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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프랑스 여행 URL 복사

[프랑스] 콜마르(Colmar) 관광지 설명 자료(한국어 가이드)

2018. 7. 3. by 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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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마르(Colmar, 꼴마르)

보주 산맥 동쪽 기슭 상(上)알자스 평원 서쪽 끝에 위치하며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남서쪽 약 64km 거리에 있다. 알자스는 프랑스의 옛 행정구역으로 2016년 샹파뉴아르덴, 로렌 레지옹과 합쳐져 그랑테스트 레지옹이 되었다.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시대인 9세기 경 작은 촌락에서 콜마르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13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자유도시가 되었다. 17세기에 일어난 구교와 신교의 종교전쟁(30년전쟁) 중에는 스웨덴에 점령되기도 하였으며(1632) 이후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3세에게 양도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 땅이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1871∼1919)는 독일령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 치열했던 콜마르전투(1946년 1월 20일∼2월 4일) 결과 알자스 지방은 다시 프랑스 땅이 되었다.

알자스 지방은 포도주 산지로 유명다. 오래전부터 이곳은 포도주가 유명했으며 콜마르는 포도주를 거래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곳이다. 시내에는 로슈(Lauch) 강이 흐르는데 작은 운하로 만들어져 오래전부터 운송로로 사용되었다. 근래 들어 운하주변은 관광지로 변모되었으며 ‘작은 베니스’로 불리기도 한다. 인구 6만명 정도의 소도시로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무대가 된 지역이자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생 마르탱 성당(13세기)을 비롯하여 옛 건물이 많은데 튜더식 가옥들이 아담한 구시가지를 이룬다. 그리고 옛 도미니크회 수도원인 건물을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운터린덴미술관(Musee Unterlinden)은 콜마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독일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1472~1528)의 <이젠하임 제단화>를 소장하고 있다. 섬유·피혁·담배·기계·식품 등의 공업이 활발하며, 뉴욕항(港)의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한 바르톨디의 출신지이다.

브루아트 분수(Fontaine Bruat)

콜마르에서 태어난 브루아트 제독(1796~1855)에게 헌정하기 위해 1864년 바르톨디가 조각한 분수이다. 콜마르에서는 물을 흐르게하는 시스템을 갖춘 최초의 분수이다. 분수대는 4대륙을 상징하는데, 1940년 나치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58년 청동상으로 복원되었다. 원래 있던 사암 조각은 바르톨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00 카루젤(Carrousel 1900 Colmar)

1900년에 만들어진 회전목마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이 소피를 안고 하늘을 걷는 장면에 등장하는 OST <인생의 회전목마>를 감상하며 거닐어 보자.

앙시 마을과 박물관(Le Village Hansi)

콜마르에는 앙시(Hansi)라는 유명한 삽화작가가  있다. 본명이 장 자크 왈츠인 앙시는 제1,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으며 군인으로 참전할 만큼 애국주의 예술가였고 세계대전 관련 풍자만화나 알자르 전통복장을 한 지역민들의 일상을 자주 그렸는데, 콜마르 마을 곳곳에서 그의 작품을 확인할수 있다. 1층에 삽화 원본들이 전시돼 있어 수채화 삽화가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입장 화~토 10:00-18:00

운터린덴 박물관(Musee d'Unterlinden)

13세기에 도미니크회 수녀원으로 시작한 이곳은 19세기 초엽 이후 뮤지엄으로 사용되고 있다. 명화 외에도 알사스 지방의 와인에 관련된 민속 자료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소장품은 루카스 크라나흐의 <라 멜랑꼬리>(1532)와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Isenheim Altarpiece by Matthias Grunewald))>이다. 제단화는 콜마르 근처에 있는 이젠하임 마을의 성 안토니오 수도원의 제단을 위해 그뤼네발트가 그린 그림들인데, 독특하게도 피부병을 앓는 예수가 묘사돼 있다. 당시 지역에 창궐했던 맥각균에 의한 피부병의 참담한 고통을 그대로 드러낸 걸작으로 꼽힌다.

입장 수~월 10:00-18:00  입장료 13유로

도미니칸 성당(Eglise des Dominicains)

콜마르 도미니크회 성당은 생 마티외 교회(Église Saint-Matthieu), 콜마르 생 마르탱 교회(Église Saint-Martin de Colmar) 등과 함께 지역의 주요한 중세 종교 건축물이자 관광명소로 꼽히고 있다. 시내 중심가 시립 도서관 바로 옆 도미니크회 광장(Place des Dominicains)에 세워졌다. 성당의 건립공사는 1289년 시작되어 1364년에 끝이 났다. 중세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로 거대한 예배당 한가운데 첨탑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구조이다. 성당의 양쪽 벽면에는 화려한 채색 유리가 끼워진 끝이 뾰족하고 기다란 아치형 창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다. 예배당 내부는 아치형 천장과 조각, 종교화 등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단 한가운데 걸려있는 지역 출신의 중세 유명 예술가 마르틴 숀가우어(Martin Schongauer, 1448~1491)의 작품 <장미 덤불 속의 성모 마리아(La Vierge au buisson de roses), 1473>가 유명하다. 성모 마리아의 붉은 옷자락과 정교한 금색 장식물의 화려한 대비가 인상적인 이 중세 그림을 보기 위해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성당을 찾아오고 있다. 

볼테르의 집(Maison Ou Sejourna Voltaire)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계몽사상가인 볼테르는 1753년 10월 콜마르에 도착하여 자신의 연대기(Annals of the Empire)를 집필하며 의회 의원들과 그들의 풍부한 도서관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이때 그는 1609년에 재건된 이 15세기 저택에서 부인 마담 골(Mary Madame Gall)과 함께 지냈다. 볼테르가 지낸 기간은 불과 13개월 남짓이었지만 콜마르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을 것이다.

중세곡식창고(Cour Du Weinhof)

중세 시대에 곡식창고로 쓰던 건물로, 지금은 전용 욕실을 갖춘 객실을 제공하는 호텔로 영업하고 있다.

바르톨디 박물관(Musée Bartholdi)

차가 다니지 않는 작은 상인의 거리(Rue Des Marchands)에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한 위대한 예술가 바르톨디를 기리는 박물관이 자리한다. 이 마르샹 거리의 관광 안내판에 자유의 여신상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바르톨디 박물관을 상징하는 작품이 바로 자유의 여신상이기 때문이다.

바르톨디는 콜마르가 낳은 천재 조각가이자 건축가로 콜마르의 부잣집에서 1834년 막내아들로 태어났는데, 바르톨디가 태어나 살던 저택을 개조하여 1922년에 전시공간으로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바르톨디 박물관에 대한 콜마르 시민들의 자부심은 아주 대단하다. 그리고 이 박물관은 특히 프랑스 다른 대도시를 여행하면서 그의 조각상을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의미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바르톨디 박물관은 콜마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봐야 하는 곳이다.

입장 수~월 10:00-12:00, 14:00-18:00 입장료 6유로

박물관의 좁은 입구를 통과하면 박물관 건물 앞에 꽤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바르톨디가 어렸을 때 뛰어 놀던 저택의 정원이 이제 박물관 마당이 되어 있었다. 그 박물관 마당에 많은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햇빛은 위대한 예술가가 태어난 것이 수긍이 갈 정도로 풍부하게 펼쳐져 있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박물관 마당 중앙에서 구를 떠받치고 있는 청동조각상이 시선을 잡아 끈다. 파리의 살롱에 전시되어 있던 이 작품의 제목은 <지구를 떠받치는 위대한 사람들>이다. 지구를 받들고 있는 세 사람의 조각상은 각각 저울, 칼과 방패, 망치를 가지고 있는데, 정의, 애국, 노동을 삼위일체로 표현하고 있다. 바르톨디 마음 속의 사상과 영혼을 한껏 머금은 훌륭한 작품이다.

박물관 내부뿐만 아니라 박물관 건물에도 바르톨디의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는 르네상스 양식의 정문도 19세기 후반에 바르톨디가 직접 디자인한 구상작품이다.

박물관 정문의 기둥 위를 자세히 보면 세 마리의 동물이 장식되어 있는데, 가운데 조각상은 양의 모습을 한 사람으로, 사람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두 동물은 사자의 모습을 한 천사로 표현되어 있다. 고개를 중앙으로 돌린 사자의 호위를 받으며 양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문 위에 걸터앉은 모습이 여행자를 웃음짓게 한다.

박물관 내부는 그라운드 층을 포함하여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19세기의 대표적인 구상 조각가 바르톨디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은 파리의 바르톨디 아틀리에에 있던 자유의 여신상 스케치와 조각상, 건축물 설계도, 그림, 판화 등이다. 모두 그가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남긴 유품들이다. 바르톨디가 죽은 후 그의 미망인이 1907년 이 저택을 콜마르 시에 기증하게 되었는데 바르톨디의 유작을 일반에게 공개해 달라고 유언하면서 일반인들도 그의 훌륭한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박물관 1층에는 바르톨디 가문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는 방이 있는데 초상화보다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은 방의 천장과 벽면을 도배하다시피 장식하고 있는 중국의 청화백자들이다. 동양에 비해 도자기의 발달이 늦었던 서양인들은 이렇게 한 방을 가득 채울 정도로 동양의 도자기를 사랑했다. 특히 바르톨디가 이토록 중국 도자기들을 모은 것은 동방의 문물을 사랑했던 그의 면모 때문이었다.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바르톨디는 이집트의 조각상들을 매우 흠모했음을 알 수 있다. 바르톨디는 1855년에 친구들과 이집트를 여행한 이후 이집트의 문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주로 조각과 건축에 흥미를 가졌던 바르톨디는 이집트 여행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조각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원래 회화를 전공했던 그는 이집트의 사막에 거대하게 들어선 스핑크스를 보면서 결국 조각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남긴 기념상 조각은 특이할 정도로 거대한 작품이 많다.

박물관 1층에는 바르톨디가 제작한 공공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매우 인상적인 전시실이 있었다. 그 중 프랑스 국민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작품은 바르톨디가 1880년에 제작한 <벨포르의 사자(Lion of Belfort)> 조각상이다. 바르톨디가 프랑스의 국민조각가로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이 뛰어난 조각상, <벨포르의 사자>를 통해서였다. 이 작품은 바르톨디가 1870년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프랑스의 패배에 자극을 받아 만든 작품이었다. 벨포르의 사자상은 프랑스군이 백일 넘는 전투를 통해 사수한 벨포르의 요새 아래에 세워진 조각상이다. 당시 프랑스의 여러 도시들이 프로이센 군에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연전 연패하던 상황에서 벨포르 만이 항전을 통해 도시를 지켜냈다.

벨포르의 역사를 소재로 하여 바르톨디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벨포르 사자상은 바르톨디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바르톨디의 벨포르 사자상은 프랑스인들에게 듬뿍 사랑을 받고 있다. 왜 프랑스인들은 벨포르의 사자를 그토록 좋아하고 있을까? 벨포르는 프랑스인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저항'과 '독립'의 가치를 그대로 보여주었고, 바르톨디가 조각한 벨포르의 수호동물, 사자는 프랑스 인들이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가치를 웅변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시실에 전시된 여러 벨포르 사자상을 보면 그가 이 사자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느껴진다. 그가 만든 사자만도 수십 마리에 달하고 기단 위에 앉은 사자상만도 여러 점이다. 사자의 크기도 다양하고 사자의 얼굴표정도 서로 다르며, 사자의 자세도 모두 다르니 바르톨디가 벨포르의 사자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그대로 전해진다. 결국 바르톨디는 앞발을 들고 일어서는 자세의 사자를 벨포르의 사자로 최종 결정한 것이다. 그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이 사자상이고 이제 이 사자상은 벨포르의 상징이 되었다.

바르톨디의 작품 중에는 거대한 조각상들이 많은데, 벨포르 사자상 옆에도 바르톨디가 조각한 <르 막티어 모덴느(Le Martyr Moderne)> 조각상이 사람들을 압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순교자라는 의미의 이 작품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손이 묶인 채 괴로워하고 있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순교자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고 있다. 제우스가 반역자를 알려주면 쇠사슬을 풀어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을 하였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이를 거절한다. 프로메테우스는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참혹한 고통을 견디면서도 무릎을 꿇지 않고 있다. 바르톨디는 이 '순교자'를 통해 부당한 압제에 견디는 고결한 신념을 형상화하고 있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프로메테우스의 표정과 그의 뒤틀린 근육을 보고 있으니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칼을 힘껏 치켜들고 말을 탄 채 질주하는 석상은 프랑스 민족의 영웅, 베르킨게토릭스(Vercingetorix)다. 그의 말발굽 아래에는 갈리아를 침공하다가 전사한 로마군의 시체가 누워있다. 이 동상은 옛 프랑스의 갈리아 부족과 로마군 간에 혈투가 벌어졌던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에 세워진 작품으로 이 역시 바르톨디의 작품역사에 명작으로 남아 있다.

베르킨게토릭스 상도 빼어나다. 베르킨게토릭스는 갈리아의 한 부족장이었다. 기원전 52년 갈리아 부족을 모아 총 궐기에 들어간 베르킨게토릭스는 천연의 요새에서 항전하며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로마군을 패퇴시켰다. 그러나 베르킨게토릭스는 결국 카이사르와의 끈질긴 공방전 끝에 패배하고 로마의 포로가 된 후 처형되었다.

하지만 그는 19세기 유럽에 몰아친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바르톨디의 손 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베르킨게토릭스가 로마에 대항한 민족의 영웅으로서 전투를 치르는 동상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바르톨디는 19세기의 복잡다단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시 프랑스의 시대사상을 반영한 조각상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대단히 정적인 우리나라의 동상을 보다가 역동적인 전투의 현장에 들어선 듯 한 베르킨게토릭스상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들의 시대가 직접 느껴지는 것만 같다.

출처 :&amp;nbsp;https://bonjour-lyon.fr/2018/01/place-terreaux-lyon-soir-pluvieux/

리용(Lyon) 시청사 앞 테로 광장(Place des Terreaux)에 있는 <바르톨디의 분수대>도 바르톨디의 작품이다. 커다란 바르톨디 분수대의 마차를 모는 인물상 아래에는 마치 마차에 몸이 박힌 듯한 4마리의 말이 지금 뛰쳐나가려는 듯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중 말 한 마리의 머리 부분이 바르톨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바르톨디 박물관에 전시된 이 한 마리 말은 코와 입을 크게 벌리고 놀란 눈을 하고 있고, 말 머리에 드러난 핏줄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마치 이 말은 무언가에 놀라 빨리 뛰쳐나가고 싶어하는 것 같이 역동적이다. 분수대의 4마리 말은 프랑스의 4대강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이 말머리는 어떤 강을 상징하는지 궁금하다. 바르톨디의 작품을 보면 볼수록 자신의 조국 프랑스를 사랑했던 그의 마음이 절절이 느껴진다.

이렇듯 콜마르는 물론이고 프랑스 다른 도시의 중심광장에서 품격 있는 분수나 역동적인 조각상을 만난다면 일단 바르톨디의 작품이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정도이다. 프랑스 인근 유럽국가나 미국에서도 프랑스의 위대한 조각가 바르톨디가 남긴 수많은 역작을 만나볼 수 있다.

물론 바르톨디의 명작 가운데 정말 유명한 작품을 하나만 꼽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다. 바르톨디 박물관에는 이 자유의 여신상 전시실이 따로 있고, 자유의 여신상을 운반한 선박 모형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바르톨디는 1875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었는데, 잘 보이지도 않는 여신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최선을 다해 만들었고, 흘러내리는 옷자락, 여신의 섬세한 발가락까지 정성을 기울여 만들었다. 잠시 프랑스에 서 있던 자유의 여신상은 1885년에 분해되어 배를 타고 미국으로 이송되어 뉴욕에서 다시 조립되었다.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이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한 것이다.

바르톨디 박물관에 전시된 여러 자유의 여신상 습작을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자유의 여신은 오른손에 ‘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빛’인 횃불을 들고 있고, 왼손에 미국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는데, 자유의 여신이 이 자세로 완성되기 위해 실로 다양한 자세를 구상해보고 엄청난 양의 습작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박물관 전시관 안에 있는 여러 자유의 여신 습작은 오른손과 왼손의 위치도 다르고, 옷과 횃불의 모양도 다르고, 머리장식도 모두 다르다. 심지어 초기의 습작을 보면 횃불을 들고 있는 신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기까지 하다. 자유의 여신상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바르톨디는 천재 조각가로 불리지만 이 천재는 다른 조각가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한 노력형 천재였던 것이다.

전시실을 한 칸 더 들어가면 인물 좋은 바르톨디의 초상화와 함께 바르톨디 어머니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런데 이 초상화의 얼굴이 바로 자유의 여신상의 여신 얼굴과 아주 닮아 있다. 실제로 바르톨디 어머니의 얼굴이 <자유의 여신상> 얼굴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모델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바르톨디는 어머니를 닮은 모델을 구하게 되었고, 결국 어머니를 닮은 모델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마침내 어머니를 닮은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자유의 여신상을 완성하였다.

바르톨디는 이 지구촌에서 자기 어머니의 모습을 가장 크게 만든 사람이다. ‘자유’를 여성에 비유하여 자유의 여신상을 설계하고자 고심했던 그는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여성,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자유의 여신상 설계를 했다. 바르톨디 어머니의 얼굴을 닮은 자유의 여신을 보고 수많은 미국의 이민자들이 꿈을 키우고 있으니 바르톨디의 어머니는 꿈에라도 이런 현실을 상상해 보았을지 모르겠다.

콜마르의 수많은 가게에는 자유의 여신상 장식들이 바르톨디의 유산으로 남아있었다. 이 자유의 여신상 기념품을 제외하고라도 콜마르 구시가를 여행하다 보면 바르톨디가 그의 고향에 남긴 아홉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입장 수~월 10:00-12:00, 14:00-18:00 입장료 13유로

숀 가우어의 집(Maison Schongauer)

백조의 집이라고도 하는 이 집은 화가인 숀 가우어가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숀가우어(Martin Schongauer, 1450~1491)는 콜마르에서 1445년에 부르주아지의 권리를 사들인 금세공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숀가우어는 플랑드르에서 그림을 배운 후 콜마르로 돌아와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장미 덤불 속의 성모 마리아>를 그리고, 몇 년 후 작업실을 설치하기 위해 이 백조의 집(Zum Schwan)을 사들인다. 이후 약 20년 간 이곳에 살며 많은 화가, 조각가, 상인, 공예가들과 교류했다.

메종 피스테르(Maison Pfister)

금융업자였던 루드비히 쉬러(Ludwig Scherer)를 위해 1537 년에 지어진 집이다. 중세시대의 건축물이지만 콜마르의 건축 중 첫 번째 르네상스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나무로 된 갤러리, 팔각형 탑과 성서적·세속적 장면을 나타내는 벽화로 유명해져 지금은 옛 콜마르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피스테르’라는 이름은 1841년에서 1892년까지 이곳에 살았던 가족의 이름을 딴 것이다.

메종 아돌프(Maison Adolph)

1350 년 경에 지어진이 건물로 콜마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다. 19세기 말 고딕 풍의 그림창을 제거하고 거주했던 아돌프 가족의 이름을 따서 메종 아돌프라도 부른다. 아돌프의 집 옆에는 1592년에 만들어진 우물이 있는데, 두 마리의 사자 머리가 받치고 있다. 이 우물은 원래 상인의 거리에 있던 것이다.

생마르탱 대성당(Cathédrale Saint-Martin)

콜마르 도미니크회 성당(Église des Dominicains de Colmar), 생 마티외 교회(Église Saint-Matthieu) 등과 함께 지역의 주요한 중세 종교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생 마르탱 교회(Église Saint-Martin)’는 시청과 가까운 시내 중심가 성당 광장(Place de la Cathédrale)에 세워졌다. 

1234년에 시작된 대규모 교회 건립 공사는 백년 후인 14세기 중반에야 끝이 났다. 지어졌을 당시 유행했던 고딕 건축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이후 몇 차례 큰 보수공사를 겪으면서 르네상스 건축 요소도 섞여 들어갔다. 콜마르에 남아있는 가장 거대한 중세 교회답게 기다란 아치형의 창과 첨탑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벽면 곳곳에 조각된 생동감 넘치는 표정의 이무기돌이 인상적이다. 측면에는 지붕과 상단의 장식이 독특한 사각 종탑이 하늘 높이 솟아있다. 예배당 내부는 채색 유리창과 성인 조각상, 바로크 양식 오르간, 종교화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코이퓌스(Le Koïfhus)

1433년 착공해 1480년 완공된 것물로, 16세기에 인접한 두 개의 건물이 추가됐다. 19세기에 철거될 뻔했지만 1895년에서 1898년 사이에 복원되었다. 이후로도 몇 차례의 복원이 시도돼 마지막 단계는 2002년에 완성되었다. 이때 1976년에 도입 된 르네상스 사암 난간 구조도 함께 복원됐다.

코이퓌스는 옛 세관 건물이자 콜마르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건물이다. 이곳을 랑시엔두앙(l'Ancienne-Douane)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오래된 세관’이라는 뜻이다. 위층인 1층에서 물건을 가져오고 내보냈으며, 건물은 창고로 사용됐다. 0층은 1534년 창설된 알자스의 도시연맹의 데카폴리스(Decapolis) 대의원회의가 열렸고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해 극장이나 사무실, 카톨릭 학교로 쓰이기도 했다.

슈벤디 분수(Fontaine Schwendi)

코이퓌스 앞 랑시엔두안 광장에는 슈벤디 분수가 놓여 있다. 바르톨디의 작품으로 1896년에 만들어진 이 분수 위에는 라자르 드 슈벤디(Lazare de Schwendi) 장군이 우뚝 서 있다. 그는 16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장군으로서 헝가리에서 터키군의 공격을 막은 장군이다. 이 슈벤디 장군이 콜마르 인들에게 환영을 받는 것은 그가 치른 전투가 위대했다기보다 그가 가져온 포도가 콜마르의 역사를 바꿨기 때문이다. 슈벤디 장군이 번쩍 쳐들고 있는 오른손을 자세히 보면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는데 손에 들려있는 것은 바로 포도나무 가지이다. 

이 동상은 슈벤디 장군이 터키군과 전투를 치르던 헝가리 지역의 포도나무 종자를 콜마르로 들여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다. 그 후 콜마르는 오랜 기간 동안 와인의 고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바르톨디가 세운 조각상들은 하나하나가 이렇게 모두 콜마르의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담고 있었다.

쿠베르 시장(Marche Couvert)

쿠베르 시장은 알자스의 음식물과 특산물이 가득한 시장이다. 본래에는 중세시대 시장 상인들이 바닥이 평평한 배를 타고 와서 자기 화물을 시장에 편하게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었다. 운하로 연결된 시장의 문을 통해 포도 같은 수많은 특산물이 운하로 분주하게 오르내리는 당시 모습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시장 내부는 시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넓고 쾌적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이 현대적 실내시장의 천장은 돔 야구장 같이 철제 프레임으로 막아 두어서 비가 와도 방해 받지 않고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어 있다.  철제 프레임으로 된 천장 사이에는 투명한 유리 천장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어서 오전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마르세 꾸베르 안에는 꽃가게, 빵가게, 식료품 가게, 과일가게, 야채가게, 기념품 가게와 저렴한 먹거리 가게까지 콜마르의 특산물과 음식은 없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모두 모여 있다. 잘 건조시킨 소시지와 살라미(소고기와 돼지고기의 등심살을 혼합해 향신료와 기름 등을 섞은 것으로 실온에서 1~2년 보존됨)를 시식해 볼 수도 있고 브레첼(Brezel, 프레첼)이나 크루아상(croissant) 같은 빵도 맛있다. 브레첼은 밀가루 반죽을 길게 만들어 가운데에 매듭이 있는 하트 모양으로 구운 빵이다. 빵의 가운데 매듭을 보면 두 개의 팔이 갈라져 나온 것 같이 보이기도 하는데, 기도를 장려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본떠서 브레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알이 밤송이처럼 굵은 알자스 포도도 가득하며 특히 알자스에서 널리 재배되는 대표적 품종인인 리즐링(Riesling) 포도가 많다. 이 알자스 포도는 프랑스 동북부 보주 산맥(Vosges Mts.) 동쪽에 길이 120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포도원들에서 자라고 있다.  파이의 일종인 투르트(tourte)는 묘하게도 소시지와 고기를 파는 가게에서 함께 팔리는데, 투르트가 돼지고기를 많이 넣어 만든 파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투르트는 돼지고기를 여러 가지 향기가 나는 야채들과 함께 짓이긴 후 파이로 만들어 오븐에 구운 것이다.

생선장수 구역(Fishmonger)

과거에 대부분의 전문 어부와 뱃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이다. 그들은 강력한 조합회사에 소속돼 있었고, 잡은 물고기를 한 곳에 저장했다. 1706년 이곳에 거대한 화재가 발생해 40채가 넘는 주택이 불타 버린 적이 있는데, 1978년부터 1981 년까지 대대적인 재건축 작업을 강행해 태너 지구(Tanners district)와 그림 같은 쁘띠 브니즈 사이에 있는 이 구역의 반목조 주택을 복원할 수있었다.

쁘띠 브니즈(Le Petite Venise, 쁘띠 베니스) 

콜마르의 강변거리로, 강을 따라 늘어서 있는 16세기 화려한 반목조 알자스 전통 가옥들을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원색을 사용한 나무로 지어진 옛날 스타일의 고풍스러운 집들, 파스텔색 벽, 꽃이 가득한 창들, 예쁜 간판들로 꾸며진 거리의 모습, 그 사이를 흐르는 운하 덕분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쁘띠 브니즈는 이름 그대로 프랑스의 작은 베니스라고 할 만큼 이탈리아의 베니스(베네치아)를 닮았는데, 아름다운 강변경치를 간직한 곳으로, 거리 한가운데에는 콜마르가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알자스 지방의 대표적인 무역도시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로슈(Lauch) 강이 관통하고 있으며, 이를 연결하는 작은 다리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특히,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강변을 따라 쭉 늘어서 있는 반목조가옥들이 인상적이다. 건물 대부분이 알자스 특유의 건축미를 가졌을 뿐 아니라, 밝고 화려한 색깔로 칠해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근래에는 배를 타고 16세기 전통가옥들을 관람하는 보트여행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행객들은 강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거나, 근처에 있는 자연사 인류학박물관(Museé d'Histoire naturelle)에 들러 다양한 고고학 유물들과 동물표본을 둘러볼 수도 있다.

로젤만 분수(La fontaine Roesselmann)

쁘띠 베니스 옆의 작은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분수대에서 바르톨디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바르톨디가 콜마르에 살던 1888년에 제작한 로젤만 분수(La Fontaine Roesselmann)이다.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왼손에 방패를 잡은 장 로젤만(Jean Roesselmann)은 조용한 듯 하면서도 결의에 찬 모습으로 서 있다.

13세기 콜마르에서 짐승 가죽을 다듬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장 로젤만은 콜마르의 독립을 위해 스트라스부르와의 전투에서 콜마르 시민군을 이끌었던 사람이다. 로젤만은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용맹했던 그는 아직도 콜마르 인들에게 영웅으로 남아있다. 바르톨디는 고향의 영웅 로젤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로젤만 분수대를 조각한 것이다.

프랑스 프러시아 전쟁 당시 콜마르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가 싸웠던 바르톨디는 고향의 영웅인 로젤만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20세기의 전장을 경험한 바르톨디는 ‘자유’를 갈망했고 결국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자유의 여신상 건립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바르톨디가 고향의 선배에게 바친 작은 분수대는 오늘도 알자스의 햇빛을 받으며 우뚝 서 있다.

콜마르 급수탑(Château d'Eau de Colmar)

1886년에 제작된 급수탑으로 1983년부터는 급수탑으로 쓰이지 않았다. 알자스에서 보존된 가장 오래된 급수탑이며 만들어졌을 당시 놀라운 계단과 외관으로 눈길을 끌었다. 높이 53m의 탑 안에는 물 1톤이 수용될 수 있었다고 한다. 콜마르 주민들이 즐겨 산책했던 공원에 자리해 있는데, 이 공원을 사람들은 흔히 ‘급수탑의 공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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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마르 관광지 한국어 가이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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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마르 지도

설명자료에 있는 관광지들 중심의 한국어 지도는 요기 올려 두었다.

옷, 패션 트렌드, 운동화, 쇼핑, 신상품, 신발, 자켓, 코트, 탈모, 모발이식, 미용, 성형수술, 구두, 부츠, 샌들, 여름 신발, 바지, 롱팬츠, 팬츠, 양말, 모자, 캡, 나이키, 아디다스, ABC 마트, 롱부츠, 첼시부츠, 티셔츠, 원피스, 정장, 수트, 가방, 귀걸이, 목걸이, 반지, 마스크, 시계, 팔찌, 패션, 백화점, 의류, 옷, 머리띠, 롱패딩, 패딩, 점퍼, 야상, 재킷, 화장품, 크림, 스킨, 아이섀도우, 아이브로우, 올리브영, 롯데닷컴, 하프클럽, 니트, 블라우스, 스커트, 치마, 주름바지, 통바지, 크롭티, 와이셔츠, 영어, 토익, 학원, 반찬, 다이어트, 도시락, 닭가슴살, 샐러드, 감자, 계란, 집밥, 요리, 고기, 소고기, 닭다리, 치킨, 아침밥, 삼겹살, 곱창, 밀키트, 선물세트, 저녁 메뉴, 볶음밥, 탕수육, 광어회, 연어회, 해산물, 냉동식품, 참치회, 잡곡밥, 아이스크림, 배스킨라빈스, 배달의 민족, 배달음식, 떡볶이, 튀김, 오징어튀김, 순대, 오뎅, 토마토, 딸기, 사과, 귤, 오렌지, 콤부차, 홍차, 레몬티, 커피, 카누, 네스프레소, 캡슐커피, 식품 직구, 영양제, 비타민, 아이허브, 신용카드, 소액대출, 대출, 보험, 보험상담, 저축은행, 여성대출, 학자금대출, 대출계산기, 대출이자, 주부대출, 임플란트, 치아보험, 자동차 렌트, 제주도 렌트, 렌터카, 자동차, 승용차, 중고차, 자동차보험, 자동차사고, 청약주택, 청약통장, 정기예금, 적금, 주택정약, 아파트, 내집마련, 빌라, 30평대, 부동산, 소형아파트, 치아, 어금니, 송곳니, 법률상담, 모기지론, 대학 편입, 학사편입, 대학교, 웹호스팅, 클라우드, 보안솔루션, 홈페이지, 앱제작, 동영상제작, 영상편집, 기부, donate,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세계구호,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전문자격증, 자격증, 학원, 사이버대학교, 학사, 학위취득, 학점은행제, 토익, 영어, 외국어, 통역, 번역, 동시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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