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의 생애
해풍(海風) 심훈(沈熏, 1901~1936)은 본명이 대섭(大燮)으로 지금의 서울 흑석동, 당시의 경기도 시흥에서 지주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다. 경성제일고보 시절인 1917년(17세) 중매로 왕족인 이해승의 누이인 이해영과 결혼하고, 1919년(19세)에는 3 · 1 운동 때 잡혀 들어갔다가 이 일로 퇴학 처분을 당했다. 곧 심훈은 상하이로 건너 가 신채호, 이시영, 여운형과 같은 지사들 곁에서 3년 간 머물렀다. 이런 그와 달리 그의 형 심우섭은 친일파였는데, 심훈은 끝내 형의 행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1923년(23세) 귀국한 심훈은 송영 등과 염군사를 꾸려 연극부에 가담하고, 신극 단체인 ‘극문회’를 만들어 활동한다. 1924년(24세)에는 홍명희, 박헌영 등과 함께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일하는 동안 <미인의 한> 일부를 번안에 싣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심훈은 각 신문의 사회부 기자들로 구성된 ‘철필 구락부’에 들어가 급료 인상 파업을 일으키는 바람에 사표를 내고 말았다. 중매로 결혼해 애정 없는 생활을 하던 아내와 이혼한 것도 이 시기이다.
동아일보사에서 나온 심훈은 «조선중앙일보» 등에서 일하며 1925년(25세) 시나리오와 소설의 중간쯤 되는 독특한 장편 <탈춤>을 연재하며 본격적인 문단 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그가 연극이나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심훈은 <장한몽>에 이수일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1926년(26세)에는 자신의 작품 <먼동이 틀 때>를 각색, 감독하여 이듬해에 단성사에서 상영한다.
1930년(30세)에는 바라던 대로 자유연애에 의한 재혼을 하고, 장편 소설 <동방의 애인>과 <불사조>를 연재하려고 했지만 검열 때문에 싣지 못했다. 1932년(32세) 내려고 했던 시집 «그날이 오면» 역시 검열 때문에 출간되지 못한다. 이 무렵 심훈은 프로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의 논쟁을 지켜보다가 “…노동자의 땀에 젖은 수기…젊은 소작인이 흙벽에다가 연필을 찍찍 갈겨 쓴 단 몇 줄의 생활 기록…”을 창작해야 한다면서 좌우 진영 모두를 비판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1933년(33세)에는 <탈춤>과 비슷한 소재의 장편 <영원의 미소>를 발표하고, 1934년(34세)에는 자신의 결혼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조혼 때문에 억압받는 남녀를 그린 장편 <직녀성>, 그리고 단편 <황공의 최후>를 낸다. 1935년(35세)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는데, 그곳에서 조카가 함께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곧 이 경험을 <상록수>로 써서 «동아일보»의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공모에 당선된다. 심훈은 당선 상금으로 당진에 사학을 세우는 등 계몽에 더욱 힘쓰지만, 1936년(36세) 9월 장질부사로 사망한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죽기 바로 얼마 전 손기정이 금메달을 따자 지었던 즉흥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가 낭송되었다.
심훈의 작품
<만가>
1925년(25세) 발표한 작품이다. 다른 심훈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작품으로, 독립 운동을 하다 옥사한 동지들에 대한 동지애와 조국 해방에의 염원과 의지를 담은 시이다.
‘만가’란 본래 장례에서 상여가 나갈 때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시 <만가>는 민족주의 운동을 하던 동지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나올 때, 뜨거운 동지애와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으로 죽은 동지를 업고 무악재를 넘어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가>
궂은 비 줄줄 내리는 황혼의 거리를/ 우리들은 동지의 관을 메고 나간다.//
만장도 명정도 세우지 못하고/ 수의조차 못 입힌 시체를 어깨에 얹고//
엊그제 떼메어 내오던 옥문을 지나/ 철벅철벅 말없이 무악재를 넘는다.//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로등은 귀화같이 껌벅이는데/ 동지들은 옷을 벗어 관위에 덮는다.//
평생을 헐벗던 알몸이 추울 성 싶어/ 얄따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 하여/ 단거리 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준다.//(이하 6행 삭제)
동지들은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인 채 저벅저벅 걸어간다.//
친척도 애인도 따르는 이 없어도/ 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
조가도 부르지 못하는 산송장들은/ 관을 메고 철벅철벅 무악재를 넘는다.
<그날이 오면>
1930년(30세)의 작품으로, 심훈의 문학 경향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시이기도 하다. 우리 현대 시사에 저항시의 맥을 잇는 중요한 작품으로서, 그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해방의 환희와 감격을 상상하여 노래한 작품으로 꼽힌다. 제목이 웅변하듯 광복의 그 날에 대한 열망이 직접적으로 표출된 작품이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상록수>
1935년(35세) «동아일보» 현상 공모에 당선된 작품으로, 1935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연재되었다. 러시아에서 비롯된 브나로드 운동에 자극을 받아 펼쳐진 1930년대의 농촌 계몽 운동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이다.
1920년대 말부터 우리 문단에서는 프로 진영이든 민족주의 진영이든 농촌을 무대로 한 소설, 즉 농촌 소설이 하나의 흐름이라 불릴 만큼 많이 나왔다. 그 가운데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 이광수의 <흙>, 그리고 심훈의 <상록수>였다. 두 작품은 모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는데, <흙>에서 보이는 남녀 관계가 지식인의 향락에 치우친 느낌을 주는 반면 <상록수>에서는 농촌 운동을 위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사랑을 유보하는 남녀가 나온다. 심훈은 이러한 남녀 관계를 통해 오히려 둘 사이의 사랑을 애틋하게 드러내어 짙은 감동을 준다.
그러나 어떤 좌절과 절망이든 꿋꿋하게 이겨내는 ‘상록수’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농촌의 어두운 면보다는 전원의 밝고 싱싱한 면만을 너무 부각시켜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는 흠이 있다. 또 소설에 묘사된 ‘영신’과 ‘동혁’의 농촌 운동이 농민의 삶 속으로 뛰어들지 않고 소극적 태도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아쉽다. 이런 한계점은 결국 <상록수>를 지식인 계몽 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상록수>
영신과 동혁은 ○○신문사 주최의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했던 열성적인 학생들이다. 두 사람은 주최측이 베푼 위로회 석상에서 보고 연설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학업을 마친 후 동혁은 한곡리로, 영신은 청석골로 내려가 농촌 계몽 운동에 헌신한다.
동혁은 30세 이하의 청년들을 모아 농우회를 조직하고 회관 건립과 마을 개량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나 지주인 강 도사의 아들 강기천과 당국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는다.
채영신도 예배당을 빌려서 가난한 농촌 아이들에게 한글 강습을 실시하고 기부금을 모아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을 하지만, 일제의 방해로 1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80명으로 제한하라는 통고를 받고 괴로워한다. 갖은 어려움 끝에 영신은 모금된 100여 원으로 청석 학원을 지으려 목도(木刀)질까지 스스로 하다가 과로와 맹장염으로 학원 낙성식 날 졸도하여 입원하게 된다.
동혁이 영신에게 문병을 와 있는 동안 강기천은 농우회원들을 매수하여 명칭을 진흥회로 바꾸고 회장이 된다. 이에 분노한 동혁의 동생이 회관에 불을 지르고 도망하자 동혁이 대신 수감된다.
출옥한 동혁이 청석골로 갔을 때 영신은 이미 죽어 있었다. 동혁은 영신을 장례 지내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상록수들을 보며 농촌을 위해 평생 몸 바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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