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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미국 여행 URL 복사

시카고 오리엔탈 박물관(Oriental Institute Museum) 관람기

2016. 12. 18. by 솜글

가기 전에 한국 웹사이트와 블로그들을 많이 뒤졌는데 이곳 관람기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혹시 갈 사람들이 있다면 도움이 될까 해서 올리는 포스팅이다.

참고로 오리엔탈 박물관 한국어 가이드맵은 아래 링크에 올려 두었다.

오리엔탈 박물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을 위한 설명

시카고 대학 고고학 연구소(Oriental Institute)의 박물관으로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모티프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인류 문명의 발원지인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아나톨리아(지금의 터키 지역), 이스라엘, 시리아,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에서 지난 100년 간 수많은 현장답사와 발굴을 통해 얻은 결과물을 전시하고 있어 작지만 매우 훌륭한 박물관으로 꼽힌다. 함무라비 법전 조형물, 므깃도의 상아 예술품, 사해 문서 조각, 투탕카멘 거대 석상과 미라, 금속 공예품 등 수없이 많은 고대 근동 지역의 유물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운영시간] 화~일 10:00-17:00 / 일요일 오후 2시 무료영화 상영
[입장료] 무료

굉장한 뮤지엄인데도 한국인들이 별로 찾지 않는 듯하다. 나야 비교적 고고학을 좋아하는 일반인인지라 필수 방문지였지만.

일요일 아침에 방문했는데, 10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기다려야 했다.

입구 문도 참 예쁘게 해 놨네.

 

기다림은 언제나 지루하다...ㅠㅠ

페르세폴리스 특별전 예정이었나 보다. 내가 갔을 땐 안 했는데, 아쉽.

드디어 입장.

박물관답지 않게 내부가 굉장히 조용하고 또 차분하다. 사람 많이 없다.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원한다면 도네이션할 수 있다.

전시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 아저씨는 제임스 헨리 브레스티드 아저씨다.

제임스 헨리 브레스티드(James Henry Breasted, 1865-1935)
오리엔탈 박물관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20세기 미국 최고의 역사학자이자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모델이기도 한 브레스티드의 두상을 만날 수 있다. 페르시아, 이집트 등의 문명을 발굴하고 연구해 학술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긴 고고학자로 꼽힌다.
고대 오리엔트사, 특히 이집트 학에 뛰어났으며 시카고 대학교에서 이집트 학을 강의하고 이집트와 수단에서 조사단을 직접 지휘했다. 1919년 록펠러 재단의 원조를 얻어 시카고 대학교에 오리엔트 연구소를 설립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는 용어의 창시자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땅을 만드는 데 학문적 뒷받침을 하기도 했다.

요건 도장이다.

흙판에 원통형 저 도장을 저렇게 데구르르 굴려서 봉투를 봉인하거나 하는 데 쓰였다.

 

도장은 기원전 5000년대 후반 메소포타미아의 원시 농경사회에서 발견된 것이 시초다. 처음에는 돌, 점토, 조개껍데기, 뼈, 금속 등에 그림이나 문자를 새겨 천이나 점토에 찍었다. 후대로 가면 사진과 같이 원통형 도장으로 변해서 굴려 찍곤 했는데, 이것이 발칸으로 전해져 유럽 도장의 기초가 되었다.

함무라비 법전

기원전 1792~1750년경의 것이다. 1901년 아크로폴리스 지역의 드 모르강(de Morgan)은 검은 섬록암으로 된 세 개의 큰 파편이 발견됐는데, 서로 완벽하게 들어맞았다고 한다. 결합해 보니 높이 212cm, 상층의 대좌(臺座)의 직경이 약 60cm미터인 석비였다. 위쪽에는 바빌론의 첫 왕조(기원전 1728-1686)의 제 6대 왕이었던 함무라비가 앉아 있는 태양신 사마쉬 앞에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한 부조가 있고 이 밖의 표면 전체는 300여 개의 법률을 쐐기문자로 새긴 긴 비문으로 덮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다. 진본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시카고 오리엔탈 박물관에 있는 것은 모사품이다.

소형 수메르인 입상

기원전 2900-2600년경의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초기 왕조 시대에는 조각상을 만들어 성소에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나면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신전을 재건축할 때 매장했다. 이 수메르인 상은 텔 아스마르 유적의 아부(Abu) 신전의 제단 구덩이에 묻혔던 조각들이다. 오른쪽 밑에 있는 눈 땡그랗게 뜬 대머리 아저씨는 다른 남성상과 달리 수염과 머리카락이 없기 때문에 제사장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걸어가는 사자 벽화

성경에서 '느부갓네살'이라고 하는 신바빌로니아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chadnezzar II) 시대의 것이다.

1899년 독일 고고학자가 발견한 벽화로, 포효하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채 고대 바빌론 유적의 잔해 속에 묻혀 있었다. 시카고 대학의 오리엔탈 연구소에 있는 두 점의 벽화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복원한 것으로 진흙 벽돌로 만든 벽에 파랑, 초록, 검정, 노랑, 하양으로 칠한 벽화이다.

고대 근동에서 사자는 힘과 능력의 상징이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자는 바빌론을 대표하는 여신 중의 여신, 이슈타르(Ishtar)를 상징했다. 그래서 바빌론에는 사자 그림이나 조각이 매우 많다. 이슈타르를 상징하는 이 사자 벽화는 바빌론의 중심 도로, 즉 개선한 군대나 외국이 사절단이 통과하는 ‘행렬의 길’의 양쪽 벽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독일 페르가몬 박물관에 가면 복원된 이 길을 볼 수 있다.

라마수.

아시리아 지역의 코르사바드(khorsabad) 발굴에서 나온 아시리아의 왕 사르곤 2세의 궁전의 장식 부조이다. 왕좌가 있는 방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것으로 무게가 40톤에 이르며 황소의 몸에 사람의 머리가 달렸다.

사르곤 2세는 반란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사르곤 왕조를 창설한 군주로, ‘사르곤’이라는 이름은 ‘정통 왕’이라는 뜻의 아시이아 어 ‘샤루 킨(Sharru-Kin)’을 히브리어로 번역한 것이다. 사르곤 왕조는 페르시아 만에서부터 지중해에까지 이란, 소아시아, 아르메니아, 이집트에 이르는 세계 최초의 세계제국을 실현했다.

이 동물은 ‘라마수(lamassu)’로 알려진 정령이다. 정령은 모두 우투쿠라고 불리는데, 이들 중 선한 정령들을 라마수라고 했다. 기독교의 천사와 같은 존재로 신과 인간의 중개자로 활약했다. 인간의 수호신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는데, 사람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덮쳐오는 악령이나 재앙에서 보호해 주었다. 인간의 모습이지만 새나 동물의 머리를 지닐 때도 있으며, 등에는 네 개의 새의 날개가 있다고 한다. 이 라마수 역시 인간의 머리, 황소의 귀와 몸, 그리고 새의 날개를 가진 복합적인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측면에서 보면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면에서 보면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다리가 4개가 아니라 5개로 만들어져 있다.

신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나시르팔 2세 부조

얼마 전 급진 수니파 무장 세력이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의 고대 아시리아 유적을 파괴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이라크 북부 모슬(Mosul) 박물관의 석상과 조각품을 파괴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님누드(Nimnud)까지 파괴한 것이다.

님누드 유적은 9세기 초 지중해에서 이란까지 광대한 지역을 정복했던 아슈르나시르팔 2세가 자신의 권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새롭게 건설한 수도였다. 사방이 트여있는 초원지대의 특성상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높고 견고한 성곽이 필요했고 왕은 사각형의 성곽 남서쪽 높은 곳을 택해 궁전과 신전을 조성했다. 뒤편으로 물길을 내고 바깥쪽으로 다시 성벽을 쌓아 운송과 방어목적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궁전 출입구에는 어김없이 거대한 황소 몸통에 솟아오른 날개를 달고 긴 턱수염에 높은 관모를 쓴 사람 얼굴의 라마수(lamassu)를 설치해 제국의 위용과 권능을 과시했다. 이 부조는 아슈르나시르팔 왕을 표현한 것으로, 원래 커다란 하나의 장면 중 일부였다.

'파라오'라면 떠오르는 투탕카멘의 거대 석상

높이가 525cm에 이른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제18왕조의 12대 파라오로 9살에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유일신 아텐(Aten)에 대한 신앙을 상징하는 ‘투탕카텐’이었으나 후에 아멘(Amen)을 국가 최고신으로 섬기면서 아멘 신앙을 상징하는 ‘투탕카멘’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어린 투탕카멘은 아이(Ay) 장군과 재상 호렘헵(Horemheb)의 도움으로 정권을 유지했으나 18살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호렘헵이 왕위를 계승했다.

이 석상은 이중 왕관과 파라오를 상징하는 두건인 네메스(Nemes)를 쓰고 있다. 이마 위에는 왕의 적들을 향해 불을 내뿜는 성스러운 뱀, 우라에우스(Uraeus)라는 코브라가 장식돼 있다. 기둥 뒤에 있는 카르투슈(왕이나 신의 이름 등을 둘러싼 선)에서는 투탕카멘의 조력자였던 아이 장군과 호렘헵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시카고 오리엔탈 연구소는 이 석상을 두 개 발굴했는데, 하나는 이집트 정부 기증해 현재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오리엔탈 박물관의 자랑인 산헤립 프리즘(Clay Prism of Sennacherib Deity Holding a Flowing Vase).

성경에는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Hezekiah)이 아시리아 제국 산헤립 왕(Sennacherib)의 침입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해 준 덕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지 않았다고 나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천사 군대가 산헤립 왕의 군대를 몰살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만은 신께서 친히 지켜 준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며, 이때부터 예루살렘은 절대로 외국 군대에 함락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대중 사이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이 산헤립 프리즘은 조금 다른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산헤립 프리즘에는 산헤립 왕이 히스기야로부터 크게 승리했다고 나온다. 히스기야가 예루살렘에 산헤립 군대가 쳐들어와 포위되는 바람에 항복한 것인지, 아니면 성이 함락되기도 전에 그냥 산헤립의 군대에 굴복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에게 엄청난 양의 조공을 바쳤다는 점이다. 이 프리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나의 멍에에 복종하지 않은 히스기야에 대해 말하겠다.

나는 그의 46개의 요새와 그 주변의 작은 마을 들을 포위하고 포위 기계를 사용함과 동시에 보병으로 하여금 성벽에 구멍을 뚫고 침입하거나 사다리로 성벽을 넘도록 해 함락했다. 그 안에 살던 주민들을 끌어냈더니 모두 200,150명이나 되었다. 말, 당나귀, 낙타, 소와 양 등도 획득하였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에 새장에 갇힌 새처럼 포위되었다. 나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누구도 들어가거나 나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빼앗은 요새들은 아스돗의 왕인 미틴티와 에크론의 왕인 파디, 그리고 가자의 왕인 실-벨에게 주었다.

나는 이전에 부과했던 조공 이외에 나의 영광에 부합하는 새로운 조공을 바치도록 했다. 나의 무시무시한 영광은 히스기야를 압도했고 그가 포위를 대비해 보강한 군사들은 싸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히스기야는 나에게 금 30 달란트, 은 800 달란트, 많은 양의 전석, 상아로 장식된 침대, 의자, 코끼리 가죽, 흑단, 그 외에 귀중한 보물들을 조공으로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의 딸, 첩, 여자 가수 등도 함께 조공으로 바쳤다. 히스기야는 이로써 나에게 복속하였다.

이것도 오리엔탈 박물관의 자랑인 사해문서 보관 토기

사해 문서란 사해의 북서안에 있는 고대 유적 쿰란(Qumran)에서 발견된 구약성서 두루마리 조각으로 20세기 고고학 역사상 최고의 발견 중 하나로 꼽힌다. 1947년 양치기 소년이 부근에 있는 사막의 동굴(오른쪽 사진)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이 지역에는 기원전 8세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기원전 2세기부터 유대교의 한 파인 에세네(Essenes) 파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사해문서를 남겼다.

사해 문서의 약 1/4은 구약성서에 해당하는데 히브리 어와 아람 어로 필사되어 있었다. 폭 44cm, 길이 1-8m의 양피지 두루마리들에 잉크로 글씨를 쓴 다음 린넨으로 감싸 도자기 항아리에 보관했다. 일부는 파피루스에 쓴 것도 있고 동판에 새겨진 것도 있다. 유적 내 11곳에서 조금씩 발견됐는데, 아마 훗날 로마 군이 쳐들어 왔을 때 문서를 보호하고자 항아리에 넣고 여기저기에 분산시켜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제작한 연대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 사이로 추정된다. 이 조각에 적힌 글은 시편 일부인데, 성서의 시편과 유사한 에세네 파의 시편 조각이다.

두루마리들의 구약 부분에는 에스더(Esther) 서를 뺀 구약성서가 모두 들어있다. 메시아의 서, 하박국의 주석서(註釋書), 계율의 지도서, 라메크의 묵시록 등도 수록되어 있었다. 이 사본들은 이전까지 제목만 알려졌고 실물은 사라졌던 것인데, 사해에서 나온 구약성서는 오늘날의 것과 거의 같다.

이집트의 쐐기문서를 새긴 쐐기판들.

거대 황소 머리상

페르세폴리스에 있던 것이다.

페르시아 아케메데스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는 다리우스 왕(기원전 522-486)이 건립하기 시작해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기원전 486-465)와 손자 아르타크세르크세스(465-424)가 완성했다. 페르세폴리스는 거대한 계단 모양의 뜰 위에 세운 거대한 궁전 복합단지였는데, 알현실인 아파다나(Apadana) 옆에는 크세르크세스 왕이 짓기 시작한 100개의 기둥이 있는 홀이 있다. 이 건물 북쪽의 주랑 현관 양쪽에는 수호의 역할을 하는 2개의 거대한 황소 석상이 있었는데 이 유물은 그 중 하나이다. 높이가 무려 216cm에 달한다.

황소 머리는 돌출되어 있지만 몸통은 현관 벽에 부조로 새겨져 있다. 두 귀와 뿔들은 따로 추가됐다. 고대 근동 건축에서는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 이런 수호 상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황소랑도 기념샷.

 

보느라 바빠서 사진을 다 찍진 못했다.

나머지 유물은 맨 아래의 링크에서 보시길.... 라마수 같은 건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나올 때 이런 귀요미 기념품들도 있다. 아우 앙증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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