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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50. 김동명, 김상용, 신석정

2014. 8. 4. by 솜글

서구에서 전원적, 목가적(牧歌的) 문학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됨으로써 다중(多衆) 사회에서 외로움을 느낀 문인들에 의해 추구된 경향인데, 우리나라에는 1920년대 중반 이후에 나타나 신석정, 김동명, 김상용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또 그 자연 친화적 특징은 청록파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김동명

김동명의 생애

초허(超虛) 김동명(金東鳴, 1900~1968)은 강원도 명주에서 태어나 1915(16)에 함흥으로 이사했다. 이사하자마자 함흥 영생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졸업이 늦어져 스물 한 살 되던 해인 1920(21)에야 겨우 졸업하고, 이듬해 평안남도와 함경남도 등지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다.

1923(24) 김동명은 시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주시면>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오는데, 그는 이 시를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에게 헌정하였다. 그가 지닌 데카당스 기질을 드러낸 시이지만 썩 훌륭한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후 1930년대 중반에 들어 많은 시들을 내놓아 문단의 주목을 받다가 1936(37) 시집 «파초»로 문학적 입지를 다졌다. 김동명은 사업 수완이 좋고 정치감도 있었다. 1938(39) 즈음에는 목재상으로 큰돈을 벌어 양곡 배급소를 경영하고, 신탄 조합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1940(41) 일제가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펼 때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 결기를 보이더니, 일제 말기쯤 이미 일본이 패할 것을 예상해 흥남 역전에 많은 땅을 사 두기도 한다.

1945(46) 해방 후에는 흥남중학교 교장 직을 맡고, 1946(47)에는 조만식이 이끄는 조선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런데 북쪽에서 실력자로 떠오른 김일성이 조선민주당을 견제하여 회유와 숙청 작업을 시작하는 바람에 출당 통고를 받고 집에 틀어박혀 시를 쓰며 지낸다. 이후 신변의 위험을 감지하여 1947(48) 허름한 차림으로 신문지에 세면도구만 싸서 챙긴 채 단신으로 월남하였다. 남쪽에서 김동명은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며 정치 논객으로 활동하고, 1947(48)에는 시집 «하늘»을 냈다.

김동명은 월남할 때 시 원고를 갖고 내려오지 못했는데, 그의 아내가 남편의 시들을 천 쪼가리에 베껴 생후 7개월 된 아기의 배에 감아 극적으로 보존하였다. 이렇게 해서 나온 시집인 1953(54)«진주만»이다. 이 시집의 후기에서 김동명은 나 자신도 신기한 감을 새삼 금치 못한다.”고 하였다. 이후 1968(69) 김동명은 숙환으로 숨진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마이트웰브(https://www.mytwelv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69)

김동명의 시

<파초>

1936(37)에 출간한 첫 시집 «파초»의 표제 시로, 김동명의 문단 내 위치를 다져 준 작품이다. 남국의 식물인 파초가 겨울에 외롭게 서 있는 것을 보며 조국을 잃어버린 민족의 비애를 되새긴다는 내용이다. 글러나 이를 식민지 현실에서 터전을 잃어버린 민중들에 대한 연대감과 포옹으로 해석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다.

<파초>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의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하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내 마음은>

1937(38) «조광»에 발표한 작품으로, 은유의 좋은 예를 보여 준다. 전반부가 사랑의 정열적인 면을 노래한 것이라면, 후반부는 사랑의 애상적인 면을 노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인은 전반부의 사랑의 정열, 그리고 후반부의 사랑의 애수 사이에 아무런 예고도 징검다리도 놓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는 사랑이 처음에는 즐겁고 불타오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외롭고 슬프게 끝나고 만다는 무상함을 충격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내 마음은>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어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귀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수선화>

세상의 쓰라림과 사랑의 감동이 엇갈리는 일생을 살아온 김동명의 심사가 찍혀 있는 작품이다.

<수선화>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 위를 날으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 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부칠곳 없는 정열을/ 가슴 깊이 감추이고/ 찬바람에 빙그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
또한 나의 적은 애인이니/ 아 아 내사랑 수선화야!/ 나도 그대를 따라서 눈길을 걸으리.

김상용

김상용의 생애

김상용(金尙容, 1902~1951)은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보에 다니던 1919(18) 3 · 1 운동 때 시위에 가담하여 몇 달이나 피신해 있느라 무단결석으로 제적되었고, 이후 보성고보로 전학해 졸업하였다.

김상용은 1922(21) 일본 릿쿄 대학 영문과에 다니면서 해외 문학파 동인들과 사귀며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1939(38) 문장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 «망향»을 펴냈다.

해방 후에는 이화여대 교수 등을 지내다가 1951(50) 피난지 부산에서 식중독으로 숨진다.

사진 출처 : 네이버블로그 밀크티(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amp;blogId=wvison&amp;logNo=221547257024)

김상용의 시

김상용의 시 세계는 전원 지향적이고 관조적인 서정이라 할 수 있다. 김환태는 그의 시를 두고 생을 관조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시라고 평한 바 있다.

<남으로 창을 내겠오>

1934(33) 발표하여 1939(38) 낸 유일한 시집 «망향»에 실은 작품으로, 전원으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아가려는 화자의 삶의 자세가 잘 형상화되어 있다.

화자는 전원생활 속에서 스스로 만족을 느끼며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도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라며 밝히고 있다. 땅을 일구고 자연을 벗하며 인정미 넘치는 삶의 여유와 관조가 회화조의 친근한 어조에 용해되어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잔잔한 웃음으로 답하는 모습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초월과 달관의 경지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시적 표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남으로 창을 내겠오>
남으로 창을 내겠오/ 밭이 한참가리/ 괭이로 파고/ 호미로 풀을 매지오//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드르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고//
왜 사냐건/ 웃지오.

신석정

신석정의 생애

6 · 25 이전

신석정(辛夕汀, 1907~1974)은 전북 부안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다.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이후 전원에 파묻혀 기타하라 하쿠슈, 나쓰메 쇼세키, 투르게네프, 하이네, 타고르, 노자와 장자 등의 책을 탐독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24(18)에는 <기우는 해>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다.

그러나 일찍 결혼한 그는 가난과 우울 때문에 심한 좌절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집을 떠나 1930(24)에 조선불교중앙강원에 들어가 불전을 공부하는데, 종교 자체에는 깊이 빠지지 않고 젊은 학도들과 함께 회람지 «원선»을 만들었다.

1931(25)에는 박용철의 권유로 잠시 서울에 왔다가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가담한다. 그리고 <선물>,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를 발표하는데, 이를 계기로 정지용, 이광수, 한용운 등과 교유한다. 그러나 다시 부안으로 낙향하여 초가를 한 채 사서 다시 자연에 묻혀 농사와 독서를 겸하며 지냈다. 이 무렵 아직 등단하기 전인 서정주가 찾아와 함께 문학 이야기를 하며 지내기도 하였다.

1932(26)에는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봄이여! 당신은 나의 침실을 지킬 수 있습니까?> 등 청정하고 애수가 담긴 전원시를 꾸준히 발표해 주목 받는다. 신석정과 대조적인 시관을 갖고 있던 모더니스트 김기림조차 그의 시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뒤 신석정은 1936(30) <>, <송하 논고>, <눈 오는 밤>, 1939(33) <월견초 필 무렵> 등을 발표하고, 1939(33) 첫 시집 «촛불»을 폈다. 1940(34)에는 <명상>, <황혼>, <애가>, <변산 일기중계, 사지 목재, 능가봉, 청림> 등을 발표한다. 신석정은 일제 말기에도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쓴다. 1945(39)에는 해방의 기쁨을 <꽃덤불>로 노래하더니, 문단이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망그러지자 서울로 가지 않고 고향을 지킨다. 그러면서도 시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1947(41)에는 일제 말기에 써 두었던 시를 엮은 두 번째 시집 «슬픈 목가»를 냈다. 제목이 말해주듯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낭만주의의 색채 위에, 해방 직전의 암담한 현실과 고향 상실에 따른 슬픔이 짙게 배어나는 시집이다.

6 · 25 이후

1951(45)에는 전주 태백신문사에 입사하지만 곧 그만두고, 1954(48)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56(50)에는 <서정 소곡>, <운석처럼> 등을 발표하고 시집 «빙하»를 간행한다. 이 시기에는 6 · 25 체험 때문인지 그의 시에서도 현실에 대한 관심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1958(52)에는 이병기와 함께 «명시조 감상»을 펴고, 1959(53) <나에게 어둠을 달라>, 1962(56) <무명의 항벽>, <영구차의 역사>, <4월의 노래> 등 시편을 꾸준히 낸다. 1967(61)에는 시집 «산의 서곡»을 펴내 한국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해서 시집 «대바람 소리», <오한> 등을 내던 그는 1973(67)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진다. 병석에서도 <가슴에 지는 낙화 소리> 등을 쓰던 그는 1974(68) 삶을 마감한다. 같은 해에 유고 수필집 «난초잎에 어둠이 내리면»이 출간되었다.

사진 출처 : 전북도민일보(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4422&amp;sc_section_code=S1N9)

신석정의 시

<임께서 부르시면>

1931(25) «동광»에 발표한 작품이다.

신석정은 노장 철학(老莊哲學)과 타고르 등의 영향을 받아 명상적이고 전원적, 목가적 성격이 두드러진 시인으로 평가되는데, <임께서 부르시면>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목가적인 전원시를 쓰던 초기의 명상적, 전원적, 목가적 시풍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현실을 초월하고 자연에의 귀의로 행의 경건한 기쁨을 누리려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시로, 간절한 호소의 어조를 띤 부드러운 언어로 암담한 시대 상황을 벗어난 이상적인 전원의 세계를 노래하였다.

<임께서 부르시면>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湖水)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란 하늘에 백로(白鷺)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1933(27)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작품이다. 다른 신석정의 시와 마찬가지로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주는 강한 인상을 동양적 서정, 노장 사상의 초탈의 자세로 노래하여 독특한 미감을 준다.

전체적인 구조는 단순하지만 심상의 통일, 긴 호흡의 명상적 리듬, 차분한 정서 등으로 자연 친화의 심정이 아름답게 표출된 전형적인 목가시다. 쉽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가운데 조화를 이룬 시적인 가락, 자연의 색채가 빚어내는 친밀감과 타고르적 환상과 동화적 낭만의 세계, 노장의 무위자연 사상을 함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저 재를 넘어 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히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마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 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 소리도/ 차츰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 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이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들길에 서서>

1939(33) «문장»에 발표한 작품이다. 현실 생활이 어려워도 그에 굴하지 않고, 이상을 지니고 살아가려는 의지를 노래한 시이다. 이런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화자가 존재하는 현실의 세계푸른 별의 세계라는 두 개의 세계를 대립시켜 설정해 놓았다.

<들길에 서서>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슬픈 구도>

1939(33) «조광»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등의 초기 시에서 부르던 어머니마저도 상실한 절망적인 어둠 속에서,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을 자신의 이상 세계로 삼고 식민지라는 고통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화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동시대 작품인 <지도>에서는 오늘 펴 보는 이 지도에는/ 조선과 인도가 왜 이리 많으냐?’라는, 제국주의 강대국에 의해 자유를 잃은 약소민족의 설움으로 나타나 있다.

반복과 열거의 수사적 기법이 구조의 단순성을 보완하고 있으며, 4연에서는 검은의 하강적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고독과 절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의 단순한 구성은 이러한 고독과 절망이라는 주제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슬픈 구도>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오./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 하늘 별이드뇨.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1939(33) 첫 시집 «촛불»에 수록된 시이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가 세 번 나오며, 그것을 경계로 하여 이 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고, 각 부분은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전원을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화자의 의지를 드러낸다. 첫째 부분은 비둘기를 키웁시다.’, 둘째 부분은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셋째 부분은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로 끝난다.

신석정은 자신의 자연 찬미, 또는 자연 귀의의 정신이 노장 철학과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 등에서 터득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그것이 일제 말기의 어두운 상황 속에서 전원파라는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게 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문인들은 도시를 떠나 전원으로 몸을 숨기거나 혹은 몸은 도시에 남아 있더라도 정신만은 전원에 두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의 전원이 당시의 농촌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신비화되어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들이 그린 자연은 있어야 할 자연이지 있는 자연은 아닌 셈이다. 지금의 자연을 그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그것을 신비화시켜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그들은 그것이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라고 맞선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로이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 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어느 지류에 서서>

1941(35) «문장»에 발표한 작품이다.

세월의 흐름은 곧잘 흐르는 물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 시의 화자는 강물의 어느 지류(支流)에 서 있다. 본류(本流)가 아니라는 것은 자신이 역사의 거센 물줄기에서 어느 정도 비켜 서 있다는 뜻일 것이다. 화자는 은하수가 흐르고 이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는, 이 어둠 속에서 숨 막힐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깨달으며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이 천체의 운행 속에 내맡겨진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 천체의 운행 속에 자신을 맡긴다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인 태도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천체의 운행은 어김없이 어둠을 거두어 가고 태양을 떠올려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하리라는 믿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화자인 는 바로 그런 믿음을 가지고 강의 지류에 서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 지류에 서서>
강물 아래로 강물 아래로/ 한 줄기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검은 밤이 흐른다./ 은하수가 흐른다.//
낡은 밤에 숨막히는 나도 흐르고/ 은하수에 빠진 푸른 별이 흐른다.//
강물 아래로 강물 아래로/ 못 견디게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빛나는 태양이/ 다다를 무렵//
이 강물 어느 지류에 조각처럼 서서/ 나는 다시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리…….

<꽃덤불>

1946(40)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시로, 전원파 시인인 신석정에게 이런 열정이 있었을까 싶을 만한 작품이다. 1939(33)의 첫 시집 «촛불»에 실린 <이 밤이 너무나 깊지 않습니까?>에서 태양의 어두운 상황 속에서 갈망하는 대상이었다면, 해방 후 쓴 <꽃덤불> 1행의 태양은 그 대상을 성취했음을 상징할 것이다.

그런데 <꽃덤불>의 후반부의 다시 우러러 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는 우리나라가 주체적인 역량에 의해서라기보다 연합군 세력에 의해 해방됨으로 해서 빚어지는 새로운 모순을 암시해 준다. 어찌 보면 식민지의 연장이기도 해방의 현실을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라고 표현한 것이다. 신석정의 정확한 현실 인식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꽃덤불>
태양(太陽)을 의논(議論)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太陽)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太陽)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 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 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 여섯 해가 지내갔다.//
다시 우러러 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太陽)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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