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Dresden)
재통일 이후 현재 작센 주의 주도이다. 엘베 강 연안의 해발 고도 106m에 위치하고 있다.
드레스덴은 슬라브 어로 ‘숲 속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 기원은 슬라브 인의 취락 지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게르만의 식민에 의해 1200년에 성이 구축되었고, 1270년 마이센 변경백(邊境伯) 하인리히가 이 곳에 거성을 세워 번영하게 됐다.
1485년 분할로 알베르트 계인 베티나 가문에 속하게 되었고 16세기 후반에는 작센 선거후의 수도로 번성했다. 7년 전쟁, 나폴레옹 전쟁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그 때마다 부흥해 19세기에는 교통·공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항공기 제조·정밀 광학 기기·화학·식품(맥주 양조) 등의 공업이 발달했다.
엘베 강에 의해 좌안의 구시가와 우안의 신시가로 나뉘며, 7개의 다리로 연결된다.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이름난 예술품 유적이 많은 도시로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성모>가 소장되어 있는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 궁전 등이 있다.
변경백(邊境伯, Markgraf)
변경백이란 중세 세습 귀족 중 타국과 영토가 맞닿은 일부 봉토의 영주를 일컫는 말이다. 보통의 봉건 귀족들은 자신들의 봉토에 대해 권리를 갖지만, 변경백은 국경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군사권과 자치권을 폭넓게 인정받았다. 넓은 영토와 강력한 권리 때문에, 변경백이라고 번역되지만 실제 위계는 후작 또는 그 이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국가간의 국경이 정립된 중세 말기에는 일반적인 봉건 영주와의 차이가 모호해졌다.
크로이츠 교회(Kreuzkirche Dresden)
면적이 4800㎡에 달하는 드레스덴 대성당(Katholische Hofkirche)이 작센 주 최대의 ‘가톨릭’ 교회라면, 크로이츠 교회는 작센 주 최대의 개신교 교회다. 3000석 규모라고 하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외벽이 검게 그을려 여전히 전쟁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내부는 화려하지 않지만 전면의 큰 성화와 제단을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교회에 소속된 소년 합창단이 유명하며 내부 음향이 상당히 훌륭해 지역 주민들의 공연장으로도 사용된다. 교회 로비의 한 켠은 작은 갤러리로 꾸며져 있어 눈길을 끈다.
드레스덴 레지덴츠(Residenzschloss)
16세기부터 약 400여년간 작센 공국(Sachsen)의 영주와 왕이 거주했던 곳이다. 계속 증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궁전이 매우 복잡하게 확장되었다. 엘베 강의 강변에 드레스덴 구 시가지를 방어하는 요새가 있었고, 레지덴츠 궁전은 그 요새의 중심에 해당되는 궁전이었다.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을 확장한 것은 작센 왕국의 ‘강건왕’ 아우구스트(August der Starke) 때이다. 그는 1701년 대화재로 성이 소실되자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다시 지었다.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크게 파손된 후 다시 복구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06년부터 어느정도 구색을 갖추어 복구가 완료되었고 여전히 복구가 계속되고 있어 2013년 중 완료됐다. 그래서 건물 군데군데 마치 새 것처럼 언발란스한 모습도 보이지만, 주변 구 시가지의 다른 관광지와 어우러져 매우 우아한 자태를 연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내부는 이른바 녹색 돔(Historisches Grünes Gewölbe, 그뤼네 게뵐베)으로 불리는 화려한 방들과 터키 및 오스만 제국의 보물을 수집해둔 터키의 방(Türckische Cammer), 동전 박물관(Münzkabinett) 등 다채로운 코스로 공개되어 있다. 또한 4~10월 중에는 탑에 올라가 엘베 강 방면의 그림 같은 풍경을 조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뤼네 게뵐베(Green Vault, Historisches und Neues Grünes Gewölbe)
드레스덴 왕실 보물을 전시하고 있는 보물관으로 아우구스트 대왕이 수집한 바로크 시대의 예술작품들과 보물들을 볼 수 있다.구 보물관(Historisches Grünes Gewölbe)과 신보물관(Neues Grünes Gewölbe)으로 나뉘는데 구 보물관이 단연 인기이다. 구 보물관인 역사관은 30분 단위로 입장객 숫자를 제한하기 때문에 티켓을 구입한 후 바로 입장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덕분에 입장 후에는 북적거리지 않게 관람할 수 있다. 중요한 보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만큼 사진촬영은 금지되며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제공한다. 방 사이에는 특수한 문을 설시해 내부 전시품 손상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츠빙거 궁전(Zwinger)
독일 바로크 건축의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츠빙거 궁전은 강건왕 아우구스트(Augustus der Starke)가 그의 궁정 건축가 푀펠만(Matthäus Daniel Pöppelmann)에게 의뢰해 1722년 만들었다. 독일어로 츠빙거(Zwinger)는 궁전의 성벽 밖의 공지(空地)를 말한다. 레지덴츠 궁전(Residenzschloss)의 바로 밖에 축제의 장소로 지은 건물이라 츠빙거 궁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넓은 면적의 땅의 사면에 궁전 건물을 세우고, 그 안뜰의 넓은 공간 중앙에 거대한 분수를 설치하고, 나머지 공간은 정원으로 꾸며두었다. 그리고 궁전 건물은 단지 건물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옥상에 수많은 바로크 양식의 조각과 연못을 만들어 문자 그대로 옥상 정원까지 만들었으며, 건물은 사방이 서로 대칭되는 모양으로 화려한 조각으로 꾸며진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것이 대칭을 이루는 모습도 아름답다.
유려하고 웅장하게 우뚝 선 건물의 정중앙에 있는 크로넨문(왕관의 문)으로 들어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은 웅장하지만 궁전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디테일은 섬세하고 우아해 그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십자형의 넓은 뜰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요정의 샘’이라는 연못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조각된 여인상이 있는 연못 앞에 서면 마치 목욕을 하고 있는 요정이 소원을 들어 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동전을 던지게 된다.
안뜰과 옥상 정원은 무료 개방하고 있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도 츠빙어 궁전의 매력은 충분히 넘치고도 남도록 만날 수 있다. 궁전 내부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루벤스, 렘브란트, 뒤러 등의 회화 작품을 모아 둔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Gemäldegalerie Alte Meister)과 중국과 동양 등에서까지 알차게 모아둔 궁중의 도자기 박물관(Porzellansammlung)이 특히 유명하며, 무기 박물관(Rüstkammer)도 있다.
알테마이스터 회화관(Gemäldegalerie Alte Meister)
츠빙거 궁전에서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는 북쪽 회랑 미술관인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이다.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던 아우구스트 2세가 마구간을 개조해 전시한 데서 시작된 미술관으로, 루벤스·반다이크·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회화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각국에서 큰 미술관은 흔히 수도로 몰리지만 독일은 예외다. 드레스덴에 독일 최고의 미술관, 알테 마이스터가 있기 때문이다.
15~18세기의 작품을 모아 놓은 이곳은 아우구스트 2세 황제가 모은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패해 정치력을 상실했던 그는 음악과 미술을 탐미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부 미술품들이 소실됐지만 여전히 규모가 대단하다. 알프스 산맥 이북의 미술관 중 이탈리아 회화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며, 대표작도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모>이다. 이밖에 루벤스, 렘브란트, 반다이크 등 친숙한 화가의 회화와 벨로토가 18세기 중반 드레스덴 시가지를 묘사한 풍경화도 유명하다.
회화관 주요 작품
잼버오퍼 오페라하우스(Semperoper Dresden)
1841년 처음으로 세워진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두 차례에 걸쳐 건물의 설계를 맡았던 독일 절충주의 건축의 거장인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의 이름을 따서 이름 지어졌다. 카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가 이곳에서 지휘를 했으며, <방황하는 화란인(Der Fliegende Holländer)>과 <탄호이저>를 비롯한 유명한 오페라들이 초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드레스덴 폭격으로 무너져 손도 못쓰고 있다가 197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운좋게 옛 설계도를 찾아내 1985년이 되어서야 겨우 복원이 끝난 비운의 역사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 내부는 굳이 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가이드 투어로 둘러볼 수 있다. 다만 8월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공연이 있어서 가이드 투어 시간도 오전으로 제한된다.
주변에 있는 츠빙거 궁전의 무기 박물관이 있는 쪽 문을 통해 극장 광장에 있는 기마상이 보이는데 이 동상의 주인공은 작센 왕 요한이다. 지금도 오페라, 발레 등의 공연이 열린다.
드레스덴 대성당(Kathedral St.Triniraris, Katholische Hofkirche)
성 삼위일체 성당, 궁정교회라고도 하는 드레스덴 대성당은 드레스덴의 중요한 명소 중 하나로 아우구스트 때인 1738~1751년 최초로 설계됐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당시 개신교 지역인 드레스덴을 다시 카톨릭화하기 위해 이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작센 지역에 있는 카톨릭 교회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그래서 대성당이라고도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드레스덴 폭격으로 1945년 심하게 손상됐다가 동독 정부가 1980년대 중반에 복원했다. 21세기 들어 성을 잇는 다리를 재건할 때 한 차례 더 복원 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로코코 양식의 설교단과 오르간이 특히 유명하다.
교회 지하에는 작센 왕가의 납골당이 있다. 내부는 바로크와 로코코의 조화가 매우 아름답고 화사하다. 기둥마다 장식된 조각이나 성화는 매우 수준이 높고, 곳곳이 금빛으로 치장되어 백색의 내부 기둥 위에서 또렷이 빛난다. 오르간 건축의 대가 고트프리트 질버만(Gottfried Silbermann)이 만든 오르간 역시 눈에 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11시 반부터 12시까지 오르간 연주회가 있다.
아우구스투스 다리(Augustusbrücke)
아우구스트 황금상 뒤편으로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를 연결하는 큰 다리가 있다. 이 다리의 이름도 강건왕 아우구스트의 이름을 따서 아우구스트 다리라고 부른다.
아우구스트 다리는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를 연결하는 몇 개의 다리 중 가장 유명한 곳. 그리고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다리 위에서 브륄의 테라스 방면을 바라보는 전망이 매우 아름답다. 낮뿐 아니라 밤에도 야경이 밝혀진 구 시가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다리 위에서 엘베 강을 바라보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될 풍광이다. 한 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던 곳답게 깨끗한 강물이 푸른 자연 속으로 흘러가는 모습과 그 주변에 자리잡은 궁전 같은 건물들이 이루는 조화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장관이다. 날씨가 좋으면 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우구스트 대왕 황금상(Goldener Reiter)
드레스덴의 최고 황금기를 이루었던 작센(Sachsen)의 강건왕 아우구스 황제의 동상으로 정식 이름은 황금 기사(Goldener Reiter)이다.
구리로 만들어 동상 전체에 황금으로 도금을 했다. 전쟁 중 파괴된 것을 드레스덴 750주년을 맞아 1956년에 다시 복구하여 현재 위치에 두었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큰 길가에 위치해서 그런지 평소 훼손이 심한 편이라 이후에도 수차례 보수를 반복했다고 한다.
군주의 행렬 벽화(Fürstenzug)
레지덴츠 궁전(Residenzschloss)에서 궁전에 딸린 왕실 마구간으로 지은 건물이 슈탈호프(Stallhof)인데,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레지덴츠 궁전이 크게 파괴되는 와중에도 슈탈호프는 큰 화를 면했다. 그 덕분에 슈탈호프 외벽에 그려진 벽화가 오늘날까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 벽화의 이름은 '군주의 행렬'로, 작센 공국(Sachsen)을 다스린 영주의 집안인 베틴(Wettin) 가문의 역대 군주들을 마치 연대기 식으로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1876년 베틴 가문의 8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것으로, 원래는 그림으로 그렸으나 손상이 심해지자 1907년, 세계 3대 도자기 브랜드로 꼽히는 마이센(Meißen) 자기로 타일을 만들어 그림을 박아두었다. 드레스덴 아우구스트 거리의 슈탈호프 벽에 그려진 군주의 행렬 벽화는 높이 8m, 길이 약 100m로 웅장하면서 장관을 이룬다. 그라피토(Sgraffito) 기법으로 그려 넣은 벽화로 드레스덴에서만 볼 수 있는 자기 벽화이다.
그라피토 기법
이탈리아에서 발전한 서양 건축의 공예기법 중 하나로, 유럽 건축에서 활용되던 장식 기술로 외벽을 칠한 후 표면이 굳기 전에 긁어서 바탕색이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다. 멀리서 보면 조각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으나 가까이에서 보면 벽에 판화를 해놓은 것처럼 얇게 벗겨내고 색을 칠한 것처럼도 보인다. 부조나 속임수 그림인 눈속임 기법인 트롱프뢰유(trompe l'oeil)에서 유래했다.
벽화의 길이는 101m, 사용된 타일의 숫자가 24,000개가 넘는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역대 군주 35명 외에도 59명의 과학자와 예술가, 농부 등이 함께 그려져 있다. 행렬 가장 끝부분에는 이 벽화를 그린 화가 빌헬름 발터(Wilhelm Walther)도 들어가 있다.
드레스덴 성모교회(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 Dresden)
드레스덴의 루터 교를 상징하는 교회로, 작센 선제후령이 독일 내에서 최초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미가 있는 교회이다(단,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에는 비텐베르크가 작센 선제후령의 수도였고, 드레스덴이 작센 선제후령의 수도가 된 것은 1547년 비텐베르크 항복으로 베틴 가문의 장자계열인 에른스트계와 차자계열인 알브레히트계가 뒤바뀐 후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있었으나 기존의 낡은 교회를 대체하고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1726년 당대 독일 바로크 건축의 대가 게오르크 베어(George Bähr, 1666~1738)가 설계해 1743년 완공되었다. 정작 설계자는 완성을 못보고 죽은 셈. 이 건물이 지어지는데는 당시 작센 선제후이자 폴란드 왕을 겸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Friedrich August I/August II Mocny, 1670~1733)도 한몫 했는데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레스덴에 인상적인 건축물을 많이 남기기를 원했던 그의 바람도 들어가 있었다.
드레스덴 성모교회 ‘바로크의 보석’이라 불렸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 중 한사람이 설계한 만큼 7년 전쟁때 프로이센군의 포격에도 무너너지 않고 버텨냈으나 제2차 세계 대전때 영국군의 비행기 폭격은 견디지 못해 그대로 녹아내렸다. 전후 드레스덴을 지배한 동독 정부에 의해 잔해는 전쟁기념관으로 보내져 한동안 방치되었다.
하지만 드레스덴 시민들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재건의 꿈을 잃지 않고 무너진 교회의 잔해을 모아 번호를 매겨가며 보관해두었고, 통일 이후 드레스덴 시민들은 촛불을 밝히며 교회의 복원을 염원하는 평화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독일 뿐만 아니라 유럽, 전 세계에서도 호응을 얻어 교회 복원을 위한 세계 각국의 지원이 뒤따랐고 1999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독일계 미국인 귄터 블로벨(Günter Blobel)은 상금 전액을 교회 재건 사업에 기부했으며 드레스덴 폭격에 참여했던 영국군 조종사의 아들 앨런 스미스(Alan Smith)는 교회 복원운동 소식을 듣고 금장 십자가를 만들어 기부해 감동을 주기도 했다.
전 세계의 염원에 호응이라도 하듯 2004년에는 교회 외벽이, 2005년에는 교회 내부까지 복원이 마무리되어 오늘날에는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드레스덴 성모 교회는 문화유산과 신앙을 향한 드레스덴 시민들의 열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상징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회 외벽에 군데군데 검은 벽돌이 박혀있는게 보이는데, 이게 바로 당시 드레스덴 시민들이 보관했던 파편들이다. 공산주의 동독정부라는 개쓰레기 집단의 지배라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은 드레스덴 시민들의 희망과 옛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존하려는 노력,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말자는 모든 것이 담겨있는 셈이다.
뮌츠 골목(Münzgasse)
브륄의 테라스 아래 성벽의 문에서 시가지 안쪽으로 통하는 길이다. 100m 남짓의 짧은 골목이지만, 이 짧은 골목 양편에 레스토랑이 줄지어 밤늦도록 영업한다.
레스토랑은 독일 향토요리뿐 아니라 세계 요리를 골고루 취급하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골라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다만 관광지의 중심인만큼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다. 꼭 레스토랑을 들르지 않더라도 밤새 맥주를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의 열기를 느껴보기 위해 골목을 한 번 가로질러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것이다.
브륄의 테라스(Brühlsche Terrasse)
하인리히 폰 브륄 백작이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지었던 요새의 일부가 자연히 테라스가 된 곳이다. 시인 괴테가 이곳에 과서 유럽의 발코니라며 극찬했다고 한다. 1841년 개방됐으며 르네상스 구조로 만들어진 전망 포인트이다. 엘메 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모리츠부르크 성(Schloss Moritzburg)
드레스덴과 마이센(Meißen)의 중간 정도 되는 곳에 있는 큰 호수 중간에 땅을 메워 궁전을 지은 것으로, 문자 그대로 ‘물 위에 떠 있는 성’이다.
1546년 완공된 모리츠부르크 궁전은 당시 대공인 모리츠(Moritz)가 사냥터 별궁으로 지었다. 이후 1733년 아우구스트 1세(Friedrich Augustus I)를 위해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 궁전에 살던 왕족들은 시민들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게 되었는데, 당시 왕족들이 가지고 있던 보물을 궁전 마당에 묻고 도망쳤다 한다. 이것을 소련군이 발견하여 일부 가지고 갔다고 한다.
현재 궁전의 내부는 옛날의 모습을 복구하여 일반에 개방되어 있다. 특히 사냥터 별궁답게 사냥의 흔적들도 전시품의 일부. 무게가 19.6kg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슴뿔도 전시되어 있다.
드레스덴 근교 - 쾨니히슈타인 요새(Festung Königstein)
독일 작센 스위스에 있는 1241년부터 건축을 시작한 요새이다. 유럽의 요새 중 가장 규모가 크며, 240m 높이의 암벽 위에 지어진 성이다. 말 그대로 절벽 위에 있는 요새이기 때문에 정문 말고는 침공당할 수 없었다.
쾨니히슈타인이란 '왕의 돌'이라는 뜻인데, 과거 작센의 군주들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에 있는 예술품이나 국가 보물을 보관하는 피난처로 이용되기도 했고 16세기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교도소로 쓰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앙리 지로(Henri Giraud) 장군이 이곳에 감금되어 있다가 1942년 탈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깊이 150m의 우물과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무기 등이 전시된 박물관, 대포와 병사들의 막사, 사격소와 탄약 보관소, 귀족들의 연회장, 보물 보관소, 병원과 정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상시 가이드 투어와 역사 재연 행사 등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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