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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독일 여행 URL 복사

독일 쾨니히슈타인 요새 한국어 가이드 - 온라인에서 바로 보기

2022. 1. 20. by 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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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의 한국어 지도를 고화질로 보고 싶다면


쾨니히슈타인 요새 Festung Königstein

독일 작센 스위스에 있는 요새로, 1241년부터 240m 높이의 암벽 위에 건축을 시작한 성이다. 유럽의 요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암벽 위에 있어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쾨니히슈타인이란 ‘왕의 돌’이라는 뜻인데, 과거 작센의 군주들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에 있는 예술품이나 국가 보물을 보관하는 피난처로 이용되기도 했고 16세기부터 교도소로 쓰이기도 했다. 우물, 무기박물관, 대포, 막사, 사격소와 탄약 보관소, 연회장, 보물 보관소, 병원과 정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며 상시 가이드 투어와 역사 재연 행사가 열린다.

주요 전망 포인트 : 왼쪽부터 순서대로 보이는 장소

A 헴펠의 코너 전망 : 피르나, 드레스덴 방향

  • 피르나 Pirna : 거리 10km
  • 드레스덴 Dresden : 거리 35km
  • 보스베르크 Borsberg : 고도 354m, 거리 15.4km
  • 툼스도르프 Thürmsdorf : 거리 1.8km
  • 클라이너 베른슈타인 Kleiner Bärenstein : 고도 338m, 거리 3.0km
  • 그로써 베른슈타인 Großer Bäenstein : 고도 327m, 거리 3.5km

D 구 무기고 앞 전망 : 파펜슈타인, 퀴를 방향

  • 파펜슈타인 Pfaffenstein : 고도 435m, 거리 2.3km
  • 카츠슈타인 Katzstein : 고도 474m, 거리 6.2km
  • 퀴를 Quirl : 고도 349m, 거리 1.5km
  • 호어 슈니베르크 Hoher Schneeberg : 고도 726m, 거리 14.2km
  • 람퍼트슈타인 Lampertstein : 고도 426m, 거리 5.5km
  • 콜베르크 Kohlberg : 고도 443m, 거리 6.5km
  • 비엘라탈 Bielatal : 거리 6.0km
  • 베른하르트슈타인 Bernhardtstein : 고도 425m, 거리 4.5km
  • 사텔베르트 Sattelberg : 고도 724m, 거리 18.2km
  • 아우구스투스베르크 Augustusberg : 고도 513m, 거리 11.5km
  • 가이징 Geising : 고도 824m, 거리 25.8km
  • 코타 스피츠베르크 Cottaer Spitzberg : 고도 391m, 거리 6.6km
  • 루흐베르크 Luchberg : 고도 576m, 거리 23.6km

F 왕의 코 지점 전망 : 작센스위스 국립공원 방향

  • 릴리엔슈타인 Lilienstein : 고도 416m, 거리 2.1km
  • 탄츠플란 Tanzplan : 고도 597m, 거리 19.0km
  • 호헤 리베 Hohe Liebe : 고도 401m, 거리 11.0km
  • 팔켄슈타인 Falkenstein : 고도 425m, 거리 9.7km
  • 슈람슈타이네 Schrammsteine : 고도 425m, 거리 10.5km
  • 그로써 빈터베르크 Großer Winterberg : 고도 556m, 거리 14.5km
  • 클라인헤너스도르퍼슈타인 Kleinhennersdorfer Stein : 고도 392m, 거리 5.3km
  • 팝스슈타인 Papststein : 고도 451m, 거리 4.9km
  • 고흐스슈타인 Gohrischstein : 고도 448m, 거리 4.0km
  • 클라이너 즈윈슈타인 Kleiner Zschirnstein : 고도 472m, 거리 9.5km
  • 그로써 즈윈슈타인 Großer Zschirnstein : 고도 560m, 거리 10.5km
  • 파펜슈타인 Pfaffenstein : 고도 435m, 거리 2.3km
  • 호어 슈니베르크 Hoher Schneeberg : 고도 726m, 거리 14.2km

G 낙뢰 참나무 고원 전망 : 바스타이, 릴리엔슈타인 방향

  • 보스베르크 Borsberg : 고도 354m, 거리 15.4km
  • 툼스도르프 Thürmsdorf : 거리 1.8km
  • 클라이너 베른슈타인 Kleiner Bärenstein : 고도 338m, 거리 3.0km
  • 그로써 베른슈타인 Großer Bäenstein : 고도 327m, 거리 3.5km
  • 라우엔슈타이네 Rauensteine : 고도 304m, 거리 3.5km
  • 바스타이 Bastei : 고도 305m, 거리 5.2km
  • 펠젠그룹 라텐 Felsengruppe Rathen : 거리 5.2km
  • 감리히 Gamrig : 고도 256m, 거리 5.2km
  • 나폴레옹샨체 Napoleonschanze : 고도 390m, 거리 7.6km
  • 릴리엔슈타인 Lilienstein : 고도 416m, 거리 2.1km
  • 탄츠플란 Tanzplan : 고도 597m, 거리 19.0km
  • 호헤 리베 Hohe Liebe : 고도 401m, 거리 11.0km
  • 팔켄슈타인 Falkenstein : 고도 425m, 거리 9.7km
  • 슈람슈타이네 Schrammsteine : 고도 425m, 거리 10.5km
  • 그로써 빈터베르크 Großer Winterberg : 고도 556m, 거리 14.5km

요새 내부 구역 : 지도상의 번호 순서대로

1 로테 다리 Rothe Brücke

요새로 가는 길에 설치한 첫 번째 방어 수단이다.

1792년에 목조 다리로 지어 요새를 포위할 때 신속하게 적의 접근을 막도록 설계했다. 그러나 나무인 만큼 홍수 때문에 여러 차례 손상되어 수리를 거듭해야 했다. 1883년 철도 건설 중에 기존의 로테 다리를 철거하고 1886년부터 레버를 이용해 몇 초만에 접어올릴 수 있는 시소형 도개교로 교체했다. ‘로테 다리’란 ‘붉은 다리’라는 뜻인데, 붉은 벽돌을 사용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2 하부 방어 성벽 Niedere Werke

요새 입구의 방어 기능을 확충하기 위해 1755~1802년에 건설된 1차 방어용 요새이다. 7년 전쟁(1756~1763년)에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8세기 말에야 다시 재개되었다고 한다.

‘베어케(Werke)’란 분리되거나 반 분리된 주요 요새의 경계 외부에 건설되거나 설치된 소규모 요새를 말한다. 후방 방향으로 성벽을 두지 않기 때문에 적군에게 점령당하더라도 타격이 적은 형태이다. 16세기 들어 요새를 보호하기 위해 해자로 둘러싸인 외곽 보루(ravelin)나 반원형의 뤼네트(lunette), 돌출보라 불리는 화살촉 보루(flèche), 해자에 설치하는 지붕달린 통로인 카포니에(caponier)와 같은 다양한 베어케의 형태가 개발되었다.

나중에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가용 자원이 늘어가면서 발전이 가속화되었고, 베어케 시스템은 적군의 공격 속도를 늦추도록 점점 더 정교해지고 확장되었다.

3 돌각보형 성벽(화살촉 보루) Flèche(Pfeilschanze)

하부 방어 성벽 중 가장 먼저 지은 부분으로 1755~1756년에 건설되었다. 공성전이 일어나면 이 보루의 전면 지역에서 적을 향해 대포를 쏘았다고 한다. 이런 형태의 성벽은 베어케의 일종인데 바깥을 향해 뾰족하게 난 모양이 화살촉(Flèche)과 비슷하다고 하여 ‘Flèche’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4 라벨린 출입구 Torravelin

1729~1736년에 건설한 입구로, 출입문을 방어하기 위한 경비병과 순찰로를 두었던 곳이다. 1591년부터 이미 이곳에 라벨린을 두고 있었는데 강건왕 아우구스트가 현재와 같이 재건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더 아래에 승강기가 만들어져 있지만, 과거에는 이곳이 요새를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출입문이었다. 경비병이 머물던 병동과 방어용 총, 순찰을 위한 난간을 두었고, 요새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은 경비병에게 신분을 밝혀야 했다.

‘라벨린(ravelin)’이란 해자로 둘러싸여 삼각형의 형태를 띠는 요새 외곽의 보루를 일컫는 말이다. 초기에는 데미 륀(demi-lune)이라고 불렸다. 군대와 포병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경사로나 계단을 내는 것이 특징이며, 일반적으로 적의 공격을 충분히 흡수하도록 튼튼한 벽돌로 지었다.

안쪽에서 본 라벨린 출입구

5 메두사 머리가 있는 관문 Grabenschere mit Medusentor

라벨린 출입구와 함께 건설한 웅장한 출입문으로, 요새 입구를 보호하는 두 번째 장벽 역할을 했다. 포곽 사이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의 머리 조각을 두었는데, 이 때문에 메두사 문이라고도 한다. 신화 속에서 메두사는 그 얼굴을 보는 사람은 모두 돌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만큼, 성문에 메두사의 머리를 두어 적을 제지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위에는 작센 공국과 폴란드 왕국 연합국의 국장이 있다. 작센 선제후들이 폴란드의 왕이기도 했던 때(1697~1706년 및 1709~1763년)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6 나무경사로 Trockengraben mit Holzrampe

적군이 공격해 오면 빠르게 제거할 수 있도록 목재로 만든 도개교이다. 경사를 이루도록 높이를 다르게 설계해 세운 세 개의 받침석 위에 경사로를 내려 고정했고, 공성전이 벌어지면 나무경사로를 부수거나 불에 태워서 순식간에 출입을 차단할 수 있었다.

7 게이트 하우스 Torhaus

나무경사로를 지나면 게이트 하우스의 문을 통과하게 된다.

게이트 하우스는 고지대로 올라가는 길에 1589년 자연적인 암석의 틈새 위에 건설한 곳이다. 두 번 구부러진 이 건물의 게오르부르크(Georgenburg), 사격소(Streichwehr) 등은 요새의 서쪽에 눈에 띄는 조화미를 형성한다.

게이트 하우스의 지하는 요새의 방어를 위한 공간이었고 위층에는 경비병 등의 주거공간이다. 1729~1736년에 한 차례 개축되었으며 1910년에는 오스트리아 출신 조각가 오토 판츠너(Otto Panzner)가 제작한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부조가 추가되었다.

아우구스트 부조

게이트 하우스 - 둔클레 아파레일(Dunkle Appareille)

게이트 하우스에서 요새 고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성문 아래로 이어졌는데, 이곳을 ‘둔클라 아파레일(Dark Appareille)’이라고 부른다. 나무 문과 돌판, 불·돌·열탕 등을 퍼붓기 위한 망루(Pechnase), 대들보(Balkenfalze)와 격자문, 철문, 석조 통로 등 방어시설들을 차례로 두어 적의 접근을 차단했다. 부분적으로 포병을 두기도 했다.

게이트 하우스 - 바겐빈데(Wagenwinde)

1877년 제작된 톱니바퀴형 기중기로, 두 명의 병사가 바퀴를 돌려 작동시키도록 되어 있다.

1779년에 메두사 문에서 가파른 경로를 따라 포병과 짐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하던 나무 기중기가 있었는데, 너무 위험한 탓에 이를 대체해 새로이 만든 것이다. 1991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8 사령관의 집 Kommandantenhaus

게이트 하우스의 일부인 이 부분은 사령관과 그 가족의 거주지이다. 요새의 지휘관들은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살았다. 1913년까지 쾨니히슈타인 요새의 지휘관은 공식 사령관의 지위를 부여받아 수비대 업무를 담당하고 드레스덴 총독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내부에는 사령관이 살던 공간의 실내 인테리어와 탁자, 의자, 책상, 찬장 같은 가구는 물론 당시 사령관이 사용하던 시계, 전화기 등도 전시하고 있다. 

사령관 거주 공간 내부의 모습

9 사격소 Streichwehr

요새 입구로 침입해 온 적을 향해 집중 사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1589년 건설되었다. 지하실에는 총포를 보관하고 1층과 위층에는 거주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건설 당시부터 지금과 같이 게오르크부르크와 게이트 하우스를 연결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 지하 공간에 내려가 볼 수 있다.

10 게오르크부르크 Georgenburg

고원 지대의 첫 번째 건물 중 하나이다. 1365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4세(Charles IV)와 관련하여 ‘황제의 성’이라는 뜻의 ‘카이저부르크(Kayserburg)로’로 언급된 기록이 있는데, 당시 카를 4세가 이곳에 거주했었다고 한다. 고딕 양식의 커튼 아치형 창문과 장식된 뾰족한 아치 문이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1500년경 개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1세가 다시 개축하면서 1619년에 지금과 같은 이름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냥용 오두막으로 사용되다가 18~19세기에 주립 교도소로 썼다.

11 게오르크 보루 Georgenbastion

요새 입구 정면을 향해 발사하는 총포를 두기 위해 1669~1670년에 지은 곳으로, 이후 17~18세기에 5개의 대포를 두었다. 동판에 요한 게오르크 2세(Johann Georg II, 1613~1680)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보루를 설치한 후에는 보루에 총을 운반하기 위해 경사로도 건설했다. 경사로는 게오르크부르크의 문을 통해 하부 방어 성벽으로 연결되도록 했고, 1760년부터는 메두사 문까지 계단으로 연결했다.

12 신 무기고 Neues Zeughaus

정문에 인접해 있는 이 건물은 1631년에 둔클레 아파레일(Dunkle Appareille)의 위에 지었다. 당시에는 연회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나무 바닥에 비밀 출입구를 설치해 요새가 공격당하면 바닥을 통해 지하 대피소(Caponnière)로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

1806년 화재로 지붕이 파괴되어 1816년에 재건했고, 이후 무기와 대포를 보관하는 새로운 무기고로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이미 무기고가 있었기 때문에 이곳을 신 무기고라고 부르게 되었다. 4~10월에 내부에서 군사역사박물관 전시를 열어 과거의 무기들을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13 아우구스투스 광장 Augustus-Platz

1815년 작센의 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Friedrich August I, 1750~1827)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우구스트 1세는 나폴레옹 전쟁 중에 프로이센에 있다가 1813년 10월부터 오스트리아에 포로로 잡혀 있었다. 1815년 6월에야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그를 기리기 위해 이 광장의 이름을 아우구스투스 광장(Augustusplatz) 또는 왕의 광장(Königsplatz)으로 바꾸고 린데 나무(Linde)를 심었다. 잔디로 덮인 내부는 전쟁 시에 활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에 둘러싸여 돌 의자나 나무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다.

14 우물의 집 Brunnenhaus

선제후 아우구스트(1526~1586)는 중세 성을 요새로 확장하고자 했다. 그러자면 상시 사용할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있어야 했다.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기나긴 공성전을 버틸 수 있고 많은 건물을 지으려면 충분한 수원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뉘른베르크 출신의 광산과 우물 시설 전문가였던 마르틴 플라너(Bergmeister Martin Planer, 1510~1582)에게 암벽을 파서 우물을 짓도록 했다. 그 결과 1563년부터 1569년까지 에르츠 산맥 광부들은 깊이 152.5m의 우물을 만들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목조 건물도 지었다. 이 우물은 유럽에서 두 번째로 깊은 성채 우물이다.

오늘날에 있는 우물의 집은 1735~1737년에 건축가 파리 출신의 바로크 건축가인 장 드 보트(Jean de Bodt, 1670~1745)가 지었다. 우물 위에는 최대 4.5m 두께의 방탄 사암 보호대가 있고, 1881년에는 강철로 뼈대를 짠 화강암 콘크리트 덮개를 추가로 설치해 물을 보호했다.

초기에는 말이 도르래를 끌어 물을 퍼올렸으나 나중에는 기계를 설치했다. 1871년에는 증기기관을, 1911년에는 전기 모터를 설치해 물을 자동으로 퍼올렸으며 1967년부터는 채수를 중단했다가 1998년부터 다시 급수 기술을 작동하고 있다. 우물의 집에서 우물을 조성한 역사와 방법을 전시한 자료 및 실제 우물을 볼 수 있고, 4~10월에는 물 펌핑 시연도 볼 수 있다.

15 막달레넨부르크 Magdalenenburg(Aufzug)

1621~1622년에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1세(Johann Georg I, 1585~1656)가 지은 2층짜리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이다. 후에 요한 게오르크 2세(Johann Georg II, 1613~1680)의 아내의 이름을 따서 ‘막달레넨부르크(Magdalenenburg)’라고 이름 지었다. 위의 2개층은 선제후의 주거지로 썼고 다락방과 지하 2개층은 식료품과 와인 저장고로 사용했다.

2019년에 1850~1900년경의 모습을 기반으로 지붕을 수리하고 정면을 개조했다. 또 2011년에는 1725~1819년 아우구스투스 2세의 238,600L짜리 거대한 양조장 통이 있었던 것을 실물 크기의 멀티미디어 장치로 복원해 놓았다. 16세기에 설치한 우물이 없었다면 이런 양조장을 운영하지 못했을 것이다. 통에는 포도주의 신 바쿠스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과거 양조장 통을 스케치한 그림

16 수비대 교회 Garnisonskirche

쾨니히슈타인 요새에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13세기 초에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다. 당시 작센-보헤미아 국경 지역의 건축물에 대한 중요한 증거물 중 하나이다. 1516년 조지 비어드 공작(Duke George Bearded, 1471~1539)이 후기 고딕 양식의 교회로 개축했고, 16세기 말에 쾨니히슈타인 성을 국가 요새로 확장한 후부터 수비대 교회로 사용했다. 1676년에는 성 조지 예배당과 작센 최초의 수비대 교회로 축성했으며, 2000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후 재개장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17 구 병영 Alte Kaserne

오늘날 독일에 보존된 병영 막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589~1590년에 1층을 지었다. 지형이 경사져 있기 때문에 건물 서쪽 부분에만 지하실이 있다. 원래는 크기가 같은 64개의 아치형 방이 있는 112m 길이의 1층짜리 주거지였다가 1715~1718년 건축가 포펠만(Matthäus Daniel Pöppelmann, 1662~1736)이 한 개 층을 더 올렸다. 이때 기다란 지상 복도를 함께 만들어 날씨가 나쁠 때 이곳에서 병사들을 소집하거나 점호할 수 있게 했다. 포펠만은 1685년 화재 이후 드레스덴을 재건하는 데 가장 공헌한 인물로, 그의 작품으로는 츠빙거 궁전이 대표적이다.

18 중앙 광장 Paradeplatz

구 막사, 귀중품 보관소, 우물의 집, 막달레넨부르크 사이에 있는 광장이다. 요새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고 주변 건물에 식당, 화장실, 인포메이션 센터, 기념품 가게 등 편의시설이 많다.

19 귀중품 보관소 Schatzhaus

1854~1855년에 국가 보물, 보석과 같은 귀중품과 화폐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지은 곳이다. 거대한 금고와 최대 1.8m 두께의 측벽을 두었으며, 입구에는 삼중문을 설치했다. 지하 1층에는 4개의 해치를 두어 돈을 보관했다. 1866년 독일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작센 공국 국고 일부와 중요 기록이 이 금고에 보관되었다. 돈통을 재현해 복제품 은화를 보관한 것을 볼 수 있다.

19세기 제복을 입은 색슨족 세무관과 색슨족 보병 병사 모형(왼쪽 사진)과 은화로 가득한 돈통(오른쪽)

20 작물 재배지 Nutzgarten am Schatzhaus

막사에 사는 군인과 그 가족들이 식량으로 쓸 채소 등 농작물들을 키우던 곳이다. 100년 전 재배하던 작물과 텃밭을 일구는 데 쓰던 도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21 중앙 경비실 Hauptwache

1888년에 지은 경비용 건물이다. 왼편에 세 개의 감방이 있는데 오늘날에도 전면의 막힌 창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당시 주둔군 복무 중에 징계를 받은 병사들을 구금하던 곳이다.

22 사령관의 마구간 Kommandantenpferdestall

1882년에 지은 건물이다. 말 6마리를 수용할 수 있었다. 1899년 사령관의 집을 복원할 때 함께 원래 상태로 복원되었으며 현재 내부를 전시하고 있다.

23 사령관의 정원 Kommandantengarten

오직 사령관의 가족만을 위해 사용했던 곳으로, 요새에서 유일한 순수 장식 목적의 정원이다. 리덴 나무과 너도밤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는데 수령이 약 200년 된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1898~1904년 쾨니히슈타인 요새에서 사령관을 지낸 폰 오어(Oer)와 그의 가족의 기념 사진이다.

24 군인 막사와 피크닉 구역 Mannschaftsbaracke mit Picknickplatz

진한 색의 야트막한 건물 두 개를 이어붙인 듯한 이곳은 1899년에 지은 목조 막사이다. 6개의 방에 67명의 병사를 수용할 수 있는 숙소가 있었으며 관리실, 청소실, 화장실도 두었다.

옆에는 병사들이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 피크닉 구역은 현재 ‘스웨덴의 쾨니히슈타인 점령(Die Schweden erobern den Königstein)’과 같은 역사적인 행사를 재현하거나 작은 전시회 등을 여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

과거의 막사 사진

25 퍼레이드 광장 Exerzierplatz

1516~1624년 첼레스티노파의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18세기에 만든 광장이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오른쪽 그림과 같이 병사들을 소집해서 군사훈련을 했는데, 19세기 말에 탄약 공급장이 건설되면서부터는 훈련장으로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에는 야영 재현 행사가 열리곤 한다.

26 탄약 공급장 Munitionsladesystem(Ladesystem der Batterie 8)

성벽에서 적군에게 총탄을 쏘려면 탄약이 적시에 필요한 만큼 공급되어야 했다. 탄약 공급장은 매일 탄약을 생산하고 저장하기 위해 만든 작업장으로, 1889~1991년 지하에 건설되었다. 대포 위치 가까운 곳마다 탄약 공급장을 설치해 가루형 탄창, 발사체 탄상, 포탄 장전 시스템, 연구·실험실 등을 갖추어 두었다. 지하에 있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구조물이 보이지 않으며 사진의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

왼쪽부터 지상에서 본 모습,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지하 시설의 모습

27 포병 대피소 9 Artillerieuntertreteraum IX

1891년에 제작된 곳으로, 뒤쪽 입구를 좁게 하여 설계하고 출입구에 튼튼한 철문을 달아 두었다. 포병들이 적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몰리면 이곳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쾨니히슈타인 요새에는 여러 개의 포병 대피소가 남아 있는데, 대개 지상에 짓고 두툼한 철문을 달아 두었다.

다른 포병대피소들의 입구

28 전망대가 있는 종탑 Horn mit Seigerturm

1601년에 지어진 이 종탑은 ‘뿔(Horn)’이라고 부르는 곳에 지었다. 쾨니히슈타인 요새에 있는 여덟 개의 관측탑·측면탑 중 하나이다. 라벨린 출입구 쪽으로 요새를 오른다면 입장 전부터 이 종탑이 눈에 띄게 보인다.

종탑의 이름인 ‘Seiger’는 고어로 ‘시계’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이 탑에는 해시계가 장착되어 있고 매 시간마다 종을 울렸다. 그래서 요새 아래쪽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병사들도 언제나 시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종탑쪽 성벽 하부에는 19세기에 지은 방탄 포곽이 있어 요새가 공격받을 때 수비대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29 병영 4 Kaserne IV

1767~1832년 사이에 지은 포곽 단지의 일부이다. 총 세 차례에 걸쳐 지은 것인데, 저층에는 16세기 말에 만든 벽과 돌조각의 흔적이 보이고 상층은 7년 전쟁(1756~1763년) 이후에 지어졌다. 전쟁포로를 감금하고 요새를 방어하는 등의 용도로 쓰였다.

현재 이곳에는 식사를 하면서 과거 사령관 복장을 한 배우와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이벤트 식당이 있다. 참여하려면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30 헴펠의 코너 Hempels Eck'

드레스덴(Dresden)을 바라보며 서쪽으로 가장 멀리 튀어나와 있는 바위 노두를 ‘헴펠의 코너’라고 부른다. 과거 쾨니히슈타인 요새에 살았던 헴펠(Hempel)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쾨니히슈타인에서 가장 인기 높은 전망 포인트 중 하나로, 이곳에서 피르나(Pirna), 드레스덴과 같은 도시나 보스베르크(Borsberg), 클라이너 베른슈타인(Kleiner Bärenstein), 그로써 베른슈타인(Großer Bäenstein) 등 주변 산들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31 전투 병영 3 Kriegskaserne III

1882~1883년에 이전에 있던 포곽 구역을 철거한 다음 1884~1885년에 건설한 곳이다. 외벽의 두께를 약 1m로 하여 전쟁 시 방탄의 기능을 하도록 했다. 위층과 중간층에는 각각 서로 연결된 10개의 방이 있다. 평시에는 184명이 이곳에서 생활했고 전시해는 282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아래층에는 창고와 주방, 석탄실, 감옥이 있다. 병영 4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벤트 식당이 있다.

32 화물용 승강기 Aufzug

요새 하부에서 승강기를 타고 올라갈 때의 입구(왼쪽)와 터널 내부(오른쪽)

사람과 화물을 모두 실을 수 있는 엘리베이터로 사람 60명 또는 4.5톤 무게의 화물을 실을 수 있고, 내부는 길이 5.5m, 폭 2.2m 높이 2.2m이다.

1967년에 바위를 뚫는 승강기 건설 대공사가 시작됐다. 광부들이 먼저 요새 기슭 암석에 25m 길이의 터널을 판 다음 터널과 요새 상단과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고 승강기 장치를 설치해 제작했다고 한다. 1970년 5월에 개장했으며 2003년에 EU 표준을 준수해 보수한 것이다.

33 승강기 고원 Kranichplateau mit Tastmodell der Festung Königstein

화물용 승강기가 세워지기 수백 년 전인 1589년, 요새에는 톱니바퀴로 작동하는 기중기가 세워져 있었다. 이것이 나중에 증기기관이나 전기모터로 작동하는 승강기로 교체되어 화물용 승강기가 완공될 때까지 주로 사용되었다. 2004~2005년에 12인승의 파노마라형 엘리베이터로 탈바꿈해 요새로 올라가는 동안 주변 전경을 투명한 승강기 내부에서 구경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나오는 요새의 평평한 지대를 승강기 고원이라고 한다.

34 베이커리 Bäckereikasematten

여러 개의 굴뚝이 달린 이 건물은 과거 베이커리였던 곳이다. 19세기 초부터 1946년까지는 이 포곽 건물에 요새 빵집이 있어 직접 빵을 구웠다고 한다.

35 전투 병영 2 Kriegskaserne II

베이커리와 나란히 이웃한 이 포곽은 1880년에 지은 곳으로, 요새가 포위되어 적군을 공격할 때 포병 지휘관이 여기에서 전투를 지휘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드레스덴에 시내에 있는 많은 예술품과 보물들이 이곳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그뤼네 게뵐베의 보석과 전시품 일부, 회화 작품, 의상과 소총 수집품 등이 전쟁으로부터 이곳으로 피란했는데 그 수량이 무려 상자 450개 분량이었다.

36 장교 연회장 Offizierskasino mit Festungsbäckerei

18세기에 정육점이 있던 곳이었다가 1895년 장교들의 연회장이 되었으며 1897년에는 마구간 건물과 통합해 건물을 확장하면서 식당으로 리모델링했다. 사령관이 한때 이 건물에 거주하기도 했다. 지하실에 1600년경을 기원으로 하는 문틀이 있어 대략적인 최초 건축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현재는 250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과 카페테리아 등이 들어서 있으며 4~10월에는 베이커리 재현 행사가 열린다.

37 화장실 시설 유적 Reste einer Abortanlage

19세기에 화장실 시설을 공사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38 구 무기고 Altes Zeughaus

화약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전쟁 장비와 무기들을 보관하기 위해 1594년에 지었다. 초기에는 창고로 사용하다가 17~18세기부터 역사적인 무기들을 전시했고, 1871년 이후에는 위층에 죄수들을 수용하기 위한 감방을 설치해서 게오르크부르크의 교도소 기능을 이곳으로 옮겨 왔다. 1차·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에는 전쟁 포로로 잡힌 장교들을 이곳에 감금했다. 계단을 통해 위층과 다락방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내부에서 무기들을 관람할 수 있다.

39 옛 성 입구 Ehemaliger Burgeingang

중간쯤에 희미하게 보이는 아치모양이 옛 성 입구 흔적이다.

16세기 말까지는 이곳에 요새의 성으로 드나드는 입구가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요새 아래쪽의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면 외벽에서 아치의 흔적이 남아 있어 입구의 위치와 크기를 대강 확인해 볼 수 있다. 그 뒤쪽에는 입구를 방어하기 위한 도랑이 있었다.

40 조벨의 코너 Zobels Eck'

요새에서 남쪽 가장 멀리 튀어나와 있는 노두를 ‘조벨의 코너’라고 부른다. 과거 조벨(Zobel)이라는 군인이 이곳에서 경비 근무를 서면서 뜨개 양말을 짜곤 했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서 파펜슈타인(Pfaffenstein), 카츠슈타인(Katzstein) 같은 도시나 퀴를(Quirl), 람퍼트슈타인(Lampertstein) 콜베르크(Kohlberg), 베른하르트슈타인(Bernhardtstein) 등 산악 지대를 조망할 수 있다.

41 평시 병원 Friedenslazarett

병사들과 요새 거주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장소이다. 이전부터 있던 병원을 헐고 1878년에 지금의 건물을 새로 지은 것인데 24개의 병상과 주방, 세탁시설을 갖추었다고 한다.

1907년에는 요양원으로, 1921년에는 독일 국방군 병원으로 개조되었고 1939년부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쟁 포로였던 장교와 장군을 수용하는 데 사용되었다. 1949~1955년에는 동독의 소년감호소(Jugendwerkhof)로 쓰였고, 이후부터 1990년까지 식당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건물이 비어 있는 상태이다.

현재 비어 있는 내부

42 포병 창고 Artillerieschuppen

18세기부터 이곳에 나무로 된 창고를 두어 마차, 견인차, 탄약용 수레 등을 일부 보관했다고 한다. 헛간이나 마찬가지였던 당시의 건물이을 헐고 19세기 중반에 지금과 같은 반목조 건물로 교체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요새 소방대가 이곳에 있다.

43 전투 병영 1 Kriegskaserne I

1888~1889년에 지은 방탄 병영장이다. 오븐이 있는 인접한 10개의 방에서 최대 400명의 남자가 살 수 있었다. 사암과 모래, 화강암, 콘크리트 등으로 5m 두께의 외층을 쌓아 튼튼하게 내부를 보호할 수 있도록 건설했으며, 철로 만든 문과 창문은 파편이 튀어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다. 병영을 덮고 있는 지상은 대포를 놓는 곳(대포위치 7)이었다.

44 탄약 공급장 Munitionsladesystem(LADESYSTEM DER BATTERIE 7)

앞의 26번 탄약 공급장과 같은 기능을 하던 곳이다. 만들어진 시기도 같다. 이곳은 대포위치 7의 대포에 탄약을 공급했다.

45 포병 대피소 6 Artillerieuntertreteraum VI

앞의 27번 포병 대피소과 같은 기능을 하던 곳이다. 만들어진 시기도 같다.

46 전염병 환자 격리소 Pestkasematte

1680년, 쾨니히슈타인 요새에서 흑사병으로 40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당시에는 감염자들을 달리 격리할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요새 외부의 오두막에 수용했다.흑사병이 일단락되자 향후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대비하기 위해 암석 틈새에 이곳 격리소를 지었다. 깊이가 8m이며 입구과 환풍구 겸 음식을 전달하기 위한 구멍을 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흑사병 환자가 수용되었고 얼마나 많이 사망했는지에 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19세기 말에 이곳은 포병 관측소로 개조되었고 상부를 흙으로 덮었다.

47 망루 Wachtürme

전염병 환자 격리소 뒤로 보이는 뾰족한 누각탑이다. 1600년 이후에 난간과 함께 지은 관측탑이다. 중세 요새에서 망루는 주변을 한눈에 조망하기 위한 중요한 초소였다. 화재나 주변 지역을 감시하기 위한 용도로,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필수적인 장소이다. 요새 곳곳에 망루들이 설치되어 있다.

48 화약 저장소 Kriegspulvermagazin

1889~1891년에 지하감옥과 화약 등 탄약 보관용으로 쓰기 위해 지은 방탄 구조물이다. 전쟁 시에는 화약 가루를 저장하는 용도로만 쓰다가 동독 시대인 1960년대에 들어 비상 시 지역 민방위 지도부의 피난처로 쓰기 위해 재건했다. 동독이 쾨니히슈타인 요새를 사용했다는 주요 증거 중 하나이다.

현재 방 대부분이 비어 있긴 하지만 방화문 등을 포함해 원래의 벙커 상태가 보존되어 있고 환기 시스템, 비상 발전기, 물탱크 등을 볼 수 있다. 입구가 요새의 숲 속에 숨겨져 있지만 이정표가 있어 찾기 어렵지는 않다.

이곳 내부는 2019년 9월부터 공개되었다. 내부를 보려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면 아래 웹사이트에서 시뮬레이션으로 둘러볼 수 있다.

화약 저장소 벙커 내부 시뮬레이션 바로가기

49 카톨릭 예배당 유적 Reste der Katholischen Kapelle

1737년 포병 실험실을 지었던 자리에 1880년 예배당을 지었던 곳이다.

1945년 전쟁 이후 파괴되어 오늘날에는 기초 흔적만 남아 있다.

50 포병 대피소 5 Artillerieuntertreteraum V

앞의 27번 포병 대피소과 같은 기능을 하던 곳이다. 만들어진 시기도 같다.

51 아브라츠키의 암벽틈 Abratzky-Kamin

세바스티안 아브라츠키(Sebastian Abratzky, 1829~1897)가 1848년 허가 없이 쾨니히슈타인을 등반한 암석 틈새를 말한다.

지역 굴뚝 청소부였던 아브라츠키라는 인물은 1848년 18세 나이에 굴뚝 청소 견습 과정을 마쳤다. 당시 쾨니히슈타인 요새를 보게 된 아브라츠키는 그 웅장함에 감탄했지만, 입장료로 낼 돈이 없었다. 그래서 수직으로 된 사암벽을 맨손으로 등반했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던 쾨니히슈타인 요새를 최초로 정복(!)한 자유등반 사례이다. 당시 그가 수직 사암을 등반해 올랐던 자리를 그 이름을 따 아브라츠키의 암벽틈이라고 부른다.

아브라츠키가 등반했던 경로는 1991년부터 작센 주 공인 4등급 등반 루트로 등록되어 오늘날에도 등반이 가능하지만, 벽을 넘으며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서 34m 높이 지점까지 오른 후에는 다시 인접한 벽으로 내려가야 한다. 등반에는 15~2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아브라츠키의 일화는 삽시간에 유명해졌다. 그는 쾨니히슈타인 요새 등반 경험을 책으로 출간하고 관련 강연을 하는 등의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절도죄, 부랑죄, 강도죄 등으로 여러 차례 수감되면서 알콜 중독에 빠지고 말았고, 결국 술에 취한 채 길에서 잠들었다가 1897년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망했다. 1998년 4월 그의 생가인 말리스(Mahlis) 마을 광장에 그의 이름을 딴 석상이 세워졌다.

아브라츠키

52 왕의 코 Königsnase

작센스위스 국립공원 방향을 바라보며 동쪽으로 가장 멀리 돌출된 암석 노두를 ‘왕의 코’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요새의 숲 지대를 등지고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그 때문인지 1589~1591년에는 이곳에 연회 시설을 지었었다고 한다. 오른쪽 흑백사진은 1960년대에 왕의 코에서 전망을 보는 사람들을 촬영한 것이다.

쾨니히슈타인에서 가장 인기 높은 전망 포인트 중 하나이자 엘베 강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지점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릴리엔슈타인(Lilienstein), 클라인헤너스도르퍼슈타인(Kleinhennersdorfer Stein), 팝스슈타인(Papststein), 파펜슈타인(Pfaffenstein) 등 인근 산악 지형을 조망할 수 있다.

53 앙리 지로의 탈출지점 Abstiegsstelle des französischen Generals Henri Giraud

쾨니히슈타인은 감옥으로 워낙 많이 이용된 탓에 ‘작센의 바스티유’라고 불리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아예 포로수용소로만 쓰다시피 했다. 이곳을 감옥으로 쓴 것은 그만큼 믿을 만한 철옹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을 탈출한 인물이 있다. 바로 샤를 드골과 더불어 자유 프랑스를 이끌었던 앙리 지로(Henri H. Giraud, 1879~1949) 장군이다. 지로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차 세계대전에서 전공을 세운 상황이었는데, 1940년 5월에 제9군 사령관으로서 독일군과 싸우다가 잡혀 포로가 되었다. 나치 독일의 군사법원은 지로를 독일 민간인에 대한 사형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했으나, 무죄를 선고받아 쾨니히슈타인 요새에 수감되었다.

2년 간의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지로는 탈출계획을 세운다. 독일군 병사와 장교들에게 독일어를 배우고 주변의 지형을 틈틈이 익힌 것이다. 그리하여 1942년 4월 17일, 수렴을 깎고 변장을 한 상태로 밀반입한 로프와 와이어를 활용해 요새 절벽을 타서 탈출에 성공한다. 요새에서 나온 후에는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서 작센 남부의 바트 샨다우(Bad Schandau)까지 이동하고, 그곳에서 영국군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프랑스로 귀환한 지로 장군이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매우 유명하다. 소식을 들은 히틀러가 격노해 지로의 암살을 지시했지만 실패했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에 지로는 자신의 탈출 경험담을 책으로 출판했다.

54 귀중품 포곽 Schatzkasematte

18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복합 포곽을 개조해 1853년에 지은 것이다. 전쟁 시 예술품이나 보석, 의상 등 귀중품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벙커 역할을 했다. 1884년에는 새로운 입구를 내 포병 대피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내부는 세 개의 지하 원통형 금고로 구성되어 있다.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면 내부를 볼 수 있다.

55 낙뢰 참나무 고원 Blitzeichenplateau

벼락을 자주 맞았던 300년 된 나무가 있던 자리이다. 현재는 1992년에 새로 심은 참나무가 있다.

고원에는 18세기에 지은 포곽 하나가 있는데 19세기 말에 포병 관측소로 개조한 것이다.

56 프리드리히 성 Friedrichsburg

쾨니히슈타인 요새에서 가장 예쁜 건물을 꼽으라면 단연 프리드리히 성이다. 1589년에 관측용 탑으로 건축되었는데, 원래 1층에는 총포를 두고 위층은 연회장으로 썼다고 한다. 1731년에 현재와 같은 바로크 양식 정자 형태로 개축했고 1999년에는 임대를 위해 식탁을 재건했다.

4월부터 10월까지 하루 500유로(부가세 별도)를 지불하면 가족, 기업 등 누구나 69㎡ 너비의 공간을 임대할 수 있고 한 번에 24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 주방과 테이블, 음향장치 등도 함께 제공한다.

57 탄약 저장소 Geschossmagazin

1735~1736년에 화약 탄창을 보관하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1876년에 상부에 흙을 덮었다.

1883년 이후에는 수류탄과 같이 장전되지 않는 발사체를 저장하는 데만 사용되었다.

58 저수조 Parkzisterne

필요한 물을 공급받기 위해 빗물을 모아 두던 곳으로, 시멘팅 높이까지 약 1500㎥ 용량이다. 아마도 중세 성곽 시대에 이미 존재했을 것이다. 보통 식수와 같이 깨끗해야 하는 물은 우물에서 떠다 썼고, 저수조의 물은 주로 우물의 집에서 증기 기관을 작동하고 정원에 물을 줄 때, 불이 날 때 소화수 등으로 사용했다.

1897년에는 수평을 유지하고 빗물의 자연적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를 시멘트로 마감하고 나뭇잎 등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붕을 덮었다. 또한 유입되는 물을 여과하도록 침투층을 둘러놓았는데, 두 차례의 여과용 펌프를 통해 오염된 물을 제거할 수 있었다.

59 전시 병원 Kriegslazarett

1891~1893년에 지은 곳이다. 전쟁 시 부상자들을 돌보기 위해 방탄 처리한 지하 포곽 형태로 지었다.

60 병영 B Kaserne B

결혼한 장교들의 주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1897년 지은 건물이다. 지금도 주거용 건물로 사용 중이기 때문에 내부를 볼 수는 없다.

61 포병 대피소 1 Artillerieuntertreteraum I

앞의 27번 포병 대피소과 같은 기능을 하던 곳이다. 만들어진 시기도 같다.

62 뢰셴 Hungerturm/Rößchen

성 단지 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망대이다. 오른쪽 그림은 1735년에 나온 안내서의 스케치를 기반으로 1810년에 그려진 뢰셴의 그림이다.

63~70 대포 위치 Batteriestellungen

전시에 대포를 두었던 여덟 곳의 자리이다. 적군을 향해 대포를 설치해 쏘아야 했기 때문에 모두 요새 성곽 바깥쪽에 위치해 있고, 대포는 요새 외부를 향하게 두고 쏘았다.

지금은 대개 그냥 잔디밭처럼 생겼기 때문에 특별히 구경할 만한 거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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