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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테마 91. 황석영

2022. 1. 14. by 솜글

황석영의 생애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황석영(黃晳映, 1943~)은 본명이 수영으로, 만주에서 태어났다. 1945(3)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평양을 거쳐 황해도 신주로 이주했는데, 남과 북에 분단 정권이 들어선 수 1949(7) 부모를 따라 월남해 서울 영등포 쪽에 정착했다. 당시 영등포는 공장 지대로 노동자나 영세민 집안의 아이들이 많았는데, 황석영의 어머니는 그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엄격하게 막았다고 한다. 1950(8) 영등포국민학교에 입하였다가 전쟁과 피난을 거친 후 졸업하였다.

1961(19)에는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하는데, 1학년 때 학원 문학상을 받는가 하면, 대학 문예 작품 공모에 두어 차례 붙고, 부산의 한 일간지 신춘문예에 <부활 이전>이 당선될 정도로 일찍부터 문재를 드러냈다. 1962(20)에는 단편 <입석 부근><사상계> 신인 문학상 공모에 입선하였다.

경복고등학교에서 1학년 때 퇴학당한 후 야간 고교를 가까스로 마친 황석영은 한동안 문학을 하지 않고 방황과 모색의 시간을 가진다. 이 무렵 그는 장교 출신 제대 군인과 함께 신탄진 연초 공장 공사장을 비롯해 청주, 진주, 마산 등지를 떠돌며 닥치는 대로 노동판을 체험한다. 1966(24)에는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베트남 파병을 다녀왔다.

1970년대 문단 생활

제대 후 1970(28)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이 당선되어 정식으로 문단에 나오고, 계속해서 <돌아온 사람>, <아우를 위하여>, <이웃사람>, <줄자> 등을 잇달아 내놓는 한편 중편 <객지> 같은 문제작을 내놓아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어 1972(30)에는 곧은 성격의 지식인이 남 · 북 체제를 오가는 과정에서 겪은 비극을 그린 <한씨 연대기>, 1973(31)에는 한국 단편의 정수 중 하나로 꼽히는 <삼포 가는 길>을 발표하였다.

1974(32)에는 <장사의 꿈>,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 등을 발표하고 창작집 <객지>를 냈으며, 7월부터 <한국일보>에 역사 소설 <장길산>의 연재를 시작하여 민중적 삶의 원류를 탐구하였다. 1976(34)에는 전남 해남으로 이주하여 <심판의 집>, <가객> 등을 냈으며, 1978(36)에는 광주로 거처를 옮겨 거기서 민중 문화 연구소현장 문화패를 창립하였다.

1980년대 이후

1980(38) 작품집 <돼지꿈>, <어둠의 자식들>을 내놓은 후 1984(42)에 들어 무려 10년에 걸쳐 완성한 전 10권의 대작 <장길산>을 펴냈다. 1987(45)에는 베트남전을 통해 분단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조명한 장편 <무기의 그늘>을 발표하여 이듬해 만해 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황석영은 1989(47) 평양 제1차 범민족 대회에 참가하기 밀입북하여 김일성 등과 만난 혐의로 1993(51)부터 1998(56)까지 5년에 가까운 수감 생활을 하고, 1999(57) 오랜만에 작가로 돌아와 <동아일보>에 장편 <오래된 정원>을 연재하였다.

사진 출처 : KBS(https://kstar.kbs.co.kr/list.html?tag=%ED%99%A9%EC%84%9D%EC%98%81)

황석영의 소설

황석영의 소설은 흔히 <객지>, <삼포 가는 길>, <야근> 등 부랑하는 공사판의 막일꾼과 공장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것, <>, <낙타 눈깔>, <철길>, <몰개월의 새> 등 군대 생활과 파월(播越) 체험을 담은 것, <돼지꿈>, <장사의 꿈>, <이웃 사람> 등 우리 사회의 저변 계층의 삶을 소재로 한 것, <아우를 위하여> 등 자신의 문학관 또는 작가적 태도를 보여 주는 것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단편 소설

<>

1970(28)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황석영의 등단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이다. 황석영은 이 작품을 쓰기 직전 베트남에 파병을 다녀왔는데, <>은 바로 그 베트남 전쟁의 직접적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베트남 전쟁의 의미와 함께 그 전쟁에 끌려 간 우리나라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R 포인트에 차출된 는 단지 하나를 지키기 위해 숱한 위험을 겪는다. 은 바로 베트남 민중의 사랑과 애착의 대상물이며, 때문에 적들도 우리도 이 중요한 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다. 그러나 결말부에서 미군들은 이 을 불도저로 가볍게 밀어 버린다. 그들에게는 불교와 베트남 주민의 관계라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 ‘역시 미군에게는 하나의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은 이처럼 제3세계인의 눈으로 본 베트남 전쟁의 속성, 즉 목적과 명분이 뚜렷하지 않은 채 무의미한 죽음만을 낳았던 전쟁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있다.

<탑>
는 보충병으로 차출되어 본대로부터 작전 지역인 R포인트에 도착한다. 병력 보충도 안 되는 악조건 속에서 밤만 되면 들리는 적의 목탁 두드리는 소리, 호각 소리, 고함 소리 등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런데 곧 나이 어린 하사관의 지휘 아래 아홉 명의 병사가 맡은 일이란 게 오래된 탑을 지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느 날 근처의 B교량이 파괴되면서 철수가 지연되고, 부대의 폐허 쪽으로부터 적이 나타난다. 적을 잡기 위해 나간 소총수는 도리어 인질이 된다. 다음 날 교각을 지키던 미국 부대가 철수하여 R포인트에는 의 부대만 남게 되지만, 중대장으로부터의 철수 명령은 내려지질 않는다. 그 와중에 어젯밤 포격으로 부상당한 적을 처치던 중 문 상병이 죽는다. 그날 저녁, 작전이 변경되어 오늘 밤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란 말을 듣는다. 10시 쯤, 적의 사격으로 시작된 격렬한 전투 속에서 적의 인질이 된 소총수와 통신병, 어린 분대장이 목숨을 잃었고, 남은 부대원은 탈진하여 굳어진 시체 사이에 넘어져 존다.
다음 날, 우리는 시체와 장비를 싣고 R포인트를 떠나고, 그 뒤로 미군은 캠프와 토치카를 짓기 위해 불도저로 바나나 밭을 밀어 버리며 탑마저 무너뜨린다.

<삼포 가는 길>

1973(31) <신동아>에 발표한 단편으로, 이른 바 여로 소설, 길 소설이다. 공사판에서 삼포라고 하는 또 다른 정착지로 향하는 가운데 겪게 되는 일과 인물들의 과거사가 펼쳐진다. 흔히 여로 소설에서는 동반자와의 만남이 하나의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그들은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자들이지만 동행하는 동안에는 공통된 삶의 모습을 보이게 되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삼포 가는 길>에서도 영달’, ‘정씨’, ‘백화가 도중에 만나게 되고, 또 흩어진다. ‘영달정씨는 처음에 적적해서 동행만 할 뿐, 정신적으로는 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로가 이어지면서 이 심정적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둘은 모두 산업 사회에서 소외된 주변적 존재이며, 고향을 상실한 떠돌이란 점에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안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정신적 일체감을 가지게 되며, 동행의 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차츰 하나로 합일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중간에 만나게 되는 백화또한 이 사회의 중심부로부터 이탈된 자로서 삶의 밑바닥을 전전하면서 파탄된 삶을 살고 있고 고향을 잃은 여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반적 평가에서 천한 행동을 하는 인물이지만, 교양 있고 세련된 계층의 행동보다 오히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자들이다.

한편 <삼포 가는 길>은 산업화 시대의 슬픔인 고향 상실이라는 아픔을 간직한 자들의 방황의 도정을 그리고 있다. 고향의 상실은 그들의 정체성을 앗아 가고 거대한 산업 사회의 생리에서 이탈된 자로서의 소외감과 고통을 그대로 안겨 준 것이다. 그들은 모두 고향을 향해 간다. 고향이야말로 그들의 순정한 삶을 보장해 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흐름은 거대한 물줄기아 같이 기존의 삶의 양태를 바꾸어 가며, 그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제 모두에게 고향은 사라진 것이다. ‘영달은 애초에 돌아갈 고향이 없었고, ‘정씨는 고향이 개발되고 있다는 노인의 말을 듣고 실망을 하는 데서 예전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며, 기차를 탄 백화도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고향에서 이전의 삶을 회복하지는 못할 것이란 짐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시화, 산업화는 고향을 상실케 했고, 정신적 공허를 불러 온 것이다.

사실 정씨의 고향인 삼포는 실제로 지도상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정씨에게 있어 삼포는 오랜 방랑 생활의 종착역이자 마음의 안식처인데, 이미 그곳은 개발의 물결이 휩쓸고 가 더 이상 정씨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리운 고향의 모습이 아니다. 도시화, 산업화는 많은 이들에게 고향을 상실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공허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렇게 상실의 공간들을 양산해 낸 것이 1970년대 개발 정책의 한 단면이다.

<삼포 가는 길>
영달은 공사판 일이 중단되자 밥값을 떼어먹고 떠나던 중, 밭고랑을 지나 걸어오는 정씨와 만난다. 정씨는 영달이 묵었던 천씨네 집 사정을 거친 말투로 전하면서 영달에게 짓궂게 농을 건네더니, 자신은 고향인 삼포로 간다고 말한다. 뾰족하게 갈 곳도 없고 기술도 없는 영달은 동행이라도 있으면 싶어 정씨를 뒤쫓아 간다. 정씨는 교도소에 복역한 적이 있는 사람으로 몇 가지 기술을 지닌 잡부였다.
언 강을 건너 들른 국밥집 아주머니는 술 팔던 색시가 돈을 떼먹고 달아났다며 두 사람에게 색시를 붙잡아 줄 것을 부탁한다. 국밥집을 나와 눈길을 걷던 두 사람은 소변을 보는 국밥집 색시를 발견한다. 붙잡아 가겠다고 넌지시 말해 보지만, 18세에 가출해서 술과 몸을 파는 일로 스물 둘이 된 그녀는 관록 붙은 갈보답게 거침없는 말로 둘을 무색케 한다. 세 사람은 몸을 녹이기 위해 폐가에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백화는 옛날 연애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둑해진 후 다시 길을 떠나는데, 백화가 고랑에 빠져 발을 삐는 바람에 영달이 그녀를 업는다. 백화가 영달에게 갈 곳을 묻으며, 갈 곳이 없으면 자기 고향에 가 일자리를 잡아 주겠다고 한다. 정씨도 백화가 좋은 여자라며 권유한다. 그러나 영달은 백화를 떠나보내고, 개찰구를 나가며 백화의 눈은 충혈된다.
대합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을 때, 옆에 있던 노인이 두 사람의 행색을 보고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고향 삼포로 간다는 말에, 삼포가 개발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영달은 일자리가 생겼다 좋아하지만, 정씨는 풀이 죽는다. 영달과 정씨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기차는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간다.

<아우를 위하여>

1973(31) <신동아>에 발표한 단편으로, 형이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의 소설이다.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소재 면에서는 반장 형우와 담임 선생님이 문제 학생을 제압하는 과정을 통해 합법적 폭력이 때로는 불법적인 폭력보다 더 무서울 수 있음을 보여 준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 교실의 권력자 엄석대의 몰락과 반 아이들의 기회주의적 모습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유사하다.

<아우를 위하여>의 배경인 초등학교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영래와 그 일파는 군사 독재 시절의 위정자들을 의미하고, 그들에게 시달리다가 교생 선생님에게 감화된 후 저항하여 승리를 거두는 를 비롯한 반 아이들은 군사 독재의 부당한 억압에 저항하는 민주 시민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황석영은 이 작품을 통해 진보한 사회를 위하여 항거하는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아우를 위하여>
는 서울이 수복된 상태에서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을 온다. 담임선생님은 자신의 개인적인 부업 때문에 학급을 제대로 이끌지 않고 있었다. 영래라는 아이는 아이들의 환심을 사 반장이 되고, 은수와 종하는 영래의 부하가 되어 아이들을 괴롭힌다. 영래는 아이들을 집단행동으로 몰아가고, 이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은 폭력으로 다스린다. 담임은 이런 영래의 행동을 오히려 좋게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교생 선생님이 부임해 온다. 그녀는 영래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 부드러운 어조로 비판하고, 영래의 힘을 믿고 아이들은 괴롭히는 아이는 사랑으로 깨우쳐 준다. 이러한 교생 선생님의 노력으로 는 윤리적 무관심으로 인해 정의가 짓밟히는 현상에 항거할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교생 선생님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돌린 종하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아이들이 여기에 일제히 참여한다. 결국 영래 일파는 무릎을 꿇게 된다.

· 장편 소설

<객지>

1971(29)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중편으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1970년대 노동자의 노동과 투쟁의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노동 소설의 문을 연 작품으로 꼽힌다. 간척 공사장의 노무자들이 자신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과정을 짜임새 있는 구성 위에서 사실적이고 긴박한 문체로 묘사함으로써, 산업화에 따른 현실적 모순과 열악한 노동자의 생활 및 그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력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객지>가 뛰어난 문학적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폭로했다든지 노동 쟁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든지 하는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적 형상화 때문만은 아니다. 황석영은 노동자의 현실을 절실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주인공 동혁을 비롯한 인간의 내면 심리에 대한 치밀한 추적을 늦추지 않고 세밀하게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인 차원의 행위가 집단적인 행동으로 전화되는 과정을 도식적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내면 상황에 따른 미묘한 움직임을 기민한 통찰력으로 포착해 낸 것이다.

특히 탁월한 점은 <객지>의 지향성이 노동자 계급에 대한 단순한 옹호나 노동자의 투쟁이 승리한다는 환상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는 무모한 관념적 선취를 절제하면서, 오히려 한 개인을 계급의 대표자보다는 자신의 계층을 뛰어넘고 상승하려는 폭넓은 상상력을 지닌 인간으로 파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탐구를 추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객지>는 소외된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탐구와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데 이르며, 이것은 바로 한 시대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표출한 작가 정신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객지>
어느 바닷가의 간척 공사장, 날품팔이 노동자들은 하루 품삯 중 숙박비, 식비, 잡비 등을 제하면 빚을 질 수밖에 없다. 결국 쟁의가 일어나자, 회사 측은 문제의 인물들을 해고하고 새로운 인부들인 신마이들을 데려온다.
산마이에 끼어 있던 동혁은 대위라고 부르는 동료 노동자와 함께 감독조의 횡포와 불합리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건의서와 연서장을 제출하고 파업 계획을 세운다. 동혁은 날품들이 웃개일을 하여 쟁의기간 버틸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게 하고, 동료인 오가가 감독조에게 몰매를 맞은 사건들을 투쟁의 불씨로 삼으며, 국회의원들이 답사 올 때에 맞춰 파업에 들어갈 만큼 운동가적인 역량을 발휘한다.
연서장에 서명을 한 많은 노동자들은 동혁의 지도에 따라 파업을 시작한다. ‘동혁은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소장에게 건의하고, 이 요구 조건이 관철되지 않을 때까지 파업을 할 것임을 선언하는데, 소장과 감독조는 경찰들을 끌어들인다. 노동자들은은 작업장 뒤편의 독산으로 쫓겨 가고, 산 위에서 파업을 계속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한편 소장은 늙은 노동자들을 통해 산 위에서 파업하고 있는 사람들을 회유하려 하면서, 동혁 등이 요구한 조건을 모두 수락하겠노라는 거짓말을 한다. 이러한 소장의 행동으로 인해, 독산 위의 노동자들은 파업을 풀고 산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하지만 동혁은 소장의 거짓말을 알고 있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반드시 내일이 아니어도 좋다고 말하면서, 다이너마이트를 입에 문다.

<한씨 연대기>

1972(30) <창작과 비평> 중편으로, 6 · 25 전쟁을 전후하여 분단된 남과 북에서 한 고지식한 인간이 겪게 되는 희생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분단 상황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그 상황에 주인공 한영덕의 인간성을 대응시킴으로 이렇게 시달리고 행패를 당해 죽어가야 하는 죄 없는 사람, 고지식한 사람의 한 생애가 곧 분단 세대의 본질임을 말하고 있다.

아직도 분단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지만, ‘한영덕노인의 딸 혜자처럼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자식들은 탄생하고 있다. <한씨 연대기>에서 딸 혜자는 분단된 남과 북의 비인간적 체제에 시달리다 죽은 아버지의 매장을 보지 않으려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한 시대의 비극으로 수렴하고, 죽은 아버지의 유품에서 수첩을 챙겨 들고 새벽에 상가(喪家)를 뛰쳐나와 제 몫의 다른 삶을 향해 떠난다. 이렇게 불의에 찬 역사의 희생자에게 집을 뛰쳐나가는 딸 혜자를 설정한 것은 끝내 일어선다는 주제 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한씨 연대기>
한영덕은 낡고 비좁은 다세대 적산 가옥(敵産家屋)의 방 하나를 차지하여 살고 있는 늙은 노인이다. 그는 장의사에 빌붙어 시체 치우는 일을 거들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뇌혈전으로 쓰러져 친구 서학준, 누이동생, 친딸이 바라보는 가운데 한 많은 생을 마친다.
젊었을 때 그는 김일성대학 의학부 산부인과 교수였다. 그런데 한국 전쟁 와중에 군인보다 위급한 민간인 환자를 우선적으로 치료했다며 비난을 받고 반동분자로 찍혀 투옥되고, 유엔군과 국군이 평양에 입성하기 직전에 총살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왼쪽 귀 옆에 탄환이 스쳐 살아남아 가족을 남겨 두고 혼자 남쪽으로 내려온다.
남으로 온 한영덕은 육군 군의관인 고향 친구 서학준을 통해 누이동생 한영숙을 만나고, 박씨라는 무자격자가 경영하는 산부인과에 취직해 불법 낙태 수술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 후 전쟁미망인인 윤 마담과 재혼을 해 살아가던 한영덕은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 후 박씨의 병원은 무면허 의료 행위로 적발되고, 박씨는 한영덕이 고발한 줄로 오해하여 정보대에 한영덕이 간첩이라고 투서를 보낸다. 한영덕은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겨우 풀려나지만 삶의 의욕을 잃고 폐인이 되어 아내와 딸을 버려 둔 채 집을 나온다. 그리고 장의사의 시체 치우는 일을 도우며 살던 중 생을 마감한 것이다.
한영덕의 딸 혜자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도 울지 않는다. 그녀는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를 새롭게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임종 후 잠시 잠에 빠졌다가 새벽에 눈을 뜬 혜자는 아버지의 유품 중에서 수첩을 들고 그 집을 빠져 나온다. 고별식은 끝났고 이제는 그는 망령마저 떠돌 수 없도록 땅 속 깊이 묻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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