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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18. 이상화

2014. 4. 24. by 솜글

이상화의 생애

어린 시절과 «백조» 시절

이상화(李相和 또는 李想華, 1901~1943)는 대구에서 태어나는데,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탓에 개화 지식인인 백부에게 길러진다. 백부의 집에 부유하였기 때문에 이상화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상화는 1917(17) 고향 대구에서 백기만, 현진건, 동생 이상백 등과 동인지 «기화»를 만들어 활동하면서부터 문학에 빠져 든다. 1919(19) 3 · 1 운동 때는 만세 운동에 앞장섰으며, 1921(21) 현진건의 소개로 동년배인 박종화와 처음 만나 이후 친밀한 사이가 된다.

1922(22)에는 «백조» 동인으로 참여하고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 <단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에 도쿄로 가지만 관동 대지진으로 유학길이 막혀 귀국하고, 1923(23) «백조» 3호에 <나의 침실로>, <이중의 사망>, <마음의 꽃> 등을 발표하였다. 이듬해에는 <허무교도의 찬송가>, <별리>를 발표한다.

후기 활동

이상화는 1925(25)부터 김기진, 박영희 등과 가까이 지내며 파스큘라와 카프 진영에 가담하여 자신의 집 사랑에서 사회주의 문인, 사회 운동가, 독립 운동가들과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후 이상화의 문학 세계에는 사회의식이 깊이 스며들어 <무산 작가와 무산 작품> 같은 평론을 쓰고 <구루마꾼>, <엿장사>, <거러지>, <가상>, <가장 비통한 기욕>,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등 사회 극빈층의 생활을 다룬 경향주의 색채의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백조파때의 추상적인 관념적인 공간에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현실로 작품의 부대를 옮긴 것이다.

1926(26)에는 이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백조» 시절의 지나친 한탄을 배제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향주의 시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결국 카프에서 탈퇴한 이상화는 1928(28) <저무는 놀 안에서> 등을 발표하지만 작품성은 그 이전만 못하다. 이후 일본 경찰의 감시, 가산 탕진 등으로 낙담한 그는 술에 젖어 세월을 보내고, 1935(35)즈음에는 상하이에서 방랑 생활을 하기도 한다. 결국 술 때문에 병을 얻어 1943(43) 집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기묘하게도 같은 날 현진건 역시 죽음을 맞았다.

이상화는 생전에 50여 편의 시와 10여 편의 산문을 썼음에도 시집을 한 권도 내지 못했다. 훗날 문우인 백기만이 그와 이장희의 시를 한데 묶어 유고집 «상화와 고월»을 펴낸다.

이상화의 가족 사진. 그의 아내의 이름은 '서온순'이었는데, 이름만큼 온순했다. 백기만은 이상화를 회고하며 훗날 이상화의 절친인 백기만은 이상화에게 결혼 후 네 명의 연인이 있었다고 하니, 무려 네 번의 바람을 피운 셈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 영남일보(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1222010003119)

이상화의 문학

초기 작품 - <나의 침실로>

이상화는 초기에 «백조» 특유의 현실 도피주의의 면모를 보여 준다. 이 시기 작품으로는 <말세의 희탄>, <나의 침실로> 등이 있다. 1923(23) «백조» 3호에 발표한 <나의 침실로>는 관능적, 감상적, 낭만적 표현 방법을 통해 영원하고 아름다운 안식처를 갈구하는 내용의 시이다.

<나의 침실로—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만 있어라>
마돈나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마돈나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도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 어느덧 첫닭이 울고뭇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욱, 너의 것이냐?//
마돈나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맘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窒息)이 되어, 얄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오너라 가자, 앞산 그르메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 행여나, 누가 볼는지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느니!/ ,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가슴의 샘이, 말라버린 듯, 마음과 목이 타려는도다.//
마돈나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내 침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歲月)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나의 침실로>는 형태적으로 볼 때, 6연과 12연의 마지막이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로 되어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서정적 자아는 마돈나라는 연인에게 침실로 가자고 안타깝게 부르고 있다. 침실오랜 나라’, ‘부활의 동굴’,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침실’, ‘아름답고 오랜 거기등으로 변주(變奏)된다. 이러한 침실의 의미는 밀실(密室), 죽음의 세계, 또는 조국의 광복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는데, 10연과 11연에 중점을 둔다면, ‘침실꿈과 부활의 동굴로서의 의미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에 있고, 죽음과 재생(再生)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갖고 있는 곳으로 볼 수도 있다.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만 있어라라는 부제를 참조한다면 침실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후기 작품

사회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은 이후 이상화는 사회 빈곤층의 생활을 담은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다가 1926(26) <통곡>에 이어 «개벽»<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한다. 두 작품은 «백조»와 사회주의 성향 모두로부터 한 걸음 멀리 서서 조국 광복에의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통곡>

<통곡>은 고백적 어조로 빼앗긴 조국 땅이 애닯아운다는, 처절한 아픔과 절망을 노래한 시이다. 일제 강점기의 억압과 치욕 속에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드러내는데, ‘을 부정하는 것은 곧 삶을 부정하는 것으로 암담한 현실에 대한 처절한 아픔과 절망감을 비탄하게 표현만 일면이라 할 수 있다.

<통곡>
하늘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닯아/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 마라/ 달도 뜨지 마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이상화의 대표작이다. 작품에서 봄 들판의 생동감은 모두 과거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현실 상황으로는 상실의 아픔이 제시되는데, 이를 통해 민족의 설움을 강렬한 어조로 토로한 저항시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곱은 비로/ 나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므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정서의 변화 : 화자는 처음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의구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들판을 걸어간다. 그의 눈에 비친 들판은 전통적 삶의 터전이자 가장 한국적인 요소들로 가득 찬 곳이었고, 화자는 그 들판에 애정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이 현재 빼앗긴 들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부터는 자시의 영혼을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것이라며 자조 섞인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곧 시의 첫 부분에서 제시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구하게 된다. 그것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이다.

표현상의 특징

- 어조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크게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조 또한 이와 유사하다. 화자는 먼저 조국 상실의 현실을 질문하고 그러한 상황에서도 봄이 올 것임을 노래한다. 그리고 조국을 다시 되찾고 싶은 의지를 감상적, 의욕적 어조로 표현한다. 그러나 자신의 기쁨이 하나의 환상임을 깨달으면서부터는 절망적, 자조적 어조를 보이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의 어조를 질문과 대답의 형식 속에서 자조적 어조에서 의욕적 어조로, 의욕적 어조에서 다시 자조적 어조로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이미지 : 이 시는 향토적이고 함축적인 시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삶을 느끼게 한다. 또한 푸른 웃음, 푸른 설움’, ‘삼단 같은 머리등은 시각적 이미지를 자극하는데, 이는 눈으로 자연의 봄을 느끼면서도 기쁨을 누릴 수 없는 당대의 절망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의 심상
심상(心象, image)이란 시의 회화적 요소로, 실제로 체험하지 않고도 언어에 의해 마음속에 그려지는 감각적인 모습이나 느낌을 말한다. 언어 표현이 독자에게 수용되는 과정에서 시각, 촉각과 같은 구체적인 형상으로 반응되는 것으로, 나아가 그 형상과 관련하여 연상되는 여러 가지 관념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심상은 시가 아닌 다른 문학 작품에서는 물론 일상의 언어 표현에서도 나타나는데, 특히 시에 쓰인 심상은 시의 주제나 시인의 정서를 표현하는 중요한 언어적 장치 중 하나이다.
  • 지각적 심상 :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에 의해 환기되는 심상
  • 기관 심상 : 호흡 기관, 소화 기관, 순환 기관 등의 신체적 감관에 작용하는 심상.
  • 근육 감각적 심상 : 근육의 수축, 긴장 등 내적 자극에 의해 환기되는 심상.
  • 역동적 심상 : 생동감 있고 힘차게 움직이는 모습에 의해 환기되는 심상.
  • 공감각적 심상 : 어떤 감각이 다른 감각으로 전이(轉移)되어 표현되는 심상.
  • 서술적 심상 : 서술이나 묘사의 방법으로 제시되는 심상.
  • 비유적 심상 : 비유의 방법으로 제시되는 심상.
  • 상징적 심상 : 상징의 방법으로 제시되는 심상.

- 점층 구조와 운율 : 첫 연과 마지막 연을 제외하면 나머지 연은 대체로 행이 바뀌면서 길어지고 있다. 이러한 점층 구조는 시 전체에 구조적 안정감을 부여하며, 느렸다가 빨라지는 율독(律讀)의 완급(緩急)을 획득하게 한다. 이 장치는 시적 화자의 심리적 변화와 긴밀하게 조응됨으로써 시적 감동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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