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에 있는 그뤼네 게뵐베 한국어 내부 지도와 일부 작품 설명을 공유한다.
그뤼네 게뵐베 전시관에는 역사관과 신관이 있는데, 역사관에는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고 신관에는 없다.
물론 역사관 오디오가이드도 모든 작품이 다 있는 것은 아니고, 독일어 오디오가이드에 비하면 내용이 많이 부실하다. 영어 오디오가이드조차도 독일어에 비하면 매우 많이 부족하다.
내가 만든 한국어 가이드 작품 중에는 현장에 있는 한국어 오디오가이드에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반대로, 오디오가이드에는 없지만 내가 만든 자료에는 있는 것도 있다. 또 내 자료에 있는 것이라면, 아마 대부분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보다 내가 만든 자료의 설명이 더 자세할 것이다. 나는 공식 홈페이지의 독일어 원문 자료와 독일어 책을 머리 싸매고 번역해 가면서 자료를 만들었으니까... 아, 독일어는 진짜 피곤하더라ㅠ...
물론 의역, 오역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오타와 비문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다.
국내에 있는 그뤼네 게뵐베 관련 책들을 많이 찾아보진 않았지만, 아마 이 정도로 번역해 둔 자료는 흔치 않을 것 같다. 있었다면 내가 이 짓을 안 했을 텐데.
참고로 나는 독일어를 전혀 못한다.
이거 만들면서 반강제로 많이 는 건 안 비밀. 시간 지나니까 또 다 까먹은 것도 안 비밀.
자료 미리보기
한국어 설명 자료는 이 포스팅 본문에도 올리고 A5 사이즈의 PDF로도 올렸다. PDF는 폰에 담아 가서 봐도 되고 출력해서 봐도 된다. 사진 화질을 충분히 고화질로 넣어 놨다. 이건 본문도 마찬가지.
PDF는 53쪽 분량이고, 약 70개 작품의 설명이 있다. 페이지 맨 아래에서 본문 내용과 지도를 PDF 파일로 다운로드 할 수 있다.
독일은 여행 기간이 길다 보니 개별 자료들을 꼼꼼하게 만들지 못한 면이 좀 심하다. 틈틈이 오탈자를 수정해서 그때그때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자료 만든 방법
이 자료는 온라인에서 전시장 파노라마를 제공하는 VR사이트에 접속해서, 거기서 보이는 작품들과 공식 홈페이지에서 독일어 설명을 제공하는 작품들을 일일이 눈으로 직접 비교해서 전시실을 찾아 가며 만든 것이다.
아주 유명한 작품인데 파노라마에 없는 것들은 영문 서적이나 국내외 방문자들의 블로그 등을 참고했다. 그래서 방이 좀 틀린 게 있을 수도 있다.
파노라마 사이트에서 모든 전시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보니 아예 작품 설명이 없는 전시실들도 좀 있다. 그래도 이만큼 한 게 어디냐고 내 자신을 토닥여 주었고, 실제로 갔을 때 관람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공식 홈페이지의 작품 설명 검색 페이지와 파노라마 페이지를 직접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 클릭.
그뤼네 게뵐베 Grünes Gewölbe
지금 드레스덴이 있던 작센 주는 과거 작센 공국에 속한 곳이었다. 작센 공국은 한때 폴란드를 지배할 정도로 강한 국가였고, 작센 선제후들은 15세기 말경부터 도서관과 무기박물관을 짓고 다양한 귀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뤼네 게뵐베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뤼네 게뵐베’란 녹색의 둥근 천장이라는 뜻으로, 후기 바로크 양식의 궁륭 천장이 녹색이라는 데서 온 이름이다. ‘궁륭’이란 서양 건물에서 반원형 천장이나 지붕을 이루는 곡면 구조체를 뜻한다.
그뤼네 게뵐베, 영어로 그린 볼트(Green Vault)라 불리는 이곳은 ‘강건왕’이라 불린 작센 선제후 아우구스트(1670∼1733)가 현재 드레스덴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츠빙거 궁전을 짓고 그 서관 1층에 마련한 전시공간이다. 1701년 그뤼네 게뵐베 공사를 시작해 1729년 전시실 8개와 로비, 사무실을 갖춘 박물관(뮤지엄)을 완성해 일부 대중들에 공개했다. 당시 이곳은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권력을 과시하고 그의 위엄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뤼네 게뵐베 도난 사건
2019년 11월 25일 그뤼네 게뵐베에서 18세기 초 작센 왕국 선제후들이 수집한 왕실 보석들이 도난당했다. 도난품은 총 세 세트로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및 사파이어로 구성된 37개의 품목 100여 점이다. 이들의 가치는 약 11억 달러로 추정되며, 이중에는 한 점에 1,200만 달러 상당의 49캐럿 다이아몬드 작품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들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예술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독일 경찰은 이 도난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사람에게 50만 유로(약 6억5000만원)를 지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절도범들은 인근 츠빙거 궁전 주변 건물 두 곳에 화재를 일으켰고, 난데없는 화재로 혼란해진 틈에 범행을 저질렀다. 두 명이 창문을 깨고 진열실에 침입해 도끼로 전시함을 깨고 보석을 훔친 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일행들과 차를 타고 달아났다고 한다. 용의자 중 세 명이 범행 1년만인 2020년 11월에 검거되고, 2021년 5월에는 나머지 두 명까지 전원 점거되었다. 이들은 모두 아랍 가문 출신의 독일 국적자라고 한다. 그러나 잃어버린 보물을 회수하지는 못했다. 작품들을 분해해 개별로 팔거나 녹여 팔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뤼네 게뵐베 전시실 배치도
그뤼네 게뵐베는 역사관과 신관으로 나누어 작품들을 전시한다. 역사관과 신관은 거의 비슷한 구조와 같은 면적으로 되어 있다. 배치도상 왼쪽 하단의 분홍색 화살표가 입구이고, 연두색 화살표를 따라가서 방 번호 순서대로 관람한 후 들어온 문으로 나가면 된다.
(페이지 하단에서 원본 크기 이미지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1] 그뤼네 게뵐베 역사관 Historisches Grünes Gewölbe
드레스덴 성 1층(지층)의 약 2,000㎡ 면적에 금·호박·상아 작품을 포함한 약 3,000점의 보석을 전시한다. 거울로 장식한 전시벽 앞에 원석으로 만든 그릇과 청동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보물들을 통해 강건왕 아우구스트는 이러한 보물들을 통해 자신의 절대적 권력을 표현하고 바로크 종합예술이라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했다. 아우구스트는 자신의 보물들을 일부 대중에게 공개했고, 그 결과 그뤼네 게뵐베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중 하나로 만들었다.
역사관에는 10개의 전시실이 있다.
#1. 입구실(포이어) Vorgewölbe
중세 및 르네상스 초기의 보석 공예품(Schatzkunst), 리모주(Limoges)의 에나멜 작품,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사용한 유물, 그뤼네 게뵐베의 전쟁 전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2. 호박 전시실 Bernsteinkabinett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선물을 비롯해 호박으로 만든 예술품들을 볼 수 있다. 호박은 중세 이후 ‘발트 해의 금’이라고 불리며 신화의 근원이자 마법의 힘이 있는 원석으로 여겨졌다.
<앵무조개 모양의 장식용 그릇(Prunkgefäß in Form einer Nautilusschale)>
야코프 하이제스(Jakob Heise)가 1659년 제작한 높이 34.5cm의 작품이다.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호박 예술의 뛰어난 걸작으로, 브란덴부르크의 프리드리히 빌헬름(Friedrich Wilhelm)이 작센의 요한 게오르크 2세에게 선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빌헬름은 1662년 5월 6일, 두 마리의 곰과 함께 이 호박 그릇을 보내어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바다의 앵무조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앵무조개라는 뜻의 노틸러스(Nautilus)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항해자를 의미한다. 17세기 초의 석조 조각품에 많이 쓰인 조개 모양 배 형태의 개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선박 몸체는 30개 이상의 서로 다른 곡선을 이루며, 투명한 호박색 판에 바다 장면을 묘사한 부조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자리 끝에는 바다의 신 넵튠이 비늘로 뒤덮인 괴물을 타고 앉아 있다. 하이제스의 호박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작이다.
<삼미신(Gruppe der drei Grazien)>
‘drei Grazien’은 카리테스(Charites), 즉 그리스 신화에서 기품과 아름다움을 뜻하는 우아미를 의인화한 것으로, 인간과 신을 기쁘게 하는 덕목으로서의 ‘미(美)’를 나타내는 세 여신을 일컫는 말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그라티아이(Gratiae)라고 하며 미술사에서는 보통 삼미신(三美神)이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는 이들의 이름을 에우프로쉬네(Euphrosyne), 탈리아(Thalia), 아글라이아(Aglaia)라고 했다.
높이 25.3cm의 이 작품은 호박 조각가인 크리스토프 마우허(Christoph Maucher, 1642~1706)가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1680년 제작한 것이다. 상단의 조각은 하나의 호박 덩어리를 조각해 낸 것이다. 세 여신은 신성함을 자아내기보다는 인간미 넘치는 모습인데, 이는 이들이 은총과 기쁨,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인물들임을 드러내기 위해 통통한 몸을 자유로이 누리며 즐겁게 춤추는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뚜껑에 퓌토와 연인이 있는 장식함(Kassette, auf dem Deckel ein Liebespaar mit Putto)>
호박의 방에는 폴란드 그단스크(Gdańsk) 출신의 미셸 레들린(Michel Redlin)이 만든 장식함이 몇 점 있다. 이 작품은 1680~1690년경 제작한 것으로 호박과 상아, 은으로 도금한 구리 및 황동, 나무, 종이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장식함이다. ‘퓌토(putto)’란 ‘유아(幼兒)’라는 뜻으로, 고대 말기에 자주 보이던 큐피드 상을 바탕으로 한 예술 모티프를 말한다. 벽면을 투명한 호박과 상아 조각으로 장식하고, 나무로 만든 받침대 부분에는 호박색을 칠해 두었다. 물론 이런 장식함은 실용적으로 쓰인 것은 아니었다.
중심 몸통(Hauptgeschoss) 부분 내부에 나무 프레임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빛에 노출되면 반투명한 호박이 매혹적으로 반짝이도록 했다. 이 상자를 다시 닫은 후에야 그 위에 장착된 두 번째 상자를 열 수 있도록 설계했다.
좁은 두 개의 서랍을 열어 보면 연인들을 묘사한 장면이 있다. 즉, 외양에서는 화려함을 뽐내고 서랍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면 감추어진 연인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한 것이다.
#3. 상아의 방 Elfenbeinzimmer
상아로 만든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상아는 위엄 있으면서도 그 빛깔이 아름다우며 내구도가 적당해 플라스틱이 발명되기 전까지 당구공, 피아노 키,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단추, 장식용품 등으로 두루 쓰였다.
<사냥 장면이 있는 주전자(Kanne mit Jagdszenen)>
상아 조각가 요한 미하엘 마우허(Maucher, 1645~1700)의 작품으로, 높이는 약 32.7cm이다. 1819년에 이미 이 방에 있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1738년 작센 공작 하인리히(Duke Heinrich von Sachsen)의 영지에서 드레스덴으로 옮겨온 것이다.
주전자 몸체 부분은 사슴뿔로 만들었는데, 사슴뿔은 물성이 있어 실용적 목적으로 만든 작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두운 색의 수사슴 뿔과 대조를 이루는 상아 조각 부분은 농부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주전자는 마우허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다.
<전투 장면이 있는 술잔(Humpen mit Kampfszenen) (Reiterschlacht)>
금 세공인 요한 아이슬러(Johann Eißler, 1640~1708)와 상아 조각가 요한 미하일 호눙(Johann Michael Hornung, 1638~1697)이 제작한 작품이다. 뉘른베르크 금세공에 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1691~1701년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상아 부분에는 터키와의 기병 전투 장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1683년의 전설적인 비엔나 전투를 새긴 것이 분명하다. 특히 뚜껑의 인들은 터키 군에 대한 제국군의 승리를 상징한다.
<목욕 장면이 있는 술잔(Humpen mit Badeszene)>
상아 조각가인 레온하르트 컨(Leonhard Kern, 1588~1662)과 금세공인 마르틴 보리쉬(Martin Borisch, 1583~1649)의 작품이다.
컨은 나무, 돌, 상아로 만드는 작은 조각과 부조로 일생 동안 명성을 날린 예술가이다. 이탈리아에 머물다가 1620년 슈베비쉬 할(Schwäbisch Hall)에 정착해 그곳에서 1662년 사망할 때까지 부유하게 살았는데, 이곳에 자신의 작업실을 열었다. 컨의 작업에서 누드는 종교적, 신화적, 세속적 주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컨이 조각하는 여성 인물들은 키가 작으며 누드임에도 관능적인 매력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술잔은 단단한 상아로 20명 이상의 남녀를 오밀조밀하게 조각해 장식했는데, 여자들은 벌거벗고 남자들은 옷감을 살짝만 걸치고 있다.
완성 직후에 드레스덴으로 보내졌으며, 여기에 마르틴 보리쉬가 술잔을 제작해 넣었다. 보리쉬는 뚜껑에 작은 목욕하는 여인 상을 올려놓아 상아 조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상아 기둥(Hohe Säule)>
1611~1619년 제작된 것으로, 부리에 물고기가 있고 세피아 잉크로 검게 칠한 왜가리가 묘사된 것으로 보아 게오르크 프리델(Georg Friedel)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프리델은 이 시기 드레스덴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훗날 팔츠 선제후국(Kurpfalz)의 궁정에 가서 일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술실 목록 기록에는 프리델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아 의아하다.
이 작품과 같이 미학적으로 매우 매력적이고 완벽하게 제작된 기둥은 프리델이 독점하고 있었다. 현대에 들어 1993년에 기둥의 구성 원리가 밝혀졌는데, 상아 조각들을 단순히 이어 붙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 중심에 기다란 나무 막대를 넣고 서로 다른 모양과 형태를 가진 20개의 판을 배치한 구조라고 한다. 그래서 이 각각의 판들은 교체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서로 위치를 바꾸면 기둥 모양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각 판 사이에는 19개의 작은 상아 링을 끼워 넣어 간격을 두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상아의 방으로 들어간 문을 마주보고 오른쪽 상단에 올려져 있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4. 화이트실버 방 Weißsilberzimmer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은식기를 포함한 은 공예품들을 볼 수 있다. 그릇 세트와 탁상시계, 장식함과 장식용으로 만든 인물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허리에 띠를 두른 그릇 세트(Prunkgefäß)>
화이트 실버 방에 들어가서 들어온 문을 마주보면, 문 우측에 거울을 둘러싼 식기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중 아랫배가 볼록하고 허리에 금속 띠를 두른 여섯 개의 컵 모양 그릇은 작센 조블리츠(Zöblitz)의 길드의 나무 가공 기술을 보여 준다.
아우구스트 부부를 위해 이 세트를 제작한 지오바니 마리아 노세니(Giovanni Maria Nosseni, 1544~1620)는 스위스 출신 조각가이자 다재다능한 건축가였는데, 1575년부터 드레스덴 궁정에서 일하면서 배가 곡선형인 나무 공예품을 제작했다. 이 시리즈에는 금세공인인 우르반 슈니바이스(Urban Schneeweiß)가 금속 가공을 더해 더욱 우아한 매력을 풍긴다. 뚜껑에 작센 선제후와 덴마크 왕실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은 아우구스트와 그의 아내인 덴마크 왕의 딸 안나를 상징한다.
<장식함(Prunkkassette)>
그릇 세트 아래쪽에 놓인 이 장식함은 뉘른베르크에서 활동하던 금세공인 니콜라우스 슈미트Nicolaus Schmidt)가 1594년 완성한, 가로 길이 27.5cm의 장식용 상자이다. 은과 자개를 주재료로 사용했으며 부분적으로 도금, 목재 등도 쓰였다.
16세기의 인도 자개 작품 중 세계적으로 드물 만큼 보존 상태가 뛰어난 작품이다. 여기에 쓰인 자개 작품은 포르투갈 선원들이 1589~1609년 사이에 인도 서부 구자라트(Gujarat)에서 가져온 7개 중 하나이다. 7개 중 5개가 그뤼네 게뵐베에 있고, 나머지 두 개는 1924년 베틴(Wettin) 가문에 증여되었다고 한다.
귀한 자개로 이 장식함을 제작한 슈미트는 벤젤 얌니처의 제자 중 한 명으로, 1600년경부터 작센 선제후들로부터 솜씨를 인정받았다. 그가 만든 자개 장식함 두 점이 그뉘레 게뵐베가 있다. 이 장식함은 뚜껑 달린 상자로, 작은 장식용 금속 핀을 나무 몸체에 달아 뚜껑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뚜껑이 있는 컵(Deckelpokal)>
금세공인 한스 야코프 마이어(Hans Jakob Mair, 1641~1719)와 상아 조각가 게오르크 프룬트(Pfründt Georg, 1603~1663)가 제작한 것이다. 조각 몸체는 코뿔소 뿔이며 은과, 금 도금, 홍옥, 마노, 터키석 등으로 장식했다.
코뿔소 뿔은 상아에 비해 거칠어서 조각 난이도가 매우 높은 재료이다. 17세기 중반부터 코뿔소 뿔 작품이 늘어났는데, 주로 남부 독일에서 상아 조각가들이 다루었다. 가파른 받침 부분에 바다 동물이 얽혀 있고, 깃털 달린 치마를 두른 남자와 벌거벗은 여인 조각, 바다의신 등의 묘사가 섬세하다. 뚜껑에는 바다 요정과 돌고래가 앉아 있는데, 이것을 보고 게오르크 프룬트가 조각했음을 알 수 있다.
<천문 탁상시계(Astronomische Tischuhr)>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당대에 이름을 떨쳤던 시계 장인 예레미아스 파프(Jeremias Pfaff)가 1690년경에 제작한 작품이다. 1732년의 소장품 기록 목록에서부터 등장하다가 1832년 그뤼네 게뵐베에 전시되기 시작했다. 1600년경부터 이렇게 상자와 같은 정육면체 케이스 형태이고 외부를 호화롭게 장식한 유형의 탁상시계가 왕실 수집품목으로 등장해 약 100년 간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네모난 시계 상자 덮개판에 수평으로 장착된 5개의 다이얼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시와 분을 표시할 뿐만 아니라 날짜와 요일, 월까지 표시하며, 후기 르네상스의 탁상시계들과 달리, 겉에서 보이지 않는 진자가 작동해 매우 정밀하게 구동되는 천문시계이다.
네 모서리에는 각각 비유적인 인물 장식을 넣었고, 네 면의 중앙에는 작은 다이얼을 받치는 흰색과 은색의 촛대 기둥을 두었는데 그중 절반은 덮개판에서 돌출되어 있다. 보석으로 장식한 측면에는 꽃 모양의 세공이 인상적이다.
<겁탈당하는 페르세포네(Raub der Proserpina)>
오스트리아 출신 상아 조각가 지몬 트로거(Simon Troger, 1693~1768)가 1750년경 완성한 것으로 높이는 약 102cm이다.
1732년경부터 뮌헨에서 일한 트로거의 예술품들은 상아와 나무를 매력적으로 조합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이 작품에는 수많은 상아 조각을 절묘하게 조립해 제작한 것인데, 이어붙인 부분은 가는 끈 등으로 감추었다. 유리로 만든 눈 부분이 특히 시선을 모은다.
1751년 5월 5일,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토니아 공주(Maria Antonia von Bayern, 1724~1780)가 시아버지인 아우구스트 3세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다. 드레스덴에 있는 것 외에 두 개의 시리즈 작품이 더 있는데 하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하나는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책과 자루를 든 거지(Bettler mit Buch und Beutel)>
상아 조각가 마이타스 콜브(Matthias Kolb)가 1731년 제작한 것으로 상아와 매화나무로 만들고 눈 부분에는 유리를 썼다. 높이는 36.5cm이다.
상아와 나무 소재의 결합이 이 인형의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방식은 지몬 트로거가 대표적인데, 1730년대 초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일한 마티아스 콜브 역시 트로거의 작업장에 필적할 정도의 양은 생산하지 못했지만 나무-상아 조합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콜브의 거지 작품 중 세 점이 1731년 그뤼네 게뵐베에 팔렸는데, 각각 아이와 여자, 남자로 이루어진 거지 가족이다. 이중 남자는 손에 책을 들었고 여자는 아이를 가르치는 듯 서판을 들고 있다. 기존의 거지 주제를 완전히 뛰어넘어 연극적 요소를 보여 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여자와 아이는 아래쪽 단에 놓여 있다.
<새 마구간을 위한 컵(Willkommpokal für den Neuen Stall)>
위풍당당한 이 컵은 발렌틴 가이트너(Valentin Geitner, 1551~1593/1612)가 작센의 선제후 크리스티안 1세의 주문으로 제작한 것이다. 컵 뚜껑에 있는 크리스티안 1세의 문장도 가이트너가 만들었다고 한다.
1588년 5월 21일자 영수증이 남아 있는데, 영수증에 의하면 이 술잔은 같은 해에 완공된 새 마구간을 위해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소재가 쓰였는데, 몸체 부분은 코코넛을 깎아 만든 것이다. 높이는 48.1cm이며 무게가 2.6kg에 이른다.
#5. 은 도금 방 Silbervergoldete Zimmer
<장식용 꽃병 세트(Hohe Ziervase)>, 요한 안드레아스 텔로트(Johann Andreas Thelott, 1655~1734)의 <바쿠스의 축제가 있는 수반(Prunkbecken mit Bacchusfest)> 등 은과 금으로 도금한 술잔 등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장식용 꽃병 세트(Hohe Ziervase)>
높이 64.8cm의 꽃병 세트로, 출입구 양쪽에 하나씩 놓여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금세공인인 아브라함 드렌트베트(Abraham Drentwett II, 1647~1729)가 제작한 두 점의 위풍당당한 이 꽃병은 개당 거의 8kg이나 나간다.
강건왕 아우구스트는 이 꽃병 세트가 완성된지 약 10년 후인 1719년에 라이프치히 부활절 박람회에서 구입했는데, 이는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Friedrich August, 1696~1763)와 마리아 요제파(Maria Josepha von Österreich, 1699~1757)의 결혼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위해 만든 것은 아니지만 꽃병 표면의 장식은 결혼이라는 주제와 잘 어울린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결혼의 신 휘멘(Hymen)에게 화환 쓴 신부를 데려오고, 반대편에는 손에 암소 뿔을 들고 있는 다산의 여신이 있다. 다른 꽃병에는 트로이 영웅 아이네아스(Aeneas)가 무녀인 쿠메안 시빌라(Cumean Sibyl)와 함께 지하세계로 갔다는 전설 속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는 순결을 상징한다.
<바쿠스의 축제가 있는 수반(Prunkbecken mit Bacchusfest)>
아우구스부르크의 요한 안드레아스 텔로트(Johann Andreas Thelott, 1655~1734)가 1714년 은과 금 도금으로 제작한 것이다. 아우구스부르크 장인들의 연대기를 기록한 폴 폰 슈테텐(Paul von Stetten)은 1779년에 출판한 책에서 텔로트를 칭송하면서, 이 쟁반과 주전자 세트를 걸출한 명작으로 선정한 바 있다. 강건왕 아우구스트가 1718년 라이프치히 무역 박람회에서 구입한 것이다.
장난스럽고 에로틱한 주제로 비너스와 큐피트를 중앙 부조에 넣었으며, 물을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바쿠스 축제의 풍경은 수반에 물을 부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텔로트는 다른 예술가들보다 얇은 은판을 사용해 깊이감 있는 부조 기법을 발전시켰다. 재료 두께가 얇다 보니 하단에 다른 소재를 덧대 작품에 안정감을 주었다. 이런 수반에는 보통 제작자 표기를 하지 않으나, 예술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했던 텔로트는 자신의 서명을 남겨 두었다.
<체인 병(Kettenflasche)>
아우구스부르크의 금세공인 사무엘 바우어(Samuel Baur, 1768~1832)가 독일 남부에서 17세기 말에 만든 유리를 활용해 1697년에 제작한 것이다. 높이는 약 36.7cm이고 무게는 1kg이다. 두 개 작품이 쌍을 이루고 있다.
이 붉은 병 시리즈는 새빨간 반투명 유리로 만들어져 루비유리(rubinglas)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연금술사이자 유리공예가인 요하네스 쿤켈(Johannes Kunckel, 1620~1703)이 이런 어려운 유리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바우어가 쿤켈의 유리에 은과 도금으로 하단 받침과 장식 등을 만들어 더했다.
<성 모양 뚜껑이 있는 물병(Deckelpokal in Form eines Schlösschens)>
금세공인 게오르그 몬트(Georg Mond)가 1606년경 은과 도금으로 제작한 것으로 높이가 약 65.5cm이다. 선제후 크리스티안 2세가 손님에게 웰컴 드링크를 제공할 때 환영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주문한 것이라고 한다. 본체 내부 구조상 실제 용량은 보이는 것의 1/3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2.5L의 물을 넣을 수 있다고 한다. 물병 모양은 조넨슈타인 성(Schloss Sonnenstein)를 재현한 것이다. 성의 건축적 특징을 모사해 높은 바위 위에 세워진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문 위에는 작센 가문 문장과 작품의 의뢰인인 크리스티안 2세의 이름을 새겼다.
조넨슈타인 성은 30년 전쟁 때 화재를 입었는데, 그 와중에 이 물병은 보존되어 쾨니히슈타인 요새(Königstein Fortress)에 보관되어 있다가 몇 차례 옮긴 끝에 1890년 그뤼네 게뵐베로 오게 되었다.
#6. 보물의 방 Pretiosensaal (Pretiosa Room or Hall of Treasures)
가장 크고 화려한 공간으로, 벽면이 완전히 거울로 되어 있다. 강건왕 아우구스트는 이 방 가운데에 거울 기둥을 배치하고 기둥 사면에 도금한 자신의 이니셜을 두었다. 거울에는 자신이 받거나 제정한 기사단 훈장들을 새겼다. 보물의 방은 2차 세계대전 때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2002~2006년 복원 공사를 마쳤다. 색색의 보석과 호박, 타조 알, 크리스탈 등으로 만든 보물들로 눈부신 방이다. 한쪽 모서리에 아우구스트가 사랑했던 공간, 코너 캐비닛(Eckkabinett)이 딸려 있다.
2017년 우리나라에서 했던 전시에 보물의 방의 유물 중 1780년대에 제작한 96㎝ 길이의 칼, 다이아몬드 단추, 193개의 다이아몬드를 붙인 모자 장식, 브라질산 토파즈와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황금양모기사단 훈장 등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중 칼과 칼집은 2019년 도난 사건으로 도난되었다.
<대형 탁상시계(Standuhr)>
로마에서 시계공으로 활동한 주세페 캄파니(Giuseppe Campani, 1635~1715)가 1659년 제작한 것이다. 흑단과 소나무, 사문석, 구리와 청동을 주재료로 하여 다양한 보석을 사용했으며 금 도금으로 장식해 아름다운 시계이다. 높이는 116cm이고, 뒷면에 제작자와 제작연대가 새겨져 있다.
주세페 캄파니는 특히 렌즈와 망원경과 같은 광학기구 제작으로 유명해, 그가 만든 기계들을 피렌체와 파리에서도 썼다고 한다.
<여성 흉상(Weibliche Büste)>
이탈리아 예술가 프란체스코 깅기(Francesco Ghinghi, 1689~1766)가 1728년 피렌체 공방에서 제작한 것으로 총 높이는 약 55.7cm이다. 응회암 받침에 자수정을 사용했으며 옷 부분에는 도금한 청동을 썼다.
작센 지방 자수정을 쓴 점과 제작 양식 때문에 오랫동안 드레스덴 궁정 조각가들이 만든 것으로 여겨졌으나, 르플라트(Raymond Leplat) 남작이 강건왕 아우구스트를 위해 이탈리아에서 사 온 작품이라는 점이 훗날 밝혀졌다. 본래 추기경 괄티에리(Gualtieri)의 소장품이었는데 그가 사망한 후 상속자들이 빚을 갚기 위해 800 스쿠디(scudi)에 르플라트에게 팔았다고 한다.
현재 보물의 방 창문 앞을 장식하는 테이블 중 하나에 놓여 있는데, 이는 2006년 바로크 양식으로 그뤼네 게뵐베를 복원할 때 기록에 따라 원래 있던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에나멜의 성모 마리아(Großes Marienbild in Emailmalerei)>
보물의 방 서쪽 벽의 눈에 띄는 위치에 놓인 이 마리아는 딩글링거가 1712년 제작한 작품으로, <기적의 조각>으로도 알려져 있다. 1880년대까지 에나멜로 제작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마리아 상으로 여겨졌다.
1710년에 딩글링거는 일반적인 회화 대신 에나멜을 이용한 성모마리아 그림을 제작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혔고, 그 결과 차별화된 채색을 포기하는 대신 넓은 면적에 몇 가지 색상만 사용해 이 작품을 완성했다.
1786년 하이네켄(Carl Heinrich von Heineken)의 기록에 따르면, 이 작품은 딩글링거와 코펜하겐 출신의 화가 Dinglinger와 코펜하겐 태생의 오일 및 미니어처 화가 이스마엘 멩스(Ismael Mengs, 1688~1764) 간의 경쟁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멩스는 궁정화가인 아담 마니오키(Adám Mányoki, 1673~1757)의 <고통받는 성모>의 유화를 같은 크기의 에나멜로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에 딩글링거도 실물 크기의 에나멜 복제본을 만들려고 했고,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이 성모상 제작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이 사실인지는 불확실하다. 아담 마니오키는 1713년에, 멩스는 1714년에 드레스덴에 왔기 때문이다.
#7. 문장의 방 Wappenzimmer
작센과 폴란드의 국장과 문장, 베틴(Wettin) 선제후 가문의 초기 문장 등을 벽에 전시하고 있다. 베틴 가문은 800여 년 동안 오늘날의 작센을 비롯한 독일의 여러 왕후들, 그리고 유럽의 왕가들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강건왕 아우구스트 등 그뤼네 게뵐베를 장식한 많은 선제후들이 베틴 가문의 군주들이며, 작센 코부르크 고타 가문이나 현대 잉글랜드의 왕실인 윈저(Windsor) 가문도 베틴 왕가의 맥을 잇고 있다.
<폴란드 왕국의 문장 판넬(Wappenschild des Königreichs Polen)>
문장의 방에 들어가서 들어온 문을 바라보고 서면, 문 왼편에 있는 여덟 개의 문장 중 아랫줄 두 번째 작품이 폴란드 왕국의 문장을 새긴 판넬이다. 금세공인 크리스티안 홀란드(Christian Holland)가 1727~1728년에 제작한 것이다.
폴란드 왕국(폴란드 어로 Królestwo Polskie, 크룰레스트보 폴스키에)은 1025년부터 1569년까지 오늘날의 폴란드 지역에 있었던 나라이다. 폴란드 왕국은 1569년에 루블린 연합으로 인해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연합 체제인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수립되면서 막을 내렸다. 아우구스트 2세가 작센 공국의 선제후였다가 폴란드 왕위에 오르는 등 폴란드 왕국은 작센 공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천문 탁상시계(Astronomische Tischuhr)>
문장의 방 오른쪽 벽 거울 앞에는 두 개의 세계가 나란히 놓여 있다. 아우구스부르크에서 16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은과 에나멜, 강철로 제작해 금을 도금했으며 높이는 41cm 정도이다.
당시 아우구스부르크는 천문시계 제작 기술이 매우 발달한 도시였다.
#8. 보석의 방 Juwelenzimmer
작센-폴란드 왕족의 보석과 반지, 체인, 메달 등을 전시하는 방이다. <에메랄드 원석을 나르는 무어인(Mohr mit Smaragdstufe)>, <보석 박힌 오벨리스크(Obeliscus Augustalis)>와 같은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보석의 방의 자랑은 단연 유벨렌 가르니투렌(Juwelen Garnituren)이라 불리는 보석 세트들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보석 컬렉션으로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절대 권력을 대표했다. 아우구스트는 보석 종류별로 세공품들을 모아 각각 독립된 세트로 제작하도록 지시했다.
‘드레스덴 화이트(Dresden White)’ 또는 ‘작센 화이트(Saxon White, Sächsische Weiße)’라고 부르는 49.71캐럿짜리 저 유명한 다이아몬드가 바로 여기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드레스덴 화이트를 포함해 세 세트의 보석이 2019년 절도 사건으로 사라져 아직 되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에메랄드 원석을 나르는 무어인(Mohr mit Smaragdstufe)>
보석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우측에 보이는 작품이다. 그뤼네 게뵐베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상 중 하나로, 당대 유럽 최고의 금세공인이었던 딩글링거(Johann Melchior Dinglinger)가 발타자르 페르모저(Balthasar Permoser)와 함께 제작한 것으로, 1724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가 6.38m이다. 아우구스트는 1581년 루돌프 2세에게 선물받은 진녹색 에메랄드들을 전시하고 싶어 했고, 딩글링거는 이 에메랄드가 콜롬비아 광산에서 온 것이라는 데 착안해 우아한 옷을 입은 남미 인디언의 모습으로 조각상을 고안했다.
배나무로 젊고 힘센 남성 인물을 조각해 짙은 갈색으로 옻칠해 언뜻 보기에는 아프리카 인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신, 목걸이와 팔찌, 가슴 장식, 깃털 관, 신발 등을 통해 아메리카 인임을 알 수 있다. 그뤼네 게뵐베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수작이다.
<행복의 끝 캐비닛(Ende der Fröhlichkeiten)>
세 개의 조각을 연결한 작품으로, 삶의 기쁨 3부작 중 하나이다. 1734년에 기록된 작품 설명에 따르면 이 연작은 인간 행복의 기원, 행복의 최고조, 행복의 끝을 나타내는 세 개의 큰 캐비닛 조각으로 구성되었다. 세 점 모두 벤자민 토매(Benjamin Thomae, 1682~1751)가 만든 금 도금 받침대가 있고 전체적으로 구조와 크기가 거의 일치한다. 켈하임(Kelheim) 지방의 석재로 만든 받침대에 조각가 요한 크리스티안 키르히너(Johann Christian Kirchner, 1691~1732)가 각각 두 명의 인물로 장식을 넣었으며, 도금한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카메오와 수백 개의 보석으로 둘러싸인 부조 판이 있는 형태이다.
<행복의 끝>은 인간의 죽음 이후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받침대에 지하세계의 신인 플루토와 그에게 납치되어 아내가 된 페르세포네(Proserpina)가 앉아 있다. 마노 판은 죽은 자를 태운 배의 노를 저어서 스틱스 강(Styx)을 건너 지옥 사냥개 케르베로스(Cerberus)를 지나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뱃사공 카론(Charon)과 시지포스 신화 등을 담고 있다. 죽음에서 우아한 이미지를 걷어 내고 흉측한 해골과 고통스런 순간의 묘사를 선호했던 바로크 인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를 기억하게 하는 작품이다.
<보석 박힌 오벨리스크(Obeliscus Augustalis)>
딩글링거가 1719~1722년 제작한 것으로, 240개의 보석을 사용해 2.28m 높이로 만들었다. 실내 기념물로 고안된 이 작품은 하단 중앙 카메오에 에나멜로 제작한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초상화를 보여준다.
이 오벨리스크는 거울에 비친 반사를 통해서만 나머지 표면이 드러나 완전한 3차원으로서의 전체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거울벽에 설치해야 하는 작품이다. 가까이에서 감상하는 것이 좋지만, 이런 효과는 멀리서 보아야 더 잘 느낄 수 있다. 고대 복장을 한 네 명의 군인이 계단에 앉아 있고, 오벨리스크 앞에는 고대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 기념비를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그 섬세함이 매우 인상 깊다.
크리스토프 휘브너(Christoph Hübner)가 조각한 카메오 인물상들은 부부의 미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1719년 결혼한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Friedrich August, 1696~1763)와 마리아 요제파(Maria Josepha von Österreich, 1699~1757)를 기념하고자 넣은 것이다.
<로마 황제의 초상화 카메오가 있는 캐비닛(Kabinettstück mit dem Bildniskameo eines römischen Kaisers)>
1722년 2월 딩글링거는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위엄과 자아를 담은 두 점의 작품을 완성한다. 하나는 이 방에 있는 <보석 박힌 오벨리스크(Obeliscus Augustalis)>이고, 다른 하나는 이 캐비닛이다.
오벨리스크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형식과 내용 면에서 고대와 관련이 있다. 오닉스로 만든 카메오에 서기 41년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초상화를 넜었는데, 이는 알프스 북부에서 보기 드문 묘사이다. 당대 사람들은 이 초상이 강건왕 아우구스트를 상징한다고 여겼다.
받침대는 발타자르 페르모저(Balthasar Permoser)가 만든 상아 조각으로 장식돼 있고, 맨 오른쪽에는 이니셜 ‘AR’을 가리키는 여성이 있는에 이 이니셜은 Augutus Rex를 의미한다. 받침대에는 라틴어로 ‘Sit gloriosum nomen tuum(당신의 이름을 찬양합니다)’와 ‘곤봉과 사자 머리에 둘러싸인 헤라클레스가 오른손으로 아우구스트를 가리키고 있다’고 쓰여 있다. 고대 황금 시대 황제의 명성과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치세를 일체화하고자 한 작자의 의도가 보인다.
<에메랄드 세트(Smaragdgarnitur)>
보석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왼편에 보면 에메랄드 세트가 보인다.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다른 보석 세트와 마찬가지로 에메랄트 세트도 독립된 세트로 제작되었으며, 1719년 최초로 제작한 후 1731년에 <황금양모기사단 훈장>이, 1737년에는 새로운 검이 생산되는 등 추가 작업이 이어졌다. 당시 에메랄드 세트의 가치는 98,000탈러로 추산된다.
<에메랄드 세트 - 칼집이 있는 검(Hofdegen mit Scheide)>
드레스덴 궁중 검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에메랄드 세트를 위해 제작한 우아한 궁중 검이다. 1737년 1월 딩글링거가 종전에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었던 검 등을 분해하고 녹여 그 재료로 다시 제작한 것이다. 왕실에서 공급된 다른 보석도 사용했으며 같은 해 11월에 완성했다.
기본 형태는 30년 전 아버지가 제작한 검을 따랐고, 우아한 곡선의 손잡이 등을 더했고 손잡이는 종전보다 좁게 제작했다. 손잡이 부분에는 금실로 분리된 두 개의 나선형 띠를 다섯 바퀴 감았는데 한 줄은 작은 에메랄드로, 다른 한 줄은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로 장식햇다. 크기도 커팅도 서로 다른 보석들을 균등한 높이로 세공한 솜씨가 매우 놀랍다.
<에메랄트 세트 - 지팡이 장식 단추(Stockknopf)>
위의 궁중검을 만들면서 지팡이도 만들었는데, 현재는 지팡이를 장식했던 버튼만 남아 있다. 에메랄드 세트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가 24개의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에 둘러싸여 있다.
<에메랄드 세트 - 모자 장식(Hutkrempe)>
당시 모자는 계급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의 일부였다. 공식 석상에서 누가 언제 어떤 모자를 쓰고 어떤 장식을 사용할 수 있는지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에메랄드 세트의 모자 챙 장식으로, 모자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직접 달아 얼굴과 가까운 곳에 아래쪽 메달이 위치하도록 구성했다. 때문에 하단에 특히 아름답고 큰 에메랄드를 배치했다. 두 줄의 보석 사슬이 상단 장식과 하단부를 연결하는데, 머리가 움직일 때마다 모자의 챙 위에서 반짝임이 화려했을 것이다. 뒷면에 나사 형태의 장치가 있어 모자에 고정하도록 되어 있다. 당시 이 작품의 가치는 8,400탈러였다고 한다.
<에메랄트 세트 - 황금양모기사단 훈장(Kleinod des Ordens vom Goldenen Vlies)>
딩글링거가 사냥을 모티브로 제작한 작품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덧붙어 최초의 모습은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다. 하단의 축 늘어진 양은 황금양모기사단의 상징이다.
이 훈장은 강건왕 아우구스트가 만든 마지막 세 개의 훈장 중 하나이다. 정사각형 에메랄드를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메인 장식에는 다이아몬드들을 완전한 직선으로 세팅했다. 본래 붉은 에나멜 장식을 더하려고 했으나 에메랄드 세트가 지향하는 엄격함과 대칭성을 위해 생략했다고 한다.
황금양모 기사단
1430년 부르고뉴의 공작 필리프 3세와 포르투갈의 공주 이사벨라와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설립된 기사단이다. 성모 마리아와 성 안드레아에게 헌신되어 있었으며 로마 가톨릭교도로서 가장 지위가 높은 귀족만이 이 기사단의 단원이 될 수 있었다. 초기에는 다른 기사단처럼 처음에는 엄격하게 1명의 기사단장(주권을 가진 공작)과 23명의 기사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1433년에는 31명으로 늘어났다가 1516년에는 회원수가 51명이 되었다.
로마 가톨릭교를 수호하고 기사도의 전통적 관례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기사단에서 각 기사는 범죄에 소추되거나 반역, 이단의 혐의를 받으면 다른 기사에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기사단은 이단을 엄격히 배격했으나 기독교적 기사단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이교도적인 이름인 ‘황금양모’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9. 청동의 방 Bronzezimmer
다양한 청동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 청동의 방이라고 부른다.
<셀레네와 엔디미온(Selene und Endymion)>
청동의 방에 들어서면 우측 벽 앞에 놓인 청동상이다. 코르네이유 반 클레브(Corneille van Clève, 1646-1732)의 1700년작으로 높이는 약 73.4cm이다. 1715년 강건왕 아우구스트가 파리에서 가져온 가장 큰 청동 작품 중 하나로, 청동의 방에서 화려한 상감 장식 받침대에 놓여 있다.
셀레네와 엔디미온의 이야기는 가장 인기가 많은 신화 중 하나이다. 양치기 또는 사냥꾼이었던 미소년 엔디미온은 제우스로부터 영원한 젊음과 잠을 받았는데, 달의 여신 셀레네가 그의 외모에 반해 더 이상 늙지 않도록 영원히 잠재운 다음 밤마다 몰래 잠자리를 가져 50명의 딸을 낳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는 엔디미온이 바위 위에서 잠들어 있고, 가운을 걸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여신의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셀레네가 엔디미온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가 덮은 천을 부드럽게 들어올리는 장면이다. 엔디미온의 발 옆에 누워 있는 양치기 개조차 잠에서 깨지 않은 모습은, 조심스럽고 고요한 침묵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자의 의도를 담고 있다. 관람자들은 이 장면의 비밀 관찰자가 된다. 바위 뒤에 앉아 있는 큐피트는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작품을 보는 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플랑드르 혈통의 예술가인 클레브는 1681년 베르사유 궁전 등 다양한 고객들에게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준 다작가였다. 1704년 파리 살롱에 이 <셀레네와 엔디미온>을 선보였는데, 이후 17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청동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바르베리니 파운(Barberini Faun, B.C. 2c)
<셀레네와 엔디미온(Selene und Endymion)>은 뮌헨 클립토테크(Glyptothek)에 소장되어 있는 바르베리니 파운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바르베리니 파운은 1620년 바티칸에 있는 성 안젤로 성 근처에서 발견된 고대 그리스 조각 작품으로, 실물 크기의 대리석 조각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티로스(Satyrs)를 새긴 것인데, 사티로스는 여자와 술, 음악을 좋아해 인간 삶의 쾌락을 담당하는 신이다. 호색적인 동물성의 상징인 사티로스의 인간성에 중점을 두고 표현한 작품으로, 다분히 성적인 암시를 주면서도 인간적인 관능미를 심도 있게 표현하고 있다. 당시 교황이었던 우르바노 8세는 로마의 명망 있는 가문인 바르베리니(Barberini) 가문 출신이었는데, 이 작품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자기 소유로 인정할 만큼 이 조각의 작품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암피트리테(Amphitrite)>
청동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왼쪽 눈높이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미셸 앙귀에(Michel Anguier, 1612~1686)가 1652년 제작한 작품이다.
1699년 파리의 레이몬드 르플라트(Raymond Leplat) 남작이 중개상으로서 구입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구입 목록에 <바쿠스와 암피트리테>라고 나와 있어 이 청동상의 주인공이 암피트리테임을 알 수 있다. 앙귀에는 고대 신들을 모델로 각각 다른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일곱 개의 청동상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그 중 하나이다. 암피트리테는 네레우스와 도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바다의 신 넵튠과 결혼해 바다의 여왕이 된 여신이다. 앙귀에는 암피트리테 상을 통해 ‘아름답고 우아한 비율’을 강조하고자 했으며 ‘섬세하며 투명한’ 특성을 담고자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크기가 거의 같은 다른 한 쌍과 함께 전해진다. 강건왕 아우구스트는 바로크 양식의 대칭으로 설계된 청동의 방을 꾸미기 위해 청동 작품들 상당수를 서로 관련 있는 한 쌍 또는 여러 개로 주문했다고 한다.
<아폴로의 목욕(Bad des Apoll)>
청동의 방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작품이다. 무게가 70kg이 넘는다. 1666~1675년경 제작되었으며 1715년 파리의 레이몬드 르플라트가 중개 구매한 작품 중 가장 눈에 띄는 예술품 중 하나이다. 당시 이 작품의 가격은 1,650 라이히스탈러(Reichstaler, 1566년에 발행된 독일의 옛 은화)였는데, 파리의 유명한 캐비닛 제작자 앙드레 샤를 보울(André-Charles Boulle, 1642-1732)이 제작한 화려한 받침대를 포함한 가격이었다고 한다. 당시 구매한 38개의 작품 중 <아우구스트 기마상>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싼 청동상이었다.
<아폴로의 목욕>은 조각가 프랑수아 지라르동(François Girardon)과 토마스 르누댕(Thomas Regnaudin)이 제작했던 대리석 조각의 형식을 반복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원작은 1684년 철거되어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원래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태양신 아폴론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바다의 여신 중 하나인 테티스(Thetis)가 그를 가까이에서 맞아 머리를 감겨 주고 있다. 아폴로는 스스로를 태양왕이라 칭했던 프랑스 왕 루이14세를 상징한다.
<아우구스트 기마상(Reiterstandbild Augusts des Starken)>
청동의 방에 들어서면 왼편에 보이는 높이 102cm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말을 타고 장엄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르플라트 남작이 파리에 의뢰해 예술가 5,300명의 인건비를 지불하고 가져왔다고 한다. 당시 구입한 것들 중 가장 고가였다. 당시에 드레스덴에는 이미 프랑스 조각가 비나슈(Jean-Joseph Vinache)가 제작한 아우구스트 기마상(Vinache's Goldener Reiter)이 있었는데, 청동상을 하나 더 비싼 값에 들여온 것이다. 원래 받침대에 부조가 있었으나 1945년에 받침대와 함께 소실되었고, 현재는 4개의 노예 인물과 청동 모서리 등만 보존되어 있다. 1986~1987년 받침대를 재건했다. 아우구스트의 절대주의 군주로서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지라르동의 루이14세 기마상
아우구스트 기마상은 전체적으로 프랑수아 지라르동(François Girardon)이 제작한 6m 높이의 루이14세 기마상의 유형을 따르고 있다.
루이14세의 기마상 원본은 프랑스 대혁명 때 파괴되었으나 이를 모방, 복제하거나 스케치한 수많은 다른 작품들이 남아 있을 만큼 매우 유명한 명작이다.
#10. 르네상스 청동의 방 Raum der Renaussance-bronzen
르네상스 시대 청동 작품들을 전시한다.
<님프(Nymphe (aus Bronzegruppe Faun und Nymphe))>
네덜란드 출신 조각가 아드리안 데 프리스(Adriaen de Vries, 1545?~1626?)가 1590년경 완성한 작품이다. 프리스는 잠볼로냐의 제자였다. 높이는 사티로스가 48.2cm, 님프는 34.6cm이며, 1622년에 드레스덴에 오게 되었다.
몸의 자세와 제스처, 시선 등 다양한 방식으로 두 인물의 팽팽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사티로스는 앞으로 걸어가면서도 상체를 휘어진 바위에 앉아 있는 님프 쪽으로 돌려 외설적인 몸짓을 하고 있고, 님프는 거울을 들고 교묘하게 땋은 머리를 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다. 부드럽게 춤추는 듯한 사티로스의 몸과 놀란 표정의 얼굴, 입을 살짝 벌리고 그를 올려다보는 님프는 당대 두 인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잘 보여 준다. 17세기 초까지는 비너스와 아도니스를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악덕과 미덕을 형상화하고자 한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 있다.
인물을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나선형 포스를 형상화하는 이런 방향을 세르펜티나타 양식(figura serpentinata)이라고 하는데, 이는 매너리즘의 전형이다. 당대에 이 기법을 완벽하게 숙달했던 프리즈의 솜씨를 볼 수 있다.
<사티로스와 잠자는 님프(Schlafende Nymphe mit Satyr)>
이탈리아 출신의 플랑드르 조각가인 잠볼로냐(Giovanni da Bologna, 1524/1529~1608)가 1587년 피렌체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도 1587년에 메디치 가에서 크리스티안 1세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다. 바로크 시대에는 사티로스와 님프를 동시에 제작한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처음부터 두 인물을 구상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님프와 사티로스가 따로 주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형태 면에서도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님프의 형상은 위해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저 유명한 고대의 <잠자는 아리아드네(Sleeping Ariadne)>를 바탕으로 했으며, 이탈리아 회화의 거장 조르조네(Giorgione)와 티치아노(Tiziano)의 <잠자는 비너스> 그림과의 유사점도 발견된다.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Merkur)>
역시 잠볼로냐가 피렌체에서 1587년 완성한 작품이다. 받침대를 포함하면 높이가 72.7cm이다. 1587년 초에 피렌체의 메디치 가에서 외교적 선물로 작센 선제후 크리스티안 1시에게 보낸 것이다. 헤르메스는 불확실한 운명에 저항하는 미덕의 화신이자 기술과 행복의 상징으로, 메디치 가와 작센 공국 간의 우호적 관계를 담은 것이다.
잠볼로냐는 헤르메스 상을 여러 개 제작했다. 이 작품은 작은 발끝만으로 육중한 청동 몸체를 지탱하도록 하여 대담함과 놀라운 균형미, 리듬감과 가벼운 질량감을 동시에 보여 준다.
[2] 그뤼네 게뵐베 신관 Neues Grünes Gewölbe
드레스덴 성 2층의 약 2,000㎡ 면적을 차지하는 신관에는 왕실 금세공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딩글링거를 포함한 바로크 시대의 보석 공예품 등 약 1,100개의 작품을 전시한다.
신관에는 12개의 전시실이 있다.
#1. 미술관 Saal der Kunststücke
신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미술관에서는 <다프네 술잔(Daphne als Trinkgefäß)>과 같은 16세기 후반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장식 서랍장(Kunstkammerschrank)>
금세공인인 한스 켈러탈러(Hans Kellerthaler, 1560~1611)가 1585~1611년에 완성한 장식장이다. 흑단과 은, 금 도금으로 제작되었으며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1세가 1612년에 구입했다.
물건을 담기 위한 찬장으로 24개의 작은 서랍이 있는데, 구조상 대부분의 서랍을 열 수 없게 되어 있다. 왕조의 멸망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예언한 선지자 다니엘이 바빌론에 있는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B.C. 605~562)(=네부카드네자르)의 왕의 꿈을 해석했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맨 위에는 계층적 배열로 4대륙의 부조와 전쟁의 알레고리를 형상화했고 드레스덴을 흐르는 엘베 강과 비롯해 4대 금속인 금, 은, 동, 철, 사계절 등도 표현해 놓았다. 작자의 이니셜 옆에 1585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때는 켈러탈러가 아닌 궁중 장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작 연대는 아닐 것이다.
<다프네 술잔(Daphne als Trinkgefäß)>
1586~1587년에 이미 재무부 목록에 기록되어 있었던 작품이다. 다프테의 상체를 제거하면 속이 빈 하체 부분을 그릇으로 쓸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고 손과 머리에는 기괴한 산호 가지들이 뻗어 있다. 이런 기괴한 방식은 실용적 목적으로 의도한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보다 정교한 금세공 조각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다. 바로 아폴로 신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월계수 나무로 변했다는 신화 속 다프네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뭇가지를 표현한 모양의 산호 갈래들은 놀라운 변신을 보여주는데, 인간이 만든 예술 작품이 이 희귀한 자연스러움과 이상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다프네 술잔>은 뉘른베르크의 위대한 금세공자인 벤젤 얌니처(Wenzel Jamnitzer, 1507/1508~1585)의 아들인 아브라함 얌니처(Abraham Jamnitzer, 1555~1591/1600)의 작품이다. 그는 아버지가 과거에 만든 작은 다프네 조각상 제작을 도운 적이 있는데, 훗날 그 경험을 활용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조각상은 현재는 프랑스 에쿠앙(Ecouen)의 르데상스 국립박물관(Musée National de la Renaissance)에 있다.
<뤼네부르크의 장식 거울(Lüneburger Spiegel in epitaphförmigem Prunkrahmen)>
금세공인 룰레프 마이어(Luleff Meier)와 디리히 우테르마르케(Dirich Utermarke, 1565~1649)가 1592년 완성한 것으로 은과 금 도금, 유리, 자수정 등을 사용했다. 작품의 의뢰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진 바 없으나, 완성한지 9년만인 1601년 선제후 크리스티안 1세의 미망인 소피아가 사들였다고 한다.
중앙의 복잡한 프레임 속 내용은 앞의 장식 서랍장과 마찬가지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의 꿈이다. 선지자 다니엘의 꿈의 해석에는 앗수르,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4대 세계 군주국의 멸망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예언되어 있었다. 때문에 이 작품에는 구름 위에 앉아 나팔 소리와 함께 최후의 심판을 예고하는 진리의 화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거울 프레임 좌우 틈에 서 있는 두 명의 전사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다. 상단에서 말을 타고 있는 두 전사는 아시리아 왕 니므롯(Nimrod)과 페르시아 왕 키루스(Cyrus)이다.
하단에는 미덕을 의인화한 왕자에 앉은 인물이 있고, 그 프레임 하단의 장면은 셀레네를 트로이로 데려와 트로이 전쟁을 유발시킨 파리스의 비극적 결말을 예시하고 있다. 프레임 상단의 메달 열두 개는 당대 유럽 왕국들의 국장이며, 쌍두 독수리 위에 있는 원형 메달은 신성 로마 제국의 상징을 표현한 것이다.
다니엘의 느부갓네살의 꿈 해몽 이야기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박사들 중에도 그 해석을 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화가 난 왕이 박사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할 때, 다니엘은 왕의 경호실장인 아리옥에게 자기에게 기한을 주시면 해몽을 해 오겠다고 요청하고, 신이 장차 일어날 일을 왕의 꿈으로 보여주신 것이라고 해석한다. 매우 만족한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에게 선물을 내리고 그를 높은 자리에 앉혀 바빌론도를 다스리게 했다.
<구슬 회전 시계(Kugellaufuhr)>
금세공인이자 시계공인 한스 슐로트하임(Hans Schlottheim)이 1600년 제작한 것으로, 높이가 112cm에 달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Rudolf II, 1552~1612)가 슐로트하임에게 만들게 하여 1603년 12월 31일 작센 선제후인 크리스티안(Christian II, 1583–1611)에게 선물한 것이다. 프라하에서 루돌프 2세를 위해 일했던 슐로트하임은 당대에서 가장 혁신적인 시계공 중 한 명이었다.
‘Kugellaufuhr’란 진자가 아닌 지그재그 트랙을 따라 구르는 공을 사용해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 유형을 말한다. 수많은 작품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팔각탑 형태의 회전하는 이 시계는 오르골과 자동 작동 기계를 결합한 기계공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수정 구슬이 탑 모양의 시계를 정확히 1분마다 16바퀴 돌아 내려오고, 그러는 동안 시계 내부에서 다음 구슬이 들려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오르간은 하루에 두 번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다.
탑은 고대와 중세부터 루돌프 2세의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황제들의 초상화로 장식되어 있고 받침대에는 플라톤이 시작해 정착된 자유 7학과(문법, 수사학, 변증법, 음악, 천문학, 기하학, 산수)를 표시했다. 작센 국장이 있는 왕관을 쓴 쌍두 독수리는 루돌프 2세 황제를 상징하는데, 시계판 아래 크리스티안 2세의 초상화 옆에도 그의 초상화가 있다. 이는 두 군주 간의 유대를 상징한다.
이런 구슬 회전 시계는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수세기 동안 인기를 얻었던 귀금속으로, 시계라기보다는 호화로운 장식품이었다. 이러한 코일 형태의 철강 제작 기술이 발명되면서 이런 자동장치를 만들 수 있었다. 한스 슐로트하임의 작품들이 가장 대표적이다.
<보석함(Schmuckkassette)>
은과 금 도금, 구리, 황동을 사용해 만든 높이 약 41cm의 상자이다. 1560년에 제작되었다.
작품에 제작자 이름 등의 흔적이 없어 확실하지 않지만, 뉘른베르크의 위대한 금세공자인 벤젤 얌니처(Wenzel Jamnitzer, 1507/1508~1585)의 작품들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금으로 도금한 금색 표면과 흰색 은색 표면을 적절히 배치하고 네 마리의 사자가 몸체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외벽과 내부는 무어 양식으로 장식했는데, 외부는 아치와 기둥이 있는 건축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표면에 은색 부조로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Leidensgeschichte Christi)이다. 기둥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장면들은 1553년 프랑스 리옹에서 인쇄업자 장 드 투르네(Jean de Tournes)가 출판한 성경 <Quadrins historiques de la Bible>의 삽화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삽화는 프랑스 화가이자 제도가인 베르나르 살로몬(Bernard Salomon, 1506~1566)이 목판화로 제작한 것이었는데, 매우 대중적이어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예술품 창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앙에 올린 뚜껑에는 부활한 그리스도와 무릎을 꿇은 두 인물이 있고, 그 아래쪽에 여섯 명의 로마 병사들이 누워 있다.
<소피아의 대형 장식함(Große Prunkkassette der Kurfürstin Sophia)>
벤젤 얌니처와 니콜라우스 슈미트의 합작품이다. 완성은 얌니처가 사망한지 3년만인 1588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은과 도금, 자개, 유리와 수정 등이 쓰였다.
선제후 크리스티안 1세가 1588년 아내 소피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낸 것이라고 한다. 한때 서랍에 가위와 반짇고리 상자, 펜과 잉크병 등 재봉도구와 필기구들이 보관되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또 뚜껑에 있는 여인이 시계 다이얼을 움직이도록 하여 시각을 표시했다고 하나 이 역시 분실되었다. 내부는 실크와 금실 자수, 진주, 옻칠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시계와 오르골이 있는 상아 기둥(Hohe Elfenbeinsäule mit Uhr und Musikautomatenwerk)>
한스 슐로트하임이 1589년 제작한 것으로, 높이는 117cm이다. 당시 드레스덴에 머물렀던 아우구스부르크의 조각가가 만든 목재 받침 위에 슐로트하임이 상아로 기둥을 올린 작품이다. 독일 후기 르네상스의 최고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슐로트하임은 나무 받침대 내부에 오르골 장치를 넣어 매시간 음악을 울렸고, 아치형 길 부분을 움직여 트럼펫 연주자가 악기를 들어올리고 팀파니 연주자가 북채를 휘두르면 팀파니를 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나도록 설계했다. 연회복을 입은 남져들은 작원 선반에 생명을 불어넣는데, 이들은 회전하는 선반을 돌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상아 공의 로마자 숫자는 이 독특한 시계의 눈금을 표시한다.
<향료 보관함(Ovale "wurtzbuchsen" (Würzbüchse), mehrteilig)>
드레스덴 궁정에 소속돼 있었던 예술가 게오르크 베커(Georg Wecker)와 에기디우스 로베닉(Egidius Lobenigk)은 드레스덴 궁전의 작업장을 효율적으로 바꾼 사람들이다.
이 향료 보관함을 제작한 상아 조각가 로베닉은 1584년 8월에 선제후로부터 궁중 예술가로 임명되어 이듬해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타원형 형태의 몸체는 가로 11.5cm 세로 10cm이고 높이는 15.3cm이다. 로베닉은 이전과 다른 대담한 형태의 작품들을 시도하면서 드레스덴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그뤼네 게뵐베에 그의 작품이 약 40점 보존되어 있으며, 그의 상아 작품들에는 대개 ‘EL’이라는 이니셜과 제작연도가 표기되어 있다.
<올빼미 모양 크리스탈 그릇(Bergkristallgefäß in Gestalt einer Eule)>
사라치(Saracchi) 공방에서 크리스탈과 금, 에나멜을 활용해 1585년 완성한 작품이다. 높이는 27.6cm이고 올빼미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는 약 12cm이다.
사라치 공방에서는 바이에른 공작, 사보이 공작, 만투아 공작 등의 주문품을 제작했고, 투스카니 대공이나 황실에서도 사라치 공방 작품을 선호했다. 크리스탈은 단단하면서도 부서지기 쉬워서 가공이 매우 어려웠는데, 사라치에서는 능숙한 솜씨로 매혹적인 컵과 그릇, 주전자 작품을 만들어내 많은 작품을 남겼다.
#2. 미크로 캐비닛 Mikro-Kabinett
<185개의 얼굴이 조각된 체리씨(Kirschkern mit den 185 Angesichtern)>과 같은 작은 조각 작품들을 전시한다.
<185개의 얼굴이 조각된 체리씨(Kirschkern mit den 185 Angesichtern)>
1589년 이전에 만든 것이나 작자는 미상이다. 과일 씨앗에 조각한 것이라 크기가 겨우 높이 4.5cm 정도로 매우 작기 때문에 아마 돋보기를 써 가며 제작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113개의 얼굴만 구별할 수 있다. 성경 이야기, 초상화, 문장 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1589년에 작센의 선제후 크리스티안 1세가 수집했다고 한다.
#3. 크리스탈 캐비닛 Kristall-Kabinett
강건왕 아우구스트가 대관식을 하기 위해 폴란드로 가는 여정에 고전신화 속 인물들이 동행하는 장면을 담은 조각 작품, 프라이부르크와 밀라노의 크리스탈, 베네치아의 유리 작품, 글라스화(Hinterglasmalereien) 등을 전시한다.
#4. 선제후의 첫 번째 방 Erster Raum des Kurfürsten
<넵튠이 호위하는 대형 상아 호위선(Große Fregatte aus Elfenbein, von Neptun getragen)>과 같은 17세기 전반의 보물을 전시한다.
<넵튠이 호위하는 대형 상아 호위선(Große Fregatte aus Elfenbein, von Neptun getragen)>
조각가 야코프 젤러(Jacob Zeller, 1581~1620)가 사망하기 몇 달 전에 완성한 작품이다. 젤러는 이 작품을 직접 구상하고 만들었다는 메모를 남겼다. 배의 판자에는 작센공국 군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예수 탄생 직후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하데리히(Harderich, König der Sachsen)부터 작센의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1세(Johann Georg I., 1585~1656)까지 이어진다. 요한 게오르크 1세와 그의 아내 브란덴부르크의 막달레나 시빌라의 문장을 정교한 양각 조각으로 새겨 놓았다.
여러 부분으로 조립된 넵튠의 형상은 로마 나보나 광장에 있는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넵튠 분수(Fontana di Nettuno)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강인한 바다의 신 넵튠이 두 팔로 호위함을 들어올리는데, 야생마 등 위에서 긴장된 자세로 균형을 잡고 있다. 폭풍우 치는 바다의 위험 속에서도 강인하게 배를 떠받치고 있는 바다의 신을 표현함으로써 30년 전쟁의 위협에 직면한 요한 게오르크 1세 치세의 굳건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특히 바람에 나부끼는 돛의 표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다.
<용 모양의 장식용 주전자(Drachenkanne)>
주둥이와 손잡이를 이루는 기괴한 용의 모습에서 작품의 별명이 유래했다. 실용적인 측면을 완선히 무시한 화려한 모양은 매너리즘 양식의 전형으로, 은과 금 도금으로 제작됐다.
1723~1733년 목록 설명에 의하면 원래 뚜껑에 세계의 네 부분을 나타내는 모양(Figuren die vier Theile der Welt vorstellend)인 남녀 각 네 사람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없는 것으로 보아 훗날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물그릇 부분의 무게가 약 9kg이고 남자 4명, 여자 4명 등이 있었다고 한다.
작센 선제후 크리스티안 2세가 1610년 봄에 프라하에서 뉘른베르크의 금세공인인 크리스토프 얌니처(Christoph Jamnitzer)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프 얌니처는 벤젤 얌니처(Wenzel Jamnitzer)의 손자로 일찍부터 이름을 알린 예술가였다.
<자개 수반(Perlmutterbecken)>
뉘른베르크의 금세공인 니콜라우스 슈미트(Nicolaus Schmidt)가 목재와 자개, 은과 금 도금, 조개껍질 등으로 1592~1594년에 제작한 물그릇이다. 지름은 약 56cm이다.
여기에 쓰인 자개는 라이프치히 상인 베이트 뵈티거(Veit Böttiger)가 인도에서 수입한 것을 사들인 것이다.
슈미트는 자신의 스승인 벤젤 얌니처의 매너리즘 및 자연주의 양식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였다.
1619년 기록에 따르면 이 수반에는 원래 콜드 페인팅(Kaltbemalung) 기법으로 채색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사라졌다. 콜드페인팅은 열을 가하지 않고 에나멜 소재로 채색하는 기법으로 내구성이 매우 낮아서 보존이 어렵다. 그러나 그뤼네 게뵐베에 있는 많은 작품들에서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있다.
수반 옆에 높인 동물 장식은 아래 사진과 같이 수반에 올려 장식하던 것이다. 터보 마모라투스(Turbo marmoratus) 종에 속하는 달팽이 껍질을 사용해 기이한 잡종 생물의 형태를 완성했다. 받침 모양이 수반 중앙 형태와 일치해 정 가운데에 올려놓게 되어 있다.
<장식함(Prunkkassette)>
뉘른베르크의 금세공인 니콜라우스 슈미트Nicolaus Schmidt)가 1609년 제작한 장식함이다. 높이는 약 23cm이며 나무와 자개, 은, 금 도금, 자수정과 감람석(페리도트) 등을 사용하고 내부에 벨벳과 실크를 썼다. 역사관에 있는 슈미트의 장식함과 마찬가지로 인도 서부 구자라트(Gujarat)에서 가져온 7개 중 하나이다.
뚜껑이 있는 몸체로 구성했으며 작은 장식용 금속 핀으로 나무 몸체에 자개 판을 부착했다. 역사관의 장식함보다 세공과 보석 사용이 정교한 작품이다.
<술 게임용 지구본 조각상 두 점>
나란히 놓여 있는 <지구를 받치는 헤라클레스(Globuspokal mit Herkules der den Erdglobus trägt)>(사진의 왼쪽 작품)와 <천구를 받치는 성 크리스토퍼(Globuspokal Hl. Christophorus mit der Himmelskugel)>는 금세공인 엘리아스 렌커(Elias Lenker, ?~1671)과 조각가 요하네스 슈미트(Johannes Schmidt, 1608~1647)가 1626~1629년경 제작한 합작품이다. 은과 금 도금으로 제작되었으며 높이는 양쪽 다 약 64cm이다. 당시 슈미트가 제작한 지구본은 암스테르담에서 제작된 모델을 기반으로 당대의 최신 천문학 지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컨대 이 작품에는 1618년에 발견된 혜성이 표현되어 있다.
지구본의 윗부분은 분리할 수 있게 되어 있고 남은 부분에 술을 따르면 술잔이 된다. 조각상 하단에는 숲의 자연 지형 모양과 같이 디자인한 높은 받침대가 있는데, 이 안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톱니바퀴 장치가 있어 술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술 마시기 게임을 하는 용도로 제작한 것으라 추정된다. 기계가 멈췄을 때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잔에 담긴 술을 마셔야 했을 것이다.
<지구를 받치는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를 든 영웅 헤라클레스를 표현한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열한 번째 과업은 헤라 여신의 동산에서 황금사과를 따 오는 것이었다. 동산으로 가는 길을 알아내기 위해 아틀라스를 찾아갔는데, 아틀라스는 자기를 대신해 지구를 떠받치고 있으면 자기가 황금사과를 따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게 되었는데, 황금사과를 가져온 아틀라스가 마음이 바뀌어 헤라클레스를 속이려 하자, 이를 눈치 챈 헤라클레스는 "오랫동안 하늘을 받치고 있으려면 어깨받이를 덧대야 하니 잠깐만 하늘을 받치고 있어 주시오"라고 말했다. 아틀라스가 지구를 떠받치는 순간 헤라클레스는 황금사과를 주워들고 도망쳐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지구본 위에 놓인 독수리는 ‘에톤(Ethon)’ 또는 ‘아이톤(Aethon)’이라는 독수리이다. 제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준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묶어 놓고 독수리가 그의 간을 파먹게 하는 벌을 내렸는데,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죽이고 프로메테우스를 구해주었다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독수리이다.
<천구를 받치는 성 크리스토퍼>는 성 크리스토퍼가 예수를 건네줬다는 일화를 담고 있다. 성 크리스토퍼는 원래는 힘센 거인으로 강가에서 돈이 없어 배를 타고 가지 못하는 순례자나 여행객들을 자기 어깨에 올려 태우고 건네주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린아이를 옮기게 되었는데, 점점 무거워져서 지팡이을 짚어 가며 간신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아이를 강 건너에 내려준 후 의아해 하자, 아이는 "너는 지금 온 세상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자네가 찾던 왕, 예수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천구 위에 앉은 어린아이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켄타우로스와 다이아나가 있는 자동인형 입상(Figurenautomat mit Diana auf einem Kentauren)>
아우구스부르크의 금세공인 한스 야코프 바흐만(Hans Jakob Bachmann, 1574~1651)이 1606~1610년경 제작한 것이다. 은과 금 도금, 에나멜과 황동, 강철, 오크나무 등으로 제작했으며 6개의 루비와 2개의 에메랄드가 쓰였다. 높이는 약 50cm이다.
작센 선제후 크리스티안 2세는 정밀공학기술 작품을 열심히 수집했는데, 1610년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이 인형장치를 손에 넣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다른 작품은 현재 빈 미술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앞선 두 점의 지구본 작품과 같이, 이 작품도 술 마시기 게임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장치를 작동시키면 큰 개가 고개를 돌리고 작은 개가 위아래로 점프하는 동안 작품이 테이블을 가로질러 움직일 수 있었다. 다이아나와 켄타우로스는 앞뒤를 바라보는데, 기계가 멈추면 켄타우로스가 화살을 쏘았다.
이런 종류의 물건은 단지 장식이나 오락용으로만 쓰인 것이 아니다. 생동감을 만들어내면서도 장치 구조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과시용 물건이기도 했다. 특히 교육받은 손님들이 이 기계의 기능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5. 선제후의 두 번째 방 Zweiter Raum des Kurfürsten
테이블 시계, 크리스탈 물병 등 17세기 후반의 보물들을 볼 수 있다.
#6. 왕실 보물의 방 Raum der königlichen Pretiosen
상아와 진주 조각, 벽시계와 소형 시계 등을 볼 수 있다. <비너스가 있는 그릇(Nautiluspokal mit Venus(Venusschale, 비너스의 조개껍데기)>가 대표적이다.
<비너스가 있는 그릇(Nautiluspokal mit Venus(Venusschale, 비너스의 조개껍데기)>
고트프리트 되링(Gottfried Döring)이 1704년에서 1718년 사이에 상아와 금, 은, 에나멜, 다이아몬드 등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높이는 약 40.8cm이다. 자개 장식은 17세기 중반 암스테르담의 벨킨(Cornelis Bellekin, 1615~1696)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되링은 1686년부터 1718년 사망할 때까지 드레스덴에서 금세공인으로 일했으며 1703년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궁정 금세공인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사돈 지간이었던 딩글링거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분명히 드러낸다. 되링의 주요 작품인 <비너스가 있는 그릇>은 딩글링거와 비교할 때 독창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매우 높은 예술적 경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 딩글링어의 <다이아나의 목욕>와 마찬가지로 상아로 인물을 제작한 선박 형태의 작품이다.
#7. 딩글링거의 방 Dinglinger-Saal
딩글링거가 만든 작품들을 전시한다. 딩글링거는 오늘날의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지역에서 태어나 도제 교육을 받은 후 아우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빈 등에서 활동하다가 1692년 드레스덴으로 온 후 이곳에서 강건왕 아우구스트를 섬기며 죽을 대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1698년 궁정 보석상으로 임명됐다. 그가 드레스덴에 살던 집이 유명했으나 7년 전쟁 때 불타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이 방의 작품으로는 <황금 커피 식기 세트(Das Goldene Kaffeezeug)>, <아피스 제단(Apis-Altar)>, <무굴제국 아우렝-제브 생일의 델리의 궁정(Hofstaat zu Delhi am Geburtstag des Großmoguls Aurangzeb)>, <다이아나의 목욕(Bad der Diana)> 등이 대표적이다.
<황금 커피 식기 세트(Das Goldene Kaffeezeug)>
1701~1708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딩글링거가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궁정 금세공인으로서 제작한 첫 번째 주요 작품으로, 바로크 장식 예술의 정수라 할 만하다. 실물을 보면 그 화려함에 압도당할 만큼 눈부시다. 금과 은으로 도금한 몸체에 45개의 그릇이 있는 호화로운 커피 세트의 전형이다. 금과 은, 에나멜, 상아, 5,600개의 다이아몬드로 제작했으며 당시 이 식기 세트에 소요된 비용은 50,000탈러(taler, 독일의 3마르크까지 옛 은화)나 되는데, 이는 모리츠부르크 성 건축 비용보다 많은 금액이다. 당시 귀족계에서 매우 화제가 되었던 사치스러운 다기 세트의 절정이다.
눈에 띄는 위치에 물(넵튠), 흙(케레스), 공기(마르스), 불(미네르바)을 의인화한 파울 히만(Paul Heermann, 1673~1732)의 상아 조각이 있으며, 피라미드형 배열은 당시 새로이 등장한 양식이었다. 중국 인형이 있는 작은 그림은 1720년대 회롤트센(Höroldtschen) 도자기 그림인데, 마이센에서 유행하던 중국풍 영향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무굴제국 아우랑제브 생일의 델리의 궁정(Hofstaat zu Delhi am Geburtstag des Großmoguls Aurangzeb)>
강건왕 아우구스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아우랑제브가 당시 궁전을 건설해 연회를 묘사한 작품이다. 그런데 아우구스트나 그의 궁중 금세공인들은 모두 인도에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딩글링거와 조수 12명이 여행보고서를 참고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다이아몬드 5,223개, 에메랄드 175개, 루비 189개, 2개의 사파이어와 진주 16개, 카메오 2개 등을 사용해 사람 137명과 동물들, 32개의 생일선물을 조각한 이 작품을 완성했 (현재는 391개의 보석이 없어진 상태이다). 높이 58cm, 너비 142cm, 깊이 114cm이며 작품에 소요된 비용은 58,485 라이히스탈러(Reichstaler, 1566년에 발행된 독일의 옛 은화)로 이는 당시 공무원 1,000명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아우랑제브는 강건왕 아우구스트와 동시대를 산 군주인데, 1658년부터 1707년 사망할 때까지 인도 전체를 통치했다. 마우리아 왕조 이후의 인도에서 대륙의 대부분을 정복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는 절대군주제의 전형으로 여겨졌으며 헤아릴 수 없는 부를 가졌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아우랑제브는 캐노피 아래에 앉아 있고, 제국 왕자들은 생일선물을 바치고 있다. 딩글링거는 여행보고서뿐만 아니라 당시 구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동양 문학작품을 참고했다고 하는데, 예컨대 작품에 등장하는 32개의 선물에는 고대 이집트, 중국, 그리스 등의 자료에 착안해 고안한 것이다.
딩글링거가 1707년 10월 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강건왕 아우구스트는 일시적으로 폴란드의 왕좌를 포기해야 했다. 무한한 권력에 대한 꿈에서 잠시 멀어졌던 아우구스트는 이 작품을 받아들고 금과 은, 보석으로 반짝이는 환상만을 보았을 것이다.
<다이아나의 목욕(Bad der Diana)>
1705년경 제작된 것으로, 장식용 그릇에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를 묘사한 작품이다. 두 마리의 돌고래가 그릇에 물을 뿜고, 목욕 준비를 마친 다이아나의 맞은편에는 개 한 마리가 사냥 도구를 지키고 있다.
이 목가적인 장면은 로마 시인 오디비우스(Ovid, 43 B.C.-A.D. 17?)가 쓴 다이아나와 악테온(Actaeon) 이야기의 비극적 결말과 맥을 같이 한다. 사냥꾼 악테온이 목욕하던 여신을 본 죄로 저주를 받아 사슴으로 변해 자신이 키우던 개들에게 찢겨 나갔다는 이야기이다. 높이는 38cm이고 금, 진주, 다이아몬드, 에나멘, 은, 강철 등이 사용되었다.
<아피스 제단(Apis-Altar)>
딩글링거가 다른 여러 예술가들과 협업해 1729~1731년에 제작한 작품으로 높이가 204cm, 테이블 부분을 포함하면 286cm이다.
이 작품은 18세기 초 유럽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 이집트의 사상과 세계관, 특히 파라오 제국의 신들을 다룬다. 장엄하게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는 당시 미지의 세계나 다름 없었던 고대 이집트 탐험의 표현이다.
딩글링거는 1719~1724년 프랑스 고고학자 베르나르 드 몽포콩(Bernhard de Montfaucon)이 발행한 판화집 <그림으로 표현한 고대(L'antiquité expliquée et représenté en figure)>에서 영감과 이미지를 얻었다고 한다.
딩글링거가 이집트 예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재창조했는지는 오벨리스크의 좁은 면에 있는 라틴어 비문에서 엿볼 수 있는데, 오른쪽 면에는 고대 이집트의 자랑스러운 기념물 등에 경탄했다는 내용이, 왼쪽 면에는 아우구스트를 위해 1731년 딩글링거가 제작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백석 사냥컵(Weißenfelser Jagdpokal)>
에나멜 처리한 금으로 만든 이 정교한 컵은 1712~1720년 제작한 것으로, 사냥용 컵 중에서도 매우 인기 있는 작품이었다. 사냥개에게 잡힌 사슴이 계랸 모양의 컵 아래에서 받침 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반짝이는 황금빛 표면과 매력적인 대조를 이루는 섬세한 띠 장식 사이에서는 더 많은 사냥 모티브를 찾을 수 있다. 사냥의 여신인 다이아나 흉상이 세 개 장식돼 있고, 에나멜 처리한 사냥개와 멧돼지 머리 장식도 있다. 궁중 사냥 행사에서 손님 맞이용으로 쓰였는데, 당시 궁중 사냥을 축제와 같이 보았던 인식이 담겨 있다.
컵에 새겨진 작센 문장과 크베어푸르트(Querfurt)의 문장, 세 개의 얽혀 있는 이니셜 ‘CCC’는 본래 이 컵이 작센의 크리스티안 공작(Herzog Christian, 1682~1736) 소유였음을 알려 주는데, 여기서 이 컵을 강건왕 아우구스트가 공작에게 선물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8. 에나멜 캐비닛 Email-Kabinett
클레오파트라의 연회를 묘사한 대형 에나멜 그림 등 에나멜 작품들이 있다.
<비너스와 큐피트(Venus mit Amor)>
상아 조각가 멜키오르 바르텔(Melchior Barthel, 1625~1672)이 1659년 베네치아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비너스는 언제나 사랑과 아름다움의 전형이었다. 비너스는 열정과 사랑의 신인 마르스와의 사이에 큐피트, 즉 에로스를 낳았다. 에로스는 날개와 활과 화살로 무장하고 신과 사람의 마음에 사랑을 불태웠다.
1656년부터 작센의 수석 건축가였던 볼프 카스파스 폰 클렝엘(Wolf Caspar von Klengel, 1630~1691)은 이탈리아에서 비너스와 큐피트 그림을 가져와 요한 게오르크 2세에게 선물했는데, 이를 조각할 조각가로 바르텔을 추천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르텔은 베네치아에서 살다가 1670년 드레스덴으로 돌아와 궁정 조각가로 임명되었으나 2년 후 겨우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비니 여인의 약탈(Raub der Sabinerin)>
역시 바르텔의 작품으로, 높이가 약 42.7cm이고 무게는 2.75kg이다. 바르텔이 드레스덴에서 일하던 1670~1672년 제작된 것이다.
이 상아 작품은 1583년 피렌체의 로지아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에서 공개된 잠볼로냐의 기념비적인 대리석 작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은 로마인이 사비니 족의 아름다운 여성을 붙잡아 데려가는 로마 역사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아버지는 딸을 구하기 위해 애쓰지만 허사이다. 이 세 명의 인물상은 구성 면에서 잠볼로냐의 작품을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친퀘첸토(Cinquecento, 16세기의 이탈리아 문화예술을 통칭하는 말)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잠볼로냐의 대리석 작품과 달리, 바르텔의 상아 조각은 거칠고 폭력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팔에 보석 장식을 두르고 여인은 로마 남자의 팔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납치의 장면을 바로크 식으로 해석하고 연극적 요소를 함축해 새로운 연출을 보여 주는 것이다.
#9. 여행 보물의 방 Raum der reisenden Pretiosen
보석 예술품들을 운송하기 위한 용기, 잔 등이 전시되어 있다. 가죽으로 만든 이동용 보석케이스 400여 개, 18세기 초에 금과 상아로 만든 향수 보관함 등이 있다. 각 이동용 도구들은 운송품과 꼭 맞게 만들어져 있다.
유리 공예 작품들도 있는데, 드레스덴에는 1700년 유리 공장이 들어서고 1713년에 연금술사이자 도자기 발명가였던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Johann Friedrich Böttger, 1682~1719)가 유리와 보석을 자르고 연마하는 공장을 설립한 바 있다.
#10. 노이버의 방 Neuber-Raum
요한 크리스티안 노이버(Johann Christian Neuber, 1735~1808)의 걸작들을 볼 수 있다.
<벽난로 세트(Prunkkamin mit zugehörigem Kaminbesteck)>
도금, 청동, 목재 등 다양한 재료가 쓰였으며 높이는 238cm이다.
당시 마이센(Meissen) 도자기 공방의 책임자였던 카밀로 마르콜리니(Camillo Marcolini) 백작이 1780년 주문한 것인데, 당대 가치가 20,000 라이히스탈러(Reichstalers)로 추산된다. 도자기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요한 엘레아사르 차이시히(Johann Eleazar Zeissig, 1734~1806)의 그림을 기반으로 만들었고 부분적으로만 유약을 바르는 방식을 채택했다.
노이버는 얇게 자른 작센 원석을 가공해 마이센 도자기의 흰색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넣는 작업을 담당했다. 마이센 도자기와 작센 원석의 조합은 당대 국가의 부를 상징하는 데 적합했다. 받침대가 달린 다섯 개의 도자기 화병, 월계관에 앉아 있는 독수리 조각, 벽난로에 불을 때고 끌 때 쓰는 도구 등을 포함한 세트이다. 상감 장식은 1945년 소실되었다가 2004년에 원래 크기로 복원한 것이다.
<사랑의 제단에 있는 비너스와 큐피트 - 우정의 희생자들(Venus und Amor am Altar der Liebe - Opfer der Freundschaft)>
노이버와 크리스티안 고트프리트 위처(Christian Gottfried Jüchzer, 1752~1812)의 1784년 작품이다. 높이는 32.6cm이다.
샌들을 신은 비너스가 그릇에 담긴 그릇을 제단의 불에 붓는데, 오른쪽 다리를 제단 아래 계단에 올려놓아 보는 사람과 대각선으로 서 있는 모습이다. 엉덩이를 비틀어 상체가 제단을 향하게 함으로써 상체를 이 대각선에서 분리했다. 가슴을 가로지르도록 왼팔을 배치하고, 고대 스타일로 빗질한 머리카락은 화염을 향하고 있다. 풍부한 옷감과 특유의 주름이 비너스를 생동감 있게 감싸며 이 왼쪽 어깨에서 등쪽을 거쳐 바닥까지 내려와 있다.
제단 반대편에는 불을 지켜보고 있는 날개 달린 큐피드가 있는데, 옷이 바람에 날리면서 비너스의 안정감 있는 형태로부터 오는 통일성을 깨뜨린다. 두 사람은 장미 화환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제단 앞에는 사랑의 상징인 리본 달린 화환 두 개가 놓여 있다. 이러한 알레고리는 사랑으로 불을 지펴 마음을 덥히는, 세브르(Sèvres) 공방 작품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 준다.
<목록을 넣은 둥근 원석 장식함(Runde Dose als "Steinkabinett" mit Verzeichnis)>
거의 20년 동안 그뤼네 게뵐베의 궁정 보석상으로 활동한 노이버는 보석 상감 세공으로 유명한 작은 상자들을 제작했는데, 고전적이면서도 장식용 석판을 활용한 호화로움으로 당대 요구에 부합했다. 노이버는 작센 지역 원석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색상과 무늬들은 조형미 있게 구상해서 깎아내어 작품에 배치하는 작업으로 유명했다.
지름 7.5cm의 이 원석 장식함에는 안에 프랑스어로 쓴 목록이 들어 있다. 정교하게 가공한 원석 판에 작센 영지의 이름들을 번호별로 정렬해 놓은 것이다. 어떤 목록이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금색 띠에도 새겨 두었다. 각 상자들은 1911~1933년에 그뤼네 게뵐베에 인수되었다.
<타조알 컵(Straußeneipokal)>
벤자민 허퍼스(Benjamin Herfurth, 1684~1759)와 요한 요아킴 켄들러(Johann Joachim Kändler, 1706~1775)의 작품으로 높이는 42.6cm, 무게는 약 1.7kg이다. 모리츠부르크 성에서 연회 시 쓰이다가 1740년 그뤼네 게뵐베로 오게 되었다.
드레스덴의 타조알 수집은 16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87년과 1595년 사이에 이 작품 등 총 14개 작품이 드레스덴으로 왔는데, 그 중 절반은 이른바 ‘꽃다발 같은 포즈(Poßirt wie ein Strauß)’ 형태이다.
1734년경 등장한 타조알 컵 작품은 이러한 르네상스 양식 형태와 당대의 마이센 도자기를 결합해 신구의 결합을 시도했다. 금박을 입힌 은과 에나멜로 된 가슴 부분에는 아우구스트 3세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고, 두 보석 위에는 작센-폴란드 문장이 있는데, 이는 1734년 1월 17일에 폴란드에서 아우구스트 2세로 즉위한 아우구스트 3세를 기리기 위함이다. 뒷면에 이러한 내용이 적혀 있으며, 일부가 지워지긴 했지만 초안에서 그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Reiterstatuette des Kaisers Marc Aurel)>
지아코모 조폴리(Giacomo Zoffoli, 1731~1785)가 1758~1763년에 제작한 청동상이다. 높이는 약 45cm이고 받침대 부분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로마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을 축소 복제한 것으로 조폴리의 서명이 들어 있다. 당시 조폴리는 로마에 있는 자신의 공방에서 유명한 대형 고대 조각품들의 복제품을 전문으로 제작했다. 이 작품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다가 1764년 7월에 드레스덴에 오게 되었다.
<십자가 상(Kruzifix (Christo morto))>
상아 조각가 요한 크리스토프 루트비히 뤼케(Johann Christoph Ludwig Lücke, 1703/05~1780)와 화가인 크리스티안 라이노우(Christian Reinnow, 1685~1749)가 상아로 제작한 작품이다. 십자가와 받침대에는 목재와 금 도금, 철 등이 쓰였다. 높이가 225cm에 이른다.
1737년 11월에 아우구스트 3세가 손에 넣은 것으로, 뤼케가 십자가의 들보 뒷면에 자신의 서명과 날짜를 기입해 놓았다.
#11. 스폰젤의 방 Sponsel-Raum
특별 전시실로 쓰는 방이다. 방 이름은 딴 스폰젤(Jean Louis Sponsel, 1858~1930)은 드레스덴에서 박물관장을 지냈던 미술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이다.
#12. 바츠도르프 캐비닛 Watzdorf-Kabinett
도난당하기 전까지 <드레스덴 그린 다이아몬드(Dresdner Grünen Diamanten)>로 장식한 모자 걸쇠가 있던 방이다. 방 이름은 전 큐레이터인 에르나 폰 바츠도르프(Erna von Watzdorf, 1857~1931)의 이름을 땄다. 바츠도르프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그뤼네 게뵐베의 큐레이터로 활동한 인물이다. 당대 최고의 강건왕 아우구스트 시대 작품 감정전문가였다.
<드레스덴 그린 다이아몬드(Dresdner Grünen Diamanten)>
인도에서 발견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일한 천연 녹색 다이아몬드인데, 녹색 빛을 띠는 것은 자연 방사능 때문이다. 아우구스트 3세가 1742년 라이프치히 부활절 박람회에서 400,000 탈러에 구입했다고 전해진다. 인도에서 어떻게 유럽까지 왔는지는 불분명하며 1722년 런던에서 언급된 기록이 있다. 1768년부터 귀중한 모자 장식의 일부가 되었는데, 모자 장식에는 그린 다이아몬드 외에 6.3캐럿 및 19.3캐럿의 다이아몬드와 중소형 다이아몬드 411개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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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관광지 한국어 설명은 아래에 올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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