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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라인 강의 서쪽 강변에 있는 도시이다. 알자스(Alsace) 레지옹 청사 소재지임과 동시에 바랭 주(Bas-Rhin) 정부 청사 소재지이다. 또한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의 수도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에서 일곱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인 스트라스부르는 또한 북동쪽의 중요한 경제의 축 중의 하나이다. 매우 다양한 종류의 2차 산업과 특히 금융, 연구, 기업 컨설팅 등에 집중된 3차 산업이 이 지역의 중심산업이다. 이와 더불어 의·약학 연구와 자동차 산업 등의 경쟁력 있는 산업이 육성되고 있다.
언제나 국경지대에 위치한 도시였던 스트라스부르에는 두 개의 문화가 깊이 공존하고 있다. 다사다난하고 유구한 역사 덕택에 스트라스부르에는 괄목할 정도로 많은 건축유산이 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la cathédrale Notre-Dame de Strasbourg)과 특색 있는 구역인 쁘띠 프랑스(le quartier de la Petite France) 등을 포함한 도시의 중심부는 198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와 독일, 나아가 유럽 전체의 화해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도시는 점진적으로 정치적, 문화적, 교육적 기능을 특화시켰다. 또한 제네바, 뉴욕과 함께 수도가 아닌 도시로서 국제 기구의 본부가 들어서 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이다.
스트라스부르는 국립극장, 국립도서관과 대학도서관, 국립라인오페라 등 잘 알려진 문화 기관들이 포진해 있어서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스트라스부르는 교육의 도시이다. 스트라스부르 내의 대학들은 과감히 세계로 문을 개방하였는데, 20%가 넘는 외국학생 비율과, 100개국 이상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프랑스어의 첫 기록인 스트라스부르 서약이 쓰여진 도시이기도 하다.
생 피에르 뷔 교회(Église Catholique Saint-Pierre Le Vieux)
1981년 역사기념물로 지정된 교회로 1130년의 성당 유적이 남아 있는 데 증축하기 시작해 1382년에 완성했다. 신교 개혁교파가 있던 곳으로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서 신교도의 피난처가 되었던 곳이다. 칼뱅이 이곳 스트라스부르에서 3년을 머물며 목회일을 보기도 했다. 때문에 중세에는 개신교 교회로 쓰였으나 1683년 루이 14세가 스트라스부르를 정복한 후 카톨릭 교회로 쓰도록 하고 본당에서는 개신교 예배를 제한했다. 때문에 지금도 이 교회는 개신교와 로마카톨릭 교도 모두가 드나드는 곳이 되었다. 성 베드로의 생애를 그린 그림들과 최후의 만찬 그림 등이 남아 있다.
생 피에르 교회(Église protestante Saint-Pierre le Jeune)
생 피에르 뷔 교회 근처에는 똑같이 베드로의 교회인 생 피에르 교회가 있다. 때문에 ‘젊은’라는 뜻의 ‘Jeune’을 이름에 덧붙이고 있다. 이 교회는 1524년 이래 개신교 교회로 쓰였고, 교회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7세기에 세워진 콜럼버스 교회의 유적 인 매장 묘지로 사용된다. 회랑의 4개 아치형 갤러리 중 3개는 11세기에 조성됐고 네 번째 아치는 14세기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고딕 양식의 본관은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때부터 많은 벽화와 기념석판, 제단, 중당 제대화 등이 보존되어 있다.
1780년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요한 안드레아스 실버만(Johann Andreas Silbermann) 합창단이 창설됐으며, 바흐 연주로 유명했던 오르간 주자 헬무트 발햐(Helmut Walcha)가 이곳에서 주로 활동했다고 한다.
오베트(L'Aubette)
루이 15세가 건축가 블론델(Blondel)에게 짓게 해 1772년 완성한 건물이다. 당시에는 본래 군사 건물이었다고 한다. ‘오베트’라는 이름은 ‘대피소’라는 의미에서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블론델은 정면의 아치 형태를 강조하여 사각형의 광장변 공간을 규칙화하고자 했다. 1870년 프러시아와의 전쟁 때 독일군이 스트라스부르에 폭격을 가해 오베트에 큰 화재가 발생했는데, 1873년에 스트라스부르 시의 공식 건축가였던 Conrath가 재건을 선도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특히 파사드에 모차르트, 헨델, 멘델스존과 같은 유명한 음악가들의 초상화를 메달로 장식해 넣은 것이 독특하다. 현재는 마을 회관과 휴게공간 등 공용 건물로 쓰고 있으며, 왼쪽 별관은 2008년에 상용 건물로 탈바꿈했다.
입장 수~토 14:00-18:00 무료입장
클레베르 광장(Place Kléber)
스트라스부르 중심부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크리스마스면 거대한 트리가 세워지는 곳이다. 1753년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쟝 밥티스트 클레버 장군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그의 유해가 담긴 관이 광장의 북쪽에 있다.
본래 이름은 독일어로 ‘맨발 광장’이라는 뜻의 ‘Barfüsserplatz’이었고 17세기에는 독일어로 군사 광장이라는 뜻의 ‘Waffenplatz’로 바뀌었으며, 1840년에야 비로소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1940~1944년에 독일에 스트라스부르가 점령됐을 때는 프랑스 당국이 독일 첩자 혐의로 처형했던 독일 정치인의 이름을 따 칼 루스(Karl Roos) 광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광장에는 클레베르의 동상이 서 있다. 클레베르는 처음에는 오스트리아 군에 근무했지만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국민군에 입대하고, 이어 라인 군,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 등 각지에 참전한 후 나폴레옹 귀국 후 총사령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헤리오폴리스에서 터키 군을 격파하는 등 활약했지만 카이로에서 이슬람교도에게 암살당했다.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 Dame de Strasbourg)
스트라스부르 주교좌가 있는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좌 성당이다. 1176년에 짓기 시작하였지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무렵이다. 높이 142m 규모의 첨탑은 1439년에 완성하였다. 성가대석, 성당의 좌우 날개 부분, 정탑(頂塔) 등은 로마네스크양식, 뾰족한 첨탑, 서쪽의 문들, 예배당 회중석 등은 고딕양식으로 건축하였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13세기에 만든 ‘천사의 기둥’과 12세기에서 14세기까지 각각 다양한 시대에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답고 정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밖에 1838년에 완성한 천문시계가 매일 오후 12시 30분에 종소리를 내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이 대성당과 그 주변은 1907년부터 쉼없이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근인 2014년에도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 위치는 스트라스부르의 옛 이름인 아르겐토라툼(Argentoratum) 때부터 계속 종교적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그 기원이 4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샤를마뉴 통치 하였던 8세기에 한 번 건물이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842년에 스트라스부르 서약이 그곳에서 발표된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1176년 지금의 대성당을 건설하기 시작했을 때는 본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으려고 했는데, 1225년부터 고딕 양식의 건축 제안이 받아들여서 완전히 스타일이 바뀌게 되었다. 본당 건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발행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수천 개의 인물로 장식된 서쪽 외관이며, 내부의 장미 창도 유명하다.
입장료 무료(전망대는 5유로 / 추천하지 않음)
천문시계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의 남쪽 수랑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천문시계가 보관돼 있다. 크기가 18m에 이르는 이 시계는 1352~1354년에 제작된 시계를 대체한 것으로, 원래 있던 시계는 반대쪽 벽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 1571년에 훨씬 더 복잡한 시계로 다시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스트라스부르 장식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현존하는 18m의 시계는 현재 볼 수 있는 시계는 세 번째 천문 시계인 셈인데 1838년에서 1843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수년 간의 연구 끝에 나온 산물이다. 그레고리력에 따라 부활절을 계산할 수 있는 세계이며 그 정확도가 매우 놀랍다고 한다. 또한 이 시계에는 오토마타(자동인형)가 있어 정오가 되면 살아 움직인다. 정오는 당시 사람들이 오전 동안 성취한 일들을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시계의 가장 아래쪽에는 48개의 별자리와 1022개 별로 구성된 천구가 설치돼 있고, 그 위쪽으로 아폴로와 다이아나가 내려다보고 있는 달력, 스트라스부르에서 올려다 본 하늘을 재현한 천문 관측기구도 있다. 그 위로는 음력을 표시하는 다이얼이 달려 있다.
그 위에는 자동으로 설치된 두 개의 무대가 있다. 첫 번째 무대는 한 손에 낫을 들고 다른 손에는 인간의 뼈를 든 죽음의 오모마타가 설치되어 있는데 15분 간격으로 종을 친다. 이 종소리에 맞춰 귀엽고 통통한 어린이, 청년, 군복을 입은 남자, 가운을 입을 노인이 차례로 그 앞을 지난다. 인간 삶의 여정을 1시간에 걸쳐 압축해서 보여주는 셈이다.
그 위쪽 무대에는 예수와 12사도의 자동 인형이 설치돼 있다. 예수는 그 앞을 지나는 사도 한 명 한 명을 축복하는데, 12번째 사도가 지나고 나면 예수는 손을 들어 관객들을 축복한다.
요컨대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천문 시계는 정밀한 시계 이상의 것으로 천문학, 기하학, 산술학, 음악의 주요 4학을 이용해 기술적 장관을 연출하는 무대였다. 천체의 운행, 생명의 모방, 음악, 그리고 신화에 대한 알레고리를 통해 기계론 철학의 우주적인 질서를 극화한 무대였고 기계론 철학의 중심 상징이 된다. 신이 자연의 질서를 만들어 냈듯, 시계공은 이 시계를 만들어 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시계의 창시자의 눈을 찢어서 다시는 이런 시계를 재현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한다.
티케팅 줄이 길이 너무 길다면 성당 실내의 천문시계 앞 기념품 판매소에서 티켓을 살 수 있다. 티켓을 미리 구입하면 먼저 입장시켜준다.
입장 매일 07:00-11:20, 12:40-19:00 입장료 2유로
로앙 궁전(Palais Rohan)
스트라스부르 주교의 가문인 로앙 가의 저택으로, 라파엘로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입장 수~월 10:00-18:00 입장료 7유로
알자스 박물관(Musée Alsacien) - 솜글 강추
알자스 지역은 알자스 포도주 길(Route des vins d'Alsace)로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포도주 산지다. 또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오랜 기간 동안 분쟁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 아직도 이 지역에는 독일 사투리가 많이 남아 있다. 1908년에는 독일 땅이었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로 귀속됐다. 이런 미묘한 관계 때문에 이 지역에는 발달한 농업 외에 독일과 프랑스를 아우르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돼 있다. 알자스 출신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슈바이처 박사도 태어날 때에는 독일 국적을,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프랑스 국적을 가졌다.
알자스 박물관은 이런 복잡한 역사를 지닌 알자스 지역의 민속 문화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박물관이다. 차가운 서풍을 막아 알자스를 천혜의 포도 산지로 만들어준 보주 산맥 지역의 유품들, 농민들이 포도 농사를 지을 때 사용했던 농기구, 이 지역 주민들이 즐겨 입던 옷과 생활 도구, 알자스 특유의 하얀색 도자기 등 약 5000여 점에 이르는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지역 공예품과 미술 작품, 지역의 역사를 전해주는 책과 문헌 등도 보관돼 있다.
입장 수~월 12:00-18:00, 토·일 10:00-18:00 입장료 6유로
생 토마스 교회(Église luthérienne Saint-Thomas)
쁘띠 프랑스 인근의 교회로 스트라스부르에서 가장 중요한 교회 중 하나이다, ‘알자스의 개신교 교회’라는 명령을 가지고 있으며 1862년 역사기념물로 지정됐다.
일찍이 6세기부터 이 자리에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693년 사망한 생 플로랑 주교가 그곳에 묻혔다고 한다. 9세기에 교회를 다시 지었지만 1007년 화재로 불탔고, 1144년에는 번개가 건물을 파괴하기도 했다. 1196년에는 탑과 입구를 재건하기 시작했으며 이루 공사와 중단을 여러 번 겪은 끝에 1521년에 우선 완성을 보았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이 1524년 이 교회는 개신교 예배당으로 배정됐고, 많은 개혁 목회자들이 활동하는 곳이 되었다. 개신교 탄압이 일어나는 동안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내부의 스탠드 오르간은 1741년 안드레아스 실버만이 제작한 것으로, 모차르트가 1778년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했을 때 그 소리를 매우 칭찬했다고 한다. 또 1906년에는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이곳에서 성가대를 조성하기도 했다. 장미 스테인드글라스의 식물 모티프도 아름답기도 유명하며, 14세기 샹들리에와 종탑도 잘 알려져 있다.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
구시가의 남서부로, 강을 낀 북쪽 부근을 말한다. 강주변에는 중세의 아름다운 마을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예전에 낚시 하는 사람, 방앗간, 피혁 제조인들이 운하 주변으로 거주 했던 곳으로, 프랑소와 1세에 의해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 라고 명명됐다. 당시 그는 이 구역에 병원 문을 열어 천연두에 걸린 병사들을 입원시키기도 했다. 16세기, 17세기에 지어진 운하 주변의 가옥들은 알자스 지방 건축 양식 특유의 목조 장식을 띄고 있으며, 외관은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닳고 닳은 돌길 양쪽으로 흰색, 갈색의 벽과 검은색의 굵은 나무기둥을 가진 집들이 늘어서 있어 중세를 추억하게 한다.
쿠베르 다리(Pont Couverts)와 보방 댐(Barrage Vauban)
쿠베르 다리는 보방댐으로 가기 전 쁘띠프랑스 초입에 있는 네 개의 큰 탑(종루)이 있는 다리이다. 원래는 지붕이 있어서 ‘지붕덮인 다리’라는 뜻의 쿠베르교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쿠베르교와 보방댐의 야경이 사진으로 아름답게 나온다. 보방 댐은 보방장군이 17세기 방어 전투용으로 건설한 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보방댐 위로 올라갈 수 있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쁘띠프랑스가 보이며, 멀리 노트르담 성당도 보인다. 특히 이곳은 야경 명소로 알려져 있다.
입장 09:00-19:30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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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지도
설명자료에 있는 관광지들 중심의 한국어 지도는 아래에 올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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