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의 생애
학창 시절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 1908~1996)은 경남 동래에서 태어나 어릴 때 한학을 배우고, 1919년(12세) 사립 명정학교에 입학하였다. 1923년(16세) 중앙고보에 입학하여 이듬해 동래고보로 전학하여 졸업한 후 1928년(21세) 울산 대현공립보통학교의 교사로 일하였다. 이즈음 김정한은 조선인 교원 연맹을 만들려고 하는데, 발각되는 바람에 가택 수색을 받고 체포된다.
이듬해인 1929년(22세)에 김정한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다이이치 외국어학원에서 1년 간 공부하며 문학 작품을 탐독하고, 1930년(23세) 와세다 대학 부속 다이이치 고등학원에 다니면서 <학지광> 편집에 참여하였다. 이때 시 몇 편을 발표하기도 한다.
1932년(25세)에는 잠시 귀국했다가 <문학건설>에 첫 단편 <그물>을 발표하였는데, 양산 농민 봉기 사건을 조사하고 농사 조합 재건을 위해 일하다가 체포되는 바람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지 못했다. 훗날 김정한은 이 사건이 인생의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고 회상한다.
문단 데뷔와 해방 이전
1933년(26세) 김정한은 남해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농민 계층에 구체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곧 1936년(29세)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사하촌>이 당선되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는데, 내용 때문에 범어사 중들의 반발, 왜 농민을 선동하는 작품을 썼느냐는 힐책, 심지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에게 테러까지 당한다.
이후 <조선일보>에 <옥심이>를 연재하고 단편 <향진기>(1937), <기로>(1938), <그러한 남편>(1939), <추산당과 곁사람들>(1940) 등을 발표한다. 이러한 초기 소설들은 대개 일제 지하 농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두 차례의 검속으로 카프가 위축되고 모더니즘이 꽃을 피우고 있었던 1930년대 문단에서 김정한의 소설들은 퍽 이채를 띠었다.
<모래톱 이야기> 이후
일제 말기 이후, 김정한은 약 25년 간 소설을 쓰지 않고 신문 지국 운영, 중학교 교사, 부산대 강사와 교수, <부산일보> 논설위원 등으로 활동하는 등 주로 교육계에 몸담은 채 이따금 수필이나 논설을 기고하며 지낸다. 그러던 그가 1966년(59세) 갑자기 단편 <모래톱 이야기>를 통해 복귀한다. 이 시기는 민족 문학 운동의 싹이 돋아나던 시기이기도 하다.
다시 문단 중심부에 성큼 들어선 김정한은 1967년(60세) 한국문인협회 등에 피선되어 활동하고 1968년(61세)에는 <과정>, <입대>, <곰>, <평지>(원제 <유채>), <축생도>를, 1969년(62세)에는 <제3병동>, <굴살이>, <뒷기미나루>, <수라도> 등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1970년(63세)에는 <지옥변>, <독매>, <실조>, <어둠 속에서>, <인간 단지> 등 빼어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이후 주로 창작집을 내고 1985년(78세) 마지막 단편 <슬픈 해후>를 발표한 그는 1996년(89세) 숨진다.
김정한의 문학
김정한의 문학은 ‘행동과 저항’으로 규정된다. 그의 작품들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현재적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삶에 주목함으로써 그들을 사회 현실에 저항하게 하고 일깨우는 사실주의 문학 정신을 추구한다.
초기 소설 - <사하촌>
김정한의 초기 소설들은 대개 일제 지하 농민들의 도탄에 빠진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두 차례의 검속으로 카프가 위축되고 모더니즘이 꽃을 피우고 있었던 1930년대 문단에서, 소작농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담아낸 김정한의 소설들은 퍽 이채를 띤다.
초기의 대표작으로는 1936년(29세)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등단작 <사하촌>을 들 수 있다. 지독한 가뭄에 시달리던 소작 농민들이 힘을 합쳐 쟁의에 돌입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농촌 현실의 모순은 몇몇 영웅의 의해서가 아니라 고통 받는 농민 전체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작가 의식 때문에 농민 전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결말에서 소작인들이 집단으로 쟁의에 나서는 장면 역시 그러한 작가 의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말은 당시 계몽 소설과 사회주의 소설들이 가지고 있던 관념성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농촌 소설의 전범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가치를 가진다.
<사하촌>
성동리 주민들은 대부분 보광사의 땅을 부치고 사는 소작농이다. 그런데 보광사에서는 불공을 드린다며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고 무거운 소작료를 부과하는 등 횡포를 부린다. 가뭄이 극심한데도 중들의 횡포 때문에 소작인들은 논에 물도 제대로 댈 수 없다. 농민들은 분노가 치밀어 몰래 물꼬를 트고, 이웃 마을 보광리 중의 마을 논둑을 동강내 버린다. 이 때문에 무고한 고 서방이 혐의를 받아 체포된다.
성동리 주민들은 기우제를 지내고, 보광사에서도 기우 불공을 드린다. 그러나 아무런 영험이 없다.
가을이 되고, 당연히 흉년이 온다. 그런데도 보광사에서는 전과 같은 소작료를 요구하고, 성동리 농민들이 찾아와 선처를 호소하는데도 거절한다. 곧 논에는 ‘입도 차압’ 팻말이 붙고, 고 서방을 야반도주를 한다.
극한 상황에 처한 성동리 주민들은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하기 위해 볏짚단을 들고 보광사로 향한다.
일제 강점기의 소작 쟁의
소작 쟁의는 1919년 처음 발생하며 매년 증가하였다. 초기에는 소작권 이전이나 소작료 인하에 대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1927년 조선농민총동맹이 결성되고 전국적인 농민 조직들이 생겨나자, 1930년대 이후로 가면서부터는 쟁의가 점차 일제의 수탈에 저항하는 민족 운동의 성격을 띠고 격렬해져 갔다. 대표적인 대규모 소작 쟁의로는 황해도 재령에서 일어난 동양척식주식회사 농장에서의 쟁의를 들 수 있다.
후기 소설
<모래톱 이야기>
1966년(59세) 발표한 단편으로, 25년의 공백을 깬 김정한의 문단 복귀작이다. 김정한의 문단 복귀는 하나의 문학사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최원식은 그 의미를 “단절된 카프 전통의 복원이요, 6 · 25 이후 지하로 스민 해방 직후 좌파의 부활”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무렵 김정한은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분단을 비롯하여 각종 모순을 안고 있는 1960년대의 현실이 일제 강점기의 혹독했던 수탈 체제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낙동강 유역에서 잡초처럼 살아가는 빈민들의 피맺힌 삶을 극히 사실적이고도 명쾌한 어조로 직조해 나가는데, 그 작품이 바로 <모래톱 이야기>이다.
<모래톱 이야기>는 낙동강 하류의 어느 외진 모래톱 ‘조마이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담아낸다. 화자인 ‘나’는 중학교 교사로 담임 반 학생인 ‘건우’를 통해 민중의 참담한 생활상을 접하는데, 이를 집단 사회의 실태로서뿐 아니라 인간 개체의 보편타당한 권리의 문제로까지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듣는 작품이다.
서술자 ‘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조마이섬 사람들의 삶을 ‘보고’한다. 이러한 형식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는데, 특히 ‘나’가 지식인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성과 신뢰성까지 확보한다. 이는 ‘부조리한 현실의 고발’이라는 김정한의 작가 정심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라 할 수 있다.
<모래톱 이야기>
이 글은 ‘나’의 20년 전 경험담이다.
K 중학교 교사였던 ‘나’는 나룻배 통학생인 건우의 집에 가정 방문을 간다. 건우네는 선비 가문의 후손이었는데도 자기 땅이 없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때 천사하고 삼촌은 삼치잡이를 나갔다가 죽었으며, 지금은 어부인 할아버지 ‘갈밭새 영감’의 몇 푼 벌이도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이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윤춘삼을 만난다. 윤춘삼은 ‘송아지 빨갱이’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로, 한때 ‘나’와 옥살이를 같이 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소개로 건우의 할아버지를 만나 그들의 삶을 잘 알게 된다.
그 해 처서 무렵 홍수가 닥쳐 섬이 위기를 맞는다. 둑을 허물지 않으면 섬 전체가 위험하게 되기에 주민들은 둑을 파헤치는데, 둑을 쌓아 섬을 집어삼키려던 유력자들의 하수인들이 방해를 한다. 화가 치민 건우 할아버지는 그 중 한 명을 탁류로 집어 던지고, 결국 살인죄로 투옥되고 만다.
<수라도>
1969년(62세) <월간 문학>에 발표된 중편 소설로, 한국문학상과 부산시문학상 수상작이다. ‘가야 부인’의 삶과 허씨 가문의 가족사를 통해 질곡 많은 우리 현대사를 되짚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적 시각에서 볼 때 이들의 일제 강점기와 해방의 역사적 현장은 말 그대로 ‘수라도’와 같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 · 공간이었다.
<수라도>는 ‘가야 부인’의 손녀 ‘분이’의 회상을 통해 사건을 서술하여 당대의 역사적 모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그것이 당대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굴절된 정치 현실을 만들어 낸 것임을 시사한다. 또한 이를 바로잡는 것을 미래를 준비하는 새 세대의 몫으로 남겨 두고 있다. 이는 서두에서 “역사를 과거의 일로서만 묻어 버리지 않고 현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보고 싶다.”는 김정한의 작가적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수라도>
분이는 할머니인 가야 부인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할머니의 과거를 회상한다.
가야 부인은 김해 명문가에서 허씨 집안으로 시집왔다. 시아버지인 오봉 선생은 엄정한 성격이었지만 며느리에게 자상했고, 남편인 명호 양반은 내성적이었으며, 시어머니는 집안 대소사를 며느리에게 일임했다. 그런데 시집 온 지 9년 째 되던 해에 3 · 1 운동이 터지고, 만주에서 야학을 하던 시할아버지가 죽는다. 둘째 시숙은 일경의 총에 죽고, 시아버지 오봉 선생은 유생들과 어울릴 뿐이다.
가야 부인은 오봉 선생의 반대를 무릅쓰고, 죽은 고명딸을 위해 미륵당을 짓는다. 그러는 동안 오봉 선생은 일제가 꾸민 ‘한산도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아 죽는다. 점점 일제의 억압이 심해져 가야 부인의 막내아들은 학병을 피해 숨어 다니고, 가야 부인의 사위 박 서방은 계집종 옥이를 정신대에 끌려갈 위기에서 구한다.
해방 후, 친일파였던 이와모도 참봉의 아들은 국회의원이 되어 득세하고, 가야 부인의 가세는 점점 기울어 간다. 가야 부인은 막내아들 석이의 이름을 부르며 마침내 숨을 거둔다.
<인간 단지>
1970년(63세) 발표한 장편으로, 반인간적, 반사회적, 반민족적 상황에 대한 문학적 저항의 빼어난 전범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발표 직후부터 ‘민중 문학의 정통 수립’, ‘정통 리얼리즘 소설’ 등의 찬사를 받았다. 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복지 사회를 모색해 본 민중 의지의 항장(抗章)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인간 단지>
일제 강점기 때, 우중신 노인은 집안의 강권으로 아내와 결혼한 후 일본 유학을 떠난다. 그런데 그 사이에 문둥병 환자인 시할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던 아내가 문둥병에 걸리자 시집에서는 그녀를 내쫓고,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우중신 노인은 일본에서 독립 운동에 가담한다.
우 노인은 해방 후 귀국한 후에야 아내가 문둥병 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데리고 나와 깊숙한 산비탈에 오두막을 세워 신혼살림을 차린다. 그러나 결국 아내는 죽고 우 노인마저 문둥병에 걸려, 음성 나환자 수용소인 ‘자유원’에 들어가게 된다.
‘자유원’의 책임자인 박 원장은 나환자 수용원인 ‘자유원’과 부랑아 수용원인 ‘희망원’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었는데, 권력과 결탁하여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위인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자유원’은 가련한 사람들의 재활원이 아니라 박 원장의 돈벌이 소굴이었던 것이다.
우 노인은 박 원장의 비리 및 지배 체제와 맞서기 위해 당국에 진정서를 냈다가 오히려 억울하게 국립 나환자 수용소에 감금된다. 얼마 후 겨우 풀려난 우 노인은 환자들과 함께 몰래 수용소를 탈출하여 외진 산골에 문둥이의 공화국, 이른바 ‘인간 단지’를 건설한다. 그러나 박 원장의 사주를 받은 이웃 마을 사람들이 “문둥이와는 같이 살수 없다”고 외치며 ‘인간 단지’를 습격해 온다. 결국 우 노인은 죽고 다른 문둥이들마저 이곳저곳으로 달아나는 비극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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