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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26. 한용운

2014. 5. 17. by 솜글

한용운의 생애와 사상

어린 시절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다. ‘용운은 법명이고, 입산 전의 본명은 정옥(貞玉)이다. 한용운은 어릴 때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는데, 기억력이 매우 좋아서 마을에서 신동으로 불리곤 했다.

한용운은 1893(15)에 결혼하였는데, 갑오 농민 전쟁과 갑오경장을 중에 부모와 형제를 잃었다. 이후 1897(19)에 무작정 집에서 나와 설악산의 오세암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절에서 나무를 하고 물을 긷고 밥을 짓는 불목하니 노릇을 하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그러나 두메산골에 답답함을 느끼고 얼마 후 오세암을 나와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를 돌아다닌다.

입적과 독립 운동 활동

방랑 생활을 하면서 동 · 서양의 철학과 불교를 깨친 한용운은 1906(28) 다시 입산하여 설악산 백담사에서 정식으로 불문에 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독학으로 대장경을 익히면서 불경 언해 작업에 착수하였다. 1909(30)부터 1910(32)까지 써서 1913(35) 출간한 «조선 불교 유신론»은 우리나라 불교의 교학, 제도, 의식 전반에 걸친 개혁 방안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은 교계가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일본 불교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던 터에 나온 것이라 더욱 주목 받았다.

한일 합병이 되자 한용운은 만주로 가서 의병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 나선다. 그리고 1911(36) 귀국하여 1913(35) «조선 불교 유신론», 1914(36) «불교 대전»을 발간하며, 1917(39)에는 <정선강의 채근담>을 주해한다. 이후 한용운은 전국의 사찰들을 돌며 강의를 하고 1918(40) 불교 잡지 «유심»을 만들어 시와 수필을 싣는 등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한용운은 1919(41) 3 · 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가 체포되는데, 온갖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고 옥중에서 <조선 독립의 서>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이 글은 <독립 선언서> 못지않은 명문으로 평가된다.

3년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뒤에도 그는 반일 모임이나 강연에 빠짐없이 참여한다. 1922(44)에는 «개벽»에 옥중에서 쓴 <무궁화 심으라>를 발표하고, 1924(46)에는 대한 불교 청년회의 총재로 취임한다. 그리고 1926(48)에 들어 시집 «님의 침묵»을 펴냈다.

1927(49)에는 신간회 발족에 앞장서고 1929(51)에는 광주 학생 운동을 지원했으며, 1930(52)에는 불교계의 청년들을 모아 비밀 결사 만당(卍黨)을 조직한다. 이후 몇 해 동안 불교 잡지, 강의 등으로 활동하는데, 다른 문인들과 달리 일생에 걸쳐 일제에 단 한 번도 협력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아예 호적에 이름조차 올리지 않는 등 일제의 어떤 강요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을 조국의 자주 독립에 힘썼던 한용운은 1944(66) 6, 해방을 결국 보지 못하고 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숨을 거둔다.

사진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3706)

«님의 침묵»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 외에도 «신인문학», «삼천리», «조광» 등에 시 <꿈과 근심>, <실제>, 수필 <최후의 5분간>, 장편 소설 <흑풍>, <박명>, 미완성 연재소설 <후회>와 중편 <죽음> 등을 남겼다.

«님의 침묵»의 의의

어릴 적 서당에서 10여 년 공부한 것이 학력의 전부인 한용운은 철학과 문학을 스스로 익혔고 동인 활동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1926(48), 정서와 사상이 조화된 아름다운 시 88편이 실린 «님의 침묵»을 펴내어 문단에 충격을 주었다.

1925(47)경까지 설악산 백담사에서 써서 이듬해 회동서간에서 처음 펴내고 1934(56)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다시 펴낸 «님의 침묵»은 한국 현대 시사에 드높이 솟아 있는 한 봉우리이다. 이 시집에서 한용운은 김우창의 평가대로 우리나라의 향가, 고려 가요, 시조, 가사, 한시, 불경에 흐르는 정신과 시적 방법이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은 누구인가

한용운은 «님의 침묵» 앞에 <군말>을 넣어 창작 동기를 밝히고, 뒤에는 <독자에게>라는 제목의 탈고 소감을 담았다. 이런 구성은 당시 매우 이채로운 것이었다.

<군말>
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군말>을 통해 우리는 이 절실하게 갈구하고 그리는 대상 모두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은 오랫동안 여러 논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김우창은 한용운의 그의 삶이 그리는 존재의 변증법에서 절대적인 요구로서 또 부적응의 원리로서 나타나는 한 한계의 원리이며,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진리라고 해석한다.

마지막 행의 길을 잃은 어린 양은 일제 강점기의 민족 전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어린 양이 그립다는 말은 자신이 이들을 올바른 진리로 이끌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낸 표현이겠다.

한용운의 시

<나룻배와 행인>

나룻배행인을 제재로 고도의 은유법, 쉬운 우리말 표현, 경어체를 사용한 작품이다. · · · 결의 4단 구성과 수미쌍관으로 의미를 강조하는 한편 여운을 남기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작품의 나룻배행인은 대체로 화자청자’, ‘제도자중생’, ‘종교적 절대자중생’, ‘지도자민중등으로 해석된다.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답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디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님의 침묵>

<님의 침묵>이 떠나 버린 슬픔을 누군가에게 호소하는 듯한, 아니면 혼자서 독백을 하는 듯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경어체를 사용하여 내용을 더욱 호소력 있게 전달하며, 작품 전체에 사용된 비유 기법도 정서를 고양시키고 심미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황금의 꽃한숨의 미풍’,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 ‘꽃다운 님의 얼굴같은 감각적 표현도 이 시의 심오한 주제 의식을 독자에게 친근한 것으로 바꾸어 준다.

이 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님의 침묵에 대한 화자의 태도이다. 화자는 이 떠나가 버렸고 현재 침묵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는 이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에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불교적 사유에 바탕을 둔 것인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조국 상실의 시대적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黙)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의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표현법 중 하나는 역설법이다. <님의 침묵>에서도 밝음과 어둠, 슬픔과 희망, 헤어짐과 만남이 순환 구조를 갖는 하나의 우주라는 역설적 진리를 담고 있다.

역설

역설이란 시의 표면적 진술과 그것이 가리키는 내적 의미 사이에 모순이 있는 표현을 말한다. 다시 말해 표면적 의미와 상충되는 의미를 시의 내용으로 하고, 그 모순이 발생시키는 의미론적 긴장 속에서 문학적 가치를 창조해 내는 것이 역설이다.

역설은 크게 표층적 역설과 심층적 역설로 나뉜다.

  • 표층적 역설 : 수식어와 피수식어의 관계가 모순을 지닌 경우로, 모순 어법이 이에 해당된다.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온 사물이나 관념들의 관계를 재정립하여 일종의 경이감, 충격, 즐거움을 주는 데 목적이 있다.
    ex)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유치환, <깃발> 中)
  • 심층적 역설 : 말에 담긴 모순의 의미를 일상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역설을 말한다. 심층적 역설은 크게 삶의 초월적 진리를 내포하는 존재론적 역설과, 모순된 상황 자체를 시 전체 구조에 표현하는 시적 역설로 나뉜다.
    ex)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한용운, <님의 침묵> 中)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을 보았습니다>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며 출발한다. ‘는 일제 강점기 하에서 거지이자 인격조차 없는 노예이며, 땅도 수확할 곡식도 없어 한 끼 저녁조차 해결할 수 없다. 이런 가 거지보다 더 비참한 것은 민적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당신이 가신 후의 일, 즉 조국을 빼앗긴 후의 일임을 알 수 있다.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나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음으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主人)거지는 인격(人格)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生命)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罪惡)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야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 하고 능욕(凌辱)하랴는 장군(將軍)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왼갖 윤리(倫理), 도덕(道德), 법률(法律)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烟氣)인 줄을 알었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人間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는 임의 존재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각 행은 모두 의문문으로 끝나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나와 있지 않다. 결국 이 시는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 본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것은 소멸의 이미지를 생성의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고차원적 역설의 일면을 보여 준다.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비밀>

<비밀>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를 채용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제1연에서 계속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내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라고 발뺌하면서도 어떤 비밀이 있음을 함축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란 발언도 그 진위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화자도 사람인 이상 자신이 간직한 사랑을 상대방에게 알리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2연에 오면 시적 화자의 사랑은 말 못할 비밀이기 때문에 더욱 강렬해지고 더욱 흘러넘쳐 꿈속으로까지 파고드는 역설적이고 지독한 양상을 띤다.

3연에서는 표출되지 않은 화자의 마지막 비밀이 소리 없는 메아리와 같다고 하는데, 이 말은 그 자체가 모순 어법(oxymoron)이라 할 수 있다.

<비밀>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야 비밀을 지키랴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밖의 비밀은 한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고 마지막 비밀은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 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이별은 미의 창조>

이 작품은 이별의 등식 관계를 통해 이별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로 시작해서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로 끝나는 구조는 이 시가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더 큰 긍정을 준비하는, 이른바 정 · · 합의 변증법적 철학 원리에 기초해 있음을 보여 준다.

<이별은 미의 창조>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별의 미,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있는 것처럼 긍정적 가치는 반드시 부정적 가치의 존재에서만 그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역설의 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황금은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탕으로 빛을 발하고, 검은 비단은 어둠 속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으며, 생명은 죽음 없이는 가치를 얻을 수 없고, 시들지 않는 꽃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의 다시 만남을 전제로 한 이별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 되며, 또한 그 이별은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있는 이별이므로 새로운 미의 창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복종>

<복종>은 사랑의 원리와 자유에 대한 투시가 담겨 있는 작품으로, 겉으로 볼 땐 모순되어 보이는 자유복종이라는 두 개념이 모순되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 시에서 복종은 타율적인 강요에 의한 속박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자발적, 능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복종은 사랑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의미를 지니며, ‘로 하여금 오히려 더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더 크고 빛나는 만남을 위해 이별이 전제되듯,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는 복종이 전제된다는 논리이다.

<복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정천 한해>

<정천 한해>에서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는 ()의 하늘()의 바다이지만, 그 곳은 가을 하늘보다 높고 봄 바다보다 깊어 시적 화자는 결코 갈 수가 없다. 이렇게 제 자신을 미약한 존재로 드러내고 있는 화자의 숨은 의도는 정천 한해를 무조건 예찬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정천 한해>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 하늘을 따를쏘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 바다만 못 하리라.//
높고 높은 정() 하늘이/ 싫은 것만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 바다가/ 병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라서 오를 수만 있으면/ () 하늘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널 수만 있으면/ () 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정() 하늘이 무너지고 한() 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情天)에 떨어지고 한해(恨海)에 빠지리라.//
아아, () 하늘이 높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아아, () 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도 얕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짧든지/ () 하늘에 오르고 한() 바다를 건느려면/ 님에게만 안기리라.

()으로 찬 마음은 가을 하늘보다도 높고, 사무친 한()봄 바다보다도 깊다. 이 시는 대립적 개념인 이 하나로 통합되어 이라는 초월적 존재로 귀결되는 과정, 즉 대립적 관계에서 합일적 경지로의 이행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유한한 정한의 세계를 부정하고 극복하여 초월적 세계로 승화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소망이 잘 나타나 있다.

<찬송>

각 연이 3행으로 된 서정시다. 각 연의 1행은 1행끼리, 2행은 2행끼리, 3행은 3행끼리 서로 같은 구조로 되어 있으며, 각 연의 마지막 행에서 의 존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찬송>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珊瑚)가 되도록 천국(天國)의 사랑을 받으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 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의()가 무거웁고 황금(黃金)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복()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梧桐)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光明)과 평화(平和)를 좋아하십니다./ 약자(弱者)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慈悲)의 보살(菩薩)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타고르의 시 ‘Gardenisto’를 읽고>

한용운이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시를 읽고 난 뒤 감상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한용운의 문학관과 종교관이 나타나 있어 주목을 끈다. ‘Gardenisto’<The Gardener>(=<원정>)를 에스페란토 어로 번역한 것이다.

타고르(R. Tagore)는 동양 최초로, 그것도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인으로서 191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찬양하기도 했던 시인이다. 그가 당시 많은 우리 문학인들에게 동방의 시성(詩聖)’으로 추앙받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타고르는 1917년 최남선의 «청춘»에서 처음 소개된 후 김억을 통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졌는데, «님의 침묵»에 수록된 시편들은 타고르의 본격적 소개 이후 창작된 작품이다.

<타고르의 시 ‘Gardenisto’를 읽고>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의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명상>

물질 위주의 욕망과 대립하는 자연미와 인간에 대한 애착, 동경을 마음의 행로를 따라 여행하는 구조로 써서 시인 자신의 정신적 가치관 또는 신념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하나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명상이라는 것은 형태가 없는 것인데, 한용운은 그 무형의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이러한 단연 구조를 택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안 한용운뿐만 아니라 심오한 사상이나 종교적인 감정을 나타내려고 하는 시인들은 대개 이러한 방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타고르도 시집 «신월(新月에서 동양의 신비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수법을 여러 시편에서 사용하였다. 한용운은 타고르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는 것이 정설인데, <명상>은 자연미 중심의 동양적인 삶을 주장하는 타고르의 그것과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명상>
아득한 명상의 작은 배는 가이없이 출렁거리는 달빛의 물결에 표류(漂流)되어 멀고 먼 별나라를 넘고 또 넘어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이르렀습니다./ 이 나라에는 어린 아기의 미소(微笑)와 봄 아침과 바다 소리가 합()하여 사랑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은 옥새(玉璽)의 귀한 줄도 모르고, 황금을 밟고 다니고, 미인(美人)의 청춘(靑春)을 사랑할 줄도 모릅니다./ 이 나라 사람은 웃음을 좋아하고, 푸른 하늘을 좋아합니다.//
명상의 배를 이 나라의 궁전(宮殿)에 매었더니 이 나라 사람들은 나의 손을 잡고 같이 살자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天國)을 꾸미려고 돌아왔습니다./ 달빛의 물결은 흰 구슬을 머리에 이고 춤추는 어린 풀의 장단을 맞추어 넘실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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