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용의 생애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 1900~1947)은 용인에서 태어나 휘문의숙과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다. 학창 시절부터 동창인 박종화, 정백과 함께 급우지 «피는 꽃»을 만들었고, 1919년(20세)에는 시 <푸른 언덕 가으로> 등을 습작하였다. 졸업 후에는 고향에서 자연에 묻혀 지내다가 1920년(21세) 박종화, 정백과 동인지 «문우»를 펴는데, 여기에 시 <커다란 집의 찬 밤>을 싣기도 했다.
홍사용이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22년(23세) «백조»를 창간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백조»의 편집을 맡으면서 창간호에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 <꿈이면은?>, <통발>, <푸른 강물에 물노리치는 것은>은 발표하고, 2호와 3호에 <봄은 가더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는 시뿐 아니라 소설 <저승길>, 수필 <그리움의 한 묶음> 등 여러 장르에 손을 댄다. 특히 «백조»가 폐간된 후에는 연극에 관심을 가져 1923년(24세) ‘토월회’에 참여하고 1927년(28세)에는 ‘산유화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0년(31세)에 신흥 극장을 조직하면서부터는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되어, 이후 방랑 생활을 하면서 거의 작품을 쓰지 않았다. 결국 홍사용은 방랑기에 얻은 폐병으로 고생하다가 1947년(48세)에 세상을 뜨고 만다.
홍사용의 문학 경향
홍사용의 작품은 크게 초기와 후기로 분류된다.
초기에는 «백조»의 노선에 따라 낭만주의의 경향을 보인다. 때문에 «백조» 시절의 작품 중에는 ‘눈물’, ‘꿈’, ‘죽음’ 등을 소재로 감상적 세계에 대한 동경을 보이거나 죽음을 미화하는 낭만주의 시가 많다.
그러나 후기 작품인 <비 오는 밤>, <흐르는 물을 붙들고서> 등에는 낭만주의의 주조보다는 민요적 성격이 많이 보인다. 홍사용은 전국을 떠돌면서 구비 전승되는 노래를 채록해 «청구가곡»이라는 민요집을 남길 만큼 민요에 관심이 많았다. 또 후기에는 신극 운동에 정열을 쏟아 희곡 <산유화>, <향토심>, <할미꽃> 등을 써서 공연하기도 했다.
홍사용의 시
<봄은 가더이다>
1922년(23세) «백조» 2호에 발표한 작품으로, 문체와 표현 면에서 이듬해 발표되는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봄은 가더이다> 中
봄은 가더이다…….//
“거저 믿어라…….”/ 봄이나 꽃이나 눈물이나 슬픔이나/ 온갖 世上(세상)을 거저나 믿을까?/ 에라 믿어라 더구나 믿을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풋사랑을…….//
봄은 오더니만, 그리고 또 가더이다/ 꽃은 피더니만, 그리고 또 지더이다/ 님아 님아 울지 말어라/ 봄도 가고 꽃도 지는데/ 여기에 시들은 이 내 몸을/ 왜 꼬닥여 울리랴 하느냐/ 님은 웃더니만, 그리고 또 울더이다//(…중략…)
이게 사랑인가 꿈인가/ 꿈이 아니면 사랑이리라/ 사랑도 꿈도 아니면 아지랭인가요/ 허물어진 돌무더기에 아지랭인게지요/ 그것도 아니라 내가 속았음이로다//
동무야 비웃지 마라/ 아차 꺾어서 시들었다고/ 내가 차마 꺾기야 하였으랴만/ 어여쁜 그 꽃을 아끼어 준들/ 흉보지 마라 꽃이나 나를/ 안타까운 가슴에 부더안었지//
그러나 그는 꺾지 않아도/ 저절로 스러지는 제 버릇이라데/ 아ㅡ 그런들 그 꽃이 차마/ 차마, 졌기야 하였으랴만/ 무디인 내 눈에 눈물이 어리어/ 아마나 아니 보이던 게로다//
아아 그러나, 봄은 오더니만, 그리고 또 가더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1923년(24세) «백조» 3호에 발표된 홍사용의 대표작이다. 사설과 영탄을 섞은 대화체로 삶의 고통과 비애를 읊어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의 감상적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中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 “맨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 하는 그 소리였지요마는,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중략…)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 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연(坎中連)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 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형식상 · 표현상의 특징
첫 행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우리 노래와 시가에서 많이 쓰이는 ‘a - a - b - a’의 반복 · 변화 구조를 취한다. 이러한 전통 시가의 형식은 운율을 형성하여 쉽게 읊조려지는 효과를 가져옴과 동시에 정서적 공유를 강화하고 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사설과 영탄을 섞은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소이다’, ‘~는지요’, ‘~더이다’ 등의 독특한 어미로 집약된다. 일상적 대화를 그대로 전달하여 시적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사투리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현실감과 운율의 효과를 동시에 얻고 있다.
시적 한계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시적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토로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시적 기교를 찾아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대상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주관적인 감상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이 시에서는 ‘나’의 슬픔의 원인은 전혀 규명하지 않은 채, 주관적인 비애와 과장된 몸짓만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 탓에 작품 전체에는 시적 긴장이 느슨해진다. 이런 애상적 감상성은 홍사용이 당대 민족 현실을 깊이 있게 인식하지 못하고, 또 현실에 대한 응전의 태세를 갖추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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