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케 부데요비체(České Budĕjovice)
프라하의 남쪽 120km, 블타바 강 연안에 위치한다. 13세기에 건설된 도시이며, 아름다운 광장과 고딕풍의 교회·수도원 등이 있다. 근교에는 아름다운 성이 많아 국정보호도시로 지정되어 있다. 1827∼1829년에는 이곳에서 오스트리아의 린츠까지 유럽 최초의 마차철도가 부설되었다. 연필과 맥주 생산지로 유명하며, 그 밖에 기계, 담배, 목재, 제지, 식품 등의 공장이 있다.
아이언메이든 종탑(Železná panna - hradební věž)
고딕 시대인 14세기에 조성된 탑으로 현재의 모습은 1612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원래는 스필하이블(Spilhaybl)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아이언 메이든이라는 이름은 이 탑에서 메이든이라는 이름의 순교자가 발견된 데서 유래했다. 현재는 탑에 아이언 메이든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다.
성모 마리아 성당(Kostel Obětování Panny Marie)
남부 보헤미아에서 가장 가치있는 건축물 중 하나로 1274년 봉헌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265년 체스케 부데요비체 도시와 함께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이후 14, 17, 19세기에 재건 공사를 거쳤다.
전체적으로 3중벽을 취하고 있으며 지어졌을 당시에는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내부에서 바로크 양식의 장식을 볼 수 있으며 14세기의 벽화도 남아 있다. 예배당은 프례미실 오사카르 2세의 아내를 기리기 위해 1267년에 지어진 것으로 17세기와 18세기에 개축을 거쳤다가 1885년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됐다.
프례미실 오카타르 2세 광장(Náměstí Přemysla Otakara II)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광장이다. 체코의 전신인 보헤미아의 초기 국왕 프례미실 오카타르 2세(1233?~1278)의 이름을 딴 곳으로 체스케 부데요비체의 중심 광장이라 할 수 있다.
오카타르 2세는 보헤미아의 국왕인 바츨라프 1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바츨라프 1세는 원래 자신의 첫째 아들인 블라디슬라프(Vladislav)를 왕위 계승자로 삼고 둘째 아들인 오타카르는 교회 행정관으로 키우려고 했지만 1247년 장남이 사망하면서 오타카르가 보헤미아의 왕위 계승자가 된다.
오타카르는 10대였던 1248년에 귀족들의 지시를 받고 아버지인 바츨라프 1세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한때는 몇몇 귀족들이 오타카르를 보헤미아의 군주로 선출하고 바츨라프 1세를 축출하기도 했지만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오타카르를 파문시키면서 패배하고 만다. 반란군을 진압한 바츨라프 1세는 오타카르를 프르짐다(Přimda) 성에 유배시켰지만 1251년에 석방시켰다.
1251년 오타카르는 오스트리아의 공작 프리드리히 2세 공의 누나인 마르가레테(Margarete)와 결혼하고 2년 후인 1253년 바츨라프 1세가 사망하면서 보헤미아 국왕으로 즉위했다. 1254년에는 독일의 국왕이었던 콘라트 4세의 뒤를 이어 독일의 국왕으로 즉위하려고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보헤미아의 국왕에 즉위한 이후에는 보헤미아 왕국의 영토를 모라바 변경백국, 오스트리아 공국,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케른텐 공국, 크라인 공국 등으로 확장시켜 나가고 프로이센의 십자군을 지원하면서 이교도가 소유하고 있던 도시들을 점령했다. 1255년에는 튜턴 기사단이 오타카르 2세를 기념하기 위해 쾨니히스베르크(현재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의 도시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신성 로마제국에게 몰려 1276년 대부분의 땅을 잃고 보헤미아, 모라비아 영지만 소유하게 됐다.
1278년 전사한 오타카르는 후세 시인들 사이에서 황금과 철의 왕, 불세출의 영웅으로서 칭송의 대상이 되었으며 특히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연옥편의 제7장에서 당대의 가장 뛰어난 영웅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삼손 분수(Samsonova kašna)
오타카르 2세 광장에는 거대한 삼손 분수가 자리한다.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의 이 분수는 평균 지름이 무려 17m나 되며 장식 화병 4개와 24개의 돌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16~17세기 이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물 공급이 문제가 됐다. 시의회는 1716년 물을 공급하는 분수를 구축하기로 결정하고 광장 중앙에 분수를 설치했다. 재료가 되는 석재를 옮겨오는 일부러 장식을 넣는 일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물은 블타바 강에 펌프를 놓아 끌어왔다.
1990년 분수를 재건해 원래의 조각들을 복제물로 대체했다. 현재 체코의 국가문화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십자 표석(Bludný kámen)
삼손 분수 근처에 있는 표식이다. 중세 시대에는 통치를 유지하고 민심을 억제하기 위해 이곳 오타카르 광장에서 공개처형이 이루어지곤 했는데, 이 십자 표식은 그 중 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470~1478년 사이에 청년 10명이 모의하해 백성들을 수탈하는 재판관을 암살하기로 한다. 결국 그 중 한 명인 필리파(Filipa)가 재판관을 살해하는 데 성공했다. 10명 모두가 용의자로 붙잡혔지만 누구도 범인을 배신하지 않았고, 결국 모두 처형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십자가는 당시 처형이 이루어졌던 곳을 상징하는데, 밤 9시 이후에 이 표식을 지나가면 길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
성 니콜라스 대성당(Katedrála svatého Mikuláše)
1265년경 세워져 1297년 봉헌된 성당이다. 주요 건물은 큰 화재로 손상됐다가 1513~1518년에 수리되고 이후 몇 차례 재건축 작업이 이루어졌다. 16세기 들어 검은 탑이라는 새 종탑을 증축했으며 17세기 재건축 붐에 따라 지금의 바로크 양식의 성당으로 탈바꿈했다. 성당 옆에는 묘지가 있었는데 중세 때부터 1784년까지 사용되다가 요제프 2세의 명령으로 매장이 금지돼 묘지로 쓰이지 않았다.
검은 탑(Černá věž)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부속 건물이다. 1547년 시는 당시 부유함의 상징이었던 감시용 탑과 종탑을 짓기로 했는데, 지반을 견고히 하는 작업이 길어져 1549년에야 착공해 1577년 공사를 마쳤다. 1606년에는 시계탑이 추가되었으며 이후 몇 차례의 수리를 거쳐 1993년에 마지막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탑은 측면 길이 11.6m, 높이 71.9m의 사각형 모양이며 높이가 올라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형태이다. 내부는 9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본래 탑 근무자와 그 가족이 사는 주거지로 쓰였다고 한다. 5층과 6층은 르네상스 풍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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