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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43. 서정주

2014. 7. 6. by 솜글

서정주의 생애

학창 시절

미당(未當) 서정주(徐廷株, 1915~2000)는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철저한 유생이었고, 어머니는 신라적인 자연주의 전통을 가진 여성이었다고 한다.

서정주는 어릴 때 마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1924(10) 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중앙고보에 입학하였으나 1930(16) 광주 학생 운동의 여파로 일어난 시위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퇴학당했다. 이듬해 고창고등보로 편입한 후에도 자퇴를 강요당하고, 다시 서울로 가서 도서관에 처박혀 일본어로 번역된 서양의 문학 작품을 탐독하며 지낸다.

신인의 존엄과 «화사집»

서정주는 1932(18) 읽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초인 사상, 영겁 회귀론, 그리스 신화에 매혹된다. 이후 그는 거의 과대망상에 가까울 만큼 자신이 하나의 신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이듬해인 1933(19) 가을에 마포구에서 일본인 하마다가 하고 있던 빈민 구제 활동에 참여해 며칠 동안 넝마주이 노릇을 하는데, 어느 외국 여성이 가엾다는 눈길로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는 그 길로 고행을 포기한다. 신인(神人)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934(20)에는 금강산으로 대사를 찾아 갔다가 그 스님이 젊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는 다음날 바로 하산하였다. 이 역시 그의 내부에 있던 신인의 존엄 때문이었다.

1935(21)에는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중앙 불교 전문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한 학생이 시계를 잃어버려 다른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 일이 있었다. 그러자 서정주는 그 학생을 불러서 사람을 의심한다며 호통을 친다. 이 역시 신인의 존엄이 훼손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해에 그는 <자화상>을 선보여 문단에 나오고, 1936(22)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이 당선된다. 서정주는 곧 «시인부락»을 내고 창간호에 <문둥이> 2, 다음 호에 <화사> 2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생명파라는 유파를 만들어 냈다. 이런 초기의 작품들을 1941(27) 첫 시집 «화사집»에 모아 발간하였다.

사진 출처 : 전북일보(https://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580375)

성향의 변모

1940(26)에 아들을 얻자 서정주는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간도의 양곡 회사에 취직해 홀로 떠났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사립학교 교사 생활을 하는가 하면 호구지책으로 한문 고전 소설을 번역하기도 하는 등 생계에 매여 살았다. 그러는 동안 니체적인 신인의 풋기운이 옅어지고, 아내와 자손들을 생각하며 잘 참아 견디어 살아나가야겠구나, 하는 순응과 체념의 달관같은 마음이 생긴다. 때문에 1943(29) 인문사에 들어가 친일 문학잡지 «국민문학»의 편집을 맡고 어용 색채의 글을 쓰는 등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1944(30)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시키는 연극 단원들의 사상적 배후로 지목되어 체포되기도 하였다.

1945(31)에는 강제 징용령을 피해 숨어 지내다가 해방을 맞는다. 이후 6 · 25 전쟁 때까지 광주 등지에서 교사 및 교수 생활을 하다가 서울이 환도되자 상경하였는데, 이즈음 극심한 정신 분열 증세를 보여 요양을 한다.

1948(34)에는 두 번째 시집 «귀촉도»를 냈다. 여기서부터 서정주는 초기의 원색적 · 관능적인 분위기에서 탈피하여 원숙한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이런 움직임은 1956(42) «서정주 시선», 1961(47) «신라초», 1968(54) «동천»으로 이어져 1975(61) «질마재 신화»로 완성되었다.

노년의 활동

6 · 25 전쟁 후 서정주는 서라벌예술대학, 성심여자대학, 동국대학교 등에 출강하다가 1979(65) 동국대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 그러는 동안 1976(62) «떠돌이의 시» 등을 내고, 퇴임 후에도 1980(66) «서으로 가는 달처럼», 1982(68) «학이 울고 간 날의 시», 1984(70) «노래», 1988(74) «팔할이 바람», 1991(77) «산시», 1993(79) «늙은 떠돌이의 시», 1997(83) «80소년 떠돌이의 시» 등 꾸준히 문집을 내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으며, 각종 위원장을 역임하고 훈장을 수훈하였다.

서정주는 말년까지도 아내와 사이가 좋아 1994(80) 함께 시베리아를 여행하였다. 2000(86) 부인을 먼저 보내자 곡기를 끊고 맥주로 연명한 지 두어 달이 지난 12, 이어 서정주도 숨진다. 이듬해에 중앙일보에서 미당 문학상이 제정되고 미당시 문학관이 개관되었으며, 2005년에는 고창에서 미당 문학제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서정주의 시

서정주의 시는 대개 «화사집», «귀촉도», «서정주 시선», «신라초», «동천», «질마재 신화» 등 시집별로 나뉜다.

시기 시집 시 경향과 대표작
초기 «화사집» 보들레르와 니체의 영향으로 악마적, 원색적, 관능미, 원초적 세계관에 기초
<자화상>, <벽>, <화사>, <문둥이>, <입맞춤>, <고을나의 딸>
중기
이후
«귀촉도»
«서정주 시선»
동양적 성향으로 변모, 윤회와 영겁 중심의 불교적 생명, 자기 통찰
<국화 옆에서>, <추천사>, <춘향 유문>, <귀촉도>, <꽃>, <밀어>, <견우의 노래>, <상리과원>
«신라초»
«동천»
불교, 유교, 노장 사상, 샤머니즘 등 동양 사상 통합
<꽃밭의 독백—사소 단장>, <동천>, <선운사 동구>
«질마재 신화»
 
«화사집»의 시

«화사집»의 시

«화사집»1941(27) 펴낸 첫 시집으로, 서정주가 중앙 불교 전문학교에 들어간 1935(21)부터 1938(24) 결혼하기까지 4년 간 쓴 시들을 모은 것이다.

초기 서정주는 보들레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악의 미를 추구하는 악마적 · 원색적 시풍을 보인다. 첫 시집 «화사집»에서는 토속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인간의 원죄의식과 원초적인 생명력을 읊으면서 자의식과 관능적 욕구에 몸부림치는 젊음과 원죄적 세계관을 치열하게 드러냈다.

<화사집>의 특제본(왼쪽)과 병제본(오른쪽) / 사진 출처 : 권영민의 문학콘서트(https://muncon.net/entry/%EC%84%9C%EC%A0%95%EC%A3%BC%EC%9D%98-%ED%99%94%EC%82%AC%EC%A7%91)

<자화상>

다분히 서사적인 표현 속에 상징적 심상과 시각적 심상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다. 가능한 한 간접적인 묘사 방식을 피하고 바로 대상과 관념에 직핍(直逼)하는 표현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어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치질 않으련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1936(24)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이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1연의 불과 時計를 나란이 죽이고4연의 차고 나가 목매어 울리라! 벙어리처럼의 두 구절이다. 이 구절들은 의 심리적 상태를 드러내는 부분으로 가 처한 한계 상황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를 보여준다. 시적 주체의 한계 상황은 이라는 상관물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는데, 중요한 사실은 이 한계 상황이 불과 시계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이 시에서 벽차고 나가고자 하는 욕망은 바로 불과 시계의 극복 의지이다. 여기서 불과 시계는 산술적이고 근대적인 인간의 이성과 자아의 유한성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일종의 으로 해석된다. 그런 점에서 이 시에 나타난 시계라는 상징은 인간의 가치에 적대적인 하나의 상품으로서의 근대적 시간이며, 영원성을 상실하고 타락한 속된 지속으로서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벽>
덧없이 바래보든 벽()에 지치어/ 불과 시계(時計)를 나란이 죽이고//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아닌/ 여긔도 저긔도 거긔도 아닌//
꺼저드는 어둠속 반딧불처럼 까물거려/ 정지(靜止)/ ‘의 서름은 벙어리처럼…….//
이제 진달래꽃 벼랑 햇볕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 ()차고 나가 목매어 울리라! 벙어리처럼/ ().

<화사>

1936(22) «시인부락» 2호에 실린 작품이자 첫 시집 «화사집»의 표제시이기도 하다. 기독교 창세기 설화를 바탕으로, 뱀의 아름다움과 징그러움이라는 이율배반적 성격에 순네를 결부시킨다.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진 본능적 충동과 죄의식의 갈등, 원시적 생명의 관능미를 노래하고 있다.

<화사>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석유(石油) 먹은듯…… 석유(石油) 먹은듯…… 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슴여라! 베암.//
우리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베암.

<문둥이>

1936«시인부락» 창간호에 실린 작품이다. 짧은 형식이지만, 언어의 관능적 용법과 생명 현상에 대한 집착으로 대표되는 생명파 시인으로서의 초기 시 세계를 잘 보여 준다. 피를 토하듯 우는 슬픈 울음을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로 표현한 데서 언어의 관능적 용법을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꽃처럼 붉은 피가 배어나는 처절함에서는 단순한 감각적 차원을 넘어선 근원적인 체험 의식까지 갖게 해 준다.

생명에 대한 집착은 애기 하나 먹는 것으로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 숨어 살며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문둥이는 그저 해와 하늘빛이서러울 뿐이다. 해와 하늘빛이 있는 대낮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는, 그는 살기 위한 원초적 욕망으로 애기 하나 먹음으로써 병을 고치려 하지만, 이 같은 생에 대한 집념이 부도덕함을 깨닫고, 마침내 자신의 숙명적 운명에 대한 몸부림으로 인하여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게 되는 것이다.

<문둥이>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귀촉도» · «서정주 시선»의 시

서정주의 시 성향은 1948(34)에 출간한 «귀촉도»부터 변모를 보인다. «귀촉도»에서는 동양 사상의 영향으로 인간의 운명적 업고(業苦)에 대한 인식을 영겁의 생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모습을 보여주며, 동시에 초기 시의 열정이 한 차원 높게 승화되어 있다. ‘귀촉도라는 표제부터가 동양적인 귀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분열이 아닌 화해를 시적 주제로 하고 있다. 이는 토착적 정서와 고전적 격조로의 지향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초기 시에서 보여준 젊음의 열정이 순화되어 한국의 전통 가락과 한의 세계로 전환되기 시작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1956(42)«서정주 시선»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수록된 시에서 서정주는 민족의 전통적인 한, 자연과의 화해, 원숙한 자기 통찰과 달관을 보여주는데, 이로써 그는 원죄나 젊음의 방황을 완전히 극복하고 낙천적 성향으로 탈바꿈한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의 생명에 대한 근원적 탐구 경향을 보여 주는 시로, «화사집»과 같은 초기 시의 성격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의 생명, 즉 국화를 탄생시키기 위해 있어야만 했던 곡절과 시련과 진통,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통해 체득한 40대 중년 여인의 원숙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국화를 피우기 위해서는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치고 서리가 내려야 한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가 잠을 못 잤다고 한 것은 그러한 자연의 신비에 자신도 동참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이 시가 불교의 인연설에 바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추천사>

고전 소설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으로, 춘향이 그네를 타며 향단에게 말을 하는 대화체의 독백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춘향은 사랑에 애착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은 사랑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순된 욕망을 지닌다. 이는 아무리 하늘을 향해 차고 올라가도 결국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는 그네의 속성과 같은 것이니, 그네는 춘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시는 3연에서 빠르고 격렬한 리듬을 보이다가 다시 4연에서 느려지는데, 이는 춘향의 심리 변화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3연에서는 하늘로 표상된 이상 세계로 올라가고자 하기 때문에 향단에게 밀어 올려달라고 강렬히 기원하고 이것이 빠른 템포로 드러나지만, 결국 하늘로 갈 수 없으며 땅에 매여 살아야 한다는 운명적 한계를 자각한 4연에서는 호흡이 느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추천사—춘향의 말 1>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배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춘향’을 소재로 한 현대시들
강은교, <춘향이의 꿈노래> : 춘향의 꿈을 소재로 하여 죽음을 앞둔 춘향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
김영랑, <춘향> : 춘향의 정절을 사육신의 충절과 논개의 애국심에 대응시킴
박재삼, <자연> : 춘향을 시적 화자로 설정하여 사랑을 꽃나무에 견주어 그림

<춘향유문>

춘향의 옥중 유언의 형식으로 된 시다. 현실에서 사랑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은 춘향이 독백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 <춘향가> 장탄가(長歎歌)’와 유사하다. 장탄가의 춘향은 슬픔에 젖어 자포자기하는 것과 달리, <춘향유문>의 춘향은 죽음조차 자신의 사랑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춘향유문—춘향의 말 3>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5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이 아니에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울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귀촉도>

귀촉도(歸蜀道)’란 원래 촉나라로 돌아가는 길을 의미한다. 촉나라 망제(望帝)가 쫓겨나 촉나라를 그리워하다가 죽어 그 넋이 새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다. 귀촉도는 전통적으로 애절한 정한을 표상하는 새로서, 죽은 임을 표상하는 동시에 임과 시적 화자를 연결해 주는 사랑의 매개체 구실을 한다. 자규(子規), 불여귀(不如歸), 접동새, 소쩍새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시에서는 정한의 객관적 상관물로 쓰였다.

<귀촉도>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歸蜀途)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밀어>

1947(33)에 발표한 작품으로, 발표 시기를 고려할 때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해방의 환희를 노래한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화자의 감격이 돈호법에 의하여 고조되고 있으며, 어둠[]과 밝음[]의 대립, 해방에의 기쁨이 각각 시각적 심상과 촉각적 심상에 의하여 잘 묘사된 작품이다.

<밀어>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늘인/ 채일을 두른 듯, 아늑한 하늘가에/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견우의 노래>

견우 직녀설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시로, 화자를 견우로, 청자를 직녀로 설정하여 이별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재회를 기약하는 기회나 서로의 사랑을 더 강하게 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역설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어떠한 장애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서 칠석날을 기다리는 태도를 보인다.

<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었다, 낮었다, 출렁이는 물ㅅ살과/ 물ㅅ살 몰아 갔다오는 바람만이 있어야하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하ㅅ물이 있어야 하네.//
도라서는 갈 수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 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도라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상리과원>

상리과원상리라는 마을의 어느 과수원이란 뜻이다. 과수원의 만개한 꽃들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우리의 삶이 힘겨움 속에서도 즐거울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서정주가 6 · 25 때 정신 분열을 겪은 후 깨달은 범신론적(汎神論的) 낙천주의, 그리고 만개한 과목(果木)에서 발견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결합됨으로써 태탕(駘蕩)한 봄과 같은 생의 기쁨을 토로하고 있다.

<상리과원>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洛東江) 상류와도 같은 융융(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관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패기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꿈치에까지도 이쁜 꽃숭어리들을 달았다. 멧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새끼들이 조석(朝夕)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 만 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고치고 마짓굿 울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當然)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묻혀서 누워 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취고 누워서, 때로 가냘프게도 떨어져 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잎사귀들을 우리 몸 위에 받아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들과 나란히 마주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 분면(油頭粉面), 한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 속에 이것들이 잦아들어 돌아오는아스라한 침잠(沈潛)이나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微物)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저거들을 축복(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 나비의 어느 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 귀소(完全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소리를 들릴 일이다.

«신라초» · «동천»의 시

서정주는 1960년을 전후로 이전에 «귀촉도», «서정주 시선»에서 보여 주었던 불교 체험은 물론 유교 사상, 노장 사상, 샤머니즘 등 폭넓은 동양 사상을 탐구한다.

1961(47)«신라초»의 제재는 신라이다. 서정주에게 있어 신라는 초월적인 비전의 신화적 거점이며, 역사적 실체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완전히 일체가 된 상상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시집에서 불교 사상에 기초를 둔 신라의 설화를 제재로 하여 영원회귀의 이념과 선()의 정서를 부활시킨다. 생명의 근원적, 윤회적 탐구로 나아가려는 그의 노력이 신라의 불교적 세계관으로 천착되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어 1969(55) «동천»에서는 불교의 상징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엿보임과 동시에 종교나 세계관의 차원을 넘어 사람뿐 아니라 귀신은 물론 전 우주와 공감할 수 있는 시적 깊이와 폭을 지니게 된다.

<꽃밭의 독백>

<꽃밭의 독백>«삼국유사»에 실려 전하는 사소(娑蘇) 설화를 변용하여 구도자(求道者)의 신앙적 염원인 영원한 절대 세계에 대한 열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사소는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의 어머니이다. 사소는 처녀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 수행을 떠난 일이 있는데, 이 시는 그녀가 집을 떠나기 전 꽃밭에서 한 독백을 시화한 것이다. 인간의 유한함을 깊이 인식한 그녀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부활을 갈망하는 구도적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라는 주술적 성격이 반복되는 절규 속에는 영원의 세계를 향한 뜨거운 열망이 담겨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 세계를 벗어나 영원한 세계로 상승하고자 하는 화자의 희원이자, 결국은 이 시의 작자인 서정주의 희원이기도 하다.

<꽃밭의 독백—사소 단장>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동천>

불교에서는 인간이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할 때, 이 모든 행위가 한낱 본질을 겉도는 시늉에 불과할 뿐이고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대상은 영원한 그리움과 외경(畏敬)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동천>은 그러한 불교의 윤회설에 기반하여 고도의 압축과 상징을 이루어 낸 난해한 시로, 서정주 자신의 구도적 삶이 집약되어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1행의 눈썹은 달을 의미한다. 일차적으로는 형태의 유사성에 근거하며, 깊이 들여다보면 오랜 기간 이루려고 노력한 즈믄 밤의 꿈또는 염원이 실현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화자는 그 눈썹맑게 씻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둠으로써 눈썹으로 형상화된 이상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동천>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날 나는 무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선운사 동구>

이 시는 두 개의 에피소드가 교묘하게 교차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아직 꽃은 피지 않았고, 작년 꽃이 시든 채 붙은 것만 보았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다가 (아직 일러 꽃은 보지 못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만 들었다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화자는 동백꽃을 보러 선운사 고랑에 갔다가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를 듣고 왔다는 정황을 알 수 있다.

이 단순한 통사적 연결이 시적 충격을 주는 까닭은, 위의 두 에피소드가 긴밀히 교차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있다. 남아 있는 동백꽃의 모습에 막걸릿집 여자가 투영되고, 시든 꽃에 목 쉰 여자가 스며드는 것이다.

막걸릿집 여자는 이제 손님들에게 낡은 여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육자배기 가락을 목이 쉬도록 불러야만 삶을 지탱할 수 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의 운명적 조건인 것이다. 이 시는 선운사 고랑에서 막걸릿집 여자의 숙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선운사 동구>
선운사(禪雲寺)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습디다.

«질마재 신화»의 시

1970년대에 서정주는 고향인 질마재의 유년 시절로 회귀하여 또 다른 시 세계를 개척한다.

1975(61) 펴낸 산문 시집 «질마재 신화»에서 그는 전통적인 이야기꾼으로 변모한다. 이 시집은 전통 탐구의 한 성과이고, 한국시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려는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모두 평범한 이야기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서정주 특유의 시적 자질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설화적 공간을 창조한 이 시집에서 서정주는, 이 땅의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한 마을을 한국인의 신화가 살아 숨 쉬는 마을로 불멸화한다. 마을에 떠도는 간통 소문, 오줌발 소리, 죽어 해일이 되어 돌아온 온갖 설화와 풍문 등 우리 고유의 전통을 발굴하여 질펀한 토속어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의 이러저러한 삶을 신화적 단계로 끌어올리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신부>

서정주의 시가 가장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정취에 몰입한 시기에 간행된 «질마재 신화»의 맨 첫머리에 실린 작품으로, 한국 여인의 매운 절개를 놀랍도록 담담하고 짧은 이야기체로 엮은 산문시이다.

화자는 전래 설화를 전달해 주는 3인칭의 이야기꾼 역할을 하는데, 전설과는 달리 신부의 정절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의 경솔함을 탓하고 있다.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가 타버린 후에도 초록 재’, ‘다홍 재가 되었다고 한 부분에서는 선명한 색채 대립으로 이미지의 시각성을 강조하여 작품의 비극적 결말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신선 재곤이>

<신선 재곤이>는 샤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전통적인 한국인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풍속도와 가치관을 설화 형식을 빌려 보여 주고 있다.

거지였던 재곤이가 신선이 된 사연을 순차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재곤이를 돌봐 주는 시골의 인정, 천벌을 두려워하는 순박한 마음과 마을 사람들의 동조가 흥미롭고 삶의 바람직한 귀결을 바라는 데서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앉은뱅이 사내 재곤이를 돌보는 일을 자신들의 의무로 생각하는 마음은 우리 민족이 지닌 심성의 전통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재곤이가 사라진 것이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인정미 넘치는 우리 선인들의 삶 그 모습 그대로이다.

<신선 재곤이>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人情)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無窮花)가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一切)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천벌(天罰)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農事)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圖)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 수염의 조 선달 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神仙)살이를 하러 간 거여…….”/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 맷돌을 단단히 매어 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 거라.”/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조 선달 영감님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 속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해일>

<해일>에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 할머니의 모습이 따뜻하게 담겨 있다. <신부>에서 언젠가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빈 방을 지키고 있었던 여인처럼, <해일> 속의 여인도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해일>에서는 유교적 도덕관의 사회 속에서 여인들이 보낸 인고의 세월을 젊은 여인이 아닌 할머니를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해일>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알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누에가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 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아직 미처 몰랐습니다만, 그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간신히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리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집 마당에 몰려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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