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탓인지 여행할 때면 미리 공부를 많이 해 가는 편이다. 그래서 일본 여행에 앞서 일본 역사와 국토, 민족문화 등에 관해 공부를 하고 그 중에서도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간추려 두었다. 그 내용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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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고대
석기 시대와 조몬 시대(~B.C 200)
플라이스토세(180만~1만년전)에 일본은 대륙과 이어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동아시아 대륙의 동단의 반도를 이루고 있었고, 대륙과 같은 구석기문화를 전개했다. 세계적으로 대량의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약 1만 2천년 전에 대한해협(현해탄)과 쓰가루 해협 등 일본을 둘러싼 제해협이 형성되고 1만년 전쯤 모든 해협이 확정되어 유라시아 대륙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이어 일본은 기원전 300년까지 ‘조몬 시대’라는 독자적인 신석기문화로 이행하는데, ‘조몬’이라는 말은 이 시기 대표적 유물인 ‘승문(繩文; 줄무늬)’, 즉 밧줄무늬 토기에서 유래했다. 토몬 토기를 당시 일본은 농경을 하지는 않았지만, 수렵한 도토리를 가루내어 반죽하는 데 조몬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도 해진현상(海進現像)이 계속되어 현재의 혼슈, 시코쿠, 규슈, 홋카이도의 네 개의 큰 섬과 수많은 작은 섬으로 분리되었다. 이 시기에 한민족을 비롯한 몽골계 인종과 시베리아 지역을 통해 온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누족, 남방 폴리네시아 지역에서 온 민족들이 일본 열도로 이주하여 오늘날의 일본인의 조상이 되었다. 이 사람들을 다른 지역에서 건너 온 사람이라 하여 도라이진(渡來人, 도래인)이라고 한다.
야요이 시대·고훈 시대 도래인들
도래인들은 기원전 3세기 경부터 열도 각지, 특히 유래지에서 가까운 규슈 지역에 씨족 단위의 촌락을 형성하고 대륙 지역의 문화를 전래시켰다. 이 시기의 토기를 ‘야요기 토기’라고 하며, 이 토기가 발굴되는 시기를 야요기 시대, 그 문화를 야요이 문화라고 한다. 야요이 시대에는 금속 도구의 사용과 논농사라는 큰 변혁이 일어났으며 계급이 분화하고, 각지에 사제를 왕으로 하는 소국(小國)이 성립되었다.
3세기 후반부터는 간사이 지방을 시작으로 호족의 연합정권인 야마토 조정이 일본 통일을 시작하고 대륙과 한반도에서 산업기술과 한자를 수입하는데, 그 와중에 고분문화가 성립되었다. ‘야마토’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당시의 대형 고분이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지역이 바로 야마토(지금의 나라 현) 지역이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4세기 후반부터 남진 정책을 펼치차 일본 열도로 피난 오는 사람들이 급증해 도래인이 다시 늘었고, 이 시기 일본 왕실은 도래 기술자로부터 유용한 대륙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도래 씨족이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했으며, 쇼토쿠 태자의 ‘와(和: 화합) 사상’과 ‘이이토코토리(良いとこ取り; 남의 것이라도 좋은 것이라면 받아들인다는 뜻)’ 중심의 개혁으로 야마토도 국가의 체계를 잡아 나갔다.
아스카 시대·나라 시대
6세기 말에는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되어 7세기 전반 아스카 시대에 일본 최초의 불교문화가 생겨났다. 쇼토쿠 태자(593~622)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수도를 정하고 아스카(지금의 나라)를 정치의 중심으로 두었는데, 그 과정에서 호류사를 건축하게 된다. 7세기에 가면 이르러 도래인 계열 씨족 중 대표적인 씨족이었던 소가 씨(蘇我氏)가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어 5대에 걸쳐 일본 왕실의 외척이 되어 정치적으로 실세를 떨치기도 하는데, 그러자 나카노오에 황태자가 645년 정변으로 소가 씨를 멸문하고 수도를 아스카에서 나니와(難波, 지금의 오사카)로 천도한다. 이후 7세기말 최초의 율령을 반포하고 중앙집권의 율령 국가를 형성해 나라 시대를 연다.
헤이안 시대
8~9세기의 나라 시대에서 헤이안 시대 초기의 문화는 대륙 문화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으나 헤이안 초기에는 여러 가지 가나가 만들어졌고 정치적으로도 율령국가가 변질하여 섭관정치, 이어 인세이(왕이 양위한 뒤에도 계속 정권을 쥐고 다스리는 비정상적 정치)가 장원(莊園)을 경제적 기반으로 전개되고 각종 외척이 득세한다.
중세·근세
가마쿠라 막부
헤이안 시대 후반에는 지방 호족과 부농이 농지를 사유와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무장하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무사 계층이 되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지방 호족을 위해 움직이다가 점차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다.
한편 무사들의 성장과 더불어 11세기 후반 고산조 천황, 시라카와 천황이 개혁을 추진하는데, 그 과정에서 무사들과 내란을 벌이다가 소멸한다. 이로써 득세한 가마쿠라 무사 계층은 무사가 정치를 하는 체제인 ‘막부’를 만들어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 가마쿠라 막부 시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일본 불교의 여러 가지 종파가 발생했다.
무로마치 막부
가마쿠라 막부 멸망 후 등장한 무로마치 막부 시기에는 명나라와 국교를 열고 무역이 성행해 무로마치 문화를 이룩했지만, 차기 쇼군 계승 후보 간에 일어난 암투와 오닌의 난(1467~1477, 지방 유력자인 ‘다이묘’ 간의 주도권 싸움) 때문에 세력이 약해져 센고쿠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센고쿠 시대
센고쿠 시대 초반에는 각 지역 유력자인 슈고 다이묘들이 위세를 떨친다. 그러나 곧 슈고 다이묘들을 대신해 장원을 경영하며 실력을 키운 슈고다이와 고쿠닌들, 그리고 미천한 신분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은 사람들이 슈고 다이묘들을 타도하고 지역의 새로운 지배자로 부상했다. 이들을 ‘센고쿠 다이묘’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각지에 할거해 센고쿠 시대를 열고 고대 귀족과 막부 계층을 몰락시킨다. 센고쿠 시대인 16세기 중엽에는 기독교와 총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센고쿠 다이묘 오다 노부히데의 아들 오나 노부나가(1559~1582),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가 전국을 통일하고 새로운 지배체제를 열면서 센고쿠 시대 역시 저물고 만다.
쇼쿠호 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0년 일본 열도를 통일한 후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명분은 명나라에 대한 공격이었으나, 실상은 반대파 다이묘들의 불만을 억제하고 명·인도를 지배하려는 야망 때문이었다다. 전쟁 초반에 일본군은 한성과 평양성까지 점령하는 등 우세했지만, 한반도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명나라의 지원으로 위기에 몰리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철군한다. 정유재란까지 끝난 1598년 이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핵심 세력들이 후계를 두고 다투기 시작한다. 여기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는 반대파를 처벌하고 통일국가를 재건하며, 1603년 쇼군직에 올라 에도 막부를 개창한다.
에도 막부
에도 막부 시기에는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두고 쇄국 정책과 유교적 교화 이념을 내세워 전국 지배를 강화한다. 평화가 찾아오자 교통·상공업이 발달하고 화폐경제가 성립되어쓰며 다수의 도시가 출현하게 되었다. 문화 역시 크게 번성했다.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1623~1651)는 유교 연구를 장려하고 이어 도쿠가와 미쓰쿠니 등이 역사서를 편찬하는 등 문치를 지향하며 일본 최대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경제 실권을 쥔 도시민들의 힘은 한편으로 무사의 권위를 실추시켰고, 농민의 궁핍화와 재해 때문에 농민 폭동이 빈발하면서 에도 막부 역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적 동요가 심해 화폐제를 재편하고 농민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지만, 결국 기근과 자연재해 등이 겹쳐 에도 막부의 힘을 약화시켰다.
근대
메이지 유신
19세기 중엽 이후에는 구미 열강이 일본에게 개국을 유지해 결국 미일 화친 조약을 맺고 메이지 유신을 맞아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메이지 천황(1852~1912)은 구 세력을 타도하는 한편 1868년, 에도 막부가 위치한 에도를 도쿄로 바꾸고 이듬해 교토의 고쇼에서 도쿄의 고쿄로 천도한다. 메이지 천황은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부국강병책을 펼치는데, 그 과정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신분제를 펼쳐 왕족, 다이묘, 사무라이 계층을 귀족으로 통일하고 그 이하의 신분층은 평민으로 삼았다. 신분개혁 후 일본에는 입헌 정치에 대한 요구가 일어나 1889년 메이지 헌법을 반포하여 입헌 국가로 도약하고, 1890년 의회를 개설해 천황제의 지배체제를 완성한다.
제국주의화
국회 개설과 공업 발달로 경제적 발전을 이룬 일본을 한국과 중국 침투를 통해 점차 제국주의를 형성해 나간다. 청일 전쟁의 승리로 타이완을 점령하였으며, 그 배상금을 기초로 금본위제를 수립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정비하는데, 이 전쟁을 통해 조선에 대한 종속화에 박차를 가하고 러일전쟁을 통해 러시아를 몰아내 마침애 고종을 퇴위시키고 1910년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다.
현대
다이쇼 시대와 쇼와 초기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 막대한 무역 이익을 취한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불황을 맞고, 이어 1929년 세계 대공황 때문에 경제난이 한층 심화되고 극우 보수세력과 청년 장교층의 암살과 쿠데타로 혼란이 가중된다. 이를 계기로 일본 내 군부의 영향력이 커져 사실상 군부가 내각을 좌우하게 되고, 중국을 선전포고 없이 공격하는 중일 전쟁까지 일으킨다.
중일 전쟁이 장기화될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처음에는 참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1940년 독일·이탈리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폴란드와 네덜란드가 가지고 있던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들을 빼앗기로 한다. 1941년에는 미국 해군이 주둔하던 하와이 진주만을 급습하고 연합군에 선전포고를 하며 태평양 전쟁을 발달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1942년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연패하기 시작하고, 1945년 오키나와 섬 함락에 이어 일본군의 항복을 권유하는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는 등 전세가 계속 불리해져 갔다. 결국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쇼와 천황이 직접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쇼와 후기
일본은 항목 이후 식민지들을 모두 해방시키거나 본래 통지국에 넘겼다. 1946년에는 일본제국헌법을 폐기하여 민주주의를 기초로 한 새 헌법을 발표했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국의 병참기지 역할을 해 대량의 군수물자를 생상하는 등 호황을 누려 과거의 경제력을 회복하게 된다. 이와 같은 국력의 회복을 바탕으로 1964년 도쿄 올림픽,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개최국이 되기도 했다.
헤이세이 시대와 21세기
1970년대에 이룬 경제 성장은 1980년대에 이르러 ‘버블경제’라 할 만큼 크게 번성한다. 그러나 과도한 주가 증가와 부동산 매입으로 1990년부터 불황이 시작되었다. 때문에 자유민주당은 잠시 정권을 상실하는데,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자유민주당에 압승하면서 전후 최초로 완전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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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일본어 여행 회화는 아래에 올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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