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노트/스페인 여행 URL 복사

[스페인] 세비야 관광지 설명 자료(한국어 가이드)

2016. 9. 27. by 솜글
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고민하는 예비 여행자들을 위한 포스트들입니다. 한국어 인터넷에서 모은 것들과 외국(영어 또는 스페인어) 사이트에서 번역해 모은 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많은 정성을 들인 자료이므로 다른 곳으로 공유하지 마시고 개인적으로만 사용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페이지 맨 아래에서 본문 내용과 각 명소의 사진을 PDF 파일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파일 비밀번호는 somgle입니다.
*자료가 도움이 되었다면 인사 한 줄 남겨 주세요.

세비야(Sevilla)

옛 이름은 히스팔리스(Hispalis)이다. 과달키비르 강 어귀에서 87km 상류 연안에 있다. 로마 시대에는 지방 중심지로 번창하고, 그 뒤 서고트인과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다. 12세기에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 알카사르 궁전, 히랄다 탑 등이 건축되었다. 1248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다시 에스파냐에 속하게 되고 15세기 말에는 신대륙 무역의 기지로서 전성기를 맞아 에스파냐 최대의 성당과 대학 등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자 대형 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카디스에 밀려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 뒤 세비야는 역사적인 도시이자 여전히 보수적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거점 도시로서 명맥을 유지해 왔다.

대형 선박의 출입이 가능한 하항(河港)으로 셰리주(酒), 과일, 코르크, 올리브유, 광석 등을 수출한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조선업이 발달하였고, 그 밖에 담배, 섬유, 농기구, 도자기 등 제조업이 활발하다. 한편 세비야는 화가 벨라스케스의 출생지이며, 무리요가 활약한 곳이기도 하다. 이슬람 풍의 거리 모습과 건물, 성주간(聖週間)의 그리스도교 전례(典禮)와 투우(鬪牛) 등 관광 요소가 풍부하다. 세비야 대성당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수록되었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El Parque de Maria Luisa)

산텔모 궁전(Palacio de San Telmo)의 정원이었다가 1893년, 소유주였던 마리아 루이사 페르난다 공작부인이 세비야에 기증하면서 시 소유가 된 곳이다. 1929년 이베르 아메리칸 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재단장해 공원이 되었다. 세비야를 대표하는 공원이자 스페인의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로 손꼽힌다. 내부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와 피사로(Pizarro)라는 십자형 산책로와 조각상, 분수대가 잘 조성돼 있다. 공원 내 아메리카 광장에는 세비야 고고학 박물관이 있어 구석기시대부터 중세에 이르는 유물을 볼 수 있으며, 콜럼버스의 1492년 항해를 기념하여 세운 500주년 기념탑이 있다.

세비야 예술·풍습 박물관(Museo de Artes y Costumbres Populares)

1973년 개관한 민중 예술과 풍습 관련 박물관으로 아메리카 광장(Plaza de América)에 위치한 ‘파빌리온 무데하르’(Pabellón Mudéjar)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파빌리온 무데하르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건축 양식이 한데 결합된 신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로 건축가 아니발 곤잘레스(Aníbal González)가 설계한 것이다. 16~19세기에 스페인 전역에서 제작된 예술품과 스페인 민중들이 쓰던 생활용품들을 드넓은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작고 큰 부채들과 인형, 왕관, 스페인 기타(Spanish guitar) 그리고 외출복·제의(祭衣)·사제복 등 각종 의상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밖에 금은 세공품, 각종 가구류, 도자기, 식기류 등도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1914년 완공된 이래 박물관이 되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쓰였고 박물관 개관 후에도 행정적 문제 때문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1976년에는 전기 공급이 끊겨 문을 닫기도 하고 1979년에는 폭우 때문에 문을 닫았다. 1980년이 되어서야 파빌리온 전체를 박물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의회가 의결하면서 문제가 풀리기 시작해 1984년 재개관했는데, 이와 동시에 박물관의 행정 업무가 국가에서 안달루시아 자치 정부로 이양되었다. 

 

세비야 고고학 박물관(Museo Arqueologico de Sevilla)

예술·풍습 박물관과 붙어 있는 박물관으로 초기 구석기시대부터 중세시대에 이르는 고고학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1880년에 설립했다.

세비야는 로마, 고트족, 이슬람 시대를 이어 기독교 문화의 역사적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특히 세비야 근교의 산타폴스에는 로마의 옛 도시인 이탈리카(Italica)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다. 라 메르세드 수도원 자리에서 출발한 박물관은 1942년 세비야 미술관(Museo de Bellas Artes de Sevilla)의 고고학 부문 유물과 합쳐 다시 개관했다. 이곳은 이탈리카에서 출토된 로마 시대의 유물, 석기 시대부터 철기시대 유물,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유물 등으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바쿠스 축제 장면을 묘사한 부조가 장식된 제단을 비롯해 비너스의 대리석상,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의 두상, 모자이크화 <바쿠스의 승리> 등이 전시돼 있다. 또한 경작에 사용된 각종 농사 도구, 놀이를 위한 주사위, 거울, 십자가 형태의 장신구 등도 볼 수 있다.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

무데하르 양식 광장으로, 반원형 건물은 1929년 이베르 아메리칸 박람회장으로 쓰기 위해 지은 것이다. ‘스페인 광장’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이탈리아의 로마 등에도 특히 세비야의 광장이 크고 아름답다. 양쪽에 탑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며, 광장 쪽 벽면에는 58개의 벤치가 들어서 있고 역사적 사건들이 모자이크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스페인 58개 도시의 ​휘장과 지도, 역사적 순간들이 타일로 표현되어있다​.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과 김태희, 한가인의 CF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세비야 대학(Universidad de Sevilla)과 왕립 담배 공장(Real Fabrica de Tabacos)

세비야 대학 건물은 본래 왕립 담배 공장이었는데,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카르멘이 군인 돈 호세를 만나 유혹한 곳이 바로 그 담배 공장 앞이다. 19세기에 유럽 전체 담배의 3/4를 생산하던 이곳은 담배를 만드는 여공이 무려 1만명에 달했다.

산 텔모 궁전(Palacio de San Telmo)

항해사들의 수호성인인 산 텔모의 이름을 따서 1682년 성벽 바깥속에 지은 궁전이다. 세비야 바로크 양식의 상징 중 하나로 지어질 당시에는 항해사나 선박 조종사 등 고위 항해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해양 학교로서 지어졌다. 바다로 대항해시대를 열려고 했던 당시 에스파냐인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후 신학교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안달루시아 자치 정부 대통령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은 원래 이 산 텔모 궁전의 일부였는데 왕비가 도시에 정원을 기증하자 그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황금의 탑(Torre del Oro)과 은의 탑(Torre de la Plata)

황금의 탑(Torre del Oro)은 1220년 이슬람교도가 과달키비르 강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운 정12각형의 탑이다. 강 건너편에 ‘은의 탑’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두 탑을 쇠사슬로 연결하여 세비야에 들어오는 배를 막았다. 1519년에 여기서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를 떠난 것과 관련되어 현재 해양박물관이 자리 잡았다.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 대해서는 처음 탑을 지을 당시 금 타일로 탑의 바깥을 덮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16~17세기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이곳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밤이 되면 멋진 조명이 들어온다.

산타 카리다드 병원(Hospital de Caridad)

자선단체가 세비야의 가난한 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17세기에 건립한 병원 건축물이다. 전체적인 평면은 직사각형 구조이며 바로크 양식이다. 대규모 건물 내부 중앙에는 사각형 구조의 안뜰이 자리 잡고 있는데, 에스파냐 전통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랑이 아닌 벽체가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 벽체 안쪽으로 많은 방이 들어서 있다. 

이 건축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병원 건물 북서쪽에 접해 있는 부속 교회로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교회 내부의 주 제단 뒤편 장식 벽은 베르나르도 시몬 데 피네다(Bernardo Simón de Pineda)가 제작한 걸작이다. 

특히 이 교회는 귀중한 가치를 지닌 종교화를 다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17세기 에스파냐 바로크 미술의 두 거장 무리요와 후안 데 발데스 레알이 그린 여러 점의 종교화가 있다. 

왕립 조선소(Reales Atarazanas)

13~15세기에 운영된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조선소이다. 갈레라 선(船)(옛날 노예나 죄수들에게 젓게 한 2단으로 노가 달린 돛배) 등을 제조해 상업과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비야는 과달키비르 강을 따라 선박들이 몰려와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도시가 융성하고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대도시로 성장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소는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또 식민지 시대에 전함을 만드는 등 스페인이 황금기를 맞는 데도 역할을 했다.

세비야 대성당(Sevilla Catedral)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 있는 성당 중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이 대성당이 있는 자리는 12세기 후반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곳인데, 넓은 폭의 형태는 메카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이슬람 사원의 영향이다. 1402년부터 약 1세기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오랜 시기에 건축된 만큼 고딕·신고딕·르네상스 양식이 섞여 있다. 이곳에는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은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에스파냐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남쪽 문 근처에는 콜럼버스 묘가 있는데, 에스파냐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을 메고 있다. 이 관에는 콜럼버스 유골분이 안치되어 있다.

히랄다 탑(Torre de la Giralda)

세비야 대성당에서 현재 남아 있는 모스크의 흔적은 연못과 히랄다 종탑이 딸린 현관의 안뜰뿐이다. 히랄다 종탑은 본래는 미나렛(기도시간을 알리는 뾰족탑)이었는데 수세기에 걸쳐 종탑으로 개조되었다. 28개의 종과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게 했으며, 탑의 이름을 풍향계를 뜻하는 ‘히랄다’라고 불렀다. 종루에서 보는 세비야의 풍경이 멋있다.

산타크루즈 거리(Barrio de Santa Cruz)

대성당과 알카사르에 인접한 구시가지로서 옛 유대인 거주지였으며 17세기에는 세비야 귀족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곳에 있는 교회 중 몇 곳은 원래는 유대교 회당이었다. 안달루시아 전통 가옥인 흰 벽 집들이 줄지어 서 있으며  레스토랑과 타파스 가게가 많다. 로시니의 희극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무대가 된 집, <돈조반니>의 무대였던 병원이 있다. 

인디아스 고문서관(Archivo de Indias) 

1585년에 세비야 상인의 영사관 또는 거래소 건물로 건설되었다. 1785년에 인디아스 고문서관이 되었으며, 그 후 신세계 발견과 이에 관련된 중요한 문서를 수집하는 시설이 되었다.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을 완성한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Juan de Herrera)가 설계한 이 건물은 스페인 르네상스 건축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또한 스페인 신고전주의와 바로크 안달루시아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이 건물은 구세계와 신세계 사이의 연결을 상징한다.

세비야는 16세기와 17세기에 카렐라 데 인디아스(Carrera de Indias, 인도 제국으로 가는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의 무역 독점 항로)의 주요 도시로 지명되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인도 제국으로 가는 관문’이었으며, 1503년부터 1718년까지 인도 제국과의 유일한 무역항이었다.

연대 기념물 또는 대성당, 히랄다, 알카사르와 인디아스 고문서관을 포함하는 역사 건물군은 2세기 동안 인도 제국과의 교역에서 무역 수도로 상징되었고, 도시 역사(이슬람, 기독교, 신세계와 연관성을 가진 세비야의 역사)의 주요 단계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되고 있다. 그 시기 동안 스페인 군주제의 중추였던 세비야는 콜럼버스에 뒤이어 발견한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와 관련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 기념물들은 식민지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콜럼버스의 무덤은 대성당에 마련되었다. 알카사르 내에 있는 살사 데 로스 알미란테스(Sala de los Almirantes, 해군 제독의 방)는 카사 데 콘트라타시온(Casa de Contratación, 무역 회의)의 본부였다. 이곳에서는 인도 제국과의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독과점을 조성했을 뿐만 아니라, 학문의 중심지로서 당시 신대륙 탐험과 발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몇몇 원정대를 탄생시켰다. 인디아스 고문서관은 18세기 이후부터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문서들을 모아 두었다.

세비야 알카사르(Sevilla Alcazar)

이슬람과 스페인 양식이 결합된 전형적인 무데하르 양식 건축물이다.  원래 핵심부는 무슬림 총독의 궁전으로 10세기에 건설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스페인 왕실의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알카사르가 본래 의도했던, ‘군주와 국가 원수의 거주’라는 목적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웅장한 건물들과 넓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세 초기부터 현재까지 건축과 재건을 반복했다. 석고 안뜰(Patio del Yeso)과 교차랑 정원(Jardines del Crucero)과 같은 알 모하드 궁전의 특징, 무데하르 양식을 대표하는 페드로의 궁전 등이 공존하며 르네상스부터 신고전주의까지 모든 문화 양식을 보여 주는 보기 드문 건축물이다.

방어를 1차적인 목적으로 건설했지만 성 내의 ‘소녀의 정원’ 및 ‘인형의 정원’ 주변 기둥에 조각된 섬세한 장식 무늬가 매우 호화롭다. ‘대사의 방’의 기하학적 문양이 들어간 타일 기둥과 둥근 천장 장식은 정밀한 세공기법과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화재와 천재지변을 겪으면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복구가 필요한 상태이다. 숀 코네리가 주연했던 영화 <바람과 라이온>의 무대가 되었다. 

옛 사제의 병원(Hospital de los Sacerdotes Venerables)

1689년 바로크 스타일로 건설되어 레콩키스타 이후 알카사르에 거주한 최초의 가톨릭왕인 카스티야의 페르디난드 3세에게 헌정되었다. 나이 들고 가난한 성직자들을 위한 병원으로 이용되었는데, 1987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1991년 소피아 왕비가 참석한 가운데 준공을 보아 세비야 문화기금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의 무대가 된 병원이다. ‘돈 조반니’와 역시 모차르트의 오페라인 ‘호세 소리야(Jose de Zorrilla)’의 ‘돈 조반니’는 모두 14세기경 세비야의 귀족인 미구엘 마냐라(Miguel Manara)를 모델로 한 것이다.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지만,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회개를 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의미로 구제 의원(Hospital de Caridad)이라는 사회 복지 사업을 하는 병원을 지어 운영했다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로스 피넬로의 집(Casa de los Pinelo)

르네상스 요소와 혼재된 중세 건물로 16세기 초에 건설되지 시작해 16세기 후반에 성당에 기증되었다. 이후 1855년 성직자들의 거주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1954년 국가 기념물로 선언되었다. 내부의 아치와 상부 사이에서 두상 조각들을 볼 수 있는데, 16세기 포르투갈 몬테마요르가 쓴 목가적 로망스 소설 <라 디아나(Los siete libros de la Diana)>(1559, 7권)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산 이시드로 성당(Iglesia de San Isidoro)

14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고딕-무데하르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곤잘로 헤레라 주교(obispo Gonzalo Herrera)의 무덤, 실내 장식 등이 있다. 외관의 종탑은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산 이시드로는 세비야의 대주교로 왕정이 문란한 동안, 엄격한 규율을 통해서 교회의 기반을 확고히 하고 서고트 족의 법률에 나타난 모순들을 모두 제거하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로마법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스페인에 법적인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어 성인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살바도르 성당(Iglesia Colegial del Salvador)

살바도르 광장(Plaza del Salvador)에 있는 성당으로, 9세기에 무어인들이 건축한 모스크가 무너진 후 한동안 폐허로 남아 있던 자리에 건축했다. 1674년에 짓기 시작해 1712년 바로크 양식으로 완성했다. 이전 건축물인 모스크의 유적지에 남아 있던 몇 가지 구조물은 지금도 이 교회 안뜰에 보존되어 있다. 외관은 바로크 양식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어 전체적으로 당당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인 평면 구조는 직사각형이다. 건축적으로 뛰어난 부분이 많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면, 교회 중앙에 높이 솟아 있는 대형 돔, 내부의 주 제단 뒤편에 있는 대형 장식벽 등이다. 

정면에 여러 개의 출입문과 다양한 모양, 다양한 크기의 많은 창문이 배치되어 있다. 화려한 대형 돔은 커다란 반구형 구조물 위에 좀 더 작은 반구형 구조물을 얹은 이중 구조이다. 주 제단 뒤편 장식 벽은 에스파냐의 유명한 조각가 카예타노 데 아코스타(Cayetano de Acosta)가 18세기에 제작한 바로크 양식의 걸작품이다.

세비야 시청(Ayuntamiento de Sevilla)

플래터레스크(Plateresque)의 거장인 디에고 데 리아뇨(Diego de Riaño)가 15세기 말엽에 건축을 시작해 16세기에 완성한 유서 깊은 시청사로, 에스파냐에서 대표적인 플래터레스크 양식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3층의 웅장한 규모에 전체적인 외관이 당당하면서도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외벽 전체가 뛰어난 솜씨의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에스파냐 역사에서 중요한 몇 가지 사건, 에스파냐의 다양한 신화, 세비야의 설립자로 알려진 고대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와 관련된 여러 상징과 문장을 비롯해 많은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누에바 광장에 면해 있는 정면은 에스파냐 건축가 데메트리오 데 로스 리오스(Demetrio de los Ríos)와 발비노 마론(Balbino Marrón)이 19세기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현재 이 시청사는 세비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자 랜드 마크이며 화~목요일 오후 5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30분 동안 시민과 관광객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이사벨 2세 다리(Puente de IsabelⅡ)

세비야에서 가장 상징적인 다리 중 하나이자 과달키비르강에 놓인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공학자 구스타보 스테이나체르(Gustavo Steinacher)와 페르디난드 베네토트(Ferdinand Bennetot)가 1845년에 공동으로 건설을 시작해 1852년에 완공했다. 명칭은 당시 에스파냐를 통치하던 여왕 이사벨 2세의 이름에서 따왔다.

원래 선교(船橋)가 있던 자리에 새로 건설한 세비야시 최초의 철강제 다리이다. 과달키비르 강 왼쪽에 있는 트리아나 지역과 오른쪽의 세비야 중심 지구가 이 다리를 통해 곧바로 연결된다. 건설 이후 지금까지 세비야 시내 교통의 한 축을 당담해 왔으며 1976년 4월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마카레나 교회당(Basilica de la Macarena)

눈물 흘리는 성모 마리아(마돈나 마카레나)로 유명한 세비야 종교의 상징이다. 금은보화로 치장한 왕관과 찬란하고 호화로운 옷차림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성모 마카레나 상이 모셔져 있는데, 익명의 저술가에 의하면, 마카레나는 성 금요일의 이른 아침 퍼레이드에서 나사렛 사람처럼 옷을 입은 2,000여 명의 형제들에 의해 운구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이 성모상은 성주간(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른 때부터 부활하기 전까지 고난의 일주일을 말함)에 열리는 세비야의 기념행사 때 가마 위에 올라 퍼레이드에 참여한다. 이때 이것을 보려고 전 세계의 순례객들이 세비야에 몰려든다. 성모 마리아상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성모상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거울을 세워 놓았다. ‘바실리카’란 교황으로부터 특권을 받아 일반 성당보다 격이 높은 성당을 말한다. 

마카레나 교회당의 전면에는 신코 야가스 병원(산 그레 병원) 건물이 있는데 현재 안달루시아 의회로 사용되고 있다. 또 마카레나 지구에 있는 마카레타 성벽(Murallas de la Macarena)은 지구의 상징으로, 8개의 작은 탑을 가지고 있는데 일곱 개는 사각형이고 다른 하나는 팔각형이어서 독특하다.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옴니움 산크토룸 성당(Iglesia de Omnium Sanctorum)

14세기 무데하르 양식의 성당 중 하나이다. 성단소의 천개 아래에 자리한 성인 베드로와 성녀 레이나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Reina de Todos Los Santos) 조각상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16세기에 처음 만들어졌다가 18세기경 많이 수선된 것이다.

산타 마리나 성당(Iglesia de Santa Marina)

18세기 지진으로 균열과 결함이 발생했고 19세기와 20세기에 화재와 약탈을 입었었다.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해 사용되지 않았다가 복원되어 불과 얼마 전부터 다시 예배가 이루어진 곳이다. 정면 장식 벽과 탑은 14세기의 무데하르양식으로 디자인되었다. 세비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다.

산 루이스 데 로스 프란체세스 성당(Iglesia de San Luis de los Franceses)

산타 마리나 성당 맞은편에 위치한 성당으로 1554년에 세워졌다. 17세기 초 한때 예수회의 수련관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세비야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외관의 돔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내부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산 마르코스 성당(Iglesia de San Marcos)

무데하르양식의 건물이다. 이 성당의 탑은 히랄다 종탑의 마름모꼴 장식인 세브카를 연상케 해 준다. 내부에는 감상할 만한 두 개의 바로크 양식의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17세기에 만들어진 세인트 마크의 조각상으로 교회의 이름(Marcos)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17세기 후반에 드러누운 예수님을 표현한 것이다.

산타 이네스 예배당(Convento Santa Ines)

전면이 열주랑식으로 되어있는 건물이다. 14세기 후반에 도냐 마리아 코로넬이 기증한 저택 위에 세웠는데, 화랑을 따라 나 있는 난간 뒤쪽에 그녀의 미라가 보존된 유리관이 있다. 코로넬은 페드로 1세가 청혼했던 여인이라고 전해진다.

그 옆에는 바로크 양식의 오르간이 있는데 이 오르간에는 오르간 연주자로 성장한 마에세 페레스의 전설이 담겨 있다. 예배당 내부에서 수도사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종류의 과자류를 판매한다.

레브리하 백작부인의 궁전과 박물관(Museo-Palacio de la Condesa de Lebrija)

레브리하 궁전이라고도 한다. 쿠나 거리(Calle Cuna)에 16세기에 건립한 귀족의 대저택으로, 16~17세기에 세비야에서 같은 용도로 건축한 역사적 건축물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부분이 훼손되자 20세기 초엽 당시 소유주였던 레브리하 백작부인이 대대적인 보수·개조 작업을 했다. 

이때 고대 로마 도시인 이탈리카(Italica) 유적지에서 가져온 모자이크 장식의 바닥재를 비롯한 많은 고고학적 유물과 과거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사용하던 호화스러운 가구, 도자기, 조각품 등으로 내부 전체를 꾸몄다. 이렇듯 평소 고고학에 심취했던 백작부인이 건물 곳곳에 많은 고고학적 모티프를 적용하고 화려한 장식을 가미해 현재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이를 이용해 이곳에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이 궁전은 건축미보다는 다양한 양식으로 이루어진 장식미가 특히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중요한 장식은 건물 곳곳의 아치 부분에 사용한 무데하르 장식, 건물 세부 장식으로 사용한 플래터레스크(Plateresque) 장식, 건물 정면과 내부의 넓은 바닥 면에 사용한 안달루시아 지방 고유의 장식 등이다.

메트로폴 파라솔(Metropol Parasol)

국제적으로 관광지로서의 경쟁력이 떨어지자 세비야는 혁신을 단행해 2004년, 과거 역사적 기억이 유적으로 남아있던 지역을 다시 재개발하기로 결정하고 2004년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독일 건축가의 ‘메트로폴 파라솔(Metropol Parasol)’을 선정했다. 하늘에서 보면 우주생물체와 같은 유선형 형태, 그리고 목재가 주는 중세적 분위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세비야에 있는 중세 교회의 첨탑과 기둥, 그리고 인근의 무화과나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엔카르나시온 광장은 재개발 계획 전에는 인근 지역 주민들만 시장으로 이용했으나 메트로폴 파라솔이 건설되면서 유럽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매혹적인 공간 중 하나로 되살아났다. 높이 70m, 길이 150m, 연면적 1만8000㎡에 이르며 4개 층으로 구성돼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버섯모양의 기둥이 목재로 연결돼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목구조물로 별명은 ‘안달루시아의 버섯’이다. 지하 1층에는 공사 중 발견된 로마와 안드레시안 고대 유적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1층 내부공간엔 시장과 휴식 공간이 있다. 상부 구조를 지탱하는 기둥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는데, 지하층에서 표를 사야 엘리베이터를 통해 전망대 및 레스토랑이 있는 2층에 올라갈 수 있다.

지하 박물관과 2층의 메트로폴 파라솔 전망대를 관람하고 나오면 메트로폴 파라솔 광장을 만나게 된다. 낮에는 시민과 관광객들이 스페인의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는 곳으로, 저녁에는 문화적 향기가 가득한 다양한 공연장으로 이용된다. 또한 광장에 있는 넓은 계단은 기다림과 휴식, 그리고 공연의 무대로 이용돼 다용도 광장의 역할을 한다.

안티쿠아리움(Antiquarium)

메트로파라솔 지하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이다. 세비야 시가 이 지역을 재개발하고자 엔카르나시온 광장 지역에 계획을 세우면서 지하에는 주차장을 마련하려고 했다. 착공에 들어가 땅을 파자 고대 로마와 무어인들의 유물이 나와 공사가 중단되었고 여기서 나온 유물들을 모아 안티쿠아리움을 세웠다. 


세비야 여행지(관광지) 한국어 가이드

세비야 한국어 가이드.pdf
1.71MB

옷, 패션 트렌드, 운동화, 쇼핑, 신상품, 신발, 자켓, 코트, 탈모, 모발이식, 미용, 성형수술, 구두, 부츠, 샌들, 여름 신발, 바지, 롱팬츠, 팬츠, 양말, 모자, 캡, 나이키, 아디다스, ABC 마트, 롱부츠, 첼시부츠, 티셔츠, 원피스, 정장, 수트, 가방, 귀걸이, 목걸이, 반지, 마스크, 시계, 팔찌, 패션, 백화점, 의류, 옷, 머리띠, 롱패딩, 패딩, 점퍼, 야상, 재킷, 화장품, 크림, 스킨, 아이섀도우, 아이브로우, 올리브영, 롯데닷컴, 하프클럽, 니트, 블라우스, 스커트, 치마, 주름바지, 통바지, 크롭티, 와이셔츠, 영어, 토익, 학원, 반찬, 다이어트, 도시락, 닭가슴살, 샐러드, 감자, 계란, 집밥, 요리, 고기, 소고기, 닭다리, 치킨, 아침밥, 삼겹살, 곱창, 밀키트, 선물세트, 저녁 메뉴, 볶음밥, 탕수육, 광어회, 연어회, 해산물, 냉동식품, 참치회, 잡곡밥, 아이스크림, 배스킨라빈스, 배달의 민족, 배달음식, 떡볶이, 튀김, 오징어튀김, 순대, 오뎅, 토마토, 딸기, 사과, 귤, 오렌지, 콤부차, 홍차, 레몬티, 커피, 카누, 네스프레소, 캡슐커피, 식품 직구, 영양제, 비타민, 아이허브, 신용카드, 소액대출, 대출, 보험, 보험상담, 저축은행, 여성대출, 학자금대출, 대출계산기, 대출이자, 주부대출, 임플란트, 치아보험, 자동차 렌트, 제주도 렌트, 렌터카, 자동차, 승용차, 중고차, 자동차보험, 자동차사고, 청약주택, 청약통장, 정기예금, 적금, 주택정약, 아파트, 내집마련, 빌라, 30평대, 부동산, 소형아파트, 치아, 어금니, 송곳니, 법률상담, 모기지론, 대학 편입, 학사편입, 대학교, 웹호스팅, 클라우드, 보안솔루션, 홈페이지, 앱제작, 동영상제작, 영상편집, 기부, donate,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세계구호,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전문자격증, 자격증, 학원, 사이버대학교, 학사, 학위취득, 학점은행제, 토익, 영어, 외국어, 통역, 번역, 동시통역
[면책공고] 솜글 블로그 자료 이용 안내

이 글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