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노트/스페인 여행 URL 복사

[스페인] 코르도바 관광지 설명 자료(한국어 가이드)

2016. 10. 6. by 솜글
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고민하는 예비 여행자들을 위한 포스트들입니다. 한국어 인터넷에서 모은 것들과 외국(영어 또는 스페인어) 사이트에서 번역해 모은 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많은 정성을 들인 자료이므로 다른 곳으로 공유하지 마시고 개인적으로만 사용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페이지 맨 아래에서 본문 내용과 각 명소의 사진을 PDF 파일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파일 비밀번호는 somglebar입니다.
*자료가 도움이 되었다면 인사 한 줄 남겨 주세요.

코르도바(Cordoba)

과달키비르 강 중류,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앙에 위치한다. 8세기에 세워진 이슬람교 대사원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중세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이슬람교 색채가 남아 있다. 북쪽의 시에라모레나 산맥과 남쪽의 시에라네바다 산맥 사이를 차지하는 안달루시아 저지는 개발의 역사도 오래되고, 이슬람교도가 전한 관개·농경 기술에도 힘입어 농업지대로서 알려졌으며, 코르도바는 그 농산물 집산지이다. 전통 산업으로 이슬람 시대 이래의 피혁 제품과 각종 금속 가공이 있다. 그밖에 주위의 산지에 납 등의 광산도 있어서 공업도 활발하다.

 

코르도바 역사 지구는 현재 모스크-대성당 주변에 있는 모든 블록 내의 주택과 기념물 주변 거리, 그리고 이 거리에서부터 넓게 펼쳐진 구획된 토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역은 남쪽으로 과달키비르 강의 먼 제방(로마 양식의 다리와 성(城)을 포함)까지, 동쪽으로는 산 페르난도 거리, 북쪽으로는 상업 중심지의 경계까지 확장되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알카사르와 산 바실리오 거리를 포함한다. 이곳은 ‘교역과 방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인간이 정착하게 된 지역 유적이다. 초기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융성했던 카르타고의 거주 지역이었다가 도시의 전략적·상업적 중요성을 알아차린 로마인이 기원전 206년에 이곳을 점령하고 이스파니아(Hispania,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이베리아 반도의 옛 이름) 속주(屬州), 즉 바에티카(Baetica, 고대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에 설치한 3개 자치주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6세기에 이방인의 침략이 시작되면서 이베리아 반도(Iberian peninsula)의 로마 사회는 흔들렸고, 코르도바는 서(西)고트족에게 함락되었다. 이 시기에 많은 것이 파괴되었지만, 코르도바는 서고트족의 지배 아래 도시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었다.

 

711년에 코르도바가 무어인에게 점령당하고 압달라만 1세가 자신의 왕궁을 건립했다. 그는 786년에 로마의 야누스 사원이 있던 자리에 메스키타를 건설했으나 훗날 서고트족에 의해 다시 교회로 변경되었다. 이 작업은 2세기에 걸쳐 계속됐다. 코르도바는 예술과 지식의 탁월한 우월성을 지니고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하게 용인해 주면서 거대 왕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위용을 보자면, 코르도바는 다마스쿠스와 바그다드의 장관에 필적하는 300채 이상의 모스크와 수많은 궁전, 그리고 공공건물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칼리프가 다스리던 지역은 1009년~1031년의 격렬한 내전 이후에 붕괴되었으며, 메스키타만이 번영했던 시절의 상징물로 남게 되었다. 

 

1236년에는 페르디난드 3세가 코르도바를 점령해 다시 기독교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모스크는 대성당으로 바뀌었으며, 빈번한 무어인의 공격 위협을 막아내는 국경 도시라는 역할에 걸맞게 알카사르와 칼라오라 탑 사이에 새로운 방어 구조물을 높이 쌓았다. 모스크-대성당이 주변에 밀집한 이 역사적 중심지는 특징적인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와 함께 중세 도시의 구조를 상당 부분 잘 보존하고 있다.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기독교 세력이 손을 뻗으며 코르도바는 그 정치적·지성적 중요성이 많이 떨어졌지만 시에라모레나의 구리 광산 덕분에 상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산타 마리나 성당(Iglesia de Santa Marina)

13세기에 만들어진 건물로 모사라베의 흔적을 다소 보여준다. 옆에 있는 막달레나 성당과 유사성을 보여준다. 전면부에 벽을 지지하기 위해 세워진 버트레스가 육중한 느낌을 준다.

비문 유적(Fuente de la Piedra Escrita)

Calle Moriscos, Calle Costanillas, Calle Carcamo의 세 거리 사이 모퉁이에는 Fuente de la Piedra Escrita가 있다. 블루 스톤 철탑에서 부은 물이 두 사자 석상의 입으로 흘러내려 식수 공급의 역할을 하던 것인데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로마의 유적을 옮겨온 것이다. 왼쪽 사자는 원래 훼손이 심했던 것을 1982년에 복원한 것이다.

비아나 궁전(Palacio de Viana)

14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1981년까지 비아나 후작 가문의 저택으로 실제 주거지였으나 이후 일반에 공개되었다. 귀족 가문의 전형적인 집안 장식, 중후한 가구에서 우아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볼 만한 것은 무려 12개나 되는 안뜰이다. 이슬람 풍, 프랑스 풍 등 여러 가지 형태도 만들어져 있으며 섬세하게 나무를 심은 파티오도 마련되어 있어 ‘파티오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로마 신전(Templo Romano)

1950년 코르도바 시청을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하던 중 발견한 것으로 1세기에 지어진 신전 유적이다. 로마 주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대리석 소재의 코린트식 기둥들만 남아 있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둥 사이로 테라스가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텐디야스 광장(Plaza de Tendillas)

코르도바의 장군 곤잘로 페르난데스의 동상이 있는 큰 광장이다. 여기저기로 통하는 여덟 개의 길이 만나는 지점이자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유대인 지구(La Juderia)

메스키타 북쪽에 펼쳐져 있는 유대인 지구는 미로 같은 도로 사이사이에 유대교 예배당 시나고그와 14세기의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로마에 의해 고향인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되었던 유대인들은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에 많이 들어와 살았는데, 특히 이슬람의 수도였던 코르도바에 많은 유대인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코르도바의 유대인 지구는 다른 지역보다 규모가 크며,  좁은 골목길에 꽃들로 장식된 흰색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아프리카 도시의 느낌을 주는 하얀색 칠을 하고 중정 정원을 가지고 있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 특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 후안 미나렛(뾰족탑)(Alminar de San Juan)

9~10세기에 아랍 양식으로 지어진 작은 탑이다. 3.7m의 정사각형 바닥에 세워졌으며 대리석 기둥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카스티야가 이곳을 정복한 후 산 후안이라는 기사에게 양도되었는데 처음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두 개의 아치 장식이 눈에 띈다.

이슬람인의 집(La Casa Andalusi)

12세기의 저택으로 이슬람의 당시 주거 양식을 잘 보존해 놓고 있다. 작은 집이지만 아랍식 집이 갖추어야 할 중정 들을 알차게 갖추고 있어 즐기기에 충분하다. 실내로 들어서면 탁자 위에 안달루시아 문화에 관한 다양한 책들이 진열돼 있으며, 지하실에는 각종 생활도구를 전시해 놓았다.

유대인의 집(Casa de Sefarad)

스페인-북아프리카계 유대인을 가리키는 ‘Sefarad’는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유태인중 스페인의 유대인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곳에서는 스페인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던 유대인들의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산 바르톨로메 예배당(Capilla de San Bartolome en Cirdoba)

아주 작은 예배당으로 비교적 많이 소개되지 않은 곳이다. 15세기 초 무데하르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작은 공간이 터져나갈 듯한 아름다운 장식이 가득하다. 장식된 벽면에는 알폰소 11세의 명령으로 반들어졌던 Knights of the Band의 문장 패턴이 있어 주목된다.

살라자르 추기경 병원(Hospital del Cardenal Salazar)

본래 성당 신도들과 소년 성가대를 위한 학교로 지어졌던 건물이다. 그러다 1704년 코르도바 전역에 끔찍한 전염병이 퍼졌을 때 보건 시설이 부족하자 당시 추기경이던 살라자르가 성당 건물이 병원의 역할을 하도록 변경했다. 18세기 시민 건축의 전형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오랜 기간 전염병 등 급성 병을 앓는 환자들을 위한 병원으로 쓰였고, 한때는 이곳에서 죽은 사람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괴담도 많이 떠돌았다. 19세기에는 코르도바 자유 대학의 의학 학부에서 연습과 관리 업무를 보는 건물로 쓰이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 포스트모던의 미학을 갖춘 건물로 재설계되어 도서관, 강당, 사무실 등을 갖추게 되었다.

시나고그(Synagogue de Cordoba)

스페인에 남아 있는 세 개의 시나고그 중 하나로 1315년 무데하르 양식으로 건축됐다. 기도실과 복도, 안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복도 동쪽의 계단을 통해 갤러리로 이동할 수 있다. 1492년 스페인에서 유대인이 추방된 후 이 건물은 병원, 보육원 예배당, 간호 학교 등으로 쓰이다가 1985년 스페인 태생의 유대인 사상가인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탄생 850주년을 맞아 복원되었다.

왕립 마구간(Ecuestre, Caballerizas Reales)

1570년 펠리페 2세의 명령으로 지은 마구간으로 최고의 종마와 암말을 교배시키고 사육하는 데 쓰였다. 1929년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734년 화재로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펠리페 5세가 재건하며 더욱 견고하게 지어졌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코르도바 승마 협회가 관리하고 있으며 말 쇼를 선보여 스페인 순종 말을 볼 수 있다. 건물은 복잡한 아치형의 직사각형 구도로 되어 있다. 

세비야 문(Puerta de Sevilla)

코르도바에 남아 있는 세 개의 문 중 하나로 두 개의 아치 모양으로 되어 있다. 14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11세기 코르도바 출신의 이슬람 문필가 겸 학자이자 중세 스페인의 대표적인 학자인 이븐 하즘(Ibn Hazm)의 청동상이 앞에 서 있다.

코르도바 알카사르(Cordoba Alcazar)

1328년 알폰소 11세가 세웠으며 가톨릭 왕들이 거처하는 궁전을 겸한 요새이다. 에스파냐 각지에는 이런 알카사르가 많이 남아 있는데 732년부터 8세기 동안의 이슬람 지배 이후, 에스파냐에서 이슬람교도들을 몰아내기 위해 축조한 건축물이다. 그라나다 국토회복전쟁에서는 가톨릭의 이사벨과 페르난도 두 왕의 거성이었으며 1494년에 그라나다를 함락시켰다. 흰색 벽으로 지은 건물이 인상적이며 안뜰에는 잘 조경된 정원과 분수가 있어 견고한 요새라는 느낌이 별로 없다. 

알볼라피아 밀가루 공장(Molino de la Albolafia)

코르도바에 남아 있는 네 개의 고대 로마 시대 고장 중 하나로 밀가루를 만들던 곳이다. 과달키비르 강물을 사용해 가동하던 물레방아가 남아 있다. 인근 과수원에 물을 대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푸엔테 문(Puerta del Puente)

코르도바에 남아 있는 세 개의 문 중 하나이다. 하나는 앞서 본 세비야 문이고 다른 하나는 알모도바르 문(Puerta de Almodóvar)이다. 푸엔테 문은 6세기 로마 시대에 지어진 것인데, 당시 코르도바는 벽으로 둘러싸여 이런 문이 아니면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푸엔테 문은 도시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후 16세기와 20세기에 보수를 거쳤다. 사암 벽돌로 지어졌는데 반원형의 부조로 장식되어 있고 그 아래 비문에 펠리페 왕을 찬미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로마교(Roman Bridge)와 칼라오라 탑(Torre de la Calahorra)

과달키비르 강에 놓인 로마교는 푸엔테 문으로 시작한다. 16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길이는 223m이다. 미카엘 천사상이 있다.

다리 남단에 세워진 칼라오라 탑은 14세기에 알폰소 11세에 의해 이슬람 왕궁 유적지에 건설된 요새 알카사르의 성벽 일부이다. ‘외로운 탑’이라는 뜻인데, 18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19세기에는 여학교였다.

성공회 궁전(교구 박물관)(Palacio Episcopal(Museo Diocesano))

고트족이 세웠던 건물로 이후 이슬람과 카톨릭의 손을 두루 거쳤다. 15세기 고딕 양식의 아치와 내부의 이슬람 양식이 남아 있다. 1989년에 문을 연 교구 박물관은 궁전 2층에 위치해 있으며 코르도바 중세의 회화, 태피스트리, 조각 등을 전시하고 있다. 안뜰에는 10~11세기 이슬람인들이 만든 코끼리 모양의 돌 분수가 전시되어 있다.

메스키타(Mezquita, 메즈키타)

711년 서고트족 제국을 정벌한 무어인들은 스페인에 자신들만의 칼리프 왕조를 세웠다. 코르도바는 756년에 수도로 선택되어 순식간에 중세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자 이슬람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칼리프 아브드 아르 라흐만 1세독립을 자랑하기 위해 동방의 가장 위풍당당한 모스크들에 필적할 만한 모스크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785년, 이 메스키타 건설을 시작했다. 공사 규모는 왕이 바뀔 때마다 점점 커지고, 998년에야 길이 179미터, 너비 129미터의 현재 크기에 달했다. 한번에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모스크이자 대표적인 칼리프 양식 건축물이다.

고대 로마의 수로를 모델로 한 거대한 말발굽 모양의 2층 아치를 세워 그보다 더 높은 천장을 받칠 수 있게 했다. 붉은색과 하얀색의 돌을 번갈아 사용하여 만든 이 아치들은 벽옥과 마노, 대리석, 화강암으로 만든 856개의 기둥 위에 서서 모스크의 열아홉 개의 네이브를 구성한다. 2층 아치를 사용한 것은 이슬람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예다. 총안을 뚫은 벽이 모스크와 부속 건물, 그리고 오렌지 나무 안뜰(Patio de los Naranjos)을 둘러싸고 있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돌기둥의 숲은 마치 영원한 미로와도 같은 인상을 주며, 미라브의 모자이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 1236년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가 코르도바를 재정복하고, 이슬람이 후퇴한 후 1523년 메스키타는 대성당으로 바뀌었다. 네이브와 성소를 비롯한 기독교적 요소들도 추가되었다.

종교재판 전시관(Galeria de la inquisicion)

과거 스페인 종교 재판에 쓰였던 고문 기계, 문서 등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비인간적으로 인권과 자유를 박탈하던 당시의 현장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공간이자, 스페인 역사의 잔인했던 역사의 기록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산타 마리아 아랍 목욕탕(Banos arabes de Santa Maria)

11세기에 만들어진 400제곱미터 크기의 공중목욕탕으로 코르도바 이슬람 분화의 목욕 시설을 엿볼 수 있다. 크게 냉욕장(frigidarium), 미온욕장(tepidarium), 온욕장(caldarium)으로 나뉜다. 미온욕장에는 아치형으로 된 형태로 채광이 들어오게 되어 있고 칸막이 벽이 설치돼 있다. 온탕에는 샹들리에가 설치되어 있다.

고고학 박물관(Museo Arqueologico)

선사 시대부터 시작되는 고대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귀족 가문의 아름다운 르네상스 궁전에 들어서 있다. 이베리아인, 로마인, 서고트족, 이슬람인, 무데하르 등 다양한 민족들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로마 콜렉션이 가장 매력적이다. 코르도바의 특색 있는 건축물들의 모형도 만날 수 있다. 10세기에 만들어진 아카하라 메디나(Medina Azahara)의 무어식 박물관에서 발견된 청동상이 가장 유명하다. 스페인 내에서도 아주 저명한 콜렉션을 자랑한다.

포트로 광장(Plaza del Potro)과 포트로 여관(Posada del Potro)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 키호테>의 무대가 된 곳으로 광장이라고 하기엔 아주 아담하다. ‘포트로’는 망아지를 뜻하는데, 광장 가운데에 소설에 등장하는 망아지 분수가 있고 입구에는 천사상이 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쓸 때 머문 곳이자 소설에도 등장하는 포트로 여관이 있으며, 여관 맞은편에는 고야, 무리요 등의 작품을 전시한 코르도바 미술관과 훌리오 로메로 데 토레스 미술관이 있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Iglesia de San Francisco)과 산 페드로 성당(Iglesia de San Pedro)

둘 다 13세기 페르난도 3세의 명에 따라 만들어진 성당이다. 산 페드로 성당은 4세기경 처음 지어진 것을 증축 및 개보수한 적으로 보인다.

방직 공장(Molino de martos)

13~18세기 사이에 가동되던 것으로 전형적인 중세 공장으로 옷감 염색 등을 하던 곳이다. 물레방아를 이용해 과달키비르 강물의 수력을 동력으로 활용하는 식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코르도바 페리아(La Feria de Córdoba)

페리아는 코르도바, 세비야, 그라나다 등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스페인 축제 중 하나이다. 일주일 정도를 축제 기간으로 두며 놀이기구를 여러 개 설치하기도 하며, 축제장 입구에는 천막(Caseta)을 친 바르(bar)들이 각각의 콘셉트로 설치된다. 축제장 입구에는 환하고 커다란 문 모양의 등을 설치해 이 점등식을 시작으로 페리아가 시작된다. 도시마다 개최 시기는 약간 다른데 대개 4~6월에 열린다. 사람들은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축제를 즐기며 상점, 학교 등은 문을 닫는다. 코르도바 페리아의 공식 행사들은 1994년부터 과달키비르 강변에 있는 아르캉헬 경기장(Estadio el Arcángel)에서 열린다.


본문 PDF 파일 내려받기

코르도바 한국어 가이드.pdf
1.71MB

옷, 패션 트렌드, 운동화, 쇼핑, 신상품, 신발, 자켓, 코트, 탈모, 모발이식, 미용, 성형수술, 구두, 부츠, 샌들, 여름 신발, 바지, 롱팬츠, 팬츠, 양말, 모자, 캡, 나이키, 아디다스, ABC 마트, 롱부츠, 첼시부츠, 티셔츠, 원피스, 정장, 수트, 가방, 귀걸이, 목걸이, 반지, 마스크, 시계, 팔찌, 패션, 백화점, 의류, 옷, 머리띠, 롱패딩, 패딩, 점퍼, 야상, 재킷, 화장품, 크림, 스킨, 아이섀도우, 아이브로우, 올리브영, 롯데닷컴, 하프클럽, 니트, 블라우스, 스커트, 치마, 주름바지, 통바지, 크롭티, 와이셔츠, 영어, 토익, 학원, 반찬, 다이어트, 도시락, 닭가슴살, 샐러드, 감자, 계란, 집밥, 요리, 고기, 소고기, 닭다리, 치킨, 아침밥, 삼겹살, 곱창, 밀키트, 선물세트, 저녁 메뉴, 볶음밥, 탕수육, 광어회, 연어회, 해산물, 냉동식품, 참치회, 잡곡밥, 아이스크림, 배스킨라빈스, 배달의 민족, 배달음식, 떡볶이, 튀김, 오징어튀김, 순대, 오뎅, 토마토, 딸기, 사과, 귤, 오렌지, 콤부차, 홍차, 레몬티, 커피, 카누, 네스프레소, 캡슐커피, 식품 직구, 영양제, 비타민, 아이허브, 신용카드, 소액대출, 대출, 보험, 보험상담, 저축은행, 여성대출, 학자금대출, 대출계산기, 대출이자, 주부대출, 임플란트, 치아보험, 자동차 렌트, 제주도 렌트, 렌터카, 자동차, 승용차, 중고차, 자동차보험, 자동차사고, 청약주택, 청약통장, 정기예금, 적금, 주택정약, 아파트, 내집마련, 빌라, 30평대, 부동산, 소형아파트, 치아, 어금니, 송곳니, 법률상담, 모기지론, 대학 편입, 학사편입, 대학교, 웹호스팅, 클라우드, 보안솔루션, 홈페이지, 앱제작, 동영상제작, 영상편집, 기부, donate,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세계구호,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전문자격증, 자격증, 학원, 사이버대학교, 학사, 학위취득, 학점은행제, 토익, 영어, 외국어, 통역, 번역, 동시통역
[면책공고] 솜글 블로그 자료 이용 안내

이 글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