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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부 URL 복사

'평균'을 궁금해 하는 세상

2015. 1. 10. by 솜글

정보화 시대도 모자라 이제 ‘빅 데이터’ 시대란다. 그야말로 데이터가 넘실대는 때다. 그 데이터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 즉 인구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1800년에 고작 10억 명 정도로 추정되던 세계 인구는 1960년에 세 배인 30억이 됐고, 그로부터 겨우 27년 후인 1987년에 50억, 2011년엔 70억 명으로 불어났다. 현재는 73억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는 ㅡ고령화의 맹점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ㅡ 4,900만을 넘어섰다.(국토 면적은 세계 109위인데 인구 수는 26위이다. 연이은 수도행정 지방 이전과 같은 연이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인구 밀도는 아직도 뉴욕의 8배에 달한다고 한다.)

왜 자꾸 ‘평균’을 들먹거릴까

인구가 이렇게 많은 데다 각종 산업과 직업 세계, 삶의 형태도 무한정 다양화되니 개개의 사람들을 ‘알기’가 어려워졌다. 국가가 노동 인력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ㅡ적절하든 그렇지 않든ㅡ정책을 만들려면 국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이들을 알맞게 분류할 잣대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진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민(民)을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네 가지로 나누기만 하면 됐지만, 제도적 신분이 소멸된 현대에는 그마저 여의치 않다. 그래서 자꾸만 엄청난 비용을 들여 리서치를 한다. 주기적인 인구 주택 총조사가 대표적이고, 이밖에도 각종 정기·비정기 설문조사를 끊임없이 진행한다. 조사 결과는 ‘조사 결과 평균’을 헤드라인으로 앞세워 종종 언론에 보도된다.
그래서 우리는 ‘평균’이라는 말에 너무도 익숙하다. 성적이나 등수가 과목별 점수의 평균을 기준으로 매겨졌던 학창시절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제도화된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평균’이라는 개념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당장 대형 검색 포털 사이즈에 가서 ‘평균’이라는 말을 입력해 보자. 평균 임금, 평균 키, 평균 수명, 평균 몸무게 같은 연관 검색어가 수도 없이 뜬다. 옛 시절에는 과세를 매길 때나 이따금 사용됐을 법한 사회적 ‘평균’, 이 말이 붙은 의미 단위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인구가 이렇게 많은 시대에, 국민이든 연령대든 직업군이든 간에 어떤 집단의 특색을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 ‘평균’은 나름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자꾸 ‘평균’이라는 말이 입과 귀에 오르내리다 보니 우리는 자꾸 ‘평균’을 따진다. 평균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 이를 스스로와 대조해 보는 것이다. 가령, 대졸의 30대 초반 여성인 나는 이 기본 요건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평균을 따진다. 그들의 평균 연봉, 평균 결혼 연령과 연애 횟수, 평균 통장 잔고와 평균 신용카드 사용률, 평균 해외여행 주기, 평균 키와 몸무게, 평균 소비 패턴, 평균 화장품 개수, 나아가 평균 수명까지. 대학생이라면 평균 스펙이나 평균 초봉을, 중년이라면 평균 집 평수를 궁금해 한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 또래들의 평균 키, 평균 한글 떼는 연령이 더 궁금할 것이고, 그 자녀가 다 자라 사회생활을 할 때쯤이면 자녀로부터 다달이 받는 평균 용돈이 궁금해질 것이다.

이렇게 평균을 따지면서 우리는 스스로가 평균의 범위에 있는지 확인한다. 자신이 오차 범위 내에 있으면, 즉 평균에 가까우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남들이 가진 만큼 나도 가졌다는 것을 인지하면 안도감을 느끼고 그럭저럭 만족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이 평균을 훨씬 웃돌거나 훨씬 밑돌 때 생긴다.

평균 이하일 때 : 평균 이상에 대한 동경과 자괴감

스스로가 속한 집단보다 어떤 면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우리는 쉽게 우울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30대 여성 평균 연봉이 내 연봉의 두 배쯤 된다면, 혹은 근무 시간이 내 절반쯤 된다면, 나는 지금 직장과 업무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든 간에 진지하게 이직을 고려해 볼 것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한 후에도 과거에 대한 후회와 억울함은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기간 동안 다른 데서 일했더라면 이만큼 더 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무엇인가에 대한 원망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실은 더 나은 조건으로 이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럴 ‘평균 스펙’이 됐더라면 진즉에 ‘평균 연봉’을 받으며 일했을 테니까.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자괴감을 느끼고 만다. ‘나는 평균에도 못 미치는 하찮은 존재구나’라며.
이런 현상은 ‘평균’이 도출된 대상 집단의 조건이 나와 유사할수록 심해진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가 바로 동창회다. 나이가 들어 어느 날 동창회에 갔는데 대부분이 나보다 사회적,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모습으로 나타나면 기가 팍 죽는다. ‘같은 학교’라는 똑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해 똑같은 시간을 보낸 그들의 중간 지점이 나보다 훨씬 앞서 있으니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것이다. 학창 시절 같은 계급에 있던 동창들이 지금 더 높은 계급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면 낮은 계단에 선 자신의 능력이나 삶에 대한 태도, 나아가 인생 전체를 부정해 버리기도 한다. 고등학교 동창회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대학 학과 동창회라면 자괴감이 극에 달한다. 이쯤 되면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누르며 공감했던 명언, ‘행복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 스스로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도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괴로워할 뿐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동창회에 나오는 사람은 줄어든다. 평균은 이렇게 개별 인간들의 마음을 자꾸 괴롭힌다.

평균 이상일 때 : 평균 이하에 대한 비난

스스로가 평균 이하일 땐 그래도 낫다. 더 무서운 현상은 평균 이상일 때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균을 약간 웃도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나면, 그것을 갖지 못한 평균 이하의 사람들을 하찮게 생각해 버린다. 앞서 든 대학 동창회를 다시 예로 들 수 있다. 번듯한 연봉을 받으며 대기업에 근무하는 어떤 사람이 어느 날 대학 동창회를 갔는데, 몇몇 동창들이 평균을 훨씬 밑도는 연봉을 받고 평균 순위에 한참 모자라는 소기업에서 일한다고 생각해 보자. ‘나’와 똑같은 대학, 똑같은 학과를 똑같이 졸업한 그 친구들이 우습게 보이기 시작한다. 은근한 우월감에 젖어 조롱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던 친구라면 더더욱 그렇다. “너, 예전엔 공부 잘했는데 취업은 어려웠나 보다. 안타깝네.”라며.
평균 이하의 사람들에 대한 비난은 곧 원인 찾기로 나타나는데, 그 원인을 흔히 내적 원인인 ‘노력’에서 찾곤 한다. ‘나는 노력을 많이 해서 평균 이상을 갖게 됐지만, 저 친구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평균 이하에 살고 있다’고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실로 착각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내적 요인인 노력 외에도 컨트롤할 수 없는 외적 변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세상은 평등하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모두 다른 요인을 갖고 태어나서 살아가지 않는가. 또한 세상의 자원은 한정적이며 대부분의 자원은 이미 최상류층이 갖고 있고, 나머지 소수의 자원을 다수의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경쟁을 통해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누군가는 반드시 덜 갖고, 대신 누군가는 반드시 더 갖는 구조이다. ‘노력’이라는 한 가지 내적 요인만으로 더 갖는 사람과 덜 갖는 사람이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가 평균 이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평균 이하인 타인을 ‘그럴 만하다’라며 너무도 쉽게 비난한다.

보여지기 좋아하는 사회

이 모든 ‘평균’의 결과물들이 합쳐져서 사회를 점점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질시키고 있다. 남들 눈을 의식하는 것이 비단 현대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무엇인가를 드러내려 한다. (일부) 여대생들이 트위터에 자기 사진을 올리면서 샤넬 가방을 들고 있는 것도, 지인의 결혼식에 갈 때 미용실에서 새로 머리를 하고 가는 것도, 친구에게 연봉을 부풀려 얘기하거나 처지에 맞지 않은 고급 승용차를 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중등 임용 시험 커뮤니티에서는 주변에 1차 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했다는 사람이 심심찮게 보인다. ‘합격자 평균’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자괴감과 노력 부족으로 떨어진 거라는 비난에 지친 것이다. 애초에 극소수만이 합격할 수 있는 어려운 시험인데 말이다.
평균을 따진 결과, 그렇게 우리는 자꾸 스스로를 속이려 든다. 더러는 나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거짓말을 늘어놓기도 한다. 사실은 실직한 남편이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얘기하거나,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자녀가 학원 하나 안 다니고도 1등을 했다거나. 그렇게 우리는 ‘평균’이 만들어낸 거짓말을 거듭하며 살고 있다. 점점 스스로까지 그 거짓말에 속게 되는, 그러면서도 갱신된 새 ‘평균’을 끊임없이 궁금해 하는 이상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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