른 박수들과 놀아나고 술을 마시는 데 실망한 방돌은 동해로 떠나고 만다.
절에서 불도 공부를 하던 영술은 스님들에게 실망하여 예수교로 개종하고, 평양에 가서 미국인 선교사인 현달선(핸더슨) 밑에 있다가 어머니인 을화를 찾아온다. 영술은 어머니와 누이 월희를 개종시키려고 애를 쓰고, 날이면 날마다 동네 교회 일을 맡아 보는 박 장로를 찾아간다. 하지만 무속신앙이 가슴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을화는 아들의 신앙을 못마땅해 함은 물론이요, 오히려 영술을 보고 예수 귀신에 씌어 아들이 변한 것이라고 여긴다. 한편 영술의 친아버지인 성출을 만난다.
을화와의 갈등이 고조되어 집에 나흘이나 들어가지 않던 영술은 동해 감포에 가서 을화의 친아버지인 방돌을 만나고, 박 장로에게 어머니와의 일을 이야기한다. 박 장로로부터 교화의 말을 들은 영술은 어머니에게 잘못을 사죄드리고 오해를 풀고자 집으로 간다. 하지만 어머니가 예수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치성을 드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충격에 휩싸인다. 을화는 칼과 방울을 휘두르며 춤을 추고 있었고, 영술의 성경책은 한 쪽에서 불에 타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성경책의 불부터 끄기 위해 가까이 다가간 영술은 을화가 휘두르고 있던 식칼에 가슴을 맞고 죽고 만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딸을 보고자 을화의 집으로 온 방돌은 결국 죽고 만 영술을 보고는 월희를 데리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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