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노(Brno)
체코에서 프라하(Praha) 다음으로 큰 도시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스베두프스툴’ 동굴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흔적들이, ‘돌니베스토니체’에선 맘모스를 사냥하던 크로마뇽인들의 야영지(BC 30000)가, 5~6세기 켈트족을 포함한 다른 종족과 슬라브족의 정착 흔적들이 발견됐다. 지명은 켈트 어로 ‘언덕의 도시’라는 뜻의 브린(Brynn)에서 유래되었다.
브르노는 13세기 독일의 식민사업 영향으로 성장해 1243년 시(市)가 됐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 슬레지엔 전쟁. 나폴레옹 전쟁 등 전쟁 때마다 큰 피해를 당했다. 1428년에는 후스파(종교개혁파), 1464년에는 보헤미아의 지도자 포데브라디의 지르지, 1645년에는 스웨덴으로부터 몇 차례 포위 공격을 받았다. 그 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중 슐레지엔 전쟁(1740~1745) 때 브르노는 다시 침략을 받았다. 1805년엔 나폴레옹이 이끈 프랑스에게 점령당했다. 그러나 브르노는 반복된 전쟁에도 불구하고 고딕 양식인 장크트토마스 교회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등 훌륭한 건축물들을 원형 그대로 지켜냈다.
파도우치 궁전(Palác Padowetz)
체코의 문화기념물로 지정된 건물이다. 1858~1839년 브르노 최초의 호텔로 지어졌는데 후기 고전주의 양식을 따랐으며 특히 기둥과 파사드는 철저한 고전주의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이오니아식 기둥은 현관 위의 조각장식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처음에는 3층짜리 건물이었으나 1960년대에 4층으로 한 층을 더해 지었다.
브르노가 해방된 후 이곳은 본국에 송환되어 국가행정부가 호텔과 레스토랑 운영을 담당하게 됐다. 그러다 1946년부터 브르노 저축은행이 사무실 건물로 쓰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법률이 시행되면서 1989년 11월부터는 다시 개인 소유가 되었다.
슈필베르크 성(Hrad Špilberk)
13세기 중반 브르노 서쪽 언덕 위에 군사적 목적으로 세워진 요새였다. 몇 세기에 걸쳐 소유주와 용도가 바뀌었다. 그때마다 성은 용도에 맞춰 개축을 거듭했다.
슈필베르크 성은 원래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었다. 17세기 중반에는 바로크 식으로 개축됐고, 18세기에는 군사용 ‘요새’로 이용하다가 18세기 말 황제의 명령으로 ‘감옥’으로 개조했다. 이후 체코의 정치범들은 물론이고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각국의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수용소’로 활용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나치에 의해 수용소로 이용됐으며 이때 지하감옥에 유대인 등 무려 8만여 명의 사람들을 가두었다.
슈필베르크 성은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1층부터 2층까지 장소마다 어떤 역할을 했던 곳인지 밀랍인형들과 물건들로 세트 구성, 전시하고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좁은 통로는 조명만 켜져 있어 으스스했다. 고문하던 감옥의 차갑고 어두운 느낌이 스멀스멀 되살아난 듯 했다. 1832년 이탈리아의 시인 실비오 펠리코는 자신의 저서 ‘나의 감옥(Le mie prigioni)’에서 당시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 애국자들인 카르보나리 당원들을 투옥한 슈필베르크 지하감옥의 공포를 폭로하기도 했다.
브르노 시는 슈필베르크 성을 문화예술의 메카로 개발하기 위해 1989년 ‘브르노문화재단’을 설립해 성의 관리와 운영을 위탁했다. 1959년 브르노시립박물관(1904년 개관)도 슈필베르크 성으로 이관했다. 브르노문화재단은 성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실내·실외 공간들을 공연장으로, 전시장으로 바꾸었다. 포럼이나 워크숍을 개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컨퍼런스 공간도 마련했다. 각 공간에 담을 문화예술 이벤트를 계절별로 프로그래밍했다.
6~8월 여름시즌 슈필베르크 성은 시민과 관광객, 그리고 음악예술가들의 발길로 늘 북적인다. 7~8월 두 달 동안은 셰익스피어의 연극들이 공연된다. ‘브르노국제음악콩쿨’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음악회도 열린다. 특히, 야간에는 라이프 나이트(Life Night) 프로그램으로 플라켕코를 공연해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전시회도 다양하다. 일반 전시회를 비롯해 ‘브르노맥주전’ 등 기획전시회가 연간 열린다. 또 브르노 시민들의 결혼식장으로도 성을 개방하고 있다. 슈필베르크 성은 계절별로, 주·야간으로 브르노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문화공간이다.
코메니우스 복음 교회(Českobratrský evangelický chrám Jana Amose Komenského)
흔히 붉은 교회라고도 불리는 복음 교회로 1867년 독일 북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탑의 높이는 50m이며, 개신교 전통에 따라 단순함을 지향하고 있다. 기초석은 1863년 9월 7일 지어졌으며 처음에는 그리스도 교회(Christurkirch)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세워지면서 복음교회가 되었다. 브르노 최초의 교회 합창단이 창설된 곳이기도 하다. 이름은 17세기 모라비아 지방 출신의 교육학자이자 목자였던 코메니우스에서 따온 것이다.
성 토마스 교회(Kostel svatého Tomáše)
14세기에 세워진 아우구스투스 수도원에서 시작됐으며 수세기에 걸쳐 수리와 재건을 거친 끝에 17세기에 현재의 바로크 양식의 교회가 되었다. 성 토마스에게 봉헌되었다. 1645년에는 스웨덴의 공격을 받아 일부가 파괴된 적이 있다. 1732~1752년에 대규모의 재건작업이 이루어지고 옛 수녀원도 복원됐다.
성 야곱 교회(Kostel sv. Jakuba)
1995년 국가기념물로 지정된 브르노 교구 교회로 오랫동안 수차례 재건되었다.
처음 지어진 것은 13세기로 로마네스크 및 고딕 양식으로 건축됐다. 이후 1592년에 후기 고딕양식의 합창단이 추가되었고, 17세기에는 오래된 가구 등 내부를 바로크 양식으로 교체했다. 1666년에는 제단과 설교단을 다시 꾸미고 지붕도 계단식으로 바꾸었다. 지붕은 18세기에 한 차례 교체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시 의회가 주도해 다시 개축했다고 한다.
이 교회에는 재미있는 뒷얘기가 있다. 성 야곱 교회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은 비슷한 시기에 첨탑을 지었는데, 자연히 어느 쪽이 더 높은 첨탑을 짓는지 경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결국 성 야곱 교회가 94m,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성당이 84m의 첨탑을 올려 성 야곱 교회가 승리한다. 성 야곱 교회 외벽에는 재미있는 조각이 있는데, 이 엉덩이가 가리키는 방향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성당 쪽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성 야곱 교회 납골당(Kostnice u sv. Jakuba)
성 야곱 교회의 지하에는 5만여 명의 해골이 전시된 브르노 납골당이 있다.
과거 바로크 시대 교구 사제들은 사람이 죽으면 공동묘지에 시신을 매장했는데, 흑사병과 콜레라 등이 발생하다 유골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했다. 때문에 교회에서는 묘지 밑에 토굴을 연결해 매장을 시작했고 거대한 이 납골당이 형성됐다. 1784년 공동묘지가 폐지되고 묘지 입구와 벽은 내려졌다.
이후 세월이 지나 아무도 그 실체를 모르고 있다가 2001년에야 발굴되어 정체가 드러난 곳이다. 해골 숫자로는 프랑스에 있는 파리 지하묘지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으며 최대 깊이는 4m이다.
리페 영주의 집(Dům pánů z Lipé)
1531년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던 집으로 당시에는 기사였던 마티아스 문카(Matyáš Munka) 소유였다고 한다. 이후 1564 모라비아의 영주인 리페(Čeňka z Lipé)의 소유가 되었다. 1890년대 초 들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브리(Antonio Gabri)가 재건축을 맡아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913년에는 모라비아 경제사회중앙연합이 구입했으나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점점 황폐해졌고, 1937~1938년에 재건됐으나 1945년 전쟁 중에 다시 심하게 파곤된다. 이후 오랫동안 백화점 창고로 쓰이다가 2000년에 Unistav라는 기업이 인수해 전체적으로 복구 공사를 했다. 공사 중에 1243~1260년경의 주택 유적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5년부터 체코 최대의 버스 회사인 스튜던트 에이전시 사의 CEO인 라팀 잔추라(Radim Jančura, 1971~)의 소유가 되어 상업적·문화적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1층에는 문화정보 센터가 있고 맨 윗층에 전망대가 있다.
브르노 자유 광장(Náměstí Svobody)
브르노의 중앙 광장으로 13세기에 세 개의 거리를 잇는 광장으로 출발했다. 현재는 7개의 거리가 이곳에서 만나고 있다.
중세에는 부유한 농부나 귀족들이 이 광장에 주택을 지어 살았으며, 1679년 전염병 기념비(Morový sloup)가 조성됐다. 1901년 남북을 잇는 트램 라인이 설치되고 2006년 청동분수를 갖추어 완벽한 포장 광장이 재건됐다.
전염병기념비(Morový sloup)
전염병 기념비는 1679~1680년 브르노에 닥쳤던 전염병을 기념하기 위해 1679~1683년에 지어졌다. 성모마리아와 전염병을 상징하는 다섯 성인에 봉헌되었다. 1958년 국가문화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06년 자유광장이 재건되면서 기념비의 기둥도 재건축됐다.
브르노 천문시계(Brněnský orloj)
브르노 자유 광장에 있는 천문시계는 시계 설비를 갖춘 미사일 모양의 검은색 석제 조각품이다. 30년 전쟁 때 스웨덴과의 공성전에서 스웨덴 군을 방어한지 365년 된 것을 기념해 2010년 9월 18일에 만들어졌다. 제작비용은 1200만크로나, 우리돈으로 6억 원이 넘는 금액이 들었다고 한다.
스웨덴과의 공성전 때 스웨덴 군이 12시까지 브르노를 점령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는데, 기지를 발휘한 브르노 시민들이 11시에 타종을 해서 스웨덴 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오전 11시가 되면 이 천문 시계에서는 구슬을 하나씩 뱉어내는데, 매일 11시가 되면 구슬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구슬을 집어들 수 있는 곳은 여러 군데이기 때문에 운이 좋아야 얻을 수 있다.
브르노 신 시청(Nové radnici)
도미니카 광장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신 시청사는 본래 도미니카 수도원이었던 건물로 13세기 후반부터 법원 청문회장, 모라비아 토지 회의소 등으로 쓰이다가 1935년부터 새로운 브르노 시 정부가 사용하고 있다. 수도원과 수녀원 안뜰 부분을 보존·전시하고 있다.
브르노에서는 17~18세기 건물 재건축 붐이 있었는데 신 시청 건물 역시 이때 크게 확장됐다. 마지막으로 수정된 것은 1772~1776년에 두 번째 안뜰을 포함한 새 날개관 건설이었다.
방문객들은 두 안뜰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데 1928년 제작된 분수나 르네상스 양식의 계단, 시계 등을 볼 수 있다. 분수는 일 년 열두 달을 우의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성 미할라 교회(Kostel svatého Michala)
1228년경 성 미하엘 교회의 수도원으로 시작됐다가 다음 세기에 모니티크 수도회의 수도원으로 쓰인 곳이다. 이후 모라비아 지역의 국가 성전으로 쓰이고 세속 교회로 쓰였으며, 1645년 스웨덴 군대의 공격으로 파괴됐다. 17세기 후반인 1658~1679년에 브르노의 건축가 에르나(Jan Křtitel Erna)의 설계에 따라 현재의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개축됐다.
데니소비 공원(Denisovy sady)
원래 이름은 프란치스코프(Františkov) 공원으로 브르노 외곽에 자리한 시립 공원이다. 도시 벽의 보존된 부분과 도로 사이에 있는 페트로프(Petrov)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공원 일부는 모라비아 주지사의 정원이다.
데니소비 공원은 체코에서 처음으로 공공 공원으로 운영된 곳으로 1814~1818년 모라비아 총재 미트로비치(Mitrovic)가 조성했다. 이후 1939~1941년에 서쪽 공원의 분수와 신축 도로 등을 정비했다. 1818년에는 나폴레옹에 승리한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1919년 체코슬로바키아 건국에 기여한 프랑스의 역사가 에른스트 데니스(Ernest Denis)에게 헌정돼 데니소비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0년에 광범위한 개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갈보리(그리스도의 고통)(Boží muka)
체코 크리스트 교에서는 예수의 고난을 갈보리라는 구조물로 표현하곤 한다. 보통은 기둥으로 표현하여 때로는 지붕을 얹은 기둥 형태로 제작하기도 하며, 주로 야외에 설치해 예수의 고난을 기린다. 이러한 전통은 14세기 이전부터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크리스트교의 가르침과 모순을 이루는 재미있는 문화이다.
데니소비 공원에 있는 갈보리 역시 그 일환 중 하나이다. 16세기 초 후기 고딕 양식으로 조성됐으며 공사를 위해 폭파 작업을 하는 동안 발견되어 1952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성 베드로·성 바오로 대성당(Katedrála svatých Petra a Pavla)
모라비아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뾰족한 첨탑은 고딕 양식이며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조성돼 있다. 이곳은 다른 성당과 달리 12시가 아닌 11시에 타종하는데, 브르노 천문시계와 같은 이유를 가진다. 당시 스웨덴 군을 속이기 위해 11시에 종을 울렀던 성당이 바로 이곳이다. 두 개의 탑은 84m 높이로 1901년 설설계되어 1904~1909년에 재건됐다. 체코 국가 문화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양배추 시장(Zelný trh)
13세기부터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 과일 등을 거래하기 위해 모였던 시장으로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파르나스 분수( Parnas fountain) 근처에서 열린다. 과거에 이곳에서 주로 양배추를 판매했다고 하여 양배추 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도 시장이 열려 브르노에 활력을 더해 주고 있다. 파르나스 분수는 1693~1695년 만들어진 것이다.
거룩한 십자가 교회(kostel Nalezení svatého Kříže)
프란치스코회 교파 중 하나인 카푸친형제회 사람들이 1604년 올로모우츠 주교의 초청으로 브르노에 왔는데, 이때 거룩한 십자가 교회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수도원이 건립됐다. 30년 전쟁이 끝나고 스웨덴 군이 브르노를 포위했을 때 카푸친 수도원이 철거 되었고, 두 번째 수도원이 1648~1656년에 다시 건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753년에는 예배당을 추가하고 아치형 천장을 올렸으며 1747년에 합창대를 쌓았다. 1920년대에는 아르누보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이후 1930년대에 보수됐다.
2012년에는 내부에 새로운 조명과 난방이 설치되고 2014~2017년에 외관 수리를 마쳤다. 내부에 독일의 화가 요하힘 폰 산드라르트(Joachim von Sandrart, 1606~1688)가 1655년 그린 성화가 남아 있다.
카푸친 묘지(Kapucínská krypta)
거룩한 십자가 교회 지하에 위치한 카푸친 묘지는 1656년 카푸친 형제의 유해를 모신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1784년 요세프 2세 황제 때까지 묘지로 쓰였는데,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도시 매장을 금지하면서부터 무덤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1990년 이후 묘지 전체를 재건축하고 일반에 공개해 개관하고 있다.
브르노 구 시청(Stará radnice)
브르노에서 교회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건물로 브르노가 도시로서의 지위를 확립한 13세기, 1243년 설립됐다. 당시에는 탑이 딸린 1층짜리 석조 건물로 재판관이 사무 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1343년 시의회의 공간으로 바뀌고 1345~1347년에는 여러 층이 올라갔으며, 1348년 종을 설치했다. 1424년에 성모 마리아에 봉헌되어 예배당으로 쓰기 위해 증축했다가 다시 1785년부터 시청 사무실로 사용됐다.
일반에 공개돼 있는 구시청의 탑은 62.66m 높이에 173개의 계단을 가지고 있는데 탑에 오르면 브르노 구시가지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현재 이곳은 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구시청에 얽힌 이야기 - 공룡 악어
구시청 출입구에 있는 조각의 꼭대기를 보면 중앙에 있는 것이 삐딱하게 구부러져 있는데, 이것은 작품을 만든 조각가인 안톤 필그람(Antonín Pilgram)이 조각을 완성한 후 약속한 보수를 다 받지 못하자 그 분풀이로 구부려 놓은 것이라고 한다.
또 출입구를 지나 안쪽에 가 보면 시청의 마스코트인 브르노 드래곤(Brno Dragon)이라는 악어가 매달려 있다. 터키에서 선물로 보내 온 것으로 악어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브르노 시민들이 이를 용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스페셜 팁] 연극 Saturnin - 지토르카 원작 소설의 연극판
1942년 체코의 소설가 지로트카(Zdeněk Jirotka)의 동명 코믹 소설을 각색한 연극으로 위험하고 똑똑한 하인인 사투르닌(Saturnin), 성가신 숙모 카테리나(Kateřina)와 그녀의 아들 밀로우스(Milouš), 삼촌 프란티셰크(František), 블라흐 박사(Vlach), 나레이터인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4부작 드라마로 방영된 적도 있으며 다른 소설가가 속편을 내기도 할 만큼 체코에서는 유명한 작품이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8개국어로 번역 출판됐다.
관찰자이자 해설자인 블라흐 박사는 프라하에서 작고 영화로우며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다. 사치스럽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여가를 보내는 인물이다. 그는 특별히 필요하진 않지만 어느 날 하인인 사투르닌을 고용한다. 효율적이면서도 신중하고 결단력 있는 성격의 사투르닌은 자신과 주인에게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그게 오직 자기 생각이 기준이라는 점이다. 가령 새로운 숙소를 요구하고 선상가옥으로 옮기는 식이다. 그러나 결단력 없고 부끄러움 많은 블라흐 박사는 그런 사투르닌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한다.
블라흐 박사에게는 가족들이 있는데 카테리나 숙모와 그녀의 아들인 밀로우스, 그리고 할아버지이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캐서린의 시아버지를 말한다. 또 가족들의 이웃은 위더스푼 박사도 있고, 블라흐 박사가 호감을 갖고 있는 바바라(Barbara)라는 아가씨도 있다. 테니스 선수인 바바라는 직접 운전을 할 만큼 현대적이고 독립적인 신여성이다. 그러나 캐서린 숙모는 바바라를 못마땅해 한다.
연극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테니스 장면, 스윙댄스 장면 등을 가미해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들어 준다.
예비 여행자들을 위한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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