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김영랑(金永郞, 1903~1950)은 전남 강진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영랑은 호이고,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그는 강진에서 강진 보통학교를 나온 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부를 계속하여 1916년(14세) 결혼한 후 서울 기독교 청년 회관에서 영어를 배운다.
이듬해인 1917년(15세)에는 휘문의숙에 입학하는데, 이곳에서 선배인 홍사용, 안석주, 박종화, 그리고 후배인 정지용, 이태준 등과 문학 이야기를 종종 나누면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데, 결혼한 지 일 년밖에 안 된 아내가 세상을 떠난다. 1919년(17세)에는 구두 속에 선언문을 감추고 고향에 내려갔다가 발각되어 감옥살이를 했다.
결국 휘문의숙을 졸업하지 못한 김영랑은 1920년(18세) 일본으로 가서 아오야마 학원에 입학하는데, 이 무렵 평생 우정을 나눈 박용철을 만난다. 김영랑은 본래 중학교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는 등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도쿄에서도 성악을 전공하려고 했지만, 음악 공부를 하면 학비를 대 주지 않겠다는 아버지 때문에 영문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 또한 관동 대지진으로 포기하고, 1923년(21세) 귀국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김영랑은 서울을 오가며 작가 최승일과 교유하는데, 최승일의 누이이자 당대 최고의 무용가인 최승희와 사귀며 문단에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재혼은 1925년(23세)에 다른 여성과 하였다.
문학 활동
유학 시절부터 박용철의 권유로 시를 습작하던 김영랑은 1930년(28세) 박용철, 정지용 등과 «시문학»을 창간하고, 창간호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4행 소곡 7수>,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등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김영랑의 시들은 당시 관념과 이데올로기가 난무하던 문단에 새롭게 다가왔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한다. 박용철과는 계속 친하게 지내어 박용철이 주간한 «문학»에도 작품을 계속 발표하고, 1935년(33세)에는 박용철의 도움으로 «영랑 시집»을 냈다.
«영랑 시집» 이후에는 몇 년 간 공백기를 가지는데, 공백 후 발표한 1939년(37세) <독을 차고>, <전신주>, <오월>을 발표하고 1940년(38세) <한줌 흙>, 1948년(46세) <발짓>, 1950년(48세) <오월 한> 등에서 다소 사회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해방 후에는 고향인 강진으로 가서 우익 운동에 참여하고 독립 촉성회 단장을 역임한다. 1948년(46세)에는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으며, 1949년(47세)에는 공보처 출판 국장을 지내면서 «시문학» 시절의 순수 문학 분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편 생애 두 번째 시집인 «영랑 시선»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랑은 1950년(48세) 6 · 25 때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서울에서 은거하던 중 9월, 길에서 포탄 파편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김영랑 문학의 특징
김영랑의 생애는 대체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 때문인지 김영랑의 작품 속에는 알게 모르게 시대의 암울한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 그의 시 세계는 흔히 경험의 구체적 상(像)들이 생략된 채 막연한 슬픔과 한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김영랑 시의 슬픔과 한, 상실과 좌절의 그림자는 사회적 자아를 실현한 계기를 봉쇄한 식민지 지배 체제의 억압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증언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김영랑의 시는 탁월한 음악성으로 주목된다. 운율이란 본래 동시성을 가진 사건의 반복적 재현으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김영랑의 시에는 음소 단위, 음절 단위, 단어 혹은 어절 단위, 문장 구조 단위, 시행과 연 단위, 음수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반복이 나타나 빼어난 운율을 형성한다.
김소월 이후 우리말 구사에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인 김영랑은 “북도에 소월, 남도에 영랑”이란 말에 어울리게 섬세하고 은은한 서정시의 극치를 이루었다.
김영랑의 시
«영랑시집»과 그 이전의 작품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는 원제가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으로, 김영랑의 등단작이자 순수시라는 새로운 영역을 펼쳐 보인 작품이다. 1930년(28세) «시문학» 창간호에 발표되었다.
남도 사투리가 부드럽게 순화되어 예술적 미를 형성하고 있으며, 생기가 감도는 가락은 짙은 향토색과 감미로운 서정성을 느끼게 한다. 또한 동일 어구를 반복함으로써 음악적 리듬을 부여하는 한편, 단순한 형식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막아 주는 시적 효과를 내고 있으며, 특히 의미상 3음보 율격의 시행을 4음보 형식으로 배치함으로써 시인의 내적 충동과 외적 절제라는 이중성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일반적으로 김영랑의 시는 밖을 향해 시선이 열려 있는 외부 지향의 시가 아니라 외부 세계의 객관적 대상을 ‘나’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내향의 특징을 갖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구체적인 체험 내용을 직접적으로 진술하기보다는 그것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인상과 감흥을 드러내는 특성을 갖게 된다. 이 시 역시 ‘내 마음’에 포착된 ‘동백잎’의 인상과 감흥을 ‘나’의 안에서 즐기고 만족하는 내면 지향의 시로, 김영랑의 정신세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오매 단풍 들것네>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로도 알려진 작품으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듬뿍 배어 있는 시이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와 같이 «시문학» 창간호에 실린, 김영랑의 등단 작품이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정신 없이 일상사에만 매달렸던 ‘누이’는 어느 날 장독대에 오르다 바람결에 날아온 ‘붉은 감잎’을 보고는 가을이 왔음에 깜짝 놀라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소리 지른다. 그 놀라움이 누이의 얼굴을 붉히고 마음까지 붉힌다. 그러므로 ‘단풍 들것네’란 감탄은 ‘감잎’에 단풍이 드는 것이 아니라, 누이의 마음에 단풍이 든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오매, 단풍 들것네”라는 감탄은, 첫 번째 것이 누이가 가을이 왔음을 알고 반가워하는 의미라면, 두 번째 것은 누이가 가을로 인해 갖게 된 걱정스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며, 세 번째 것은 화자인 동생이 누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시문학» 2호에 실린 작품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 순수 서정의 세계를 그려낸 시이다. 울림소리를 사용하고 ‘새악시’, ‘살포시’, ‘보드레한’, ‘부끄럼’ 같은 의도적인 조어, 그리고 각운 ‘-같이’ 등과 두운을 사용하여 민요풍의 율격을 잘 살리고 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詩)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내 마음을 아실 이>
1931년(29세) «시문학» 3호에 발표한 작품으로, 계몽이나 정치적 의식을 버리고 언어의 기교와 순수한 서정을 중시한 김영랑의 시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주제로 하여, 여성적 화자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통해 남도 특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섬세한 시어를 구사하여 밝은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김영랑의 시 세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 마음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가 남긴 시 70편 중 ‘내 마음’이라는 의미의 시어가 등장하는 작품은 60편이 넘는다. <내 마음을 아실 이>,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사행시>, <오매 단풍 들것네>는 물론 후기 시 <독을 차고>에도 ‘내 마음’이 나온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1934년(32세) «문학»에 발표한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전통적인 애상의 정서를 잘 담아낸 서정시이다.
김영랑의 시 세계는 이 작품의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구절 속에 잘 함축되어 있다. ‘찬란한’과 ‘슬픔’이라는 모순된 가치를 통해 ‘봄’을 수식하는 모순 형용의 기법을 사용한 구절로, 모란이 지기 때문에 슬픈 시간인 동시에 모란이 피기 때문에 기쁜 시간인 ‘봄’을 통해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상황을 드러낸 명 시구이다.
그런 모란이 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설움에 잠겨 있는 화자의 태도는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와 <내 마음을 아실 이>에서 보여 준 바 있는 ‘내 마음’의 세계를 한층 더 내밀화시키는 것으로, 결국 김영랑의 시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북>
1935년(33세) «영랑시집»에 실린 <북>은 판소리의 연창과 북의 관계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판소리에 대한 김영랑의 남다른 조예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영랑의 고향 강진은 판소리의 고장이고, 영랑을 비롯한 시문학파가 음악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의미가 깊다. 전통 문화에 대한 영랑의 애정이 3 · 4음보의 전통 가락과 장단 · 완급의 다양한 변화, 북소리를 연상하게 하는 의성어 등과 잘 어울려 나타나 있다.
<북>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몰이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長短)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伴奏)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덕터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 가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지.
일반적으로 판소리에서 북은 반주를 위한 소도구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북 없이는 소리가 이루어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소리를 이끌어 가는 ‘컨덕터’가 될 정도로 그 역할은 지대하다. 일 고수 이 명창(一鼓手二名唱)란 말도 결국은 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북도 소리([唱])가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를 떠나면 “북은 오직 가죽일 뿐”이며, 명창 송만갑도 북 없이는 그의 소리 예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북은 소리에 종속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소리는 북으로 인해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북>은 판소리에 있어 북의 지대한 역할을 보여 주는 한편, 소리와 북의 일치에서 예술과 인생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북과 소리의 조화 속에서 소리가 완성되고 명창이 탄생되듯,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흔치 않”음을 인식한 김영랑은 마침내 북과 소리의 조화로 이루어진 소리 예술과 삶의 일체감 속에서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영랑시집» 이후의 작품
«영랑시집» 이후 1930년대 후반부터 김영랑은 이전에 보였던 순수시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한다. 다시 말해 이즈음부터 그 동안 일관되게 고집해 오던 ‘내 마음’의 서정 세계를 버리고 현실 세계로 방향을 돌리는데, 시기상 일제의 한민족 말살 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오월>
공백기를 가졌던 김영랑이 1939년(37세) 7월 «문장»에 발표한 작품으로, 여전히 이전의 순수시의 성격을 보여 주고 있다. 오월의 아름다운 자연을 여성적 아름다움으로 노래하였는데, 김영랑의 다른 작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회화적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남도 지방 토속어를 통한 향토색, 시각적 심상의 색채 대조, 전통적인 율격, 맑은 서정성 등이 한데 어우러져 오월의 아름답고 싱그러운 자연을 잘 형상화한 작품이다.
<오월>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독을 차고>
1939년(37세) 9월에 발표한 <독을 차고>부터 김영랑의 시 세계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독을 차고>는 특히 김영랑의 시에서는 드물게 일제 강점기의 현실 상황을 치열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화자와 현실의 긴장된 관계가 상징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며, 단호하고 강인한 어조로 대화적 구성을 취함으로써 주제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독을 차고>에서 보여 준 현실 인식은 김영랑의 시에 대해 유미적이고 현실에 안일하기만 하다고 평하는 논자들을 반박할 수 있는 주요 근거가 된다.
<독을 차고>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춘향>
1940년(38세) 발표한 <춘향>은 <독을 차고>와 함께 김영랑의 변화를 한눈에 알게 해 주는 작품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일편단심을 지키는 춘향의 애틋한 정절을 세조에 맞서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사육신, 촉석루에서 순국한 논개의 우국(憂國)에 대응시켜 노래하고 있다. 작품의 발표 시기가 1940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 시의 창작 의도가 단순히 춘향의 사랑과 정절만을 예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잊힌 역사와 문화를 노래함으로써 식민지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적극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이 시는 가사나 민요에 바탕을 둔 정형적 운율로써 순수 서정 세계만을 펼쳐 보인 초기 시에 비해, 자유로운 운율을 구사하여 시의 산문화라는 표현의 변화를 보여 준다. 제재 면에서도 개인적인 문제로 국한되었던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역사와 문화로 확대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춘향>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魂)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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