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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23. 김소월

2014. 5. 8. by 솜글

김소월의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

본명이 정식(廷湜)인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은 평북 구성의 공주 김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김소월이 세 살 때 그의 아버지 김성도는 일본인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말 잔등에 거꾸로 매달려 돌아와 한 달 여나 의식 불명 상태에 있다가 겨우 깨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정신 이상자가 되어 평생을 폐인으로 지낸다. 김소월의 비사교적인 성격과 폐쇄적인 내향성은 어린 시기 아버지를 보며 생긴 내면의 어둠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신 김소월의 유년기를 함께 보내 준 이는 그의 첫 번째 문학적 스승인 숙모 계희영이었다. 일찍이 언문을 깨쳐 책을 많이 읽은 숙모 계희영은 김소월에게 <심청전>, <옥루몽> 같은 고전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고 줄곧 함께 지냈다. 집안을 이끌던 어머니, 옛날이야기와 민요를 들려주던 숙모, 정신 이상자가 되어 알 수 없는 소리를 혼자 중얼거리던 아버지, 이런 가족 배경은 훗날 김소월이 남성 연민과 혐오를 갖게 하는 데, 나아가 소극적이고 여성적인 시 세계를 형성하는 데 큰 요소로 작용한다. 또 숙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은 그의 문학적 기반이 되었다. <접동새> 같은 시는 바로 숙모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811021026)

김소월의 작품 활동

김소월은 공주 김씨 문중에서 세운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정주 오산학교에 진학한다. 여기서 그는 두 번째 문학 스승이 되는 김억을 만나 시 창작에 몰입한다. 당시 김억이 «창조» 동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소개로 1920(19) «창조»<낭인의 봄>, <야의 우적>, <무과의 읍>, <그리워>, <춘강>의 다섯 편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이어 «학생계»<거친 풀 흐트러진 모래등으로>를 발표한다.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1922(21)에는 배재고보에 편입하는데, 졸업할 때까지 «개벽»<엄마야 누나야>, <봄밤>, <진달래꽃>, <개여울>, <먼 후일>과 소설 <함박눈> 등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김소월의 시편들은 곧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23(22)에는 일본으로 건너가지만 관동 대지진 때문에 다시 돌아와 잠시 «창조»의 후신 «영대»의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4(23)에는 식구들과 함께 처가인 구성군으로 이사하고, 거기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인계 받아 운영한다. 그러나 워낙 사업 수완이 없다 보니 곧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생계를 위해 어울리지 않는 고리 대금업에도 손을 댔다가 실패한다. 1925(24)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내지만, 연이은 경제적 실패로 김소월은 문학, 생활, 삶에 대한 애착을 놓고 술로 세월을 보낸다. 문중에서조차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몸과 마음이 지친 김소월은 결국 1934(33) 12, 아편을 삼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김소월의 시

한과 애수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고유 정서와 전통적 민요조 가락은 소월의 시를 이루는 두 원소(元素)이자, 소월시를 존재하게 하는 두 원인(原因)이다. 민족 최대 ·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소월이 남긴 150여 편의 시는 생전에 간행한 시집 «진달래꽃»으로 묶였고, 사후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1939)에 이어 지금까지 수많은 시집이 간행되어 최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그의 시가 전 국민의 절대적 사랑을 받게 된 원동력과 흡인력의 바탕은 소월시가 남과 다른 숭고한 이념이나 사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요, 시대적 고뇌를 온몸으로 포용하고 있는 지사적(志士的) 풍모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그것은 그의 작품 속에는 민족의 고유 정서와 맞닿아 흐르는 어떤 소박하고 진솔한 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소월의 시는 간결하고 소박한 가락,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구화체(口話體)를 활용한 7 · 5조의 대중적 리듬과, 이별, 그리움, 체념 등으로 대표되는 민중적 주제 의식을 담고 있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그 전통적 정서에 닿는다. 때문에 소월 시만이 갖는 처절한 호소력과 강렬한 감동을 전수받게 되는 것이다.

전통 서정시

<엄마야 누나야>

1922(21) «개벽»에 발표한 <엄마야 누나야>는 각 행 모두 3음보의 리듬을 사용하여 자연에 대한 순진무구한 동경을 진솔하게 노래함으로써 서정시의 완벽한 음악화를 이룬 작품이다. ‘강변으로 대유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은 엄마야 누나야라는 어린아이의 호칭을 사용할 정도로 순수하다. 그가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강변은 그에게 평화와 행복을 보장해 주는 안식처로서, 가족들과의 단란함을 이상으로 하는 보금자리를 뜻할 수도 있고, 당시 현실 상황에 견주어 볼 때는 일제의 모진 압제를 벗어난 어떤 이상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이 꿈꾸는, ‘갈잎의 노래가 들려오고 금빛 모래가 반짝이는 그 곳은 꿈의 세계만큼이나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서러운 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엄마야 누나야>
엄마냐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금잔디>

<금잔디>1922(21) «개벽»에 발표한 시이다. 임을 잃은 비극적 정한이 봄의 생동감과 어울림으로써 한층 더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이 시는 보여 주고 들려주는, 이른바 노래하는 시의 전형이다.

죽어 돌아오지 못하는 임과 해마다 임의 무덤가에 돋아나는 금잔디를 대비시키는 방법을 통해 임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하게 나타내고 있다.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라는 점층적 표현은 봄이 왔음을 강조하는 한편, 임의 부재를 더욱 절실하게 나타낸다.

<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진달래꽃>

1922(21) «개벽»에 낸 작품으로, 소월 시의 정수(精髓)로 꼽힌다. 이별의 슬픔을 인종(忍從)의 의지력으로 극복해 내는 여인을 시적 자아로 하여 전통적 정한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 정한의 세계는 고대 가요 <공무도하가>, 고려가요 <가시리><서경별곡>, 민요 <아리랑> 계승되어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전통 정서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412행의 간결한 시 형식 속에 한 여인의 임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체념과 극기(克己)의 정신이 함께 용해되어 있다. ‘진달래꽃은 시적 자아의 아름답고 강렬한 사랑의 표상이요, 떠나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끝까지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정성과 순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떠나는 임을 위해 꽃을 뿌리는 행위의 표면적 의미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공덕(散華功德)’,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임의 앞날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임을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만류의 뜻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저 이별을 노래하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별이라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존재론의 문제로도 확대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월은 그의 다른 대표작인 <산유화>에서처럼, 여기서도 진달래꽃의 개화와 낙화를 사랑의 피어남과 떨어짐, 즉 만남과 이별이라는 원리로 설정하고 있다.

<먼 후일>

1925«진달래꽃»에 실린 <먼 후일> 역시 <진달래꽃>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반어적 표현을 사용하여 이별의 아픔을 한층 더 강조한다.

<먼 후일>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잊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초혼>

1925«진달래꽃»에 실린 작품이다. ‘초혼(招魂)’이란 사람이 떠난 혼을 불러들여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내려는 간절한 소망이 의례화(儀禮化)된 것으로, 고복 의식(皐復儀式)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은 직후 그가 생시에 입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이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죽은 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초혼은 죽은 이를 소생시키려는 의지를 표현한 부름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세 번의 부름 : <초혼>에는 사랑하던 그 사람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이름이여’, ‘그 사람이여’, ‘부르노라와 같이 호칭적 진술을 반복하는 부름의 형식을 통해 투영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월의 시는 임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 비탄을 체념적 · 수동적 어조로 분출해 내는 나약함을 지니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격정적이고 능동적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의 의미 : 이 시에서 대답 없는 임을 부르다 죽어 이 되겠다는 표현은 백제 가요 <정읍사>나 박제상의 처가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설화 모티프와 관련이 있다, 임이 죽은 사실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비원(悲願)을 담은 한의 응결체라 할 수 있다.

배경의 기능 : 시간적 배경으로 제시된 해질 무렵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선으로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공간적 배경인 은 땅과 하늘의 경계, 곧 현실의 세계와 영원의 세계를 구분 짓는 소재이다. 이처럼 <초혼>은 시 · 공간적 배경을 통해 산 자가 죽은 자의 세계로 다가갈 수 없다는 절망적 한계를 인식하게 한다.

<산유화>

1925«진달래꽃»에 실린 작품이다. ‘은 화자가 현존하는 물리적 공간인 동시에, 세상의 모든 만물과 존재 만상을 다 포괄하는 우주적 공간이며, 시적 화자가 관조하고 있는 구체적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산 속에서 저만치혼자서 피어 있는 은 화자와 모든 존재의 근원적 고독을 의미한다. 저만치, ‘저렇게로 해석될 수도 있다.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 역시 1925년의 작품으로, ‘에 감정을 이입하여 삼수갑산에 대한 그리움을 여성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산>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 넘어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三水甲山)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못 잊어>

1925«진달래꽃»에 실린 작품으로, 잊을 수 없는 사랑의 괴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김소월 시에는 다양한 형태의 반복이 나타나는데, <못 잊어>에는 행과 연의 반복이 나타난다.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나요?”

<가는 길>

1923«개벽»에 발표한 <가는 길>은 전형적인 7 · 5조의 3음보 율격으로 우리 민족의 내면에 흐르는 정한의 세계를 진솔하게 표현한다. · · · 결의 4연 구성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앞뒤 각각 2연씩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앞 단락은 임을 떠나기 싫어하는 시적 자아의 심리적 갈등과 아쉬움을 보여 주고 있으며, 뒤 단락에서는 시적 자아의 그러한 심리를 반영하는 소재로서의 자연이 제시되어 있다. 간결한 형식과 탁월한 언어를 구사하는데, 특히 유음(流音)과 비음(鼻音) 등의 유성음으로 이루어진 시어는 시적 자아의 떠나기 아쉬움과 그리움을 애잔하게 그려낸다.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접동새>

<접동새>1923년 발표한 작품으로, 설화에서 끌어온 제재를 활용하여 비극적인 생활과 사랑의 정한을 노래하였다. ‘접동이라는 의성어가 행을 바꾸며 반복되는 첫 부분은 청각적 이미지를 형성함과 동시에 시 전체에 비극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아우래비’, ‘불설워’, ‘오랩동생과 같은 토속적 사투리를 통해 향토적인 분위기를 창조한 작품이다.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

<왕십리>

<왕십리>1923년 작으로, 김소월의 가장 대표적인 민요적 시이다. · · · 결의 4연으로 형성되어 있고, 그 가락 역시 민요와 같이 운율적이면서도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양상을 보인다.

<왕십리>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天安)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데./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삭주구성>

1923«개벽»에 발표된 작품이다. ‘삭주는 압록강 근처에 위치한 곳이다.

이 시는 삭주 구성에 대한 그리움을 3음보 율격에 담아낸 작품으로, 그 성격이 <>과 비슷하다. 그러나 삭주 구성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이며, <>삼수갑산과 더불어 유배지, 불귀지지, 또는 죽음의 이미지를 지닌 공간이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체념의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 곳이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임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님을 둔 곳이길래그 곳을 지향한다.

화자가 갖는 체념과 미련의 양면성을 함께 표상하는 것이 바로 이다. ‘은 화자가 지향하는 삭주 구성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의 표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넘기만 하면 곧바로 삭주 구성에 도달할 수 있기에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삭주구성>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 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 리/ 삭주 구성(朔州龜城)은 산()을 넘은 육천 리요//
물 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 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반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텐고/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

1925«진달래꽃»에 수록된 작품이다.

<>은 김소월 개인의 정한의 유로(流露)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삶의 터전을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러나 이 시를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킨다면, 일제의 수탈 정책에 의해 농토를 빼앗기고 북간도 등지로 유랑의 길을 떠났던 농민이나, 품을 팔러 도회지로 떠난 유민들의 실향의 비애를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길>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였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定州) 곽산(郭山)/ ()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삼수갑산>

<삼수갑산>은 김소월이 자살하던 1934«신인문학»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가 소월이 죽기 한 달 전에 발표한 그의 마지막 발표작임을 생각하면, 이 시에 드러난 절망의 깊이를 통해 그가 자살을 감행하던 때의 심적 태도가 어떠했는지 가늠해 보기에 충분하다. ‘삼수갑산을 능동적 존재로, 화자를 피동적 존재로 설정하여, ‘삼수갑산에 갇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화자의 절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김소월의 다른 시 <>에서의 삼수갑산은 정이 넘쳐흐르는 고향을 뜻하는 공간이지만, 이 시에서의 삼수갑산은 시적 자아를 가두는 한스러운 장소이다. 화자는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불귀(不歸)의 운명을 타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다.

<삼수갑산—차안서삼수갑산운(次岸曙三水甲山韻)>
삼수갑산(三水甲山)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山疊疊)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 멀드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1923«개벽»에 발표된 시로, 3음보의 율격이 네 연에 걸쳐 지속되고 각 연마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란 후렴이 붙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반복되는 구절이 운율을 형성하면서 시상을 응결한다.

각 연 1행은 점층적 구조를 가지는데 매 연마다 후렴구를 반복해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강조된 시구에 의미의 중심이 놓인다. 다시 말해 화자가 발견하는 사실보다는 그것을 이제야 안다는 것에 의미가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민족적 저항시

소월은 소박한 전원시, 동시적 경향의 서정시, 애틋한 사랑시, 향토적 서정시, 가족주의 시, 설화적 민속시 등, 그야말로 서정시의 다양한 세계를 보여 준 시인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나 저항 의지가 담긴 또 다른 시 세계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옷과 밥과 자유>

1925«동아일보»에 발표한 작품이다. ‘’, ‘곡식’, ‘나귀를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등장하는 시적 화자의 옷과 밥과 자유를 상실한 절망감과 탄식을 그려내고 있다. 제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어를 선택하여 다소 모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 에서 , ‘곡식에서 , ‘나귀에서 자유를 유추시키는 의도적인 구성 방법을 취하고 있다.

<서도 여운(西道餘韻)—옷과 밥과 자유(自由)>
공중(空中)에 떠 다니는/ 저기 저 새여/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초산(楚山) 지나 적유령(狄踰嶺)/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다면>

1925«진달래꽃»에 수록된 작품이다.

흔히 정한과 비애의 전통적 정서로 파악되는 소월의 시 세계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현실 인식이 투영된 그의 또 다른 시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국권 상실이라는 비극적 현실 인식과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저항 의지를 보여 주는 이 시는, 민족 공동체로서의 정서를 땅의 상실이라는 구체성에 바탕을 두어 작품의 효율성을 얻고 있다. 이러한 변모는 식민지 치하의 현실 상황에서 그저 한스럽다며 울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적극적 자세를 드러내 주는 것으로, 개인적 서정의 세계에서 우리에게’, ‘우리의와 같은 민족 모두의 문제로 시적 인식의 폭을 확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다면>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즈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손에/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 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느른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산경(山耕)을 김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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