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법> 제70조 제2항에서는 육아휴직 급여를 '육아휴직을 시작한 날 이후 1개월부터 육아휴직이 끝난 날 이후 12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육아휴직 종료 후 12개월이 지난 후에는 육아휴직 급여를 신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용감하게 반기를 내고 소송을 내 승소한 이가 있다.
판결의 경위
금융감독원에 근무하는 손씨는 2014년 9월11일부터 2015년 9월10일까지 육아휴직을 하고 2015년 9월11일 복직했다. 손씨는 육아휴직 중인 2014년 11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육아휴직 급여 지급을 신청했는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2014년 9월11일부터 2014년 11월10일까지에 해당하는 두 달치의 육아휴직 급여만 지급했다. 손씨는 복직 후 약 2년이 지난 2017년 10월에 나머지 기간에 대한 급여 지급을 다시 신청했으나 육아휴직 종료 후 12개월이 지났다는 이유로 지급이 거부되었다. 이에 손씨는 소송을 냈다.
오늘인 2018년 6월 17일,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냈다. 육아휴직 급여 신청 기한을 정한 <고용보험법>의 조항은 '훈시 규정'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훈시규정
훈시규정이란 법률의 규정 중 법원이나 행정부에 대한 '명령'의 성질을 가진 규정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다음의 <민사소송법> 조항을 보자.
<민사소송법> 제207조(선고기일) ① 판결은 변론이 종결된 날부터 2주 이내에 선고하여야 하며, 복잡한 사건이나 그 밖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도 변론이 종결된 날부터 4주를 넘겨서는 아니 된다.
위의 조항에서는 선고기일을 '변론이 종결된 날부터 2주 이내에'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선고가 변론 종결 이후 2주를 넘긴 후 이루어진다면 그 선고는 무효가 되는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 조항에서 정한 기한인 '2주 이내'는 판사 등 업무처리자들에게 '질질 끌지 말고 제때제때 하라'는 '명령'의 기능을 할 뿐이다. 이번 판결에서는 육아휴직 급여 지급 신청 기한 역시 이러한 훈시규정의 성격이라고 본 것이다.
'훈시 규정'으로 판단한 근거
재판부는 이 조항을 '훈시 규정'으로 판단할 때 다음의 사항을 종합했다고 밝혔다.
- 육아휴직 제도의 입법 취지와 목적
- 육아휴직 급여에 관한 법률의 제·개정 연혁
- 관계규정의 체계
- 조항이 도입된 때의 시대적 배경
육아휴직 급여 신청 기한 규정은 원래 육아휴직 급여의 지급 요건을 정한 조항에 포함돼 있었는데, 2011년 고용보험법이 개정되면서 별도 조항으로 빠져나왔다. 재판부는 "국회가 육아휴직 확대에 발맞춰 법을 개정할 때 신청 기간을 반드시 지켜야만 급여를 주도록 강제하지는 말자는 '입법적 결단'을 한 것으로 봐야 타당하다"며 "이를 단순한 조항의 위치 이동에 불과하다 보는 것은 입법자의 의사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신청 기간을 반드시 지켜야만 급여를 주도록 강제하지는 말자"는 의도가 개정에 포함돼 있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이번 판결에는 <고용보험법>에서 3년의 소멸시효 제도를 취하고 있으므로, 3년을 적용하면 되었지 굳이 신청 기한까지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육아휴직 급여를 꼭 '신청'해야만 하는가
법률 조항을 자구 그대로만 보지 않고 입법취지와 입법자의 의사를 종합적을 고려한 판결이다. 저출산 현상이 장기화되고 심화되는 사회적 상황도 일부 고려되었을 것이다. 현실과 사회적 상황을 모두 종합하여 고려한 이런 판결은 대중에게 사랑받는다.
휴직 급여나 실업 급여, 구직 급여 같은 것들은 신청이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간단치도 않다.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정 절차가 마련될 필요는 있겠지만, 부정수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대신 신청 절차를 조금 더 간소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해 볼 필요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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