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황동규(黃東奎, 1938~)는 평남 영유에서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로 태어난다. 재경국민학교에 입학하던 1945년(8세) 해방을 맞는데, 이듬해 가족들이 달구지를 타고 삼팔선을 넘어 서울에 정착한 후 덕수국민학교에 재입학하였다. 황순원이 서울고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교내 사택에서 살았는데, 전쟁 후 1951년(14세) 1 · 4 후퇴 때는 대구로 이주하여 곤궁한 살림을 꾸렸다. 이 시기 황동규는 너무 가난해서 껌팔이 소년으로 나서기도 한다.
1952년(15세) 부산으로 이주한 후에는 서울중학교에 입학하는데, 이 시기 윤동주와 김소월의 시를 접하고 습작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53년(16세)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학생 잡지에 시를 투고하기 시작하였다. 1954년(17세)에는 고전 음악에 심취하여 화성학과 대위법 책을 보며 음악 공부에 매달리는데, 이 무렵 그가 좋아했던 음악가는 스트리아빈과 바그너였다고 한다.
문단 데뷔와 초기 활동
서울고등학교 3학년이던 1956년(19세)에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와중에도 김소월의 시와 두보 시에 흠뻑 빠지고, 훗날 등단작이 되는 <즐거운 편지>를 쓴다. 이듬해 서울대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며, 1958년(21세)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 문학>에 시 <시월>, <즐거운 편지>, <동백나무> 등을 발표하고 <겨울 노래>를 내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의 표제에서 알 수 있듯, 초기 황동규는 시에서 추운 겨울의 이미지들을 많이 썼다. 이런 초기 시의 비극적 정서는 곧 <비가> 연작을 낳는다.
대학 3학년이던 1960년(23세) 4 · 19를 경험한 황동규는 이듬해 첫 시집 <어떤 개인 날>을 펴내고 입대하여 번역 사병으로 복무한다. 1964년(27세) 제대하자마자 대학원에 복학하여 김현과 교분을 쌓고, 이듬해 두 번째 시집 <비가>를 냈다. 여기에는 군 생활과 관련된 고통스러운 체험이 배어 있다.
사회적 관심의 표현
1966년(29세) 대학원을 마친 황동규는 금란여고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김현, 정현동 등과 동인 ‘사계’를 꾸려나간다. 그러나 곧 영국 에딘버러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는데, 이 유학 체험은 황동규로 하여금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조국의 왜소함과 정치적 후진성에 눈뜨게 한다. 이 무렵 황동규는 <전봉준>, <삼남에 내리는 눈>, <허균 1>, <허균 2>와 같이 강렬한 사회의식을 담은 시들을 썼다.
1968년(31세) 에딘버러 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고 돌아온 후에는 마종기, 김영태와 함께 3인 시집 <평균율 1>을 펴내고, 같은 해에 현대 문학상을 받았다. 1972년(35세)에 박정희가 장기 집권을 위해 ‘10월 유신’을 강행하자 황동규는 심한 충격을 받고, 그 암흑기에 대한 두려움을 <계엄령 속의 눈>에 담았다.
황동규는 1975년(38세) 서울대학교 조교수로 임명 되고 시선집 <삼남에 내리는 눈>을 펴냈다. 이때부터 그는 김현, 김병익, 김주연 등과 어울려 자주 여행을 다니는데, 이 여행 경험에서 적지 않은 시편을 길어 올렸다.
초기의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어조로 개인의 내면을 조명하던 시에서 차츰 구체적인 삶의 현실로 방향을 바꾸어 온 황동규는 1978년(41세)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펴낸다. 이 시집에서는 꽉 막힌 정치 체제로 인한 피동적 자학이 아닌, 구체적인 삶의 숨결을 싱싱하고 일상적인 이미지로 표출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1980년(43세) 광주 사태 이후에도 황동규는 여행을 계속한다. 1982년(45세)에는 <풍장> 연작시를 쓰고, 시위대와 진압대 사이의 싸움이 그치지 않는 혼란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갱신의 길을 걸은 결과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 <몰운대행>(1991) 같은 빼어난 시집을 꾸준히 냈다.
1987년(50세)에는 뉴욕 대학교 교환 교수로 가서 1년여 간 미국에서 머무는데, 이 시기에는 스스로 ‘극서정시’라고 명명한 <브롱스 가는 길>, <견딜 수없이 가벼운 존재들> 등을 썼다. 1990년대에 들어서도 <미시령 큰바람>(1993), <풍장>(1995), <외계인>(1996) 등을 펴내 대가의 면모를 드러낸다.
황동규는 40년이 훨씬 넘는 시작 활동 기간 동안 한국 문학상(1980), 연암 문학상(1988), 김종삼 문학상(1991), 이산 문학상(1991) 등을 수상했으며, 지금까지도 문단의 원로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황동규의 시
초기 시
황동규의 초기 시편들은 대개 추운 겨울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비극적인 자기 각성을 보여 주는데, 일반적으로 1965년(28세) 낸 시집 <비가>까지를 초기 시 세계로 분류한다.
<즐거운 편지>
1958년(21세) <현대 문학>에 발표한 작품으로, 서정주에 의해 추천된 등단작이다. ‘그대’에 대한 화자의 절절한 사랑을 표현한 작품으로, 영화 <편지>에 등장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서정적 자아가 자신의 사랑을 사소하다고, 그 사랑이 언젠가는 그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반어적인 표현이다. 자신의 사랑이 짝사랑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와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유한성(有限性)을 알기에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서정성을 끌어들이되 그것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태도는, 슬픈 정황 속에서도 냉철한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함으로써 형성된다. 바로 이 거리 때문에 <즐거운 편지>에서 노래되는 이별의 미학은 소원이나 만해의 전통 서정시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즐거운 편지>
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는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Ⅱ/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비가>
1965년(28세) 시집 <비가>에 실린 12편의 연작시로, 비감을 중심으로 하는 황동규 초기 시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황동규의 초기 시의 이미지들은 ‘상승’보다는 ‘하강’을, ‘개방’보다는 ‘폐쇄’를, ‘생성’보다는 ‘소멸’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젊은 날 그가 세계를 비극의 거울에 비춰본 결과라 할 수 있다.
‘비가(悲歌)’는 말 그대로 ‘슬픈 노래’로,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절망을 삶의 구체성과 성실성으로 극복한다. 이러한 화자의 태도는 죽음과의 정면 대결이 아닌 삶 쪽으로의 관심 이동, 즉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밝은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비가> 中 제11가
내 노래한다 겨울 항구를/ 한겨울의 우울을/ 어두운 선창에는/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눈/ 배 떨어진 항구의/ 밀집한 밤을,/ 말없이 섬들을 잠시 꾸미는/ 잔 별들을,/ 사리 달이 질 때, 네 떠날 때/ 내 들었노라/ 달을 받는 큰 물의 背音/ 들었노라/ 저 습기 찬 커다란 원의 흔들림을,//
가만히 생각해 보라/ 네 마음속에는/ 다빈치가 잡은 聖 안느의/ 조용한 어린 계집앳적 얼굴을 가진/ 가난한 소년이 살고/ 낡은 초가집을 심은 마을/ 몇 그루의 어린 나무가/ 그의 뒤에 서서/ 거부하는 거부하는 몸짓으로/ 그를 언제나 항구로 내몬 것을./ 항구에는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눈/ 가만히 생각해 보라 항구의 하루를./ 찢겨진 그물/ 索具, 해초, 몇 마리 생선의 안착/ 뒤집어논 목선 몇 척/ 생선뼈 박힌 주막/ 가만히 생각해 보라/ 며칠 밤/ 가설 철도와 같은 잠을,/ 마지막 배가 뜨고 불이 꺼진 후/ 머리보다는 배로 온 잠을.//
나는 안다/ 우리는 비유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님을./ 이름 모를 들꽃을 뽑을 때/ 안쓰러이 따라오는 뿌리와 같이/ 좀더 간단하고 그리운 어떤 것임을./ 나는 안다/ 모든 출발에 따라가는/ 뽑혀진 뿌리의 길이를/ 地圖 지닌 자들의 잠을/ 그들의 얼굴을 지키는 어두운 등불을./ 한없이 봄날에/ 등을 잡고 아깝게/ 서 있고 서 있을 뿐.
<기항지 1>
1967년(30세) <현대 문학>에 발표한 작품으로,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차가운 겨울날 항구의 모습과 눈송이를 통해 차분하게 묘사해 낸 작품이다. 화자의 감정이나 사상이 철저하게 배제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로만 일관하고 있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며, 정박해 있는 배의 앙상함이 주는 쓸쓸함과 겨울밤 흩날리는 눈송이가 주는 황량함이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화자가 ‘걸어서’ 도착한 ‘항구’는 화자가 머문 곳이자 배가 정박한 곳이다. 항구는 떠나는 배와 도착하는 배가 머무르는 곳으로, 여행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항구’는 화자의 방랑과 안주가 접합된 장소로서의 이중적 역할을 한다.
화자는 그 곳에서 정박 중인 배들이 모두 항구 쪽으로 뱃머리를 향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것이 멀리 바다를 항해하던 배들이 지친 항해를 끝내고 항구로 돌아와서 편안히 안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오랜 방랑을 끝내고 정박 중인 배처럼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때,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 개의 눈송이’가 ‘하늘의 새들’과 함께 날아오른다. ‘눈송이’는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부유(浮遊)하는 속성을 가진 것으로 화자의 방황하는 젊음을 표상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구절은 바람에 흩날리며 내리는 눈발을 현란한 이미지로 그려냄으로써 화자의 암울한 의식을 자극하는 동시에, ‘하강’의 이미지를 ‘상승’의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이룬다.
막연함, 차가움, 덧없음 등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소재들과 화자의 우울한 심리가 얽혀 있던 전반부의 황량한 이미지가 후반부에 이르러 정박해 있는 ‘배’로 집중됨으로써 앞의 서성거림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로 극적 전환을 이룬다. 즉, 거대한 용골의 모습으로 정박해서 ‘항구의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배의 이미지는 어둡고 암울한 현실을 버텨 이겨내는 견고함의 의미를 화자에게 떠올려 준 것이다. 그로부터 비로소 화자의 암울했던 의식은 하늘을 나는 새를 통해 정화되고 오랜 방황을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항지 1>
걸어서 항구(港口)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한지(寒地)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 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碇泊) 중의 어두운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 개(數三個)의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중 · 후기 시
시작 초기에 내면적인 비극적 정서를 주로 노래하던 황동규는 영국 에딘버러에 유학하고 돌아온 1960년대 말경부터 사회의식을 담은 시편들을 쓴다. 이런 경향은 1972년(35세) 10월 유신 때 다시금 확장되며, 1978년(41세) 펴낸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에 이르러 구체적인 표현을 획득하며 더욱 확고해진다.
<삼남에 내리는 눈>
1968년(31세) <현대 문학>에 발표한 작품이다. ‘삼남’은 한반도의 남쪽에 있는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를 의미한다. 이 시에서 지금 ‘삼남에 내리는 눈’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전봉준이 흘리던 그 눈물의 ‘눈’이다. 창작 시기인 1960년대 말과 동학 농민 운동을 결부시키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 이는 1960년대 우리 현실이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던 그 당시와 다르지 않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왕 뒤에 큰 왕’이 있었던 그 때처럼, ‘지금’ 또한 군부 독재 세력 뒤에는 군사 대국인 미국이 버티고 있고, ‘마패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청나라와 일본 군대처럼 지금도 남의 나라 군대가 이 땅을 활보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남에 내리는 눈>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계엄령 속의 눈>
1972년(35세)의 작품으로,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으로 인해 정치 암흑기를 맞은 두려움과 충격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눈’은 희고 순결한 것이 아니라 ‘계엄령 속의’ 눈이다. 희망이 소진된 현실 속에서 ‘눈’은 ‘흙빛 눈’이 되고, 그 눈의 이미지를 변주한 ‘새’의 이미지 역시 ‘몇 마리 눈먼 새들’, ‘날개 없는 새들’, ‘꿈처럼 울던 철사의 새들’로 한정되어 현실의 불길함을 반영하고 있다.
<계엄령 속의 눈>은 이렇게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당대 현실에서 비롯된 공포와 피해 의식을 보여 주는 이 시기 황동규의 대표적 작품으로, 시대 정황을 간접적으로 증언하는 정치적 알레고리 시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계엄령 속의 눈>
아아 病(병)든 말(言)이다/ 발바닥이 식었다./ 단순한 남자가 되려고 결심한다/ 마른 바람이/ 하루 종일 이리저리/ 눈을 몰고 다닐 때/ 저녁에는 눈마다 흙이 묻고/ 해 形象(형상)의 해가 구르듯 빨리 질 때/ 꿈판도 깨고/ 찬 땅에 엎드려/ 눈도 코도 입도 아조아조 비벼버리고/ 내가 보아도 내가 무서워지는/ 몰려 다니며 거듭 밟히는/ 흙빛 눈이 될까 안될까.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1978년(41세) 간행한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의 표제시로,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 조류에 대한 시인 의식이 ‘바퀴’라는 물리적 · 구체적 실체를 통하여 삶의 진실성과 당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굴러가야 할 ‘바퀴’처럼 삶의 세계도 당연히 ‘굴러가야’ 할 것임을 강조하여 시대적 아픔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조그만 사랑 노래>
1978년(41세)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에 수록된 작품이다.
연시(戀詩)는 대개 실연의 상처를 노래하거나 사랑의 대상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함으로써 임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자의 고독과 상처를 드러내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조그만 사랑 노래>에서는 누가 떠났고 누가 남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단지 실연이라는 상황에 두 사람이 연루되어 있음을 암시할 뿐, ‘어제를 동여맨 편지’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화자가 갖는 그 비극적 운명은 무엇일까? 이 시가 창작된 1970년대 초 암울했던 현실 상황과 관련한다면 ‘어제를 동여맨 편지’나 ‘문득 사라진 길’은 지난날 추구해 오던 가치가 억류되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로 상징된 사회적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화자는 바람직한 방향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을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는 돌과 ‘한없이 떠 다니는’ 눈송이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 노래’는 한 개인에게 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 국가와 같은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이 ‘조그만 사랑’이 아닌 ‘큰 사랑’으로 심화, 확산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조그만 사랑 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 다니는/ 몇 송이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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