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의 생애
학창 시절과 시인 활동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 1904~1938)은 전라남도 광주 송정에서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나 1916년(13세)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휘문의숙에 입학하였다가 바로 배재학당으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1918년(15세)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 가 1921년(18세) 도쿄 아오야마 학원에 편입하였다. 졸업 후 1923년(20세)에는 도쿄 외국어학교 독문학과에 입학하는데, 독어는 물론이고 영어 실력도 대단하여 이 시기부터 하이네, 괴테, 셸리 등의 작품을 번역한다. 그는 재일 유학생 중 외국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명 ‘해외 문학파’에 가담하지만, 관동 대지진 때문에 귀국한다. 귀국 후에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 역시 몇 달 만에 자퇴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독서와 습작을 하지만 발표하지는 않다가, 1930년(27세) 자비를 털어 «시문학»을 창간하고 여기에 시 <떠나가는 배>, <비내리는 날>, <싸늘한 이마>, <밤 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들어섰다. 이어 «시문학» 2호와 3호에 <시집가는 시악시의 말>, <한 조각 하늘> 등의 시편을 계속 발표하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 활동하던 김영랑이나 정지용의 시들이 워낙 쟁쟁하다 보니, 곧 박용철은 스스로 시인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시인보다는 이론으로 기운다. 사실 그는 «시문학» 창간호에 실은 창간 의의에서부터 독자적인 시론의 서곡을 보여준 바 있다.
시론으로의 전환 이후
1931년(28세) «시문학»이 3호로 종간되자 박용철은 다시 사재를 털어 곧바로 «문예월간»을 창간한다. «문예월간»은 «시문학»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소설, 영화 등으로 장르의 폭을 넓혔다. 또 괴테 사후 100주년 특집을 마련하는 등 해외 문학에도 지면을 할애하고, 필진도 전보다 많이 끌어들였다. 박용철은 «문예월간» 창간호에 실은 <효과주의적 비평 논강>을 발표하고 «조선일보»에 시단의 월간평을 발표하면서 순수 문학 비평가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문예월간»이 4호로 끝나자 1933년(30세)에는 다시 «문학»을 창간한다. 그리고 김영랑, 신석정, 이하윤, 유치환을 끌어들여 대외에 시문학파가 아직 건재함을 알렸다. 시론에도 계속 힘을 기울여 1934년(31세) 하우스먼의 케임브리지 대학교 강연을 번역한 <시의 명칭과 성질>을 발표하면서 구체적인 이론을 펼쳤다. 이후로도 계속하여 시 비평가로서의 활동을 진행한다.
박용철은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 1931년 결성되었던 ‘극예술동인회’에 가담하고, 1934년(31세) 연극 잡지 «극예술» 창간에 앞장선다. 또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같은 작품을 번역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시집은 한 권도 내지 않으면서 김영랑과 정지용의 시집을 발행할 만큼 따뜻한 동료애를 보여 준 문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1938년(35세), 결핵으로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창작집은 사후인 1939년(36세) 5월, 가족들과 동교들에 의해 «박용철 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박용철의 시론 - 존재의 시론
기교주의 논쟁
박용철은 1930년(27세) «시문학» 창간호에 창간 의의에서부터 순수 문학론의 논리를 조금씩 보여 주다가 1931년(28세) «문예월간» 창간호에 <효과주의적 비평 논강>을 발표한다. 여기서 그는 형식을 등한시하는 계급 문학을 비판하고, 자신이 세운 비평의 열두 가지 강령에 따라 작품의 효과를 분석한 바 있다.
그런데 1935년(32세), 임화는 김기림을 비롯한 모더니스트들, 그리고 박용철이 속한 시문학파 등을 싸잡아 시대 현실을 외면한 채 ‘말초 신경’의 언어를 제작하여 ‘시적 언어’에 실패한 무리라고 비난한다. 이에 박용철은 <올해 시단 총평>을 통해 김기림의 시 <기상도>와 시론 <오전의 시론>을 분석하면서 김기림의 시 정신 결여와 지성 과잉을 지적하고, 동시에 임화의 편견을 적시하면서 과연 그렇게 말하는 임화는 ‘시적 언어’에 성공했느냐고 묻는다. 김기림과 임화 모두를 비판한 것이다.
임화는 이듬해인 1936년 <기교파와 조선 시단>을 발표하여 박용철을 비롯한 순수파를 ‘기교파’라면서 다시 비난한다. 그러나 박용철은 <기교주의설의 허망>이란 글을 통해 ‘기교’란 시의 창작 기술이며 오랜 시 창작과 성숙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시적 기교’는 불가피하다는 시론을 펼친다. 이런 일련의 기교주의 논쟁을 통해 박용철은 비평가로서의 위치를 다지게 된다.
<시적 변용에 대하야>
박용철의 시론은 1938년(35세) 발표한 <시적 변용에 대하야>에서 좀 더 체계를 갖춘다.
여기서 그는 ‘변용’이란 시 정신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결과이고, 그 변용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기다림’이라는 내적 고통과 갈등을 겪는다고 말하였다. 아울러 이를 온갖 수난 끝에 꽃을 피우는 ‘나무’에 비유하여 ‘변용과 기다림’의 시론을 채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박용철은 여전히 추상성과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과학적 · 분석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모더니스트나 프로 문학가들을 설득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비평이라기보다는 감상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용철의 시
<떠나가는 배>
1930년(27세) «시문학» 창간호에 발표한 박용철의 데뷔작이다. 젊은이가 암울한 일제 식민지 현실을 눈물로만 보낼 수 없다는 강변(强辯)을 담은 것으로,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서글픈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박용철의 시는 대체로 주제 의식이 분명하지 않으며 언어 구사가 명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데, 그나마 이 시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은 이 작품이 시적 완성도가 높아서라기보다는, 나라를 빼앗기고 설움에 잠겨 있던 당시의 민족적 분위기에 영합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떠나가는 배>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시적 화자는 표면적으로는 ‘나두야 가련다’고 하며 미래 지향적 태도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갈등과 고뇌가 깔려 있다. 몇 번씩이나 자신에게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며 강변하지만, 그 내면의 의지는 극복되지 못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안개같이 물 어린 눈’을 글썽이는 인간적 나약함을 보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시적 화자의 모습을 통하여 일제의 수탈을 피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당대 유랑민들의 비애와 슬픔을, 한숨과 눈물로써 세월을 보내야 했던 당시 젊은이들의 고뇌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싸늘한 이마>
<떠나가는 배>와 함께 발표한 <싸늘한 이마>는 시적 자아의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각 연의 첫 행은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둘째 행은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벗 삼고 싶은 대상을 보여 주고 있다. ‘~라도 있으면(있다면)’이라는 표현은 화자의 외로움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준다.
화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외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왜 어둠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이 시는 어느 것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지 않지만, 그런 대로 이 시가 읽히는 것은 바로 화자의 진한 호소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저 간단히 일제 치하라는 시대 상황으로만 설명하기엔 무언가 있어야 할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1920년대 초 백조파의 ‘감상의 과잉’에 박용철의 기교가 결합된 정도의 수준으로 평가된다.
<싸늘한 이마>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듯 눈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은 새파란 불 붙어 있는 인광/ 까만 귀뚜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기쁨이랴//
파란 불에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한 즐검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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