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문학파의 결성
1920년대 초중반의 신경향 운동으로 세를 형성한 프로 문학 진영은 1925년 카프를 결성하여 단단한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사회주의 운동 세력이 예술 분야 전반을 장악하자, 민족주의 성향의 문인들은 이에 맞설 조직체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1926년 국민 문학파를 결정한다.
국민 문학파는 최남선과 이광수를 주축으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시조와 민요시 부흥 운동에는 이은상, 이병기, 안확, 조운, 정인보 같은 시조 시인뿐만 아니라 김동인과 염상섭까지 동참하였다. 또 변영로, 손진태, 양주동, 그리고 한때 프로 문학 진영에 있었던 박종화와 김동환까지 합류하자 규모가 커지게 된다.
일제 강점기의 ‘국민 문학’으로는 1927년 결성된 ‘국민 문학파’의 문학, 그리고 일제 말기 내선 일체와 황국 신민화 정책에 동조한 친일 문학을 일컫는 ‘국민 문학’의 두 가지가 있다.
국민 문학론의 전개와 소멸
국민 문학파의 주요 활동
국민 문학파는 잃어버린 ‘조선심의 회복’을 기본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한 시급한 과제로 한글의 활성화, 그리고 전통 시조 및 민요시의 부흥을 꼽는다.
이미 1921년에 조선어연구회가 조직된 이래 한글의 정리와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고, 1924년께부터 김억, 주요한, 이광수 등에 의해 민요시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진 바 있었다.
이런 바탕 위에서 국민 문학파는 1926년 정음(正音) 반포일, 즉 ‘가갸날’을 제정하였고, 최남선은 총 108수의 시조를 담은 시조집 «백팔 번뇌»를 간행한다. 아울러 최남선이 <조선 국민 문학으로서의 시조>와 <시조 태반으로의 조선 민성과 민속>을, 손진태가 <시조와 시조에 표현된 조선 사람>, 염상섭이 <시조에 관하여>, 이듬해 조운이 <병인년과 시조>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이 무렵의 시조 논문들은 식민지 상황에서 차츰 흐려지던 조선인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담고 있다. 국민 문학파가 이끈 국민 문학 운동은 한글의 활성화와 시조 및 민요시 부흥 외에도 국토 순례와 예찬, 역사 소설의 창작 등 여러 방면에서 시도된다.
국민 문학파의 성과와 한계
국민 문학파는 결성 동기 자체가 사회주의의 급진적 이념에 대한 막연한 적대 의식에서 비롯된 모임이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각자 개성에 따라 활동하면서 필요할 때만 모이는 간헐성을 띠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카프에 비하면 결속력이 약하고 이론의 정합성도 떨어졌다. 무엇보다 국민 문학파 진영에는 염상섭을 제외하면 그럴 듯한 논리와 객관성을 갖춘 논자조차 없었다.
게다가 국민 문학파는 만족할 만한 문학적 결실도 거두지 못한다. 더러 김억의 작품처럼 전래의 형식을 깬 새로운 기법의 시조도 나왔지만, 대부분은 최남선의 작품처럼 전통 규범을 답습하는 정형률과 틀에 박힌 언어를 구사하여 옛 시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1927년경부터 카프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국민 문학파의 민족 통합주의 노선은 정돈된 이론 하나 세우지 못한 채 1930년대에 들어 흐지부지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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