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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45. 유치환

2014. 7. 13. by 솜글

유치환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은 외가인 경남 통영에서 한의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극작가 유치진은 그의 형이다. 유치환은 1919(12)까지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익히고 통영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어릴 때는 말이 별로 없 지각을 해서 학교 종이 울려도 뛰지 않고 천천히 교실로 들어갈 정도로 내성적이고 느긋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1922(15)에는 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 중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이때 형 유치진은 같은 학교 3학년이었다. 유치환의 내향성은 이 시기에 더욱 심해져서, 친구들을 사귀기보다는 혼자 책을 읽고 글 쓰는 데만 열중했다고 한다. 이 시기부터 여러 신문의 학생란에 시를 투고하기 시작했다.

1923(16)에는 관동 대지진 때 무고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무참히 학살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 무렵 주일학교에서 만난 권재순이라는 소녀에게 거의 매일 산문을 보내는데, 이후 그녀와 결혼하였다. 1926(19)에는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어쩔 수 없이 귀국하고 동래고보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가지만 학교의 경직된 분위기에 회의를 느껴 중퇴하였다. 학창 시절부터 유치환은 정지용의 시를 좋아하는데, 1929(22)에는 고향에서 «생리»라는 동인지를 내는 등 문학 수업을 오랫동안 쌓았다.

1928(21)에는 권재순과 함께 당시로서는 드물던 신식 결혼식을 올렸다. 이때 신랑 신부 앞에 꽃바구니를 들고 서 있던 아이 중 하나가 훗날의 시인인 김춘수이다.

사진 출처 : https://namu.wiki/w/%EC%9C%A0%EC%B9%98%ED%99%98

문단 활동

결혼 후 유치환은 일본의 아나키스트 시인들과 정지용의 영향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고, 또래의 문학청년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1931(24) <정적>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온다.

첫 작품을 발표한 이후 유치환은 백화점 직원, 학교 교사, 사진사 등으로 근무하는 틈틈이 시를 쓴다. 한때 아내의 설득 때문에 사진관을 차리기도 했지만 경영이 여의치 않아 접고, 1934(27) 부산에 직장을 구한다. 이후 1935(28) <도시 시초> 5편 등을 발표하고 1936(29) «조선문단»에 시 <깃발>을 내놓았다. 이 작품으로 유치환은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 또는 인생파의 중추로 떠오른다.

1937(30)에는 고향 협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고, 1939(32)에 첫 시집 «청마시초»를 냈다. 이 시집은 본문 용지로 파지를 사용하였다.

1939년 청색지사(靑色紙社)에서 발행한 유치환의 첫 번째 시집 «청마시초»(126). 황색지(黃色紙)에 인쇄한 특수본으로, 구본웅이 장정을 맡았다. 서울과 만주 등을 방황하던 약 10년간의 작품 55편이 수록되어 있다.

1940(33) 봄에는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하여 해방 직전에 귀국한다. 1946(39)에는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중 해방 이후 최초의 시 동인지인 «죽순»을 낸다. 그가 남편과 사별한 시조 시인 이영도를 만난 것도 «죽순»을 통해서이다. 유치환은 이영도에게 숱한 연애편지를 보내고, 그 연정의 마음을 시에 담기로 하였다.

1947(40)에는 <바위>, <광야에 살리라> 등이 수록된 두 번째 시집 «생명의 서»를 출간하였다. 이어 1948(41) «울릉도», 1949(42) «청령일기»를 냄으로써 3년 연속으로 시집을 내는 기록을 남겼다. 1950(43) 6 · 25가 발발하자 유치환은 문총 구국대로 종군하고, 이때의 체험을 담아 이듬해에 시집 «보병과 더불어»를 발간하였다. 1953(46)에는 수상록 «예루살렘의 닭», 1954(47)에는 «청마 시집»을 내놓았다.

유치환은 전쟁 후 1955(48)부터 사망할 때까지 10년이 넘게 경남 권의 여러 중 · 고등학교의 교사직을 두루 거친다. 또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1957(50) «9시집», 1958(51) «유치환 시선», 1964(57) «미류나무와 남풍», 1965(58)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등 아주 많은 시집을 꾸준히 발간하였다. 시뿐 아니라 소설 <시위하는 악마>,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를 내는 등 다른 갈래에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 갔다.

1967(60), 부산남여상 교장으로 있던 유치환은 문인들 몇몇과 만났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시내버스에 치여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숨진다.

유치환 문학의 특성

유치환은 의도적인 기교를 몹시 싫어하였다. 그래서 다듬지 않고 자연스러운 시어로 인생에 내포된 감정을 표현하고, 허무와 절망의 극복을 치열하게 추구하였다. 특히 유치환의 시에서 사랑이라는 제재는 해방 전에는 일제에 순응하지 않는 애국정신으로, 해방 이후에는 이성을 향한 연애 감정으로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유치환의 시는 사뭇 남성적이면서 선이 굵어 김소월, 박목월과 자주 비교된다. 또 흔히 유치환을 가리켜 실존이나 허무 의식에 천착한 시인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유치환이 관심 가졌던 시적 대상은 매우 다양했다. 후기에는 사회 현실을 담은 시를 내서 제1공화국 시절의 혼탁한 정치판을 준엄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유치환의 시

<깃발>

1936(29) «조선문단»에 발표한 작품으로, ‘깃발을 통해 이상향을 향한 염원과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깃발소리 없는 아우성’,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 ‘애수’,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등 다양한 대상에 빗대면서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깃발>에서 깃발은 이상을 꿈꾸면서도 도달하지 못해 향수만 느껴야 하는 운명적 한계를 지닌 존재이다. 서정주의 <추천사>의 화자 역시 하늘로 표상된 이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염원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면을 가진다. 그러나 <추천사>의 화자가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이상향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와 노력을 반복하고 있다면, <깃발>의 화자는 그와 달리 좌절과 허무의 색채를 풍기고 있어 대조된다.

<깃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純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생명의 서>

1939(31) «동아일보»에 발표한 작품이다. 세속적인 삶의 가치를 부정하고 본연의 생명을 추구하여 진정한 생명의 공간인 사막으로 가겠다는 극한적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고통의 극한, 극도의 고독에서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유치환의 논리는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을 찾아야 한다는 이치와 동일하다. 이렇게 죽음 속에서 생명을 찾아내는 유치환의 생명 탐구 방법은 특유의 허무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도리어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장 철학의 허무 사상과도 그 맥락이 닿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비교적 많은 관념어를 사용하고 있고, 각 연의 1 · 2행이 모두 진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구체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생명의 서>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참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일월>

유치환이 일제의 압력을 피해 만주로 떠나기 직전인 1939(32) «문장»에 발표한 작품으로, <생명의 서>와 마찬가지로 본원적 생명에 대한 의지를 굳센 어조로 치열하게 노래하고 있다. 치열한 생명 의식과 사회악에 대한 준열한 윤리 의식을 결합하여 생명파 시의 실체를 보여 주고 있다.

<일월>
나의 가는 곳/ 어디나 일월(白日)이 없을소냐//
머언 미개(未開)적 유풍(遺風)을 그대로/ 성신(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熱愛)하되 삼가 애련에 빠지지 않음은/ 그는 치욕(恥辱)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옳은 증오(憎惡)를 예비하였나니.//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瞳孔)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不意)에 짐승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日月)/ 또한 무슨 회한인들 남길소냐.

<광야에 와서>

<일월>의 후속편 격인 이 작품은 유치환이 만주에서 생활할 때의 경험을 노래한 시로, 자연적 · 미개적인 삶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떠났던 광야가 사실은 암울한 땅이었음을 깨닫고 절망하는 모습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시적 공간인 광야는 유치환이 지냈던 만주를 의미한다.

자학’ · ‘패망’ · ‘회오와 같은 관념어가 많이 쓰인 까닭에 구체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조국에 대한 유치환의 남다른 사랑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모든 시인에게 있어 조국에 대한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유치환은 그것을 조금도 슬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의지의 시인답게 당당한 목소리로 의로운 길을 걷는 선비로서의 의연함으로 노래하고 있다.

<광야에 와서>
흥안령(興安嶺) 가까운 북변(北邊)/ 이 광막(曠漠)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暗愁)의 비 내리고/ 내 망나니의 본받아/ 화툿장을 뒤치고/ 담배를 눌러 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리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過失)함이러뇨/ 이미 온갖 것을 저버리고/ 사람도 나도 접어 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自虐)의 길에/ 내 열 번 패망(敗亡)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앓음을 어디메 호읍(號泣)할 곳 없어/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와 문을 열고 서면/ 나의 탈주(脫走)할 사념(思念)의 하늘도 보이지 않고/ 정거장(停車場)도 이백 리(二百里) / 암담한 진창에 갇힌 철벽(鐵壁) 같은 절망(絶望)의 광야(曠野)!

<바위>

1941(34) «삼천리»에 발표한 작품으로, 바위를 소재로 하여 삶의 허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뚜렷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깃발>에서 보인 허무의 비애가 <생명의 서><일월>에서는 생명과의 치열한 대결 의식으로 나타나는데, <바위>에서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생의 의지로 완성된 모습을 보여 준다. ‘바위와 같이 굳건한 의지로 극복해야 할 대상을 애련’, ‘희로’, ‘억년’, ‘비정’, ‘함북등의 한자어로 표현함으로써 태도 및 주제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黙)/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행복>

1953(46) 발표한 작품으로, 유치환이 시조 시인 이영도에게 구애하던 시기에 쓴 것이다. 허무의 극복과 의지의 문제가 아닌, 존재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정념을 노래하고 있어 유치환의 일반적인 시와 많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어찌 보면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센티멘탈리즘에 휩싸인 사춘기적 연정을 노래한 듯한 이 시는 진정한 행복의 가치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지극히 순결한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의미를 강조하는 한편, 유치환 특유의 관념적, 남성적 시어를 철저히 배제시키고 부드러운 정감이 넘치는 여성적 시어만을 구사함으로써 주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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