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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광장 고대지하유적(Crypte Archéologique)
노트르담 광장 지하에는 고대 지하유적지가 있다. 이곳에는 갈리아(Gallo-Roman) 시대의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다. 1965년에서 1970년 사이에 발굴 작업을 하는 동안 발견된 고고학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노트르담 대성당 광장에 1980년 개발한 곳이다.
방문객들은 고대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지어졌던 건물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고대 루테치아(Lutetia)의 부두, 갈리아(Gallo-Roman)의 공중 목욕탕 건물, 4세기 초의 도시 벽, 오뗄 디외(Hôtel-Dieu)의 예배당 지하, 오스만의 하수구의 흔적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파리의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한 곳의 기억을 되살리고, 아울러 어떻게 이 도시가 2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스스로를 재건해 왔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외국 사이트를 번역해 가며 만든 자료입니다.
더러는 국내 자료에서 일부 발췌해 온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① 파리지 Les Parisii
금으로 권력을 과했던 시대의 파리지들이 사용했던 금화들을 볼 수 있다. 기원전 3세기 파리 갈리아 족에게 센 강변이 정치적, 경제적 요충지였음을 보여 주는 유물이다.
기원전 5세기 경에 한 켈트족이 내려와 지금의 시테 섬에 정착하는데 그들은 파리지(Les Parisii)라고 불렸고, 당시 시테 섬은 뤼테스(Lutece)라 불렸다. 뤼테스는 라틴어로 ‘물 한가운데에 있는 거주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 모든 나라들이 그랬듯이 파리지들도 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서기 약 275년 경 게르만족의 침입을 받게 되고, 그 때부터 뤼테스는 파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파리지앙’, ‘파리지엔’이란 말은 파리지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② 성벽 Le Rempart
4세기 파리지들은 적의 침략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 시테 섬 전체에 돌로 성벽을 쌓았다. 현재 남아 있는 이 성벽 조각돌들은 공회장이나 전투경기장과 같은 버려진 기념물에서 복구 된 부분이다. 테라코타 컵, 동전, 의류 장식품과 금으로 만든 브로치 등이 있다. 문 위쪽에는 성벽에서 나온 돌 블록에 새겨진 비문이 새겨져있다.
③ 루테티아 왕국 Lutèce au haut empire
평화와 번영의 시기를 일컫는 ‘팍스 로마’(Pax romana) 시대의 유물이다. 96~192년 사이 로마 제국을 통치한 안토니우스 왕조 시대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전시품들은 하나님의 경비병, 가정과 가족의 보호자 신 등 당시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④ 고대 항구 Le port antique
티베리우스(기원전 42) 통치 하에 세워진 고대 항구의 흔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저장창고의 흔적과 수많은 암포라(항아리)를 통해 당시 강이 상업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밝혀 준다. 배경 소리를 통해 항구와 그 활동의 분위기를 복원해 놓고 있다. 전시품에 새겨진 글은 시테섬(Ile de la Cité)의 로마자 표기를 반영한다. 나트의 유명한 기둥은 로마와 갈리아 사이의 영향이 뒤섞인 양식을 보여준다.
⑤ 중세 지하실 Une cave médiévale
12세기에 지어진 집의 지하 2층 유적을 모아 놓은 곳이다. 중세에 인기 있었던 나무 숟가락과 작은 놀이도구(주사위, 토큰 등) 같은 도구를 통해 당시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또 당시의 동전도 전시해 놓고 있다.
⑥ 노트르담 공사 La construction de notre-dame
세 개의 터치스크린을 통해 노트르담 대성당의 건축 현장을 탐색하고 기념물이 건설되는 4단계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다. 시테 섬 고고학 발굴 중 발견된 동상 조각들도 전시하는데, 일부는 대성당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루이 7세 통치하에 십자가, 알파와 오메가, 영원의 상징, 백합, 로열티의 상징으로 장식된 은화도 볼 수 있다.
⑦ 17세기 유물 Les sourvarains du 17e siècle
17세기의 주요 개혁과 화폐의 변화를 보여준다. 왕의 초상을 식별하기 쉽게 공식화해 동전에 새겨놓았던 당시의 금화들을 만나볼 수 있다.
1640년 루이 13세의 화폐 개혁은 루이 13세와 루이 14세의 창작품으로 ‘루이도르’를 낳았다. 루이도르란 프랑스대혁명 때까지 통용된 프랑스 금화로 20프랑의 가치가 있었다. 기계로 주화를 찍어내는 방식을 통해 화폐가 통일된 모습으로 널리 보급된 것 역시 이때의 일이다.
⑧ 파리 고아원 벽 유적 L'hospice des enfants - trouves
루이 15세의 요청에 따라 건축가 보프란드(Boffrand)가 1750년에 건설한 최초의 파리 고아원인 앙팡 고아원(Enfants-Trouvés)에서 병원 부분 일부를 구성했던 벽을 전시하고 있다. 반대편에 전시된 문서는 당시 이 고아원의 기능과 활동을 알려준다.
루이 15세 및 루이 16세의 통치 하, 그리고 혁명 중에 꽂힌 동전들은 프랑스 정치 시스템의 중대한 변화를 보여준다.
⑨ 나폴레옹 3세 시대 Napoléon III et L'archéologie
나폴레옹 3세의 통치 하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금화에서는 제국 하에서 사용했던 상징과 1870년 선언된 공화국 하에서 사용했던 상징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특히 주권과 국가의 상징이 상징적 인물인 마리안(Marianne)으로 대체된 것을 볼 수 있다. 마리안은 프랑스라는 국가를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의인화한 여성상으로,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유로화 동전 뒤에는 마리안이 새겨져 있으며 우표에도 등장하고, 각종 공공기관에도 흉상이 상징적으로 설치돼 있다.
⑩ 고대 목욕탕 Les thermes antiques
고대 유적 탐방은 4세기 고대 루테티아(Lutetia) 온천에 있던 목욕탕 유적으로 끝난다. 대형 터치 스크린을 사용하면 작은 안뜰이있는 왼쪽에서부터 욕조가있는 더운 방까지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목욕탕의 물을 어떻게 데웠는지에 관한 원리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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